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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니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내용보기
<니체의 인생 강의>를 읽으면서 니체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아니,앞으로 벗겨지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책은 도끼다>를 읽은 덕분으로 고전과 친해진것처럼.문득 안내자의 역활이란 이렇게 중요한거구나 싶어진다.사실 니체의 사상보다는 니체의 사상을 이진우의 관점으로 풀어낸 생각들이 나를 더 강렬하게 유혹한 것
"(니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 내용보기

<니체의 인생 강의>를 읽으면서 니체에 대한 편견이 조금은 벗겨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아니,앞으로 벗겨지게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책은 도끼다>를 읽은 덕분으로 고전과 친해진것처럼.문득 안내자의 역활이란 이렇게 중요한거구나 싶어진다.사실 니체의 사상보다는 니체의 사상을 이진우의 관점으로 풀어낸 생각들이 나를 더 강렬하게 유혹한 것일테니까 말이다. 해서 아직은 니체를 공부한 이의 글을 조금은 더 열심히 읽어볼 생각으로 이진우 선생의 또다른 책을 찾아 보다가 발견한 책이<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다.조금은 딱딱한 느낌의 제목이지만'이진우교수의철학적기행문'이란 부제가 나를 유혹했다.그리고 책을 받아보고는 정신없이 읽었다.딱딱하고 복잡한 니체의 사상에 대해 듣는 다는 느낌보다는 유럽의 곳곳을 여행하는 기분이 더 강렬하게 들어서였을지도 모르겠다.그리고 나 역시 상상의 시간을 순간순간 가질수 있었다.유럽의 그곳들을 나는 모르지만 니체에게 지대한 영향을 준 그 장소들은 어떤 아우라를 품고 있었기에 니체가 그렇게 흠뻑 빠지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철학의 자양분들을 만들어 낼 수 있었던 것인지...

 

 

철학기행의 시작은 베를린에서 시작된다.그리고 저자는 무제움스인젤에서 디오니소를 만나게 된다.자연스럽게 니체의 정체성이 된 디오니소스에 대해 생각하고,정리가 되고,독자는 이해를 받는다.그리고 니체에게 영향을 받은 말러에 대한 이야기까지.귀동냥으로만 종종 들어왔던 말러에 대해 이제야 조금은..아주 조금은 말러에 대해서도 궁금해졌다.그리고 여행은 라이프치히로 이어진다.음악이 철학을 만나는 도시라는 멋진 부제와 함께..그리고 내가 늘 궁금했던 니체와 바그너의 관계가 드디어 소개가 되어질 뿐 만 아니라 쇼펜하우어까지 연결이 되어진다.사실 니체의 사상의 뿌리는 어디였을까 늘 궁금했더랬는데..그 뿌리의 한 줄기가 쇼펜하우어라는 걸 알았다.그리고 바그너의 음악에서 니체가 영향을 준 것으로만 알았는데 서로에게 영향을 주고 받았음을 알았다.물론 훗날 서로의 색깔이 달라 거리를 두는 관계가 되었지만...그렇게 니체를 따라가는 내내 말러와 바그너 쇼펜하우어 등은 자주 등장하게 된다.살로메도 그렇고.그러나 철학기행에서 가장 궁금했던 '차라투스트라'에 대한 이야기는 루체른에서 부터 시작된다.그러니까 앞선 장소들은 루체른을 만나기 전 준비의 시간이라고 하면 될까? 루체른에서 바그너와 결별하고 살로메를 만나면서 차라..를 써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질스마리아 에서 드디어 차라..의 탄생이 시작된다.그곳에서 어떤 영감이 생겨 차라..를 쓰게 된 것인지,마침 그때 그 시간에 그곳에 있게 된 것인지는 자세히 모르겠다.다만 저자의 상상대로라면 질스마리아가 분명 니체에게 일정 부분 영향을 준 것임에는 틀림없는 듯 하다.

