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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가 이렇게 쉬울리 없어!" 원제는 "Punch line"(급소를 찌르는 말)
제목에서 오는 발랄함과 표지가 주는 느낌은 이 책이 얼마나 유쾌 할것인지 상상하게 만든다. 이 책이라면 나에게 요졸복통 웃음을 줄 것이라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만큼. 소개글을 보면 여든 한살의 할아버지의 복수이야기라니 이 또한 새롭고 흥미로운 주제여서 이 책이 어떤 책일지 점점 기대하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한다.
여든 한살, 아내가 죽고 나자 아내의 빈자리는 그에게 남아도는 시간을 남기게 한다. 그것은 참을 수없을 만큼의 많은 시간이어서 과연 무엇을 할까 고민하던 밸런타인은 복수를 결심하게 된다.아내를 놀라게하여 죽게 만든 세 망나니에게 복수를 하기위한 치밀한 계획을 세우게 되지만 덧을 놓기도 전에 망나니 한놈이 걸려들어 어이 없게 죽어 버린다. 복수가 이렇게 쉬울리 없잖아? 발랜타인은 더욱 빈틈없는 계획을 위해 수도원으로 들어가게 되는데 이 수도원은 나이가 들어 죽음을 맞이하기위한 '손님' 같은 존재.. 즉 나이 들어 잠시 머무는 곳이다. 수도원의 사람들은 발랜타인의 존재가 신기 하기 만하다. 발랜타인은 무언가에 열정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주목한 수도원 사람들은 과연 무엇으로 인해 열정적인가? 그리고 발랜타인은 자신들과 달리 왜 행복한가?에 대해 주목하게되고 그것의 원인을 알게되었을때 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발랜타인의 일에 동참하게 된다. 고령의 사람들이 모여 연쇄살인을 하게되는 그러한 이야기 이다.
이 책은 두가지 측면에서 바라보게되는데 첫째, 황혼기를 넘긴 노인들 그들도 한때는 저마다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각자 어느분야에서 사회에 공헌하며 살아온 사람들이다. 그들은 저마다 능력은 있지만 늙었다는 사회적인 편견으로 인헤 뒷방신세를 지고 있다. 이들은 뒷방 즉 수도원의 삶... 시간은 넘치며 할일은 없이 무작정 죽음으로 향해가는 무료한 사람들에게 젊은 날의 열정을 되찾고 각자의 기술과 능력을 발휘 하게하는 것을 살인이라는 극단적인 장치를 통해 보여준다. 사회는 노인들에게 더이상 얻을게 없다고 강요하며 그들의 남은 삶에 대해서는 무관심 하기만 한 것에 대한 통쾌한 복수극 같은 것이다. 둘째, 살인의 대상자 선정에 있어서 집행위원회를 열게 되고 다수결에 원칙에 따라 선정하게되는데 이것은 다분히 사회에 대한 풍자의식이 뚜렷하다.
이렇듯 좋은소재와,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진 이 책은 가진 소재에 비해 내용이 빈약하기 만하다. 스토리의 진행방식이나 묘사등 머리에 그려지듯 하는 것이 아니여서 내용이나 전계를 파악하기 굉장히 어려워 반복적으로 읽지만 내용은 파악하기 힘들다. 그것은 이 책을 읽기 매우 어려운 요소가 되어준다. 또한 블랙코메디의 장치가 있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공감을 얻기 매우 힘든것이어서 제목과 표지에서 오는 요졸복통의 느낌은 찾기 힘들다. 좋은 소재를 가지고 있지만 이해하기 힘든 책이 되어버린 느낌이다.
그래도 이 책에서의 좋은 소재에서 오는 발견은 열정이 있다면 나이따위는 언제던지 이겨낼수있다는 것이다. 나는 죽는 날까지 시력이 유지되었으면 좋겠다. 좋은 책을 원없이 읽을 수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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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치 않은 제목이 눈길을 뜬다. <복수가 이렇게 쉬울리 없어!> 뭔가의 사건에 복수를 하려고 계획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조이 슬링어라는 작가는 처음 만나는 작가인데, 캐나다의 저명한 저널리스트인 저자의 첫 소설이라고 한다. 블랙코미디를 표방하는 이 책은 그래서 관심이 더 갔다. 의외로 이름이 알려진 작가보다, 첫 소설을 쓴 작가의 글이 흥미로울 때가 많기 때문이다.
