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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른이 될까? 어른이 되고 싶어서 빨리 시간이 갔으면 좋겠다고 어린 날의 나는 생각했었다. 학교 다니는 일이 두려웠고 수업시간에 이해 못하는 내용을 지적받을까 봐 겁냈다. 이해 못하는 것에 대해서 질문할 용기가 없었고 뭘 질문해야 할 지도 모르던 터라 그때 그때 눈치만 보다가 대강 넘어가고 시험을 치루면 보통 점수보다 못하게 나오는 과목들에 대해선 불안을 넘어선 공포감이 내 안의 모든 걸 송두리째 빼앗아갔다. 그런 수업시간과 상냥하지 못한 선생님은 나에게 공포의 대상이자 결국 비극으로 끝나고 말 어린 날의 내 운명이라 여겼다. 선생님에 대한 공포감! 아니 나중에 대인기피증과도 약간 관계가 있을 그런 어린 날의 트라우마가 내겐 분명히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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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초반 캐나다의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시골 마을에 교사로 처음 재직하면서, 저자가 겪었던 일들을 소재로 형상화한 소설들이 바로 이 책에 수록되어 있다. 6편의 작품에는 저자가 처음 부임했던 시기로부터 그곳을 떠날 때까지의 교사 생활, 그리고 같은 교실에서 생활했던 아이들과의 추억이 소개되어 있다. 저자 소개 항목에 오랜 시간이 흘러 저자가 67세(1977)되던 해에 자신의 젊은 시절의 경험을 떠올리며 썼다고 하는데, 아마도 처음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당시의 기억이 그만큼 생생하게 기억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처음 부임해서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눈물을 흘리며 억지로 등교했던 빈센토와의 만남과 추억을 담은 <빈센토>가 첫 번째에 수록된 작품이다. 저자가 ‘어린 사내아이들을 가르치며 보냈던 젊은 신참내기 여고사 시절’을 추억하며, 가장 먼저 생각났던 아이가 바로 빈센토였던 것이다. 지금은 의무교육이라는 제도로 인해서 중학교까지 국가가 교육비를 부담하고 있지만, 한국에서도 1950년부터 시작되었지만 그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20세기 초반 캐나다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았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책에 수록된 작품의 배경은 광대한 평원에 위치한 작은 초등학교이다. 아이들의 교육보다는 당장의 생계에 신경을 써야만 하는 사회적 조건, 그리고 먼 길을 걸어서 학교를 오가는 어린 아이들의 현실이 충분하게 느껴졌다.
이 책을 읽으면서 문득 1시간 정도를 걸어 등교해야만 했던 나의 까마득한 중학교 시절이 문득 떠오르기도 했다. 저자에게도 그 시절 아이들과의 만남은 아름다운 추억으로 새겨져 있기에, 오랜 시간이 지나서도 그 서절을 회상하는 작품을 남겼을 것이라 여겨진다. <성탄절의 아이들>에서는 성탄절을 맞이하여 선생님에게 자그마한 선물을 건네는 아이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고, 매력적인 목소리를 가진 닐의 사연을 담은 <종달새>라는 작품 또한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피혁공장을 하는 아버지 밑에서 성장하는 아이들과 그 아버지의 모습을 그려낸 <드미트리오프>, 병든 어머니를 돌보느라 학교에 올 수 없었던 아이의 집을 찾아나서는 교사의 모습이 그려진 <집 보는 아이> 등의 작품을 통해서 당시 사람들의 삶의 모습을 떠올려볼 수 있도록 만든다.
