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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 [文廟]는 중국 당나라때 공자를 문성왕으로 추봉하면서 문성왕묘라는 말에서 후대에 문묘로 통칭하게 된다. 유가의 좌장인 공자와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 등 4성(四聖)과 그 밑의 10철(十哲)의 신위를 배향함으로서 명실공히 유가의 산실이자 정신적인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우리나라는 신라시대에서 시작되어 고려조에 대성전을 건립하여 배향하였으나 본격적으로 신주를 받들기 시작한 것은 성리학을 정치적 모토로 출발한 조선시대에 와서야 정확한 자리를 잡게 된다. 더욱이 조선초기 신생국의 정치,사회,경제가 자리를 잡으면서 훈구대신과 사림들간의 맞대결에서 사림들이 승리를 거두면서 중국의 성현 뿐만 아니라 조선의 성현들의 배향문제가 대두되면서 문묘에 종사되는 문제로 이해집단간의 혈투가 벌어지게 된다.
<문묘 18현>는 바로 서울 문묘에 배향된 조선의 성리학자 18명의 삶과 개인사를 다룬 역사 에세이라고 볼 수 있다. 그동안 조선왕조 5백년, 소설 한명회로 대중적인 역사소설로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던 작가의 새로운 변신을 볼 수 있는 작품이다. 김굉필,조광조,정여창,이언적,이황등을 비롯한 조선시대를 풍미했던 18인의 삶과 그들이 군주에게 상소한 명문들을 고찰함으로써 선비로서의 정신세계를 잠시나마 엿 볼 수 있도록 작가는 조선왕조실록과 그들이 개인문집 및 각종 역사적 사료를 검증하여 이들의 삶을 추적해 나가고 있다.
무엇보다 조선시대에 선비로서의 가장 큰 영광은 다름 아닌 죽어서 문묘에 배향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정치적,사회적으로 공적이념인 성리학을 통해 학문과 정치, 그리고 백성들의 교화를 목표로 햇던 사대부들에게 있어 문묘가 갖는 의미는 절대적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이런측면에서 문묘에 배향되었다는 의미는 학문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 하면서 선비로서의 올바른 자질을 갖춘 성현의 반열에 올랐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말은 문묘에 뱅향된 18인의 삶도 당연히 성현의 삶을 살았다는 것을 반증하는 말이 될 수 도 있다. 하지만 과연 순수하게 선비로서의 자질을 갖춘이들이 문묘에 배향되어 있는가에 대한 강한 의구심을 갖게 하는 것이 배향된 18인(특히 조선시대 인물 14인)에 대한 역사적 시각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우암 송시열이 효종에게 상소한 내용중 공자가 말하기를 "하늘은 사사로이 덮는 것이 없고, 땅은 사사로이 싣는 것이 없고, 일월은 사사로이 비추는 것이 없다" 라는 말은 바로 성리학을 요체로 하는 조선시대 선비들의 공통된 관점을 대변하고 있다. 개인의 이익을 고려한 사사로운 감정을 뛰어 넘어 대의적인 관점을 지향해야 한다는 면에서 절대군주인 왕에게도 직언을 마다 하지 않고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게 자신의 논리를 펼쳐 나갈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자세는 타의 모범이 됨은 물론이고 선비 자신이 표방하는 성리학의 완결을 의미하는 것이였기에 조선이라는 절대군주국가가 그나마 제대로 흘러갈 수 있는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이러한 모습들은 김굉필과 조광조를 비롯한 초기에 배향된 인물들의 삶을 통해서 투영된다. 조선초기 정국은 공신들의 사사로운 이권으로 얼룩지게 되고 이에 대한 견제 세력으로 사림이 등장하면서 인,의,예에 기반을 둔 왕도정치를 표방하게 되고 이런 과정에서 초기 사림들의 희생이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정암을 비롯한 초기 배향된 인물들에 대해선 논란의 여지가 거의 없지만(물론 이도 사림이라는 계층들의 시각으로) 이후 배향된 인물에 대해서 과연 송시열의 상소문처럼 개인의 나아가 당파의 사사로움 없는 진솔된 정책과 학문을 펼쳐나갔는가에 대해서 상당히 의문스러운 점이 많음을 다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선조대에 이르러 동서인으로 양분되기 시작한 당쟁과 이후 노론의 집권으로 야기된 정치파행과정을 과연 공자의 가르침대로 따랐느냐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한 것은 사실이다.
