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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용산 참사>를 기반으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소설에서는 여론의 관심없는 사건을, 여론의 힘을 등에 업어 사회적인 약자가 법정에서 조금의 승리를 이루는 과정으로 흥미진지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법과는 관계가 없어, 법조계가 어떻게 구성되고 있는 지 잘 알 수 없지만, 이 소설에서는 법조계의 여러 구성 요소들을 비판하고 있다. 아마 가장 압권은 판사에 대한 이야기일 것이다. 판사 야구장에서의 심판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판사의 시각이 일반 국민 시각하고는 다른 부분이 있어, 국민참여재판을 채택하고 있다. 판사가 좋아할리 없을 제도이다. 이 소설에서도 국민참여 재판에서의 결과를 판사가 가볍게 뒤집어 버린다. 재판에 단독부와 합의부 재판부가 있다. 합의부란 것이 3명의 판사가 합의를 한다는 내용인 것 같지만, 소설을 통해 보는 합의부는 부장 판사의 단독 재판으로 보였다.
과연 검사가 국가를 대표하는가. 소설에서도 나오지만 국가손해배상을 하는 재판에서 국가의 대리인으로 나오는 검사께서 하는 말에서 나온다. 어디까지가 나의 의견이고 어디까지가 국가의 의견일까.
가장 큰 의제는 국가는 과연 정의로운가, 그리고 과연 법은 정의로운가이다. 여기에서 변호사인 주인공은 법의 테두리에서 정의를 확인하려고 하고, 사회부 기자의 경우에는 법에 대해서 믿지 않는다. 결론적으로 기자의 승리이다. 국가는 과연 정의로운가이다. 국가는 손해배상건에서 승리했다. 법적으로 승리했지만, 아마 여론에서는 패배했을 것이다. 과연 국가가 정의롭지 않다면 어떻게 정의롭게 해야 할 것인가? 이것이 아마 숙제가 아닌가 한다.
<용산 참사>를 돌이켜 보면, 살아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중형을 선고받았다. 징역6년, 징역 5년등의 선고받았다. 만약 소설이었다면 무죄로 끝났을 것이다. 소설은 소설이고, 현실은 현실이다. 씁쓸하다.
희망이 있다면, 현재의 소수의견이 곧 다수의견이 된다고 한다. 소수의견이 지금은 힘이 약하지만 끊임없이 계속 제기하고, 여론화해야 한다는 생각이다.
독서 릴레이 3권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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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은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피고인의 무죄를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인간은 판결이 선고될 때까지 피고인의 유죄를 추정하려는 경향이 있다. 상당수의 사람들은 피고인에 무죄 선고가 내려진 이후에도 유죄를 추정하는 목소리를 속닥댄다. -p142
법을 신뢰할 수 없는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법을 신뢰하며 살아갈 수 있는 곳인가? 법이란 무엇인가? 만인에게 평등한 게 바로 법 아닌가? 그런데 왜 법은 평등이란 단어와 멀어지고 있는 것일까. 가진 것이 많이 없고 의지할 데가 적은 사람이 세상 속에서 굳건히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게 뭐냐고 나에게 누군가가 물어본다면 나는 법이라고 말하겠다. 공평한 법, 어느 누가 훼손시키려고 해도 절대 모양을 변치 않는, 단단한 법이라고.
'소수의견'은 내게 그런 물음을 던진다. 당신은 법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법을 믿을 수 없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그 물음에 나는 시원하게 답을 할 수 없다. 상상만 해도 답답해 가슴이 옥죄어오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법을 믿을 수 없다면 나는 무엇을 믿어야 한단 말인가?
요즈음에 대해 생각해본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내가 속한 이 곳은 법보다 말 한 마디가 힘을 가질 수 있는 세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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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개인의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시대와 역사를 사는 것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자 변호사였던 그가 남긴 말이다. 아마 소수의견 이 책의 작가인 손아람 역시 그런 의도에서 이 책을 쓰지 않았을까 하는 느낌이 든다. 소수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겁나는 것인가 더우기 소수의 의견이란 것은 그것이 진실이건 아니건 늘 무시당하고 소외되는 것이 현실이다. 솔직히 나는 법에 대해서도 잘 모르고 정치에 대해서도 잘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서는 여러번 생각해 보게 된다.