마지막 작품인 <찬 물 속의 송어>에서는 다른 아이들에 비해 나이가 많은 메데릭과 괴팍한 성격의 그의 아버지와의 일화를 길게 형상화하면서, 첫 직장이었던 학교를 떠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고 있다. 특히 나이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은 학생 메데릭이 자신에게 애틋한 마음을 드러내는 마지막 작품은 젊은 여교사의 사랑과 갈등, 그리고 메데릭과의 헤어짐의 순간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기차를 타고 떠나가는 선생님에게 차창 밖에서 꽃다발을 던져주는 메데릭의 모습은 저자에게도, 그리고 독자들에게도 적지 않은 울림을 안겨주고 있는 장면이라고 하겠다. 여전히 대학 교단에서 학생들을 만나고 있기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 잘 기억나지 않는 초임 시절을 떠올리기 위해 애써보기도 했다.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의 ‘청춘’은 소중하기에, 저자 역시 그 시절을 기억하고 추억하기 위해 이 작품을 썼을 것이라 여겨진다.(차니) * 개인 독서 카페인 다음의 "책과 더불어(與衆齋)"(https://cafe.daum.net/Allwithbooks)에도 올린 리뷰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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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과의 첫만남은 수 해전 주말, J와의 약속날이었다. 약속장소는 서점. 서점에 볼 일이 있었던 건 아니고 서점 로비가 넓고 또 냉방으로 시원하기도 하고 그리고 책들도 한 번 둘러 볼 수 있어서 나에게는 일석삼조는 족히 될 만한 약속장소이다. 그러다가 눈에 띄 이 책. '이제 막 청춘의 꽃가지를 교단에 올려놓는 모든 풋내기 교사들에게....(이하생략)' 책 뒷면에 적혀있던 소갯글에 냉큼 이 책을 집어들었다. 우리는 '이제 막' 이라고 할 수는 없었지만 어찌되었건 우리는 여전히 터지지 않은 봉오리를 간직한 신참내기 교사였으니까.
이 책은 J에게 주었다. 그런데 J가 아직까지 연락이 없는 걸 보면 읽지 않았나보다. 가끔 나는 책을 선물하며 아주 작은 포스트잇에 "XX야, 이 책 어떠니? 이 부분 읽을즈음엔 내 생각도 한 번 해주고.... 쭈욱~ 열심히 읽어~" 뭐 이런 따위의 메모를 붙이곤 한다. 그러면 책을 선물하고 얼마지 않아 "책 너무 좋다, 야" 라던가 "요즘 뭐하니?" 하며 문자나 전화가 오기 마련이다. 어떤 책은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연락이 오기도 하고, 더러 아무 연락이 없기도 하다. 이런 장난질(?)은 교실에서도 마찬가지다. 가끔 스케치북에 "사랑하는 XX야, 여기 그림을 그리려고 펼쳤겠지? 그림 그리기 전에 선생님께 와서 뽀뽀 한 방 날려줘" 이런 알콩달콩한 메모들을 적어둔다. 그리고 내게 달려와 느닷없이(?) "선생님 사랑해요" 하며 뽀뽀를 쪽 해주기도 한다.
(가끔 나는 지나친 한담을 늘어놓는게 문제다.) 그러면 책 이야기를 해보자. 이 책은 '빈센토' '성탄절의 아이' '종달새' '드미트리오프' '집 보는 아이' '찬물 속의 송어' 이렇게 6편의 중단편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있는 곳, 교실 공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풍경을 자아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 책을 펼치며 가장 처음 만난 '빈센토' 에는 완전 100% 공감했다. 그러면서 나는 이 작가가 필시 교사시절을 가졌으리라 생각했는데 끝 부분 작가과 작품 소개를 보니 역시 그랬다. '빈센토'는 아이들의 첫 등원을 그린 책인데 입학식이 있는 3월 한 달간의 교실 모습이 꼭 이러하다. 우는 아이들,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는 아이들, 경기하듯 드러눕는 아이들. 7세반은 덜하지만 5세반은 그야말로 여기 저기 곡(哭) 소리가 들려온다. 그리고 그런 아이들과 일과를 마치고 나면 교무실에서 의례 하는 이야기가 '아, 누가 보면 우리가 애들을 잡아먹는 줄 알꺼야' 하며 한 숨을 내쉰다. 이 '빈센토'는 그런 첫등원의 풍경이 얼마나 잘 살아있었는지.
그리고 두 번째 '성탄절의 아이' 역시 우리 아이들 그리고 내 교실의 이야기다. 물론 이야기속처럼 교사와 아이들간의 물질적인 교류가 많지는 않다. 이를테면, 학부모님의 선물같은 것은 대개 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들은 좋아하는 사람에게라면 무어든 주고 싶어 한다. 이걸보면 아이들이 얼마나 솔직한지 알 수 있다.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다는 것이다. '이걸 주면 날 더 좋아하겠지?' 하는 배후의 계산이 전혀 깔려있지 않은 솔직한 감정이다. 그런 아이들이 가져오는 것이 편지, 색종이로 접은 것, 그림, 스티커, 학종이 같은 것들이지만 말이다. '성탄절의 아이' 역시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선생님께 무언가 주고 싶어하는 아이들의 모습이 잘 그려져 있었다.
