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믿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
사람들은 누구나 저마다의 고민들을 안고 살아간다. 그 고민은 보는 것과 생각하는 것에 따라 큰 것일 수도 작은 것일 수도 있겠지만, 정작 당사자인 자기 스스로에게는 그 누구보다 크고 심각하게만 느껴질 것이다. 누가 봐도 비웃을만한 그런 사소한 고민이라도 말이다…. 하물며 ‘인간’이라는 존재, ‘나’라는 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은 말해서 뭐하겠는가! 『엄마의 다락방』은 ‘내가 믿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가?’등의 삶을 살면서 끊임없이 하게 되고, 해야만 하는 고민들을 던져주고, 찾아가는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ㅡ.
갑작스런 불행으로 삶이 변화의 기로에 서 있을 때
『엄마의 다락방』은 미국으로 여행을 떠났던 손녀 ‘마르타’가 다시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 ‘올가’와 함께 지내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 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할머니의 몸이 점점 약해지기 시작하고, 결국 할머니는 세상을 떠난다. 홀로 남겨진 마르타는 다락방으로 발걸음이 향하게 되고, 그 후 다락방에서 발견한 엄마의 편지와 일기장을 통해서 자신의 뿌리를 찾아 나서게 된다 ㅡ.
가끔씩 이런 상상을 해요.
고등학생 때 수학 문제를 풀면서, 문제에 대한 고민은 하지도 않은 채, 정답과 풀이만을 찾아보고 마치 모든 것을 이해한 듯 한 표정을 짓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물론 또 다른 문제는 풀려고 해도 풀 수가 없다.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대로 따라가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살아가면서 조금이라도 힘에 부친다 싶으면 누군가 정답을 내밀어 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설사 누군가 정답은 아니더라도 그에 가장 가까운 답을 내밀어 줬다면, 나는 아마 덥석 잡았을 것이다. 수학 문제를 풀듯이… 하지만 그것이 전부다. 난, 나의 삶이 아닌 다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되는 것이다. 이런 능동적인 사고의 중요성과 필요성을 생각해본다면, ‘마르타’가 펼치는 자아 찾기 여행은 마르타에게 뿐만 아니라, 그녀를 지켜보는, 그리고 함께하는 모든 이들에게 있어서 소중하게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이런 소중한 생각들을 수산나 타마로만의 매력적인 문체로 풀어내니 더 없이 멋진 작품으로 남겨지는 것은 또 아닌지……. |
|
<마음 가는 대로>의 저자인 수산나 타마로작가의 12년만의 최신작이라고 한다. 나에겐 생소하지만 무척이나 유명한 <마음 가는 대로>의 속편이라고 한다. 전작을 읽어보진 않았지만, 속편이라 하니 찾아서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야 퍼즐이 완성되듯이 이야기 구성이 완성될 것 같다. 물론 이 한권만 읽어도 무방하지만 말이다. 엄마, 아빠의 기억이 없는 한 소녀가 있다. 할머니와 둘이서 살지만 할머니와의 사이는 별로 좋지 않다. 어디서부터 잘못 됐는지, 뭐가 잘못 됐는지 할머니가 죽을때까지도 둘 사이는 나아지지 않는다. 그래서 소녀가 알고 싶어하는 부모에 대한 얘기는 끝내 나누지 못한다. 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보내드리고 유품을 정리하던 어느날 우연히 다락방에서 엄마의 일기장을 발견하게 된다. 일기장을 통해 엄마를 알게 되고, 생각을 공유하게 되고 그녀를 세상에 나오게 한 아빠의 존재를 알게된다. 엄마는 네살때 사고로 잃었지만, 아빠는 강의를 하고 책도 쓰고 그 분야에선 나름 알아주는 대학교수로 살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원하지 않는 출생이라는 것과 엄마와 소녀는 아빠로 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걸 알게된다. 아빠에 대한 미움과 엄마에 대한 동정심에 소녀는 많이 아파한다. 그러다 유일하게 남은 친척으로 추정되는 친척아저씨를 찾아 무작정 여행을 떠난다. 오래전 할머니께 보낸 편지 한통을 가지고... 여전히 살아있는지, 살아서 그 주소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소녀는 소녀의 뿌리를 찾아 무작정 집을 나선다. 이 책은 소녀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 떠나면서 조금씩 그녀의 아픔과 상처를 치유해가는 성장소설이다. 