제목처럼 이 책에서는 복수를 계획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주인공 밸런타인의 여든한 살의 노인으로, 청과 도매상 일을 하다가 은퇴했다. 이렇게 나이가 많은 밸런타인이 복수를 결심하게 된것은 어느 날 밤 영화를 보고 집으로 가던 중 지하철에서 만난 세 명의 망나니에게 위협을 당하고, 죽음을 당한 아내 때문이었다.
아내의 죽음 이후로 복수를 계획하는 밸런타인, 여든한 살의 나이가 많은 밸런타인에게 복수가 쉬운 것일까?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용의주도한 계획과 치주도면밀한 실행을 위한 방법을 생각하는 그는 한 사람을 살해하러 간 곳에서 의외의 목표를 달성한다. 다음의 복수를 계획하는 밸런타인에게 방해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면, 아내가 죽고 돌봐 줄 사람이 없어, 복수에 전념할 수 없다는 점. 그래서 그는 자신을 부양해 줄 수 있는 노인 거주시설인 '수도원'에 들어가기로 한다.
나이가 들어 죽을 날이 얼마남지 않은 노인들이 모인 곳, 수도원에서 일하는 사람들 역시 그들이 죽기 위해 모였고, 하나씩 죽어나가 빈 침상이 늘어가도 당연한 일이라 받아들여지는 그곳, 하지만 복수를 계획하는 밸런타인은 뭔가에 집중 할 것이 있으니 활기차고 바빠보이도 한다. 노인들에게 그런 밸런타인의 모습은 신기했다.
무엇때문인지는 몰라도 바빠보이는 밸런타인, 그의 복수계획이 퍼지고, 처음에는 믿지 않던 사람들도 그의 계획에 동참하기로 한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 사회에서 관심을 받지도 못하고, 외로운 생활을 했던 노인들이 하나둘씩 모여 '수도원 집행위원회'를 만든다. 어떻게 생각하면 이제 그들의 인생에서 미련이 남거나, 두려울 것이 없는 나이였다. 죽음을 앞둔 사람들이 무서울 것은 없으니까. 무료하고 할 일 없는 생활보다 뭔가에 집중하며 바쁜 그 생활이 더 좋았을 것이다.
노인들에게 관심을 가져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때가 되면 죽어나가 방을 비워줘야하는 수도원의 노인들, 그들이 있으나 없으나 존재감 없는 삶을 살아야 했고, 사회의 관심도 없었다. 누구의 주목도 받을 수 없는 노인들. 그들이 복수를 계획하고, 또 예상치 못한 순간에 죽음을 마지하는 모습이 재미 보다는 씁쓸하게 느껴진다. 여든한 살의 노인이 첫 복수에 성공했을때, 아니 성공이라고 믿었을 때, 복수가 이렇게 쉬울리 없었는데.. 이야기는 생각보다 재미있거나 가독성이 좋거나 하진 않았지만, 씁쓸함과 함께 생각해 보아야할 문제를 담고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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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랙코미디란 장르를 너무 쉽게 여겼던 탓일까. <복수가 이렇게 쉬울 리 없어>는 개인적으로 참 읽기 더딘 책이다. 인간존재의 불안,불확실성을 표현하는 블랙코미디란 장르를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이 책은 상당히 꼼꼼하게 읽어야 하는 그런 책이다. 캐나다 출신의 작가, 저널리스트인 작가, 그리고 그의 명성과 더불어 첫번째 소설이라는 점이 기대를 갖게 한다. 오랜 글작업에 몸담았던 저자가 낸 첫번째 소설이라 하니 처음 작업하는 그것에 얼마나 정성을 기울였을까라는 기대심이 생긴다.