전반적인 구성면에서 역사적으로 신선한 소재를 다루고 있는 점은 틀림없는 사실이나, 실록의 상소문이나 문집의 인용부분이 너무 많고, 논란의 쟁점이 있는 역사적 사건(광해군,소현세자,효종,현종의 죽음, 송시열의 북벌정책등)에 대한 작가의 역사관점이 다소 편향된 느낌을 강하게 느끼게 한다. 다만 최치원과 설총등 상고시대 학자들과 고려시대 인물들에 대해서 재조명되었다는 점이 소득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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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禮)로써 가르치면 나라가 평온해지고, 법(法)으로만 가르치면 나라가 어지러워진다! 500년전에 제시된 말이지만 지금 현실에도 잘 들어맞는 말이다. 조선은 왕의 나라라기 보다 양반들의 나라다. 그중에서도 권력을 차지한 권력자의 나라였다. 임금보다 더 큰 권위를 내세우며 마음에 들지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임금을 갈아치우기도 했던 그런 양반들의 나라다. 임금이 되어 신하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신의 뜻대로 정치를 했던 임금이 얼마나 될까 궁금해진다. 지금 우리의 현실에는 지덕체(智德體) 지육(智育)과 덕육(德育)과 체육(體育)을 골고루 갖춘 그런 관리를 절실히 필요로 하고있다. 매의 눈으로 그런 사람을 뽑고 그가 잘 해나가는지를 관심있게 지켜보는 것도 국민들의 몫이 아닐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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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문학」에 시·문학평론을 추천받아 문단에 오른 저자신봉승님은『대하소설 조선왕조 5백년』(전 48권), 『소설 한명회』(전 7권), 『이동인의 나라』등을 편찬하여 한국방송대상, 대종상, 청룡상, 아시아영화제 각본상, 한국펜문학상, 서울시문화상, 위암 장지연상, 대한민국예술원상, 보관문화훈장까지 받은 인물로써 그는 그의 학문을 바탕으로 <조선왕조실록>를 통하여 새롭게 정립한 『조선 선비의 거울 문묘 18현』책을 통하여 나라를 질며지고갈 젊은이들에게 살아가야할 방향을 옛 조상들로 하여금 배우고 손수 가치관과 희망의꿈을 만들게 해 주는 책이 아닌가 싶다.
문묘는 그들이 공부하는 성균관내에 대성전으로써 아주 신성한곳에 해동18헌으로 추앙되는 이 땅의 명헌들이 배향되어 있다고 한다. 신라의 명헌 최치원과 설총.고려의 석학 안향과 정몽주,그리고 조선조의 명헌 김광필.정여창.조광조.이인적.이황등이 있고 그후로 배형된 김인후,성혼.이이.조헌.송시열.송준길.김창생.김집.박세채 순으로 배향되어 있다고 한다. 비록사약을 받아 이 세상에 육신을 없을지라고 후대사람들에게 명현으로 귀감이 되어 오랫동안 존경을 받아온 사람들로써 대대 후대사람들에게 정신적인 지주가 아름다운 삶을 이룰하는데 필요함이 아닐수 없을것이다. 말 한마디에 나라의 흥망이 갈리고 국운의 갈림길에서 힘를 만드는 그들이 자취를 보면서 자신보다 나라를 먼저 생각하고 소신있는 행동으로 나라의 발전에 도움을 주며 자신의 육신을 잃을지라도 악에 굴하지 않고 소신을 밟히고 후세들에게 빛나는 업적으로 아름답게 보여 줌으로써 영원하게 우리들의 마음속에 자리잡는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사회정의가 혼란을 겪게되고 자손들에게 상처를 남길지라도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속으로 자리매김하고 잇으며, 살아있는 권력을 거역한다는것은 엄중한 문책이 뒤따를지라도 읽으면서 김광필의 삶에 매료가 됩니다. 성균관에 입학한 조선의 젊은 유생들이 삶의 목표로 삼은 명현들을 삶을 보면서 더욱 그들을 닮고자 비록 충언으로 혹독한 형벌로 목숨까지 아사가 한 줌의 흙으로 변해 버렸지만 용기있는 지식인들은 하나 같이 문묘에 배향되여 천 년의 삶을 누리면서 명에롭게 자손들에게 나눠주고 있는것을 볼수있다.