세번째 '종달새'는 지금의 우리 반 아이와 참 닮았다. 이 아이 역시 정말 고운 목소리로 노래를 잘 하는 아이인데 가끔 교실에서 노래를 할 때면 정말 소름이 돋으면서 머리칼을 쭈뼛하게 만드는 아이다. '종달새' 역시 노래를 잘 하는 아이의 모습을 담았다. 아이들의 노랫소리란 해맑기 그지 없다. 피아노를 치는 나는 슬쩍슬쩍 눈물을 흘리는 졸업식 노래마져 그들의 입에서는 경쾌하고 밝기만 하다. "얘들아~ 감정을 담아서~" 해보면 아이들은 목소리만 작아질 뿐 슬픈 곡조를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그런 아이들을 보노라면 동요는 희망차야 하고 아름다워야 하며 한없이 즐거워야 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네번째 '드미트리오프'는 아이의 부모가 촛점이다. 교사를 곤혹스럽게 하는 학부모들. 그 분들에게는 교사란 그저 반나절 내 아이를 잘 봐주는 사람 정도이기 때문에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없다. 메모나 전화나 편지나 면담의 과정은 필요치도 않은 듯 다이렉트콜을 날린다. 뚜루루루 뚜루루루. 원장실 더 나아가 교육청의 수화기에는 담임교사에게 불만이 넘쳐나는 그들의 볼멘소리로 귀가 따갑다. 물론 원성을 쏟아놓는 그들이 문제라는 것은 아니다. 교사는 아이들에게는 친절과 사랑으로, 학부모들에게도 이 못지 않은 정성을 쏟아주어야 하고 '내가 당신 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하는 느낌을 가슴판에 아로새겨주면 어떤 문제도 문제 삼지 않게 된다. 그러기에 우리는 항상 아이들과 학부모를(또 교장, 원장을 ^^) 동시에 만족시키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다. '드미트리오프' 에서는 이미 교사들에게는 피해가고픈 대상이 되어버린 이런 학부모에게 지레 겁내지 않고 그 아이의 장점을 발견해주고 용기있게 나아가는 교사의 모습도 담고 있다. 그래, 학부모님이나 아이들이나 그들이 원하는 것은 단지 '사랑' 이다. 그것일 뿐이다.
다섯번째, '집보는 아이' 는 몇 해전이 떠올랐다. 우리 반에는 해마다 고아원에서 오는 아이들이 서넛 있었다. 시설에 보호중인 7세 유아들에게는 유치원 교육비가 전액 무상이다. 7세반 담임인 나는 버려졌거나 부모가 없거나 혹은 부모가 보호하고 있지 못한 아이들을 많이 맡아왔다. '집보는 아이'는 내가 맡아온 아이들처럼 고아는 아니지만 가정 형편이 몹시 어려워 학교를 더 다니지 못하고 집을 보아야 하는 딱한 아이들의 이야기였다. 교사라면 그들을 정말 품어주어야 하고 부모의 따뜻한 가슴을 나눠 줄 수 있어야 한다. 그 때 우리 반 아이가 한 가슴 아픈 이야기에 나는 울고 말았다. 그래서는 안되었는데.... 그 아이를 위해서라면. 그 아이가 하는 말이 "전요... 어느 날 자고 일어나니까 엄마가 없더라고요. 아빠가 엄마는 집나간거래요. 근데 백밤을 자도 아빠는 일어나니까 계속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라는 말에 나는 정말 울고 말았다. 그러나 결손가정의 아이라고 색안경을 끼고 보아서는 안되지만 역시 적지않은 문제들을 일으키는 건 사실이다. 과격하고 폭력적이거나 거짓말이나 도벽을 보일 확률이 높다. 