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부터 동기부여를 갖게 된 주인공 노인 밸런타인. 그는 그저 아내를 죽음으로 몰아간 망나니를 죽여야겠다는 단순한 생각을 하고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행동을 시작한다. 그리고 정말 우연치않게 그 망나니 하나가 죽어버린다. 밸런타인은 나머지 망나니들도 죽여야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계획하고 또 계획하고 착수해야 한다. 한가롭게 집안 살림을 할 여유가 없다. 그래서 스스로 수도원으로 들어간다. 오로지 남는 시간 모두를 복수를 성공하기 위해서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회보장제도가 잘 되어 있을수록 노인끼리 서로 의지하고, 어울려 사는 사회시설이 많다. (노인들이 서로 의지를 하는지, 아니면 그저 수도원이란 울타리만을 인정하는지에 대해서는 독자가 판단해야 할 것이다.) <복수가 이렇게 쉬울 리 없어> 의 노인들은 어찌보면 남는 시간을 노인 특유의 고집과 아집으로 해석해서 그것을 행동에 옮기는 노망기있는 노인들의 무모한 계획을 말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죽는날을 받아놨다 하더라도 자신의 존재감을 말하고 싶은 깊은 내면의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닐까.
사회가 발달하고 복지시설이 발달한다 한들 노인들이 갖게 되는 세월의 허탈함과 흐릿해진 자신의 존재감을 다시 세워주는 것에 대한 충족은 없다. 하지만 노인들은 그것을 충족시켜달란 의지조차 없어진다. 스스로가 그렇게 만들고, 사회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저 나이가 들면 조용히 마지막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자의로, 타의로 결론이 내려지기 때문이다. 이런 무기력한 노인들의 눈에 밸런타인은 무척이나 쌩쌩한 사람이다. 무엇이 그렇게 바쁘고 생각이 많은지, 그 바쁨과 생각많음은 오히려 더 행복해 보이고 즐거워보인다. 우연찮게 밸런타인의 계획을 알게 되고 노인의 입에서 또 노인의 입으로 전해지고 그것이 점점 더 커다란 계획으로 변경을 하고 수정을 하게 된다. 절대적인 무기력으로 일관하던 노인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잠재적인 능력..이제껏 사회를 돌아가게 했던 그 원동력이 모두 총동원된다. '수도원 집행 위원회'라는 그럴듯한 명칭까지 만든다. 그리고 대상자를 물색하고 계획하고 실행한다. 또박또박 줄거리를 이어가는 글에 익숙한 독자라면 어쩌면 이 책은 어렵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확실한 죽음의 방법도 없고, 결론도 없다. 앞뒤정황을 기억해야 하는 장면도 있다. 결론이야 당연히 독자들이 파악하고 밸런타인과 '수도원 집행 위원회'를 파악하는 것 역시 독자의 몫이다.
세상과 단절된 또다른 세상에서 노인들이 나름의 능동적인 행동과 생각으로 인한 엔돌핀이 방출된다고 하면 너무 과장되는 표현일까? 어느 한 시설에 힘없는 노인네들을 몰아넣고 그 속에서 조용히 마지막날을 기다리십시요~라고 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이 노인들은 집행을 할지도 모르겠다. 그 마지막 날이 오늘 밤이 될지, 내일이 될지, 몇달 후가 될 지 모르지만 계획을 하고 준비를 하고 집행을 하는 동안은 살아있다는 존재감만으로 행복을 느끼는 노인들이 아닐까 싶다.