원로가 원로 다워야 하며 지식인들이 참 목소리를 내야 옳바른 방향으로 나라가 발전한다며 말한 명헌들은 저자는 조선왕조실록를보고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이이, 송시열18인의 명현들의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오늘날에도 꼭 이런 부류의 사람들이 등용해야만 나라의 발전이 희망을 보일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비록 왕에게 진언드려 큰 죄를 당할지라도 목숨을 걸고 옳고 그름을 진언할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나며, 잘못되어 사약이나 귀향지에서 돌아오지 못할지라도 국가적 정체성를 바로 세우고 오랜 역사속에 귀감을 되었기에 조선의 역사는 그들손에500년 역사가 가능했을것이다..
우리에게 어려울수록 필요한것은 깨달음이 아닌가 싶네요."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합니다. 몸은 죽었어도 영혼은 영혼하다는 말이 있듯이 "사약으로 죽어도 천년을 산다"는 부제로 다기온 조선 선비의 거울 문묘 18현을 보면서 정도의 정치는 후대에 귀감이 되는 절개와 희망 옳은일이라면 굳는 의지를 담고 싶네요
특히 힘이 통하지 않는 조선왕조의 도덕성을 입증하는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일수도 있으며 연산군을 몰아낸 사건인 중종반정으로 무식한 재상과 결탁하여 간사하게 아첨해서 술책을 보여 이겻다 할지라도 기록은 역사를 준엄하게 심판하고 쿠테타의 세력들로인해 독단적인 국정 전황에 좌절할 수 밖에 없던던 시기에 조광조는 "군자소인지론"설파하고 이상국가 건설을 역설하고 정신적인 기초가 되었으며 국정에 임하는 선비는 목이 칼이 들어와도 직언을 마다해서는 안된다는 선비의 기질과 도리의 정신적인 기초를 다지는 대단한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며, 몸소 암울한 연산군 시대를 몸소 체험하면서 권력의 주변에서 서식하는 소인들의 무리드은 항상 듣기 좋은말만 지언하는 대사헌 귀민수의 파직을 욕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그는 도학 정치 사상의 구현을 시도하면서 비리의 온상인 과거제도 계혁과 중종은 기득권세력으로 눈치만 보다가 조광조의 직언은 칼날 같았으며 실천주의자인 그는 도덕성의 강조.성리학 이념의 사회적 실천자 였지만 아쉽게고 간식배들에의해 서른여덟 살에 짧은 삶은 마감하지만 50여 년 만에 선조1년 영의정에 추증하고 문정이라는 시호를 받으며 복권되기도 한다.
조선 왕조실록에서 송시열이라는 3천번이상이나 등장하며 종묘에서 효종의 배향공신으로 배정되어 있다고 한다.그는 정치가 이전에 최상의 경학자로써 효성이 지극하고 봉림대군의 사부이기도 한다.그는 부왕 인조의 치욕을 씻기위해 북별계획을 구체화하고 민생 안정과 국력 회복을 국정의 중점으로 생각했고 나라의 살림을 절약하여 제정을 충실히 하고 양민의 부담을 줄이고 노비종모법을 시행하여 사노비 학대를 억제하여 양민을 확보하여 자연의 이치를 밝혀 사람의 마음을 이치에 따라 바로 잡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일를 추진했다고 한다.
단심가로 목숨을 바꾼 정몽주는 충의가 무엇인가를 보여주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이성계과의 반기를 들어 천죽교에서 목숨을 잃엇지만 죽기를 각오한 충효을 중시햇던 정몽주 .. 이성계는 그의 목숨을 빼앗아 갓을지라도 그의 마음을 알기에 훗날 그를 추모했다고 한다.
거대한 조선왕조실록의 문헌들을 바탕으로 설명과 어울어진 18명의 행실은 한결같이 우리가 닮고 싶어하는모습이기에 그들의 모숨을 빼앗아간 사람들의 추태와 품격있느나라를 만들어간 젊은이들에게 선현들의 지고함을 목표로삼고 다시금 다짐하며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야 할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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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목표를 잃어버리고 살아간다고 합니다. 꿈에 관한 이야기를 자주 듣지만 자신의 꿈엔 별다른 관심을 두지 않고 있습니다. 진정으로 마음을 끌어당기는 자유에 대한 의지보다는 현실적인 압박감과 상대적인 빈곤감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는 현재의 거울이라고 합니다. 그리 멀지 않은 과거 조선시대 선비들은 어떻게 꿈을 쫒고 이상을 실현시켜나갔을까요?
