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 나에게 < 빈 서판 >식의 '유전자 결정론자" 냐 아니면 <인간에 대한="" 오해="">식 의 '환경결정론자'냐 묻는다면 자신이 없는 목소리로, ( 명확한 근거를 대기 부족하므로 ) '유전자 결정론'에 손을 들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스티븐 제이 굴드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지능이라는 것 자체에 아무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솔직히 말해서 세상은 뭐든지 세습되고 있지 않은가 ? 세습되어지는 지위와 부의 근간에 자리잡은 유전자에 대한 나의 잠재의식까지 바꾸어 놓기에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주장은 지나치게 상아탑적 논리이다. 대내외적으로, 공식적으로는 스티븐 굴드의 칼날같은 생물학적 결정론의 비판을 수용하고 태생적인 한계 따위를 고려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내 마음 깊숙히 자리잡은 고정관념을 타파한것은 아니다. 나는 똑똑한 아이들을 보면 부모한테서 그런면을 찾으려 주의깊게 살피고 그럼 그렇지 고개를 끄덕인다. 뭐든지 하기만 하면 실패하고 마는 사람에게서 종종 타고난 어리석음이나 타고난 불운따위의 엉뚱을 답을 찾아내려고 한다. 다행이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선천적인 어리석음을 가지고 편을 가를만한 여지가 적기 때문이다. 물론 신분이 세습되던 시절에는 백인이 흑인에 대해 평가하던 똑같은 말로 양반은 노비를 평가 했을것이다. 날때부터 게으르고 천박한 부류의 씨라고 말이다. 스티븐 굴드는 '부정적 측면을 소중히 여겨라 '라는 모토를 가지고 이 책을 저술했다. 부정적 측면이란 다름아닌 생물학적 결정론이라는 강한 고정관념을 가지고 쌓아올린 학문적 연구 결과들에 대한 가혹한 비난이다. 스스로 실증과학으로서의 폭로이고, 폭로를 통한 학습을 추구한다고 했으니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번쩍이는 사시미칼을 든채 '지능은 선천적이며 사회계급의 차이는 유전의 결과'라고 말하는 학자들을 난도질한다. 두개계측학 19세기 생물학적 결정론을 이끈 수리과학으로 각광받은 것이 바로 이 두개계측이다. 필라델피아의 사무엘 조지모턴은 한참 잘나가던 제국주의적 횡포에 힘입어 다양한 인종의 두개골을 컬렉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두개골에다 씨앗이나 탄환을 집어넣어 용적량을 재고 그 용적량에 따라 백인의 뇌는 용적량이 크므로 뛰어나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사람이 스티븐 굴드한테 어떻게 깨지는가는 내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어차피 스티븐 굴드가 다양한 수치를 비교하며 분석하지 않아도 이 방법이 어리석다는것은 우리도 안다. 모턴에 뒤를 이어 좀더 정밀하게 두개계측학에 매달리는 사람은 폴브로카다. 뛰어난 학자들이 죽으면 그 사람들의 뇌를 꺼내보는것이 유행하던 시기라 브로카의 연구는 수월했다. 그렇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결과들 때문에 보정을 해야하는 수고로움이 반드시 필요했다. 위대한 수학자 가우스는 뇌가 생각보다 작아서 갑작스럽게 무게보다 주름을 기준으로 잡아야 했고 시인 휘트먼 또한 뇌가 너무 작아 사람들을 당혹시켰다. 사람들은 생물학적 결정론에 대한 집착이 너무 강해서 보정을 하거나 말거나 결론은 하나라고 생각했다. 다른 방법을 찾기 원하지 않았다. 뇌의 크기가 곧 사람의 우수성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어처구니없는 신화들이 정식으로 폐기된것이 1970년대 남아프리카 인류학자 토비야스에 의해서라니 우리가 엄청 진보된 사회속에서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착각인것 같다. IQ테스트 20세기 들어 두개계측학의 뒤를 이어 대중을 특히 미국을 사로잡은 것이 바로 IQ테스트다.(두개계측과 아이큐 사이에 외모로 인종의 우수성을 평가하는 이야기도있기는 하다. 