지구 온난화, 수도원등의 자선단체와 각 정부간의 관계, 냉동인간이란 단어가 주는 모든 가능성, 의무감때문에 수도원을 정기적으로 방문하는 자식들, 노인들은 그저 하나의 상품으로 여기는 수도원 직원들,,,심각한 주제가 표면에 있지만, 그 속에서의 당사자들은 오히려 그것을 즐기고 있다는 또는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 보여진다. 아이니컬하다라는 말이 가장 적절하다. 이것이 이 책의 원제 <Punch Line:펀치 라인-예기치 못한 웃음을 이끌어내는, 농담이나 재미난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 딱 맞는 단어가 아닐까. 참으로 어렵게 읽어 내려간 책이다. 블랙코미디라해서 사회풍자를 뒤섞어놓은 수준만으로 생각한다면 독자는 조금 더 깊이를 다져야 하는 마음의 준비를 갖고 일독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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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겐 웬수아닌 웬수가 있다. 미워할 수 조차 없는 그는 모든면에서 나보다 월등한 능력과 재주를 지녔기에 그를 한 번만이라도 이겨 보기좋게 복수하고 싶다. 그를 능가한 힘도 능력도 모자라지만 꼭 이겨보고 보고 싶은 충동을 복수라 해야할지, 질투나 시기라 해야할지 모르겠지만 이런 경험을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된다. 공부를 나보다 잘 하는 친구나 운동을 잘하는 친구를 한 번만이라도 따라잡을 수 만 있다면, 업무능력도 뛰어나고 잘생긴데다 돈도 많은 녀석을 한 번쯤 이기고 싶은 충동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은 아마 없을게다.
청과 도매상으로 일하다가 은퇴한 여든한 살의 평범한 시민 발렌타인, 그나이에 뜬굼없는 복수를 꿈꾸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내가 읽어 본 책중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주인공일 뿐더러 연쇄살인범일게다. 그가 아내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져 지내던 중 문득 아내를 위협해 죽게 만든 망나니들을 찾아 복수할 계획을 세우게 된다.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데다 외롭고 사는게 힘겨운 그는 밑져야 본전이란 생각으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긴다. 드디어 망나니1을 처치한곤 마무리 단게로 노인들만 생활하는 양노원격인 '수도원'이란 거주 시설에 들어가게 된다.
'수도원 집행위원회’의 구성원들의 꾸민 황당한 계획은 은행장이나 부동산 거물, 무기 암거래상, 유명 디자이너와 가수 등을 죽음으로 몰고가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다. 집행을 끝낸 후 천연덕스럽게 발작이 일어난 시늉을 해 구급차를 얻어 타고 무사히 돌아오는 노인들. 그들은 늙고 병약하단 이유로 언제나 용의선상에서 제외된다. 스팅이나 오션스 일레븐의 주인공들을 노인들로 바꾼듯 기발한 발상이 아닐수 없다. 꼬리가 길면 잡히는법. 이들을 수상하게 여긴 수도원 운영자 측은 발렌타인을 의심의 눈으로 감시하고 쫒아낼 궁리를하고 늙은 형사 보롭스키의 추적 마저 받게 된다.
'수도원'이란 특수한 공간은 바깥세상과의 단절을 의미하며 언제 죽을 지도 모르는 힘없는 노인들이 사회 정화를 위해 살인을 서슴치 않는다는 기상천외한 발상은 웃음을 자아내기도 하지만 왠지 씁쓸하고 섬뜩함을 동시에 느끼게 한다. 나이 듦의 의미와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잊혀진 존재가 된다는 것의 의미를 생각해 보며 마음 한켠이 뭄직해져 온다. 선진국 뿐아니라 이미 고령화사회로 접어든 우리사회가 안고있는 문제점이기도 하며 누구나 나이가 들면 늙고 힘없는 무능력자로 여겨지고 경제적 능력을 상실할수 밖에 없기에 마냥 남의 이야기일 수만은 없다. 사람인 이상 늙고 죽는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 진리앞에 노인들이 바라는것이 무엇일까. 복잡한 사회에서 벗어난 안전하고 편안함일까. 어딘가에 소속되어 있다는 소속감 알까, 사회의 일원으로 당당히 사회문제에 책임을 느끼고 동참하길 바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든다. 그들도 우리처럼 살아있다는 사실을 느낄 무언가를 절실히 원하고 있는건 아닐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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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 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적이 있는가. 개인적으로 난 늙음이 두렵고 무섭다. 나이를 먹는 다는 것, 늙는 다는 것에 대해서는 솔직히 생각해 본적이 별로 없었다. 최근에 와서야 노후 대비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는 있지만 어떻게 시작하면 좋을지, 어떤 것을 준비해야 될지 감도 잘 잡히지 않는다. 70대, 80대가 되면 과연 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어떤 사람이 되어 있을지 상상을 해보지만 왠지 늙어있는 나의 모습은 생각하고 싶지가 않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나도 언젠가는 늙는 다는 것이다. 