이 말에 오해가 없었으면 하는 것은 물론 누구나 그럴 수 있지만 그 아이들에게는 조금 높은 확률로 나타난다는 점이다. 한 번은 교실에서 자지러지는듯한 울음소리가 나서 그 곳으로 가보았더니 바늘로 아이를 마구 찌르고 있는 그 아이를 발견했다. 그 바늘은 교실 환경판에서 빼낸 시침핀. 그 아이를 호되게 야단쳤지만 마음을 가라앉히고 생각하면 사랑이 필요한 아이들이라 안스럽기 그지 없었다. 졸업을 하고 나서는 그 어떤 졸업생보다 인사를 잘 하고 사랑스러운 아이가 되었는데 지금은 모르겠다. 교사의 사랑이 부모의 사랑을 넘을 수는 없겠지만 반드시 그 사랑을 흉내낼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마지막 '찬물 속의 송어'는 젊은 여교사에게 연정을 품게 되는 한 어린 소년이 등장한다. 첫사랑을 말하라면(짝사랑도 첫사랑이 된다는 전제하에) 학창시절 선생님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물론 나 또한 그런 기억이 있고. ^^ 여교사가 다른 곳으로 발령받아 떠나는 기차를 자전거로 쫓아오며 그 무릎위에 들꽃으로 묶어만든 꽃다발을 던져주는 장면은 정말 아름다웠다. 젊은 시절 피끓는 연인에 대한 사랑에 비할 수야 있겠냐만은 사제지간의 사랑은 항상 포근하고 따사로운 것인가 보다.
교사는 한 없는 기쁨과 설레임을 가져다 주는 이들의 무한한 사랑에 감사해야 할 것이며 그 만큼의 사랑으로 화답해 주어야 할 것 같다. 유난히 까만 빛의 눈동자 아이들에게 '솔직한 사랑'을 이토록 누리는 직업이 몇이나 되겠는가? 책을 덮으며 아이들 앞에서 허둥대던 초년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름과 동시에 조금은 그들의 사랑에 안일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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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쓸한 표지와 거친 듯한 책장의 느낌이 좋았다. 그러나 열흘에 걸쳐 읽은 이 책은.. 참 쓸쓸하다. 작가는 자신이 바라보았던 아름다웠던 풍경을 모두 책에 담아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듯 열심히 설명한다. 그런 작가의 문체 덕분에 책 속의 풍경을 짐작하고 느낄 수는 있었으나 또 그 때문에 책을 읽는 내내 너무 경건했던 것도 사실이다. 처음에는 참 재미있게 읽다가.. 읽는 내내 그만 둘까.. 다음에 읽을까 고민을 했고.. 다시 의무감에 책을 펼쳤으며.. 책의 후반에 가서는 나도 모르게 푹 빠져들었다. 작가가 보여주고 있는 교사의 모습도 이런 게 아니었을까..
단단히 마음 먹고 교사 생활을 시작하며 무엇이든 해낼 것 같은 각오로 아이들을 대하려 하지만 언어와 문화가 다르고 생각과 환경이 다른 아이들과 학부모를 대하며 힘이 들어 지쳐 주저앉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 때문에 힘들었던 삶은 다시 그들로 인하여 위로받게 되고 점점 성숙한 교사가 되어가는 것이다. 마음 속에는 내내.. 아쉬움과 애틋함과.. 사랑이 가득차 있는 해도 해도 힘들기만 하고 그러면서도 즐겁기만 한 교사의 삶이 책 속에 내내 묻어있었다.
