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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군全軍 출정出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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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전 23승. 세계 전쟁사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이순신 장군의 전승기록이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승병선승이후구전(勝兵先勝而後求戰)패병선전이후구승(敗兵先戰而後求勝)이라 했다. 이 말은 풀이하자면 ‘이기는 군대는 승리할 상황을 만들어놓고 전쟁에 임하고, 패하는 군대는 먼저 전쟁을 일으킨 다음 승리를 구한다’라는 뜻이다. 전쟁의 승패는 전쟁을 하기 전에 승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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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23. 세계 전쟁사에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이순신 장군의 전승기록이다. 손자병법에 이르기를 승병선승이후구전(勝兵先勝而後求戰)패병선전이후구승(敗兵先戰而後求勝)이라 했다. 이 말은 풀이하자면 이기는 군대는 승리할 상황을 만들어놓고 전쟁에 임하고, 패하는 군대는 먼저 전쟁을 일으킨 다음 승리를 구한다라는 뜻이다. 전쟁의 승패는 전쟁을 하기 전에 승리의 방법을 찾아놓고 싸우느냐, 아니면 일단 싸워놓고 승리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느냐 하는 아주 간단한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은 거제도 옥포해전에서 23번째 전투인 노량해전에 이르기까지 단 한 번도 지지 않는 전투를 펼쳤다. 이순신 장군은 이미 싸우기 전에 승리의 조건을 만들어놓고 싸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전투가 그런 것은 아니다. 이순신 장군이 치른 23의 전투에서 선승구전의 논리에 맞지 않는 전투가 있다. 바로 3대 대첩이다. 한산대첩, 명량해전, 노량해전이다. 그중 명량해전은 아군 12척과 적선 330척의 싸움. 전혀 상대할 수 없는 싸움. 그건 어찌 보면 계란으로 바위를 치는 무모한 전투였다. 이순신 장군이 치른 많은 전투 중 유일하게 난중일기에 전투의 기록이 남아있는 것 또한 명량해전이다. 그건 유일하게 준비하지 않고 맞이한 전투였다는 의미다. 이순신장군이 치른 대부분의 전투가 공격형 전투였다. 즉 선공이었다. 하지만 명량해전만이 방어용 전투였고, 장군의 의사와 다르게 어쩔수 없이 선택한 무모한 전투였다. 난중일기정유년 915(명량해전 하루 전) 일기에 이날 밤 꿈에 신인이 나타나 가르쳐 주기를 이렇게 하면 크게 이기고, 이렇게 하면 지게 된다고 하였다고 기록되어있다. 풍전등화 같은 국운을 지키기 위한 전투를 앞에 두고 그 원이 얼마나 사무쳤으면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전술을 알려주었을까 하고 생각하니 목이 매였다.

 

  성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 장군, 우리가 그를 숭배하고 추앙하는 것은 단순히 전쟁에 나서서 수많은 승리를 거뒀기 때문이 아니다. 이순신 장군은 임진왜란을 맞아 국가 존립의 위기에서 국가를 구한 영웅이기 때문이다.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시키고, 백성을 향한 충을 실현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의 해전에서의 승리는 여러 의미가 있다. 전투에서의 승리를 결정하는 요인은 세 가지가 있다. 그 첫째는 보급이고, 둘째는 통신, 셋째는 지원 병력이다. 임진왜란당시 일본군의 전략은 육지에서의 빠른 진격을 통해 한양을 점령하고 선조를 잡아 전쟁을 종식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위한 보급물자와 지원 병력은 해상을 통해 지원받을 예정이었다. 남해와 서해를 지나 인천을 통해 한양으로 물자와 병력을 공급받는 방식의 전략을 택한 것이다. 한데 해전에서의 연이은 패전이 이 전략에 차질을 불러왔다. 일본군 선진이 한양을 점령하고 함경도까지 나아갔지만 더 이상 진군을 못하고 전쟁이 휴전에 들어간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이순신 장군의 해전에서의 승리는 적의 보급과 지원 병력의 공급을 차단하여 일본군의 진격을 막았고, 향후 일어난 의병활동과 명나라 지원병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만약, 역사에는 만약이 없다지만. 만약 이순신장군의 해전에서의 승리가 없었다면 아마도 지금 우리는 일본말을 쓰는 일본인이 되어있을지 모른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그때 국내의 병력으로는 23만에 이르는 일본군의 전력에 맞서 싸울 여력이 없었다. 전쟁이 반발하고 20여일도 되지못해 선조는 한양을 버리고 도망갔고, 부산 상륙 후 60여일 만에 개성과 평양은 물론 함경도까지 침탈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해상에서의 이순신 장군의 승리는 전라도 곡창지대를 지켜낼 수 있었고, 일본군의 해상 보급을 차단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 일본군의 보급에 차질이 생겨 전쟁을 소강상태에 머무르게 했다. 장군을 적으로 생각하는 선조와 많은 이들의 모함이 항상 장군을 따라 다녔지만, 장군은 국난 극복을 위해 자신의 몸을 던져가며 항상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로 전쟁에 임했으니, 진정한 구국의 명장이었다. 그런 이유로 우리 국민은 이순신장군에게 커다란 마음의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난중일기는 장군이 직접 초서체로 작성한 것이다. 알아보기 어렵게 흘려 써서 후대에 해석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이 따른다. 지금도 난중일기의 자구에 대한 해석은 학자들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원래 이 일기의 제목은 난중일기가 아니다. 정조의 지시에 의해 이 충무공 전서를 간행할 당시 편찬자인 규장각 문신 윤행임과 검서관 유득공에 의해 붙여진 것이다. 원래는 연도별 임진일기」「계사일기」「갑오일기」「을미일기」「병신일기」「정유일기」「무술일기란 이름으로 각각 분책되어 있었다. 장군은 전쟁의 반발을 미리 예상이나 한 듯 임진왜란이 반발하는 임진년부터 일기를 기록하기 시작하여 장군이 사망한 무술년까지 기록되어 있다.

 

  『난중일기는 이순신장군이 몸소 치른 임진왜란에 대한 기록이다. 임진년(1592) 11일부터 무술년(1598) 1117일까지다. 7년 동안 부득이 출전한 날은 쓰지 못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날짜마다 간지 및 날짜, 날씨까지 빠지지 않고 틈나는 대로 적었다. 일기의 내용은 주로 전쟁의 출동 상황, 부하 장수의 보고 내용, 공문을 발송한 일, 군율을 어긴 부하 장수를 처형한 사건, 장계를 올릴 일등 위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공사간의 인사 문제와 가족에 대한 안부 걱정, 그리고 진중 생활에서 느끼는 울분과 한탄 등 자신의 심정을 토로하기도 하였다. 가족, 그중에서도 특히 가까이 모시지 못하는 어머님에 대한 안타까움과 상관과 부하 장수들 간의 갈등문제 및 당시의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등에 이르기 까지 폭넓게 다루어져 있다. 또한 전쟁을 수행하면서 느낀 심중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잘 드러나 있는데, 무능한 조정에 대한 탄식과 전쟁에 시달리는 민중에 대한 사랑, 그리고 국난 극복에 대한 강한 염원 등을 서슴없이 드러내었다. 거기에 임금에게 올린 장계 초안과 관청에 보낸 공문, 시와 문, 간찰 등의 내용가지 기재되어 있어 장군의 문장력과 꼼꼼한 성격 또한 엿볼 수 있다.

