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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 읽은 걸 좋아한다 올리버 섹스 가즈오 이시구로 이사벨 아옌데 의 인터뷰가 좋았다
* 이야기꾼은 이야기를 사냥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니에요.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에게 그들의 삶에 대해서 묻는 겁니다. 그런 다음 그 이야기를, 사람들의 삶을 되풀이해서 들려줌으로써 결국 집단적인 꿈에, 집단적인 공포에 다가갑니다. 인류에게 이야기가 왜 필요할까요? 저는 가끔 그런 질문을 받습니다. 다음 밀레니엄에도 책이 존재하리라 생각하느냐고요. 그러면 전, 책이라는 형태는 사라질지도 모르지만, 다른 형태가 생길지도 모르지만, 이야기는 우리 영혼의 일부이므로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거라고 대답합니다. 제 생각에 이야기꾼의 역할은 이야기를 계속 반복하는거예요. 듣는 사람이 거기에서 진실의 입자를 찾아서 자기 삶을 밝힐 수 있도록 말이에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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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권과 비교하면 익숙하지 않은 작가들이 많았다 재미가 떨어졌지만 2권에는 존 버거의 인터뷰가 있다!
* 와크텔 : 어쩌면 우리야말로 연민이 가장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을지도 모르는데, 왜 그럴까요? 존 버거 : 저는 그 이유가 무척 복잡하고 계속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2세기 동안 유럽인들의 생각을 지배했던 감정의 소멸 - 그렇게 부를 수 있다면 말입니다 - 은 이제 끝났습니다. 연민의 문제는, 좋아, 연민을 느꼈으니 가만히 앉아서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라는 태도입니다. 일종의 책임회피인 거죠. 하지만 그것은 연민이라는 생각을, 아니 생각이 아니라 그 능력을 비방하는 것입니다. 연민은 인간 본성을 구성하는 일부니까요. 그것은 상상력의 작용일지도, 인간 본성의 기본일지도 모릅니다. 세계 어디서든 모든 아이들에게서 연민을 볼 수 있어요. 아이들은 주변 사람들과, 동물과, 심지어는 장난감과, 이야기 책에 나오는 인물과 완전히 동일시합니다. 연민은 다른 사람의 입장이 되어 보려고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루기는 어렵죠. 이룰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감상적입니다. 하지만 첫 걸음을 내딛는 거죠. 제 생각에는 윤리학만이 아니라 예술도 바로 여기서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
| 내가 알고 좋아하는 작가가 자신의 글쓰기에 대한 생각을 쓴 책은 꽤 있습니다. 한 작가의 이야기라서 어떤 면에서는 깊이가 있고 꽤 자세한 내면을 알 수 있어서 큰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좋아하는 작가만 보게 되는 인간의 성향 때문에 오히려 독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면에서 나의 좁은 시야를 넓혀 주는 훌륭한 도구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