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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덱의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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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Il Y A Longtemps Que Je T'aime,2008) 라는 프랑스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친자 살해를 저지르고 15년 간을 감옥에서 보낸 여자(줄리엣)가 세상의 차가운 시선이라는 또 다른 감옥 안에서 서툴게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영화는 시종 줄리엣의 눈, 그 커다랗고 텅 빈 구렁 같은 눈동자를 놓치지 않는다. 눈만을 클로즈업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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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Il Y A Longtemps Que Je T'aime,2008) 라는 프랑스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친자 살해를 저지르고 15년 간을 감옥에서 보낸 여자(줄리엣)가 세상의 차가운 시선이라는 또 다른 감옥 안에서 서툴게 관계를 맺어가는 과정을 그려낸다. 영화는 시종 줄리엣의 눈, 그 커다랗고 텅 빈 구렁 같은 눈동자를 놓치지 않는다. 눈만을 클로즈업하는 것이 아닌데도 그 눈빛은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선과 마음을 붙들어 놓는다. 영화를 보고 난 후에도 끈덕지게 따라붙는 그 눈동자의 여운을 털어버리기라도 하듯 담배의 재를 떨어내던 기억이 난다. 한마디로 그 눈빛에 아주 질려버렸다. 『브로덱의 보고서』를 읽으면서 나는 글쓴이와 그 영화의 감독이 동일인이라는 것을 알았다. 필립 클로델은브로덱의 보고서에서 사람의 "눈()은 나이가 없다고, 사람은 어린아이의 눈을 간직한 채 죽는다고, 어느 날 세상을 향해 연 순간부터 단 한 순간도 세상을 놓지 않던 눈을 그대로 간직한 채 죽는다고" 쓴다. 텅 빈 구렁 같던 여주인공의 눈빛이 나를 사로잡았던 이유를 이제 알겠다.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던 그 여자의 눈빛은 '거울'이었다.

 

   "그자는 거울 같았어. 알겠니, 굳이 말이 필요 없었어. 그는 우리 각자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었지." (책에서)

  

    전쟁의 상흔이 아직 남아 있는 작은 마을에 낯선 사람이 흘러들어오면서 빚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는브로덱의 보고서에서 신부가 이야기하듯 안더러(타인)는 거울 같은 자였다. 광대 같은 행색을 하고 연기처럼 나타난 안더러가 그려낸 마을 사람들의 초상화에는 놀랍도록 진실한 그들 생의 과정과 비밀이 담겨 있다. 어디서 굴러먹다 온 건지 알 수 없는 그 '타인'은 이상한 언어를 사용한다. 그나마 말도 거의 하지 않는다. 무엇보다 그는 이름이 없다.

 

 

    "줄리엣! 줄리엣!" '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여자가 답한다. 네, 여기 있어요.브로덱의 보고서에서는 브로덱이 자신의 이름을 네 번이나 얘기하면서 끝난다. 내 이름은 브로덱. 나는 그 일과 무관하다. 브로덱, 이게 내 이름이다. 브로덱. 부디, 기억해 주시기를. 브로덱.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많은 이들의 가슴을 울린 김춘수의 시 '꽃'의 일부이다. 한 존재를 세상과 연결해 주는 '이름'의 중요성을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에서 줄리엣이 그러하듯,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는 내가 누구인지, 어디 있는지를 의식하게 해준다. 이름이 없다고 하여 존재도 무()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고유한 이름은 세상과의 연결고리가 되어준다. 안더러는 이름이 없다. 아니, 이름을 묻는 마을 사람들에게 침묵한다. "세상을 향해 연 순간부터 단 한순간도 세상을 놓지 않"으면서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눈()처럼 통성명을 하는 것도 일종의 소통 의지를 드러내는 일이다. 이름을 알리지 않은 안더러는 그러므로 마을 사람들을 향해 눈()을,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자신을 보여주지는 않는 자가 뚫어지게 나를 관찰하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끔찍한 전쟁까지 치른 마을 사람들은 두렵고 불안하다. 안더러와 마을 사람들의 관계를 통해 필립 클로델은 두려움이 어떻게 인간성을 말살시켜가는지를 보여준다.

 

  "사람들은 이상해. 별 생각 없이 세상에서 제일 나쁜 짓을 저지르지. 그런데 자기가 저지른 일에 대한 기억을 안고서는 계속 살아갈 수가 없는 거야. 내다 버려야 하지. 그럼 나를 만나러 와. 왜냐하면 그들을 편하게 해줄 수 있는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걸 알거든. 그래서 나한테 다 얘기하지. 나는 하수구야, 브로덱. 나는 신부가 아니라 인간 하수구야. 사람들이 편해지려고, 가벼워지려고 자기들의 온갖 피고름과 쓰레기를 내다부을 수 있는 뇌를 가진 인간. 그러고 나서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가 버려. 새사람이 되어서. 깨끗해져서. 다시 시작할 준비가 되어서.  (책에서)

 

    감옥에서 출소한 줄리엣(당신을 오랫동안 사랑했어요,2008)은 자신을 옥죄는 또 하나의 감옥에서 살아간다. '죄의식'이라는 감옥이다.브로덱의 보고서에서 마을 사람들이 브로덱에게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맡기는 것도 죄의식 때문이다. "그 보고서를 읽는 사람이 이해하고 용서할 수 있도록". 필립 클로델은 두 작품에서 '죄의식'이라는 감옥에서 탈출하기 위해 '고백'의 형식을 빌리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줄리엣은 자신이 왜 여섯 살 난 아들을 죽일 수밖에 없었는지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는다.브로덱의 보고서에서 마을 사람들을 죄의식이라는 감옥에서 해방시켜주는 것은 마을의 신부이다. 고백성사라는 형식을 통해 마을 사람들은 자신이 지은 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정화된다.