 

  일기를 읽어보면 장군은 거의 매일을 활 10(일순은 5)을 쏘며 체력단련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무감각하게 써내려간 일기에서 유독 장군의 감성을 나타내는 대목은 어머님의 안부에 관한 것이다. 어머니를 향한 장군의 애끓는 심정은 일기 곳곳에서 보인다. 어머니를 생각해 스스로 흰 머리카락을 뽑는 장군의 모습은 연로하신 부모 앞에서 나이 들어가는 자식의 모습을 보여주길 꺼리는 지극한 효성에서 비롯된 행위이다. 역모로 몰려 백의종군하던 때 어머님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회환은 일기 곳곳에 수시로 언급되었다. 일기에는 유독 원균(경상 우수사)에 대한 한탄이 자주 보인다. 원균이 음흉하다고 평을 하고, 전쟁 중에도 배에 기생을 싣고 다녔다고 한다. 타인의 공을 가로채기도 하고 원수(권율)이 보낸 전쟁 물자를 독차지 하려고 한다는 대목도 보인다. 또한 군량을 마련할 길이 없어 수군들이 바다로 나가 직접 청어를 잡아다가 말려서 군량과 바꾸기도 했다는 구절도 나온다. 그만큼 지원을 받지 못하고 스스로 식량과 군수물자를 조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옷이 없어 추운날씨에 떨고 있는 장병들을 위해 옷을 가져다주고, 백성들이 바치는 음식은 절대 받지 않고, 받더라도 다시 쌀로 되갚아주고, 혹 지역의 유지들이 선물하는 물건 등도 바로 휘하 장수들에게 분배해주었다. 전쟁으로 고통 받는 백성들을 향한 애끓는 심정을 드러내며 가슴아파하지만, 역설적으로 탈영을 하다 잡힌 병사와 군량을 빼돌린 장병, 전쟁에서 물러난 장수에 대해서는 엄격하게 처형한다. 이는 장군의 청렴함과 백성과 수하 장병에 대한 애정과 더불어 군율 앞에 엄격함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일기 곳곳에 수시로 몸이 불편해 고생하신 구절들이 나온다. 오랜 전쟁으로 몸을 돌보지 못한 때문이며 역모로 몰려 고문당한 후유증인 듯하다.

 

 

  이순신 장군은 정읍현감으로 재직하다 유성룡의 추천으로 전라좌도수사로 임명되었다. 장군은 전라 좌수영에 부임하여 왜적의 내침에 대비 무기를 정비하고 거북선 제조에 착수, 임진년(1592) 327에 새로 만든 거북선에서 대포를 쏘는 시험도 하였다. 적의 승선에 대비하기 위해 철갑을 두룬 거북선은 시야확보가 어려웠다. 이에 꾸준한 시험 및 훈련을 거쳐 거북선의 위용을 발휘할 모든 훈련과정이 완료된 것이 바로 임진왜란이 반발하기 하루 전이었다. 장군이 역모로 몰려 고문을 받을 때 장군을 살려준 것도 유성룡이었다. 또한 장군이 노량해전에서 전사한 바로 그날은 유성룡이 파직된 날이기도 하다. 유성룡과 이순신 장군의 업적이 재조명된 것은 그로부터 150년이 지나 정조에 의해서다. 유성룡과 이순신장군의 어릴 때부터 이어진 평생의 우정은 죽어 역사 속에서도 그 운명을 같이 했다.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극도의 감정을 절제하고 담담하게 써내려간 일기. 하지만 어머니의 안부를 확인하지 못했을 때 자식의 애끓는 심정. 전쟁 중 사망한 자식의 부음을 듣고 애통해 하는 부정-부하장수들에게 보일까봐 장군은 통곡한번 마음 놓고 하지 못했다-은 난중일기를 읽어가는 동안 장군의 애통함이 전해져 가슴 한구석이 싸해지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 슬픔과 애달음은 콧등을 건들고 목울대를 아프게 밀어냈다. 그런 애통함 속에서도 장군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휘하장수들과 밤늦도록 전술을 의논하고, 적의 동태를 파악하고, 병영을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았다. 우리가 성웅으로 추앙하는 충무공 이순신 장군, 하지만 그의 일기를 통해 들여다 본 장군은 그저 평범한 필부이며, 한 어머니의 지극한 자식이었으며, 전쟁을 앞두고 두려워하고, 병사들의 죽음에 한없이 괴로워하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국가와 백성을 향한 사랑이었다. 자신을 역적으로 몰아 죽이려고 했던 선조에 대한 원망은 일기 속에 단 한구절도 보이지 않았다. 일기에는 오직 국가의 안위를 책임진 장수로써 적을 섬멸하여 백성의 안위를 구하고, 사직을 보존하는 일만이 오로지 장군의 관심이었다.

 

  혼란스러운 이 시대, 국민을 대변하겠다는 위정자들이 국가를 자신의 수익모델로 삼는 세태, 정부는 재난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고, 유족들의 아픈 마음하나 위로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제반 상황을 지켜보면서 암울해하는 국민들의 마음은 어느 곳 하나 위로받을 곳이 없다. 그 마음을 대변하는 것이 최근 영화 명량에 쏟아지는 국민의 관심이다. 어느 평론가의 말처럼 이 얼마나 불쌍한 일인가. 현실에서의 고통을 고작 영화를 통해서 위로받고자 하는 국민의 마음을 국가는 알아야한다. 지금이라도 국민의 마음을 위로하기 위해 정부와 위정자는 무엇을 해야 되는지를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그런 깨달음이 없다면 이 나라의 앞날은 보장받기 어려울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민중으로부터 버림받은 국가나 권력은 그 안위를 보장받지 못했다. 존경할 만한 정치인 하나 갖지 못한 대한민국, 국민의 안위하나 제대로 보장해주지 못하는 대한민국, 자신의 직위에서 수행해야할 의무에는 충실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자리보전만을 생각하는 위정자. 그리고 그 밑에서 허허로운 가슴을 달래지 못하고 영화를 통해 위로받고자 하는 국민들, 국가적 재난인 세월호 사건이 발생한지 수개월이 지났지만 누구 하나 책임지고 나서는 이 하나 없는 나라, 아직도 돌아오지 못한 실종자가 10명이나 있는데도 비극적인 사건을 잊어가고 있는 이 사회.

 

  이런 계층 간 분열과 갈등, 세대 간 갈등으로 멍들어 치유되지 않는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대안은 바로 이순신 장군에 있다. 장군은 극복의 아이콘이다. 어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굴복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고 나아갔다. 아무리 주어진 여건이 절망적이고 암울하다고 해도 그 속에서 희망을 찾고, 승리했다. 필사즉생必死卽生의 각오로 나아갔다. 그런 장군의 결단과 고통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난중일기속의 이순신장군은 영웅이 아닌 고뇌하는 한 인간이었다. 나라를 향한 끝없는 충성심에 가슴 아파하고, 병사들의 죽음에 비통한 눈물을 흘렸으며, 전장에 나서서는 맹장이었던 이순신 장군. 우린 그런 지도자를 갖고 싶다. 하지만 현실의 대한민국은 이순신 장군과 같은 지도자를 두 번 가질 복도 없는 민족인가. 아니면 국민이 제대로 깨어있지 못해 그런 지도자를 갖지 못한 것인가.