조선은 성리학의 나라입니다. 성리학을 공부하는 선비들을 士라 부르니 士大夫의 나라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조선은 출생부터 반정을 통해 권력을 잡게 됩니다. 이러한 배경은 조선의 왕들이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최대의 약점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왕을 중심으로 한 공신들과 외척들의 난립은 조선시대를 풍파와 난국으로 치닫게 하는데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게 됩니다. 이러한 상황을 타개하기위한 사대부들의 등장은 분명 왕권을 강화하기 위한 조선의 왕들에겐 호기였을 것입니다. 하지만 조선시대 왕들이 외척이나 공신들의 손아귀를 벗어난 적은 거의 없었습니다.
모난 돌이 정에 맞는다란 속담이 있습니다. 조선의 사대부들은 사리사욕을 챙기려는 훈구세력들에겐 눈엣가시거리였을 것입니다. 그들은 이념과 사상을 위해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고 예를 실현하기 위해 입신양명을 과감히 버렸습니다. 무한한 충정을 받쳤지만 반역으로 몰려 죽임을 당하기도 합니다. 후손들은 목숨을 초개처럼 던진 그들의 이상을 높이 받들어 위패를 모시게 됩니다. 성리학을 빛낸 18분 성현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 문묘입니다. 문묘는 조선시대 성균관생들이 추구해야할 꿈이었고 비전이었습니다. 그들은 명현들의 발자취를 좆아 이상 국가를 실현할 원대한 포부를 꿈꾸게 됩니다.
언론 통제는 독재국가에서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가장 흔하게 쓰는 악랄한 정치적 책략입니다. 말 한마디에 목숨이 오락가락한다면 언론 통제는 분명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중일 것입니다.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다는 현대에서도 언론은 그리 자유롭지 못합니다. 헌데 우리의 편견을 깨는 조선시대 민주주의가 단연 돋보입니다. 바로 경연입니다. 물론 현재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순 없지만 절대왕권이란 권력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과감히 내놓는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상황임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현들은 하나같이 왕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특히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송시열, 이언적등은 왕을 교화시키기 위한 피눈물 나는 직언과 상소문을 올리지만 왕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죽음으로서 명분을 세웠고 성리학은 더욱 큰 학문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특히 중종 4년 동안 이룬 조광조의 치세는 사대부들에게 가히 혁명적이라 할 정도로 많은 영향력을 끼치게 됩니다.
학문을 이루기 전에는 출사하지 말라. 사대부들은 학문을 이룩하지 않고 출사하는 것은 나라를 혼란에 빠뜨릴 수 있고 경고합니다. 정치가 퇴색되고 있는 현실에 우리들이 집고 넘어가야 할 부분은 너무 많은 정치인들이 실리만을 추구하고자 정치판에 뛰어든다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이념이나 명분보다는 실리가 더욱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이황, 이이, 성흔, 김인후, 김장생과 같은 분들은 학문적으로 위대한 업적을 남기신 분들입니다. 그들의 학문은 새로운 조선의 지식을 일으켜 세웠고 국가의 정치를 올바로 이끌어 나감은 물론이거니와 조선이 학문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었습니다.
성리학과 사대부에 대한 오해는 상당기간 저를 지배했습니다. 당리당략에 의한 파벌싸움은 조선을 항상 위기에 처하게 했고 분별력 없는 정치는 백성을 사지로 내몰았기 때문입니다. 원인 없는 결과는 없을 것입니다. 영원한 권력이 없듯이 무소불위의 정치세력 역시 안개처럼 사라져 버리기 때문입니다. 성현들은 뚜렷한 이념을 바탕으로 자신의 학문적 지식과 치세를 이룩하였습니다. 우린 성현들의 지혜를 받아들이는 현명함이 필요합니다. 또한 훈구나 외척들과 같은 치정세력들에게도 배움을 가져야 합니다. 그들 역시 한세대를 넘기지 못하고 사사를 당했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그 자체로 생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현명한 군주란 현명한 인재를 쓰고 자신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는 인재를 등용하는 것이라는 의미심장한 명언이 가슴깊이 새겨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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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文廟)란 공자의 위패(位牌)를 모시는 전각(殿閣)을 말한다.우리나라의 문묘에는 목숨을 바쳐 나라에 충성했던 고려와 조선, 신라등 지식인 18분과 공자를 비롯한 중국의 성현들이 함께 모셔져있다.한국에서 공자 사당의 유래는 통일신라 때인 성덕왕 13년 김수충(金守忠)이 당나라에서 공자와 그 제자들을 국학(國學)에 모신 것에서 비롯되었다. 고려시대에도 대성전(大聖殿) 건립이나 배향자 정비가 이루어졌다. 문묘는 조선시대 청소년들이 공부하는 성균관의 구내에 있는 대성전이라는 건물과 이 공간에 있는 여러 건물들을 통칭해서 부르는 말이다.
