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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어려서 처음 오스카 와일드라는 이름을 들은 게, 위인들의 재미있는(혹은 감동적인) 에피소드만을 따로 모아 놓은 책이었습니다.
어떤 작가가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작품 100선을 추려 달라"고 그에게 요청하자, "내가 쓴 게 아직 9편밖에 없는지라 무려
100作을 고르는 건 도저히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이게 정말 오스카 와일드 본인에 관련된 실화인지, 아니면
다른 유명인의 비슷한 이야기를 두고 각색된 풍문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비슷한 이야기로, 조지 버나드 쇼에게 "가장 위대한 문인
12명을 꼽으라고 하자, "조지 버나드 쇼, GB 쇼, 쇼 조지 버나드" 등 자기 이름으로만 12칸을 채웠다는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예술가도 그렇지만, 문인은 특히나 자신에 대한 긍지가 하늘을 찌르는 게 보통입니다(위대하신 제 모님께서 해
주신 지적 덕분에 오타 수정). 물론 벼는 익으면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겸손한 모습은 수양의 증거이니 그건 그것대로 보기
좋습니다. 하지만 어려서부터 탁월한 재능을 주위에서 인정 받아 왔고, 나이 들어서는 많은 대중에게 자신의 책을 팔고, 그 내용의
빼어남 덕에 합당한 존경과 확고한 사회적 평판을 얻은 사람이라면, 지나치지 않은 범위에서 자기 자랑 좀 한다고 너무 질시를 보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예컨대 얼마 전에 타계한 최인호 선생 같은 이도 "나는 괴물과 같은 존재였다."며 자기 자랑에 별로
주저함이 없는 모습을 자주 보였습니다. 그래서, 위의 오스카 와일드에 얽힌 다소 치기어린 저 일화 역시, 마냥 보기 거북스럽거나
민망하지만은 않은 느낌입니다.
예를 들어 <살로메> 같은 희곡은, 어떤 분명한 주제를 도식화하거나 추출할
필요를 거의 느끼지 못할 만큼, 감각적이고 퇴폐적인 분위기 창출 효과가 압도적입니다. 과연 "예술을 위한 예술", 심미적 목적
외에 그 어떤 공리적 배려도 필요치 않은, 예술지상주의의 승리를 충분히 인정해 수 있는 위대한 성취입니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역시 마찬가지죠. 문장도 아름답지만, 초상화와 실물이 노화와 상록(常綠, 에버그린)의 운명만 서로 바꾸어 기막힌
사연을 풀어 나간다는 발상부터가 얼마나 신선하고 충격적인가요.
오스카 와일드는 스스로 자초한 스캔들로 곤경에 빠지기
전까지는, 셀러브리티로서 대단히 화려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던 처지였습니다. 여튼 그는 우리가 잘 알 듯, 예술지상주의 노선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행복한 왕자> 등 몇 편의 동화를 창작하기도 했습니다. 이 작품들의 가치는 사실 번역본으로는 잘
알 수 없고, 원문(어휘 수준이야 당연히 동화이니 높지 않습니다)을 읽어 보고 나서야 어느 정도 평가가 가능할 것입니다.
안
데르센의 경우 노년에 들어서야 동화 집필을 시작했고, 이에는 아마도 그의 지극히 불행했던 어린 시절, 그리고 젊은 시절 고생
가득했던 초년에 대한 보상심리가 강하게 작용하지 않았을까 짐작합니다. 하지만 오스카 와일드는, 귀족 출신은 아니라도 중산층 레벨을
훨씬 뛰어넘는 명망가 가문의 소생입니다. 그리고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지극히 애상적인 분위기로 가득 채워진 이 동화들은, 아직
그의 나이 40이 되기 전에 창작되었습니다. 다소 끔찍한 몇 가지 설정이 있긴 하지만, 性的 암시나 퇴폐적 묘사를 아동물
수준에서나마 풍겨 보려는 의도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가 보였던, 당대의 기준에서 용납 불가였던
파격적 행각도, 영원히 동심의 세계에 머무르려는 그의 천진하고 때묻지 않은 심성의 발로가 아니었을까 생각도 듭니다, 이를 두고
굳이 현대적 gender 담론을 개입시킬 필요도 없이 말입니다. 행복한 왕자는 옷과, 살점과, 관과, 장식과, 마지막에는 눈까지
모두 벗어 주고 빼어 준 채, 초라한 알몸이 되어 버림 받습니다. 마치 예술이라는 cause를 위해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를
연상하게도 합니다. 외면의 화려함과 허세, 과시적 낭만을 그리도 집요히 추구하며 살았던 그가, 일견 참으로 어울리지 않는 이런
세계를 그것도 동화의 포맷을 빌려 구현하는 모습을 보며, 사람의 내면이란 참으로 알 수 없는 요지경임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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