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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서술하는 사람이 어떤 시각을 가지는가에 따라 달라질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그것이 현대사라고 하면 쓰는 사람의 시각도 중요하지만, 그 책을 읽는 사람의 시각도 중요할 수밖에 없다. [미래를 여는 한국인史] 정치사회편을 보면서, 우리 현대사를 이런 시각에서 볼수도 있구나 하는 감동을 느꼈다면, 그동안 내가 보아온 한국사회는 그만큼 희망이 없다고 생각했음에 틀림없다. 사실 한국의 현대사에 관한 책은 저자에 따라 그 인식의 방향이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해방전후의 시기를 우리가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지에 대해서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이나, 한홍구 교수의 책들을 읽어보면 좀더 또렷하게 볼수가 있다. 그러나 앞의 책들이 우리의 현대사를 왜곡없이, 있는 그대로 조명한것 이라면, 이책은 우리의 미래까지를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는 제목 그대로 우리의 역사와 신세대에게서 미래의 희망을 찾고 있다. 그들에게서 볼수있는 공존의 패러다임을 바탕으로 1945년 이후 한국현대사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하고 있다. 해방부터 현재까지 저자가 말하는 우리의 역사는 때로는 한숨을, 때로는 기쁨과 환희를 그리고 안타까움과 분노가 겹쳐지게 만든다. 우리가 한국사를 배울 때 어떻게 배워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우리의 아이들이 이런 역사를 배울 때, 우리의 미래는 그만큼 희망이 있으리라는 생각이다. 역사를 추상적으로 이해하면 인간의 힘으로는 어쩔수 없었다는 숙명적 역사관이 탄생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파고들면 수많은 사람들의 판단과 선택으로 이루어진 사실을 발견할수 있다고 한다. 그 판단과 선택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역사에 가정법은 없지만, 저자는 우리가 분단을 막지 못한 이유를 자문하고 있다. 해방후 미군정이 자리잡기전 좌익과 임정세력이 힘을 합쳐 친일파를 처단했다면, 모스크바 3상회의후 좌우익이 민족자결의 원칙을 견지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단정세력에 대한 민중의 심판이 5.30선거로 나타났지만, 현대사의 굴곡을 바꿀수도 있었던 그 기회는 전쟁과 함께 사라져 버린다. 한국전쟁은 권력수뇌부들의 판단착오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할수 있는지를 생생하게 보여주었다고 한다. 김일성등 북한수뇌부의 오판과 미국 군사주의의 의도로 벌어진 한국전쟁의 끔찍한 피해는 민중들이 그대로 뒤집어쓸수 밖에 없었으며, 전쟁으로 이익을 본 집단은 미국과 일본 그리고 이승만뿐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저자는 70년대 군사독재 시절, 한국사회가 어떻게 병영화 되어갔는지를, 그리고 광주라는 피의 강을 건너서 민주화대장정에 이르는 길을 가감없이 그려내고 있다. 또한 87년 민주화 이후, 민주화세력과 노동자들이 범할 수밖에 없었던 한계에 대해 분석하고 있다. 민주화세력과 민중들은 군사독재시절 일반화되었던 국가의 억압과 통제를 혐오한 나머지,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시장기능 강화를 유달리 선호하여 결국 신자유주의에 경도되기에 이르렀고, 노동자들은 노동자대투쟁시 강력한 조직을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판단의 혼란으로 신자유주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 민주화세력이나 노동자 모두 그 한계를 뛰어넘지 못하였기에 훗날 그들이 지불해야 하는 대가는 엄청날수 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이들이 보인, 신자유주의 파고를 제대로 넘지못한 뚜렷한 한계는, 이의 극복을 위해서는 새로운 패러다임과 감수성을 지닌 세대의 출현이 불가피함을 암시하는 것 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1990년대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이들 신세대는 집단과 개인, 정치와 생활, 생산과 소비에 대한 관점에서 기성세대와는 뚜렷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한다. 이들 신세대는 각자가 세계의 중심이며, 그러한 중심이 다양하게 존재할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중심의 존재를 인정하는, 신세대 특유의 다원주의 사고는, 다양한 중심간의 소통과 연대를 속성으로 하는 온라인을 통하여 비약적인 숙성과정을 거쳤으며, 이들을 관통하는 것은 공존의 패러다임이라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한반도의 통일 역시 우리가 생각하는 방식과는 다를수 밖에 없으며, 지금까지 없었던 전혀 새로운 모델을 창조하는 과정이 될수밖에 없다고 한다. 여기에는 철저한 공존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작동될수 있을 것 이라고 저자는 기대하고 있다. 해방후부터 현재에 이르기 까지 정치사회 분야의 역사를 저자는 담담하게 민중의 입장에서 그려내고 있다. 역사서는 그 특성상 지배계급의 입장에서, 체제위주의 서술이 될수밖에 없지만, 이 책은 역사의 기본이 되는 민중의 입장에 다가가고 있다. 다시 한번 민주주의의 가치를 되돌아보게 하는 현재이기에, 지나간 우리의 역사를 올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우리의 소중한 가치를 지켜낼수 있는 원동력이 되리란 생각이다.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위해 누구나, 반드시 한번쯤은 읽어봐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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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웬지 미국의 유명한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떠올랐다. 하워드 진은 만중의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고 권력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해 쓰여진 주류역사를 해체하여 역사의 주체를 민중에게 돌려주는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역사가이다. 이 책 <미래를 여는 한국인 사>의 저자 박세길도 그러한 하워드 진의 민중역사관을 닮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미 세계의 구도가 이데올로기적 냉전시대를 지나 다양한 중심이 존재하는 다원주의 사회로 전회하는 가운데 역사 또한 그에 걸맞는 새로운 역사관이 필요할 것이다. 이 책은 다원주의적 민초중심적 역사관으로 쓰여진 시대에 새로운 세대맞는 역사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구시대적인 이념이나 색깔 논쟁을 넘어 공존의 패러다임으로 써내려가는 이 책은 읽는 내내 시원하고 교과서적인 역사를 벗어나 함께와 공존을 지향하는 제목 그대로 그야말로 미래를 여는 한국인 사에 관한 역사책이라 하겠다.