이들을 문묘에 모신 이유는 그들의 업적을 후대까지 알리고 그들의 행동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다.그들은 우리가 이미 역사서에서 여러차례 만났던 지조와 절개가 있는 이들로 이름만 대면 아는 분들이다.문묘18현은 김굉필,정여창,조광조,이언적,이황,김인후,이이,성흔,김장생,조헌,김집,송시열,송준길,박세채,최치원,설총,안향,정몽주다.하지만 우리가 안다고 생각할 뿐 실제 깊이 알지는 못한다고 할 수 있다.그래서 이 책에서는 그들의 행위를 문헌을 토대로 풀어 쓰고 있다.
이 책의 주요 대상 독자는 정치인,교수,기업인등 지식인들이다.책을 읽다보니 저자가 그들에게 충고하는 문구가 많이 보이기 때문에 나는 이 책의 독자층을 그렇게 받아들였다.일반 독자가 읽기에는 한자어로 된 낱말이 너무 많아서 어렵다.발췌한 글은 <조선왕조실록>.<조선왕조수정실록>외 여러 문헌을 토대로 한 것이다.
한자어에 대한 주석이 하나도 없어서 너무 깔끔하다.그래서 수준 높은 독자들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지만 나와 같은 일반독자가 출퇴근 시간에 읽기에는 힘들다.물론 퇴근 후 집에서 한자사전이나 인터넷사전 검색을 해 가면서 읽을 수 있다면 이 책을 읽기에 어렵지 않다.만약 이 책이 일반독자를 겨냥했다면 주석을 달든지,전자책으로 출시됐더라면 오히려 더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들었다.전자책이라면 출퇴근 중에 사전을 검색해 가면서 읽을 수 있기때문이다.
현시대의 정치인들이나 지식인들이 과연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 직언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몇 이나될까? 교수들은 때만되면 국회로 몰려들고,정치인들은 선거때만 국민에게 고개 숙인다.많은 언론이나 기업주들은 정치인의 시녀가 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우리 선조들이 지향했던 유토피아가 지식이 아닌 예(禮)에서 찾고 있는 것을 볼 때 ,학교가 학원의 시녀로 전락해 버린 요즘 현실은 그것에서 너무 멀리 와버렸다.그러나 너무 늦었을 때가 가장 빠르다고 했으니, 이 나라의 지식인들은 문묘18현의 직언을 새겨 들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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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 18현 / 신본승 지음 청아 출판사 刊
지은이 신봉승을 소개하려면 끝이 없다. 문학 소설 방송 영화 TV 사극드라마를 논하며 공자를 모신곳이 성균관 대성전이고 그 건물과 공간을 문묘라 이른다. 유학으로 망해 그 시절에 그러한 유교적 지상주의 가치가 덕목인 사회 현상을 굳이 따질 이유도 없고 목차에 있는 면면만 흝어 뵈어도 가슴이 설레이는 학덕과 예절, 강직함의 태두들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18현 중 설총만 빼고는17현의 시호는 한결같이 글월 文으로 추증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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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거울 문묘 18현이라는 제목에서 문묘의 의미를 알고 싶었다. 그저 유명한 분들의 제를 모시는 곳이라는 뜻보다는 더 깊은 뜻과 유래가 있을것으로 생각해서 탐색해봤다. 문묘는 유교의 성인의 공자를 모시는 사당이라는 뜻으로 나온다, 아마 우리나라도 중국의 영향을 받아서 문묘라는 칭호를 쓰지 않았을까 한다.