 

"안개 속에서 높은 고개를 이겨낸 나에게 질스마리아의 풍경은 완전하다.높은 산과 맑은 호수 산과 호수를 감싸고 있는 구름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 이슬을 머금은 이름 모를 꽃 고즈넉한 마을 오롯한 산길 모든것이 아름답다.이 경치를 보며 니체는 자신의 모든 것을 긍정하게 된 것일까? 이곳에서 나도 차라투스트라의 긍정하는 본능을 배울 수 있을까? 고갯마루에서 질스마리아로 내려가는 길이 가볍다"/136쪽

 

질스마리아를 풍경을 나는 온전하게 상상할수는 없지만 대신 김민기의 노래 '봉우리'를 떠올려보았다.노랫말에 긍정의 메세지가 꽉꽉 채워져 있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그러나 이 여정을 따라가면서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장소는 뢰켄과 나움부르크 였다 '신의 마을에서 낯선 신을 만나다'라는 부제가 달린.니체가 잠들어 있는 곳.그곳에서 저자는 니체가 품었던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니체의 생각에 나 역시 공감했던 시절이 있었고,저자의 말처럼 그럼에도 니체처럼 분명하게 죽음에 대해 글로 쓰지 못했다는 것 등등...그런데  뢰켄과 나움부르크에서 내가 만난건'이방인'에 대한 니체의 생각이었다.카뮈의 이방인을 수없이 읽었고 그때마다 새로운 관점이 보이는 것이 놀랍다고 생각했었는데..니체의 시선으로 이방인을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인식하는 사람들인 우리들조차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으로 머문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우리는 우리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없다" 니체전집 14권 337~338

 

귀동냥으로 들은 것이 전부인데도 니체의 여정을 따라가는 철학기행은 흥미로웠다.어쩌면 니체의 텍스트로만 꽉꽉 채워진 글이 아니어서 일수도 있다.게다가 니체와 관련이 있는 바그너 살로메와 같은 이들의 이야기가 함께 소개되고 있어서 일수도 있겠다. 여정을 마무리하면서도 여전히 니체의 책..가운데 어느 것을 먼저 꺼내들어야 겠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오히려 니체의 사상과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카뮈의 이방인을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먼저 들었으니까..여전히 안내자의 도움으로 니체와 친해지기까지의 연습을 더해야 겠지만...자꾸만 욕심이 난다.^^

w*******i 2016.07.30.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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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리고 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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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니체, 이성적 세계관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상과 철학과 예술 등을 아우르며 20세기의 지적영역의 기반을 닦아 놓은 철학자, 평생  방랑자임을 자처했던 자유로운 영원의 소유자.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신은 죽었다' 말한 남자. 루 살로메를 사랑했지만 평생 우정으로 만족해야만 했던 니체.너무도 유명한 그를 그럼에도 만나기가 쉽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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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사에 빼놓을 수 없는 인물 니체, 이성적 세계관에 의문을 제기하고 사상과 철학과 예술 등을 아우르며 20세기의 지적영역의 기반을 닦아 놓은 철학자, 평생 

방랑자임을 자처했던 자유로운 영원의 소유자.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음에도 '신은 죽었다' 말한 남자. 루 살로메를 사랑했지만 평생 우정으로 만족해야만 했던 니체.너무도 유명한 그를 그럼에도 만나기가 쉽지 않다. 형이상학적이니 노마디즘이니 신의 부재니 초인과 영원회귀등 그와 마주 하기도 전에 주눅이 들고 만다.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서>는 오랫동안 니체를 연구해온 이 진우 교수가 니체의 발자취를 따라 그의 삶과 철학을 들여다 보는 ‘철학적 기행문’이다. 니체를 직접 만나기 전에 작가의 관점으로 니체를 만나보고 그의 발길을 따라 니체의 숨결을 느껴 볼 수 잇는 기회가 되리라 생각하며 이 책을 대한다.