1945년 남북의 분단 이후부터 신세대의 등장까지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철저하게 '공존의 패러다임'으로 한국 현대사를 재해석 하고 있다. 역사에 '만약'이란 없지만 우리나라가 분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를 역사적 가정하에 분단에서 통일의 조건을 찾아나가는 것이 이 책의 전반적인 핵이라 하겠다.
우리나라가 분단될 수 밖에 었었던 것은 미국이나 소련의 정치군사적 결정이 아니라 좌파나 우파 그리고 친일세력이 하나의 민족 세력으로 통합하지 못한 것에서 분단의 원인을 찾고있다.
군사독재를 공존의 조건을 파괴한 역사를 퇴행시킨 행위이며 민주화 투쟁은 이를 바로잡고자 공존의 조건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였으며 6.15공동선언 이후 남북관계 역시 공존을 전제로 통일을 모색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어왔다. 구세대의 역할을 신세대들의 출현할 수 있도록 민주화와 경제건설의 기반을 만들어준데 까지로 보고 있으며 공존의 조건을 파괴하는 신자유주의의 도전은 신세대가 감당해야할 몫으로 돌리고 있다.
다원성을 인정하는 자유로운 새로운 세대들이 열어가야할 우리나라의 미래가 신자유주의를 넘어 새로운 세계를 창조할 것이라고 낙관하며 우리나라의 역사는 열려있다고 긍정하고 있다. 이데올로기나 제도적 역사관에 갇힌 한국역사가 아니라 새롭게 만들어가야할 역사를 긍정하는 저자의 따뜻하고 열린 시선이 읽는 내내 새롭게 쓰여질 한국의 역사를 기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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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이후의 한국 사회의 정치적 혼란과 무질서로부터 민중항쟁의 전환점인 된 1987년을 정점으로 하여 오늘의 한국정치사를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동의 할 수도 또는 동의 할 수 없는 견해도 있으며, 사실이 있는가 하면 사실과 다른 왜곡도 있다. 이러한 이해를 가질 수 있는 것은 역사적 순간에 바로 그 자리에 있었기에 가능 한 것도 있으며, 저자가 말하는 논지의 근거가 다분히 주관적 관점에 의지하고 있어 객관적 확인을 할 수 없는 것이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해방정국의 정치적 현황으로 민족주의자들과 일본제국주의에 이어 미군정에 기생하여 회생한 기득권자들의 권력 투쟁이나, 이의 국제적 정치 환경을 이해하지 못하거나 좌파의 실수, 우파의 파렴치와 같은 시시콜콜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에 이의를 가질 이유는 없다. 이미 많은 역사적 진실이 이를 증명하고 있으므로 이를 새삼스레 반복하지 않더라도 남북분단이라는 안타까운 결과의 초래는 어찌되었건 우리의 몫이니까 말이다. 한 민족을 영원히 양분해버린 이승만의 부패하고 탐욕스러운 부정과 권력욕은 물론이거니와 한국전쟁이 한국정치사의 결정적인 왜곡을 가져온 비극적 사건이라는 점을 부정할 수 없듯이, 박정희 군사독재 정권이 이 땅의 인권을 얼마나 오랫동안 유린해 왔으며, 그 말로가 어떠했는지도 논쟁을 요구하지 않는다. 사실 이 저작에서 1979년 10월 이전까지의 기술(記述)은 비록 좌파에 기운 역사인식임에도 사료적 판단에 근거하거나 친일의 배반을 통해 부와 권력을 여전이 유지하고 있는 일부 지배계층과 맹목적 보수주의자를 제외하고는 이론이 없는 사실의 나열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두환 등을 중심으로 하는 정치군인의 야욕이 벌인 군사정변으로 수많은 우리들의 부모와 형제자매가 자신들을 보호해주리라 믿었던 자국 군대의 총칼에 의해 무참히 스러져갔던 1980년을 우리는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그러나 이쯤에 이르러 이 저작의 의도에 대해 물음이 생기기 시작한다. 낭자한 피와 피바다와 같은 지나치게 선정적인 표현으로 한국 현대사라는 역사의 평가와 분석을 기대하는 이성적 판단보다는 감정에 호소하려는 듯한 불편함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결국 60여년의 장구한 정치 사회사를 말함에 있어 특정한 역사적 사건의 한 지점만을 불필요하게 세밀히 현장을 스케치하여 오히려 신뢰와 진실을 손상시킬 수 있기에 그렇다. 더구나 특정 세대 또는 기성세대에 대해서는 구세대라는 획일적인 경계를 지어‘공존의 패러다임’을 말한다는 자신의 주장이 무색하게 세대의 간극을 만들어 내고, 이에 더해 1980년대 이전의 민주화운동을 하였던 세대는 총칼과 억압에 주눅이 든 겁쟁이이며 무능한 세대로서 용기가 없어 사악한 국가권력에 종속될 수밖에 없었으며, 이를 극복하고 민주주의를 쟁취한 1987년 6월은“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386세대의 성취라고 하는 극단적 편견과 오만, 그리고 아전인수식의 자가당착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이미 역사의 진술을 포기하는 사견(私見) 이상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게 된다. 만일 이러한 주관적 스케치식의 기술(記述)을 역사인식이라 하고 이를 정의라 한다면 이는 심각하게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특히, 1990년대 이후의 신세대들의 개인주의와 이로 인한 창의성과 다양성을 사회통합과 공존의 기반으로 생각한다는 견해를 피력하며, 구세대의 지식과 이성, 그네들의 도덕관과 양식은 폐기되고 단절되어야 한다는 인식으로 마치 구세대는 흑백논리만을 일삼았던 사람들로 치부하는 것은 저자가 기성세대에 가하는 지적을 반복하는 것과 다름없는 것이다. 