그렇지만 지문을 새긴 사람은 하등하다 따위의 이야기들을 비판하는것은 무의미한 관계로 곧바로 아이큐 테스트로 넘어간다. ) 스티븐 굴드는 절대 동의하지 않기 때문에 <지능이 단일하고,="" 선천적이며="" ,="" 유전가능하고,="" 측정="" 가능한="" 실체라고="" 가정할때="">라는 말을 쓴다. 곧 그는 이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렵다 어려워, 이 부분에서 나는 무척 많이 흔들린다. 맞는 말이다. 복잡한 인간의 실체를 지능이라는것으로 판단할 수없다. 그렇지만 거기에 집착하는 나는 또한 무엇인가. 내내 그의 말에 동의 하면서 뒤로 호박씨 까듯 자식의 아이큐 검사 점수에 매달린다. 음 이정도 점수면 어디까지는 가능할거야 하는 식으로 말이다. 본래 프랑스에서 비네가 아이큐 테스트를 만들 당시에는 학습부진아를 구제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그런것이 미국으로 건너가 이사람 저사람 손을 거치며 자가증식을 했고 또 보수주의 흐름을 타면서 엉뚱한게 변질되었다. 결국 미국내 아이큐 테스트의 대중화를 이룩한 브리검이 자신의 측정 방법이 잘못되었을 시인 했지만 그와는 무관하게 아이큐 검사가 낳은 사생아인 이민 쿼터는 전쟁통에 목숨부지를위해 미국으로 탈출을 꿈꾸던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가 버렸다. 스티븐 굴드는 말한다. 파괴에 이르는 길은 종종 간접적이지만, 사상은 총이나 폭탄과 마찬가지로 확실한 수단이 될 수 있다고 말이다. 그리고 ... 이어서 스피어맨의g 에대해 터무니 없음을 공략하고 버트의 사기극을 폭로한다. 그렇지만 나는 이해하지 못한다. 버트가 가계유전을 강조하기 위해 사진을 조작한 따위의 이야기를 거치며 등장하는 요인분석은 전혀 무슨 소리인지 알 수가없다. 난공불락이다. 그렇지만 몰라도 된다. 저자 스스로 요인 분석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책에는 원래 넣지 않는 부분이란다. 내가 어리석은것이 아니라 워낙 어려운 내용이었다. 지나치게 현학적이어서 전문가들도 논지를 파악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악명에 비하면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레포트를 써야하는것도 아니고 그의 사상에 대해 한마디 들어 본다고 생각한다면 부담없이 읽을 수 있다. 생물학적 결정론과 환경결정론 사이에서 오락가락 할 수 밖에 없는것이 독자의 위치지만 한가지 분명한것은 있다. 정책입안 과정에 생물학적 결정론이 끼어드는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다. 가난은 나랏님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식의 사고는 결국 '너희가 모자라게 태어났으니 너희 잘못이다. 너희가 가난할 수 밖에 없는 짓만 하고 있으니 너희 잘못이다 '라는 식으로 정부의 책임회피를 조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종종 길을 잃고 헤매이며 고생하긴 했지만 대가의 책을 읽는 즐거움은 역시 내 삶에 기쁨이다.지능이>인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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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디로 인종차별의 근거로 사용되는 지능(지적 능력, 그리고 IQ)에 대한 비판이다. 이 책이 주 타겟으로 삼고 있는 '벨커브'를 읽어보진 않았지만, 그리고 유명했던 '이기적인 유전자'도 읽진 않았지만, 대충 짐작은 할만한 대상이었다.
그리고, 내가 읽어본 굴드아저씨의 책중에 가장 저널리스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factor analysis나 PCA등의 통계적 방법론에 대한 설명이 꽤나 나오고, 저자 역시 그에 대한 과학자로서의 자부심을 보이긴 하지만서두...
이런 저자의 뚜렷한 정치적 관점은 다음의 문장에서 풍기는 뉘앙스로 설명될 수 있다.
흔히 '사회적 다윈주의'라는 말은 사람들의 차이가 생물학적 근거에서 비롯됐다는 진화론적 주장을 의미하는 것으로 사용되어왔다. 그러나 원래 의미는 산업 사회 내의 계급 구성원에 관한 특정 이론, 특히 유전적으로 뒤떨어진 사람들로 구성된 영원히 가난한 하층계급이 불가피하게 그런 운명을 타고났다는 관념을 언급하는 것이었다.