그녀의 분노가, 상처가 100% 이해되지는 않는다. 정체성의 부재, 사랑의 결핍... 하지만 그녀의 방황을 알 것도 같다. 평범한 소녀들의 삶을 살아보지 못한 소녀가 안쓰럽고 안아주고 싶어진다. 무책임한 어른들로 인해 희생당해야 하는 억울한 작은 영혼을 어떻게 달래줘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왜 세상에 태어났는가? 무엇을 위해 사는가? 진리라는 것은 보는이의 관점에 따라 다양하게 존재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내가 진리라고 믿는것과 타인이 진리라고 믿는것이 다를 수도 있다는 것. 소녀의 아빠가 말하는 진리와 소녀의 엄마가 생각하는 진리 모두 다를 수 있는것. 그 다름으로 인해 이런 안타까운 일들이 벌어진 것일까? |
|
딸아이를 키우고 있고 엄마여서 그랬는지 할머니 손에 큰 주인공 마르타의 삶을 보면서 화가 났다. 어찌보면 마르타가 나보다 더 성숙한 어른이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시련이 사람을 성숙하게도 해 주니까 그저 낙담과 원망의 이야기로 복수를 한다던지 하는 너무나 뻔한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글을 읽었는데 어느 덧 내가 주인공이 되어 버린 듯 마음이 너무 아팠다. 할머니와 좀 잘 지냈으면 좋았을텐데 그리고 엄마가 오래 사셨다면 아버지에 대해서 이야기라고 해 주고 가셨다면 좋았을텐데 어쩌면 한마디 해 주지 않으셨을까 할머니는 할머니대로 기대를 가지고 키운 딸이 미혼모가 되어 돌아왔을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손녀에게 원망을 쏟아 붙지는 않으신듯 하지만 아이는 항상 무언가 부족한듯 살아온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이 좋아하는 나무를 잘라냈을때의 마르타의 행동을 보면서 할머니가 조금만 다독여 주지 하는 그리고 미국으로 여행가지 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대단히 자존심이 강한 분이라 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당신이 아프시면서도 그것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 모습도 그랬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유품정리를 하면서 우연히 알게된 다락방에서 그동안 한번도 보여 주지 않던 엄마의 사진,편지,일기등이 고스란히 있는 것을 보았을때 마르타는 할머니의 마음을 좀 이해 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을 좀 해보게 된다. 지나가 편지와 일기를 통해 아버지를 알게 되고 아버지를 찾아 만나 지만 편지속의 아버지와 현실속의 아버지는 너무나 똑같다. 아버지 만나 원망이라도 하면 좋으련만 그저 그분의 이야기만 듣기를 몇주째하던 마르타는 이스라엘로 가서 작은 할아버지를 만나 할머니의 삶에 대해 좀 더 이해하기 시작하고 그분들의 삶도 보게 된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아버지의 편지를 보게 된다. 편지 속에는 그 동안 말로 하지 못했던 것을 적어 놓았다. 한번이라 안아 주었더라면 아주 좋았을 것 같아,그런다고 아무것도 보상할 순 없겠지만 너를 마지막으로 단 한번만 길게 안고 싶구나. 한번도 안아준 것이 없어.네가 막 태어났을때.네가 어렸을 때, 네가 한참 자라고 있을 때,그때 해 주지 못한 포옹을 모두 담아 마지막으로 한 번 널 안아 주고 싶구나. 그리고 내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닐 때 네가 필요로 할지도 모를 포옹까지 거기에 담고 싶구나. 너를 세상에 태어나게 한 어리석고 냉소적이었던 한 인간을 용서해라. 아빠가라고 적혀 있는 편지 대목을 읽을 때에는 진작에 그랬으면 지금 쓸쓸히 혼자 죽음을 맞이 하지 않아도 되었을텐데 그래도 마지막 편지의 글귀는 마음 편안하게 해 준다 아마도 마르타도 나와 비슷하지 않았 을까 아빠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보였겠지 다시금 새 삶을 찾은 마르타 에게 축복이 함께 하기 기도해 본다.
|
|
마음 가는 대로의 두번째의 이야기.
하지만, 나는 마음 가는 대로를 읽지 않았다. 결국 첫번째 이야기는 읽지 않고 두번째 이야기를 읽은 셈이다. 그래서 처음 읽을때 혹시나 첫번째 이야기의 뒷이야기라는 소리가 있어서 첫번째 이야기를 전혀 모르는 나로써는 조금 걱정도 되었다. 무작정 두번째 이야기를 읽고 첫번째 이야기를 읽어야 되나 라는 생각도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 읽을때 글머리를 먼저 읽게 되는데 친절하게도 첫번째 이야기를 읽지 않은 사람들도 편하게 읽을 수 있도록 두번째 이야기를 쓰셨다는 말을 듣고 한결 안심하고 책을 읽을 수 있었다.
