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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명탐정의 규칙 저자 : 히가시노 게이고 출판사 : 재인
히가시노 게이고가 쓴 작품은 정말 많이 읽었고, 읽어보진 않더라도 책에 관심이 있다면 다들 알고 있을 작가라고 생각된다. 다작을 하는 작가이기에 더욱 좋아하는 작가이다.
작품은 크게 추리소설과 추리소설이 아닌 장르로 나뉜다. 추리가 아닌 장르는 로맨스, SF 등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쓰는 경향이 있으나 전체적인 경향은 일정한 편이다. 추리 소설에서 탐정 또는 형사가 찾아야 할 것을 보면 크게 '누가' 그랬는지, '어떻게' 그랬는지, 또는 '왜' 그랬는지 세 가지로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기본적으로 범인을 찾는게 기본이고 밀실이나 불가능한 알리바이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을 푸는 것이 메인이다. 1980년대 정통 추리 장르의 소설을 많이 썼던 작가는 어느 시점부터 추리보단 인물에 집중하는, 즉 왜 이런 일이 벌어지게 되었는지 인물을 탐구하는 방향의 추리소설을 많이 쓰게 되었다.
그렇다고 그가 트릭에 약하냐하면 또 그건 아니다. 대뷔작인 '방과 후'와 다음 작품인 '졸업', '하쿠바산장 살인사건' 등을 봤을 때 트릭이나 알리바이에 약한 작가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왜 이렇게 변했을까? 그의 심정에 어떤 변화가 찾아와 작품 스타일이 변하게 되었을까? 내가 그의 작품을 시대별로 꾸준히 찾아 읽는 이유는 단순히 재미도 있지만 이미 많은 책을 읽은 후라 멈추기도 힘들고 이렇게 변한 그 마음을 이해하고 싶어서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러한 작가의 심경 변화에 대한 답을 주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소설은 꽤 특이한 구성을 가지고 있다. 우선 주인공이 소설 속에서 조연인 형사이다. 명탐정이 등장하기 전 사건을 먼저 접하지만 항상 헛물을 켜고 결국 탐정의 추리를 듣는 그런 역할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이 소설에서 조연을 맡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형사이다. 그래서 독자와 대화하며 일부러 상황에 맞게 엉뚱한 사람을 추리하고 적절한 시기에 탐정에게 해결을 토스하며 탐정의 추리에 놀라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그 모든걸 알고 우리에게 설명해준다.
마치 영화 데드풀과 같이 제4의 벽을 깨는 등장인물인 것이다. 대개 연극에서 많이 사용되며 영화, 만화 등 영상 요소가 있는 곳에서 등장 인물 외의 관객을 무시하는 암묵적인 장치인 제4의 벽을 깬다는 것은, 관객과 소통하기 위한 장치가 될 수 있다.
동의를 구하거나 극적 재미를 위해 조금씩 사용하는 이런 장치를 이 책에서는 과감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사용한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밀실 살인의 범인을 찾는 과정에서는 조금 더 과감하게 드러낸다.
작가가 어떤 말을 하고 싶은지 와닿지 않나? 과거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중 일본 출판계와 추리소설계의 현실을 비난한 블랙코메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었다. 양산형 작품을 쏟아내거나 자극적인 문구로 홍보하는 등의 행위 등을 비판하는 소설이었다.
이 책은 좀 더 본격적이다. 추리소설 자체의 안일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천편일률적인 추리소설의 구성과 그에 대한 자기 반성을 한다고 해야 하나? 총 12개의 단편과 에필로그, 명탐정의 최후로 이루어진 이 작품은 각각 전형적인 주제를 담고 있다. 밀실 살인, 전형적이지 않은 의외의 범인, 폐쇄된 산장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다잉 메시지, 알리바이 파헤치기, 주말 드라마에서의 추리 소설, 토막 살인을 벌인 이유, 살인 후 도주하는 범인을 봤으나 사라진 사건, 동요에 적힌 대로 벌어지는 살인 사건, 목 없는 시체, 흉기가 없어진 살인 사건이다.
추리 소설을 좋아한다면 어디선가 한번씩은 봤을 법한 주제들이다. 저자는 이를 적절히 비틀고 풍자한다. 독자가 예상할 수 없게 이야기하고 그런 방식들은 결국 한계에 달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듯 하다.
첫번째 작품인 밀실 트릭에선 범인을 밝혀내고 밀실 트릭을 풀기 전 등장인물들은 트릭을 푸는데 관심이 없다. 결국 밀실 트릭은 풀리게 되어있고 누가 이 일을 했느냐에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두번째 의외의 범인을 밝히는 것도 비슷하다. 반전에 반전을 주기 위해 보통의 추리소설에선 처음에 적대적이고 공격적인 성향을 가진 용의자는 범인이 아니다. 심지어 연쇄 살인의 다음 희생자가 되는 경우도 매우 흔하다. 여기선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이중인격을 가진 자기 자신을 범인으로 설명하며 다시 한번 비꼬고 있다. 다음 있는 폐쇄된 산장에서 사건도 비슷하다.
