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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으면서, 이 책의 장르가 궁금했다. 퓨전의 시대라서 그런지. 추리소설인지, 역사소설인지, 아니면 편지모음소설인지, 아니면 죄다 합친 글인지. 저자는 서간체 역사소설이라고 하지만, 역사 추리소설이라고 해도 무방할 것 같다. 추리소설 계통의 잘 짜여진 구조를 가지고 있어, 이야기가 잘 이어지고, 재미 있어서 계속 책을 잡게 만든다. 400페이지 넘는 책이 하지만 여운이 없다고 해야 하나. 사건의 결말이 이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연애와 불륜, 어떻게 보면 별일 아닌듯하면서, 음모에 휩쓸려 버린 것인지도 모르는 불쌍한여인 후궁 소용 박씨, 격변하는 정세에 휩쓸려 버린 한 여인의 과거와 슬픔과 사랑 그리고 이루지 못하는 사랑이라고 해야 하나. 편지 1통으로 인해 자신의 목숨과 자식의 목숨이 사라지고 정인의 목숨까지 위태롭게 만들다니.
왕위를 두고 벌이는 형제들과 그들을 지원하는 세력들의 대결 속에서 불교계와 수양대군의 밀약으로 여론 등을 조작하고(지금으로 말하면 언론공작), 문종을 독살하고, 왕위를 차지는 세조도 그 역시 암시의 함정에 빠진 것인지도. 형을 독살하고, 어린 조카를 죽이고, 자신의 딸도 내치고 잡은 권력 그리고 권력의 유지를 위해 심복까지 죽이는 왕. 그리고 그 뒤의 왕위를 계승하기 위한 음모들. 이 모든 것이 한 사람에게 집중되는 권력으로 왕권을 잡지 못하는 왕자들과 그들의 추종세력들은 몰락의 끝을 알기에, 끊임없이 음모와 사건들이 벌어지는 것은 아닌지. 잘 접하기 힘든 궁중 안 이야기들, 환관들과 궁녀들의 우정과 살아남기 위한 경쟁 그리고 비애, 불쌍한 환관들의 음욕과 숫나방, 중전의 음모(?)로 인해 맺어진 사랑(불륜), 몽유도원도의 일본 행의 진실, 대신들의 권력유지를 위한 노력과 자신의 행위를 정당화하는 신숙주등의 역사 속의 변명. 이 모든 것이, 여종 덕중과 중 덕중을 착각한 어처구니 없는 실수로부터, 사랑하는 이를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자신도 위기에 처하는 귀성군. 자신의 음모를 숨기기 위해 박씨를 죽이는 세조. 대응하는 짝패들의 편지와 사건들로 이루어진 글이다. 상대방에게 편지를 하면서 사건을 전개하여, 음모를 풀어 헤친다. 하나씩 풀어져 나가는 문종의 죽음, 꿩고기와 기미상궁과 대령숙수. 박씨의 아들(아지왕자)의 죽음 마침내 풀린 훈민정음 언해본의 비밀이 불교 보급을 위한 조치(?)였다니. 소용 박씨가 남긴 한 마디 “108”에 대한 다양한 해석들.. 과연 108의 의미는? 사랑(사랑하는 사람의 애칭)이었습니다. 사랑은 모든 것을 극복한다 자신의 목숨까지도. 작가의 상상이 만든 이 소설로 인해 역사를 착각하게 되지는 않을까 걱정이다(?). 너무 역사적인 자료와 이야기를 잘 엮어내어서 마치 사실 같아진 내용 때문에 혼동에 빠지지는 않을까 싶다. p. 47. 9줄, p. 293. 13줄 p. 203 9줄 도중에 풀려났건 것처럼,-> 풀려났던 p. p.309 밑 3줄 대령숙수 일게.->대령숙수일세.? 아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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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적이면서 과학적인 발명이라 하더라도 그 속을 들여다보면 뭔가 석연치 않음 구석들이 있게 마련이다. 아무리 문화적인 우수성이 탁월하다 하더라도 정치적인 견해와 시각들이 들어가면 그것은 이미 사람들의 인식 속에 일류가 아닌 이류, 어쩌면 모조품인 아류가 될 수 있는 것 아닐까? 바로 우리나라 한글 '훈민정음'에 대한 왈가왈부이다. 세종임금의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과 가엽게 여기는 마음들이 발단이 되어 만들게 된 '훈민정음'. 그러나 이 훈민정음이 사실 정치적, 종교적인 모반 위에 만들어졌다는 것..... 엄청난 파장이며, 얼마나 또 많은 사람들을 죽여야하며 애태우게 만들지 베일이 서서히 벗겨진다. <모반의 연예편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00가 00에게 보내는 서간문 형식이다. 보내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그 범위가 정해진 편이다. 왜냐하면 '훈민정음 언해본'을 둘러싸인 모반에 직접적으로 가담했거나 아니면 간접적인 동조자나, 아무 관련도 없는 사람.... 3부류로 나눠지기 때문이다. 읽으면서 놀랍고 또 놀라웠다. 정말이야? 이런 일이 어떻게 간사스레 일어날 수 있는것일까? 그러나 '왕이 되고자 하는 사람'과 그 왕을 정말 왕으로 추대하고자 하는 사람들과의 은밀한 계략과 이해관계는 충분히 달콤하면서도 은밀한 속삭임이었다. 난 너에게 이것을 해줄께... 그럼 넌 나에게 무엇을 주겠니..... 지극히 속물적이면서 정치적인 계산법이 '훈민정음 언해본'에서 드러난다.
