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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4인의 철학자가 들려주는 통섭 강의
"미술관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4인의 철학자가 들려주는 통섭 강의" 내용보기
일단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미학 개론 시간에 이런 내용을 배우겠구나 싶어서 부러웠다. 미와 예술에 대한 기본적 기반을 갖추어놓고 그 틀에 따라 다양한 현상들을 해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학아카데미에서 4명의 인문학자가 미학을 바탕으로 각 4강 씩 강의한 강의록을 묶은 것이다. 강의를 들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분들이 다룬 내용이나, 최
"미술관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4인의 철학자가 들려주는 통섭 강의" 내용보기

일단 미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미학 개론 시간에 이런 내용을 배우겠구나 싶어서 부러웠다. 미와 예술에 대한 기본적 기반을 갖추어놓고 그 틀에 따라 다양한 현상들을 해석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철학아카데미에서 4명의 인문학자가 미학을 바탕으로 각 4강 씩 강의한 강의록을 묶은 것이다. 강의를 들어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분들이 다룬 내용이나, 최근 진중권이 다루었던 내용 사이에 겹치는 소재가 꽤 있는 것 같아보여 현대 미학과 존재론의 관심사가 어떠한 것인지 추측할 수 있게 해준다. 그나저나 부제에 '통섭'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데, 이 단어를 볼 때마다 누가 주체가 되어 다른 분야를 '포섭'하려고 하는지 신경을 곤두세우게 된다. 현대 주류패러다임이 과학주의이다보니 통섭이라는 좋아보이는 단어로 포장해놓고, 사실은 과학이 다른 분야를 잠식하려는 것 같아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차례의 소주제들을 볼 때 이 책은 인문학을 주축으로 예술과 현대 과학 기술을 포섭하려는 것인가 생각해본다. 어려운 내용인 것 같아보이면서도 저자들의 사고의 과정을 따라가면 은근히 잘 읽어졌던 것 같다.  

 

박이문은 미학과 예술철학 구분이라는 기본적인 곳에서 논의를 출발한다. 미학이 감각적 경험에서의 인식 전반을 다룬다는 점에서 미학이 예술학보다 더 넓은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미적인 것, 미학적인 것, 예술 사이의 관계에 대해 항상 궁금했는데 이 부분에서 학문적인 언어로 명쾌하게 구분을 해주고 있다.  

 

예술 양태론적 정의modal definition...

이제 예술은 명제의 논리적 존재양식과 관련된 칸트의 양태적 구별에 비추어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4) 예술은 가능한 세계를 열어주는 언어적 제품이다. 이런 점에서 예술의 기능은 모든 기존의 질서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 새로운 세계를 향한 자유이자 희망의 길을 열어준다. 즉 가장 창조적 활동의 패러다임이라고 할 수 있다.p.35(박이문)

 

특히 실러의 글 '미적 형식을 사용할 때의 필연적 한계'를 연상시키는 내용이 있어서 옮겨둔다. 실러는 그 글에서 미적, 통속적, 철학적인 글의 특징을 구분하고 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일반화해서 개념적으로가 아니라 유일무이한 단독적 측면에서 그것을 인식하고, 재현하고, 표현할 때만 그것들 하나하나를 진정한 의미에서 알았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예술적 인식의 의도, 양식 및 서술은 과학적 혹은 철학적 인식의 의도, 양식 및 서술과는 정반대이다. 후자의 인식 및 표현양식에 내재된 의도가 인식대상을 추상적인 단일화된 동일자로서의 개념 속에 개별적, 단독적 존재를 한데 묶어 추상적으로 파악하려는 데 반해서 전자는 모든 인식대상을 각기 그것의 구체적인 개별자the particular 및 단독자the singular로서 접근하고 인식하며, 서술 및 재현하고 표현하려 한다.p.39(박이문)

 

임태승은 동아시아 미학 입장에서 디지털 미학에 조언하고 있다. 동아시아 미학이 생소해서 재미있을까 싶었는데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글에 잘 드러나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디지털 세계에 대해 우리 모두 어렴풋이 걱정하고 있는 그 내용, 디지털이 우리 주체와 삶을 먹어버릴 수도 있다는 문제를 동아시아 미학이 어느 정도 해결해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맥락의 주장이다. 우리가 실제로 느끼고 있다시피 디지털은 수용자를 수동적으로 만든다. 디지털이 제시하는 내용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쉽게 노출된다. 장, 단점이 있겠고, 그 내용을 '이데올로기'라고 표현한다면 어떤 면에서는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지만 어쨌든 동아시아 미학은 내용이 분명했고, 예술을 통해 강제가 아니라 수용하는 사람이 납득하면서 그 내용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여 왔던 것이다.