시간은 흐르고 세월은 거스를 수가 없다. 중국의 그 대단했던 진시황도 불로불사의 명약을 구할 수 없었는데 평범한 소시민인 나는 당연히 이 인간의 숙명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늙음'과 관련된 속담을 한번 살펴보면 '늙고 병든 몸은 눈먼 새도 안 앉는다', '늙으면 눈물이 헤퍼진다', '늙으면 설움이 많다', '늙으면 아이 된다', '늙으면 욕이 많다' 등등 다양한 속담들이 많은데 이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늙는 다는 것은 서럽고 슬프다. 노인이 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어린시절에는 빨리 나이가 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있는데 그때도 어른, 그러니까 대학생, 20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노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은 상상조차 해본적이 없다. 바로 이렇게 늙는 다는 것에 대해서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이 책 <복수가 이렇게 쉬울 리 없어!>는 많은 생각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준 작품이다. 이 책의 저자 조이 슬링어는 캐나다의 저널리스트이자 작가로 사십여 년간 신문방송업계에 몸담았으며, 특히 '토론토 스타' 지에서 유머러스한 칼럼니스트로서 오랫동안 명성을 쌓았다. 특히 <복수가 이렇게 쉬울 리 없어!>는 2005년 출간된 그의 첫번째 소설인데, 적재적소에 터지는 저자의 유머 스킬은 이 책 한권 만으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여든한 살의 노인이다. 그런데 언제 죽어도 이상할 것 없는 이 노인에게 기막힌 일이 벌어진다. 아내가 세 명의 망나니들에게 위협을 당해서 죽게 된 것이다. 이때부터 주인공 밸런타인은 이런저런 규모의 복수 계획을 구상하게 된다. 그리고 정말 운명처럼 아니 우연이 겹쳐져서 망나니1이 싱겁게 죽고 말고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용의주도한 계획과 주도면밀한 실행만 있으면 복수가 완성된다는 확신을 가지게 된다. 전설의 연쇄살인범이 되기 위해서 그는 집안 살림에서 손을 떼기로 마음먹고 자신을 부양해줄 조직인 노인 거주시설 '수도원'에 들어간다. 그가 수도원에 들어가면서 본격적인 이야기가 진행되기 시작하는데 밸런타인과 그곳의 노인들이 의기투합하여 살인 조직이 탄생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사건들, 그리고 죽음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노인들이 살인을 벌인다는 이 기막힌 소재를 조이 슬링어가 얼마나 잘 요리해 나가는지 책을 읽는 내내 감탄하고 말았다. 통쾌함과 씁쓸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복수가 이렇게 쉬울 리 없어!>는 나이 듦에 대한 새로운 의미를 전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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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복수를 하는 행위 혹은 이를 목적으로 하는 것 자체는 어떻게 보면 소설을 통해서 제법 만날 수 있는 이야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 혹은 복수에 이르게 된 동기, 그리고 이를 직접 실행하는 이들로 인해서 다양한 이야기들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이번 책에서 만나게 되는 복수의 경우는 한편으로는 평범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남다른 점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망나니들의 위협적인 행동으로 인해 사망하게 된 아내를 위한 복수를 계획하게 된 노인 밸런타인 씨, 치밀한 계획을 세우는 듯하지만 막상 일들이 실행될 때에는 우연적인 일들로 인해서 생각보다 단순하게 일이 처리되었다. 그리고 그 상황 속에서 아무도 그를 의심하거나 그의 존재를 인식하는 이들이 없다는 것에 대해서 당황스러운 점이 없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이 과정을 통해서 그 스스로 자신의 계획을 실행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가 처음 계획하고 기다렸던 아내를 위한 복수의 과정만이 등장하는 이야기의 전부는 아니다. 그는 원활한 계획 실행을 위해 수도원에 들어가게 되고, 그 속에서 조금은 침체되어 있는 듯 보이는 이들과는 다른 모습으로 몇몇 이들의 관심을 끌게 된다. 그리고 그런 관심으로 인해 그는 그 속에서 자체적으로 만들어지는 방송에 출연하게 되고, 이를 기회로 그는 혼자만이 가지고 있었던 무거운 생각들을 나눌 수 있는 집행위원회를 구성하기에 이른다.