 

 

   브로덱의 보고서에는 다양한 은유와 상징이 가득하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그것들은 점차 얼개를 잡아간다. 소설의 마지막에서 브로덱이 마을을 떠날 때 그 상징들은 불꽃처럼 폭발한다. 예수상이 달린 십자가 근처에서 마지막으로 마을을 돌아봤을 때 그의 눈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다. 마을이 사라진 것이다. "마을과 함께 모든 것, 얼굴, 강, 사람, 고통, 샘물, 내가 막 지나온 오솔길, 숲, 바위"가 한순간에 지워져 버린다.

 

   "너는 다른 사람들과 달랐지." 늙은 은사가 다시 말을 이었다. "네가 우리 지방 출신이 아니라서, 아주 먼 곳에서 왔다고 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게 아니다. 넌 다른 아이들과 달랐어. 항상 사물 너머에 있는 것을 보고 있었거든……. 항상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보려고 했지." (책에서)

 

   소설 도입부에 등장하는 '양복장이 빌리시' 이야기는 후반부에 한 번 더 등장한다. 브로덱이 어릴 적 페도린이 들려준 이 옛날 이야기에는 놀라운 상징이 숨어있다. 가난한 양복장이 빌리시는 어머니와 아내, 어린 딸과 함께 피토포이라는 '상상의 도시'에 산다. 어느 날 왕이 보낸 기사 셋이 그를 찾아와 왕을 위한 옷을 지어 달라고 주문한다. 빌리시는 멋진 옷을 바쳤고, 기사는 이틀 후에 왕의 상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그에게 돌아온 것은 어머니와 아내의 죽음 뿐이었다. 슬픔에 찬 빌리시는 마지막 기사가 옷을 주문했을 때 왕의 상은 원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자 기사는 말한다. 왕에게는 삶과 죽음을 정하는 힘이 있는데, 네가 오래 전부터 바라던 딸을 내려주실 것이라고. 빌리시는 이미 자신에게는 딸이 있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기사가 빌리시를 바라보면서 이렇게 말한다.

 

'불쌍한 빌리시, 왕이 네 어머니와 아내를 빼앗아 갔을 때 너는 별로 슬퍼하지 않았다. 그래서 왕은 네가 갖지 못한 딸을 주려고 하셨다. 왜냐하면 네가 아버지라고 생각하는 그 딸이 실은 환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너는 여전히 사리를 구분하지 못하는구나. 너는 정말로 삶보다 꿈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느냐?'

 

   브로덱이 완성된 보고서를 가져갔을 때 오어슈비어는 그것을 한 번 읽고 불 속으로 던져버린다. 보고서라는 일종의 고백성사를 통해 그들의 죄는 재로 사한 것이다. 그런데 이때 불타 없어진 것이 그들의 죄뿐은 아닌 것 같다. 보고서와 함께 슐로스 여인숙과 안더러 그리고 마을 사람들도 함께 사라진 것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다시 말해, 브로덱의 보고서는 허구였다는 것. '모든 것을 파괴하고 폭로하는' 전쟁의 희생자 브로덱이 파괴된 자신의 인간성과 죄의식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삼은 것이 바로 허구의 보고서가 아니었나 말이다. 지옥과도 같은 삶 속에 내던져진 브로덱에게는 꿈이 간절했던 것이다.

 

 

   어떤 작가의 작품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려면 그의 다른 작품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새삼 실감했다. 특히 필립 클로델은, 비록 두 작품밖에는 알지 못하지만, 작품 곳곳에 다양한 상징과 이미지들을 장치적 도구로서 마련해놓고 있다. 주의 깊게 살피면 그 상징과 이미지들은 폐부를 찌른다. 그것은 거울과도 같아서 오랫동안 똑바로 쳐다보면 두려움과 불안에 사로잡혀 눈을 돌리게 된다. 그러나 끝까지 외면할 수는 없는, 다시 거울 앞에 서게 하는 이상한 힘이 있다.

 

 

 

 

 

g*******s 2010.05.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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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섦이란 또다른 두려움의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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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의 배경은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내 알수 있듯 전쟁과 그속에서 죽은자와 살아남은자의 이야기가 보고서 형식을 빌어 쓰여졌다. 홀로코스트의 지옥과도 같은 참혹한 실상을 직접 경험한 자와 그것이 두려워 모면하고자 하는 이들의 대립된 갈등과 인간 내면의 숨겨진 모습을 과장된 표현 없이 고스란히 담고 있다. 보고서의 객관성을 최대한 살리고 군더더기와 부연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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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의 배경은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이내 알수 있듯 전쟁과 그속에서 죽은자와 살아남은자의 이야기가 보고서 형식을 빌어 쓰여졌다. 홀로코스트의 지옥과도 같은 참혹한 실상을 직접 경험한 자와 그것이 두려워 모면하고자 하는 이들의 대립된 갈등과 인간 내면의 숨겨진 모습을 과장된 표현 없이 고스란히 담고 있다. 보고서의 객관성을 최대한 살리고 군더더기와 부연 설명 없이 전쟁과 인간의 낯섦에 대한 두려움, 그 한계점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고 있다. 브로덱이라는 제3자이면서 동시에 그들 모두의 눈으로. 

 

전쟁의 여파가 채 가시기도 전에 이들 마을에 정체를 알수 없는 한 낯선 남자가 찾아 온다. 이름조차 말해주지 않는 그를 사람들은 '안더러'라 부른다. 즉 '다른사람''타인'이란 뜻이다. 이 낯선 이방인의 정채를 작가 역시 마지막까지 밝히지 않는다. 그러나 닟선이의 존재만으로도 마을 사람들은 동요하기 시작하고, 어느날 바람처럼 마을로 왔던 안더러는 연기처럼 마을에서 사리진다. 작가는 마을을 둘러싼 사건을 주인공 브로덱에게 맡긴다. 그 역시 오래전 전쟁으로 고아가된 후 떠돌이 여인 페도린과 함께 이 마을에 정착하게된 말하자면 이방인인 것이다. 이방인의 손에 마을 사건의 기록을 맡김으로 객관적인 타자의 시선으로 마을 사람들을 바라보게 된다. 