이 땅에 민주화가 성취된 1987년 이후 민주화를 달성한 세대가 곧 신자유주의에 경도되어 국가경제를 파탄에 이르게 하였으며, 양극화의 심화, 사회복지의 후퇴 등 문제를 노정시켰다고 주장하고는 오늘의 현상에 이르러서는 신자유주의의 산물인 소비지상주의와 물질지상주의가 다양성을 향상시켰다고 하며 앞뒤가 다른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이를 다른 관점에서 다시 논의한다면‘자유주의’를 상황에 따라 편의적으로 채택했다가 폐기하는 식의 무책임한 발상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편의주의적 태도는 역사를 인식하는데 있어 결코 정당한 방법이 될 수 없다. 현 정권이 들어서자 다시금 민주주의가 역진하는 많은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으나, 오늘의 사회를 만들어내는데 오랜 세월 많은 핍박과 희생, 그리고 부정한 권력에 대항한 투쟁이 있었음을 우린 모르지 않는다. 그래서 이 어렵게 이룩한 민중의 사회를 다시는 잃지 않기 위해서 의식을 깨우고 진실을 직시하는 것은 우리의 당연하고도 필요한 역사인식일 터이다. 해서 저자가 말하는‘희망의 불꽃’을 당기기 위한 작은 노력으로서의 의지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례로서, “북한의 수령제”에 대한 저자의 평가로서, 김씨 부자의 세습적 권력행태를“장기간에 걸쳐 지속된 위기상황을 헤쳐 나가기 위한 특단의‘위기관리 체제’”라고, 이에 대해서는 선과 악의 기준을 댈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박정희의 18년간 지속된 개발독재 또한 극단적 빈곤을 헤쳐 나가기 위한 특단의 체제였다고 말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처럼, 비판을 위한 이성적 기준이 진실 되지 못하다. 이 저작은 이처럼 많은 부분에 동일한 유형의 모순을 반복하고 있어 논리와 진정성에 오점을 남기고 있다. 사회정의(正義)는 개인의 자유만이 척도가 될 수도 없으며, 또한 이 자유는 공공선이나 연대의지와 충돌하기도 하며 때론 제한 될 수 도 있는 것이다. 결국 저자가 미래의 통일 한국을 지향하기위한 역량으로‘공존의 패러다임’이라 부르는 다양한 견해의 수용과 통합을 위해서도 특정 이데올로기에 집착하는 자세는 바람직하지 못하다. 한국의 현대사에 대한 통합적이고 거시적인 조명이 되지 못하고 부분적으로 편협하고 미시적 스케치에 머물러 저자의 “다양한 중심이 함께 존재하는 가운데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이라는 의도를 충분히 살려내지 못한 아쉬움이 많은 저작이라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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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에 관심있는 이라면 누구나 박세길의 《다시쓰는 한국현대사》(3권)를 읽어 보았을 것이다. 1권은 해방에서 한국전쟁까지, 2권은 휴전에서 10.26까지, 3권은 1980년에서 90년대초까지를 다룬, 무척 참신하고 시기적절한 연구서였다. 비역사학과 출신의 박세길이 쓴 이 책은 이제는 엄연히 현대사의 고전이 되었다. 당시에는 현대사를 전공하는 역사학도가 워낙 적었고, 안정이 보장된 교수의 삶을 위태롭게하면서까지 현대사를 파헤치려는 학자들도 가뭄에 콩나듯 했기에 박세길의 이런 작업은 의미가 대단했다. 적어도 나에게는 1988년 군부독재정권의 군화발 한복판에서 영웅사관이나 어용사관이 아닌 철저히 민중사관에 기초해 저술한 최초의 현대사 연구서로 기억하고 있다. 당시 박세길의 글을 읽으며 느낀 감정의 격앙은 대학교양강좌인 한국사 수업에서는 결코 맛볼 수 없었던 유형의 것이었다. 그는 당시 집필동기를 이렇게 토로했다.
"비옥한 농토를 망치고 있는 몹쓸 가시나무는 가지만 잘라낸다고 해서 없어지지 않습니다. 오직 그것은 뿌리채 뽑아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민족의 분단과 가혹한 정치적 억압, 그리고 극단적인 빈부격차 등 제반의 불행을 떨쳐버리기 위해서 그러한 불행의 근원을 파헤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진실은 맨주먹뿐인 우리 민중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될 수 있는 강력한 도덕적 무기이자 현명한 길잡이입니다. 이제 우리는 현대사의 진실을 밝힘으로써 모든 불행의 원천을 드러낼 뿐만 아니라 그 같은 불행을 강요한 자들의 씻을 수 없는 범죄행위들을 역사의 심판대 위에 올려 놓아야 하겠습니다."
그의 말대로 역사를 바로 알아야 자기의 정체성을 올바르게 건립할 수 있는 법이다. 매 번 현대사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한국 현대사는 당시 정치 지도자들과 지식인들의 무능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생생한 학습관이자, 외국열강들의 자기 멋대로식의 결정에 좌지우지 당하는 나약한 한국의 모습을 보여주는 준엄한 자기인식의 박물관이다.
20여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박세길은 《미래를 여는 한국인사》(2권)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한국 현대사 책을 우리에게 선보인다. 이 책은 연구서라기 보다는 요즘 유행하는 역사 에세이식 글쓰기에 가까운 대중지향적인 교양서적이다. 정치사회편과 경제편으로 구분되는데 정치사회편의 부제는 '분단, 병영국가, 공존을 위한 투쟁'이고, 경제편의 부제는 '개발독재, 신자유주의, 그리고 새로운 세계'이다. 저자는 공존의 패러다임으로 한국 현대사를 바라본다. 바꿔 말해서 21세기 한국사회의 이상적 패러다임으로 공존의 패러다임을 주장하는데 이는 민족의 통일을 염두에 둔 발상이다. 공존의 패러다임이란 다원주의, 생태주의, 수평적 소통과 연대, 이념적 중도를 지향하는 패러다임으로 좌익독재나 우익독재, 승자독식의 신자유주의, 토건개발주의 등을 비판하는 판준이 된다. 다소 아이러니 한 점은 막상 공존의 패러다임으로 한국 현대사를 살펴보니 공존의 길을 방해한 세력과 공존의 길을 도모한 세력이 한층 대조적으로 드러나게 된다는 점이다.
