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그의 소설은 시다. 두고두고 곱씹어 볼수록 시다. 이것은 은유가 아니라 말 그대로의 의미다. 일정한 외형률을 가지고 있다. 반복되는 구조의 문장, 공식처럼. 대구법. 나의 판타지 중 하나는 그의 소설들을 통째로 읽어서 mp3 형태로 저장해둔 파일을 플레이어에 넣고 헤드폰으로 들으며 출퇴근하는 것. 시가 죽어버린 세상에서 그는 소설인 척하면서 길게 길게 시를 쓰고 있다. 2. 이 책은 챕터 47에서 시작된다. 표지를 넘기면 첫장에 기록돼 있는 페이지는 391페이지다. 챕터와 페이지는 하나씩 줄어들기 시작해 뒷표지에 다가갈수록 1에 가까워진다. (난데없는 궁금증: 이렇게 거꾸로 페이지 넘버링을 하면 제작 단가가 더 늘어날까?;;) 그렇다고 <메멘토>나 <박하사탕>처럼 퍼즐 맞추듯 머리를 쥐어뜯으며 읽어야 하는 텍스트는 아니다. 이것은 형식, 일 뿐이다. 주인공 텐더 브랜슨은 추락 중인 비행기에 타고 있다. 그는 블랙박스에 자신의 이야기를 녹음하기 시작한다. 기억에서 시작해 망각으로 가는 이야기. 떨어지는 비행기. 점점 줄어드는,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희망. 점점 제로에 가까워지는, 문명과 문명이 낳은 모든 것. 3. 누군가가 신문에 '자살 핫라인' 기사를 쓰면서 실수로 그의 전화번호를 올려놓았다. 오타였다. 그 뒤로 그는 죽고 싶으니 자신을 구해달라는 사람들의 전화를 계속 받아야 한다. 남의 집 가정부, 현대판 노예로 일하는 그는 온갖 종류의 얼룩을 빼거나 바닷가재 먹는 법을 주인에게 가르치는 틈틈이 수화기를 들고 죽고 싶은 사람들의 사연 첫번째 문장을 흥미롭게 감상한다. 그리고 대답한다. "죽어버려." 4. 크리디시 교도. 특정 종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시스템'에 관한 은유다. 하나만 지적하라면, 교육. 종말을 믿으며 '그 때'가 오면 모두 함께 스스로 죽음을 택해 선택된 영생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청교도적인 논리를 주입하는 시스템. 모든 맏아들이 '애덤'이며 그 뒤의 아들들은 다 똑같이 '텐더'라는 이름을 갖게 된다. 딸들은 첫째건 아니건 상관없이 모두 '비디'이다가 장로들에 의해 한 번도 본 적 없는 다른 집의 애덤과 결혼하게 되면 '오서'라는 이름으로 바뀐다. 이름이라기보다는 계급. <시녀 이야기>가 떠오른다. 성서와는 다르게, 이 시스템에서 낙원으로부터 추방되는 것은 애덤이 아니라 텐더와 비디들이다. 애덤은 가문의 땅을 물려받아, 크리디시 교도들의 낙원을 지켜야 한다. 감옥. 그런 감옥에서 주는 천상의 과일이 사실은 말라 비틀어진 것이고, 천사들이 사실은 간수임을 처음으로 자각한 애덤의 심정은 어땠을까. 낙원을 불살라? 신을 목졸라 버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 모든 것을 바꾸는 것은 3분 전에 태어난 쌍둥이 형 애덤이 아니라 텐더다. 텐더 브랜슨, 열등한 2등 계급, 루저. 모두가 그가 죽기를 원한다. 그의 대답은 이렇다. "젠장, 나보고 죽으라고?" 중간쯤 읽다 보니 내가 그라도 기가 막혀서 못 죽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5. 크리디시 시스템은 초등학교와 같은 것이다. 텐더는 예방주사를 너무 잘 맞아서 한 번도 병원균에 노출된 적이 없는 유아와 같다. 