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알리 세대는 아니다. 권투에 대한 관심도 별로. 예전에 알리의 영화가 나왔을 때도 무심코 지나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알리 책을 끝까지 읽고 보니 읽은 보람은 있는 것 같다. 알리는 미국의 흑인이고 오늘날의 스포츠 스타와는 달리 60년대 월남전 당시 징집 거부로 유명해져 당시의 저항의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알리를 영웅화하지도 알리의 결단을 폄하하지도 않기 위해 노력한 것같다. 알리의 중요한 역할은 당시의 대중 문화의 지형을 바꿔놓은 것인가보다. 저자에 따르면 성공한 흑인 스타는 항상 백인의 논리에 복종하고 못사는 나머지 흑인들을 유화시키는 역할을 해왔던 것을 알리는 그런 백인이 요구하는 흑인의 대표자 노릇을 거부했고 결국 흑인 스타의 입지를 바꿔놓았다는 것이다. 그러고는 다시 개인의 자격으로 돌아와 국가에 저항하는 새로운 상징이 되었다고 한다. 내가 이 책을 읽고 든 느낌은 알리가 그다지 의식적인 저항을 한 것은 아닌 듯하다. 그가 지식인 노릇을 하려고 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억압당하면 항상 그 상황을 거부하며 튀어나오는 모습을 보여 대중들에게 자신들이 어떻게 해야할지 모범을 보여주었다는 견해에 동의할 수 있었다. 지식인이 아닌 일반인들에게 어떻게 해야 할 것인지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말이다. 이 책은 알리를 영웅으로 비추지 않으면서도 알리의 행동을 돌출행동으로 몰아 넣지 않고 흑인들이 역사적으로 축적해온 저항정신의 역사성의 표출로 설명해 내고 있다. 저자의 성실한 분석은 인정해 줄 만하다. 책의 전반부에서는 초기 몇몇 흑인 지식인들이 처했던 상황과 그들의 저항이 어떻게 이어져 왔는지의 아메리칸 흑인의 역사를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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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만한 세상에 훅을 날리다 -어느 권투선수의 죽음을 애도하며
권투 좋아하세요? 난 그거 별루입니다. 그게 뭡니까? 팬티 한 장 입은 남자 둘이 탄력 좋은 줄 두 개로 네모 칸을 만들고서 그 속에서 상대방을 향해 주먹질을 해대는 거-. 다른 경기들은 어떤 기구를 가지고 하거나 혹은 금을 딱 긋고서 그 안에서 펄쩍펄쩍 뛰고 땀을 흘리면 되는데 이건 상대방이 넉다운 될 때까지 주먹질을 멈추면 안 된다고 하니 거참 나로서는 퍽 난감한 경기가 권투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주먹질을 참 아름답고 드라마틱하게 내게 보여준 청년이 있습니다. “난 권투선수라고 하기엔 너무 아름다워!”라는, 자아도취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 청년. 두 주먹 말고는 내세울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흑인 청년 캐시어스 클레이가 겁도 없이 이런 말을 내뱉을 때, 근엄하고 ‘젠틀’한 백인남성들이 지배하던 1960년대 초반의 미국사회는 난감해 했습니다. 하지만 백인들의 미국은 끄떡하지 않았습니다. 그래봤자 그 자는 노예의 후손이요, 검둥이 복서에 지나지 않았으니까요. 당시 권투는 가진 것이 몸뚱이 뿐인 젊은이들이 돈과 명성을 거머쥘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운동경기였습니다. 백인 도박사들은 가난한 흑인들을 링 위로 불러내서 처절한 싸움을 붙이고 자기들의 주머니를 불려갔습니다. “근대 스포츠 혁명을 후원하고 만들어낸 귀족들은 절대로 권투가 벌어지는 링에 스스로 뛰어든 적이 없었다(크리켓 시합에서는 예외였지만). 하층민 출신의 직업 권투선수는 높으신 분들의 명령에 따라 시합할 뿐이었다. 권투는 처음부터 도시프롤레타리아와 관련이 깊었으나, 그 핵심영역은 돈많은 엘리트들이 조종하고 있었다.”(p.29) “오랜 역사 속에서 권투는 흑인사회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해왔다. 링 안에서는 막후실세인 백인 엘리트들의 종복이 되고 링 밖에서는 백인 엘리트의 규범에 스스로를 맞춰야 밥값이나 할 수 있는 현실이었지만 권투로 성공하고 권투로 비극을 맞은 흑인들의 권투이야기는 풍성하고 생생한 전통으로 자리잡았다.”