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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마치는 산을 내려오며 하부가 오르는 에베레스트 남서벽 정상을 멀리서나마 카메라에 담으려고 하부를 기다린다. 허나 하부의 모습은 나타나지 않고.. 후카마치 자신이 한 말에 자극을 받은 하부가 노멀 루트를 이용 정상에 오르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하부가 오랫동안 정상에 오르지 않는 모습이 이상하게 여긴 후카마치는 에베레스트 남서벽에서도 가장 위험하다는 지대를 이용 정상에 오르는 모습이 포착된다. 1924년 지질학자 오델의 눈에 띈 맬러리와 어빈이 향하던 에베레스트 꼭대기를 향해 하부는 올라간다. 하부의 모습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뒤덮인 구름으로 인해 보이지 않게 되며...
일본으로 돌아온 후카마치는 키시 료코와 사귀기 시작하며 나름 정상적인 생활에 몰입하려하지만 알 수 없는 허전함과 하부가 부르는 듯한 느낌을 지울수가 없다. 료코는 이해한다. 후카마치가 다시 에베레스 정상에 하부가 올랐는지 알고 싶어 떠날 것임을... 료코의 이해를 얻은 후카마치는 하부의 발자취를 따라 에베레스트에 오르기 시작한다.
하부처럼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후카마치.. 모든 산들의 왕이라 불리우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도달한다. 정상에서 바라본 모습은 그를 매혹시키기에 충분하다. 다시 힘든 시간이 남아 있다. 산을 내려오며 점점 심해지는 바람과 추위와의 싸움속에서 그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로한 가운데 다시 환영을 보게 된다. 후카마치 자신을 끌어 당기는 하부에 이끌려 산에 왔지만 다시 하부에게 이끌려 그가 있는 곳까지 가게 되며 그곳에서 하부와 맬러리... 그리고 하부가 자신이 올거라 믿고서 남겨 두었던 비상식량과 역사적 진실의 열쇠인 필름을... 하부는 보게 된다. 1924년 맬러리의 모습을....
에베레스트는 산이 허락한 사람만이 오를수 있다고 들었다. 에베레스트는 여전히 클라이머들에게는 꿈의 산이다. 두 남자.. 하부와 후카마치....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 산에 오른다. '신들의 봉우기'에 나오는 등장인물들은 전부 진진하다. 웃음이 빠진 만화가 재밌기가 쉽지 않은데 이 만화는 시종일관 진지하지만 재밌는 만화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정상에 오른 사람들은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어 다시 산에 오른다. 산을 향한 끊없는 열정과 애정을 가지고 산에 오르는 사람들..... 요즘 한창 가을 단풍이 예쁘게 물들고 있는 산들이 많다. 가을 단풍도 볼겸 모처럼 친구들과 산에 갈 계획을 짜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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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을 올라가고 또 내려오는 일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인생의 오르막과 내리막 정상과 바닥 도전과 실패 쉼없는 노력 그리고 가까스로 얻어지는 성공. 유메마쿠라 바쿠 원작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 <신들의 봉우리> 이 만화는 애들용이 아니다. 인생의 산에 오르는 도전을 하고 있는 당신 혹은 그 도전을 슬그머니 그만둬 버린 당신, 어느 순간 정점을 찍고 돌아서 산을 내려온 당신, 그저 멀리서 산을 바라보기만 했던 당신. 그런 우리들 모두를 위한 만화다. 에베레스트 등반에 관한 이 만화는 웃음기 따윈 하나도 없이 시종일관 진지하다. 산소통 없이 에베레스트의 꼭대기를 오르려는 하부 조지과 그를 쫓아 산에 오르는 후카마치. 그 도전은 인생 모두를 희생하고 체력을 기르고 조사하고 자신을 깎는 노력의 노력을 이룬 후에도 산이 허락하고 신이 허락한 이에게만 겨우 가능한 그런 도전이다. 살아서 산에서 내려와야만이 의미가 있고 산에서 죽는다면 쓰레기가 될 뿐인 도전. 그럼에도 그는 산을 오르는 일을 포기할 수가 없다. 산을 둘러싼 그들의 그의 무모한 도전을 보면서 책을 읽는 내내 우리는 그리고 책 속의 그들은 모두 묻는다.