가령 이승만이 자행한 좌익계와 우익민족주의계 청소가 그러하다."1949년 10월, 이승만 정권은 국가보안법을 근거로 남로당, 근민당, 인민당 등 133개 정당과 사회단체를 불법화시켰다. 이와 함께 1949년 한 해 동안에만 무려 11만 8621명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처형시켰다."(47쪽) 초대대통령 이승만 박사는 '인간백정'이라는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실제로 그가 행한 반대파 숙청으로 말미암아 11만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다. 내가 생각하기에 여기 이땅에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정착하지 못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친일파와 친미파만을 권력지배층으로 남기고 모조리 숙청한 이승만의 탓이 아닌가 싶다. 초대 대통령부터 '공존'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대목은 역시 박정희 정권과 전두환 정권에 대한 냉철한 분석이다. 한반도의 쿠데타는 미국의 지시와 묵인 없이는 진행되기 어려운 것이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노무현 정권에 대한 분석과 평가의 부재를 들 수 있다. 또한 민족통일에 대한 저자의 글이 지나친 에세이 형식으로 치우쳐 가볍다는 점도 단점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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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교양 시간에 한국 근현대사를 배운 적이 있는데, 그 때의 느낌은 충격 그 자체였다.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배운 지식은 너무 얕았기 때문에 교양 시간에 배운 내용들은 내가 모르는 얘기들이 너무 많았고, 그러한 사건들이 서로 얽혀 있는 모습은 이미 과거인데도 너무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바로 그 느낌! '충격'을 주는 책을 만났다. '미래를 여는 한국인사'는 첫 페이지부터 관심을 확~ 끌도록 빠른 전개와 확신에 찬 말투로 시작한다. 분단을 막지 못한 당시의 상황과 세계의 분위기에서 시작하는 현대사 내용은 정치에 대한 나의 목마름을 많이 해결해 주었다. 과거에 일어난 수많은 일들 중에서 역사가의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일들은 기록한 것만 역사로 남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책 역시 현대사에서 일어난 많은 일들 중에 저자의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일이 적혔겠지만, 이 책에 나타난 한국의 현대 이야기는 누구나 알아야 하고, 누구나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내용이라 보여진다. 다만 과거 정치를 했던 사람이라면 여기 쓰여진 저자의 쓴 소리가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저자는 중간 중간 쓴소리도 넣어가며 역사가 민초들을 위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을 방해한 사람이나 사건에 대해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6월 민중항쟁에 대한 이야기에선 정말 가슴이 아팠다. '역사는 한계를 딛고 전진하는 것'으로 본 저자의 관점과 달리 당시에는 군과 언론에서 이들 민중을 억압하고 부정적인 세력으로 몰았기 때문이다. 나라의 경제 발전을 막고, 자신의 이익을 위한 집단으로 몰아갔던 일을 언론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몇 달 전에 어떤 책을 읽는데, 그 책에는 요즘 젊은이에 대한 작가의 부정적 관점이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어서 책을 읽기가 곤혹스러웠다. 나는 애엄마이지만 스스로 젊은이라 생각해서 그런지 요즘 젊은이들이 꿈도 없고, 부모들을 의지하며 소비만 추구하는 생각 없는 집단으로 낙인된 것이 씁쓸하면서도 그런 이야기는 듣기 싫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우리 신세대를 '유쾌한 반란의 주역'이라고 말하고 있다. 왜 신세대에게 부정적 측면이 없겠는가. 어디로 뛸지 알 수 없는 신세대이지만, 그들에게서 '공존의 패러다임'을 찾아내어 미래에 대한 희망을 본 저자의 시선이 반갑고 고맙기까지 하다.
신세대가 자신을 세계의 중심으로 파악했지만 결코 자신만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신세대는 '나'가 세계의 중심이듯이 다른 사람 역시 세계의 중심일 수 있다는 것을 거리낌 없이 인정하고 존중했다. 즉 세계에는 하나의 중심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중심이 존재한다고 본 것이다. 그에 따라 모든 사람의 가치, 개성, 습관은 똑같이 존중되어야 한다. (중략) 바로 이 공존의 패러다임이야말로 신자유주의를 넘어서는 미래사회의 기초 패러다임이 될 것이다. 더불어, 공존의 패러다임을 생래적으로 체득하고 있는 신세대야말로 신자유주의를 넘어설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진 세력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신세대의 등장을 지나치게 강조하다보니 그 이전의 사람들을 흑백논리에 길든 구세대로 정의해 버린 것 같아 좀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하다. 역사의 발전이란 것은 어느 한 순간 어떤 집단에 의해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시대를 초월한 민중들의 피와 땀은 반드시 인정받아야 할 것이다. 신세대의 등장과 함께 여성이 세상의 중심이 된 것 또한 반가운 일이다. 