 

도대체 마을 사람들이 그토록 감추고자하는 진실이란 무엇일까. 하나씩 밝혀지는 그 때의 기억들. 낯선 이방인의 출현으로 인해 자신들이 숨기고 싶었고 애써 외면해왔던 진실과 마주하게 된 마을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음모를 꾸민다. 마을을 찾아온 정체불명의 사내에 대한 두려움이 결국 그들 안에 깊숙히 잠자고 있던 본성을 들춰내고 어느 무더운 날 터질듯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그들의 잠재된 폭력성이 마침내 한 남자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당연하듯 거두어 가고 만다. 그가 타인이기에, 익명으로 아니 모두의 손으로 자행된 만행은 브로덱이 전쟁이라는 이름하에 저질러진 수 많은 만행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수용소에서 그토록 보아왔던 죽음위에 하나들 보테거나 빼거나 아무 의미가 없듯.

 

 '신은 나무를 수백년 동안 평화롭게 설도록 해놓고 인간에게는 너무나 짧고 너무나 힘든 삶을 주셨다.'

 

'사람의 기억이 다른 사람을 잊었거나 한 번도 보지 못한 것을 어떻게 붙잡아 두는 것일까? 지나간 순간을 암흑속에 내던저 두지 못하는 사람과 해결할 수 없는 것을 전부 어둠속에 내던져 버리는 사람 중에서 누가 옳은 것일까? 사는것, 계속 살아가는 것, 그것은 혹시 현실이 아닐수도 있다고 치부해 버리는 것이 아닐까?'

 (본문중)

 

현실을 받아들일수 없을때, 내가 악몽을 꾸고 있는건 아닌지, 모든게 자고 나면 사라져 버렸으면, 사실이 아니길 바랐던 적이 있다. 보고서를 마무리하고 사건의 전모를 알게된 브로덱은 생각한다. 역사를, 세상을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보고서에 쓰여진 이 이야기가 어쩌면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 아닌가하고.

 

보고서를 받아든 시장은 조용히 난로속으로 밀어넣고 속삭인다. 종이위의 보고서에 마을 전체가 잊고 싶어하는 모든 것들이 있었다고, 그리고 마을은 잊었노라고. 종이는 불탔어도 머릿 속은 태울수 없기에 그는 기억을 지닌 채 마을을 떠난다. 작가는 말한다. '더이상 말할 수 없게된 사람들을 대신해서 '글을 쓴다고. 인간을 인간답게하는 것이  우리가 스스로의 이름에 책임을 지고  우리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올바른 이름으로 부르고 이해하고 보듬어 안는 것이라고 이 보고서를 통해 말하고 있다. 브로덱, 그이름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그의 당부대로. 그러므로 전쟁의 지옥에서 살아 돌아온 그가 또다른 현실속 지옥에서 맞딱뜨리게된 이야기를 적은 보고서는 절망을 넘어선 희망의 보고서가 될 것이다.

k******2 2010.05.20. 신고 공감 2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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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은 브로덱, 부디 기억해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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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클로델의 '브로덱의 보고서'는 가슴을 조여오는 아픔을 준다. 브로덱이 겪은 숱한 고통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시간들을 무자비하게 지워버린 시대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어리석은 개인들이 집단의 무지한 힘으로 일으키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은 공포, 그 자체이다. 자신들의 치부를 보여주는 거울 같은 존재를 거부하고 그 거울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집단의 두려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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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클로델의 '브로덱의 보고서'는 가슴을 조여오는 아픔을 준다. 브로덱이 겪은 숱한 고통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시간들을 무자비하게 지워버린 시대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어리석은 개인들이 집단의 무지한 힘으로 일으키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은 공포, 그 자체이다. 자신들의 치부를 보여주는 거울 같은 존재를 거부하고 그 거울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집단의 두려움은 나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닮은 사람들 같아 스르륵 돌아서고 싶기도 하고 맞서고 싶기도 해진다.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집단 이기심과 수치심이 만들어낸 두려움과 어리석움의 모습이었고 그로 인해 브로덱과 안더러('다른 사람, '타자' 라는 뜻)는 이유도 모른 채 '이방인'이 되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런 시간들을 견뎌야 했고 안더러는 잠시 승리자였던 이유로 인해 비싼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끔찍한 전쟁을 겪은 지 얼마되지 않는 시기에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대의 폐쇄적인 작은 마을에 '낯선 남자'가 찾아온다. 그들만의 독특한 방언을 쓰며 낯선 자에 대한 거부감과 심한 불관용성을 지닌 마을 사람들 눈에는 그가 신기한 존재에서 이물질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집단 광기는 표출되고 결국 사건이 일어난다. '에라이그니스'(방금 일어난 일)이 일어났던 그날 밤 슐로스 여인숙에 모인 마을 남자들에 의해 갑자기 사라진 안더러 사건의 전말을 보고서로 작성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끔찍한 진실은 더욱 더 모른 채 조용히 살고 싶은 브로덱에게 물증은 없지만 마을 전체가 작당모의한 집단 범죄임이 확실한 사건을 조사해 보고서로 제출하라는 지시에 브로덱은 사건을 조사해 가는 과정에서 전쟁 전과 후의 사건들과 브로덱의 겪어야 했던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고 안더러가 자신과 같은 또 다른 '낯선 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브로덱은 요청받은 보고서외에 진짜 숨은 진실을 담고 있는 비공식 보고서를 쓴다. 