우리는 왜 산에 오르는가? 그들은 왜 산에 오를까? 인간은 왜 산에 오르려고 하는가? 그리고 책을 덮었을 때 모두들 저마다의 답을 가지게 될 것이다. 책 속에는 치열함이 있다. 그건 인간을 거부하는 험난한 산에 대한 도전이고 자연에 대한 도전이며 인생에 대한 도전이고 인간과 자신에 대한 도전이다. 그래서 산을 오르는 일은 인생을 살아가는 일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멀리서 그저 바라보며 즐길 것인가 적당히 오르고 내려오기를 반복할 것인가 한계까지 밀어붙여 결국 그 끝에 서 볼 것인가. 넘어서지 못한 채 쓰러져 버릴 것인가 장대하고 웅장하고 치열한 만화 <신들의 봉우리>가 5권으로 드디어 끝이 났다. 언제나 재미있기 보다 진지한 만화를 그려내는 다니구치 지로의 만화지만 이번 책으로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만화의 어떤 정점에 올랐다는 느낌이 든다. 만화의 결론은 후련했지만 만화책을 덮고 난 내 마음은 그리 후련하지 않다. 오늘도 힘겹게 하루를 버티며 인생의 고비를 오르는 당신에게 권해 본다. - 다락방서 허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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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이름을 남기고 싶어한다. 누군가의 기억으로부터 사라지는 것을 두려워한다. 반면 내가 가진 일종의 정신증은 완전히 그와 반대다. 누군가가 나를 기억하는 것이 싫고, 알은 체를 하면 거북하다. 요즘 나와 같은 증상을 가진 사람들이 서서히 나 여기있소!를 외치는 것 같다. 매장에 나를 홀로 두라는 바구니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최초"라는 타이틀이 가지는 영광은 대체 뭐란 말인가. 여기저기 사방에서 터져나오는 세계최초, 한국최초, 20대 최초... 그 최초 덕분에 많은 이들이 망가지는 것 아닌가. 사실 거짓말로라도 다니구치 지로 작가의 그림체를 좋아한다고 못하겠다. 미디어에서 나와 비슷한 40대의 남녀들이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나와 비슷한 집에 사는 이야기를 대체! 누가! 보고 싶어하겠나. 작가는 매끈하고 예쁜 사람 그림 대신에 보통 사람의 형태를 그대로 가져온다. 그것도 동양인의 얼굴. 턱은 거의가 사각이고 코는 낮다. 볼은 패여 그늘이 졌다. 머리칼도 많지 않아 듬성듬성 아름답지 않다. 이 그림체가 산과 만나면 이야기는 완전 달라진다. 최초로 겨울의 오니슬래브를 정복한 하부의 심장을 또 하나의 천재 클라이머 하세가 단독 등반이라는 이름으로 뽑아버린다. 만화 초기에 나왔던 하부의 손가락 세 개(처음에는 무슨 신호인줄 알았다. 손가락 두 개가 없는 손이 아니라.)는 하세가 가져가 버린 "최초"를 되찾아 오는 과정이었다. 언젠가 엄홍길 대장의 수기 중 한 대목을 읽은 적이 있는데 어머니의 따뜻한 밥상을 먹으려는 찰나 눈을 뜨니 어느 산 벽에 매달려 있었다는. 이 얼마나 끔찍하고 무서운 일인가. 그렇게 하부는 하세가 가져가버린 겨울의 오니슬래브 대신에 단독 그랑조라스에 도전한다. 거기서 그는 추락해서 갈비뼈 늑골을 부러지고 두부에 손상을 입고 맨손으로 기어올라가다 손가락 두개를 동상으로 잃는다. 이 과정을 하부의 수기로 구구절절 표현해내는데. 경고한다. 겨울에 이 만화를 읽지 말라. 아니라면 가스비 아끼지 말고 온 집을 따뜻하게 데우고 손이 닿는 곳에 귤 바구니와 커피 한잔을 두고 봐라. 다니구치 지로 작가가 마음먹고 산을 그리고 마음먹고 사람을 그리고 작정하고 상황에 내 던지면 이런 서사가 나온다. 키시가 등장하면 같이 덜덜덜 떨게 되고 맨손이 아프다. 나중에 다다다다- 소리를 들으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아, 미친! 걍 산에서 내려가!! 라고 소리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꿋꿋하게 만화를 읽고 싶은 독자라면 자신이 현재 안전한 곳에 있다는 사실을 매 분 인지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