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이 모여들고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줌으로 인해 전반적으로 침체되어 있던 그곳의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로 인해, 처음 시작했던 복수를 넘어서는 사건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그곳에서 일어나는 공기의 변화를 감지한 이들이 생기기 시작한다. 이렇게 전개되는 이야기는 여러 사건들의 이어짐으로 인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는 복수의 과정과 범위가 점점 넓어지기 시작한다. 이로 인해 '복수가 이렇게 쉬울 리 없어‘의 경우는 큰 사건을 세밀하게 파고들어 이야기를 전개하고 있기보다는 전반적인 여러 과정들을 이야기하고 있다보니, 조금은 이야기를 읽어나감에 있어서 어수선한 듯한 느낌이 들기도 했고, 재미있는 부분들도 있지만 조금은 책을 읽는 속도감이 느려지는 부분도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 책이 막연하게 복수하는 이들의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책 속에 등장하는 이들의 대화와 생각 속에 담겨 있는 어조와 그들이 거주하고 있는 노인 복지의 공간이라는 수도원이라는 공간과 이 책속에서 묘사되고 있는 그곳의 상황과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약간의 아쉬움이 남기도 하는 책이기도 하며, 크게 극적이거나 인상적인 사건들이 가득한 책은 아니지만, 등장하는 이들이 나누었던 그리고 그들이 수도원에서 지내면서 혹은 그곳을 관리하는 이들의 생각들을 읽으면서 조금은 현재 사회의 모습과 현실에 대해서도 생각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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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해보면 한국 소설들은 이런식으로 정신없고 뜬금없는 소재와 이야기 전개를 하는 경우가 별로 없는 것 같다. 박민규의 '카스테라'는 뜬금없는 단편집이라 하더라도, 장편의 스케일로 엉뚱한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코미디는 좀체 발견하기 어렵다. 반면 SF나 블랙코미디 장르의 서양소설은 그런게 은근히 많다. 내가 그런 걸 비교적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생각해보니 한국은 SF나 블랙코미디 장르 자체가 그다지 활성화되어 있지 않구나. 하여간... 이 소설, 원제는 Punch Line이라는데... 캐나다가 배경인 이 소설을 다 이해하기에는 그 사회의 문화코드, 특히 노인 문화에 대해 아는 바가 너무 없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래도 대충 맥락을 따라가보려 했는데... 초반에 좀 고전을 했다. 도무지 무슨 맥락인지 알 수가 없는게... 주인공이 어쩌다 살인을 하게 되는데, 그리고 계속 계획을 하려 하는데... 다른 이들이 거기 동조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집행부를 만들어서 살인을 기획하고 있는게 아닌가? 그 배경이나 맥락이 조금도 설명되지 않다보니, 이게 (소설속의) 실재야 아니면 상상이야 혼동스러울 지경이었다. 더구나 정신줄을 놓은 이들이 많은 노인들이 모여 있는 이야기이다 보니 더욱 말이다. 펀치라인이라는 용어 자체가 코미디 막판에 반전을 던지는 거라고 하는데, 이 작품의 펀치라인 역시... 뭐 적당히 그럴 듯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게 참 짠하다. 인간의 가치나 존엄성(이런 말 자체가 소설의 분위가와 어울리지 않긴 하지만)에 대해 진지하게 돌아보도록 만들어주는 건 사실이다. 우리 사회의 '어버이 연합'이란 이들이 떠오르면, 아마도 이 소설을 읽고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현실적용이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의 존재감에 무력하지만 끈질기게 집착하는 이들의 이야기. 어버이 연합 그들은 누구에게 복수를 하려는 걸까? 적어도 이 소설에 나오는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사회정의를 위해 (상당부분 보편적으로도 동의할 수 있는) 악인을 심판하려는데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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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어이 없어서 웃음이 픽픽 나오는 책이다. 제목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복수를 꿈꾸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사실 그대로 보면 참 무시무시한 '살인조직'이 탄생한 셈인데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노인들이라서 아무도 눈여겨 보지 않는다. 그들은 사회에서 잊혀진 존재이기 때문에 심지어 살인수사 마저도 그들을 외면하고 비껴간다. 당하는 당사자들은 이것이 행운인지 불행인지 만감이 교차하는 것이다.