 

  역사는 거울이다. 현실의 잘못이 후세에 어떤 결과로 되돌아오는지 보여준다. 임진왜란당시 일본의 침략으로 전국토가 유린되고 백성들은 말로는 표현하지 못할 엄청난 고통을 당했다. 아무 죄 없는 백성들의 고통이 가장 컸다. 그 시절 피난길에 널린 시체에는 살점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굶주림을 견디지 못한 피난민들이 인육을 먹은 것이다. 전쟁으로 인해 7년간 전 국토가 황폐화 되었다. 그런데도 그 교훈을 잊어버리고 그 고통을 잊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인조 때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으로 또 한 번 전쟁의 고통에 신음했다. 이때도 인조는 백성을 버리고 피신했다. 선조와 똑같은 전철을 밟은 것이다. 이어진 삼전도의 굴욕. 이 때 청나라에 인질로 잡혀간 부녀자만 50만이었다. 이 또한 죄 없는 백성들이었다. 임진왜란 이후 몇 백 년 뒤에 대한민국은 치욕적이게도 일제에 의해 나라가 강탈당하는 일제 36년을 겪었다. 이 모든 것이 임진왜란이 주는 역사의 교훈을 잊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광화문 광장에 우뚝 서 가없는 외로움을 간직한 채 우리를 내려다보는 장군은 추상같은 호령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 너는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그저 자신의 안위만을 핑계 삼아 세상의 고통과 혼란을 외면하고 있지 않냐 고? 이제는 장군의 그 질문에 답을 해야 한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투를 앞두고 병사들을 향해 외친 장군의 신념에 찬 추상같은 음성이 들린다. 전군 출정하라

 

YES마니아 : 로얄 h*****o 2014.08.26. 신고 공감 8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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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죽음을 알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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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76호 난중일기(李忠武公亂中日記附書簡帖壬辰狀草)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공의 일기를 제대로 읽어 본 사람 역시 의외로 많지 않다. 公께서 초서체로 흘려 기록하는 바람에 오역도 많고 초고본, 전서본, 일기초 등 사료의 정비불비로 인해 많은 번역본이 두서 없이 출간되어 정확한 난중일기의 묘미를 느낄 수 없었다는 점도 있다. 특히 1595년 일기인 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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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76호 난중일기(李忠武公亂中日記附書簡帖壬辰狀草)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정작 공의 일기를 제대로 읽어 본 사람 역시 의외로 많지 않다. 公께서 초서체로 흘려 기록하는 바람에 오역도 많고 초고본, 전서본, 일기초 등 사료의 정비불비로 인해 많은 번역본이 두서 없이 출간되어 정확한 난중일기의 묘미를 느낄 수 없었다는 점도 있다. 특히 1595년 일기인 을미일기가 빠져있었던 관계로 일기전체에 대한 맥락을 잡는데 어려움을 겪어왔던 것이 사실이다. 구국의 성웅으로 충앙하고 있지만 정작 공이 직접 남긴 일기 (어쩌면 실록이나 기타 기록보다 더 진솔하고 정확하다고 볼 수 있는)에 대한 후대인들의 완역에 대한 노력은 그리 깊어 보이질 않았다. 이번 노승석교수의 난중일기는 그동안 산재되었던 초고본과 전서본 그리고 기존에 빠져있었던 누락부분의 일기초을 통합하여 교감한 난중일기의 완역본이라데 그 의의가 있다. 특히 을미일기를 추록하여 완벽한 충무공의 난중일기가 재탄생하게 되어 무엇보다 기쁨마음을 금할 수 없다.

 

전국시대를 평정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야망과 다이묘들의 반발을 억누르기 위해 왜는 명을 타도한다는 명분하에 1592년 4월 현해탄을 건너 부산 앞바다에 도달하고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한반도를 유린한다. 이를 역사는 임진왜란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조선개국이후 200여년간 그야말로 평온한 시절를 보낸 조선으로서는 한마디로 아닌밤에 홍두깨였지만 왜는 철저한 준비끝에 감행했던 도발이었기에 상대가 되지 못했다. 더구나 군왕이라는 자가 솔선수범하여 몽진하는 형국에서 신하들의 비겁함을 탓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토록 만반의 준비를 했던 왜의 전략중 치명적인 오류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전라좌수영의 수장 이순신을 간과했다는 것이고 이는 곧바로 옥포해전에서 부터 시작하여 칠전량해전에서 승리를 거두기 까지 자그만치 5년간에 19차례 해전에서 전패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다. 결국 왜의 전략은 바다의 神인 이순신의 벽을 넘지 못하고 처음부터 새롭게 맞추어야 했고 결국 명의 참전을 불러오게 되면서 7년이라는 기나긴 원정을 하게 되면서 명분도 없고 성과도 없는 소모전으로 변질되어 버린다. 이러한 결과는 이후 동북아시아의 정세에 커다란 반향을 가져오게 된다.

 

임진왜란에 대한 역사적 기록은 선조신록(수정실록포함), 유성룡의 징비록, 유몽인의 어우야담 등에 나와 있지만 그 내용이 그리 자세하지도 않고 전반적으로 전쟁을 통찰하는데 부족한 면이 있다. 실록은 정사라는 측면에서 특히 문신들의 입장에서 기록된 것으로 전장의 치열한 기록을 알 수 없는 한계가 있고 징비록의 경우도 후방에서 겪고 보고 들었던 기록물이고 어우야담(유몽인의 경우 난중일기에 그의 암행어사로서의 허위보고와 편협한 사고의 대한 비판이 나옴)의 경우 그야말로 야담형식으로 민간의 전해내려오는 이야기를 기록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이런면에서 이순신의 난중일기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임진년에서 부터 노량해전으로 戰死하기 이틀전인 무술년(1598년 11월 16일)까지 7년간의 방대한 기록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방대한 양보다 더 소중한 것은 바로 자신이 전쟁의 최일선에서 겪었던 생동감 있는 현장을 그대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에 전란을 통찰하는데 어떠한 기록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자신이 직접 진두지휘하여 승리한 해전을 거의 모두 기록하고 있어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또한 전란중에 벌어졌던 행주대첩, 진주대첩등 다양한 육전에 대한 정보와 장수와 문신들의 활약상 그리고 그들의 치부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역사적 사료로서의 가치가 중요하게 평가받고 있다.


또한 공의 일기에는 판옥선을 비롯한 전선의 제작과정과 둔전(병사가 직접 경작을 하여 군량미를 조달하는 방식)그리고 거북선과 정철총통을 비롯한 신무기의 개발과 개량에 대한 세세한 기록이 남겨져 있어 군수품관리와 전선보급 관리등에서 공만의 주도면밀함을 확인할 수 있다. 제하는 비록 일기라고 하지만 그야말로 7년전쟁을 세밀하게 다룬 전쟁사라고 해야 할 정도 전투전략, 적 정세파악, 국가의 전략, 인재의 배치 및 활용, 정규군과 의병의 활동등에서 카이사르의 내전기나 갈리아전쟁기보다 뛰어난 면을 보여주고 있는 기록물이다.

 

하지만 난중일기를 전쟁사로만 팍아해서는 그 의미를 십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바로 난중일기에는 공 자신의 사상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일기라는 자체가 자신의 솔직한 심정을 기록 하듯이 난중일기에는 공의 솔직담백한 내용들을 포함한 공의 모든것이 기록되어 있다. 심지어 어느 누구라도 감추고 싶어하는 남녀간의 정사문제도 기록하므로서 정말 자신에게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 특히 그동안 원균과의 불화는 모두 인지하고 있지만 권율, 당시 암행어사로 파견된 유몽인, 윤두수, 윤근수, 이억기(전라우수사),기효근(남해현령),이일등의 인물평은 당시 조선군 전체의 분위기를 보는듯 해서 마음이 착찹해 질 뿐이다. 또한 일기를 통해서 본 공의 성격이 그대로 표출되고 있다. 자신의 오른팔 격이었던 순천부사(권준)과 사도첨사(김완),전라우수사(이억기)가 기한내에 작전지역에 도착하지 못한 것에 대한 냉정한 징계와 모함으로 백의종군하는 과정에서 백성이 준 음식을 받아온 종에 대한 질책에서 공과 사에 대한 확고 부동한 태도를 엿 볼 수 있다. 임진년 사천해전에서 어깨에 총상을 입은 이후 계속되는 신병와중에도 대필한 공문서의 글자모양이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직접처리하는 과정를 보면 공의 꼼꼼한 면을 확인할 수 있다. 부안의 첩과 동침한 여종에 대한 기록에서는 자신의 허울도 감추지 않는 솔직함을 볼 수 있다. 특히 원균을 비롯한 부하장수들의 술주정에 대한 힐책이 많이 보이는 점은 정신과 자세의 올바름을 강조하는 공의 성격을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이렇듯 충무공의 전반적인 성격은 쉬이 범인들이 접근하기엔 상당히 어려운 인물이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례이다.