(p.31) 아무리 실력이 좋은 선수라도 백인들의 취향과 기호에 어긋나거나 성깔을 부리면 폐인으로 전락해서 삶을 마감해야 했던 시절, 캐시어스 클레이는 그런 백인들에게 좀처럼 길들여지지 않는 야생마였습니다. 도대체 백인들을 무서워할 줄 몰랐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스포츠 스타들은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되 입은 으레 다물고 있어야 했다. 백인이건 흑인이건, 특히 흑인이라면 더욱더 겸손과 겸양을 덕목으로 삼아야 했다. 물론 거대 스포츠 종목 답게 으스대기, 큰소리치기, 자발스럽게 경쟁심 자극하기 따위가 하위문화로서 존재하기는 했지만 이런 모습은 뒷전에 감추어져 있어야 했다. 이것을 겉으로 드러내고 멋지게 포장해서 장사가 될 이미지로 몰고 간 인물이 바로 클레이였다. 클레이는 아슬아슬할 정도로 대담하게 자기를 내세웠지만 무엇보다도 언제나 장난기가 철철 넘쳤고, 자신마저도 우스갯소리의 주제로 삼음으로써 위험도를 적절히 조절했다.(pp.73~74)” 1964년 2월25일 세계 헤비급 챔피언인 소니 리스턴과 난타전을 벌이다가 7회 공이 울렸음에도 그가 링 안으로 나오지 못하자 클레이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모두 증인이 되시오! 내가 가장 위대한 자요!” 얼치기이고 과대망상증 환자같은 흑인 청년이 당대의 최고 챔피언을 눌러버린 것에 도박사들과 언론들이 그만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그는 또다시 세상을 향해 호되게 펀치를 날립니다. “나는 알라신을 믿고 평화를 믿습니다. 나는 백인동네로 이사할 생각도 없고 백인여자와 결혼할 생각도 없어요. 열두 살 때 기독교 세례를 받긴 했지만 그땐 뭐가 뭔지 몰랐어요. 더 이상 나는 기독교도가 아닙니다. 내가 택하는 길이 어떤 건지 알고 있고 무엇이 진실인지도 압니다. 나는 당신들이 원하는 챔피언이 되지는 않을 겁니다. 나의 자유로운 뜻대로 될 겁니다.”(pp.20-21) 그는 이미 블랙무슬림단체인 이슬람네이션에 가입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흑인들이 고분고분 노예근성 속에서 살아가면 좋으련만, 그렇지 않다면 엉클톰처럼 숭고하게 백인들과 함께 사이좋게 지내면 좋으련만 저희들끼리 그 무시무시한 이슬람 단체를 만들고 세력을 확장하는 것은 백인들에게는 시한폭탄이었습니다. 그러지 않아도 눈엣가시 같았던 그를 길들일 길은 오직 하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베트남에 보내버리는 일이었습니다. 언제는 검둥이라고 놀려대고 차별하며 국민의 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던 국가가 이번에는 나라를 위해 국민의 의무를 다하라고 전쟁터로 내보내려 하자 클레이는 단호하게 거절합니다. “난 베트콩이랑 싸울 일이 없어요.” ‘그 나라가 어디에 붙었는지도 난 모르겠고, 내게 조금도 해를 끼치지 않은 그곳 사람들한테 총질을 해댈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변명이었지만 그의 참전거부는 미국 대륙에서 소수와 주변인이 ‘자기 됨’의 길을 찾고 제 목소리를 내게 하는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시위가 전역에서 벌어졌고 수많은 인사들이 속속 그 대열에 참여하였습니다. 책에서는 아주 많은 분량을 베트남참전과 관련한 각계의 다양한 저항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 책의 장점은 6,70년대 미국과 주변 국가들 그리고 현대아프리카국가들의 세력다툼, 그 속에서 손익을 따지는 자들의 모습들, 대중문화의 확산 등등에 대해서 폭넓게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베트콩들하고 다툴 일 없다’던 알리의 말이 저 홀로 생겨난 것이 아님을 우리는 이제 분명히 알 수 있을 것이다. 1966년 2월, 전쟁에 대해 입장을 표명한 사람은 결코 알리 혼자만이 아니었으며, 마이애미에서 그가 터뜨린 분노의 목소리는 흑인 사회에서 수없이 일어나던 저항의 몸짓 중 하나로 보아야 한다. 고명하신 흑인대표자들은 얼버무리기 바빴던 그 저항의 목소리 말이다. 알리는 점점 높아가는 전쟁반대 물결의 일부였다.