 

30여 년을 가족처럼 지내왔던 사람들에 의해 배척당하고 내몰려 '인간 브로덱'에서 '똥개 브로덱'으로 보내야 했던 지옥의 시간을 경험한 브로덱과 그들과 '다름'을 지녔고 타자의 눈으로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볼 줄 알았던 안더러는 그들에게는 그저 공포를 전해주는 '낯선 자(타자)'였다. 타자에 대한 무지한 어리석음이 모인 두려움이 얼마나 극한 상황으로 내몰 수 있는지, 이기적인 집단 광기에 의해 한 개인이 철저하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이 보여주는 집단 광기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은 전쟁을 일으켰던 이들의 잔혹성을 점차 닮아가고 사건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편을 가르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평화는 깨지고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는 순간을 화들짝 느끼게 된다. 집단 무의식이든 어리석음이 동반한 두려움 때문이든, 여전히 '타자'를 인정하지 못하고 배척하게 된다면 우리는, 나는 그 폐쇄적인 마을에서 추악한 모습의 '같음'만을 추구하는 그들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나와 다른 생각,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인간은 인간일 수 있게 된다는 진실을 브로덱의 보고서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필립 클로델'의 '브로덱의 보고서'는 눈물이 메말라지는 아픔을 준다.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하고 인간이 보여주는 추악하고 무자비한 잔혹함에는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는 메마름과 깊은 한숨이 나온다. 마음속 혼돈을 잠재운 채, 그저 담담하게 보고서를 작성하는 브로덱의 글에서, 목소리에서 그의 눈빛에서 무수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r*****0 2010.05.3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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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덱의 보고서』-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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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과 사소한 말다툼이라도 하게 되면 피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약점이나 자존심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심리적으로 아주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혹은 평소에 정말 순하게 느껴졌던 사람이라도 그런 공격들에는 반응을 보이는 법이다. 그 반응이라는 것이 간단하면 좋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심각한 일들을 낳기도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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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사람과 사소한 말다툼이라도 하게 되면 피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상대방의, 약점이나 자존심으로 표현되기도 하는, 심리적으로 아주 민감한 부분을 건드리는 것이다.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혹은 평소에 정말 순하게 느껴졌던 사람이라도 그런 공격들에는 반응을 보이는 법이다. 그 반응이라는 것이 간단하면 좋겠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아주 심각한 일들을 낳기도 한다. 단순한 약점이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것은 그것을 행한 자에게 비난의 화살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상대방을 그 자체로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끔 -단지 그 맛이 좀 쓰더라도- 하는 말을 던진다면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 받아들이는 것이 삐딱해서, 그 결과로 돌아오는 반응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는다면?! 그렇다면, 이제는 누구에게 화살을 돌려야 하는 것일까?!

“내 이름은 브로덱이고 그 일과 무관하다.”
는 문장으로 『브로덱의 보고서』는 시작된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브로덱’에게 사람들은 보고서를 쓰라고 강요한다. 형용할 수 없는 것을 형용하기 위한 단어인 ‘에라이그니스’라고 불려질 ‘그 일’에 대해서 말이다 ㅡ. 그 일이란 것이 ‘안더러’와 관련이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당장에 그것들을 파악하기에는 힘들 정도의 안개를 쳐놓으면서, 이야기는 브로덱의 보고서로 옮겨진다 ㅡ.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 지대로 짐작되는 마을 ㅡ. 그렇다. 그저 짐작 할 뿐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읽다보면 이 글의 배경은 도대체 어느 시기인지, 그 공간은 어느 곳인지 헤매기 십상이다. 시공간을 쉽사리 알아채기 힘든, 그런 마을을 찾아온 낯선 이가 있다. 사람들은 그를, ’다른 사람’ 혹은 ’타자’라는 뜻의 ‘안더러’라고 부른다. 아무 거리낌 없는 그의 등장에, 마을 사람들은 긴장을 하며, 그를 경계 할 수밖에 없다. 그런 긴장감 속에서 그는 마을 사람들이 애써 감추려고 했던 진실들을 다시 떠올리게 만들고, 결국에 ‘그 일’이 벌어지게 되는 것이다 ㅡ. ‘그 일’을 둘러싼 모든 것들을 마을 사람들은 브로덱에게 하여금 보고서를 쓰게 한다. 그들이 원하는 방식의 보고서를…. 하지만 그가 남기는 보고서는 진실과 그렇지 않은 것, 두 가지 이다 ㅡ.

‘안더러’의 ‘그 일’과 동시에, 브로덱은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간다움이 사라진 곳, 겉모습만 인간이고 의식이 없는 짐승들만 머무는 곳에 갇혀, ‘똥개 브로덱’으로 살았던 지난 기억을….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며 ‘똥개 브로덱’의 삶도 마다하지 않던 그만이 결국 살아남고, 마을로 돌아온다 ㅡ. 다시 돌아온 그 마을에서 그를 바라보는 시선은 곱지 않다. 기억하고 싶지 않은 일일 텐데, 그는 ‘검은 구렁’이라 부르는 암흑으로 가득했던 그 시기를 떠올리고 이야기하는 것은, 쓸데없이 불현듯 기억났기에 하는 이야기는 절대 아닐 것이다. 역시나 그것은 ‘안더러’와 관계가 있었던 것이다. 아니 단순한 관계가 아니라 그가 안더러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안더러가 그가 될 수도 있는, 단순함 이상의 관계인 것이다 ㅡ.