그리고, 두번째 이야기를 다 읽은 지금. 나는 첫번째 이야기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사실 두번째 이야기는 예정된게 아니라 너무나 많은 독자분들이 사랑해서 나왔다고 들었다. 즉, 첫번째 이야기만 쓰시려고 했다는 이야기. 두번째 이야기보다 좀더 감동적이고 좀더 마음에 와닿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이다. 두번째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 이야기가 이런 이야기라면 첫번째 이야기도 당연히 읽어줘야지! 라는 생각이 왔기 때문일까..
나의 부모님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이러한 의문을 가지고 살아온 마르타. 이 소녀는 어머니는 일찍이 돌아가시고, 아버지는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자신을 버리고 그냥 가버렸다. 그리고 그나마 함께 있던 할머니와는 틀어진채 돌아가셨다. 어렸을때, 좋아하던 나무를 잘아버리셨던 할머니와 그렇게 틀어지고나서 이 틀어짐이 풀어지지 않은채 할머니가 돌아가시게 되어버린 것이다.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꼬여가다가 다락방에서 어머니의 일기와 쓰셨던 그리고, 쓰여져있던 편지를 발견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대한 생각을 바꾸게 되고, 그와 동시에 아버지를 만나러 떠나게 된다.
나 자신으로부터, 책임으로부터 도망치는 것, 내가 상처받기 전에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것, 이것 말고 내가 한 평생 한 일이 뭐가 있을까? p.236
자신을 전혀 딸이라고 생각하지도 않는 아버지 였지만, 역시 마지막은... 아버지는 역시 아버지. 라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하여도 어찌 자신의 자식을 모른척하겠는가..
열대지방에서는 꽃이 항상 피어 있으니까 질려서 꽃을 보지 않게 되잖아. 하지만 사막에선 어느 한순간 피어나는 꽃들이 큰 선물처럼 느껴져. 그것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 그 안에 얼마나 많은 빛들이 감추어져 있었나를 새삼 깨닫게 되지. p. 222
사람들은 살아생전에는, 혹은 언제나 함께 있을때에는 그분들의 소중함을 알지를 못한다. 하지만, 막상 그 사람들이 사라질때 그 분들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힘들게 세상을 살아온 어머니. 그 오래된 일기장안에 엄마의 일생이 담겨 있었고, 그걸본 마르타가 어떠한 생각을 하였을지.. 조금이나마 알수 있을 것같다. 그리고 엄마의 일생이 이 소녀에게 꼭, 필요한 한켠의 일기장처럼 남아있었으면 한다. 엄마는 과연 소녀일때 어떻게 살았는지. 지금은 어떠한지. 모두 어렸을 적이 있기 마련이고, 지금은 그것을 기억하기도 하지만, 기억을 못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 느낌만큼은 모두 똑같이 가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커서 내가 우러러 보고있는 엄마라 하더라도.. |
|
어릴적 다락방이 있는 집이 참 부러웠습니다. 우리 집은 그냥 네모난 방안에 옹기종기 형제들이 모여 앉아서 있었기에 다락방이 하나정도 있었으면 나만의 비밀스런 공간으로 사용도 하고 여러가지 술레잡이 놀이를 할때도 꼭꼭 숨을수 있을것 같기도 하고 집안에 이리저리 굴러다니는 잡동사니들을 한꺼번에 정리도 할수 있을것 같아서 아주 집안이 깨끗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락방이 있는 집을 참 좋아했었고 또 부러워 하기도 했었습니다. 작은 방안에 가파른 난간처럼 세워져 있는 계단으로 올라가면 어두 컴컴하지만 그래도 어쩌면 비좁고 작은 공간이기에 더 운치있는 그런 다락방은 학창시절에 나의 꿈이기도 했었으니깐요. 밀리언 하우스에 엄마의 다락방에서도 다락방에서 엄마의 이야기가 하나씩 베일을 벗듯이 비밀을 풀어주고 있는 책입니다.할머니와 단둘이 살고있는 주인공 소녀는 아버지의 기억은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엄마도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지요 그래서 홀로 아니 할머니와 단둘이서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이 소녀에게 보호자와 마찬가지인 할머니와 소녀와의 심리적 갈등이 그대로 읽는 독자에게 전달이 되는 그런 책입니다. 