아침 출근길에 동인천역에서 전철을 탄다. 인천중에서도 참 낙후되고 후진 동네가 바로 동인천역 부근일 것이다. 그런 동네가 어느덧 개발의 문턱에 서있다. 지금 동인천역 뒷편 상가는 헐리고 있는 중이다. 아침마다 뽀얀 먼지와 건물 무너지는 소리를 듣는다. 하지만 이와 묘하게 어우러져 들리는 소리, 바로 소수의견 대학때 열렬하게 불렀던 데모가도 흘러나온다. 들으면 괜시리 가슴을 꿈틀하게 만드는 그 노랫가사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왜 모든 개발의 현장에는 개발과 반대라는 두 카드가 맞서야만 할까 서로 목소리를 높이니 도대체 누가 맞는 말인지 모르겠다. 지금은 사람들 머릿속에서 많이 잊혀졌겠지만 바로 용산참사를 아직도 기억할 것이다. 지금 이순간에도 어디선가 그런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손아람은 실제로 나이가 젊다. 그래서 그런지 이야기가 참 젊다. 숨가쁘게 읽혀지지만 그 속에서 뭔가 꿈틀하는 열정이 보인다. 아마 소수의견을 대표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 어떤 창조적인 상상력으로도 현실을 따라잡을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한마디 더... 유감이다. 유감인 세상 그리고 유감인 현실 내가 다수인지 소수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어느편이든지 상대방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자. 물론 그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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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퇴근때 용산을 지나간다 2009년 1월 어느날 출근길인가 퇴근길이 매우 힘들어 짜증이 났었다 시위를 하더라도 출퇴근 시간은 피하고 하지 힘들게 왜 그 시간에 하는지 화가 났었다 그런데 사람이 사망하는 참사가 났었단다 그 소식을 아는 순간 정말 미안하고 내 자신에 속상했다 하루에 두번을 지나다니면서 빨리 서로에게 좋은 방향으로 해결되기를 바랐었다 그러다 소수의견이란 책을만났다 책의 줄거리를 보면서 용산참사가 생각났다 용산참사의 자세한 내용은 모르지만 소수의견을 보면서 이런 유사한 과정을 지내지 않았나 하는생각이 들었다 소수의견을 보면서 한편의 추리소설+법정소설을 읽는 느낌이 였다 예전에 외국소설로 봤던 책들 보면서 정말 재밌고 흥미진진했던 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소수의견이 그랬다 첨에는 진도가 좀 안나가더니 어느 순간에 이르자 책을 손에서 놓을수가 없었다 물론 결과는 알것 같으면서도 책의 흡인력이 정말 강했다 우리나라 책들도 이렇게 잘 쓰는구나 하는 생각이들 정도로 책이 재밌으면서도 왜 그분들이 그렇게 행동해야 했는지 조금은 이해할수가 있었다 또한 국선변호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도 고칠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212쪽6번째줄 투쟁테제를-투쟁체제를이 아닐까요? 212쪽10번째줄 돋새겨야-되새겨야 일것 같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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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재미있는 책은 첨이다. 순식간에 읽어내려갔다. 철거민이라는 소재가 주는 이미지가 있다면 그것을 버려야 한다. 철거민의 이야기에는 언제나 폭력과 살인이 뒤따르지만 같이 소재를 이렇게 풀어갈 수도 있다는 것. 분명 우리시대의 이야기지만, 사람들의 기억속에는 언제나 한 20년쯤 전 이야기로 들리고 싶은... 채 하루가 가기전 책을 끝내고 손아람이라는 사람을 검색해봤다. 말이 필요없는... 주변의 누구에도 강추하는 책이다. 소설 읽기는 거부하는 당신에게도 강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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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가 청구를 인용한다 해도 철거민들의 농성자체가 불법했기 때문에 배상금은 어차피 상당액 과실상계 될 테죠. 저라면 100원을 청구하겠네요. " 106
용산을 떠오르게 하는 [소수의견]. 가끔은 우연한 계기로 만난 책이 평소에 관심을 가졌던 책보다 끌리는 경우가 있는 데 소수의견도 알고있는 사실이라고는 책 속 한 구절인 청구금액 100원 뿐이였다. 어떤 이야기길래 도대체 100원을 청구한다는 걸까. 라는 호기심을 시작으로 책을 찾았고 드디어 도착한 자그만한 책 소수의견.