예로 우리나라의 선비는 청렴결백을 중요시 여겼다. 지금의 사회는 사실 이정신이 필요한 부분이긴 한데 뉴스를 보면 정치판이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대통령의 비서에 해당하는 자리에서 그들이 할 의무는 바른보좌와 입바른 소리다. 하 지만 권력과 돈이라는 욕망앞에 지금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요즘은 뉴스를 보는것 자체가 짜증스럽다. 정치를 하는 모든분들에게 이책을 권하고 싶다.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대성전, 묘정비각, 명륜당,동무.서무, 육일각, 존경각, 동재.서재, 동삼문, 은행나무, 수복청, 신 삼문등 보물과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실물을 볼수 있다. 이곳에서 의를 다하고 국가에 충성하는 유명한 인물들이 탄 생되었으리라 생각된다.
주요 테마를 보면 사약으로 죽어 천년을 산다, 깊고 맑은 샘이 큰 강물을 이루고,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문도들의 수난, 신라.고려조의 명현들이라는 대제목으로 이루어져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의 등장이지만 결코 역사적으로 알수 없어서 그들의 충성심을 볼수 있는 대목이 게재되어 있다.
때는 이성계가 조선을 세우고 두명의 임금을 둘수 없음을 시사하고 죽음을 맞이한 인물과 그뒤로도 죽기를 각오하고 임금에게 바른 소리를 내어 사약을 받은 인물들이다. 이들의 업적을 이루 말할수 없거니와 간단 서평으로 올리기에는 너무 벅찬 느낌이 든다. 역사적인 의미로서 다소 따분한 느낌이 들수도 있지만 역사에 관심이 깊은 학도들에게는 이로 말할수 없는 쾌재가 아닐수 없다. 알고 있는 것과 진실과는 차원이 다르다. 역사에는 분명 오류가 있기 마련이다. 그러 기에 분명 이책을 읽고 잘못알고 있는 부분을 알수 있으리가 짐작한다.
나라를 바로 세우기 위해 왕이 필요하지만 그 곁에서 조언을 해줄수 있는 충신이야말로 국가의 보물이 아닐수 없다. 이들이 더욱더 빛나는것은 죽음을 각오한 부분도 있지만 자신의 욕심보다는 백성을 생각하는 깊은 마음이 있기에 오늘날 현대인에게 깊은 감명르 주는것이라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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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묘18현 나는 처음 이책을 고를 때만해도 그저 수많은 역사책중 하나겠거니 생각했다. 원래 역사분야에 관심이 있는터라 새로 나온 역사책을 가려서 읽는 편인데 문묘18현의 책제목을 보고 내가든 첫인상이 바로 그것이다. 문묘18현이라는 말은 어디서 많이 들어는 봤지만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내용에대해 신기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해 책을 손에든순간 책표지를 보고 이책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사약으로 죽어 천년을 산다.’ 뭔가 무서운 말같기도 하고 명예로운 말같기도 한 이책의 표지가 날 사로잡은 것이다. 원래 조선의 선비에 관해 항상 알고 싶어하던 나였기에 이책을 좀더 구체적으로 읽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책을 들고 읽는 내내 내게든 생각은 도대체 어떤 명예로운 일을 했기에 후세에도 그렇게 이름을 남길수 있는것인가. 조상대대로 좋은 일을 한것이가? 이런 명예에 관한 나의 생각은 끊임없이 되내여 졌다. 그런데 문묘18현이란 조선왕조역사상 그이름을 후세에전해 그들로 하여금 나라에 충절하는법을 배우게 하고 또 그들의 뒤를 이어 선비들도 그들의 사상을 본받으라고 하여 조선의 역사에서 가장 학문에 기여한 바가 크고 나라를 위해 한순간도 걱정의 끈을 놓지 않았던 조선의 성인이라할 수 있는 18명의 선비들을 성균관에 모셔놓은 것이 바로 문묘18현이라 하는것이었다. 하지만 이들은 조선의 미래를 위해 임금인 왕에게 까지 소신을 굽히지 않아 때로는 귀향보내지기도 하고 때로는 사약으로 운명을 달리 하기도 했지만 이들은 떠나는 그순간 죽는 그순간조차도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위하는 마음을 버리지 않았던 인물들이었다.하지만 이 책을 읽는 내내 난 왜 도대체 임금을 위한 길이 도대체 뭐이기에 이들은 목숨을 버렸던 것인가 하는 생각은 내마음에 끊임없이 되물었다. 이책의 책장을 덮고 난뒤 난이 의문에 해답을 알게 되었다. 