닭-달걀식의 궤변으로 논점을 흐리지 말아라~! 당신의 이념을 솔직히 털어놓아라~!!..... 아주 명쾌해서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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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와 과학의 대립은 문명의 발전과 함께 해온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서양의 중세를 암흑으로 표현하는 이유도 이성과 합리성이 부정되고, 섭리가 그 자리를 대체하며 숱한 광기의 사례들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종교적 교조에 어긋나는 이념을 가진 사람들을 색출해 내고 화형시키는 일은 중세 이단심문소의 주된 역할이었다. 교황의 권위가 세속의 왕권을 능가하는 시대였기에 가능했다. 종교의 반대편에서 과학은 그러면 객관성과 합리주의로 세계를 공정하게 설명하려 했을까. 기원 후 100년 무렵 완성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은 중세까지 진리로 받아들여졌다. 그 역사는 1천년을 넘어선다. 그렇다면 1천년이 넘는 시간동안 천동설을 검증하려는 시도는 왜 없었던 걸까. 15세기에 와서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태양중심설(지동설)을 주장하기 전까지, 과학은 종교의 시종 역할에 충실했다고 해야 옳을 것이다. 과학은 우리의 상식처럼 실험과 증명에 토대를 둔 것이 아니라 많은 부분 사회 통념을 보충하고 지지하는 기능을 가졌다. 그것은 중세를 넘어서 근대에까지 이어졌다. <종의 기원>을 통해 진화론을 탄생시킨 과학자 다윈이 활동하던 시대는 다수의 생물학자들이 인간의 본질을 탐구하던 시대였다. 선박제조 기술과 항해술의 발전은 개척과 모험의 시대를 불러왔고, 서양인들은 대륙과 대륙을 잇는 긴 여행을 통해 이 세계에서 다양한 인종과 생물종을 발견하게 된다. 기독교적 세계관의 지배를 받았던 근대 서양 생물학자들은 인간 종 다양성을 교조적 논리와 과학으로 설명하길 원했다. 하여, 그들이 들고나온 이론이 `생물학적 결정론'이다. 이 이론은 인종의 서열화를 근본 교의로 삼는다. 서열의 최상단에는 가장 진보한 문명을 소유한 코카서스 인종(유럽 백인종)을 두고, 그들이 노예로 삼았던 흑인을 열등한 인종의 하단에 뒀다. 이것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은 실험과 자료수집에 광적인 열정을 보였다. 두개골의 크기에 따른 인종 서열화나 고릴라와 흑인 골상의 유사성을 노골적으로 표출했던 것이 당대 명성있는 생물학자들의 논문 내용이었다. 20세기 가장 뛰어난 진화생물학자로 일컬어지는 스티븐 제이 굴드의 <인간에 대한 오해The Mismeasure of Man, 사회평론 2003년>는 정확히 이 시대, 근대 생물학자들이 쏟아낸 논문들을 꼼꼼하게 비평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책이 가진 정직하고 공정한 비평정신은 높게 평가받아 <인간에 대한 오해>는 1982년도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1941년 뉴욕에서 태어난 유대계 미국인으로 고생물학자, 진화생물학자, 과학사가로 명성을 떨쳤다. 굴드는 다섯살 때, 아버지와 함께 놀러간 미국자연사박물관에서 티라노사우루스 렉스의 골격을 보고 충격을 받는다. 훗날 그는 "티라노사우루스를 처음 보았을 때 나는 압도되었다"고 회고한 적이 있다. 굴드가 훗날 고생물학자가 된 것은 어린 시절의 경험이 크게 작용한 듯 하다. 생물학자로서 굴드의 굵직한 업적은 1972년 발표한 `단속평형설'이다. 생물 종들은 상당기간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다 특정한 시기에 급격한 종분화를 이룬다는 것이다. 그 전까지 생물 종의 진화가 오랜 시간에 걸쳐 점진적으로 진행된다는 `계통점진설'이 학계의 통념이었다. 그의 단속평형설은 창조론이 문제삼은 진화 과정상 중간단계 화석의 공백을 방어하는 논리로 기능했다. 