 

철학과 음악, 철학과 유럽 도시의 아름다운 풍광 그리고 문화가 만난 철학속에 예술과 사유가 녹아든다. 곳곳에서 저자가 만난 니체와 니체의 글이 인용되어 있고 저자의 생각과 느낀바를 담고 있어 부담 없이 니체를 접하게 된다. 시각적 이미지로 니체와 마주하고 삶으로써 사유하고, 사유로써 살고자 했던 천재를 만나는 길을 저자는 결코 서두르지않는다. 삶과 사상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에게 철저했던 철학자 니체. 철학은 현학이라고 보았으며, 자신을 사랑하고 긍정하는 인간, 아무것에도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자신의 사고를 펼치는 인간을 추구했던 고독한 니체의 삶을 그의 고통과 숨결이 살아있는 장소에서 맞닥뜨리게 된다.

 

단순히 니체와 관련된 기년관이나 관광지들을 둘러 보는 여행이 아니라 두 해 동안 니체가 머물렀던 유럽의 10여 개 도시를 직접 두발로 걸으며 몸으로 느끼고 그의 생각을 유추해 본다. 니체가잠들어 있는 곳에서부터 니체가 태어나고 자란 곳, 몸의 고통 속에서 사유에 대한 열망을 키웠던 요양지들, 사랑에 빠진 루 살로메와 함께했던 도시와 그녀와 여행했던 곳, 마부에게 채찍질당하는 말을 끌어안고 울부짖다 정신착란 증세를 보였던 광장, 생의 말년을 보내고 숨을 거둔곳 등……. 니체의 삶의 궤적을 좇아가다 보면 결국 존재하는 모든 것에 가치를 부여하고 삶 그 자체를 위해 사는 니체의 최고의 긍정에 가 닿는다. 선과 악, 종교를 초월한 자유로운 초인과의 만남이라고 할 수 있다.

 

"차라투스트라는 니체에게 끊임없는 자기 극복의 ‘초인’을 가르치고, 삶의 매 순간을 신성하게 만드는 ‘영원회귀’를 가르치고 , 무엇보다 자기와 세계 전체를 긍정하라는 ‘운명애’를 가르친다. 앞으로도, 뒤로도, 영원토록 다른 것은 갖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아모르 파티(amor fati), 곧 운명에 대한 사랑은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다.”-본문중-

육체적 고통으로 단련된 정신
니체는 아버지와 뒤이어 동생과 할머니의 죽음을 겪은 후 어린 나이에 삶의 비극을 알아버렸으며 평생 극심한 몸의 고통에 시달렸다. 견디기 힘든 구통과 구토, 현기증을 수반하는 발작, 실명위기의 시력. 그의 삶은 그야말로 고통이 연속이였음을 알 수 있다. 열여섯 살 연하의 지적인 여성 루 살로메를 만나 사랑에 빠지기 전까지 그의 유일한 벗은 고독이였다. 고통과 고독이 니체의 사유의 토대가 되고 그의 정신을 단련케 했다.

 

“나의 실존은 끔찍한 짐입니다. 이런 고통과 거의 절대적인 금욕의 상태에서도 정신과 윤리의 영역에서 매우 교훈적인 시험과 실험을 하지 쪾았더라면, 나는 이 짐을 이미 오래전에 던져버렸을 겁니다”라고 말한 니체

“고통 없이는, 학자는 될 수 있지만 사상가는 되지 못한다. 자신이 실존해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해 고통을 당해보지 않은 사람, 던져버리고 싶은 실존의 무거운 짐을 느껴보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깊은 사유를 할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하는 저자. 이를 통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육체의 고통에서 탄생한 위대한 정신의 산물이였음을 알게 된다.

영원회귀 사상은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 무한한 가치를 부여한다. 니체가 신이 죽었다고 선언한 것은 우리의 삶에 의미와 가치를 부여할 최종 목표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 것이며 신의 부재로 인한 모든 것이 목표와 의미를 잃고 반복되는 삶속에 어쩌면 신의 존재를 그리워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우리가 사랑하고 자식을 낳고 살아가는 것 자체가 우리 삶의 목표라면, 우리의 삶은 그래도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닌가, 라고 반문한다. 고통속에서도 치열하게 살고자 했으며 그럼에도 삶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니체가 우리게 말하는 것 같다. 

