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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과 함께 그리스 최고의 사상가로 꼽히는 인물로 서양지성사의 방향과 내용에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그가 세운 철학과 과학의 체계는 여러 세기 동안 중세 그리스도교 사상과 스콜라주의 사상을 뒷받침했다. 17세기말까지 서양 문화는 아리스토텔레스주의였으며 수백 년에 걸친 과학혁명 뒤에도 아리스토텔레스주의는 서양사상에 여전히 뿌리 깊게 남아 있었다.아리스토텔레스가 연구한 지식 분야는 물리학·화학· 생물학·동물학·심리학·정치학·윤리학·논리학·형이상학·역사·문예이론·수사학 등 매우 다양하다. 가장 큰 업적은 형식논리학과 동물학 분야의 연구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동물학은 이제 낡은 것이 되었지만, 19세기까지는 관찰과 이론 면에서 그의 연구를 넘어선 사람이 없었다. 철학 분야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아직도 살아 있다. 삼단논법론은 이제 형식논리학의 작은 부분일 뿐이지만, 그의 윤리학·정치학·형이상학·과학철학 등은 현대 철학자들 사이에서도 논의되고 있다.이 책은 그 중에서도 윤리학에 관한 책으로 이미 고전이 될 정도로 유명한 책이다. [인상깊은구절] 행복한 사람에게는 모든 좋은 것이 있다고 하면서 외적인 선들 가운데 최대의 것인 친구가 그에게 필요 없다고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만일 남이 잘 해주는 것을 받는 것보다는 남에게 잘 해주는 것이 더욱 친구의 특색이 되는 것이요, 선을 베푸는 것이 선인 및 덕의 특징이요, 또 낯선 사람보다 친구에게 더 잘해주는 것이 더욱 아름다운 일이라고 할진대, 선인에게는 자기가 잘 해줄 사람이 필요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우리가 역경에 있을 때에 더 친구가 필요한가, 그렇지 않으면 순경에 있을 때 더 필요한가 하는 문제가 제기되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이 역경에 처했을 때 자기에게 이익을 줄 사람들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순경에 있는 사람도 자기가 잘 해줄 사람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확실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사람을 고독하게 한다는 것은 부조리한 일이다. 혼자 있다는 조건에서 전세계를 얻는다 할지라도 아무도 이것을 선택하지는 않을 것이기에 말이다. 사실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요, 그 본성이 남과 함께 살도록 돼 있다. 그러므로 행복한 사람도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사는 것이다. 그리고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나 우연히 만난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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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을 위해서 살아야 하는가?" 또는 "인간을 어떠한 존재로 보아야하는가?" 라는 질문은 고대로부터 철학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이러한 인간 존재에 대한 충분한 고찰은 플라톤에서부터 출발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러나 플라톤은 인간에게 이데아(Idea)라는 세계를 향해서 나아가야 하는 불완전한 존재로의 멍에를 씌웠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실천가능성 없는 철학은 절름발이라는 생각으로 인간에게 중요한 행복을 위해 진정으로 고민한 사람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책에서 그의 스승과는 다른 입장에서 인간을 바라보고 그 인간의 존재 근거를 행복에서 찾는다. 그는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德을 행해야 한다고 말한다. 덕이라는 것은 무릇 어떤 존재를 그것이 지니고 있는 상태보다 더 좋은 처지에 이르게 하며 그것의 기능도 잘 발휘시켜 줄 수 있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덕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
덕을 실천하는 데 있어서 아리스토텔레스는 세 가지의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中庸이라한다. 덕을 실천함에 있어서 過度나 부족은 좋은 상태가 못된다. 이것들은 모두 惡德의 상징이다. 중용이라는 것은 지나치지 않음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둘째, 행복의 조건으로 중용과 더불어 절대자에로의 思考를 말하고 있는데 여기서 절대자에로의 사고라는 것은 결국 理性을 대변하고 있다. 이 이성이야말로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 중 가장 神的인 것이다. 마지막으로 습관을 말한다. 그는 이 책에서 용기나 절제 등이 습관에 의해서 발생될 수 있으며 중용에 의해서 보존된다고 말한다. "행복이란 덕에 입각한 정신의 어떤 활동이다." 이 간단 명료한 정의 속에는 위의 세 가지가 모두 포함되고 있으며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관에 대한 그림자이다. 행복은 덕을 실천하는데서 오고 덕은 모든 것을 가장 좋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하는데 그것의 방법은 언제나 중용을 지키는데 있다.
이 책은 대부분의 포스트모던 시대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도덕적 해이 현상(moral hazard)에 일침을 가한다. 이제 행복의 기준은 돈, 명예, 性的 쾌락 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러한 것들이 인간밖에 존재하는 것들이라는 것을 진정으로 모르는 듯하다. 인간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가장 인간적이고 神的인 이성의 계발을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러한 이성의 계발은 도덕적 덕목들의 습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프랑스의 유명한 사회학자 뒤르케임은 그의 저서 자살론에서 인간의 자살은 사회의 아노미(anomie) 현상에서 비롯된다고 지적한다. 결국 아노미 현상은 인간이 인간 외적인 要素에만 치우치고 인간 내적 요소인 이성을 위해서 살지 않기 때문에 오는 혼란을 말하는 것이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러했듯이 우리도 이제 인간의 진정한 행복에 대해서 진지하게 再考해야 하는 때를 맞이하고 있다. [인상깊은구절] 행복이 덕에서 비롯된 활동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마땅히 최고의 덕에서 비롯된 활동이라야 할 것이다. 그리고 최고의 덕이란 우리들 속에 내재해 있는 최선의 부분의 덕이 아닐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