<훈민정음 언해본>
훈민정음 언해본 속에서 얽힌 유교와 불교의 대립구도로 보면 대략 이해가 빠를 것이다.
조선의 통치이념은 '숭유억불 정책'이었다. 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배척하는.... 세종임금이 만든 훈민정음과 언문청..... 그리고 수양대군의 정음청과 불교&108자..... 수양대군이 어린 조카(노산군... 후에 단종)을 죽이고 왕(세조)이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승려들이 밀어주었기 때문이며. 승려들이 어린 세자를 대신 수양대군을 추대한 것은 수양대군이 한 승려에게 베풀어 준 은혜 때문이었다고........ 그리고 수양대군 즉 세조와 승려들은 의견의 일치를 보며 밀약서를 서로 나눠가졌다. 이것이 바로 <모반의 연예편지>로 둔갑했던 것이다. 그 밀약서가 엉뚱한 사람에게로 갔고, 그 사건이 결국 세상 밖으로 허다한 소문으로 퍼지게 되었으며 현왕 세조의 위치가 아주 위험하게 된 계기가 된다.
<몽유도원도>
안견의 몽유도원도가 핵심 이슈로 함께 부상하게된다. 안평대군이 꿈 속에서 보았던 그 지상낙원들.... 안평대군의 꿈 속 이야기가 안견의 몽유도원도로 재탄생 되어지고, 그 몽유도원도를 순수하게 찬양과 감탄으로 시를 쓴 사람들...... 수양대군(세조)의 생각으로는 모반을 꾀하려는 사람들이었다. 안평대군으로 인해 또 그의 측근들이 많이 죽었지만 여전히 현왕(세조)의 녹을 먹고 있는 잘 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정인지, 신숙주..... 세종임금의 훈민정음 창제에 함께 했던 사람들. 그들의 주고받는 편지들 속에서 그들이 아무리 숨은 쉬고 있지만 그 숨이 얼마나 실은 가슴을 옥쬐게 하는지.... 순수한 의미의 찬탄인데,....... 받아들이는 사람은 모반으로 알고 역적이라며 그 증거를 찾고 있다는 것은..... 너희들은 '죽은 목숨'이니 각오해라...... 엄중한 경고의 메세지가 아닐까..... 식은 땀이 맺힐 것이며, 어딜가도 자유로이 왕래하지 못할것이다. 죽은 목숨을 언제 찾으로 올지 모르기에.....
<월인석보, 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 합본>
현왕 세조의 동생 임영대군의 아들, 귀성군과 세조가 잠저(본가)에 있을때부터 마음에 두었고 지금 첩이 된 소용 박씨.
엇갈린 운명이 연서 한 통을 통해 재현되었다. 세조와 승려 108명 무리의 가장 우두머리인 백팔장의 밀약서. 이 밀약서를 두고 백성들과 조종은 발칵 뒤집혔다. 그것을 건네 준 환관들이 죽었고, 소용 박씨가 죽었고.... 그 '108'이 도대체 뭐길래..... 불교의 숫자인 108에 얽힌 이야기들이 흥미로웠다. 과연 세조가 불교를 융성화시키기 위해 훈민정음 언해본을 불교서책인 '월인석보(월인천강지곡+석보상절)'에 끼워넣었을까? 그리고 그 석보상절 108면 끝에 찍힌 "총일백팔장"...... 수양의 아호인 총일& 불교계 모임의 우두머리인 백팔장..... 이렇게 결론은 났지만..... 그 돌고 돌던 소문의 소용돌이는 멈출 기미들이 보이지 않았다.