소수의견 : 합의체(合議體)에서 다수결에 의하여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경우에, 다수의 찬성을 얻지 못한 채 폐기된 의견.
아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든 경찰에게 달려든 아버지. 사건 수사 중 철거민이 그의 아들을 죽였다는 사실이 밝혀지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아들을 죽인 건 경찰이라고 이야기한다. 엇갈린 의견 속에 변호사인 주인공은 아버지 박재호의 변호사가 된다.
다수의 의견을 지향하는 사회. 사실 일상생활에서 소수의 의견을 존중하기란 쉽지 않은게 사실이다. 빠르고 편한 의견 조율을 위해서는 다수의 의견을 수용하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소수의견을 만남과 동시에 소수의 의견을 무턱대고 무시하는 건 큰 오류를 범하는 사실이라는 걸 깨달았다.
책을 읽고나서의 씁쓸함과 안타까움을 제대로 된 글로 표현할 수 없어 안타깝지만, 잊고있었던 그림자같던 소수의 의견에 귀를 귀울이게 될 것 같다.
저라면 어떻게 하겠냐고요? 저라면 몇 년이고 매달릴 겁니다. 이 사건은 판결까지 가야 해요. 1심에서 안 되면 고등법원, 대법원, 법재판소까지 두드려야 합니다. 이 사건의 판결이 법대 교과서에 실려서, 100년 동안 국가와 그 대리인의 오명이 낙인찍히도록 해야 돼요. 만일 패소한다면 판사의 이름까지도 말입니다. 그들의 자식들이 법을 공부할 때는 아버지처럼 살지 말라고 배우게 될 겁니다. 그게 박재호씨가 그 사람들에게 내릴 수 있는 유일한 징벌입니다. 멈추지 마세요. 누군가 박살이 날 때까지. "
공소장은.... 딱 필요한 만큼만 무거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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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목이 뻐근한 게 새벽까지 무리해서 책을 읽지 말았어야 했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잠을 이기지 못한 책이라면 알아서 일찍 잠이 들었겠지만, 잠을 이겨내도록 흥미로운 책을 만나면 이렇게 무리를 해서라도 책을 다 읽고 잔다. 늘 그 뒷감당을 이기지 못해 허우적대면서도 욕구에 대한 호기심은 충족시켜야만 직성이 풀린다. 다른 것에 그런 끈기가 있다면 좋으련만. 오로지 책에 대해서만 그런 열망이 인다. 그렇게 새벽에 책을 덮고 나면 평상시와 더 예민한 감정들로 둘러싸이게 된다. 이질감, 감동, 낯섦, 분노 같은 감정은 낮보다는 밤에 더 색깔이 짙어진다. <소수의견>을 읽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드러난 진실과 결과 앞에 망연자실하고 나의 존재가 미미하게 느껴지는 경험을 했으면서도, 다음 날이면 나에게서 떠나간 지 오래된 감정이 되고 만다.
서울의 한 도심 재개발지구에서 두 명이 죽었다. 철거민들을 진압하던 전경 한 명과 그곳에 있던 16세 소년이었다. 소년은 철거용역업체의 직원에게 맞아 죽었고, 아들을 방어하기 위해 아버지가 휘두른 각목에 경찰이 죽었다. 두 명이 죽는 큰 사고가 발생했는데도 뭔가가 이상했다. 너무 쉽게 사건이 무마되었고, 현장이 보존되지 않았으며, 죽은 소년의 아버지 박재호는 특무방해치사로 구속 기소되어 있었다. 박재호는 아들을 죽인 사람이 경찰이라고 했고, 경찰은 철거용역업체의 직원이 죽였다고 했으며 이미 자신의 죄를 인정한 김수만도 특수폭행치사로 피소되어 있었다. 그 사건은 국선변호사인 '나'에게 맡겨졌다. '한 달에 서른 개씩 돌아오는 국선 사건 중 하나. 다들 고개를 내저었던 지저분하고 무가치한 사건.' 이었기에 '나'밖에 맡을 사람이 없었으리라.