흔히 사춘기 소녀들이 반항기가 시작이 되면 부모에게 함부로 대하곤 하지요 주인공 역시 할머니에게 이런 저런 불만들을 몸으로 행동으로 말로 표출하고 있었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런 할머니도 얼마 지나지 않아 하늘나라로 가고 이젠 오로지 홀로 세상을 헤쳐 나가야 하는 불쌍한 주인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진정시켰습니다. 너무 큰 충격이나 아픔을 당하면 눈물도 나지 않고 오히려 차분해 진다고들 하지요 우리 주인공은 우연히 다락방에서 엄마의 오래된 물건들을 찾아내게 되고 그 곳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편지를 통해 알게 되면서 아버지란 사람에 대한 이야기들 접하게 됩니다. 그랬었구나 그래서 엄마도 참 힘들게 사셨을거라 짐작하면서 아버지를 증오하게 됩니다. 왜 엄마와 자신을 버려야 했는지 물어보고 싶고 따지고 싶었을것입니다. 결국 아버지를 찾아나서게 된 딸... 이 책은 사람의 심리를 너무나 잘 묘사해 준 책인것 같습니다. 주인공의 마음과 생각 그리고 행동 하나까지 모두가 책을 읽는 도중에 나 자신이 되어버리는것 같습니다. 이루어 질수 없었던 아픈 사랑의 이야기와 한 가족이면서도 가족이라고 내세우지 못하는 아픈 현실앞에서 아버지와 딸의 심리도 또 이어집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어떤 말을 해야할지 몰라 망설이지만 결국 아버지와 딸을 그렇게 한걸음씩 물러나게 됩니다. 행복한 가정에서 자란다는 것은 일생의 최고의 선물이라고 봅니다 가정의 달에 이 책을 읽으면서 지금 내가 존재하고 있는 이 가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되고 또 이런 행복한 가정을 유지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겠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우리가 한순간에 잘못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는 것은 돌이킬수 없는 죄인것 같습니다. 그래서 정말 지금의 우리 가정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또 오래오래 행복한 가정을 꾸려나가고 싶다는 간절함도 생깁니다. 엄마의 다락방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정리해 보게 되었습니다. |
|
짧은 금발에 똘망똘망한 눈빛이 개구쟁이 사내 아이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이탈리아의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 수산나 타마로. 그녀가 마음 가는 대로의 두 번째 이야기 엄마의 다락방으로 우리 곁에 다시 찾아왔다. 내가 그녀를 처음 알게 되었던 것은 몇 년 전 공지영 작가의 책을 통해서였다.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에서 공지영 작가는 딸 위녕에게 수산나 타마로의 책을 권하고 있다. 나 역시 좋아하는 작가의 추천작이라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봤던 책이기도 하다. 전작 마음 가는 대로에서 그녀는 죽음을 앞둔 여든 살의 할머니가 손녀에게 보내는 편지글을 통해 세대를 뛰어넘어 상처입은 여성의 삶에 대해, 사랑과 운명에 대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슴 따뜻한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이번 엄마의 다락방은 마음 가는 대로의 속편으로 출간된 책이긴 하지만 전작을 읽지 않고 바로 읽어도 내용상 흐름이 끊길 염려가 없기 때문에 무관하다고 보여진다.
엄마의 다락방은 할머니 올가에 대한 반발심에 미국으로 떠났던 손녀 마르타가 다시 할머니 집으로 돌아오면서부터 시작된다. 마르타의 어린 시절, 엄마의 빈자리를 채워주었던 할머니와 마르타는 누구보다도 친밀하고 각별한 사이였지만 할머니가 호두나무를 베어버렸던 그 날부터 두 사람의 갈등은 시작되었고, 서로에 대한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뿌리째 뽑히고 말았던 호두나무는 마르타의 삶에 있어 가장 큰 상처가 되었고 할머니로부터 마음을 닫아버린 마르타 역시 할머니에게 커다란 아픔이 되고 말았던 것이다. 그러다 갈등이 채 풀리기도 전에 느닷없이 할머니에게 찾아 온 치매와 죽음으로 인해 마르타는 깨닫게 된다. 자신의 인생에 있어 가장 소중했던 사람은 할머니였다는 사실을...