죽음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서 체념한 상태로 살던 수도원의 노인들은 '집행위원회'의 일에 열중한다. 나름대로 각 분야의 전문가로 은퇴한 이들이라서 집행계획은 언제나 지나치게 전문적인 점들까지 염두해두고 토의에 토의를 거치며 점검되어 완성된다. 그러나 항상 이 계획들이 단계별로 실행되지도 못하고 엉뚱하고 어이없는 변수들에 의해 성공한다. 집행위원회들이 매번 서운하게 생각하지만, 다음 집행을 위해 또 머리를 짜낸다. 터무니 없이 치밀한 계획들은 대부분 어이없이 초장에 초를 치는 경우가 많지만 어찌되었건 계획했던 살인들은 늘 성공한다. 그들이 죽음을 선사하는 조직이 된 것이다.
죽음에 이르거나 복수가 성공하기 까지 주인공이 불안에 떨고, 번번이 운나쁘게 실패하거나 하는 기존의 소설들과 달리 그저 아주 쉽게 살인이 성공한다. 죽음이 어찌나 쉽고도 허망한지 어이가 없다. 그리고 심지어 집행위원회의 구성원들도 어이없이 죽음을 맞는다. 하지만 그들의 죽음은 기다렸다는 듯이 신속한 절차에 의해 처리되고, 수도원은 다시 새 입주자를 받아들이며 언제나 정원을 유지한다. 죽음이 매일 매일의 행사인 수도원에서 그들에게는 죽음은 더이상 놀라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든다는 것, 사회가 더이상 일거리를 주지 않는 사람이 된다는 것, 그래서 사회에서 잊혀진 존재로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느낄 수 있다. 사회가 불러주지 않으므로 수년간 축적된 노하우가 하루아침에 쓸모없는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다가오는 죽음의 발걸음이 느껴지는 것은 어떠하겠는가. 작가는 지나치게 경박할 정도로 죽음을 묘사하고, 살인사건마저도 간단한 해프닝처럼 여기게 쓰면서, 우리에게 '그러는 당신들은? '하고 반성을 촉구하는 것 같다.