나는 교사다.. 그래서 이 책을 읽기가 참 힘이 들엇다. 그러면서도.. 이 책을 차마 놓을 수가 없었으며 책을 다 읽은 지금.. 입을 다물고.. 표지 속의 아이와 눈을 맞추며 웃고 있다. 나는... 교 사 이 다... |
| 어릴적 꿈이 뭐냐는 질문에 주저없이 답했던건 항상 선생님이였다. 누군가를 가르친다는게 얼마나 중요하고, 매력적인지를 알지못했던 나이부터 그저 막연히 내 동경의 대상은 선생님이였다. (물론 중학교를 가고, 고등학교를 가면서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을 바라보며 그 꿈이 희미해져버렸지만 말이다.) 삶에서 가장 영향력을 미치는게 초등학교 교사라는 어느 설문조사를 읽은적이 있다. 한 사람의 인생에 영향력을 끼친다는건 좋은쪽으로든 나쁜쪽으로든 무시할 수 없는 일인데.. 더욱이 선생님이라면 얼마나 책임이 크겠는가? 그런 의미에서보면 내가 선생님이 안된건 아니 못된건 자라나는 아이들을 위해 잘된일인지도 모르겠다. ^^ 하지만 가끔 가보지 못한 꿈에 대한 미련이 생길때가 있다. 이렇게 좋은 책을 읽을때나 아이들이 선생님선생님~하며 너무나 좋아한다는듯한 눈길로 선생님을 바라볼때 말이다. 생판모르는 사람들이 만나 혼신의 힘을다해 무언가를 가르치고, 믿음으로 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관계.. 역시 너무나 매력적이다. 초보 여고사가 원숙한 선생님이 되기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는 많은 공감을 불러읽으킨다. 구름잡는 이야기가 아닌 실제 삶을 보여주는것 같아 더 따스한것인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을 꿈꾼다면 혹은 초보 선생님의 자리에 있다면 꼭 한번은 읽어봐야 할 책인것 같다. 물론 나처럼 꿈을 이루지못한 사람들에겐 대리만족을 느끼게 해줄것이고 말이다. (결국 다 읽어보란 소리인가? ㅎㅎ) |
| 사실 내가 이 '내 생애의 아이들'을 읽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는데, 아마도 느낌표에 나오기 전이었던 것 같다. 무슨 책을 볼까 하다가 각 단체에서 추천한 이달의 책 목록 비슷한 것을 보고 있었는데, 캐나다 소설이라는 점도 끌렸고 '김화영' 번역이라는 것 역시 매력적이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느끼는 캐나다에 대한 친근함에 비해 캐나다의 문화를 접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많지 않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학연수를 가고, 이민을 가면서도 말이다. 기껏해야 캐나다에 대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미국과 거의 흡사한 것이 아니었던가! 이런 설렘을 가지고 읽은 '내 생애의 아이들'은 괜찮은 편이었다. 몇몇 부분에서 나오는 자연의 아름다운 묘사는 정말 숨막혔다. 또한 시골의 풍경도. 눈발을 헤치고 가는 장면에서는 정말 마차가 덜컹거리는 것 같았고, 좁은 숲길을 지나가는 장면에서는 정말 고요함이 느껴졌으니... 아쉬운 점이 있다면, 극히 일부이기는 하지만, 어떤 부분에서는 비문이 발견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지금 이 서평도 비문 투성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 책을 서슴없이, 들어 본적도 없을 때에 읽은 이유중의 하나는 역자이기도 하므로… 그런 부분에 있어서는 조금 아쉬웠다. 이 책을 읽을까 말까 고민 하시는 분들을 위해 조금 덧붙이면, -이 책이 어떤 식으로 광고되었든지간에 말이다. 느낌표 선정도서라는 이유로 어떤 면에서는 평가 절하되는 책들도 가끔 있다.- 감동을 얻기 위해 읽을 것이라면 실망할 수도 있다는 것. 사실 이야기도 줄거리만 놓고 보면 딱히 감동적인 것은 없기 때문에. 하지만 소박하게 ,자연과 자연이 만들어 놓은 아이들과 선생님, 그리고 마을 사람들 이야기를 기대한다면 기억할 만한 책이 될 수도 있다. |
| 우선 캐나다 작가의 작품은 접해본 기회가 없었기에 새로웠다. '가브리엘 루아'라는 이름을 알게 되었다. 제목이 마음에 든다. 제목을 보고 든 생각은 우선 당연히 아이들이 등장할 테고, 그들을 바라보는 누군가가 등장하겠지. 어릴 때 재미있게 본 '천사들의 합창'을 북미에다 옮겨 놓은 듯 하다. 단, 이 소설은 광활한 대자연을 글 속 여기저기에 녹여 두었다. 자연을 묘사한 부분과 미묘한 심리를 묘사한 부분은 아름답지만, 번역에서 다소 그 묘미가 감한 것 같다. 대체로 만족했지만, 선생님을 "선새미"라고 애들이 부른 건 좀 억지스럽다... 귀엽게 하려는 의도였는지, 아님 아직 어리다는 의미인지는 모르겠지만, 특히 '찬물 속의 송어'의 메데릭까지 "선새미"라고 한 것은 원 작품의 뉘앙스와 작가의 의도를 해친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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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생애의 아이들이 내 머리속에서 하나 둘 떠오른다. 