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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공부를 하면서 느끼는 한계점이 있다. 내가 이렇게 공부한다고 해서 세상이 변하지 않는데 혹 나만, 우리 아이만, 우리만 손해 보는 것은 아닐까 하는. 세상의 정의에 대해 이야기하고 세상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고 토론하지만 결국엔 비관적인 현실을 알게 되고 그러면서 안타까워한다. 그럼에도 내가, 우리가 인문학을 공부하는 건, 이 세상이 조금이라도 나아지길 바라는 생각 때문 아닐까? 적어도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내가 살던 세상보다 나아질 거라는 기대감 같은 것? 입시 경쟁과 취업 경쟁, 더 나아가 결혼이나 성공에 대한 무한한 경쟁 체제 속에서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야 할지 꼭 한번쯤은 생각해 봐야 하는 것들이 많은 요즈음이지만 그렇지 못하다. 생각이나 말은 아이들 편에서 그들을 응원하고 싶지만 나 역시도 현실의 벽 앞에 고민할 때가 많다. 나도 울 아이들을 무한 경쟁의 세상 속에 내 놓고 이기라 채찍질 하는 것은 아닌지 하루에도 열두 번 나 혼자만의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런 고민 앞에서 알게 된 책이 있다. ‘경쟁이 없으면 우리는 발전하지 못할 것인가, 소비는 우리를 행복하게 해 주는가, 내 편이 아니면 적일 뿐 이라고?, 넘쳐나는 자유가 우리를 구원할 거라고? 약육강식만이 생태계의 질서라고?, 에둘러 가면 뒤쳐질 뿐이라고?, 경제 성장이 안 되면 우리는 불행해질 것인가?’ 이렇게 모두 7개 꼭지들로 구성된 책은 지금 현실의 고민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무한 경쟁이라는 전쟁 통에 아이를 내 놓고 싶은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아이가 뒤처지는 것이 싫은 부모는 아닌 척 눈을 감아 버린다. 나도 그런 부모가 되고 싶지 않아 자유를 주고 원하는 것을 해주고 있지만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고민했었다. 이러다 우리 아이만 죽도 밥도 안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지금도 여전히 고민하지만 아이의 의사를 존중하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아주기로 했다. 어차피 100세 인생 조금 늦는다고 큰 일 나는 건 아닐 테니까. 세상이 과연 바뀔 수 있을까 늘 생각한다. 기왕이면 좋은 쪽으로 바뀔 거라는 믿음으로 인문학 공부를 한다. 공부를 하면서도 회의감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좋은 세상이 되길 빈다. 실패를 해도 다시 일어 설 수 있고, 에둘러 가도, 조금 뒤쳐진 듯 움직여도, 괜찮다고 격겨해 주는 그런 세상이 되고, 강한 사람만 살아남는 세상이 아닌 곳. 그런 곳이 될 수 있도록 우리 어른들이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