진실은 알려면 할수록 더 달아나기 마련이라는 사실을, 또한 깊숙이 개입할수록 들어간 사람만 다친다는 사실을 이토록 치사하고 옹졸하게 보여주는 사건도 없었다. 진실의 이면을 캐려고 하자 모두들 생각해 주는 척 비웃었으며, 변호사의 지위에 큰 타격을 입을 거라는 험한 말들만 오갔다. 그런데 나를 비롯한 신문 기자 준형, 법대 교수 재민, 같은 사무실을 쓰는 대석 등으로 인해 이 사건은 커다란 반향을 일으키게 된다. 언론에 사건을 노출시키자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관심이 쏠렸고, 벌떼같이 달려들어 이 사건에 도움을 주겠다는 손길이 넘쳐났다. 그들은 언론 플레이의 막강한 힘과 그에 따르는 부작용의 진리를 다시 한 번 느끼면서도 최대한 언론을 활용해 진실을 파헤쳐 승소하길 원했다.
사건의 진실을 어떤 식으로 정리해야 할까. 경험하고 보지 못한 수많은 이야기가 뒤엉켜 머릿속을 어지럽히면서도 한 가지 생각만은 또렷했다. 하나의 진실을 알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입고 이렇게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답답함. 최후의 공판이 진행 될수록, 판결이 가까워질수록 답답함은 더 심해졌고 책을 덮고 나서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무엇을 알려고 했던 것이며, 이 사건의 중심에 있는 피해자와 검사, 변호사, 보통 사람들은 무엇을 위해 그토록 변론하고 파헤치고 숨기려 했는지 끝끝내 알 수 없었다. 드러난 결과 앞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추려낼 수 있을지 몰라도, 적어도 나의 눈에는 이 사건은 끝나지 않았으며 겨우 하나의 사건이 진실에 가까이 다가갔다는 느낌뿐이었다. 온전한 진실은 없었으며 진실을 인간이 판단하고, 판결하고, 죄에 대가를 문다는 것은 한계를 뛰어 넘는 일이었고 신의 영역이라 하더라도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사건의 내막은 그랬다. 재개발지구를 향해 탐욕스런 손길을 뻗는 손길과 그에 저항하는 사람들의 투쟁. 그 과정에서 경찰이 소년을 죽였고, 소년의 아버지는 경찰을 죽였다. 이 사건의 수사기록을 처음 넘겨받은 홍재덕 검사는 즉시 문제점을 발견했고, 자신이 생각한 소중한 것을 위해 판단했다. 이 사건을 은폐하기로. 국가라는 거대한 조직을 위해서였고, 어떠한 외압도 없었다고 말했지만 한 개인이 판단했다고 치부해 버리기엔 무언가 석연찮다. 그가 진심으로 소중한 것을 생각했다면, 그의 판단은 잘못된 것이었고 두 번 다시 그러한 판단을 내리는 일은 없어야 했다. 국가에 로비를 하는 재개발지구의 건설회사, 사람이 죽어 나가든 철거민들의 집이 사라지든 이익에만 눈 먼 사람들, 치부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에 꼬리를 붙여 계속 거짓말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 그들의 모습에 나를 비추어 되묻고 있었다.
단순히 죽음만을 감추고 있었다고 생각했으나 이면에 엉킨 실타래를 어디서부터 풀어야할지, 과연 푼다고 풀릴 것인지에 대해 사건을 맡은 '나'와 도움을 주는 사람들은 혼란스럽기만 했다. 수많은 난관이 있었고, 좋은 전략이 있었으며, 진실 된 사람들을 만나 일이 잘 풀리기도 했다. 한 몫 잡아보겠다는 사람들 때문에 '나'는 잠시 박재호의 변호사에서 물러나기도 했으며, 국선 변호사를 관두고, 100원의 국가배상청구소송 청구서를 냈으며, 중요한 증인과 증거를 얻었다가 잃기도 했다. 그 모든 과정이 이 책에 녹아 있었으며, 특이한 점은 '나'가 변호사인 관계로, 또한 인간이 만들어 놓은 법 안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므로 법정소설의 양상을 띤다는 점이다.