하지만 공의 이러한 성격이 오히려 관리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대변하고 있다. 진중에서 일반백성들과 병사들에 대한 배려는 장수로서 그리고 목민관으로서의 부족함이 한치도 없어 보인다. 최하층계층인 노비들의 이름과 승병들의 이름 그리고 일반 백성들의 이름 하나하나까지 거론하면서 그들의 노고를 치하하고 아픔을 자신의 아픔같이 감싸주는 모습에서는 그저 공이기 때문에 그럴 수 밖에 없다는 생각마저 들게 할 정도이다. 선조의 시기와 질투 그리고 이에 편승한 원균과 서인들의 중상모략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백의종군하고 모친의 죽음과 아들 면의 전사등 그야말로 안팍으로 괴로운 시기였지만  공은 일기가 끝나고 자신이 전사하는 노량해전까지도 단 한번도 임금에 대한 원망자체가 없었다. 오히려 자신의 죽음을 미리 예견하듯이 정유년 9월의 일기에 송사 이강과 이약수전을 인용하면서 신하가 임금을 섬김에는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라는 비장한 결의를 보여 주어 읽는 이로 하여금 눈시울을 뜨겁게 한다. 비단 선조는 자신을 라이벌로 생각했더라도 신하인 공은 단 한번도 선조에 대한 충념을 버리지 않고 일기에 기록했듯이 목숨으로 섬김을 다했던 것이다.

 

이렇듯 난중일기는 전란의 진행상황과 전투의 결과, 전략의 수립, 신무기 개발, 유성룡을 비롯한 중앙관직 인사들의 언행과 행보 권율,원균,곽재우,이일,이억기등 최전방일선에서 활동한 장수들의 활약상, 목년,갓동,철매,한경,돌쇠,해돌,금이, 중 해당등 이름 없는 민초들의 이름, 가장(개고기),사슴고기,연포탕,동아등 당시 애용했던 음식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백과사전 같은 방대하면서도 다양하고 그러면서도 없어서는 안될 소중한 기록들을 담고 있는 개인의 일기이자 전쟁사이며 하나의 문화사이기도 한 소중한 유산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비록 후대에 5.16쿠테타로 그 정당성을 인정받기 위해 충무공을 신격화 하였다는 비판도 있지만 난중일기만을 놓고 보더라도 공의 위대함은 이런 비판을 잠재우고도 남는다. 우리는 난중일기에서 공의 성웅적인 기질을 보는 것 보다 공역시 일개 인간으로서 우리와 같은 희노애락을 갖고 살아갔던 사람으로 기억되는 것이 올바른 난중일기의 접근방법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이번에 새로게 보완되고 첨부되어 완역된 난중일기를 통해서 공의 진중에서의 일상과 목민관으로서 자세, 자식으로서 효, 부모로의서의 자애, 목숨을 건 전장에서 전우애 그리고 나아가 국가에 대한 충념을 다시한번 알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는 지금처럼 가치관의 아노미상태에 접어든 시대에 충무공이 던져주는 삶의 화두일 것이다.

 
安國家定社稷, 盡忠竭力, 死生以之(국가를 편안히 하고 종사를 안정시키는 일에 충성과 능력을 다하여 죽으나 사나 그렇게 하리라) 자신이 기록한 일기의 이 말을 위해 죽는 순간까지도 충무공에게는 국가와 백성이 최우선의 대상이었다.

l******e 2010.05.27. 신고 공감 7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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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한 인간의 고백 같은 내면의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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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고백한다. 나는 <난중일기>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이 남긴, 전략전술 기록서로 인식했다. 한 인간의 고뇌와 아픔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그저 전쟁영웅이 쓴 객관적인 기록으로만 생각했다. <난중일기>를 제대로 읽지 않은 무지한 독자의 선입견이었다고도 생각된다. 더불어 일기(日記)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망각한 것이기도 하다. 어떤 기록에 있어 객관적으로 보
"『난중일기』 한 인간의 고백 같은 내면의 기록." 내용보기

먼저, 고백한다. 나는 <난중일기>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이순신이 남긴, 전략전술 기록서로 인식했다. 한 인간의 고뇌와 아픔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그저 전쟁영웅이 쓴 객관적인 기록으로만 생각했다. <난중일기>를 제대로 읽지 않은 무지한 독자의 선입견이었다고도 생각된다. 더불어 일기(日記)라는 것에 대한 의미를 망각한 것이기도 하다. 어떤 기록에 있어 객관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일 수 있는 것이 일기임을 잊었다. 그렇다.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기간에 쓰인 인간 이순신의 개인적인 기록이다. 매일의 날씨를 알 수 있었고 전쟁의 흐름을 보여주기도 했지만, 그 누구보다 이순신 개인의 생각과 전쟁을 겪으면서 느끼는 아픔과 외로움이 묻어나는, 그가 그 자신에게 하는 고백 같은 글이었다고 생각된다.

 

<난중일기>는 1592~1598년까지, 임진왜란 그 7년 동안 이순신이 쓴 일기다.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마라.’ 라고 했다던 그의 최후의 말은 많은 곳에서 인용되거나 패러디되기도 했다. 내가 알고 있는 이순신은 난중일기, 거북선, 죽기 직전에 남겼다는 마지막 말, 이게 전부였다. 그의 활약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고, 그에게 ‘성웅’이란 칭호를 갖게 했다.

1591년 전라좌수사에 임명되었을 때 그는 앞을 내다봤다. 바로 다음 해에 시작된 임진왜란을 준비할 수 있었던 그의 통찰력은 거북선의 건조로 이어졌고, 그가 지휘한 전쟁을 승리로 이끌 토대를 만들었다. 한산대첩을 거쳐 노량해전에 이르기까지 그의 활약은 ‘성웅’이란 칭호에 맞게 눈부셨다. 그래서였다. <난중일기>가 전쟁의 기록처럼 여겨진 이유는, 아마도 계속 전쟁을 승리로 이끈 그의 철저한 준비 같은 계획이 담긴 것으로 나에게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직접 <난중일기>를 펼쳐보기 주저했던 이유 중의 하나는, 영웅이란 대상에 대해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부담스러움도 작용했다. 이제와 말하지만, <난중일기>는 임진왜란 당시의 이순신의 기록이면서도 조금 다른 방향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는 인간의 모습이라는 점이다. 성웅으로 불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끈, 오늘날로 보자면 훈장을 받을 정도의 인물이지만 그 역시 한 사람의 인간이었을 뿐이라는 것을.

 

<난중일기> 속의 이순신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어머니의 안부를 자주 물으면서 걱정과 안도하기를 반복했고, 아들의 용맹한 모습에 뿌듯해했다. 자신을 모함하는 이들에게 분노하고 있음을 일기에 그대로 표현했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기 위해 애쓰던 몸과 마음의 고통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부하들을 대하는 태도나 무기를 개발·점검하는 모습, 적과의 대치 상황에서 찾아오는 긴장감, 술로 고뇌를 푸는 모습이나 몸의 아픔을 호소하는 모습은 너무나도 인간적인 면을 볼 수 있게 했다. 몸이 조금이라도 괜찮은 날이면 활쏘기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가 육체적인 아픔을 이겨내고 부하들을 다독이고 훈련하면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정신력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더욱이, 짧지만 이렇게 매일의 기록을 했다는 것 자체도 그의 정신력이 발휘되었음이라.