 

유가적 예술은 단순히 심미적 향수가 아닌 담론의 생산과 유지의 통로가 되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유가에서의 이러한 전략과 전술은 전적으로 강압에 의해 실현된 것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유가는 예술의 원리일 뿐 아니라 도덕과 정치의 원리이기도 했기 때문에, 오랜 세월에 걸쳐 "예술이 나타내는 유가"를 받아들이는 동안 사람들의 심미안과 심미 인식은 서서히 그 정치, 도덕적인 면에 적응되거나 혹은 이데올로기적인 요소와 순수하게 심미적인 요소에 대한 인식이 전도되면서 유가화儒家化됐다. 이제 그들의 눈과 생각에는 예술이 보여주는 유가가 이데올로기이면서 동시에 생활이 되었다. 이러한 "동의"는 내부적 의사소통의 효율을 이끌어내었고, 또한 이는 궁극적으로 동아시아 사회의 "사유적 안정성"에 엄청난 이바지를 하였다.

이처럼 동아시아 예술과 동아시아 미학 역시 알고리즘이나 혹은 아이콘과 코드의 조합관계라는 과학성, 또는 입력과 출력의 계산된 작동 등에 의해 꾸려지는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결과적으로 "동의한 신념" 아래 이루어져왔다.p.76-77(임태승)

 

이광래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관한 최신 정보들을 나열하고 있다. 푸코 연구자라는 소개글 때문에 기대를 했었는데 이 글에서는 현대미술과 철학(푸코도 다루기는 하지만 데리다와 들뢰즈가 많이 다루어짐)에 집중하고 있다. 문체와 사유 방식이 프랑스어스러워지셨는지 다른 세 저자에 비해 술술 읽어나가기가 조금 어려웠다. 어쨌든 이 글에서는 과연 현대미술이 끝난 것인가, 아니면 또 다른 시작을 위한 과정인가에 대해 논하고 있다. 역시 비극과 숭고, 거리두기에 대한 실러 미학이 연상되는 부분이 있어 옮겨둔다.

  

나. 거리두기의 전략

주지하다시피 재현미술의 특징은 작가의 의식과 사물 사이에 틈이 벌어질 수 없는 무간격adhesion의 원칙을 고수하는 데 있다. 반면에 포스트모더니즘에 영향을 받은 현대미술은 대체적으로 사실성보다는 관념성을 우위에 놓고 작가의 주관적 시각으로 모든 것을 바라봄으로써 작가의 의식과 사물 사이에 적절한 거리감을 유지하는 객관적 시각을 중시한다. 이 점에서 현대미술은 데리다의 말대로 의미가 완결되지 않은 채 좌우로 활동하는 이른바 거리두기espacement라는 차연작용, 즉 간격distance의 원칙 아래서 전개되고 있다.p.151-152(이광래)

 

네 저자 중 가장 관심이 많이 생겼던 분이다. 조광제는 거울- 책- 사진- 영화 등의 매체 변화 역사를 되짚으면서 주체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제시하고, 특히 지금 우리 앞에 닥친 '가상현실'과 유비쿼터스적인 삶에 대해 존재론적, 형이상학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메를로퐁티 연구자답게 우리의 주요 존재 기반이라고 할 수 있는 '몸'과 현대 기술의 관계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나가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2010년 4월에 출간된 이 책(강의는 더 이전에 했을 것 같다)을 지금 읽을 때 세상이 또 많이 변하고 있음을 생각한다. 가상현실과 유비쿼터스, 물리공간과 전자공간에 대한 설명을 요즘에는 트위터나 스마트폰의 각종 어플에 대입해보아도 그의 설명 내용이 어긋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유비쿼터스적인 세계에서는 세계 전체가 인간 몸의 뉴런들처럼 네트워크로 연결되고, 그 가상의 네트워크에서 생성, 유통되는 정보들은 그 양을 헤아리는 것조차 어려워지게 된다. 그야말로 가상현실의 장점이라 할 수 있는 시공간 초월은 인간이 물리적 한계를 일정부분 넘어설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이렇게 급격하게 매체 환경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이를 존재론적, 형이상학적으로 해석해야 한다. 이러한 세계에서 우리 주체와 정체성, 몸의 감각과 정신의 인식이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알고 이에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한다.   