다잉 메시지와 알리바이 편에서는 더욱 놀라운 비판이 이어진다.
알리바이 편에서도 신칸센을 타고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 없는 알리바이가 있는 용의자가 나온다. 작품에서 다른 용의자를 찾을 궁리도 하지 않고, 용의자도 자신이 범인임을 숨기고 싶은 생각이 없다. 다만 알리바이를 풀지 않으면 나를 잡아갈 수 없을 것이란 의기양양함만 보일 뿐이다. 탐정은 그가 신칸센이 아닌 SEJA라는 좀 더 빠른 열차를 탔다면서 그를 잡아가고 범인은 그보다 멋진 알리바이 트릭이 있다며 설명하지만 듣지 않고 끝내버린다.
그 뒤로도 비슷한 전개와 풍자가 이어진다. 심지어 열두번째 이야기에서 조연인 오가와라 영감은 수사 도중 사건의 진실을 제대로 추리해낸다. 이후 덴카이치 형사는 엉뚱한 추리를 하며 죄 없는 사람에게 살인의 누명을 뒤짚어씌우고 새로운 트릭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조연인 형사는 탐정의 추리에 감탄하며 마무리하는 식이다.
마지막에 '명탐정의 최후-마지막 선택' 편에서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와 비슷하게 여러 탐정들을 섬에 초대하고 사건이 벌어진다. 탐정들이 차례차례 살해당하고 마지막에 덴카이치 탐정과 추리 소설 연구가 두 명만 남게 된다. 여기서 범인은 추리 소설 연구가가 아니라 주인공이자 탐정인 덴카이치이다. 결국 모든 작품에서 용의선상에서 벗어나는 것은 주인공인 형사와 탐정인 점을 비꼰 것이다. 저자가 이런 식으로 가장 전형적이고 재밌는 트릭들을 비꼰 이유는 작중 등장인물들이 설명해준다. 극중 재미를 위해 도입하는 요소들에 대한 비판이다.
이유가 없는 밀실, 산장에 고립되는 일 등은 실제 살인 사건에서 잘 일어나지 않고 이런 식으로 용의자를 줄이는 것은 오히려 범인에게 불리하기 때문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는 용의자를 특정지어 탐정이 활약할 배경을 만들어주는 것 이외의 효과가 없다.
또한 도중에 '내가 그를 죽였다-불공정 미스터리' 편이 있다. 이 편을 읽다보면 저자가 결국 독자에게 알려주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아무리 열심히 책을 읽고 추리를 하더라도 모르는 정보가 생겨 범인을 추리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한 비판을 한다. 즉 독자와 두뇌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독자가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란 것이다. 그것은 앞서 설명한 다잉메세지 편에서도 비슷하다. 결국 다잉메세지 원본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어떤 글씨를 어떻게 썼는지 해석하는 것은 작가의 마음에 달렸기 때문이다.
추리소설에 대한 풍자로 보면 유쾌하지만 작가를 모르고 이 책만 접한다면 아주 재밌게만 읽기는 힘든 작품이다. 왜냐하면 추리소설에 대한 비판으로 350페이지 이상을 채우니 소설 속 사건에 대한 집중은 할 수 없게 쓰여진 책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 히가시노 게이고의 필체와 주제가 변한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있다. 초반 작품들이 넘어간 후 여러 시도를 했었다. 추리소설이지만 범인을 먼저 보여주고 범인의 관점으로 시작하는 '용의자 X의 헌신' 같은 작품이 있고, 추리를 전개함과 동시에 의심되는 인물들이 사실은 가족을 위해 거짓말을 했기에 일어난 사건들을 모아놓은 '신참자'같은 작품도 있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외사랑' 등 아예 추리와 벗어나는 작품도 많이 썼다.
또한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의 경우가 이 작품 전후로 나온 도전적인 작품이다. 범인은 용의자 두 명 중에 있지만 누가 범인인지 범인들도 모르고 있는 가운데 범인 찾기의 힌트를 주고 작품이 끝나버린다. 범인이 누군지 밝히지 않았지만 분명히 범인이 존재하고 불공정하지 않게 작품 내에 그 힌트를 모두 주고 끝나는 색다른 소설이다. 단순히 작가가 주는 대로 수동적으로 읽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범인을 찾아야 독서가 끝나는 특이한 형식의 책이었다.
이러한 시도들과 변화를 이해하게 만든, 히가시노 게이고의 팬이라면 꼭 한번 읽기를 추천하는 작품이다. |
| 히가시노 게이고 작품은 빨리 책을 다 읽었으면 하는 전개와 반전 결말로 유명한데 이번에는 작품의 화자가 추리소설의 트릭을 미리 이야기하고 전개를 해 가니까 희곡 느낌도나고 좋았어요. 워낙 다작을 하는 작가라 최신 작품도 재발행된 옛 작품도 하나 하나 도장깨기 하듯 보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모든 법칙을 알면서 그것을 깨지 못하는 경감님께 엄청 공감이 가면서 또 안쓰러웠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