아동성범죄가 연일 이슈가 되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 속에서, 이러한 성범죄에 대한 사회 인식을 키우고, 법을 만든 것이 여성들의 힘이었음을 책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요즘 딸 셋을 데리고 다닐 때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지금은 힘들겠지만, 여자들 세상이니 얼마나 좋으냐~ 건강하고 똑똑하게 잘 키워라"라는 인사말이다. 아들이 없다는 이유로 불쌍한 눈으로 보는 사람이 없으니 얼마나 좋은지 모른다. 그런데 이러한 사회 분위기가 형성되기까지 정말 많은 여성들이 '독한 여자!,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여자!' 소리를 들었다는 것을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
딸의 색칠공부 자료를 구하려고 여러 사이트를 돌아다니다가 우연히 어떤 미국 사이트(유아교육자료가 있는)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거기에는 미국 전직 대통령들의 얼굴이 여러 버전으로 나와 있었다. 혹자는 대통령 얼굴을 인쇄해서 거기에 아이들이 색칠공부를 하다니 너무 무례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는 그런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고, 이렇게 대통령을 사랑하는 미국 사람들이 부럽다는 생각만 들었다. 솔직히 우리 중에 누가 '이승만,박정희,전두환 전 대통령'의 얼굴을 인쇄해서 아이와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려 하겠는가. 지금 우리는 한국과 나이지리아의 경기에 의해 월드컵 원정 첫 16강에 진출하느냐 못 하느냐는 기로에 서 있다.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대한민국"을 외치고 있다. 몇 달 전 김연아 선수 때문에 우리 모두 하나가 되었었는데, 또 16강에 진출하여 우리가 하나가 된다면 얼마나 기쁠까? 그런데 스포츠 말고, 우리의 정치도 16강에 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정치에 비교적 관심이 적은 나였지만,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얼마나 대한민국을 사랑하고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혹시 나처럼 학창시절에 배운 얕은 한국현대사 지식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한다. 모든 현대사를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현대사의 흐름을 읽게 되고, 현대사가 바르게 전개되길 소망하는 마음이 생길테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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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목이 주는 의미처럼 바로 우리의 역사 그것도 바로 '한국의 현대사'다. 바로 해방직후 1945년부터 2009년까지 기록한 것으로 우리 대한민국이 걸어온 발자취 특히 한국인들이 근 60여년간 어떻게 살았고,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통찰력있게 지극히 상식에 입각해서 써내려간 역사 인문 교양서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런 유의 책이라면 학창시절에 배웠듯이 또 한국 근현대사에 관심 있는 분들에게는 대부분 아는 내용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책은 그런 한국 현대사 지식의 나열로 그치지 않는다. 각 연도별, 정권등을 거쳐오면서 그 관계속에서 벌어진 역사적 사건과 사고들이 주는 의미와 파고에 대한 해석이 돋보인다. 그러면서 그 속에서 우리 한국인들 일반 민중이 어떻게 그런 고난을 격고 헤쳐나갔는지 되새겨보고 있다. 특히 이번 책은 <정치, 사회편>으로 소제목 '분단, 병영국가, 공존을 위한 투쟁'으로 표출하며 한국 현대사가 거쳐온 정치와 사회의 대격변기 과정속에서 저자는 '공존의 패러다임'이라는 문제로 귀결시키며 논거를 제시하고 있다. 어찌보면 어려운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리 어렵지 않게 일반적 상식 수준에서 풀어나가며 읽는이로 하여금 공감을 이끌어냈다. 그래서, 제목이 주는 의미처럼 과연, 우리 한국인은 어떤 과거를 지내왔고 어떻게 미래를 열 수 있는지.. 그 '공존(共存)'의 모색에 대해서 말한 책 <미래를 여는 한국인史>.. 먼저, 이 책은 총 8가지의 챕터로 크게 나누고 각 챕터별로 소제목 장을 마련해 현대사를 풀어쓰고 있다. 간단히 소개해 보면 이렇다. 챕터1은 '왜 분단을 막지 못했는가'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부터 시작한다. 바로 해방직후 1945년부터 1950년때까지 시대 분석으로 읽는 내내 열불이 터져서 혼났다. 이렇게 1945년부터 50년까지 암흑일 줄이야.. 해방후 친일파 척결문제가 미군정이 나서면서 친일파들이 다시 부상하고 미국과 소련에 의해 정말 재수없게 38선이 그어지는 상황에서.. 남쪽에서는 좌익과 임정(임시정부)세력이 나섰다가 이승만의 출현으로 미군정이 손잡고 친일파의 득세로 좌익은 자멸의 길을 걸었으니.. 결국 농락당한 한반도의 상황이 그려진다. 정말 암흑기라는.. -_ 챕터2 '최악의 선택, 한국전쟁'도 만만치 않다. 소련과 미국이 남북한 두고서 벌인 관계 모색에서 전쟁의 소용돌이 속으로 휘몰린 한반도.. 여기서도 미군정은 소련과 북한의 모색을 통해서 당시 한국전쟁을 미리 예견해 일본에 군사를 주둔시켜놓고 예의주시하며 전쟁 발발시 인민군보다 더욱더 우리의 땅을 짓밟은 현장을 감행했으니 바로 그 유명한 '융단폭격'의 주범은 그들이었다. 이렇게 전쟁의 참상으로 비극을 맞이한 남북한의 민중들.. 도리어 이 전쟁은 극한으로 치달은 남북의 양극화만 가중시키는 결과를 안겨주고 말았다. 챕터3 '공존의 조건을 파괴한 병영국가'는 제목에서 벌써 풍기듯 바로 박정희 정권시절 이야기다. 