 

한편으로 이 일기는 그가 전장에서 보내는 시간에 찾아오는 외로움도 보게 한다. 가족들과 떨어져 오랜 시간을 바다 위에서 보내는 시간, 항상 긴장하고 있어야만 하는 전쟁이라는 상황, 자신의 지휘 하나만을 믿고 따르는 부하들, 예기치 못한 모함이 여기저기서 자신을 공격했던 시간은 이순신의 고뇌와 외로움을 쌓아가게 했다고 보인다. 지도자의 드러낼 수 없었던 숨겨진 외로움을 봤다고 해야 할까. 생명의 위태로움이 항상 함께 하는 전쟁의 상황을 잊지 않았고, 슬픔 앞에서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을 그의 일기가 보게 했다. 특히, 그의 어머니와 아들이 죽었을 때의 눈물은 아들이자 아비였던 한 사람의 애달픈 모습을 그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쟁을 이끌어 승리로 마침표를 찍어야만 하는 자신의 상황을 잊지 않아야 하는, 한 개인의 슬픔보다는 나라의 안위를 먼저 염려해야만 하는 임무를 상기해야만 했다. 외로움과 슬픔이 나를 온전히 둘러싸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인간이 가지는 근원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런 자세를 이순신은 일기에 그대로 표현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그가 남긴 <난중일기>를 통해 다시 배우고 확인하는 것이다. 삶의 현실, 외로움과 슬픔의 안위마저 물으며 함께 가야 하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과 마주하는 것. 그건 내가 그에게 느낄 수 있는 인간적인 모습이자 그가 부하들과 가족들에게 보였던 마음이다. 곧,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가 품고 있어야 할 자세가 아닐까.

 

이순신이 자신에게 했던 고백 같은 글, <난중일기>는 전쟁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면서 한 인간의 내면에 대한 기록이기에 더 친근하고 가깝게 다가온다. 그의 인간적인 모습이 읽는 이에게 보여주는 것은, 인간은 고독하고 외로운 존재이고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부딪힐 수 있지만, 그 끝에서 희망이 존재하기를 바라는 간절함에 삶을 이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건 우리 삶의 기록이 만들어낼 수 있는 대단한 일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기가 걸어온 길, 지나온 시간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은 한 인간이 보여주는 내면의 모습이었다. 한 사람을 이해하고 그로 인해 나 자신의 이해와 계속되는 삶의 모습을 보고자 하는 의지가 함께한다. <난중일기>를 통해 내가 본 것은 그렇게 이어지는 인간의 내면이었다.

 

나처럼 <난중일기>에 관해 잘못 알고 있었거나 부담스러움으로 인해 읽기를 주저했던 독자가 있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싶다. <난중일기>는 전쟁 기록서가 아니라 그 전쟁을 경험하는 시간 동안에 기록된 한 개인의 마음이자 삶의 모습이었다고. 지극히 평범하고 인간적인 모습을 담은 이야기였다고 말이다. 그러니 편하게 만나도 좋을 책이라고...

 

 



n******i 2014.05.14. 신고 공감 6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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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하거라. 그게 바로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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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자에 대하여 이 순신  미옥아. 네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상에서 몇천길이나 떨어진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을 보니 너의 절실함이 天地간의 경계를 뚫을 지경인 듯 하구나.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어 오랜만에 붓을 든다. 서로 간절한 마음이 이미 닿았으니 구구절절한 서설은 치우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하겠다. 나는 1545년 서울 건천동에서 가난한 선비의 셋째
"지금, 여기에서 네가 할 수 있는 일만 생각하거라. 그게 바로 전략이다!" 내용보기

1. 저자에 대하여 

이 순신
 

미옥아. 네가 나를 생각하는 마음이 지상에서 몇천길이나 떨어진 여기까지 전해지는 것을 보니 너의 절실함이 天地간의 경계를 뚫을 지경인 듯 하구나. 도저히 모른 척 할 수 없어 오랜만에 붓을 든다. 서로 간절한 마음이 이미 닿았으니 구구절절한 서설은 치우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기로 하겠다.

나는 1545년 서울 건천동에서 가난한 선비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 살았던 16세기는 조선건국의 공신인 훈구척신세력과 고려왕조에 대한 충성을 고집하며 정계를 떠나 지방에서 세력을 키워가던 사림세력이 팽팽한 권력다툼을 하던 시기였지. 물론 거의 반세기가 넘도록 ‘사화’라는 이름으로 기득권세력인 훈구에 번번이 깨지긴 했지만. 우리 할아버지도 4대 사화중의 세 번째인 기묘사화때 누명을 쓰고 돌아가셨다. 조정에서는 이후에도 권력다툼이 계속되었지.

내가 태어난 해인 1545년에는 마지막 사화인 을사사화가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사림세력은 또다시 정계에서 밀려나게 되었다. 사림세력이 다시 등용되게 된 것이 1567년 선조가 즉위하면서부터니까 ‘역적’의 자식이었던 아버지가 관직에 오르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아예 벼슬할 생각을 버리시고 독서에 매진하셨는데, 그래서 참 가난하긴 했지만 어깨너머 ‘선비’로서의 소양을 배울 수 있었으니 나름 좋았던 것 같기도 하구나. 그리고 그 시절 성룡이를 만난 것도 내 인생의 天運이라고 할 수 있겠지? 아버지가 그 때까지 별 이유없이 선비의 마을인 한성을 지키고 있었던 것도 이런 인연을 예견하셨기 때문이었을까? 참 사람의 인연이란 신묘하지 않느냐?
 

우리 집이 아산으로 이사를 한 건 십대중반쯤이다. 도저히 한성에서 살림을 꾸려가기가 어려웠거든. 성룡이와 헤어져야 한다는 것이 슬프긴 했지만 아산으로 이사를 간 것도 다 운명이었지 싶다. 아산의 산과 들을 뛰놀며 전쟁놀이했던 즐거운 경험이 훗날 무인으로서의 삶을 가게 했던 열쇠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좀 현실적으로 보자면 아산에서 늦은 나이인 서른둘에 벼슬을 할 때까지 인지적으로, 경제적으로 또 정서적인 면에서도 든든한 후원자가 되어 주었던 장인을 만날 수 있었으니 이 역시 내가 만난 또 하나의 天運이였지. 이 자리를 빌어 다시한번 장인 방진에게 감사를 전하고 싶구나. 어려운 살림과 집안 내력으로 ‘관직’에 나갈 수 있을까 걱정하며 방황하던 나에게 무예와 병서를 소개하며 武人의 길을 열어준 사람이거든.

하워드 가드너의 ‘십년의 원칙’, 말콤 글레드웰의 ‘1만시간의 법칙’이 밝혀진 지금 와 생각해보면 28살에 말에서 떨어져 과거에 낙방한 것도 오히려 행운이었다. 서른 둘 무과에 급제할 때까지 수련에 전념하며 지냈던 10년이 인간 이순신을 ‘聖雄’으로 만들어 주었다는 것을 깨달았거든. 성룡이가 아무리 나를 잘 봐주었다고 해도 내가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무슨 의미가 있었겠느냐? 그저 사적인 친분으로 조정을 어지럽히는 소인배들의 명단에 이름을 더하기 밖에 더 했겠느냐?

벼슬길에 올라서도 인생이 순탄키만 했던 건 아니다. 알겠지만 마흔일곱에 전라좌도 수군절도가가 될 까지 15년동안 파직과 복직만 몇 번인지. 억울한 백의종군도 이때 이미 경험했기에 정유년의 백의종군시에도 원망과 분함을 이기고 도리를 지킬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내가 너무 융통성이 없고 세상을 모르는 독불장군이라 고생을 사서한다고도 말하는데 나는 아직도 그런 후회는 들지 않는구나. 내가 순간의 영화에 눈이 멀어 권력에 줄을 대고 이해관계를 좇아 패당을 만들었더라면 위기 상황에서 오로지 ‘나라’와 ‘백성’들을 위한 결정을 하기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나도 의리를 아는 사람인데, 비록 나라를 구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해도 어려울 때 나는 도와주었던 사람들의 신변을 고려하지 않고 처신하기는 어려웠을테니까. 내가 눈앞의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불의에 몸을 의탁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내게 주어진 사명을 미리 짐작했기 때문이었던 것 같구나.
 