전쟁이라는 최악의 상황, 그 속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본성을 살펴보게 된다.
사람들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는 그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왜 그들은 그토록 폐쇄적으로만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일까?! 라는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맴돈다. 그들의 행동을 일종의 집착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인간의 본성을 흔들어 놓는 공포라는 이름으로부터 벗어나고픈 일종의 집착 같은 것들 말이다 ㅡ. 그로인해 처음에 피해자였던 사람이, 나중에는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로 나타나기도 한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이 작은 마을에서는 작은 전쟁이 계속 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라는 작가의 물음에 나는 과연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브로덱의 보고서』에서 들려주는 인간, 그리고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진실과 희망은 과연 어떤 것인가?! 이름이 아닌 다양한 방식으로 불리는 ‘안더러’를 통해서, 오늘날 우리가 필요로 하는 인간의 체온과는 반대로, 어떤 차가움을 나타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결국, 내가 누군가의 이름을 따뜻하게 부르고, 또 다른 누군가가 나의 이름을 따뜻하게 부르는 순간 느껴지는 인간의 온도 ㅡ.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따뜻한 체온, 따뜻한 인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ㅡ.

b****j 2010.05.3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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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인간'에 대한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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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먼저 간 사람들이 생각나고, 마음도 복잡다단해지는 요즘이다.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는 것이 인간 이며, 이 하나의 손바닥으로 무한을, 한치 시간에서 영원을 쥘 수 있는 존 재가 인간이라고 시인은 노래했었지만, 어디 또 그런가.아우슈비츠를 만들고 40만의 유태인을 학살하는 것이 또 인간이다.그렇기에 어떤 작가는 세상은 100퍼센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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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쩐지 먼저 간 사람들이 생각나고, 마음도 복잡다단해지는 요즘이다.
한 알의 모래에서 세계를 보고, 한 송이 들꽃에서 천국을 보는 것이 인간

이며, 이 하나의 손바닥으로 무한을, 한치 시간에서 영원을 쥘 수 있는 존

재가 인간이라고 시인은 노래했었지만, 어디 또 그런가.
아우슈비츠를 만들고 40만의 유태인을 학살하는 것이 또 인간이다.
그렇기에 어떤 작가는 세상은 100퍼센트의 거짓말로 이루어져 있다고 확신

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 그 작가는 그 중 80퍼센트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하얀 거짓말이라고 부연했다.
그런 이면적인 존재가 또 인간이다.


필립 클로델은 이러한 우리의 이면성, 나약함, 한계, 그러나 아름다운 가

능성을 이야기해온 작가이다.
전작 회색영혼 역시 전쟁의 상흔과 상처, 고독, 이기심, 그러나 순수한 마

음을 갖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번 신작 브로덱의 보고서는

이러한 그의 작가적 시선이 한층 섬세하게 다듬어져 내놓아진 것으로 느껴

진다.

 

이야기는 전쟁 후, 수용소에서 돌아온 브로덱에게 마을에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이 맡겨지면서 시작한다.
마을 전체가 공모한 이 공공연하고도 은밀한 살인사건의 전말이 브로덱의

서술을 통해 밝혀지는데, 이 과정에서 사람들의 감춰진 비밀, 욕망, 이야

기가 드러나고 있다.
처음부터 '프렘더(이방인)'였던 브로덱의 눈에 비친 이들과, 프렘더 였기

에 그가 겪어야 했던 일들, 하나의 종(種)으로서의 인간이 자신과 다른 개

체에게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자신의 안위가 위협당할 때, 혹은 자

신의 안위와 아무 상관이 없더라도 단순한 욕망의 충족을 위해 얼마나 난

폭해질 수 있는지, 그 이기성과 광기, 고등한 저열함 등이 세밀한 눈으로

읽혀 씨실과 날실로 정교하게 짜여져 드러난다.


전작부터 느꼈지만, 필립 클로델은 섬세한 작가이다.
사람의 마음의 결 한올 한올을 세심하게 포착해내고, 조심스럽지만 분명한

단어로 이를 표현해낸다.
마음을 움직이는 서술의 힘도 좋지만,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인간사와 사

람의 모습이 여러모로 인상적인 작품이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서 슬픈 마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우리가 이토록 유한하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존재라는 사실에.
'인간적'이라는 말의 이중성을 다시금 몇 번이나 곱씹어보게 한 작품이었

다.

YES마니아 : 로얄 s*****f 2010.06.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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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덱의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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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를 치고 있는 기이한 형상의 표지가 눈길을 끈 <브로덱의 보고서>이다. <회색영혼>이라는 책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작가라고 하는데, 나는 필립 클로델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 심리묘사나 진중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점이 이 책에 대한 기대를 더했다.   '내이름은 브로덱이고 그 일과 무관하다.'라고 시작되는 이야기.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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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기를 치고 있는 기이한 형상의 표지가 눈길을 끈 <브로덱의 보고서>이다. <회색영혼>이라는 책으로 먼저 이름을 알린 작가라고 하는데, 나는 필립 클로델이라는 작가를 처음 만난다. '인간의 본성'에 대해 다루고 있다는 점, 심리묘사나 진중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는 점이 이 책에 대한 기대를 더했다.

 

'내이름은 브로덱이고 그 일과 무관하다.'라고 시작되는 이야기.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알았을 때, 영원히 아무 이야기도 하지 않았으면 했다고 말한다. 누군가가가 브로덱에게 '어떤 일'을 강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브로덱은 거부하고 싶지만 '안더러'처럼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참았다고 말한다.

 

안더러. 그건 브로덱의 그를 부르는 이름이다. 그 사람의 정확한 이름은 알 수 없고 사람들이 자기들이 지어낸 여러가지 표현으로 그를 부른다. 플라우게, 무어멜네어, 몬틀리히, 케캄되르한.. 브로덱은 '타인'이라는 뜻의 '안더러'로 그를 부른다. 어쨌든 사람들은 안더러를 경계하고 있고, 자신과 다른 사람으로 받아들인다. 이방인이라 여기는 브로덱은 그러나 그 사람이 나 같다고 느껴진다고 고백한다.

 

초반에 밝힌 것 처럼 이제 이야기는 브로덱이 말하는 '그 일'과 정체가 모호한 '안더러'.. 그리고 제목처럼 브로덱이 적게 될 보고서가 무엇이냐에 초점이 맞혀질 것이다. 그런데 책을 읽자마자 가슴에 쿵, 작가의 글을 기대 할 수 있는 문장을 발견했다.