 

“사람은 짐승과 초인 사이를 잇는 밧줄, 하나의 심연 위에 걸쳐 있는 하나의 밧줄이다. 저편으로 건너가는 것도 위험하고, 건너가는 과정, 뒤돌아보는 것, 벌벌 떨고 있는 것도 위험하며 멈춰 서 있는 것도 위험하다. 사람에게 위대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의 교량이라는 점이다. 사람에게 사랑받아 마땅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가 하나의 과정이요 몰락이라는 점이다.” ― 니체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찾아가는 여행은 니체 철학에 대한 지적 탐구이자 저자 자신의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행이기도 하다. 그의 여행에 동참하며 니체의 초인이 아닌 인간 니체를 만났다. 이젠 그의 철학을 그의 사유를 편견 없이 만날 수 있겠다. 

k******2 2010.06.12.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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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잘 모르는 니체의 삶을 따라간 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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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니체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니 나도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천재들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니까. 그래도 차라투스트라는 오쇼 라즈니쉬의 3권이나 되는 책을 읽고 나서야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 이전에도 여러 권을 읽었으나 니체의 책은 어려웠다. 이번에 니체의 삶은 따라 여행하면서 기록한 이 책을 읽으면서 니체를 좀 더 알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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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니체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아니 나도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것이 옳은 것 같다. 천재들의 말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니까. 그래도 차라투스트라는 오쇼 라즈니쉬의 3권이나 되는 책을 읽고 나서야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 그 이전에도 여러 권을 읽었으나 니체의 책은 어려웠다.


이번에 니체의 삶은 따라 여행하면서 기록한 이 책을 읽으면서 니체를 좀 더 알고 싶었다. 인간 실존을 둘러싼 모든 문제를 그 극단까지 철저하게 사유한 니체의 실험 정신을 본받아 인간의 자유, 생명과 기술의 문제를 이성과 권력의 관점에서 재조명함으로써 인간다움의 새로운 의미를 찾고 있다는 저자를 좇아 한 책으로 떠난 여행이었다.


운명애는 가장 멋진 말이다. 요즘 ‘내생애’라는 말에 애자를 사랑애자를 쓴 광고를 보고 속으로 웃은 적이 있다. 나의 생을 사랑하는 것처럼 나의 운명도 사랑해야 한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남을 사랑할 수 있듯이 자신의 운명을 사랑해야 인생을 사랑하는 것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운명애를 해야 할 것이다.  


삶으로써 사유하고, 사유로써 살고자 했던 천재. 삶과 사상이 결코 분리될 수 없을 정도로 자신에게 철저했던 철학자. 평생 자신에게 맞는 장소를 찾아 방랑했던 노마디즘의 철학자. 그의 화두는 하나였다. “나는 어떻게 존재하는 대로의 내가 될 수 있는가?”(11쪽) 이것이 저자가 말하는 니체이다. 서양 철학사에서 나에 대해 니체처럼 말한 철학자가 많은 것 같지 않다.


여행하면서 여행자로 보이기를 바랄 뿐 실제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하는 눈먼 여행자가 최하등급이고, 다음 등급은 스스로 세상을 관찰하는 여행자, 그다음 등급은 관찰하면서 무엇인가를 체험하는 여행자, 마지막으로 최고 등급은 관찰하며 체험한 것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삶에 동화시키는 체험자이다(13쪽).


저자도 나는 어떤 여행자인가를 반문하고 있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여행은 말 그대로의 여행일 수도 있고 책을 읽으면서 하는 여행일 수도 있으며 인생여행에 대한 것으로도 이해가 된다. 과연 나는 어떤 여행자일까. 니체에 대한 여행과 인생여행은 어떤 연관이 있는 것일까. 니체를 평생 안고 가는 나로서는 많은 연관성이 있다고 본다.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는 도취 속에서 타자와 하나가 되기를 원한다. 취하면 모두가 하나가 된다. 자연의 삶이 모든 모순에도 불구하고 하나인 것처럼, 디오니소스는 항상 삶을 있는 그대로 긍정한다(33쪽).