그런 그가 다행히 초등학교가 사실은 빌어먹을 개똥인지도 모른다는 어렴풋한 자각을 가지게 될 무렵, 그는 졸업장도 없이 세상의 진실에 확 떠밀려진다. 그리고 그를 기다리는 것은, 미디어라는 중학교. 모두들 공감하겠지만 중학교라는 것은 초등학교보다 더 끔찍하기 마련이다. 6. 퍼틸리티. 비옥, 다산, 풍부. 미래를 보는 그녀의 이름이다. 그녀는 그에게 매주 하나씩 재난을 예언해주고, 그는 그녀의 말에 따라 기적을 행한다. 그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구세주가 되어버렸기 때문에, 이제 그에게는 그녀가 필요하다. 재난의 씨를 뿌려주고 그를 가짜 구원으로부터 구해주는 유일한 인간. "재난에 대한 정보가 더 필요해요?" 그녀가 말했다. "그럼 거울을 한번 들여다봐요." 사실 그것은 답이었어. 모두가 획일화에 질식해 멸종되려고 하는 상황에서, 모두가 '생존자'가 이 세상에서 없어지기를 바라는 시점에서, 그녀는 그에게 살아남을 수 있는 한 가지 기적의 비법을 가르쳐준다. 스스로를 죽이는 것. "인간에게 자유 의지는 없어요"라고 말하지만 사실 그녀는 다른 말을 하고 있다. 슬쩍 시험범위를 가르쳐주는 선생님처럼. 하지만 답안을 써야 하는 것은 그다. 그는 알아서 공부를 하기 시작한다. 떨어지는 비행기 조종석에 앉아서. 7. 미디어. 사실 많이 들은 얘기라서 새롭지는 않았지만, <보통 사람들의 기도서>가 나오는 부분은 정말 뒤집어질 만하다. 8. 플라스틱 꽃들. 작가가 라디오헤드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정해진 시간에 맞춰 가구를 치우고 양탄자를 뒤집어 놓아야 하는 텐더는 그저 뒤집어놓은 것처럼 보이게 손을 쓸 뿐이다. 시간이 절약되므로. 정원을 가꿔야 하는 그는 꽃에 물을 주고 가지를 잘라주는 대신 납골당에서 훔쳐온 조화들을 살짝 가지에 붙여 놓는다. 생화처럼 자연스럽고 평화로운 플라스틱 꽃들. 물방울을 머금은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접착제 같은 것을 살짝 뿌려주면 된다. 폴라닉의 소설에 화장기 없는 청순한 맨얼굴 소녀는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최소한 <파이트 클럽>의 헬레나 본햄 카터만큼은 컨실러를 사용하고 메이크업을 하거나 장신구를 주렁주렁 걸고 있다. 그런 게 인생 아니겠어. 자신의 삶이 가짜라고 생각해본 적이 한 번도 없는 사람이 세상에 있을까. 있다면 밥이나 한번 쏘든지. 9. 숨겨진 엔딩+뒷얘기. 작가가 비밀스럽게 코멘트해 둔 '숨겨진 엔딩'을 읽으니 '반전'이라는 느낌보다는 너무 귀엽다는 생각이 든다. <서바이버>를 영화화하려던 프로젝트는 9.11 테러와 함께 장렬히 전사했다. 비행기니까 어쩔 수 없다만, 늦게라도 묵념을 하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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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의삶.] 서바이버가 뛰어난점은 400p~1p 역순으로 행하는 방식이다. 텐더 브렌스의 죽음 혹은 끝에 가까워지는걸 독자가 페이지를 넘길때마다 체감할수있으니. 잠깐, 팔라닉은 여전히 소유물이 곧 자신을 소유하게 된다는것에 경계한다. 왜인지, 해겔의 변증법이 떠오른다. 주인과 노예. 노예는 주인의 명령에 따라 일을 수행하고 주인은 명령을 시킨다. 하지만 주인은 노동의 기술도 없고, 지식도없다. 사실상 노예가 없어진다고 가정한다면 주인은 벙어리다. 