 

" 진실이란 손모가지를 분지를 수도 있고

도저히 끌어안고 살기 힘든 상처를 남기기도 한다.

헌데 우리 대부분이 원하는 것은 그저 살아 나가는 것이다.

가능한 고통스럽지 않게. 그것이 인간이다.  -p10"

 

이것이 앞으로 다뤄갈 작가가 말하려 하는 인간의 본질이 아닌가 싶었다. 진실을 알려하지 않고, 고통스럽지 않기위해. 그저 살아가는 인간. 네살때 부모를 잃고 혼자되어 페도린의 손에 자란 브로덱, 전쟁이 일어나고 2년 이란 세월을 인간다움이 사라진 겉모습만 인간이고 의식이 없는 짐승들만 머무는 수용소에서 끔찍한 시간을 보냈다.

 

똥개 브로덱. 수용소에서 그는 그렇게 불렸다. 많은 사람들이 간수들의 개 같이 대하는 행동에 반항하며 죽어갔지만, 브로덱의 네발로 걸으며 충실한 그들의 똥개가 되었다. 그래서 그는 살아남았다. 그렇게 살아남은 브로덱이 살아서 마을로 돌아왔을 때, 마을 사람들은 그를 보고 놀라며,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다. 마치 안더러를 바라보던 그때처럼. 그래서 처음 부분에서 브로덱이 안더러를 자신과 닮았다고 느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는 시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이 그에게 보고서를 작성할 것을 종용한다. 처음부터 안더러에게 적대적이 었던 사람들. 그들이 무리가 되어 행한 일들. 그것을 덮기위한 보고서. 타인에게는 음모와 냉정, 자신의 마을로 온 안더러에게 꿍꿍이가 있을 거라며 경계했지만 안더러는 그가 성자처럼 느꼈었다. 그런 안더러에게 행한 일들. 브로덱의 마을 사람들이 작성하게한 보고서와 사실을 찾기위한 또 하나의 보고서를 작성한다.

 

이 소설에서는 집단 속에서 변하는 인간의 본성, 낯선 것에 대한 방어적인 인간의 심리, 전쟁 속에서 보여지는 인간의 잔인한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브로덱이 마을 사람들을 보며 나는 혼자라고 느꼈을 때,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잘 보여주는 문장도 있다.

 

모든 사람들 중에서 죄 없는 사람은 바로 나야! 나라고!

나 하나뿐이야! 나 하나밖에 없다고!

나 하나.

그렇다, 나는 혼자였다.

갑자기 그 말이 얼마나 위험하게 들리는지 깨달았다.

죄지은 사람들사이에서 혼자 죄가 없다는 것은

무고한 사람들 가운데 유일한 죄인과 결국 똑같다는 것을 알았다. p.86

 

이 얼마나 정확한 말인다. 자신이 옳다고 한들, 집단속에서 오히려 자신이 죄인이 된다. 그리고 개인이 얼마나 잔혹해 질 수도 있는지, 전쟁에 수용소에 끌려가 그를 개처럼 대하던 간수가 전쟁이 일어나기 전에는 아내와 자식을 둔 평범한 아버지일 뿐이었다는 것, 그리고 마을사람들이 안더러나 브로덱에게 행한 행동을 통해 보여준다.

 

그냥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이야기하려는 주제도 무겁고, 쉽고 감성적인 글에 익숙한 독자들이라면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의 구조나 문체에서 탄탄함이라는 소설의 매력도 느낄 수 있다. 특히나 내가 이책에 빠져든 것은 작가의 문장 때문이기도 하다. 처음부터 진실에 관한 정의를 내릴 때부터, 인간의 본성을 드러 낼 수 있는, 암울하지만 사실일 수 밖에 없는 진실에 대한 정의를 너무나 가슴에 와닿게 풀어놓아, 작가의 힘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생각할 것도 많고, 다시 한번 제대로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s****g 2010.06.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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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진실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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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건이 발생했다. "안더러" 브로덱에게는 타인이라는 뜻의 그가 그날 마을사람들과의 일로 없어졌다. "에라이그니스" 그날의 진실을 시장은 브로덱에게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한다. 과연 보고서를 잘 작성할수 있을까. 그날 술집에서 마을사람들은 무슨 일을 저질렀을까. 이사건의 음 모는 계획된 것인가.   진실을 찾아가는 여행에서 브로덱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아마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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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건이 발생했다. "안더러" 브로덱에게는 타인이라는 뜻의 그가 그날 마을사람들과의 일로

없어졌다. "에라이그니스" 그날의 진실을 시장은 브로덱에게 보고서를 작성하라고 한다. 과연

보고서를 잘 작성할수 있을까. 그날 술집에서 마을사람들은 무슨 일을 저질렀을까. 이사건의 음

모는 계획된 것인가.

 

진실을 찾아가는 여행에서 브로덱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한다. 아마도 제2차세계대전을 말하는

것 같다. 홀로코스트와 관련된 자신을 "똥개 브로덱"이라 말한다. 남들은 혀로 구두를 닦지 않았

고 개 흉내를 내지 않아서 죽어갔다. 브로덱은 했다. 그래서 살아남았다. 사람들은 그런 그를 더

러운 벌레보듯 한다. 왜 브로덱은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자신의 지난 과거를 회상하는 것일까.

 

아마도 브로덱 자신도 이방인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전쟁중에 만난 페도린이라는 여인과 떠

돌다 이마을에 정착한 것이다. 그런 그들을 마을 사람들은 잘해 주었다. 하지만 안더러가 마을에

나타난 순간 그들의 반응에 찬바람이 불었다. 마을의 이것저것을 물어보는 그를 의심한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안더러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음모를 꾸미고 에라이그니스의 그날 모두 다같이 살

해한 것이다.  완성된 보고서는 시장의 손에 찢겨지고 브로덱은 마을을 떠나기로 한다.

