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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by 김주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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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빈집』은 시대적 괴리감으로 출발해서 문화적 단절과 소통의 부재로 다가왔다. 이유인즉, 주인공 어진을 향한 모친의 악착같은 매질, 아버지는 있으대 부권이 부재한 상황, 남편의 무관심, 더는 곁을 내주지 않는 안성댁의 그것이 그러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책을 출간한 시기와 맞물린다. 그것은 후반부에 한국전쟁을 겪었던 '노인'의 나이(77)를 통해 열서너살 위인 배수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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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빈집』은 시대적 괴리감으로 출발해서 문화적 단절과 소통의 부재로 다가왔다. 이유인즉, 주인공 어진을 향한 모친의 악착같은 매질, 아버지는 있으대 부권이 부재한 상황, 남편의 무관심, 더는 곁을 내주지 않는 안성댁의 그것이 그러했다. 소설의 시대적 배경은 책을 출간한 시기와 맞물린다. 그것은 후반부에 한국전쟁을 겪었던 '노인'의 나이(77)를 통해 열서너살 위인 배수진의 나이(45)를 유추하면 어진의 나이(31)까지 어림할 수 있다. 작가의 사고가 워낙 한국적인 정서를 지녀서일까, 어진이 열아홉 나이에 결혼을 한 정황이나 어진의 아버지를 쫓는 '조형사'의 행태를 떠올리자면 작금의 상황이 아닌 광복 또는 6.25전쟁을 막 벗어난 시기처럼 비친다. 어쩌면 우리가 온전한 문화적 세례를 받은 반면, 극중 어진은 문화와의 타협은커녕 집안의 돌봄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한계 탓인지도 모르겠다.

 

 

 

노름판을 전전하며 집을 비우는 것이 태반이라 늘상 피곤한 아버지와, 그것의 분풀이를 어진에게 퍼붓는 야박하고 매몰찬 어머니 속에서 어진의 유년시절의 추억은 상처와 견딤 뿐이다. 애정과 관심이 없는 처지에 기댈 곳은 벽장 속 혹은 오동나무 가지에 매달린 하늘그네가 전부다. 노름판을 돌아다니며 목숨을 연명하던 아버지도 그토록 아끼던 오동나무 관 속으로 들어가고, 어진을 빈집에 홀로 남겨둔 어머니는 외출해서 소식도 없이 집조차 팔고 종적을 감춘다. 또다른 탈출구인 결혼을 통해 외로움을 해소하고자 하지만 그마저도 현실은 외면한다. 마을로부터 멀찌감치 외진 산골에 위치한 방 세 칸짜리 집에는 홀시어머니와 외아들 그리고 며느리 어진이 살게 된다. 시어머니와 남편은 어진을 혼자 남겨두고 곧잘 외출을 하고 남편은 어찌 된 일인지 그녀의 곁에 얼씬도 않는다. 일찍부터 체념과 설움을 받고 자란 어진은 세상의 온갖 잡다한 잔상들을 접수하는 데 재빠르고 변덕스런 일들을 이해하는 속도가 빨라 사람을 기다리는 소질도 남다르다. 무심한 세월을 그곳에서 보낸 뒤 찾아나선 곳은 활어를 납품하는 '다바이바구'의 안성댁, 우울증과 거대비만증에 걸린 이복자매 '배수진'이다. 황당한 것은, 무능한 아버지에게 전처가 있었고 그 사이에 낳은 딸이 배수진인데 더이상 전처가 아이(아들)를 가질 수 없다는 이유로 쫓겨났다는 것이며 재혼한 어머니 역시 아들을 못 낳은 점에 있어 같은 처지다. 그런 전처의 행방을 끊임없이 찾아다니던 어머니와 허구헌날 이사짐을 싸야했던 전처와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은 외로움에 기인한 것임을 알게 된다. 그렇게 해서 전처는 끝없는 숨박꼭질로 속병 얻어 죽고 남겨진 배수진은 그녀의 어머니처럼 그녀 자신도 '박창호'라는 남자로부터 버림받는다.


사람이 한 세월을 살다 가지만 경험과 고통이 동일한 강도로 가해지는 것은 아니다. 더해서 죽음처럼 괴로운 순간들을 어떻게 견뎌내고 극복하는지의 과정 또한 제각기 다르다. 상습적인 어머니의 가출 뒤에 아버지를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 깔려 있음에 서글퍼진다. 그러나 정작 딸을 향한 사랑은 어디에 두었는지.. 무책임이란 생각만 목구멍 속에 걸리다가 끝내 가슴 한 지점의 통증을 거둔 채 책을 덮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 남겨진 어진의 빈 손에 무엇이 채워졌기를 희망해본다.