비록 알아주는 이 고마워해주는 이 가 없이도 이들은 자신의 소임을 끝까지 버리지 않았고 비록 중간에 위기는 있었더라도 그위기에 물러서려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자기자신을 믿으며 자신의 꿈 즉 조선의 안녕을 위해 그들의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내야 했기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에게 조선최고의 선비라하는 문묘18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지금 이책은바로 꿈앞에서 포기할까 두려워하는 사람 시작을 두려워하는 사람 실패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비록 꿈을 이루는 해법을 제시해주지는 않을지라도 이책은 그 꿈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법을 가르쳐줄거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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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상징하는 것들 중하나는 선비의 모습일 것이다. 갓을 쓰고 흰색 도포차림의 꼿꼿해보는 인상의 선비의 모습. 실제 선비라는 뜻은 학식이 있으나 벼슬을 하지 않는 사람이나 과거를 준비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그럼 문묘는 무슨 뜻일까? 문묘는 원래 공자를 모신 사당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성균관 대성전이라고 불리는 곳에 18현의 명현들이 배양되어 있다. 신라의 명현으로 최치원과 설총 두 분이, 고려의 석학으로는 안향과 정몽주 두 분이 그 영예를 안았고, 나머지는 조선시대의 명현으로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등 다섯분이 먼저 배향되셨고, 그 후에는 김인후, 성혼, 이이, 조헌, 송시열, 송준길, 김장생, 김집, 박세채 순으로 배양되었다. 이름만 들어도 그들의 학덕과 꼿꼿한 심성을 짐작할 만한 명현 분들도 있고, 명성은 하늘처럼 높지만 그동안 부각되지 않아서 차칫 생소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다. 임금, 군왕에서 충신은 어떠한 사람들이었을까? 최측근에서 자신을 보좌하며 나랏일을 상의하고, 결정해나가는데 없어서는 절대로 안될 파트너인 경우일 때도 있었지만, 군왕인 자신이 하는 일에 일일이 직언을 하여 때로는 미워하거나 경쟁하게 되는 관계일 것이다. 그래서 성군들은 충신들을 가까이하고 그들이 하는 직언을 귀담아 듣고 나라의 중대한 일을 결정하는데 참조하였고, 그들이 하는 말이 옳다고 생각되면 자신의 생각을 수정하는 일도 하였지만 우매한 임금은 충신들의 뜻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간신들의 감언이설에 가려서 충신의 참뜻을 무시하는 경우도 많았을 것다. 그래서 여기에 소개된 명현들 중에도 임금의 탄핵을 받아서 귀양을 가거나 벼슬을 내놓고 낙향을 한 적이 많았던 것이리라. 어떠한 경우는 군왕과 맞서면서까지 자신의 충직한 뜻을 굽히지 않고 직언을 구하기도 하고 하늘이 내리신 임금을 꾸짖는 것조차 서슴치 않았던 기품이 문묘에 배향될 영예를 누릴만하지 않았을까 생각하게 된다. 현대사회에는 군왕제가 아니지만 대통령이라는 국가의 원수가 있고, 그를 보필하는 국회의원 즉 정치인들과 행정부가 있다. 흔히 말하는 국민이 내는 세금으로 급여를 받으며 일하는 국가공무원들과 국회의원들의 어쩌면 예전 군왕제시대의 선비들의 역할을 해야하지 않는가 생각된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의 죽음과 탄핵을 두려워하지 않고 직언을 할 수 있는 정치인이나 국가고위공무원들이 있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자신의 소신을 굽히지 않고 청렴하게 실천하는 삶을 살았던 명현과 같이 나랏일을 한다면 각종 보도자료에서 보는 뇌물이나 비리의 문제는 줄어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든다. 역사는 이미지 지나가버린 과거지이지만 현재를 사는 우리는 반드시 과거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지나가버린 과거가 지금 현재의 우리를 있게 했기 때문이다. 과거의 명현18현들의 삶과 생각들이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한번쯤 짚어 보게 하는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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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문묘'라는 존재조차 몰랐던 나에게 이 책은 새로운 지식의 창고였다. 