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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버호벤 하면 처음으로 어떤 영화가 떠오르는가? 나한테 물으면 단연 '토탈리콜'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원초적 본능'을 떠올릴 것 같다. 그 '원초적 본능'을 찍은 감독의 솜씨라고 하면 연결이 무난할지 모르지만, 나는 개인적으로 버호벤과 이 영화가 잘 매치가 안 되는 편이다. 하긴 미스테리-新에로티시즘의 충격을 짜릿하게 맛본 팬들은 이 영화의 낮은 완성도가 주는 실망감 때문에 역시 연상이 얼른 안 될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다.
나는 이 영화를 참 좋게 보았다. 정직한 고백이다. 평론가건 일반 청중이건 이 영화만큼 마음 놓고 비난을 퍼부어댄 대상이 또 있었을까 싶을 만큼이었는데, 연이은 히트-호평으로 벌어 둔 평판을 이거 하나로 다 까먹고 만 것 아닌가 여기지기도 했다. 이 자켓에는 안 보이지만 그 유명한 S 셰이프에 여체가 결합한 도안의 포스터도 표절이라고 해서 여러 모로 제작진에서 고생을 하기도 했다.
영화는 몇 년 후에 나오는 '코요테어글리'나 비슷하게 신분상승의 계단을 패기 있게 디뎌나가는 여성의 출세기라고 요약할 수 있다. '폴리애나'라고 하면 영미문학에서 소년 '호레이쇼 앨저'나 마찬가지로, 어떤 역경과 시련에도 굴하지 않고 낙천적 기질을 유지하는 히로인을 뜻하는 이름인데, 제작자 토니 모스가 그녀를 향해 냉소적으로 이처럼 이르긴 하지만, 사실 영화의 노미 말론(어딘지 노마 진을 연상시킨다)은 폴리애나하곤 거리가 좀 있다. 그녀는 억척스럽고 동시에 섹시하기도 하지만 낙천적으로는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굳이 어울리지도 않은 별명을 대사까지 할애해서 각인하려 든 의도가 뭐였을까. 영화가 저급한 선정주의에 기대려 한 싸구려가 아닌, 여전히 유효한 '아메리칸 드림'의 한 가지치기임을 족보에 명시하고자 한 감독의 조급함이 주연배우의 연기미숙을 만나 빚어진 흔적이 아닐까 짐작은 한다. 만약 그렇다면 비난은 여배우를 넘어 감독에까지 이어져야 마땅한데, 이 영화는 단지 배우의 졸연에만 그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근본적으로 영화의 내러티브가 틀려먹었고, '그렇게 깊은 뜻'을 혹 담으려 했다면 이런 식으로 찍을 일이 절대 아니었기 때문이다.
영화는 높이살 만한 점이 그 화려한 쑈 장면(이건 정말 볼만하다) 말고는 없다시피한 졸작이지만, 나는 이 영화가 참 좋았다. 주연 엘리자베스 버클리는 빼어난 몸매가 무색하게, 마스크가 사실 너무 호감이 안 가는 타입이었다. 영화에서 엄청 띄워줬음에도 불구하고 못 뜬 케이스는 이후 재기를 잘 못 하는데, 그녀 역시 마찬가지여서 이후 다른 영화에서 혹 조연으로 스쳐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나는 안쓰러운 마음이 곧잘 들곤 했다. 비슷한 이름의 엘리자베스 헐리하고는 이미지가 극과 극이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떠보려다가 볼썽사납게 잘 못 되고 만 그녀지만 나는 내 타입이 아닌데도 이상하게 이 영화가 자주 끌리곤 했다, 그래... 원 제목은 '쇼걸'이 아니라 'showgirls'인데 제목대로 영화에는 매력적인 쇼걸 하나가 더 나오고, 크리스털 역을 맡은 지나 거손이 그녀이다. 이 영화에서도 좀 이상한 여자로 나오는 그녀는 이후 거의 레즈비언 전문이다시피 이미지가 굳기도 했다. 내가 근사하게 본 배우는 토니 모스 역의 앨런 레이친스고, 근성 있는 도시의 헌터-위너 캐릭터에 아주 잘 어울렸다. 카일 맥라클란은 헤어스타일부터해서 정말 짜증나는 모습이었는데, 기억에 남는 대사로는 Versace를 '벌세이스'로 잘못 발음하는 그녀(명품이니 뭐니 하는 것과는 담을 쌓고 산 시골뜨기임과 동시에 심성의 순박한 미덕을 간직한 레어한 존재임을 암시. 본래 근본이 천하고 땡전한푼없는 쓰레기들이 꼴통에 최우선으로 브랜드만 입력하고 다니는 건 여기나 거기나 사정이 마찬가지이므로)를 고쳐주는 대목이었다. 한국 dvd 제작의 시초인 벤처기업 스펙트럼디브이디에서 판권을 사 들여 두 번에 걸쳐 국내 에디션을 찍은 작품이며(초판은 노출씬에 불투명처리를 입혔고 재판은 완전 무삭제 무보정), 6년 전 태원엔터테인먼트에 흡수합병된 후에는 지금 이 회사가 새로 dts사운드를 입힌 버전으로 내고 있으며, 이는 멋진 群舞의 생생함을 잘 표현하는데에 필수 피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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