아무튼...죽음이 이렇게 쉬울리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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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오빠 뭐해? 머리 기르고 있다고? 그럼 머리 기르는 동안 내가 오늘 읽은 책 얘기 해줄까? 웅, 싫구나. 그래도 할거야! <조이 슬링어>라는 사람이 쓴 책이야. 제목은 무려 『복수가 이렇게 쉬울리 없어!』 당연히 쉬울리는 없을거야. 그렇다고 그렇게 어려울 것도 없다고 생각해. 말하자면 그냥 흘러가는 대로라고나 할까. 죽을 운명이면 어떻게든 결국 죽는다고나 할까. 아니아니 그건 됐고, 아무튼 죽은 아내의 복수를 하려다가 뜻밖에 전설적인 살인자가 되어버리는 ‘발렌타인’이라는 할아버지 하고, 거기에 그 할아버지를 추종하는 괴짜 노인들이 가세해서 벌어지는 소동을 그린 블랙코미디 소설이야. ‘밸런타인’이라는 이 할아버지, 세명의 망나니들 때문에 부인이 겁에 질려서 죽었다고 하네. 겁에 질려서 죽기도 하냐고? 응, 사람이 그렇게도 죽는 모양이더라구. 그래서 이 할아버지 세 명의 망나니 자식을 찾아내 죽일 계획을 세우기 시작해. 그런데 마음은 먹어도 좀처럼 실행으로 옮길 수가 없는거야. 그도 그럴만한 게, 지금까지 다른 사람한테 조그만 상처하나 입혀 본 적 없는데다가, 올해 연세가 여든 한살이나 되시거든. 열아홉살짜리 창창한 젊은이들을 죽이고 그 사건을 남은 인생동안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 막막했겠지. 짜증스럽게까지 느껴졌을 거라 생각해. 할아버지가 살인무기랍시고 선택한게 뭔지 알아? 번지점프 줄이야. 웃기지? 딱히 이유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상황을 흥미롭게 만들고 싶어서였을 뿐이라나. 나도 듣고 조금 황당했어. 원래같으면 그냥 그놈들 뒤로 슬쩍 다가가서 타이어 교체할때 쓰는 잭 핸들로 대여섯번 머리통을 후려치거나 했을텐데, 그 당시가 아마 사람들이 모이기만 하면 너나없이 번지점프 얘기를 하던 시절이었다나 봐. 번지점프 줄로 사람을 죽인다는게 상상이 안되더라. 번지 줄을 이용해서 사람을 죽이려면 그걸로 목을 조르는 수 밖에 없는데 도구가 뭐가 됐든 목을 조르려면 분명히 몸싸움이 벌어질 게 뻔해. 여든 한살인 발랜타인 할아버지로서는 당연히 무리일 수밖에 없지. 일곱살짜리 꼬마 여자애하고 붙어도 뼈가 부서질거야. 제일 중요한 건, 어쨌거나 목을 조른다는 것 자체가 번지점프 줄의 기본적 성향하고 애당초 맞는 구석이 없다는 거야. 번지는 번지다워야 매력인데 뭔가 번지스러운 맛이 없잖아. 그렇다고 사람들에게 이런저런 의견을 물으며 다녔다가는 나중에 꼬리를 밟힐수도 있어. 아니 그 전에 조언을 구할 사람 자체가 없었어. 완전히 세상에 혼자 남았다는 고독감 같은게 몰려오는 찰나에, 때마침 이 발랜타인 할아버지 정말로 어처구니 없이 의도치 않던 방법으로 망나니1을 보내는데 성공하게 돼. 거봐 죽을놈은 결국 어떻게든 죽더라고. 여기에 잔뜩 고무된 할아버지는 본격적으로 복수에 나서기로 결심하고, 노인 거주시설인 '수도원'에 몸을 의탁하기로 해. 여기서 다른 노인들한테 자신의 복수 계획을 털어놓는데 이게 또 와전되서 전설적인 살인자 대접을 받는데에까지 이르는거지. 결국에는 사회를 정화한다는 명분으로 노인들의 살인 집행위원회같은 모임까지 만들어져. 일이 너무 커지는 것 아니냐고? 그러게 과연 이런식으로 황당하게 나가다가 복수에 성공할 수 있을까? 궁금하지? 노인들로 이루어진 ‘사회정화 자경단’이라니 재밌을 것 같지 않아? 그런데 이 사회가 범죄자들이 목숨을 잃는것은 크게 다루면서도 노인들의 죽음에는 아무도 신경쓰지 않아. 이 노인들을 수도원에서 뭐라고 부르는지 알아, ‘손님’이야. 왔다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이슬같은 사람들이라. 뭔가 아이러니하지않아? 그런 이야기야. 우리나라도 급격한 노령화로 2030년에는 노인인구 비율 24.3퍼센트, G20국가중 4위로 올라선다고 하네. 정말 남이야기같지 않아. 뭐라고 2030년이 오긴 오냐고? 그야 나도 모르지 순팔 오빠도 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