이 소설은 누구의 시선도 아닌 법의 테두리에 갇힌 하나의 사건일 뿐이었다. 책의 구성 또한 사건의 진행에 따른 법률 용어들로 되어 있어 그런 용어로 사건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초반에 애를 먹기도 했다. 부록에 용어의 뜻과 다양한 사건들이 기록되어 있었지만 거의 낯선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거나 마찬가지라, 쉽게 설명될 수 있는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법을 뒤집어 써야 한다는 사실이 갑갑했다. 느려지는 속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정독하게 되었고, 그 시간이 지루하기보다 스스로에게 대충 읽지 않았다는 만족감을 부여하고자 꼼꼼히 읽어 나갔다. 전문가가 아니고서야 뜻을 알았다고 해도 수많은 법률 용어와 그 용어들이 사건 안에 자리하는 의미를 온전히 이해하는 건 불가능했다. 그렇더라도 소설의 흐름을 읽는데 큰 걸림돌 없이 무난했으며, 법안에 갇힌 사건의 이모저모를 빠져나오자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공판이 있는 3일 동안의 기록은 나름대로 빠른 흐름을 타고 읽었지만, 용어를 모른다는 답답함보다는 위에서 언급한 지난한 과정을 겪어야 한다는 답답함이 밀려왔다. 국민참여재판을 연 것이나, 증인과 증거에 대한 불투명성, 흐름이 어떻게 흘러갈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는 불안감이 엄습한 가운데서도 진실을 알기 위한 과정이 아니라 한 판의 게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의 목숨이 좌지우지 되는 잔인한 게임, 진실이 어느 쪽에 있는지 알면서도 이기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전략을 짜야 하는 게임. 그 사이에 끼여 있는 그들이(정확히는 법조계 사람들과 진실을 숨기려는 사람들) 오히려 안쓰러울 정도였다. 빤하게 흘러가는 흐름 속에서 현실감을 잃고 있지는 않았으나 기적도 없었고, 온 몸을 휘도는 감동도 없었다. 몇몇 사람들이 보여준 진심 앞에 숙연해지기도 했으나 인간이 내린 판결 앞에 그런 감정 나부랭이 따윈 애초부터 포함되지 않았다.
그 사건을 맡은 '나'는 결국 패소했다. 그러나 박재호의 삶에 완전한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 사건 하나 때문에 너무나 많은 후폭풍이 밀려왔다 사라졌다. 시간이 흐르면 언제 그랬냐는 듯 기억 속에 잊힌 사건은 또 일어날 것이며 승소하거나 패소할 것이다. 또한 그 과정을 겪어본 자들이야말로 법은 한낱 몸부림과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진실은 절대 온전한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며, 정의를 위해 싸우는 사람도 소수요, 제대로 된 양심을 드러내는 사람도 소수라는 것만 알려 줄 뿐이었다. 그럼에도 언제든지 소수는 다수가 될 수 있으며 주류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버리고 싶지 않기에, 소수의 사람이 만들어낸 소수의견을 무시하고 살고 싶진 않다. 소수가 자리를 탈바꿈 했을 때 어떠한 변화가 일어날 지 예측할 수 없더라도, 그 모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기 때문이다.
저자는 소설을 퇴고한 날 알 수 없는 이유로 파일이 날아갔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파일을 복구해 빛을 보게 된 이 소설은 그런 사연만큼이나 독특하다. 법과 사건을 촘촘히 엮은 것이나 마치 사건을 보고하듯 무미건조하면서도 툭툭 쳐대는 문체, 어느 누구도 주체가 되지 않는 시선들이 그랬다. 해설을 맡은 이정현님은 이 소설이 '용산을 직접적으로 거론하지 않'으나 '용산을 떠오르게 한다.'고 했다. 나도 용산 사건을 익히 안다. 그러나 세세하게는 모른다. 내가 말한 세세함은 뉴스에 조그만 관심을 기울여도 알게 되는 사건의 흐름을 말한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고 나니, 자세히 모르는 용산 사건을 더 잘 알게 된 기분이 든다. 마치 알고 싶지 않은 진실을 알아버린 것 같은 씁쓸함이 나를 옥죄듯.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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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우리나라에선 접하기 어려운 법정소설이란 점이 시선을 끌었다.
존그리샴 소설과 비교하기엔 장르(?)-개인적으로 존 그리샴은 법정 스릴러라고 봄ㅎ- 가 다르지만 신선한 감동이였다.
소설 구성상 몇몇 부분의 비약과 억지스러움이 없진 않았지만,과거 완료가 아닌 현재 진행형인 용산사건과 그아 유사한 흐름으로 이어져 가고있는 우리 현실을 너무 무겁지 않은 수준으로 비판하는 작가 정신이 좋았던 책이었다.