특히 뽕나무와 내외명부의 중요연례행사인 '친잠례'에 관해 나온다. 그리고 모반의 연애편지가 발각된 곳도 잠실(뽕나무의 누에를 키우는 곳, 맡은 환관외 남자 출입금지 구역)이었고, 그 밀약서가 숨겨진 곳도 잠실의 108번째 뽕나무(桑 뽕나무 상 + 열 십 9개) 그림의 의미 속에 숨겨진 108의 비밀... 참 흥미로웠다. 한 국가의 통치이념을 바꾸기 위해 모반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 매개체로서 훈민정음 언해본을 선택했다........ 위험한 발상이면서 얼만큼 기막힌 발상이었는지...... '桑 뽕나무 상'이란 그 묘한 한자가 다시 내 마음속에 들어오게 된다. 더 기막힌 것은 그 불교의 숫자 108을 맞추기 위해 훈민정음 언해본의 처음 110자를 2자 줄이도록 하는 것.... 억지적인 측면이 있지만 세조는 '왕은 하늘에서 나온다' 란 신탁이라 믿는 부분을 이루기 위해 모반을 꾀했다. 그리고 그것은 통했다. 자신이 왕이 되었고, 자신을 왕으로 추대해 준 불교와 승려들을 높여주었고, 불교국이란 이상을 위해 이상적인 유교를 천명했던 '훈민정음 언해본'을 월인석보에 끼워넣어 희귀본으로 만들었다. 잘 나가는 많은 유생들과 가문의 젊은이들은 이젠 월인석보 속의 훈민정음으로 공부를 해서 시험을 치뤄야한다........
이 책 <모반의 연애편지>를 읽고 있으면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이다. 흐름이 빠르고, 특히 훈민정음과 관련된 문학사적 의미와 역사적 배경지식, 당대 정치이념과 사상들을 엿보는 것 같아 많은 배경지식들이 한 권의 책 속에 농축된 느낌 받았다. 의욕이 넘쳐서 할 말도 많지만..... 다음번에 한번더 읽어보며 내 생각들을 담아 주저리주저리 말하고 싶다.
나의 사랑하는 인팍동생이 추천해 준 책....... <모반의 연애편지> 역시나 괜찮은 동생의 괜찮은 책 추천.......................... 빗나감이 없어라^^ 누구에게나 재미있게 읽은 책들.... 개인적 취향이지만 그럼에도 공통성은 있더라. 그럴듯하게 재미있음은 여실히 증명된 책..... 두껍다... 그렇지만 후다닥 넘어간다. 편지 형식이라 딱딱함은 탈피했다. 다 읽고나서 드는 생각 하나, 이 책 <모반의 연애편지>도 드라마 후속작으로 누군가가 만들어줬음 좋겠다는 생각이 짙게 든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도 그랬거든.... <성균관 스캔들>.... 난리가 났잖아. 얼마나 열광했는데.... 아마 <모반의 연애편지>도 드라마 방영하면 대박날 걸..... 내용 충실하지, 재밌지, 반전도 있겠고......... 제발 제발~~~~~~~~~~~~~ 누군가 만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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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의 여인이 궐 밖으로 내보낸 한 통의 편지가 궐을 피바다로 만들었다. 핏줄과 측근들에게조카 서슬퍼런 숙청의 칼날을 휘둘렀던 수양대군의 여인 덕중. 수양대군이 세조가 되자 그녀 또한 소용 박씨가 되었는데, 이 순진한 여인이 휩싸인 연애사건의 전말을 다 읽고나면 복잡한 추리소설을 읽은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연류되고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었으며 많은 사람들이 떠들어댔던 여인의 연애 편지는 모반의 편지로 이어졌고 이 모든 사건의 뒤에는 인자한 얼굴의 정희왕후와 자신의 비밀이 알려질까 먼저 손쓴 세조가 있었는데, 그들의 정치적 야망이 많은 사람의 목숨보다 소중했을까. 싶어진다.