할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이 가득한 집에 이제 마르타는 혼자가 되어 남았다. 세상에 홀로 남겨진 마르타에게 삶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텅 비어버린 집이 얼마나 삭막하고 외로웠을지 생각하면 그녀에게는 또 다른 비상구가 반드시 필요했다. 모든 것이 죽어버린 듯한, 살아있음을 실감하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버텨가던 어느 날 마르타는 우연히 다락방에서 부모님의 편지와 몇 장의 사진, 일기를 찾아낸다. 할머니로부터 전혀 들을 수 없었던 부모에 대한 막연한 느낌, 이제껏 알지 못했던 부모의 존재가 점차 현실로 다가오면서 그녀는 세상에 혼자 버려진 존재가 아님을 깨닫게 되고 어딘가에 살아있을 아버지에 대해 궁금해지기 시작하는데... 이상과 현실의 갈등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엄마의 자살과 이기적이고 무책임하게 자신을 버렸던 아버지의 등장은 그녀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로 다가오게 된 것이다. 엄마의 다락방은 혼란과 절망속에서도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주인공 마르타의 씩씩한 자아찾기를 통해 각박하기만 한 현대 사회속에서의 존재에 대한 의미를 다시금 되돌아 볼 수 있게 한다. 마르타를 통해 던져졌던 삶에 대한 수많은 질문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한 번씩은 거쳐왔을법한 의미있는 질문들이었고 누구나 알아야 할 진실에 대한 것들이기도 했다. 이제껏 읽어왔던 여느 작가들의 글과는 다른 느낌의 수산나 타마로의 글은 왜 그녀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었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말끔히 해결해 줄 것이다. 진실을 찾아가는 기나긴 여정을 끝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마르타에게 애정어린 축하를 보내고 싶다. 할머니로부터 남겨진 마지막 편지는 그녀에게 또다시 세상을 향해 거침없이 내달릴 수 있는 용기를 선물해 줄 것이다.
|
|
엄마의 다락방 - 엄마의 통해 알아가는 과거와 현재의 나 -
('마음 가는 대로' 두 번째 이야기)
우리가 언제 주의를 집중해야 하는지 왜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걸까요?
.
.
왜 우리는 어깨 위에 이렇게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가야 하는 걸까요?
.
.
왜 우리는 나면서부터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어리석음 속에 갇혀 사는 걸까요?
읽는 동안 자꾸 내 사춘기의 기억과 그때의 마음상태가 생각나는 시간이었다. 주인공 '마르타'의 반항과 갈등은 그대로 예전의 내 모습처럼 다가왔다. 나 역시 한참 예민했던 시절에 이런 저런 책들을 접하면서 아직 성숙하지 못한 자아로 인해 많은 방황의 시간을 가졌었다. 그 때의 유일한 벗은 책과 일기장이었다. 모든 것에 반항하는 마음이면서 내성적인 성격으로 겉으로 드러내지는 못하고 그런 저런 것들을 일기장에 풀곤 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나 들춰보니 그 시기의 방황은 그저 쓸데없는 시간이 아니었고, 그런 자기 자신과의 깊은 고뇌들을 통해 내가 더 성숙해갔다는 것이 어른이 된 이후에 아름답고 소중하게 다가왔다.
할머니와의 갈등, 그리고 할머니와 살면서 듣지 못했던 엄마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의 과거를 할머니의 죽음이후 처음으로 들어간 엄마의 다락방에서 한 가지씩 발견해간다. 엄마의 일기장과 사진, 그리고 작은 실마리들이 '마르타'의 과거로의 여행으로 이끌고 결국은 아빠와 다른 친척들을 찾아가면서 스스로 삶에 대해서, 자신에 대해서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엄마의 기억조차 없었지만 엄마의 일기장을 통해 엄마가 자신을 사랑했음을 알게 되고, 할머니 역시 엄마를 사랑했고 자신 역시도 너무나 사랑했었다는 것을 알아간다.
엄마의 다락방에서 발견한 아빠의 편지는 엄마뿐 아니라 자신까지 인정하지 않는다. 임신사실을 듣고 엄마가 아빠로부터 받았던 편지는 아무 책임감도 없이, 그저 임신한 엄마만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마르타'는 아빠를 찾아 나서고 아빠의 삶의 방식을 알아가면서, 한 번도 자신을 찾지 않았고, 자신의 존재조차 인정하지 않고 그저 어디든 구속받거나 함께가 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아빠를 본다. 대책없이 순진하기만 했던 엄마가 더 안쓰럽고, 엄마의 운명을 생각하며 아빠를 증오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아빠역시 참 외롭고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빠가 두려워한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시간은 다른 방법으로 '마르타'가 성장해 가는 시간이다.
갑자기 나타나서 내 삶을 파괴해 버린 작은 시한폭탄 같은 너를 한 번이라도 안아 주었더라면 아주 좋았을 것이다.
-아빠가-
딸의 임신을 인정하지 않았고, 그 딸이 자신을 찾아 왔을 때도 한 번 안아주지 못하고 자신 속에 얘기를 하지 못했던 아빠는 죽음과 함께 마지막에 딸아이에게 긴 편지를 남긴다.