이 시절이야 얼마나 소스가 많겠는가.. 1961년 5.16 군사쿠데타로 무혈입성에 성공한 반란의 세력들.. 하지만 그들은 용의주도하게 민중의 저항없이 권력을 갖고 말았다. 바로 경제 개발 논리에 가려진 그 시절의 독재를 말한다. 기회와 이익이 독식하며 소위 봉투문화?가 생겨난 원조격의 부패왕국, 자유의지와 다양성을 말살하는 병영국가식 통제, 그리고 내부의 식민지와 여성, 빈민, 특히 호남인에 대한 차별까지.. 이렇게 '그 시대 독재란 이런 것이었다'며 가열차게 말하고 있다. 즉, 박정희식 독재로서 막말로 앞에서 민중을 위하는 척 뒤로는 호박씨 다까면서 민중을 얼렀다는 것이다. 특히 장기 집권이 계속되는 상황속에서 1970년대 이후 박정희 독재 정권의 유신체제를 벗어나고자 이제는 민중의 저항과 정권의 억압이 무수히 반복 교차되는 과정속에.. 급기야 1979년 10월 26일 김재규가 박정희를 권총으로 쏘면서 이 정권은 막을 내렸다. ![]() 챕터4 '피의 강을 건너다'는 제목부터 파란을 예고한다. 바로 신군부 전두환 정권 이야기다. 이 시절도 박정희 정권시절 못지 않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음이다. 바로 박정희 사망후 그해 1979년 12.12사태 바로 신군부 세력이 정권을 찬탈했는데.. 이때 학생 운동을 중심으로 대규모 시민들이 뭉쳐서 수십만명이 운집해 쿠데타에 항거하려 했지만 그들은 신군부의 총칼의 위력앞에서 바로 회군하고 말았다. 그것은 바로 유명한 '서울역 회군'으로 불리는 일화로 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바로 지금 한나라당 출신 의원 '심재철'이었다. 이렇게 물러난 학생과 시민들의 분위기는 바로 전라남도 광주로 이어졌다. 바로 1980년 5월을 피바다로 장식한 '광주민주항쟁'이다. 이들은 서울역 회군처럼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 공수부대 총칼에 쓰러져도 자발적인 시민군이 결성해 맞서 싸우며 잘못된 권력앞에 당당히 시민을 힘을 보여주었다. 그런 이야기가 영화처럼 펼쳐지며 그 의미를 되새기고 있다. 이후 전두환 정권의 대표적인 독재 프로그램으로서 삼청교육대, 언론 통제와 이른바 국민 우매화 정책인 '3S정책'과 무지막지한 인권 유린의 현장까지.. 전두환 정권은 독재의 방점을 제대로 찍었던 것이다. 챕터5는 '민주화 대장정'이다. 박정희 시절부터 전두환 정권까지 근 30년 가까이 억압과 통제속에 지내온 민중.. 특히 학생운동이 빛을 내며 그들이 전면에 나서게 된다. 바로 학생운동의 폭발적 성장과 찬란한 신화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민중에게까지 불을 지폈고, 그러면서 도덕적 우위를 확보한 '재야'쪽 인사와 개헌투쟁의 시동을 건 정치권들까지.. 민주화 투쟁의 바람이 여러곳에서 일며 급기야 '1987년 6월 민중항쟁'으로 제대로 방점을 찍게 되면서 마침내 승리의 고지에 오른 과정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챕터6은 '달콤 씁쓸한 시대'로 바로 6월 항쟁이 시발점이 되어 이후 민주화 투쟁이 곳곳에 일며 노동 운동의 활성화를 통한 각종 노조 설립과 민주화 관련 단체들 결성까지 민초들은 바람을 타고 일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부터 바로 시민이 국가를 통제하는 시대라 언급하며 노태우 정권을 마지막으로 김영삼의 문민정부, 김대중의 국민의 정부, 노무현의 참여정부까지 이런 민주 정부들을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민주화가 마냥 달콤하지 않게 그들 스스로 방심과 분열속에서 엇박자를 반복하고 있었다고 꼬집고 있다. 챕터7 '유괘한 반란의 주역이 된 신세대'는 바로 문화적 측면의 이야기다. 이제는 민주화가 꽃을 피우다보니 바로 다른 문제로 사람들은 눈을 돌리게 됐고, 자신이 살아온 발자취속에 새롭게 태어난 젊은이들.. 특히 젊은 10,20대의 신세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즉, 이들은 기존의 구시대와 확연히 틀리며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 주인공으로서 특히 여성은 이제 세상의 중심으로, 미디어는 독점에서 공존으로 나가며, 대중문화계는 거침없는 도발을 하며 한국 문화사의 주역으로 다원주의 사고의 '신세대'를 주목하라고 이야기하고 있다. 챕터8 '사상 최고의 프로젝트, 통일' 마지막 챕터답게 역시 통일로 귀결시키고 있다. 그렇다. 우리의 소원은 노래 가사처럼 꿈에도 그리는 남북통일이다. 물론, 아직은 요원하지만 저자는 이렇게 언급한다. 먼저, 북한에 대해서 지독히도 불안한 나라라 말하며 북한이 근 40여년을 걸어온 역사를 소상히 이야기한다. 나름 쏠쏠한 이야기들이 많다. 북한이 마냥 사회주의가 아니라는 것부터해서 말이다. 그러면서 계속 이어져온 북,미간의 첩예하게 대립한 구도속에서 한반도를 둘러싼 4강들 미국,일본,중국,러시아 그들의 관계 모색을 짧지만 공감가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면서 분단의 장벽을 허문 민간 통일운동과 역사적 전환점이 된 2000년 '6.15 남북 공동선언'을 통한 바람직한 남북협력 모델을 제시하면서 동아시아 공존의 허브로서 한반도가 나아갈 방향을 반문하듯이 마무리하고 있다. 이렇게 본 책은 한국 현대사가 걸어온 발자취를 민중사 중심으로 서술한 역사 인문 교양서다. 물론, 근 60년의 굴곡진 한국 정치와 사회를 이 한 권에 다 담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우리가 학창시절에 배운 지식을 반추해보며 여기서 말한 각종 수많은 굵직한 사건과 사고속에서 우리는 교과서적 지식이 줄 수 없는 그 무언가를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한국인.. 보편타당한 논리로서 대다수의 일반 민중들 이야기로 억압과 통제속에서 민중들은 그 중심에서 항상 서 있었고, 또 투쟁을 통해서 민주화를 이루어온 가열찬 과정속에 한국 현대사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 결과물로 이제는 이 모든것을 아우르는 '공존(共存)'의 개념을 저자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즉, '개성 넘치는 다양한 중심이 함께 존재하는 가운데, 한편으로 경쟁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소통하고 연대하는 것'이라는 '공존의 패러다임'.. 