단종을 폐위 시키고 왕좌에 오른지 11년 째 되던 해, 소용 박씨가 종친인 귀성군에게 보낸 연서가 궁으로 돌아오면서 피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그 편지를 전달했던 두 환관과 궁녀들이 죽어나갔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생사를 걸고 하루하루를 연명해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발없는 말만큼이나 빨리 뛰는 소문과 사람과 사람 사이에 비밀리 건네지는 편지들까지 막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사전만큼 두꺼운 이 소설은 놀랍게도 모두 편지글이다. 고아라, 김옥지, 감찰상궁, 제조 상궁, 방비리, 강원종 등등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비밀과 소문이 무성했고. 그 소문의 중심에는 공통적으로 소용 박씨의 소식이 들어 있었다. 제비가 박씨를 물듯 편지 글 속에 소문으로 전해지는 소용 박씨의 소식은 그녀가 죽은 이후에도 끊이지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죽은 그녀가 숨겨놓은 편지 속에서 토해진 진실은 아주 놀라운 것이었다.
건강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백팔...이라는 단어를 잘못놀려 비명횡사한 아들의 출생에 대한 비밀과 그녀의 비밀까지 계획의 일부였던 모사의 달인 정희 왕후,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진실의 반대편에서 덮고자 했던 세조의 검은 속내가 속풀리듯 확 다 풀어지는 순간이 바로 이 마지막 편지 속에 들어 있었다.
수세미를 키운다는 명목으로 안채의 뒤뜰보기로 시작해 채소와 동물을 돌본 순박한 한 소녀가 권력 앞에서 이용당하고 버려지는 비참한 정치 현실 속에서 이 편지들은 그 증거가 되어 우리의 마음을 안타깝게 만든다.
그토록 사람들을 궁금하게 만들었던 백팔 글자의 비밀과 두 왕자를 잃어야한다는 왕실의 예언의 실채가 궁금해지는 사람이라면 [모반의 연애편지]를 읽기를 권하고 싶다. 소설은 소설의 형태가 아닌 수신인이 여러명인 편지의 형태 속에서도 잘 전달됨을 우리는 이 소설을 증거로 알 수 있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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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로지 편지글 형식으로 한 편의 소설을 오롯이 엮어나갈 수 있을까 처음엔 반신반의했답니다. 그런데 갈수록 여간 참신한 글쓰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심경의 미묘한 변화 같이 직설적으로 내뱉기 어려운 것들을 넌지시 에둘러 말하거나 정제된 형태로 차분하게 나타내는 데는 편지글이 제격이었으니까요. 하여 퍼즐 맞추듯 여럿 사이에 오간 서한들을 중첩시켜 나갔더니 소용 박씨 연서 사건의 실체와 이와 관련된 이들의 속내가 고스란히 파악되었다 할까요. 더구나 시대 배경이 소리글인 훈민정음을 막 반포한 직후인지라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듯 언문 구어체로 기록된 대목도 많아 감정이 여과 없이 전해지는 듯했답니다. 하여 더욱 스토리 라인에 몰입할 수 있었고요. 여러 편의 편지는 하나의 결론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읽는 내내 늘 눈에 밟혔던 건 소용 박씨의 극단적 모습이었습니다. 그에게 만약 백팔장 같은 멘토가 있었다면 비극적으로 꺾여버리지 않고 아름답게 한 세상 피어올랐을 건데 말입니다. ‘어디 그들뿐이겠는가. 반하를 좋아한 꿩, 반하를 무럭무럭 키운 대지, 그 대지에 자양분을 공급한 죽은 자들의 시체, 자양분이 뿌리로 흘러가게 만든 빗물, 비를 몰고 온 구름, 구름을 실어 나른 바람, 바람을 생기게 만든 삼라만상의 진행과 흐름이 전부 범인이 아니겠는가.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다한 자연과 온전한 사랑과 정성을 지닌 인연들이 임금을 죽인 것이지. 문종 임금만 그렇겠는가. 한 인간이 죽어 가는데, 우리 모두가, 알게 모르게, 기꺼이 조력하게 되어 있다. 덕중! 이제 이해하겠나. 