굴드는 생물학자로서 사회 참여에 적극성을 띄었다. 그는 유전자 결정론에 따른 사회생물학과 진화생물학을 반대했고, 인종차별 철폐에 앞장섰다. 정치적으론 중도좌파의 입장을 고수했다. 68세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을 공표하며, 1970년대 중반 케임브리지 보스턴을 중심으로 급진적인 성향의 과학자들이 모여 결성한 전국조직 `민중을 위한 과학'에 적극 참여한다. 2002년 폐암으로 작고할 때까지 진보적 생물학자들의 비영리단체인 `책임 있는 유전학을 위한 회의'의 자문위원직에 있었다. 대중 과학자로서 명성은 천문학계의 칼 세이건에 비견될 정도였다. 1974년부터 27년간이나 미국자연사 박물관이 발간하는 잡지 <자연사>에 많은 에세이를 연재했다. 그의 글쓰기 철학은 `전문적인 저작과 일반인을 위한 해설서 사이에 개념상의 깊이가 달라서는 안된다는 것'이었다. <인간에 대한 오해>는 굴드의 생애를 증명하듯, 생물학적 결정론과 사이비 과학을 호소력있는 논리와 쉽고 명징한 문체로 적극 비평하고 있는 작품이다. 지금은 인종 서열화라는 것이 넌센스로 비춰질지 모르지만 노예를 부렸던 18세기만 하더라도 그것은 과학이 보증하는 든든한 이론적 기반을 소유했다. 과학자들은 백인종의 우월성을 증명하는 물증으로 두개계측학을 탄생시켰다. 머리 골상의 크기는 곧 뇌의 크기를 말하는 것이었고 뇌의 질량이 높으면 사고력이 높고, 사고력이 높은 종족이 뛰어난 문명을 건설할 수 있다는 논리였다. 물론 그 최상단에는 코카서스 인종(유럽 백인종)이 위치하고, 중간단계에는 말레이, 몽골인종, 최하단에는 인디언과 아프리카 흑인이 차지했다. 당대의 객관주의자로 명성을 떨쳤던 생물학자들은 당대 노예제도 옹호론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했던 것이다. "노예제도, 식민주의, 인종차별, 계급구조, 성 역할에 관한 주장들이 과학이란 깃발 아래에서 전개된 것이다."(143쪽) 한 세기를 넘어오면 인종간 서열을 재는 척도는 지능지수(IQ)라는 좀더 세련된 방식으로 진화한다. IQ를 발명한 학자는 19세기 프랑스 심리학자 비네였다. 그런데 IQ의 발명가 비네는 IQ를 선천적인 지능으로 인정하길 꺼려했고, IQ에 따라 학생들을 서열화 하는 것도 반대했다. 최초의 IQ검사의 목적을 계발자인 비네는 학습불능아나 약한 정신지체아를 식별하기 위한 수단으로 여겼다. 지능지수에 따라 사람을 줄 세우는 것이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적극적으로 골라내 그들에게 보다 많은 교육과 지도를 이끌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안타깝게도, 훗날 IQ 검사는 비네가 우려했던 지능서열화의 단계를 밟았고 그것에 가장 열정적으로 앞장선 것이, 미국이었다. 하여, 굴드는 `미국의 발명품 IQ'라고 부른다. "IQ의 유전적 결정론은 미국의 독자적인 발명품이다. 이 주장이 평등주의의 전통을 가진 이 나라에서 역설적이라고 생각된다면, 제 1차 세계 대전 당시의 호전적 애국주의를 상기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것은 유럽 남부나 동부에서 밀려오는 이민자들의 값싼(종종 정치적으로 급진적인) 노동력의 유입에 직면한 기존 미국인들의 두려움 그 자체이고, 무엇보다 미국의 완고한 인종차별주의를 나타내는 것이다." 270쪽, <인간에 대한 오해>, 스티븐 제이 굴드 IQ로 인한 인종의 서열화는 결국 1924년 제정된 미국 이민제한법의 통과로 이어졌다. 노예제도를 긍정하기 위해 흑인들의 열등성과 동물성을 포장한 과학은 20세기 초에 다시 사회적 필요과 목적성에 헌신하며, 무수한 사람들을 저능아로 판별하는데 기여한다. 이렇게 자기모순적인 이론의 바탕은 신은 코카서스 인종을 선택했다는 생물학적 결정론에 따른 것이다. 선택받은 인종은 열등한 인종을 노예로 부리고, 차별하는 것이 당연시 되고 여기에 어떤 도덕적인 결함이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그들은 `의사과학'으로 감추었다. 