[엄마의 다락방]을 읽고 나니 전작인 [마음 가는 대로]의 내용이 궁금해졌다.
'마음 가는 대로'를 검색해보니 전 세계 2천만 독자가 선택한 책, '공지영' 작가가 추천한 책, 이탈리아 및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품......등 전작의 이력은 아주 화려했다. 내 딸아이가 딱 사춘기여서 이 책을 권하기 전에 전작부터 구해서 권하고 싶어지고, 나도 역시 '엄마의 다락방' 이전의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이다. 우리는 누구나 아픔을 통해 더 성숙해지고 시간이 지나면 그 아픔의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 시간이었는지 알아가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
|
어린시절 나만의 공간였던 작으마한 다락방이 생각난다.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면 쬐끄만, 앉은자리 높이에 딱 맞아 일어서면 여지 없이 머리를 쿵~하니 박고 마는, 빼곡히 들어찬 짐들 속에서 나만이 누릴 수 있는 공간은 더없이 적었기에 더 절실했던 내 다락방이 떠올려진다. 그 속에서 방황기 많은 사춘기를 보냈다. 탐닉했던 수많은 책들과 사색에 적어 끄적였던 숱한 노트들... 나만의 자리에 숨겨둔 일기장과 횡성수설 풀어놓은 푸념 섞인 글들이 빼곡했던 나의 이야기로 가득찼던 그런 곳였다. 그렇게 절대적인 나만의 공간였기에 엄마의 다락방이란 제목 자체에서 나는 향수에 빠졌다. 그리움과 추억에 잠겼다. 다락방에서 찾아낸 엄마의 일기장 속엔 어떤 글들이 있을까, 그 속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느낄 수 있었을까? 그런 의문들을 품고 책장을 넘기게 됐다. 마르타가 들려주는 구어체적인 느낌은 꽤나 낯설었다. 자신의 이야기를 건조한 음성으로 쉼없이 얘기한다. 때로는 거친 후폭풍이 몰려와 덮치듯, 때론 방관자적인 느낌을 갖고, 때론 무심한 듯, 때론 회의적인 느낌은 안고.
다른 이들의 말을 어찌 그리도 장황하게 옮겨 놓았는지... 자신의 인생에 대해 할 말들이 참 많았던 그네들였던 듯 하다.
그리고 자신의 존재감을 찾지 못해서였을까? 아주 많은 질문을 잦은 감정의 잔해 속에서 쉼없이 끄집어 내고 있었다. 연관된 이들의 삶과 생각속에서 내 뿌리를 쫓아 둘러본 여행지에서 그 답을 찾으려 부단히 애쓰는 모습이 자신의 삶에 대해 이토록 처절하게도 진실성을 띠며 적극적으로 노력할 수 있을까? 그런 의문이 들었다. 나라면? 그냥 삶에 순응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찾으려 애쓰지도 않았을 것 같다. 맘속 깊은 곳에 원망과 복수의 응어리를 진채 그렇게 현실과 타협하듯 살았을 것 같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마르타는 꽤 적극적이며 자기 삶에 대한 애착이 남다른 듯 하다. 삶의 연민과 애착을 가졌던 호두나무가 뿌리채 뽑혀버린 날, 애지중지하던 보물을 강탈 당한 듯 허탈감과 배신감에 마르타는 치를 떤다. 그것은 곧 할머니와의 관계 틀어짐을 예고하는듯 했다. 주변의 모든 나무 뿌리를 에워싸며 살고 있었기에, 너무도 깊숙히 한곳을 점령하듯 서 있던 나무였기에, 그 뿌리가 억지로 뽑혀 나갔을적엔 그 집에 사는 이들의 뿌리도 흔들리며 뽑힐 것은 당연스런 귀결로 보였다. 방황하는 맘으로 미국에 갔다가 다시 할머니 올가를 찾아왔을적에도 그 마음은 누그러지지 않았다. 다만 어쩔 수 없었던 건 할머니의 치매로 그 싸움을 계속할 수 없었던 상황에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홀로 남겨진 적막감에 둘러싸여 있다가 먼지 수북히 쌓인 다락방엘 가본다. 거기서 발견한 어머니의 유품... 그토록 궁금해 했지만 어느 누구도 말해 주지 않았던 근원적인 질문. 내 부모는 누구인가, 어떤 사람들인가, 왜 나를 낳았나.... 마르타는 엄마의 일기를 통해 자신이 반쪽자리 사랑으로 태어났슴을 알게 된다. 교수였던 아버진 어느 한곳에 정착하길, 사랑으로 관계 맺음이 지난친 감상적인 귀결이라며 모든 지적인 언어를 동원해 냉소적인 반응으로 외면한다. 아이를 낳든 말든 자기와는 상관없은 일이니 자기에게 어떤 연결고리도 내밀지 말라며. 술과 마약과 담배연기로 자욱한 여러 무리들 속에서 마르타는 자란다. 그리고 어머니가 사고로 죽자 할머니 손에 맡겨진 거였다.