그 누구도 문종 임금을 죽이지 않았고, 우리 모두가 협력하여 그를 죽였다.’ (469쪽) 백팔장이 승려 덕중에게 보낸 편지는 누구도 원망하지 말고, 또 스스로 자책하지도 말고 모든 걸 인연으로 여기고 자중자애 하라 이르고 있었습니다. 이 대목에서 문득 한 편의 글이 오버랩되었습니다. 작년 5월 자신에게 향한 권력의 화살을 온 몸으로 견디다가 스스로 명예로운 죽음을 길로 들어선 고 노무현 대통령의 유서 말입니다. ‘너무 슬퍼하지 마라. 삶과 죽음이 모두 자연의 한 조각 아니겠는가? 미안해하지 말라.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 운명이다.’ 생사를 넘나드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노무현 대통령은 삼라만상의 움직임이 다 인연으로 꿰어져 있음을 느꼈던 것이겠지요. 하여 미련 없이 이승의 생을 마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 순간 세상에 대한 미움도 원망도 아마 그의 뇌리엔 없었을 거라 감히 생각해봅니다. 악연의 업을 더 이상은 짓지 않으려고 말입니다. 우리가 짊어진 모든 세상사 고뇌를 무의미하게 만들어버리는 건 아닌가 하고 두려운 마음이 앞서지만 적어도 제게는 그런 달관에 이른 심경이 읽혀졌기 때문입니다. 여종 덕중, 아니 소용 박씨에게도 누군가 이런 충언을 해 줄 수 있었더라면 하고 생각해봅니다. 그럴 대상이 있긴 있었지요. 덕중이 백팔장으로 알았던 귀성군, 혹은 백팔장 그룹에서 덕중의 짝패로 삼은 승려 덕중이 바로 그들이죠. 그러나 승려 덕중은 그릇의 크기나 역할의 성격이 아닌 것 같았고요. 결국 일생 마음의 벗, 비밀스런 정서를 공유한 절친으로 알았던 귀성군이 마지막 순간 그런 역할을 맡았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갑작스런 아지 왕자군의 죽음으로 공황 상태에 빠진 소용 박씨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또 일말의 위로라도 얻고자 하는 마음으로 만나기를 청했던 이가 바로 귀성군이었죠. 그런데 그 간곡한 서신이 어이없게도 왕에게 발고되어 결국 역모로 내몰리게 되고 말았던 것입니다. 귀성군, 그 좁아터진 소갈머리하고는. 하나 그도 권력의 풍향이 바뀌고 이게 예사 일이 아니다 직감해서 그랬던 것이겠지요. 자기 한 몸 살자고 사랑도 인연도 외면하고 그렇게 매정하게 밀고하고 말았던 것이지요. 소용 박씨는 그렇게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지혜로운 멘토링 하나 듣지 못했으니 끝까지 미련을 버리지 못할 밖에요. 자신과 귀성군의 관계에서부터, 왕과 귀성군, 또 승려 덕중과 귀성군의 관계, 그리고 아들 아지 왕자군이 왜 백팔장을 거론했다가 죽어갔는지 등 미궁에 빠진 수수께끼를 풀고자 마지막 순간까지 집착했던 것입니다. 결국 믿고 의뢰했던 귀성군에게마저 버림을 받고 그만 쓸쓸하게 삶을 마감해버리게 되었고요. 소용 박씨에게 백팔장이 일장 덕중에게 일러준 것 같은 멘토링이 있었다면 아지 왕자군의 목숨을 보전했을 것은 물론이고 혹 왕자가 요절했다 하더라도 세조의 성은을 계속 받아 자신의 잠재능력을 펼치며 많은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었을 건데 말입니다. 하나 매정한 작가는, 아니 역사적 사실은 애써 소용 박씨 편을 들어주지 않으려고 다른 쪽으로만 치닫더라고요. 한편 생각해보면 소용 박씨는 비극적 결말을 맞았지만 평생 아름다운 꿈을 안고 살았기에 큰 미련이 없을 듯도 합니다. 문종 시절에 수양대군이 백팔장과 함께 작성한 모반의 밀약서를 귀성군이 자신에게 준 연서로 알고, 그리하여 귀성군을 백팔장으로 여겨 평생 연모하며 가슴에 품고 살아왔으니까 한때는 얼마나 반짝거렸을까요. 섬뜩하도록 아름다운 오해였지만 말입니다. 그렇게 한 세상 지냈고 세조의 성은까지 입었으니 잘만 달랬으면 미련을 내려놓을 법도 했을 건데 말입니다. 하여 작가는 숨기고 숨겼던 편지, 소용 박씨가 귀성군에게 남긴 마지막 유언을 에필로그로 처리하고 있습니다. 잘 전해질 수 있을지도 모르고, 전해진 경우 자신은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기어이 전하고자 했던 마지막 편지 말입니다. 그리고 그 끝은 소용 박씨의 진심이 담긴 고백이었습니다. 그럼 내 사랑 안녕, 덕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