그게 지금 인류의 형상이다. 휴대폰없이는 길을 찾지도 못하고, 요리를 해먹거나 제빵할주도 모르는 것... 그래서, 인류는 과거보다 살기는 더 편리해졌으나 주체성은 잃어버린지 오래이다. 다시, 돌아오자면 텐더브랜스는 사이비종교의 유일한 생존자로 에이전트의 간택을 받고 스타가 된다. 퍼실리티가 텐더브랜스를 구원하고 비행기에서 추락하며 끝나는 엔딩. 근데, 텐더브랜스를 정말 구원한게 맞을까? 그는 에이전트 -> 퍼실리티로 옮겨진거지 여전히 수동적인 인물상에서 과연 벗어난게 맞을까. 아, 근데 퍼실리티의 능력은 어이가없었다. 팔라닉 특유의 B급 컬트영화같은 소재이기도 한데, 미래를 전부 예측한다니. 무슨 듄의 퀴사츠해더락도 아니고. 아무튼 이 책의 주제는 허황된 남성성이다. 설명하기 귀찮긴한데 텐더가 형의유언에 따라서 퍼실리티와 관계를 가지지만, 2분만에 끝난다. 겉모습이 아무리 아름답고, 휘황찬란해도, 내면은 연약한 새끼니까. 일종의 위로이다. 남성성이든 순결이든 그딴건 아무의미도 없으니 집착하지 말라는....동시에 주체성이 날로 꽁으로 먹을수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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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 팔라닉을 처음 알게 된 작품은 '파이트 클럽'이었다. 그것도 소설이 있는줄은 몰랐고 브래드 피트와 애드워드 노튼이 주영한 영화 '파이트 클럽'을 처음 봤었다. 일단 영화를 정말 재미있게 봤다. 영화가 끝날무렵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정말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었다. 그 뒤 '파이트 클럽' 소설 원작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당장 읽어보게 되었다. '서바이버'는 내가 읽는 척 팔라닉의 두 번째 작품이다. 파이트 클럽도 정말 대단했지만 나는 이 서바이버를 읽고 척 팔라닉이라는 작가에 더욱 더 빠져버리게 되었다.
서바이버를 처음 펴들었을때 눈에 띄는것은 47이라는 챕터의 숫자이다. 47??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뒤로 넘겨보자 48, 49..... 챕터의 숫자가 이어졌다. 어라... 단권인줄 알았는데 내가 2권을 보고 있는건가 하는 생각에 찾아보았지만 이 책을 두 권짜리가 아니었다. 그것을 깨달은 순간 첫페이지의 페이지 번호가 눈에 띄었다. 396???..... 이 책은 챕터의 숫자와 페이지 번호가 역순으로 되어있었던 것이다. 일단 이점에서 굉장히 흥미를 느끼게 되었다. 페이지 번호와 챕터의 번호와 같이 이야기는 텐더 브랜슨의 마지막 독백에서부터 시작된다.
척 팔라닉의 책을 읽으면서 내가 가장 마음에 들어하는 부분은 팔라닉의 스토리텔링 방법이다. 주로 독백으로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 전개는 읽는 이로 하여금 책에 푹 빠져버리게 만들어버리는 마력을 가지고 있다. 책을 읽는 내내 다른 생각은 전혀 나지 않고 오직 책에만 전념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서바이버도 그랬다. 텐더 브랜슨의 독백이 주가 되어 이루어지는 이야기 전개는 책장을 넘기는 속도를 빠르게 만들어 줄 뿐만 아니라 중간에 책을 덮고 일어날 수 없게 만들어 버린다.