 

사람들의 증오가 불러온 한사건의 브로덱의 기억을 되살리지만 읽는 독자들은 혼란이 온다. 현재

와 지난 과거가 회상함에 따라 전쟁중에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현재에 이르러서는 증오가 불러온 살

인사건으로 인한 하나의 보고서지만 이리왔다 저리갔다 하니 집중하는데 좀 어려웠다.

하지만 필체와 표현력에서는 쏙 빠지는 사건이나 클라이막스는 없지만 잔잔한 파도가 언제 불러올

지 모르는 재앙을 뜻하는듯한 표현이었다. 저자의 또다른 작품 "아이들 없는 세상"은 아직 읽어보

지 않았지만 이책으로 문학적으로 표현력이 좋음을 알것 같다.

처음에는 사건의 발생도 명확하지 않았고 브로덱의 과거형처럼 서술되어서 제대로 된 내용을 파악

하지 못했지만 중반에 가서는 알수있었다. 사람들의 잘못된 행동을 뉘우치기보다는 정당화 하려는

말투가 살짝 거슬리긴 했다. 하지만 인간의 감정이 다 똑같을수는 없다. 그런면에서 이해를 필요로

하는 작품인것 같다.

b*****8 2010.06.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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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덱의 보고서 - 매 순간의 상처, 한순간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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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브로덱'의' 보고서인가, 아니면 '브로덱'의 보고서인가?나는 진실이 아니라 의심을 택했다. 비록 그 의심이 지극히 작고 빈약한 것일지라도. 그렇다, 나는 그편이 더 좋았다. 진실이 어쩌면 나를 죽일 수도 있었기에.에라이그니스. 그리고 '안더러'라고도 불리웠던 자, 아니 어쩌면 '그 누구도 아닌' 자. 브로덱의 보고서는 그 사건, 에라이그니스에 대한 보고서이다. 브로덱은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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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브로덱'의' 보고서인가, 아니면 '브로덱'의 보고서인가?

나는 진실이 아니라 의심을 택했다. 비록 그 의심이 지극히 작고 빈약한 것일지라도. 그렇다, 나는 그편이 더 좋았다. 진실이 어쩌면 나를 죽일 수도 있었기에.

에라이그니스. 그리고 '안더러'라고도 불리웠던 자, 아니 어쩌면 '그 누구도 아닌' 자. 브로덱의 보고서는 그 사건, 에라이그니스에 대한 보고서이다. 브로덱은 사람들이 암묵적으로 그를 살해한 사건에 동참하지 않은 유일한 사람으로 그에 대해 외부에 보고할 보고서를 작성하게 된다. 사람들이 원하는 살인을 합법화하는 보고서를. 하지만, 동시에 브로덱은 진실을 담은 그만의 보고서를 만든다. 사랑하는 아멜리아의 배 위에, 그 따뜻한 체온을 품은 숨겨진 보고서를.

하지만 점차 책장을 뒤로 넘길 수록, 이것은 안더러. 혹은 에라이그니스에 대한 보고서라기 보다는 (물론 우리는 브로덱'의' 보고서를 볼 수 없다.) 브로덱에 관한 보고서란 것을 알게된다.

수천 명의 다른 사람들처럼 나는 왜 내가 선택하지도 않은 십자가를 짊어지고서 내 어깨가 감당할 수도 없고 나와 아무 상관도 없는 고난을 견뎌야 했을까? 신일까? 신이 존재한다면, 정말로 존재한다면, 제발 숨어 버리기를. 두 손을 들고 머리를 조아리기를.

외부에서 들어온 브로덱. 머나먼 도시로의 유학. 사랑하는 아멜리아와의 만남. 마을로의 도피. 프렘더라는 이유로 끌려가야만 했던 곳, 그곳에서 만난 새로운... 세상.

너를 심판할 사람은 네가 아냐. 그렇다고 나도 아니고. 인간은 서로를 심판할 수 없어. 인간은 그런 일을 할 수 없게끔 생겨 먹었어.

사람들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을 때, 그들을 묶어 주는 동시에 그들을 초월하는 집단, 비슷비슷하게 생긴 수천의 얼굴들로 이루어진 집단 속에 녹아 들어 사라질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때, 인간이 어떤 짓거리를 하는지 나는 보았다. 모든 잘못은 그들을 끌어들이고 부추기고 그들을 발 없는 도마뱀처럼 춤추도록 지휘봉을 흔든 사람에게 있으며 군중은 스스로의 행동과 미래와 궤적에 대해 의식하지 못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이다. 실은, 군중 그 자체가 괴물이다.

다시 돌아왔을 때, 나를 바라보지만 나를 보지 않는 없는 아멜리아와. 처음 만나는 소중한 딸 푸셰트. 너무나 늙어버린 페도린. 돌아오지 않았어야 할, 아멜리아가 그렇게까지 하면서도 살아서 만나야만 했던 브로덱. 그리고 모든 것을 알아버린 브로덱. 그래, 이 책은 브로덱의 보고서다.

p.s. 아돌프 히틀러, 세계대전, 무력한 군중과 일방향적인 폭력. 그 모든 것들이 난무하는 곳, 하지만 그대가 꼭 알아야 할 것들. 잊지 말아야 할 진실들. 필립 클로델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그런 것들 아니었을까? 읽으면 읽을 수록 소설이 마음에 들기는 참 오랫만.

n********n 2010.06.0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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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지배하는 것은 두려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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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에나 적응할 수 있다. 똥 냄새보다 더 심한 것이 있다.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도 똥보다 확실하게 감각과 심장과 영혼을 썩어들게 하는 것이 얼마든지 많다.’인간은 어찌보면 참 편리한 뇌 구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기억을 지워버릴 수도 있고,어려운 상황에서는 적응을 할 수 있으며 극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놓아 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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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무엇에나 적응할 수 있다. 똥 냄새보다 더 심한 것이 있다. 냄새가 나지 않으면서도 
똥보다 확실하게 감각과 심장과 영혼을 썩어들게 하는 것이 얼마든지 많다.’