그래도 어떻게 그렇게도 유혹에 초연할 수 있었냐구? 생각해 봐! 만일 내가 호의호식하면서 명예와 권세를 다 누릴 운명이었다면 왜 그 시기 우리나라에 몰락한 양반의 자식으로 태어났겠느냐? 만일 내가 다른 사람들이 구하는 가치들을 구했더라면 아마 나는 평생 열등감에 시달리며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을 구하느라 무리수를 두다 인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아마 나의 政敵이었던 원균이 그랬던 것처럼. 원균과 나의 차이는 본인이 처한 상황에 대한 본질적인 판단의 차이였다고 생각한다. 아니면 같은 판단을 했더라도 그 판단을 받아들이는 태도의 차이였을지도 모르지.


정유년에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들 면까지 죽었을 때는 정말 나도 세상이 다 싫었다. 더 살아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런 구차한 삶을 계속해야하나..매일 밤 國運을 짊어진 ‘장수’로서의 ‘이순신’과 인간 ‘이순신’이 치열한 사투를 벌였지. 아마 적과의 전쟁보다 내 안에서 치르는 전쟁이 더 참혹하고 더 힘들었을지도 모르겠구나. 그러던 어느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구나.

‘결국 왜적의 침입으로부터 나라를 구하지 못 한다면 그동안 내가 치룬 고통과 인내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냐? 청렴하게 공직을 수행했고 전쟁에서 몇 차례 승리했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이냐? 다행히 전쟁의 원흉인 도요토미도 죽고 왜적들도 전쟁을 더 할 명분이 없다..이 상황에서 최종 마침표를 위한 상징적인 전투가 남아있을 뿐이다. 노량에서만 승리하면 이 고단한 生에서의 사명은 다 마친 셈이다.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노량에서 승리와 함께 죽어준다면 조정의 개들도 더 이상 가족들을 해치지 않을 것이다.
戰功을 그들에게 바치고 가족의 안위를 보장받는다면 장수로서도, 아버지와 남편으로서도 할 일은 다 한 것 아니겠는가? 조금만 더 힘을 내자!’

다행히 내 시나리오대로 일이 되어가더구나. 내가 살아있었다면 필시 내 功을 시기한 어느 누군가의 모함으로 누울 자리 하나 보전하기 힘들었을텐데, 죽은 나에 대한 인심은 후하여 1604년(선조 37) 선무공신 1등, 덕풍부원군에 추봉된 데 이어 좌의정, 1613년(광해군 5) 영의정까지 더해지는 영광을 누리게 되었다. 개인으로서야 가소롭기 그지없으나, 살아서 다하지 못한 문중사람으로서의 사명을 죽어서라도 다 할 수 있으니 마음이 나쁘지만은 않다.

이쯤되면 미옥이 너도 알았을 것이다. 가드너가 말한 ‘파우스트적 거래’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한 사람의 자연인으로서의 내 인생이 어디 그리 부러울 만한 것이겠느냐? 하지만 후회는 없다. 내게 주어진 자원과 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여 歷史의 사명을 다한 스스로가 자랑스러울 뿐이다. 그렇다고 사람은 결국 정당한 평가를 받게 마련이니 인생을 길게 보고 뜻을 굽히지 말라는 훈계를 하고 싶지는 않다. 지금 나에 대한 평가가 높은 것 또한 일시적인 것인지 어찌 안단 말이냐.

미옥아..네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나는 다 안다. 너는 어떤 삶을 ‘성공’이라고 생각하느냐? 네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한 것은 너 하나의 힘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세상은 그대로인데 그 안에서 간간히 맛난 과실을 따먹는 것을 삶의 기쁨이라 믿기엔 넌 너무 많은 것을 보고 들은 것 같구나. 그렇다면 어찌 살아야 한단 말이냐?

오늘 내 삶을 다해 네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하나다. 어차피 너는 태어났다. 너의 전투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이젠 다른 생각하지 말고 전쟁에서 이길 생각만 하는 거다. 전쟁에 이기기 위해서는 우선 전투가 벌어질 戰場의 형세를 철저히 분석하고, 플레이어인 나와 상대가 가진 자원과 결핍에 대한 검토를 면밀히 하라. 이러한 과정에서 '승리'의 모습에 대한 생생한 비전을 얻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 없으리라 믿는다.그리고 나면 이젠 최적의 컨디션을 지키며 목숨을 다해 전쟁에 임하는 것뿐이다. 이 전쟁에서 이긴다고 전세가 바뀌지 않을 것임을 미리 걱정하지 말고, 이긴 들 무슨 의미가 있는지를 미리 허망해하지 마라.

미옥아! 나는 너를 믿는다. 너는 위대한 나 忠武公 이 순신의 후예다.

2. 작가 연습생의 시선


41세의 이순신 전문가, 노승석은 충남 보령에서 출생하여 어려서부터 한학을 배우고 초서를 연구했다고 한다. 노승석 박사와 이순신 장군과의 인연은 <난중일기의 교감학적 검토>로 박사학위를 받은 것에서 시작되었었는데, 그는 “충무공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 인품에 매료된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전쟁 중 초서체로 급하게 썼다는 난중일기 첫 권인 임진일기 영인본을 번역해 내어 최초의 완역본을 출간한 그의 얼굴엔 고생스러웠던 세월만큼이나 보람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이런 그의 고생에 경의를 표하면서도 독자로서 책을 읽으면서 내내 불만을 지울 수가 없었다.

1. 이 책만 갖고는 역사적 사건과 그의 일상, 또는 감정의 유기적인 연관성을 추론하기가 너무 어렵다. “저자가 쓴 원뜻을 알기 위한 거지요. 그게 바로 역사입니다. 역사의 기록엔 한치의 거짓도 들어가선 안되지요.” 라는 노교수의 의도를 이해한다치더라도 적어도 중요한 전투나 개인적인 사건정도는 표시해주어도 좋지 않았을까?

2. 또한 이 책만 읽어서는 이순신의 삶을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다. 물론 자서전도 아니고 위인전도 아니고 50년 넘는 인생중 단 7년에 불과한 시절에 쓴 일기라는 문헌의 성격을 생각하면 무리한 욕심인 것은 인정하지만 그래도 독자는 기대하는 것이다. '난중일기'를 읽고 나면 충무공을 이해하게 되겠지. 임진왜란을 이해하게 되겠지?

3. 앞의 두가지 '오해'는 편집방식에서 비롯된 것일 수 있다. 주석이 미주로 책의 뒤편에 몰려 있어서 참고해서 읽기가 너무 어려웠다. 물론 각주로 처리했더라면 본문이 절반을 차지하는 편집으로 처음 책을 선택하려는 독자들을 상당수 잃어야했겠지만 그래도 이건 좀 너무 했다.

4. 타겟 독자는 일반인이 아닌게 분명하다. 절반 가까이를 차지하는 무의미한 한자들의 나열. 개인적으로 그의 노고에 대한 대가로 35,000원을 아깝다 생각치 않는다. 두권으로 나눠서 편집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두꺼운 볼륨이 가지고 다니면서 읽고 싶은 나의 욕망을 집요하게 방해했다. 살테니까..분리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배려를 해주었음 훨씬 고마웠을 것 같다.

물론 나는 또한 안다. 나는 이런 불만을 노교수에게 할 권리가 없음을.. "충무공의 유년시절이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게 없습니다. 사실 위인전 내용은 흥미를 위해 쓰여졌을 뿐 정확한 사실은 아니지요. 또 이순신 장군의 개인문집이라고 할 수 있는 저술이 없다는 점도 의문입니다. 이를 찾아내는 게 앞으로의 연구과제이지요” 이순신을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노교수의 그에 대한 애정이 앞으로도 계속되어, 또는 다른 이들의 열정을 자극하여 앞으로의 후속연구도 계속되기를 기대해 본다.