이 책은 크리디시라는 사이비 종교 집단의 유일한 생존자인 텐더 브랜슨의 이야기 이다. 한번도 자신의 삶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본 적 없는 무기력의 결정체 텐더 브랜슨. 그는 어렸을 때에는 종교의 명령에 따라 지부 내에서 생활 하였고 열일곱이 되었을 때에는 종교의 명령에 따라 어느 부유한 집의 가정부로 들어가 생활해온 그리고 나중에 교도들이 '해방'된 이후엔 유일한 생존자가 되어, 에이전트의 계획에 따라 메시아가 되려고 했던,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존재가 아닌 타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존재였다. 책을 읽으면서 현대사회를 살아가는 사회인들의 모습이 투영된 듯한 느낌을 주는 텐더 브랜슨의 모습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파이트 클럽에서도 그랬지만 서바이버에서 느껴지는 작가의 사회에 대한 비판과 풍자는 정말 비수를 꽂는 것과 같이 날카롭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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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근슬쩍 척 팔라닉의 매니아가 되어버린 까닭에 신간소식이 나오자 마자 2권이나 덜컥 구입하고 말았다. 그중 하나인 '서바이버'는 전에 나왔던 작품을 수습하여 재발간된 작품. 교과서적인 플롯과는 상관없이 자신의 생각이 미치는 대로 내갈기는듯 하다가도 어느새 한데 모아져 딱 떨어지는 끝맺음을 맺는 것을 보면 놀랍기 그지없다. 원래 트럭운전사 출신 중에는 천재가 많은걸까.(엘비스 프레슬리도 트럭운전사였지 않은가.) 이 작품은 시간 역주행 방식을 취하고 있다. 즉, 현재부터 과거로 진행된다. 사이비 종교집단의 유일한 생존자라고 알려진 주인공과 꿈을 통해 미래의 재난을 맞추는 여자, 그 외 사회복지사, 에이전트, 스스로 죽을 용기도 없는 수많은 사람들이 등장한다.(우울한 상태에서 이 책을 읽는 것은 자제해야 할듯. 다채로운 자살방법과 도구들이 나열된다.) 한 인간이 독립적인 인격체가 아닌, 종교의 도구로서, 자본의 꼭두각시가 되는, 지나치게 자연스러운 아이러니와 그로부터 비롯된 공포감을 건조하고 유머러스하게 풀어냈다.(척 팔라닉의 장기중의 하나가 잔혹, 외설등을 얼토당토 않은 유머로 위장해내는 것이다.) **빅힛트장면: 슈퍼볼 결승 게임 전반이 끝나고, 주인공의 결혼식 행사중 그가 마이크에 대고 무슨 말인가를 했을때, 스타디움에 있던 모든 관중이 이성을 잃고 광란에 휩싸이게 된다. 작가의 상상력에 박수를!! |
| 텐더 브랜슨 단 한번도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보지 못한 이 남자가 지금 죽기(?)위해 비행기를 추락시키고 있다. 비행기 추락의 카운트 다운이 시작되면, 소설은 시작된다. 이 남자의 자기 고백이... 몇년전에 파이트 클럽이라는 영화를 본적이 있다. 데이빗 핀처가 연출한 이 작품에서 에드워드 노튼은 사는게 지루한 소심한 남자를 연기했고, 브래드 피트는 외판원으로 폭력적이고 마초적이면서 남성성을 강조하는 캐릭터로 나왔었다. 내가 이영화를 아직도 잊지 못한건 에드워드 노튼과 브래드피트와의 관계에서 폭로된 마지막 반전때문이었다. 나중에 이 영화가 어떤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았는데.. 그 어떤 작가가 바로 척팔라닉이었다. 파이트클럽의 에드워드 노튼보다 더 소심하고 무기력 텐더 브랜슨... 오직 유일한 낙이 있다면 자신의 말 한마디로 사람을 죽일수도 살릴수도 있는 자살 핫라인을 운영하는것뿐.. 어느날 자신을 관리 감독하는 사회복지사가 무서운 사실을 알려준다. 크리디시교의 집단 자살에서 살아 남았던 신자들이 연속적으로 자살을 하고 있다고, 그런데 대량의 자살직전에 누군가 살인을 통해 자살인척 유도하면서 살아남은 신도들을 자살충동으로 밀고 있다고.. 그러니 당신도 조심하라는 충고를 곁들이면서.. 얼마후 사회복지사가 그가 있던 같은 공간에서 죽는다. 복지사의 살인자로 지목된 텐더는 크리디시교의 유일한 생존자라는 부가가치덕분에 위기를 모면한다. 그리고 , 부와 명성을 얻는다. 화려한 수식어가 붙은 종교지도자로 오랫동안 살것 같은 그의 인생은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예기치못한 사건들로 부서지기 시작한다. 텐더 브랜슨은 자본이 지배하는 대중사회에서 양산되는 꼭두각시들의 상징이다. 크리디시교는 텐더라는 이름을 두번째로 이후로 태어나는 모든 남자아이들에게 똑같이 부여한다. 