아버지를 찾아 그와 대화하면서, 할머니의 가족들을 찾아 그들의 삶속에 녹아든 사연과 선조들이 살았던 곳을 둘러보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으려 노력했던 마르타는 차츰 수없이 되뇌였던 질문들에 스스로의 답을 구해가는 듯 보였다. 강렬한 어조로 늘어놓던 삶의 지표들은 아버지 자신에겐 두려움과 공포를 벗어나기 위한 방패막에 불과한 듯 보인다. 그가 부랑자마냥 길거리에서 쓸쓸히 삶을 마감하며 마르타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는 자신의 삶을 객관적이고도 냉철히 돌아보며 남긴 반성문 마냥 여겨졌다.
애증의 할머니를 묻고, 가엾은 어머니를 묻고, 씁슬히 아버지를 묻으면서 자신의 뿌리와 현재의 내 모습과 삶의 목표를 이제사 가다듬을 수 있었던 듯 하다. 자신의 과거를 선조들의 삶의 자취를 차근히 훑으며 나라는 존재에 대한 현실적 무게감을 비로소 받아들인 듯 하다.
「거름은 적당한 비율로 적당한 때에 주는게 중요해. 때로는 아예 안주는게 더 좋을때도 있지. 적당히 부족한 상태는 나무한테 아주 좋아. 물론 아이들에게도 좋지. 무언가를 가지고 싶은 욕망을 느끼기 위해서는 먼저 그 욕망을 포기하는게 필요하거든. ........ 식물에게서 빛을 빼앗으면 그 식물은 빛이 들어오는 조그만 틈이라도 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고 그 목적이 달성되었을때 더욱 강해지지. 역경과 마주쳐서 그것을 이겨 낸 것이니까.」
조나단 삼촌이 나무를 키우면서 얻어낸 삶의 지혜는 내게도 많은 느낌을 자아내게 했다. 같은 듯 보이지만 조금씩 서로 다른 차이를 안고 살아가는 나무.... 숱한 사람들 속의 삶도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사연을 안고 서로 다른 목적을 향해 돌진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조금씩 차이를 둔 삶속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다만 모를뿐....
엄마의 다락방에서 찾아낸 건 근원적인 질문과 그에 대한 실마리였다. 그 흔적들을 쫓아 자신의 뿌리내림을, 자신의 존재감을, 살아야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이다. 표류하기만 하던 부표에 드디어 낚아올린 주인이 생긴거다. 자신에 대해 수없이 물음표를 달며 흔적들을 쫓아 답을 구하려 애쓰던 마르타의 절실함이 나의 마음을 조금씩 잡아 흔드는 듯 하다! |
![]()
14년전 수산나 타마로의 마음가는 대로를 읽고서 소년같은 얼굴과 소녀같은 감성의 작가를 알았습니다. 도서관에서 빌려온 날 아직 읽지도 않은 책을 어느 양상군자에게 헌납하고, 서점에서 새 책을 구입해다가 반납을 했었던 그런 기억을 선물한 작가여서 오늘의 만남이 더 반갑기만 합니다. 그리고 14년 만에 마음가는 대로의 속편이라고 할 수 있는 그 후의 이야기를 만나봅니다.
짧은 머리에 파란 눈동자를 지닌 작가의 수채화 같은 내면을 적시는 화필 또한 그리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히 감성적이기도 합니다. 어머니를 네살 무렵 사고로 잃고 할머니와 함께 살아가는 소녀는 "나는 누구인가" 라는 물음과 자아 정체성의 상실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고 번뇌합니다. 삶과 죽음에 대한 잘 정돈된 호기심과 끓임없는 내면의 질문들을 엿듣는 것이 마치 어린 소녀의 비밀스런 일기장을 몰래 들춰보는 것 같아 당혹스럽기까지 합니다.