YES마니아 : 골드 m*****5 2011.06.21.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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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이순신을 알고 싶다면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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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이순신 관련 도서가 이번에 산 난중일기를 포함하여 4권이나 있다  다 위인전기는 아니고...^^;;  자기 학습서도 있고 위인전기 같은 것도 있고..  암튼 많은 기대를 갖고 도서를 사게 되었다.    책 표지가 닳까봐 비닐로 바로 겉 표지까지 쌌다.^^   도서는 상당히 정성스럽게 양장되어져 있다.   초고본, 전서본, 그리고 새롭게 합본된 일기초(을미일기)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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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에는 이순신 관련 도서가 이번에 산 난중일기를 포함하여 4권이나 있다

 다 위인전기는 아니고...^^;;

 자기 학습서도 있고 위인전기 같은 것도 있고..

 암튼 많은 기대를 갖고 도서를 사게 되었다.

 

 책 표지가 닳까봐 비닐로 바로 겉 표지까지 쌌다.^^

 

도서는 상당히 정성스럽게 양장되어져 있다.

 

초고본, 전서본, 그리고 새롭게 합본된 일기초(을미일기)까지 엮여 있어 읽기에 다소 부담스러울지도 모르나 어떤식으로 엮여 져 있는지, 주석은 어떤 방법으로 참고해야 하는지, 과거 번역되어졌던 부분들과 잘못된 부분등이 어떻게 고쳐 졌는지 등 처음부터 상당히 자세하게 나와 있어 일단은 독자가 보기 쉽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이순신에 대해 많은 것들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참 중요한 정보라 생각된다.

 

암튼 이순신 장군이 전장에서 생활하면서 있었던 일들을 직역해서

써 내려 갔기 때문에 책을 읽으면서 그때 당시의 상황이 어땠을지

또 매일 매일은 아니지만 상세하게 적혀있는 부분들을 보며 이순신의

심경이 어땠을지를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는 장군이라던가 술에 취해 난동을 피웠던

사람들에 대해 일기를 쓴걸 보면서 이순신 장군도 흉을 볼 줄 아는

사람이긴 하구나.. 그런 생각도 했고

 

뭔가 상서로운 꿈을 꾸면 그 꿈에 대해 일기에 적고

꿈풀이를 하며 그날 그날의 일들을 점치는 것을 보며 혼자서 피식 웃기도 했다.

 

전장에 나와 있기 때문에 자주 보지 못하는 아들과 어머니와

그리고 부인을 항상 그리워 하고 걱정하는 것을 보며

인간 이순신에대해서도 느낄 수 있는 부분들이 많았다.

 

내용은 그리 어렵진 않았느나 읽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주석을 하나하나 찾아보며 읽진 않았지만 궁금한 것들은

찾아서 봐야만 했고 여러 인물들이 나오다 보니 

짤막한 일기 내용도 그냥 가볍게 지나치며 볼 수 가 없었다.

 

도서가 워낙 두껍고 들고 다니기엔 무게도 상당하여

문제집처럼 도서 내용과 주석 부분을 따로 나눠서

함께 팔아도 괜찮지 않았을까 생각도 했고

주석을 일일이 찾아보기에 좀 불편하여 책갈피를 1개가 아닌 2개로

늘렸으면 더 좋았을것 같다는 생각도 했다.

 

깔끔한 디자인과 보기편한 편집은 정말 맘에 들었지만

위에 말한 2가지가 좀 아쉬운 부분이었다.

 

전장의 상황을 생생하게 받아들 일 수 있어 좋았지만

더더욱 좋았던건

같은 인간으로서 이순신 장군에 대해 이해하고 좀더 그 분의 상황을

자세하게 알 수 있어 중,고등학생 뿐 아니라 사회생활을 하는 일반인들도

꽤 매력적으로 다가올 수 있는 책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가벼운 맘으로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니

너무 쉽게 생각하면서 읽으라고 권하진 않을것 같다.

y*******2 2010.05.14. 신고 공감 4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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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꼭 읽어봐야 할 서적으로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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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남녀노소누구나 꼭 한번은 읽어봐야 할 서적입니다. 흔히든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서적으로 중국의 허구 소설 삼국지를 말하는데, 삼국지의 경우 허구적인 내용이 많아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지만,   불멸의 이순신의 경우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과 실제의 역사속에서 뛰어난 지략과 놀라운 추진력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영웅의 이야기 라는 점에서 삼국지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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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이순신 남녀노소누구나 꼭 한번은 읽어봐야 할 서적입니다.

흔히든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서적으로 중국의 허구 소설 삼국지를

말하는데, 삼국지의 경우 허구적인 내용이 많아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지만,

 

불멸의 이순신의 경우는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이과 실제의 역사속에서

뛰어난 지략과 놀라운 추진력으로 세계를 놀라게 했던 영웅의 이야기

라는 점에서 삼국지 보다 월등히 앞서는 서적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불멸의 이순신은 최고의 지략과 전술가로서 2010년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직장인들의 자기 계발서로도 아주 좋은 최고으 서적입니다.

 

뿐만 아니라, 자라는 아이들과 청소년에게도 꿈을 심어주고 미럐를

설계하는 지침서로도 아주 탁월한 서적이라서 전국민 모두가 꼭

한번은 읽어야할 필독서 입니다.

 

불멸의 이순신의 격동의 시기 왜구의 침입을 막아난 놀라운 지략가

병법은 삼국지와 손자병법을 능가하다고 자신있게 말할수 있으며

 

인간 이순신으로 고뇌와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성찰을 엿볼수

있는 정말 멋진 서적이다.

 

불멸의 이순신 구독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는 말로 강력 추천하는

서적이다

c****l 2010.05.1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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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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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난중일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있으셨나요?난중일기는 페이지 수만해도 850페이지에 달하며, 그 두께감만으로도 먼저 중압감이 느껴지게 합니다.1592~1598년까지 7년 동안 출전하거나 부득이한 사정을 제외하고는 날짜와 날씨까지 아주 꼼꼼히 기록한 책으로 무관인 그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붓을 들었다는것은 참 쉬운일만은 아니였을것입니다.난중일기는 특별한 기교도 없고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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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난중일기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있으셨나요?


난중일기는 페이지 수만해도 850페이지에 달하며,
그 두께감만으로도 먼저 중압감이 느껴지게 합니다.


1592~1598년까지 7년 동안 출전하거나 부득이한 사정을 제외하고는 날짜와 날씨까지 아주 꼼꼼히 기록한 책으로 무관인 그가 하루도 빠지지 않고 붓을 들었다는것은 참 쉬운일만은 아니였을것입니다.

난중일기는 특별한 기교도 없고
군인이 그날 그날의 기록을 적은것으로
참 재미없다고 느껴질수도 있는 책입니다.


난중일기를 읽으면서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은
1. 인간 이순신의 고뇌어린 생각과 모습을 찾아 읽어보는것
2. 이순신이란 인간의 리더쉽
3. 이순신의 성공요인이 무엇일까?
4. 영웅도 아니고 장군도 아닌 그냥 인간 이순신을 염두에 두고 읽기 시작한다면 분명 재미와 감동을 느끼기 충분한 책이 될것입니다.