근데 읽고나서도 의문인 것은 문묘는 공자의 위패를 모셨고, 실제 우리 성학들을 예치한 학자들은 주자학을 주로 설포한 분들이라는 점이다. 나의 얕은 지식이 부끄러울 따름인데, 앞으로 좀 더 연관된 책을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문묘 18현. 조선시대의 명학자.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김인후, 이이, 성혼, 김장생, 조헌, 김집, 송시열, 송준길, 박세채 그리고 신라,고려 조의 명현들 최치원, 설총, 안향, 정몽주 이렇게 18분을 이야기 하는데, 익숙한 분들이지만 새로운 느낌도 드는 책이었다. 뭔가 내가 잘못 생각하고 있던 사람들도 있었고 말이다. 예를들어 '조광조'는 내 기억속의 이미지는 간신쪽에 가까웠다. 자신만의 생각을 임금께 주입하여 이루고자 했던 사람? 그로인해 사약을 받은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던 나에게 '문묘'에 배향되었다는 이야기는 놀라움이었다. 내가 잘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면서 꼼꼼히 읽게 되었다. 그리고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할 수 밖에 없었던 그의 사연이 안타까웠다. 짧은 세월을 살았음에도 명현이 되었다는 사실이 대단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부자가 나란히 '문묘'에 오른 영광. 아버지 김장생과 아들 김집의 이야기이다. 그리고 우암 송시열. 그의 우국충정은 조선의 성자로 불리울 만큼 생각이 깊고 실행이 투철한 인물이었다. 그리고 <단심가>로 유명한 정몽주. 그의 일편단심 사상은 지금 시대에도 꼭 필요한 부분이 아닐까? 너무 쉽게 자신이 하던일을 놓아버리는 요즘시대에 말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분들도 있고, 조금 생소한 분들도 있었던 명현 18분. 특히 이 분들이 대부분 전란의 시기 전후로 있었다는 점에서 전란에 문화도 꽃피운다는 생각도 들었다. 왜란과 호란을 겪으면서 너무나도 어려웠을 그 시기, 이 분들이 있었기에 나라가 유지되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전란 속에서 많은 간신들도 있었고 충신들도 있었고, 가장 어려운 시기였던 붕당정치 시대에도 그들은 자신의 몫을 다 하였다. 물론 당시에는 많은 핍박을 받기도 했지만 말이다. 조선 초중기 중 가장 어려웠던 시기는 선조-광해군-인조로 이어지는 시기였을 것이다. 왜란과 호란으로 모든 상황이 피폐하기만 했던 시절. 충직한 이들이 없었으면 과연 조선은 유지될 수 있었을까?
사실 타임머신이 있으면 그 시절의 모습을 직접 알아보고 싶어진다. 그 시절의 기록들이 어디까지가 진실인지를 알기 어렵기 때문에. 그리고 이들이 이야기 하는 가장 기본서라 할 수 있는 <소학>을 읽어보고 싶다. 지금의 나에게는 많이 어려운 책이겠지만, 그만큼 읽을수록 나 자신의 수양에 도움이 되는 책일 것 같다. 사실 역사서를 읽으면 항상 생각하는게 아무래도 지금은 쓰지 않는 단어들이고 한자어가 많다는 점이 읽기 어려운 점인 듯 하다. 일반 책을 읽을 때면 한장을 넘기는게 쉬운데 역사서는 그 뜻을 음미하며 넘기려면 상당히 오랜시간이 걸린다. 그만큼 나에게 피가되고 살이되는 책인 것 같다.
나의 다음 역사서는 <조선왕을 말하다> 이다. 이 책도 상당히 기대된다. 이번에 읽은 <문묘18현>과 비슷한 시기의 왕들을 만나볼 수 도 있을 것 같아 즐겁다. 과연 그 책 속에는 어떤 사실들이 있을지 기대된다. 그리고 <문묘18현>으로 인해 나의 역사지식이 조금은 늘어났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조선선비가 좋은 영향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들긴하다. 어떻게 보자면 지금의 폐쇄적인 문화의 한면을 만든 것 또한 조선시대의 영향이지 않은가? 세계적인 이 시대에 조금 도태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에 영향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 것은 한 면만을 보는 이야기이고, 전체적인 성현들의 이야기를 보면 현재에도 득이 되는 이야기들이 많다. 물론 이미 들어본 이야기이지만 그 것을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문묘18현>을 보면서 다시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