![]() 아끼던 호두나무가 뿌리채 뽑히던 날, 소녀의 가슴에 남아있던 유년의 추억도 송두리채 뽑혀나가는 아픔을 맛보게 됩니다. 다른 나무의 뿌리와 얽히고 설켜서 갈갈이 찢겨진, 어린시절을 함깨 했던 호두나무는 할머니와의 공간적 절연과 함께 가족이라는 연결고리의 단절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씁니다. 호두나무는 그렇게 사라지고 그녀의 가족도 하나 둘 그렇게 그녀에게서 떠나갑니다.
할머니와 어머니 그리고 딸의 삼대에 걸친 잊혀졌던 가족사를 엄마의 먼지 쌓인 다락방에서 하나씩 하나씩 꺼내게 되면서 소녀는 혁명의 변두리에서 신음하는 가련한 여인이 자신의 엄마였다는 사실에 깊은 슬픔을 느낌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호하는 논리라는 굴레에서 허덕이는 비열한 아버지, 소녀가 상상해왔던 거울속의 이미지에 날카로운 파열음을 쩌억 하고 던져주는 아버지라는 이름의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 충격과 혼란에 휩싸인 소녀의 가슴에 회오리치는 공허한 바람을 독자들이 감당하기에는 너무고 큰 바람인 것 같았습니다. 자신의 존재는 그저 원치않았던 결과물에 불과했다는 존재론적 부정은 사춘기의 소녀에게는 견딜 수 없는 아픔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가슴 한쪽이 뻐근하도록 아픈 이야기를 들고 14년만에 그 뒷이야기들을 세상에 내놓는 작가의 필치도 역시 여자의 슬픔으로 흔들리는 것 같았습니다.
마음가는 대로 소리치고 마음가는 대로 여행 가방을 들고 떠나는 소녀의 빈손을 잡아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이라는 존재의 나약함과 고단함에 대하여 성찰하고 누구보다 인생이라는 여행의 고통을 경험한 소녀는 마음속에 묵은 먼지를 풀훌털고 일어나서 방을 청소하고 내일의 목표를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음가는 대로 정원의 장미에 물을 주고 할머니의 편지를 펼칩니다. 엄마의 다락방에는 깊은슬픔도 있지만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도 있었습니다. 떠나간 사람들이 가르쳐주는 삶이라는 어려운 과제는 이제는 소녀가 풀어야 할 과제인 것 입니다.
Oztoto's Cook n Book |
|
어떤 책을 읽고 나서 그 책이 마음에 들면 그 작가에 대한 무조건적으로 빠지게 된다. 일년 전쯤 1996년도 판으로 된 <마음 가는 대로>를 감명깊게 읽어 이번에 <마음 가는 대로>의 두번째 이야기라고 해서 바로 구입을 하게 되었다. 전작이 80대의 할머니 올가가 갑자기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손녀 마르타에게 보낸 편지형식의 일기글 이라면, 이 책은 미국에서 돌아온 손녀 마르타가 치매로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엄마의 다락방에서 엄마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읽게 되면서 엄마가 다니던 대학의 철학과 교수가 자신의 아빠라는 걸 알게 된다. 자신과 엄마를 버렸던 아빠를 찾아가지만 그것에 대해 용서를 빌기는 커녕 누구보다도 자유롭고 싶어하고 냉소적인 방랑자였던 아빠를 보고 실망하게 된다. 그래서 떠난 예루살렘에서의 자신의 뿌리찾기와 정체성 찾기의 여행. 할머니의 친척이 살고 있는 곳에서 할머니 외삼촌의 아들인 조나단의 시골집에서 나무를 돌보는 조나단과의 대화속에서 많은 위로를 받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고 다시 트리에스테로 돌아와 발견하게된 자신에게 보낸 아버지의 편지. 외면했지만 피가 보내는 신호를 무지할수 없었던지 마르타를 기다리는 아버지의 마음이 담긴, 용서를 비는 편지는 나도 울컥해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할머니의 치매로 인한 죽음과, 네살때 교통사고로 죽은 엄마와 그리고 아빠의 죽음들. 끝없이 죽음을 얘기하는 것 같아 조금은 우울해졌지만 마르타가 자신이 앞으로 나아가야 할 길을 알게 되고 할머니의 노트를 읽게 되며 자신의 미래에 대한 희망적인 생각을 하게 되는 걸 보며 조금은 안도를 했다. 세상살기가 힘들다지만 미래에 대해 희망을 얘기하는 글들이 좋기 때문이다. <마음 가는 대로>를 읽고 리뷰를 썼던 글을 다시 읽어 보았다. 그때의 감동을 적은 글을 보며 내용들이 드문드문 생각이 나 다시 읽고 싶은 느낌을 가졌다. 다시 읽어도 그 때의 감동이 그대로 일까? 아님 더한 감동을 받게 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