굴드가 일생 천착한 다윈 진화론의 핵심은 다윈이 말한 진화가 복잡성과 지적 능력의 발전같은 특정한 방향성을 띄지 않고, 생물 다양성을 획득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다. "진화는 진보가 아니라 분화" 라는 그의 정의는 바로 이 뜻이다. 인간과 다른 모든 생물체의 진화적 통합"은 자연의 가장 오만한 종인 인간에게 주는 다윈 혁명의 핵심적인 메세지라고 굴드는 풀이한다. 굴드는 이 책에서 생물학적 결정론과 사회적 편견은 서로를 뒷받침하며 발전돼 왔음을 역사적 사례와 연구를 통해 증명한다. 오늘날 굴드가 지적한 의사(擬似)과학자들의 논문은 이제 보편적인 사이비 이론으로 전락한지 오래다. 백인의 우월성을 지지했던 골상학, 흑인에 비해 높게 평가된 백인의 IQ, 가난과 지능지수의 낮음이 유전적으로 결정돼 있고 사회적 지위 또한 유전되어야 한다는 사고는, 모두 거짓임이 드러났다. 굴드는 다윈을 단순한 생물학자로서의 업적이 아닌 인간에 대한 이해와 온정, 공정함을 지닌 태도로서도 존경했다. 굴드가 다윈의 문장 가운데 가장 위대하다고 치켜세운 다음의 글을 보라. " 빈곤의 비참함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우리들의 사회제도에 의해 비롯되었다면, 우리의 죄는 중대하다" 다윈 인간은 만물의 척도라는 말은 오류 투성이다. 척도라고 하기엔 인간은 지극히 불완전하고 자기중심적이다. 다윈은 `자기 이웃을 자기처럼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신을 믿고 신의 의지가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가장 잔혹한 노예제도의 찬성론자들이었다고 폭로 한다. 그들이 인간이란 척도를 말할 때의 인간 범주는 `코카서스 인종(유럽 백인종)'이었다. 우리가 동물과의 차별성을 논할 때, 다윈의 문장은 유용할 것이다. 빈곤과 전쟁, 테러와 범죄 등 모든 것은 자연법칙이 아닌 인위적 사회제도와 환경에서 출발한다. 우리의 죄가 중대하다는 다윈의 통찰은 그의 진화론에 담긴 동물성을 해체시킨다. 객관주의와 합리성으로 무장한 과학이란 신화는 거짓이었다. 과학조차 언제든 인간을 배신할 수 있다. 근대 인간을 서열화 시키고, 인간 종을 차별하게 만든 이론들은 폐기되었지만, 그 영향력은 계속되고 있다. 서양인들이 가진 뿌리깊은 선민적 태도와 차별적 시선은 문학평론가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동양에 대한 서구의 왜곡과 편견)이란 용어속에도 살아 숨쉰다. 현대 정치와 경제 제도에서 가장 진보한 미국이란 나라가 인종차별로 몸살을 앓는 것, 표현의 자유라는 가면 아래 이슬람에 대한 뿌리깊은 편견과 조롱을 담은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은 여전히 21세기의 두개계측학이며, 생물학적 결정론의 새 버전이라 불러야 마땅하다. 우리가 원숭이의 후손이 아니란 것을 주장하기에 앞서, 신의 창조물이란 존재의 가치를 스스로 증명해 내야 하지 않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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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2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내용과 난이도 덕에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잊을 수 없는, 강렬하면서도 참된 독서가 되어주었다. 가네시로 카즈키의 'GO'에서 언급된 것을 보고 읽게 되었는데, 이런책이 있는지도 몰랐는지 부끄러울 지경이다. 진작에 읽었어야 할 것을.. 쯧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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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제이 굴드는 나의 상상 속에서는 조니 뎁 닮은 섬세하고 마른 미중년이었는데, 어느 날 사진을 보고 깼다. 헉.. 완전 해그리드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