내 생애의 아이들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한 시골 학교 첫 교단에 선 여교사의 것 만은 아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이제 어렴풋이나마 알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지나온 생애의 나날 동안 만났던 그 수많은 사람들 중 내 생애의 아이들과 똑 같은 이미지의 사람을 연상해 내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내 생애의 아이들을 읽으면서 나는 줄곧 삶을 그토록 아름답게 음과 양의 양면을 동시에 볼 수 있는 작가의 그 깊은 시선에 감동을 받았다. 나는 거기에 나오는 아이들이 상처 받고 가난하고 이민의 서러움을 몸에 가득 품고 있어 도저히 긍정적이고 아름답게 표현될 수 없는 조건임에도 불구하고 그 한 여 선새미의 열정과 사랑의 힘에 의해 그렇게 만들어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 아니 그 여 선생님은 한 번도 자신이 만들어내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그 아이의 내면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그 자연의 목소리, 바로 그 아이의 것이여서 꼭 살려 내지 않으면 안되는 것, 그런 것들에 그 여 선새미는 귀 기울였고 그 소리를 들어 주었다.
나는 이 가브리엘 루아 라는 사람이 만들어낸 이 깊은 글의 맛을 느끼며 줄곧 감탄해 왔는데 글을 모두 읽고는 이 글이 그녀가 67세라는 인생의 저녁무렵 턱을 괴고 앉아 점점이 다가오며 사라져 가는 그 가슴 속의 아이들을 사랑과 열정의 기억에서 건져올리며 썼다는 걸 알고 다시한번 놀랐다. 젊은이에서만 느껴지는 순수하고 산뜻한 내용의 전개와 깊은 통찰에서 우러나온 표현 하나하나가 너무나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찬물 속의 송어''에서 메데릭을 향한 여 선생님의 진정한 사랑은 나를 부끄럽고도 감동적이게 하였다. 메데릭을 사랑하는 방법이란 먼 훗날 나를 인도해 준 별처럼 기억되는 것이지 지금 저 열 네살 야성의 소년이 가진 거침없는 사랑을 받아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 그 소년이 어떻게 된다는 것이 나에겐 너무나 중요해서 니가 아무렇게나 가는 길을 그냥 바라볼 수 만은 없다는 것. 이런 마음들은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간직할 수 있는 것인지... 집에 돌아오니 여덟살 짜리 아들이 " 어 엄마 이거 오늘 느낌표에 선정된 책인데"라며 표지를 보고 알아본다. 이렇게 깊은 책이 느낌표의 선정도서로 더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울림으로 전해진다는 걸 생각하며 나는 오늘 일요일 이렇게 앉아 생애 처음으로 컴퓨터 앞에서 감상을 쓰고 있다. 언젠가 가브리엘 루아와 같은 좋은 책을 쓸 수있기를 소망하며. [인상깊은구절] 나는 한 줄기 작은 오르막길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거기에, 아이들이 하늘 저 밑으로 가벼운 꽃장식 띠 같은 모양을 그리며 하나씩 하나씩, 혹은 무리를 지어 나타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었다. 매번 나는 그런 광경을 바라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는 광대하고 텅 빈 들판에 그 조그만 실루엣들이 점처럼 찍혀지는 것을 볼 때면 이 세상에서 어린 시절이 얼마나 상처받기 쉽고 약한 것인가를, 그러면서도 우리들이 우리의 어긋나버린 희망과 영원한 새 시작의 짐을 지워놓는 곳은 바로 저 연약한 어깨 위라는 것을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절감하는 것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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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학생일 때 읽을 때는 막연한 동경과 그렇겠거니 하는 상상이였다.
그런데 한차례 홍역을 겪고 난 듯한 지금은 어느 드라마틱한 꿈을 꾸고 난 듯한 지금은 한 구절 한 구절에서 겹쳐지는 이야기가 있다.
내게도 가브리엘 루아의 이야기가 있다. 아마도 평생을 마음에 지니지는 못해도 어느 순간마다 스치듯, 또는 생생하게 떠오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