비록 현재는 소수지만 굽히지 않고 자기철학을 지켜가는 사람이 후대에 다수의견의 효시가 된다는 역사의 진리가 떠오르는 책.
세상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바꾸려는 노력을 포기하지는 맙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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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밤을 치워낼 수 있겠는가.시간이 밤을 지워줄까. 시간이 밤을 밀어내도 밤은 또 시간을 덮친다. 나는 세상의 말 많은 사상이 아닌 천문학을 빌려 말한다. 밤 이전이란, 밤 이후란 없다. 밤이 온 게 아니다. 밤 아래 세상이 온 것일 뿐. (p.72)
고요한 밤, 추악한 밤... 정의가 고요히 잠든 밤... 주인공 '나'는 세상이 아니라 밤을 본다. 밤에 잡아먹힌 세상을 보며 미워한다. 그러나, 그는 질문을 잃진 않았다.
기억은 시간 속으로 제각기 흩어졌지만 질문들의 몸통은 결국 하나였다. 어떻게 사는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살고 싶은가의 문제. (p.93)
그리고, 이 질문이 빛을 찾는 힘이 된다. 국가를 상대로, 거대한 법 기관과 재벌을 상대로, 법을 행하는 자들을 상대로 법을 무기로 싸워야 하는 '나' 그는 그 과정에서 배신당하고 상처입고 좌절하며, 모든 이에 대한 의심으로 '내가 싸우는 진실 또한 거짓이 아닐까?'하는 혼란으로 괴로워 한다. 그러면서, 그것이 가장 큰 적임을 알게 된다. 진실을 알 수 없다는 것, 그리고 진실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이 인간을 움직인다는 사실.
정의의 진짜 적은 불의가 아니라 무지와 무능이다. (p.383)
진실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 그저 안전한 현실, 나의 평안에만 눈 뜬 사람들. 그들은 '소수의견'이라 일컬어지는... 결코 '소수'의 것이 아닌 '힘없는 다수'의 권리를 망설임 하나 없이 짓밟는다.
현대의 대한민국, 너무도 낯익은 지금의 내 삶 속에서 이 소설은 흘러간다. 그래서, 우리는 결론을 안다. 법을 손에 쥔 자들의 손에서 정의는 실현되지 않을 것임을. 하지만, 우리는 또 갈구한다. 이 시대가 지난 다음 쓰여질 다른 소설에서는 '법이 곧 정의'가 되길.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싸워야 할 것이다. 모든 것을 걸고, 아무것도 걸지 않은 저들과 불공평한 싸움을 계속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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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판결에 나온 소수의견이 아니라 거대 권력을 상대로 한 소수인원의 승리. 늦깍이 사법연수원생 윤변호사는 학력도 그렇고 당근 판사/검사가 아닌 변호사로 임용 되나 오라는 데는 없고 결국 국선변호인이 되는 데. 아현동 재개발 철거현장에서 16살 아들이 죽자 아버지 박재호는 경찰 1명을 죽이고 구속된다. 윤변은 형 대석과 서울법대 교수 주민, 신문기자 준형과 팀을 이뤄 손대호검사와 잘 나가는 이민정검사, 청와대의 외압에 맞서 싸운다. 재판부 기피신청, 재정신청부터 국가상대 행정소송까지 마침내 국민참여재판에 이르고 멋진 윤변의 언변과 깡패 김수만의 자폭으로 KO승을 거두고 박재호는 3년형으로 마감한다.
이거 뭔가. JOHN GRISHAM 번역본을 보는 거 같다. 저자가 변호사인줄 알았는 데 아니다. 이정도 소설을 어떻게 쓸수 있나. 최근 JOHN GRISHAM의 글자 그대로 advocate가 생각나고 유사하다. 중반까지는 지리하나 국민참여재판이 시작되면서 하이라이트가 시작되고 김수만 등장, 압권이다. 비약도 없고 치밀하고 구성은 완벽하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 dry하다. 잔 그리샴과 동급이다. 마이클 코넬리의 해리 보슈라면 , 이원호선생이라면 벌써 기자 준형과 윤변사이에 sex가 3번 정도는 있었을 겄을 .. 재미도 있다. 여자들은 싫어할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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