이 글을 읽으면서 그리스인 조르바가 생각난다. 사실 그 책을 읽으면서 이해가 잘 되지 않았는데 조르바를 디오니소스에 연결시키고, 니체의 삶에 대한 긍정을 연결시키니 이해가 되는 것 같다. 조르바의 삶이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리라.


네가 마음의 평안과 행복을 추구한다면, 믿어라. 네가 진리의 사도이기를 원한다면, 탐구해라(57쪽). 니체의 말이다. 역시 위대한 말이다. 이 말 한 마디기 왜 그냥 믿지 못하고 탐구하게 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나는 이런 말을 한다. 믿지 않으면 믿는 것이 좋고, 믿으면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어쩌면 공부하지 않고 믿기만 하는 것이 더 편하다는 것을 니체는 간파하고 있는 것이다. 저자 역시 믿음은 편안하지만, 진리는 불편하다고 말한다.


책에는 세 종류가 있다. 호기심을 샀지만 몇 페이지도 읽지도 않고 책장의 자리만 차지하는 책, 읽어야만 할 것 같은 압박감에서 힘들게 꾸역꾸역 읽어가는 책, 그리고 낯설지만 처음 몇 줄에 매료되어 단숨에 읽어버리는 책(58쪽). 니체가 쇼펜하우어의 책을 읽고 심취한 것에 대해서 저자가 하는 말이다. 아마도 모든 책도 그러한 것 같다. 재미있게 읽으면서도 무언가 덮고 나면 남는 책이 좋은 책이 아닐까.


자유 의지를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운명이 자기 긍정의 힘이 되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에게 운명은 자기 부정의 구실이 된다. 아모르 파티! 운명을 사랑하라. 우리의 삶의 의미는 긍정에서 생겨난다. 있는 그대로의 상태를 받아들이라는 말이 아니다. 자신의 변화에 대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긍정하라는 말이다. 우리는 자기 자신에게 수수께끼 같은 비밀로 남아야 창조적이 된다(98쪽). 


인간에게 있는 위대함에 대한 내 정식은 아모르 파티amor fati, 운명애다. 앞으로도, 뒤로도, 영원토록 다른 것은 갖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 필연적인 것을 단순히 감당하는 것이 아니고, 은폐는 더욱더 하지 않으며, 모든 이상주의는 필연적인 것 앞에서는 모두 허위다. 오히려 그것을 사랑하는 것(262쪽). 


사실 루체른은 인구 7만 6,000명 정도에 불과하니, 도시 대신 마을이라고 불러도 지나치지 않다. 마을은 작아도 문화는 다양하다. 나는 도시와 시골을 구분하는 가장 커다란 기준이 바로 다양성이라고 생각한다. 다양성이 없으면 도시가 아무리 커도 큰 시골에 불과하다. 도시의 색깔이 다양하다면 어쩌면 크기는 작을수록 더 좋을지도 모른다(109쪽).


교육방송의 프로그램을 보다가 뉴질랜드의 퀸즈타운이라는 곳은 인구가 1만 7천명인데 연간 방문객이 170만 명이라고 했다. 대단한 일이다. 그런데 그렇게 이루어진 것은 우연이 아니다. 번지 점프도 그곳에서 본격적으로 처음 시작되었다고 한다. 도시가 큰 곳이라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다. 우리는 국토가 좁은 것이 한계인지는 몰라도 도시는 사각의 아파트만 많은 특징이 없는 도시이다. 나도 루체른에 가보았는데 역시 스위스는 그림이다. 설산과 호수, 산 위에 있는 집들은 모두 꿈에 그리던 전원주택이니 부럽기만 하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롭게 하는 곳, 그곳이 바로 인자불이가 아닌가 한다.


니체의 말은 어렵다. 하지만 디오니소스의 삶의 긍정을 알게 되면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이해하게 되었다. 이 책을 통해서 운명애를 알게 된다면 그것으로 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믿음은 편안하지만, 진리는 불편하다는 말도 기억하고 싶다. 마치 도스토예프스키를 만나는 것 같다. 그래서 책읽기는 즐거운 것이 아닌가 한다.  


7*****0 2010.07.04.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