이 길만이 우리 한국이 살 길이자 한국인史가 앞으로 나아갈 길이라 제시하며.. 이 장엄한 역사의 주역이 될 것인가를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보라며 주문하고 있다. 그것은 바로 공존의 모색이자 패러다임으로 제목처럼 <미래를 여는 한국인史>가 나아갈 길이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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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못된 건 잘못됐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그것을 인정 할 수 있는 사회, 조금은 특이한 표현방식에 대해 다양한 문화가 존재 할 수도 있기에, 개성적인 표현의 일종이라고 포용해주는 너그러운 사회, 그리고 힘이나 통제에 의하지 않고도 언제나 대화나 타협의 여지를 남겨, 최선의 방향을 찾아가는 더불어 함께하는 사회, 과연 우리의 오늘날 사회는 이러 모습으로 향하여 가고 있는지, 또 그만큼의 우리의 인식은 변화 되어 가고 있는지를, 우리는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을까.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 까지, 우리는 올바른 민주주의의 정착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 하지만 요즈음 사회적 통합을 거스르는 이념적 논쟁들은 여전 하며, 이제는 동서 지역을 넘어 계층 간 분열은 갈수록 심화되어 가면서, 다양한 의견과 생각을 아우를 수 있는 정치 지도력은 물론, 그 소통의 공간까지도 사라져 버린 것 같은 느낌을 종종 받곤 한다. 결국 최근 노무현 대통령 탄핵 이후로 불거진 민중들의 분노는 급기야 미국 소고기 수입 파동으로 극에 달하며, 그 동안 어렵게 쌓아온 우리의 민주주의가 다시 퇴행 하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사회 전체로 퍼져가고 있다. 따라서 다가올 미래를 위해 우리가 현재 당면한 과제들을 어떻게 풀어야 하고, 또 그 방법의 돌파구를 지금 제대로 찾지 못한다면, 지금껏 애써 쌓아온 우리의 민주주의 아성이, 어느새 한순간 물거품처럼 꺼져 버릴지도 모를 일이며, 우리의 내일이 언제 또다시 서슬이 퍼런 공안정국의 먹구름 속으로 사라져 버릴지 장담 할 수 없는, 중요한 시점에 우리 모두가 서 있음을 깊이 인식하고 자각해야만 할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요즈음 촛불 시위의 전면에 등장한 10대들과 여성들의 모습을 보면서, 기존 세대들이 한때 민주주의 투쟁의 성과에 도취된 나머지, 타성에 젖어 시국문제에 대한 안일한 인식과 수수방관하는 태도에 우려를 표하며, 다원화된 우리사회의 구성원들이 민주시민으로서 성숙한 자세를 견지하면서, 새로운 공존의 패러다임을 찾고자 하는 일환으로, 우리의 인식변화와 더불어 그 구체적 방법을 모색 하고자 했다.
해방 전후사에 대한 우리의 올바른 인식의 부족
지나간 역사를 기억 하지 못하면 역사는 반복 된다는 말처럼, 그 동안 우리가 피로 물들여온 민주주의 역사가 우리의 가슴속에 깊이 자리하지 못하고, 제대로 인식 되지 못할 때, 우리의 민중들은 또다시 권력의 힘 앞에 핍박받고 유린당할 것이며, 고통의 나날들이 계속 되어질 것이라는 사실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지나온 역사가 이를 대신한다 하겠다. 오늘날 민주주의가 정착되기까지 그 근본적인 문제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흘러 왔으며, 또 무엇이 문제인지를 깊게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예를 들면 해방 전후 친일파와 같은 과거사에 대한 청산은 아직까지도 완벽하게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 짚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일본이나 중국의 역사왜곡 문제도 바로 이와 같은 부분이 철저하게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보니 나타난 일일 것이며,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강대국들의 국내 정치 개입 역시, 결국 자주적이지 못한 우리 의식의 결핍에서 생겨난 결과물 일 것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역사를 보는 우리의 시각과 인식을 한층 더 높여, 우리의 미래를 대비하여야만 할 것이다.
경제를 빌미로 한 군권통치 역사의 부당성에 대한 고찰
부패한 이승만 정권은, 4.19 혁명의 단초를 제공하며 국민들에 의해 그렇게 무너져 갔다. 하지만 쉽게 찾아오리라 했던 우리의 민주주의는, 또다시 군권통치에 의해 기나긴 억압의 세월을 보내게 되었는데, 아직도 일부 사람들은 그 당시 군권통치를 찬양하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그 이유를 물어 보면 경제발전을 이루었지 않느냐는 단편적 의견을 내세우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시대 경제발전이 전혀 없었다고는 말 할 순 없으나, 그로인해 피해를 입은 당사자들에 대한 책임을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재벌과 권력이 결탁하고, 동서로 지역은 분할되어 분열을 낳고, 경제발전의 미명아래 억압적 통치에 의해 쓰러져간 많은 국민들의 삶은 또 어떤가. 결국 부익부 빈익빈이 이제 일반적인 사회현상이 되었으며, 유전무죄 족벌경영과 같은 자본주의 병폐가 여전히 횡행하고 있음을 우리는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게다가 그 시대에는 대다수 주권을 가진 국민이라기보다는, 반공의 기치아래 국가에 예속된 마치 노예와 같은 생활은 아니었는지도 함께 판단해봐야 할 것으로 본다.