(중략) 하지만 반전운동이 절정에 달하기까지는 아직도 여러 해를 기다려야 했던 터라 1966년 2월 헤비급 챔피언은 포위되어 조롱당하는 소수자의 고통을 감내해야 했다.(중략) 알리의 징병 거부는 반전운동의 강력한 촉매제 역할을 하였다. 문제의 인물은 학자도, 목사도, 비트족이라던 신세대 문화꾼이나 보헤미안도 아니었다. 이런 부류들은 미국의 노동계급 대중에게는 스타일이나 이미지 면에서 아무런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이번의 주인공은 헤비급 권투선수였다. (중략) 미스 아메리카가 순종적 여성성의 상징이라면, 헤비급 챔피언은 남성적 지배력의 상징이었다. 판테온의 신들처럼 점점 늘어가는 반전영웅들 가운데서도 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가장 유명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흑인이었으며, 그가 반전의식을 표명하면서부터 흑인사회에서는 반전감정을 정당한 것으로 간주하게 되었고 반전운동이 백인의 전유물이라는 이미지도 불식될 수 있었다.”(pp.234-237) 하지만 책에서 확인한 대부분의 평화주의자들, 반전주의자들은 결코 손해 보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행동하고 물러났습니다. 흑인들은 백인들의 눈치를 봐야만 했고, 백인들은 그 치열한 반전데모를 슬그머니 도피적이거나 몽환적인 노래가사로 바꾸었습니다. 반면 클레이는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헤비급 챔피언 벨트를 박탈당하였고 링 위에서 쫓겨났습니다. 그러나 FBI의 감시와 도청 아래 3년이 넘는 핍박의 세월을 보내면서도 그는 흑인으로서의 자존심과 무슬림으로서의 소신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 후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아 챔피언 벨트를 되찾고야 만 클레이. 세월은 흘러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개막식에서 덜덜 떠는 손으로 성화를 들어 올려 성화대에 불을 붙이려 애를 쓴 파킨슨병 환자 클레이. 오늘날 캐시어스 클레이라는 이름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전 세계인들은 오직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으로만 그를 기억합니다. 비록 그가 이슬람네이션에 가입하여 교주 엘리야 무하마드로부터 무하마드 알리라는 이름을 얻는 대신 교묘하게 이용당한 느낌을 지울 수는 없지만 그는 개의치 않았습니다. “알리가 성공의 본보기가 되었던 까닭은 스스로 미국의 통합 상징물이 되기를 거부하고 이보다 더 원대하고 초국가적인 인식과 사회적 책임감을 옹호했기 때문이다. 알리의 역정은 스포츠, 정치, 생활의 영역 등에서 시도되는 국가적 통합이라는 것이 저절로 태어난 것도 신이 선물로 준 것도 아님을 항상 우리에게 일깨워준다. 국가적 통합이란 만들어진 것이며, 나아가 알리 스스로 입증했듯이, 해체시킬 수 있는 것이다. 일부 사람들은 알 리가 불완전한 영웅임을 뒤늦게 알고 충격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어떻게 보면 영웅이란 실제 존재하지도 않을뿐더러 쓸모없기만 한 것이다. 영웅은 단지 숭배될 뿐, 모방의 대상은 아니다. 알리의 인간적 결함을 바라볼 때 우리는 성공의 본보기란 언제나 불충분하고 모순된 것임을 깨닫게 된다.”(p.395) 위인전을 통해 소박하게 우상을 키워가고 닮으려 했던 사람들에게 그 우상의 양면성을 남김없이 드러내 보여준 사람이 알리입니다. 저자의 말처럼 숭배의 대상이기만 하면 될 뿐 모방을 할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 한 인물이 시대를 어떻게 자기 정신으로 살아갔는지만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러는 한에 있어 알리는 저항하는 자들의 살아있는 영웅입니다. 스포츠가 어마어마한 기업의 돈으로 포장되고 대중문화예술인들이 가볍게 제 입으로 ‘공인’이라고 나붓거리는 요즘, 그 그늘에서 죽어간 한 권투선수의 모습에서 한번쯤 알리라는 인물의 의미를 되새겨볼 의무가 우리에게는 분명히 있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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