d******7 2016.12.11. 신고 공감 9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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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움 그리고 채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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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恨과 울분은 화병의 근원이다. 우리네 민족 정서에 담긴 소재 중 한恨에 대한 집착은 병적일 만큼 삶을 무섭도록 지배한다. 상실과 결핍에서 오는 아픔, 구조적 모순에서 오는 기능적 아픔. 그 모습은 각양각색이지만 하나의 구심점, 한으로 이어진다. 한에 대한 모습을 형상화한다면 채울 수 없는 비움이 떠오른다. 상호작용이 단절된 일방적 형태의 껍데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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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恨과 울분은 화병의 근원이다. 우리네 민족 정서에 담긴 소재 중 한恨에 대한 집착은 병적일 만큼 삶을 무섭도록 지배한다. 상실과 결핍에서 오는 아픔, 구조적 모순에서 오는 기능적 아픔. 그 모습은 각양각색이지만 하나의 구심점, 한으로 이어진다. 한에 대한 모습을 형상화한다면 채울 수 없는 비움이 떠오른다. 상호작용이 단절된 일방적 형태의 껍데기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가뭇없다. 이러한 현상의 주효한 원인으로 나는 봉건적 구조와 계층적 갈등에서 기인한다고 본다. 한이 쌓이고 또 쌓여 중첩된 아픔이 되는 이유의 외형적 원인은 사뭇 그러하다. 하지만 한의 내면적 갈등은 해갈할 수없는 욕망에서부터다. 욕망의 다채로운 현상 가운데 하나인 정서적 교류의 단절은 한을 유발하는 시초가 된다.

 

그래서 한을 형성하는 원인을 찾는 것은 때로는 다면적인 상황의 이해와 면밀한 접근으로 결속되고 엉킨 실타래를 풀어 나가는 추적의 과정이 필요하다. 제 아무리 뒤엉키고 꼬여 든 문제라도 실마리는 있기 마련이다. 따지고 보면 티끌 같은 실마리의 단초는 관계의 부조화다. 나와 관계를 맺고 연결된 일차적인 친밀집단 즉, 가족이다. 가족의 해체는 기능적 갈등요소들을 한으로 응집하고 끌어 모으는 원인제공의 요소라는 사실이다. 더 나아가 사회 문화적 시스템 내에서 가족문제는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의 문제로 치부되어 보듬어 안고 치유하기가 쉽지 않다. 결국 매듭을 묶은 당사자의 손으로 풀어야한다는 결자해지의 영역인지 모른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주영 작가의 <빈집>을 조망해 본다면 상당 부분 그로테스크한 상황의 연출이 지속됨을 알 수 있다. 부자연스럽게 흐르는 인물들 간의 개성 넘치는 캐릭터의 조합은 상황을 지배하는 힘이 된다. 모이고 퍼지는 파동처럼 각 각의 한이 얽히고설키고 포개지지만 결국 채울 수없는 비움의 기형적 출현으로 공감하기 힘든 현실을 껴안는다. 하지만 이러한 역설적 상황으로 내모는 내러티브는 단단함에서 비롯된다. 의도하고 설정된 조합이 조밀하게 계획된 대로 치밀하게 구동하는 힘, 김주영 작가의 역량이다. 진부한 소재도 조탁되고 주무르면 세제되어 정화될 것 같은 필력이다. 나는 이 작품으로 그를 처음 만났다. 소개해 준 지인의 선물이 없었다면 깊이 있는 그의 글을 놓칠 뻔 했다. 흔하디흔한 가난과 상처를 소재로 이렇게도 한 많은 인간 군상들을 정렬시켜 놓는 그의 필력에 흠뻑 젖었다.

 

소설 속 주인공 어진과 한량의 피를 이어받은 근본 없는 도박꾼 아버지와 억척같이 살길을 도모하는 어머니의 기묘한 줄다리기를 통해 삶의 끈이 어디로 이어지고 나아가는지 드려다 보는 장면은 잿빛 여운처럼 진득하게 퍼진다. 이 작품에서 도드라져 보이는 소재는 바다와 은행나무의 은유적 감성이다. 채울 수없는 마음의 위안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인간의 고독한 행위의 분투가 애틋하다. 어진은 아름드리 오동나무에 메어 놓은 하늘침대를 통해 살얼음판처럼 아슬아슬한 자신의 처지를 투영하고 위무하며 그에 반해 배 다른 언니 수진의 해체된 가족의 아픔은 바다로 이끌어 상호대비 시켜주는 구조는 작가의 한에 대한 통찰이 깃든 메타포다.