YES마니아 : 골드 h**b 2016.05.06.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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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감 완역본 [난중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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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중일기] 어쩌면 흔하디 흔한 충무공의 전쟁 중 일기다. 드라마로 몇 해전에 불멸의 이순신으로 시청자의 뜨거운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아주 특별한다.  그 특별하다는 것은 400년 간 누락된 문장들을 모두 수록한 교감 완역본이다.  이순신 장군의 지극히 개인적이며 가족적인 다른 면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충무공난중일기부서간첩임진장초 (李忠武公亂中日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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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중일기] 어쩌면 흔하디 흔한 충무공의 전쟁 중 일기다. 드라마로 몇 해전에 불멸의 이순신으로 시청자의 뜨거운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 책은 아주 특별한다.
 그 특별하다는 것은 400년 간 누락된 문장들을 모두 수록한 교감 완역본이다.
 이순신 장군의 지극히 개인적이며 가족적인 다른 면을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충무공난중일기부서간첩임진장초 (李忠武公亂中日記附書簡帖壬辰狀草)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다. 지정 명칭은 서간첩 1책, 임진장초 1책, 합 9책이다.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백암리 현충사에 소장되어 있다.
 이 책은 임진왜란(1592∼1598) 때에 이순신(1545∼1598)이 친필로 작성한 일기로 연도별로 7권이다.이순신은 28살되던 해에 무인 선발시험인 훈련원별과에 응시했으나, 불행하게도 달리던 말이 거꾸러지는 바람에 실격하였고, 4년 뒤 무과에 급제하여 권지훈련원봉사로 처음 벼슬을 시작했다.사대부가의 전통인 충효와 문학에 있어서 뛰어났을 뿐 아니라 시를 짓는데도 특출하였다.전라좌도 수군절도사를 지내던 때 곧 왜적의 침입이 있을 것에 대비하여 여수를 중심으로 배를 만들고 군비를 늘리는 등 일본의 침략에 대처하였다.1592년 임진왜란이 터지자 옥포대첩, 거북선이 최초로 모습을 드러낸 노량진해전, 당항포해전, 한산대첩 등 곳곳에서 전승을 거두었고, 정유재란 때에는 명량대첩 등에서 승리를 거두었다.그가 죽은 후 1604년 선무공신 1등에 올랐고, 영의정에 추증되었으며, 충무(忠武)라는 시호가 내려졌다.지극한 충성심과 숭고한 인격, 위대한 통솔력으로 위기에 처한 나라를 구하였을 뿐만 아니라 민족사에 독보적으로 길이 남을 인물이다.
그러나 전서본은 의도적인 누락이나 오독, 미해독된 글씨가 적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인 1935년 조선총독부 산하 조선사편수회에서 초고본을 다시 탈초해 간행한 ‘난중일기초’는 현재까지 가장 대표적인 전범으로 간주돼 왔지만 이 책에도 미해독된 글자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었다.
지난 2004년 문화재청의 문화재 디지털 정보화 사업에 참여하면서 초고본의 탈초를 담당하게 된 노 교수는 당시 글자 형태를 이룬 글자에 대해서는 가능한 한 빠짐없이 판독하는 한편, 기존 판본의 인명과 지명 등의 오류 100여 곳을 발견해 바로잡는 등 완역을 시도했다. 이번 교감·완역본은 노 교수가 2005년 출간했던 ‘난중일기 완역본’에 2008년 새로 발굴한 일기 32일치를 추가하고 자세한 주석과 함께 모든 판본을 일일이 대조해 교감한 원문을 수록한 것이다.
 아직도 미해군에서조차 해상 전투의 전쟁기록서에 나와 있으며, 생도전술교육시전술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고 한다. 그만큼 해상전투의 현대 시대에도 그 당시 해상전술이 아주 뛰어나다고 할 수 있겠다.
 저자인 이순신 장군의 난중일기의 내용 중 가장 오랜 기억에 남는 것은 어릴 적 숙제로 외우던 " 긴 칼차고 ......, " 생각이 난다. 항상 나라와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정신은 아마도 일제시대에도 6.25 그리고 지금의 5.18 광주 항쟁까지 이어져 오고 있는 것 같다.
 또한, 옮긴이 노교수의 문화재청 사업에 참여 했지만, 그 오랜 세월 그 누구도 관심조차 없는 사소한? 것까지 일일이 대조하고 판독하여 오류와 오역을 빠짐없이 대조하여 판독했으니, 노 교수님에 대한 고마움을 표하고 싶다.
 기존 판본을 가지고 처리해도 무방?했을 것을 노 교수님은 많은 시간과 힘들 작업을 교수님 노고에 이 글을 통해 다시 한번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노 교수님에게 배운 제자들은 정말 행복한 학생들일 겁니다.
 더불어 민음사에게도 감사드립니다. 가장 완벽에 가까운 완역본을 출간하여 독자들에게 더욱 고품질의 내용을 전해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합니다.
k*******0 2010.05.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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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소장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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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장군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장군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군사독재시절 성웅화 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만연히 과대평가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이순신 장군의 성웅화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없도록 했으며 단순히 위대한 장군으로만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순신 장군에 관련된 제대로 된 책이나 평전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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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장군

 

많은 사람들이 훌륭한 장군이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군사독재시절 성웅화 작업을 거쳤기 때문에 만연히 과대평가가 됐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이런 이순신 장군의 성웅화는 이순신 장군에 대한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없도록 했으며 단순히 위대한 장군으로만 남아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순신 장군에 관련된 제대로 된 책이나 평전 등을 읽어 보지도 않고 어렸을 때 읽은 위인전을 바탕으로 또는 TV드라마를 보고 이순신 장군이나 임진왜란을 평가한다는 것은 참으로 한심스럽다 할 수 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어떤 역활을 했는지는 모르고 그저 거북선을 만들어서 왜적을 무찌른 것으로만 알고 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그렇게 가볍게 평가되어서는 안될 정도의 위인이며 지금까지 우리나라 아니 전세계적으로 가장 뛰어난 전쟁영웅이지 않은가 싶다.

성리학을 기반으로하는 완벽한 인품과 군인으로써의 솔선수범과 연구하는 자세 그리고 전투시에는 치밀한 정찰과 빈틈없는 작전...그리고 난중일기를 통한 기록...

정말로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무찌른 일본의 도고 헤이하치로가 무한한 존경을 표시했듯이 이순신장군은 최고의 전쟁영웅인 것이다.

 

뭐하나 제대로 갖춰진 것없는 임진왜란 때 그 정도의 전과를 올릴 수 있었던 것은 이순신 장군이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그런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냈던 이순신장군도 역시 사람이었기 때문에 무덤덤하게 써내려간 난중일기가 오히려 더 뜨겁게 느껴진다. 인간으로써의 이순신장군을 만나고 싶다면 꼭 한번 난중일기를 읽어 보아야 한다. 지금까지 나온 난중일기는 단순히 어린이나 청소년들을 위한 책이었지만 그래서 내용이 많이 부실했지만 교감완역 난중일기는 완벽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완역을 해두었다. 책의 두께 역시 만만치 않고 또 내용도 단순히 일기인지라 소설처럼 쉽게 읽혀지지는 않지만 요즘같이 어려운 시기에 읽어보면 불가능한 부분을 가능으로 만들어갔던 이순신장군에게서 많은 부분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많은 난중일기를 읽어 봤지만 이 교감완역 난중일기는 "교감본 난중일기"가 있는 것으로도 충분히 소장가치가 있다. 치밀한 주석은 많은 부분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이런 난중일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옮긴이가 많은 연구를 했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책 뒷부분의 난중일기 교감기는 옮긴이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글자 한글자 한글자를 비교해놓았다.

 

작년에 조일전쟁이라는 괴서가 나왔다. 자칭 재야사학자라고 하는 사람이 단순히 시중에 나와있는 역사 교양서를 읽고 책을 내놓고 마치 엄청난 연구를 한 것처럼 기존의 역사학자들이 잘못된 것처럼 책을 썼는데 그런 조잡한 책과는 내공에서 차이가 난다.

 

군인이거나 또는 임진왜란 및 이순신장군에 대해서 관심이 있다면 꼭 소장해야할 책이다. 더군다나 얼마전에 발견된 초고 32일치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 가치가 더 높아진다.

 

우리집 책장에 또하나의 보물이 생겼다.

u****3 2010.05.1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