상호공존을 위한 새로운 모색
민주주의가 발전함에 따라, 그 동안 억눌려 왔던 여성들의 권리와 10대들의 목소리가 예전과는 다르게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 물론 아직까지도 보완해야 할 문제들이 많긴 하지만, 과거에 비추어 볼 때 향상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또한 언론의 통제가 사라지고 표현의 자유가 확대된 지금, 각계각층의 목소리도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이다. 하지만 이를 조정하고 추슬러야 할 정치 지도력들은 여전히 낮은 단계에 있어 보인다. 이미 국민들은 깨어 있는데, 이를 이끌어 갈 주도세력들은 과거의 향수에 머물러 구태의연한 방법으로 국민들을 다스리려 하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 국민에 의해 형성된 권력은 국민의 여론에 의하여 그 기초를 두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정책이 이와는 정 반대의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은, 국민을 우습게 알거나 무시하는 처사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세계의 각국은 자국민의 이익을 위해 먹고 먹히는 소리 없는 전쟁을 오늘도 지속하고 있는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먹이 감을 찾아 나서기는커녕 오히려 그들의 먹이 감이 되기 위해 스스로 자처하는 꼴은 아닌 건지,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단순한 수치상으로의 경제성장을 통해 선진국이 되어가는 것은 우리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대다수의 국민들은 내용은 없고 껍데기만 존재하는 우리의 조국을 바라지 않는다. 또한 우리의 미래사회가 일부 몇몇 사람들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엉성한 나라가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따라서 이제라도 정부와 사회 지도층 인사들은 국민과의 소통의 공간을 폭넓게 마련하여, 상호 공존을 위한 새로운 모색을 통하여 우리의 미래를 건설 하는데 매진해야 한다. 그렇기 위해서는 정부는 정부대로 국민은 국민대로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가 첨예하게 대립하려는 자세를 버리고 양보하고 타협하는 민주주의 기본 이념들을 잘 인식하여, 그 방법과 절차에 따라 오늘날의 위기를 타개하고, 이를 전화위복으로 삼아 미래의 세계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끝으로 우리나라는 세계 어느 나라에서도 이루지 못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고도의 경제성장과 더불어, 민주주의 정착을 굳건하게 다져온 유일한 나라다. 하지만 너무 성급하게 이루어 온 결과에서 생기는 문제인지는 몰라도, 그 과정에서의 여러 가지 병폐들은 시급히 고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는 우리의 민주주의 의식이 점진적으로 성숙하게 자리잡아가야 함에도 불구하고, 상층부로부터의 그 의식의 부재가 심각하다는데 많은 국민들은 동의하면서도, 애써 외면하려 하거나,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향이 많은 것 같다. 우리의 미래는 절대 남이 책임질 수도 없는 것이며, 남이 대신하여 주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고, 어느 누구라도 제 3자로서의 수수방관하기 보다는 민주시민으로서의 그 역할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내 개인적인 생각을 해보며,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통해 올바른 역사 인식을 갖는데 많은 도움을 얻었으면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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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삼스런 이야기지만, 분단국가에 사는 국민들의 운명은 애처롭기 그지없다. 보고싶어 볼 수 없고, 가고싶어 갈 수 없는 물리적인 한계야 이루 말할 것도 없지만, 그저 일상을 살아감에도 ‘분열’과 ‘반목’이라는 멍에를 지고서 임해야한다는 사실은 우리의 비운이고, 불편일 수 밖에 없다. 대립과 경쟁의 역사는 비단 분단 이후부터가 아니다. 조선 왕조시대로 거슬러 올라가거나, 혹은 그 훨씬 이전부터도 권력을 가진 자와, 그 권력을 노리는 자들의 정쟁은 존재했었고, 이러한 지도층의 대립각은 반대파에 대한 숙청으로 꼬리를 물었다. 또한 이런 대립의 과정에서는 친원파든, 친명파든, 또 다른 어떤 나라이든, 다른 나라에 충성하며 자신들의 원하는 바를 이루려는 무리들이 존재했다. 하지만 해방을 즈음해서 나타나기 시작한 우리 현대사의 분열과 대립은 그 이전과는 양상이 달랐다. 해방부터 6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역사는 빨갱이와 친일파끼리의 분열과 반목의 장이었다. 사실 ‘좌파’의 반대는 ‘우파’이어야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자신들의 의지와는 관계 없이, 우리나라의 좌파는 ‘빨갱이’로, 우파 기득권자들은 ‘친일파’로 역사를 이끌어왔다. 지금까지는 그랬다. 아니 어쩌면 지난 지방선거에서도 봤듯이 아직도 그러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세상은, 우리는, 점점 바뀌어 가고 있고, 저자도 그 변화에 주목하고 있다. 현대 사회는 다양한 사고와 가치가 공존하는 다원주의 사회이고, 몇 명의 영웅이나 지도층이 주인공이 되었던 과거와는 달리, 현재 우리는 민중이 주인공이 되는 역사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 그래서 더 이상 분열하고 반목하지 않는 공존의 패러다임만이 한국이, 한국인이 나아갈 바라고 이 책 전반을 통해 저자는 말하고 있다. 과거 역사를 이끌었던 몇몇의 정치권력, 이어 나타난 경제권력, 그리고 언론권력, 노동권력등 한국의 현대사를 마음대로 주물렀던 기득권층이 아닌, 새로운 민중권력이 등장해 자리잡고 있고, 한번도 주류인적이 없었던 그 민중이 이제는 역사의 주류로 전면에 나섰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대립에서 벗어나, 서로의 생각과 가치를 존중하는 함께 사는 세상이 우리가 앞으로 펼쳐나갈 우리의 역사라는 말이다. 90년대 단연코 눈에 띄는 역사 책 중의 하나인 ‘다현사(다시 쓰는 한국 현대사)’를 썼던 박세길씨의 새 책 ‘미래를 여는 한국인사’. 굳이 저자가 ‘미래를 여는’이라는 수식어를 달아놓고, 한국사가 아니라 한국‘인’사라고 제목을 지은 까닭은 우리가 함께 공감하고 당당히 새로운 역사의 주인공으로서 살아보자는 의미심장한 당부가 아닐까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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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표지만 보아서는 친근하고도 쉽게 다가올 수 있을 거 같았다. 그러나 책속지를 보았을때 여느 책보다 작은 텍스트들이 깨알같이 다가왔다.
내가 받아든 책은 정치사회 분야에 대한 책이다. 대략 중고등학교 때 배우거나 들어온 상식을 밑바탕으로 읽어나갔다. 그리고 70년대 후반생인 나는 어렴풋한 80년대 90년대의 기억을 떠올릴 수 있었으니..참 새삼스럽기도 하다. 45년 이후부터 2009년까지 총 8개의 주제로 구분하여 구성되었다.
이 책은 사실을 바탕으로 작가가 재해석을 한다. 그 재해석의 범위는 다소 작가위주의 주관적인 판단에 의한다.. 이전에 내가 알고 있는 가치관을 다시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역사를 어떻게 해석하는 게 옳을까? 지금의 잣대로 역사를 판단하는 것은 맞지 않는다고 본다. 70년대의 장발단속, 미니스커트 단속을 현재 시점의 잣대로 본다면 정말 어이없는 일이지만, 그 당시의 잣대로 보면 다르게 볼 수 있지 않을까?
좌파적 시각으로 써낸 이 책은 어쩌면 우파적 시각으로 물들어 있는 나의 두뇌를 새롭게 리뉴얼하게 할 수도 있겠지만.... 난 이보다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역사를 풀어낸 것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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