 

물질공간과 이미지 공간

전자공간의 무제한성과 허구성은 이미지 자체의 존재론적인 성격에서 비롯되며, 물리공간의 실체성과 비효율성은 물질 자체의 존재론적인 성격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이 말하는 물리공간과 전자공간의 충돌은 존재론적으로 보아 물질공간과 이미지 공간의 충돌로 달리 이해할 수 있다.

..."사람은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진 살아 있는 최고의 시스템이다. 사람의 육체는 수많은 물질과 조직으로 이루어진 물질공간이며, 정신은 무한한 정보의 창조와 흐름이 이루어지는 정보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라는 그들의 언급에서 간취할 수 있다. 철학적으로 보면, 정신은 근본적으로 상상을 통해 기존 이미지를 무제한으로 표상해내는 기능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고, 몸은 모든 다른 물질들과의 물리물질적인 작용의 교환을 수행한다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지와 물질을 구분할 수는 있어도 분리할 수는 없다. 어떤 방식으로건 물질적인 기반이 없이는 이미지가 성립할 수 없고, 이미지는 항상 물질적인 기반 위에 '올라타고서'라야만 이미지로서 감각 혹은 지각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존재의 차원에서는 이미지와 물질이 워낙 딱 들러붙어 있기 때문에 분리가 안 되지만, 인식의 차원에서는 둘이 전혀 성격을 달리하면서 정확하게 구분된다.p.224-225(조광제)

 

(메를로퐁티+조광제)몸 공간은 다중적인 층들이 결합되어 통일성을 형성하고 있다. 첫 번째 층은 물질공간으로 하나의 물질적인 덩어리의 층이다... 두 번째 층은 감각-운동적인 생명공간이다. 바깥에서 오는 자극들을 감각과 운동으로 바꾸어내고 안에서 오는 자극들을 감각과 운동으로 바꾸어내면서 전체적으로 강력하고 복합적인 되먹임feedback의 관계를 통해 원심성과 구심성에 의한 수렴과 분산, 분열과 통일, 국소성과 전체성 등을 한꺼번에 실현하면서 통일되어 있는 몸 공간의 층이다... 몸의 실천적인 능력을 가능케 하는 몸틀이나 습관 혹은 체화된 무의식의 공간은 바로 이 몸 공간의 층에서 이루어진다. 세 번째 층은 의식공간의 층이다. 몸 공간의 이 층은 대단히 가상적이다. 몸이 감각과 운동을 수월하게 수행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되면 앞서 말한 두 번째 몸 공간의 층에서 생겨났다가 없어지는 일시적인 층이 바로 이 의식의 층이다.

몸 공간의 이 세 가지 층은 존재론적으로 볼 때 각기 분리되어 따로 존재하지 않고 하나로 통일되어 존재한다. 그래서 몸 공간의 바탕이 되는 물질적인 층은 여느 사물들이 차지하고 있는 물질적인 공간과 연속성을 유지하면서도 성격을 달리한다...

요컨대 몸 공간 속에서 이루어지는 매체관계는 몸 공간을 구성하는 각종 물리생리적인 유형의 기관들과 그 기관들의 관계에서 확립되어 있는 각종 무형의 회로들 간에 철저히 복합적이고 통일된 되먹임의 네트워크체계를 형성한다.p.236-237(조광제) 

 

여력이 된다면 조광제의 메를로퐁티 관련 서적과, 조광제가 인용한(오래 전에 사놓고 아직 다 읽지 못한) "인터넷, 하이퍼텍스트 그리고 책의 종말"을 읽고 싶다. 조광제의 글을 읽고 있으려니 실러가 그의 미학에서 '가상'을 부르짖었던 것이 계속 생각났다. 가상을 특징으로 하는 예술은 여전히 물질공간과 전자공간 사이에서 매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실러가 말했던 근대적 미적 교육의 수단이었던 '비극'은 20세기를 거쳐오면서 영화가 대신할 수 있게 되었고, 이제는 가상현실이 예술적으로 가상의 이념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상현실과 유비쿼터스가 실러의 미적 교육을 현대에서 실천할 수 있는 매체가 될 수 있는지의 여부, 고민해볼만한 주제인 것 같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11.07.30.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