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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알기 위해서는 나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나 이따금 튀어나오는 나도 잘 모르는 내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당황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수시로 내면을 들여다보고 내가 누구인지 알기 위한 노력을 해도 모자랄 판국임에도 사람들은 타인과의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움직임에 바빠 이를 등한시 여긴다. 급기야 자신이 누군지 알지 못해 그저 다른 사람들이 향하는 방향을 따라 걷다가 시름시름 앓기도 한다. 글쓰기는 잉여와도 같다. 바쁘면 바쁠수록 사람들이 쏟아내는 문장의 길이가 줄어든다. 바쁨도 아마 글자수의 제한이 있는 SNS 가 소통의 매체로 부각될 수 있었던 원인 중 하나가 아닐까 한다. 그렇지만 늘어진다 싶을 정도로 지루한 글쓰기의 시간이야말로 자신과의 소통을 가능케 하는 느림을 허락한다. 어떠한 종류의 글을 쓰느냐는 사람마다 물론 다를 것이다. 완벽한 허구일수도 있고, 사회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그 안에 담길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당신이 써 내려가는 모든 글에는 당신의 일부가 담겨 있다고 감히 말하고 싶다. 나로부터 완벽히 소외된 글이란 있을 수 없다. 사람마다 각기 문체가 다르듯 사고도 다르고, 이 다름은 바로 내 정체성으로부터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동양 사회에서 가장 기본이 되어온 것은 바로 ‘수신(修身)’이다.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르게 한 다음에야 비로소 가정을, 나라를 다스릴 수 있단다. 스스로를 갈고 닦는 것의 역사는 따라서 상당히 길수밖에 없을 것이란 짐작이 가능하다. 역시나, 한자문화권에서 제 삶을 고백하고 성찰하는 움직임이 시작된 것은 한나라 때라고 한다. 까마득한 옛날이어서 생활양식조차 짐작조차 하기 힘든 시절부터 사람들은 스스로의 존재에 대해 되물었던 모양이다. 흔히들 자서전이라고 하면 틀에 박힌 산문의 형태를 떠올린다. 몇 년도에 누구에게서 태어났으며 어린 시절은 어떠했는가 등을 시간 순으로 기술하는, 그리고 왠지 자서전은 삶이 끝나갈 무렵에 제 삶을 정리하며 써야 제 맛일 거라는 편견(?) 역시 사람들 사이에 팽배해있다. 헌데 이 책에 수록된 많은 글들은 우리의 틀에 박힌 사고를 비웃는 듯 참으로 버라이어티(?)했다. 우선 형식면에 있어서 운문도 참으로 많았다. 사실 표현의 압축성으로 인해 운문은 산문보다 이해에 어려움이 있고는 하다. 하지만 우리의 선인들은 난해함을 즐겼던 것인지, 제 자신을 고백함에 있어 굳이 ‘산문’의 옷을 입으려 들지 않았다. 글 속에 담긴 시기 역시 한정적이었다. 한 사람의 인생 전반을 다루는 글의 경우 늘어지는 단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글 쓰는 이는 한 시점에 머물러 있기 마련인지라 현재로부터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그 기억의 희미함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기도 한다. 이러한 어려움을 일부러 겪을 이유는 없음을 증명하듯, 인생의 굴곡진 부분만이 담긴 글은 외려 강렬함을 뿜어댔다. 그리고 문체에 있어서, 어쩌면 이는 동양 특유의 정서일 수도 있는데, 제 잘 나가던 시절보다는 어딘가 모르게 부족하고 회한으로 남는 부분들이 많이 다루어진 것도 독특하게 다가왔다. 누구에게나 존재하는 성공 욕심, 하지만 출세의 운명은 누구나 타고 나는 것이 아니어서 적지 않은 이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좌절을 경험하고 있다. 선인들도 이는 마찬가지였던 듯 태생적으로는 벼슬길에 올라 승승장구를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농꾼이 될 것인가를 두고 고민해야만 하는 등의 현실이 쓸쓸하다 못해 자못 비장한 기운까지 풍겨가며 글에 담겨 있었다. 이상적인 존재를 상정하고 그 존재가 현실의 자아를 꾸짖기까지 하는, 이는 마치 제 발 저린 도둑이 누가 무어라 하기도 전부터 제 죄를 고백하는 꼴과도 같아서 심히 서글펐다. 아, 글쓰기를 통해 그들은 무얼 꿈꾸었던 것일까! 언젠가 제 상처를 드러내는 글쓰기가 치유의 기회를 부여한다는 식의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저들에게도 글쓰기가 제 아픔을 달래는 도구로써 활용되었을까? 형식도, 내용도, 모든 것이 자유로웠던 글쓰기를 통해 영혼의 자유를 꿈꾸었던 것은 아닌지... 글이라면 지레 겁을 먹고 걸음아 날 살려라 달아나기 바쁜 현대인들로서는 선인들의 글쓰기가 그들이 살아간 시대만큼이나 멀게 느껴질 수밖에 없을 게다. 그러나 수신(修身)의 깊은 뜻을 애써 품지 않더라도 살아 있는 존재라면 한 번 즈음 제 삶을 정리할 필요는 있을 터. ‘나는 어떤 사람인가’ 문득 물어보고픈 욕망이 피어오르진 않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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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성검사와 성격 테스트를 하고, 자기계발서와 심리치료서를 읽는 이유는 모두 한 가지 질문에 대답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다. 그 질문이란 바로 '나는 어떤 사람인가?'이다. 착한 사람인가, 악한 사람인가, 내성적인가, 외향적인가, 능력 있는가 아니면 무능력한가. 한문학자 심경호의《나는 어떤 사람인가 : 선인들의 자서전》은 자신을 돌아보길 원하는 이들이 읽으면 좋은 수작이다. 근대 이전 우리 선조들의 자서전적 글쓰기를 폭넓게 소개하고 정리하고 있다. 제왕(영조)과 부마(신익성)를 비롯한 사대부 계층(김정국, 신흠, 이시발, 이자 등)은 물론 처사(권익창, 황오 등), 서얼(박제가)과 중인(조수삼), 여항문인, 승려(연담유일), 몰락양반과 귀화인(천만리)의 자서전까지 포괄하고 있다. 선인들이 자신의 삶을 돌이켜보면서 무엇을 자랑스러워하고 또 무엇을 안타까워했는지 궁금하다면 이 책 한 권이면 오케이다.
선인들은 자전이나 탁전, 술회가 아니어도 책의 서문이나 서찰, 심성 수양의 허구적 산문, 연작시 등의 방식으로도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현재의 삶을 기획했다. 그리고 자신을 알아줄 미래의 '백락'을 기대했다.
"한자문화권의 지식인들은 삶을 고백하고 인성을 성찰할 때, 자전 이외에도 탁전托傳·자서自敘·자술自述 등 생애의 사실을 주로 기록하는 문체뿐만 아니라, 자지自誌·자명自銘·자만自挽·自輓 등 스스로의 죽음을 예상하고 자신의 생애를 평가하는 문체까지 두루 이용하였다."(6쪽)
"홀로 우뚝한데다가 고매한 사람만 골라서 친밀하게 사귀고, 번잡하고 화려한 상황은 멀리서 보기만 해도 더욱 멀리했다. 그러므로 세상과 뜻 맞는 일이 거의 없어서 늘 가난했다."(박제가)
"선을 좋아하길 독실하게 하지 않고 악을 미워하길 용맹하지 않아서, 한 세상을 그렁저렁 보내고 하루하루를 허랑하게 지냈으며, 그러는 사이에 세월이 흘러 51세가 되고 말았다."(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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