아무런 특징이 없는 이 이름을 가진 남자아이들은 조립라인 위에서 똑같은 물건을 찍어내는 기계처럼 사회밖으로 나가 교회가 지정한 일터에서 부를 일구어내면서 아무런 댓가도 얻지 못한채 일만하는 노예처럼 살아간다. 척팔라닉은 미국이라는 사회에서 텐더들이 어떻게 태어나고 폐기처분되는가를 냉소적으로 그려냈다. 크리디시교는 폐쇄적인 공간속에서 통제와 규율을 통해 사회와 아이들을 격리시켰던 것 처럼 교육기관은 훨씬더 복잡하고 교묘한 방식으로 수많은 텐더들과 텐더들의 사회적 현실과 분리시킨다. 분리된 텐더들은 현실에 대해서 모든 정치경제적 문제들에 대해서 무관심하다. 부를 획득할수 있는 천국의 열쇠를 향해 돌진하는 이들의 모습속에서 종교지도자에서 살인자로 추락하는 텐더 브랜슨의 모습을 겹쳐본다. 파이트 클럽에서 척팔라닉은 무기력한 개인들로 하여금 집단을 이루도록 했다. 그리고 그 집단들이 폭탄을 사용하고 테러를 자행하므로써 내부로부터 모든것을 파괴하는 어느 시점에서 끝을 맺었다. 서바이버에서는 다른 방식을 선택한다. 텐더은 자신과 같은 얼굴을 가졌으나 모든 혜택을 누릴수 있었던 애덤이라는 존재를 죽이므로써 기존질서와 안녕을 고한다. 비행기가 추락해가는 거의 마지막 시점.... 과연 텐더는 살아 남을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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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똑같은 라디오 프로그램을 듣고, 매일 부대끼는 사람들과 똑같은 대화를 나누고,
뭔자 자극적이고 놀랄 만한 일이 없어졌어요. 인생이란 지긋지긋한 재방속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모두 같은 프로그램을 보고 자랐어요. 똑같은 인공 기억이 모두의 뇌 속에 주입된 거라고요. 우리 중에 진정한 유년 시절을 기억하고 있는 이가 과연 몇이나 될까요? 자신들의 과거엔 깜깜하면서 텔레비전 시트콤에 나오는 가족들의 사연엔 훤하잖아요. 우린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고, 또 같은 공포를 가지고 있어요. 미래는 결코 밝지 않다는 걸 명심해요. - 서바이버 中에서
* <파이트 클럽>으로 유명한 척 팔라닉의 우울한 이 세상에 관한 소설이다. 여기 한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 추락하는 비행기 안에서. 그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살아남은 자. 강한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살아남은 우리들은 모두 강한 자인가? 아니다. 나는 나약한 인간이 살아남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강한 자들은 모두들 그들의 생을 운명과 나라와 용기와 명예 때로는 사랑에 바쳐 이 세상에서 모두 사라져 버렸으니까. 혹은 사라지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우리를 구원하러 온 구세주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아마도 티브이에 있을 것이다. 아마도 이 소설 속에서처럼 구세주마저 상업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사랑이 그러했고, 희망이 그러했고, 열정이 그러했듯이. 구세주도 상업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 혼탁한 세상의 이야기. 구세주는 세상에 오고 올 때마다 바뀌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화가 나지 않을까? 끊임없이 재방송되는 인간들의 삶에 말이다. 사람들은 언제나 횡재수가 덮쳐주기를 바라듯이 세상에 메시아가 나타나 주기를 바란다. 사랑이 다가와주기를 바라고 행복이 찾아와 주기를 바란다. 로또가 당첨되어주길 바라듯이 말이다. 아무런 노력도 없이 아무런 대가도 없이 아무런 수고도 없이. 그러나 세상에는 구세주가 다가와도 모르고 스쳐지나가 버릴 사람들 투성이다. 노력도 없이 믿음도 없이 대가도 없이 수도고 없이 우리는 바라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 그리고 재방송의 세상에 내려온 구세주는 너무나 피곤하다. 그럴 것이다. 이 세상에 구세주가 나타난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렇다면 지금 이 순간 내 생애의 구세주는 누구일까? 누가 나를 구원하는가? - 허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