인간은 어찌보면 참 편리한 뇌 구조를 갖고 있는 것 같다. 기억을 지워버릴 수도 있고,
어려운 상황에서는 적응을 할 수 있으며 극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놓아 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삶에 대한 갈구도 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로덱, 그는 잊고 싶은 기억도 많다. 그리고 삶에 대한 강한 욕구를 지녔다. 
그리고 그는 두려움도 많다. 그는 마을에서 공동 살인에  동참하지 않은사람.
죄를 짓지 않은 하나뿐인 사람이기에 더욱 두려운 남자였다. 

그가 추구했던 시와 그외에 많은 학문들. 전쟁에서 포로가 된 그는 그런 것들이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단지 세상을 지배하는 것은 두려움뿐이라는 것.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내가 겪었던 일보다 더 가혹한 일들을 
행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브로덱의 보고서는 그런 인간의 두려움을 섬세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인간이 겪을 수 
없는 모욕적인 것을 견디어 내는 인간의 힘을 이야기하고 있다. 

독일과 프랑스의 전쟁. 전쟁에서 벌어지는 온갖 험악한 일들은 상상이상의 것들이 
많다. 그리고 그것이 인간에게 남기는 후유증은 평생을 두고 치료불가능하게 만든다.
전쟁을 겪은 사람들은 치료불가능한 것들을 덮어 두려한다. 들키지 않게 꽁꽁 묶어
두려 한다. 그런 두려움이 꿈틀거리는 날 내가 겪었던 일들과 같은 일을 행하기도한다.

브로덱의 보고서는 그런 인간들의 심리를 공동살인이라는 행동을 통하여 표현하고
있다. 살인을 묶인하는 과정과 살인을 합리화 하는 과정. 그리고 죄책감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등의 갈등을 흥미롭지만 슬프게 표현하고 있는 가운데 전쟁이 일으킨
인간성의 말살과 인간의 비극적인 영혼의 종말을 이야기 하기도 한다.
s*****g 2010.05.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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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덱의 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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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작가의 성품이 느껴지는 소설이 있는데 이번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두 소설은 확연히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먼저 읽었던 <아이들 없는 세상>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직접적으로 언급한 시대적 배경도 없고,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담담한 필치로 써내려간 <브로덱의 보고서>는 전쟁을 겪고 참혹한 실상을 저 밑바닥에 숨겨두고 살아가는 한 마을을 찾아온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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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 작가의 성품이 느껴지는 소설이 있는데 이번이 그런 경우가 아닌가 싶다. 두 소설은 확연히 차이가 남에도 불구하고 먼저 읽었던 <아이들 없는 세상>의 느낌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직접적으로 언급한 시대적 배경도 없고, 구체적인 설명도 없이 담담한 필치로 써내려간 <브로덱의 보고서>는 전쟁을 겪고 참혹한 실상을 저 밑바닥에 숨겨두고 살아가는 한 마을을 찾아온 이름도 뭣도 알수 없는 다른사람 안더러와 그에 대한 보고서를 쓰는 일을 맞게 된 또 다른 사람 브로덱에 관한 이야기다. 

 

마을을 점령한 무력 앞에서 비열해진 마을 사람들은 과거에 브로덱을 이방인으로 밀고해 브로덱은 말그대로 개처럼 살며 수년간 수용소 생활을 견뎌냈다. 죽음보다 비참했던 삶을 견디게 해준 아름다운 아내는 그가 끌려간 후 패잔병이 되어버린 군인들에 의해 낯선 여인들과 함께 무참히 짓밟혔고 딸까지 낳았다. 그러나 브로덱은 그 모든 것을 끌어안고 다시 그곳에서 삶을 시작한다. 하지만 어느새 등장한 이방인 안더러는 마을 사람들이 각자의 진실을 들여다보게 만드는 불편한 그림들을 그리고 전시하며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린 끝에 죽음을 맞이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나왔지만 나는 내 멋대로 그들이 함께 안더러를 없앴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방인끼리는 통했던가...안더러와 친분이 있었던 브로덱은 공동살인에 참여하지 못했고, 시장은 그 모든 것을 합리화할 수 있도록 브로덱에게 보고서를 작성할 것을 요구한다...글을 읽고 쓸 줄 안다는 이유로. 브로덱은 결국 불에 타버릴 보고서를 제출하고 가족과 함께 마을을 떠난다.  

 

와부와 단절된 막혀있는 공간, 시간을 초월한 것 같은 느낌마저 드는 이 마을에서 일어나는 현상들을 어쩌면 우리는 지금도 마주하고 있다. 누군가를 타인으로, 다른 사람으로 보며 우리의 편의와 보호를 위해 적으로 몰거나 방관하고 있는건 아닌지...사실 내 나와바리 안에 들어오는 모든 외부인은 나라는 인간의 진실을 엿보기에 가장 좋은 수단인데 말이다...다만 그것이 불쾌해지면 그때부터 인본주의는 시작된다. 두려움과 외면하고 싶었던 과거로부터 사실은 종노릇하던 인간들에게서 끄집어내진 추악한 본성은 책 전체를 관통하며 마지막장을 덮는 그 순간까지 묻는다. 너는 어느쪽이냐고. 너는 어떤 보고서를 쓸 수 있겠냐고. 현상유지와 보호라는 명목아래 발현되는 군중의 심리와 행동개시는 전쟁보다 끔직하고 지극히 야만적이었다. 클로델은 참으로 과장없이 진실된 감동을 전달하는 재주를 가진 작가다. 한마디로 정말 훌륭하다, 라는 한줄평을 인용해본다. 이 소설에 가장 어울리는 말인것 같아서.  

t*****8 2010.05.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