 

실제 이 작품의 얼개는 다양한 가족 내 갈등의 원인을 현란하게 보여준다. 아버지의 잇따른 부재와 쫓김으로부터 발생한 불안의 극복과 해소를 위해 어머니는 어진에게 무자비하고 냉혹하게 대한다. 애정결핍은 이렇듯 지근거리에 있으며 인물마다 각기 처해 있는 상황의 변주가 다르며 받아들이는 태도 또한 다름을 적확하게 보여준다. 일그러져 구부러진 관계는 때로는 극단의 모습으로 때로는 실체 없는 두려움으로 변질될 때가 있다. 그래서 한동 설한임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어진은 아버지를 찾기 위해 무작정 험한 길을 휘적휘적 걷고 낯선 곳으로 정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만용을 부리며 기이한 행동을 서슴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기댈 곳 없는 마음의 유기된 행동의 연장선이다. 정해진 것 없이 찾고 숨는 술래 없는 숨바꼭질을 계속 자행하며 기필코 찾아내고 마는 괴상한 행동은 불안한 마음을 고스란히 투영시켜 놓는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은 삶에 대해 결여된 아픔을 갖는다. 어진의 눈을 통해 아픔이 재해석되고 변형되는 모습은 관계의 모순과 결핍의 순간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이해하는 과정이다. 고독의 섬에 갇히게 된 어진의 방황하는 마음과 삶에 배신당한 상처는 모두 구조적 모순에서부터라는 사실을 재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작가의 한에 대한 섬세한 분석과 해체작업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공감으로 다가선다. 수진이 남편의 바람과 폭식으로 인해 우울의 그늘 속으로 숨어드는 과정과 어진이 시댁으로부터 버림받고 비정한 어머니와 무능력한 아버지로부터 애정이 결핍된 과정 또한 닮은꼴로 변한다. 결국 이야기의 절정은 비움의 채움에 대한 욕망의 분출로 이어지는 것을 예정할 수 있다.  외롭게 홀로 선 섬처럼 끊어진 연결고리를 찾아 헤매는 아픔의 배출하지 못하는 허무한 생산이다. 수진이 바다를 사막의 신기루마냥 내딛고 유영하는 모습과 어진의 냉혹한 삶의 모습은 한으로 승화된다.

 

이렇듯 어진의 성장의 파노라마를 통해 작가는 선예도가 높은 망원렌즈를 사용하여 읽는 이로 하여금 무시로 흡입한다. 그 속에서 거머쥔 아픔, 한을 끌어안은 여인의 애환은 시리도록 아픔이 퍼진다. 변화무쌍한 시간의 속도에 현기증을 겪는 현대인들에게 이 작품은 자근자근 타자의 아픔에 대해 공감하는 시간을 제공한다. 또한 아무도 머물지 않는 빈집에 대한 정체성을 통해 상념의 시간을 선사한다. 비움의 마음을 우리는 무엇으로  채우는가에 대한 진중한 물음, 탐욕과 욕망의 고삐를 어떻게 쥐고 나갈 것인지를 되묻는다. 아울러 인간은 관계와 관계의 촘촘한 망에 얽혀 산다는 변하지 않는 진실에 한 발짝 다가섬을 느낀다. 그러므로 산다는 것은 비움과 채움의 끊임없는 반복 작업이 아닐까?



a******e 2010.09.28. 신고 공감 7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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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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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오에게 있어서 '빈집'이란 모험과 은밀한 탐험이 있는, '구니스'에 있는 판타지적인 모험이거나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 사건'의 공포스러움과 비밀스러움이 뒤섞여 있다. 소시적 인디아나존스가 되기위해 재개발로 비어버린 빌라나 낡은 아파트 혹은 폐가같은곳에 친구들과 잠입해 플레쉬에 의지해 탐험했던 당찬 추억이 있다.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고 다른세계로 이어지는 입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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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오에게 있어서 '빈집'이란 모험과 은밀한 탐험이 있는, '구니스'에 있는 판타지적인 모험이거나 '텍사스 전기톱 연쇄살인 사건'의 공포스러움과 비밀스러움이 뒤섞여 있다. 소시적 인디아나존스가 되기위해 재개발로 비어버린 빌라나 낡은 아파트 혹은 폐가같은곳에 친구들과 잠입해 플레쉬에 의지해 탐험했던 당찬 추억이 있다. 감춰진 비밀을 파헤치고 다른세계로 이어지는 입구를 찾기위해서.. 내 추억을 자극하는 빈집이란 소재가 작가 김주영에겐 어떻게 다가왔는지 궁금했다. 새로운 빈집을 탐험할 수 있을까?

 

 나름대로 빈집의 흥미진진한 소재에 맞춘 팔색조같은 등장인물을 추측했는데, 예상과는 전혀다르게 책은 거동조차 불편해보이는 괴팍한 뚱땡이 와 주인공인 말라깽깽이 어진이가 등장한다. 집나온듯한 오갈데 없어보이는 어진이가 한 어촌구석 횟집 주인인 뚱땡이와 조우하는 장면으로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주로 어진이의 성장과정에 대한 과거 회상신이 주를 이룬다. 집이 비어있는게 아니라 오갈데없는 사람이 주인공이니 빈집보단 고아라든지 가출정도가 어울리는게 아닌가?

 

 기구한 팔자

 노름꾼 아버지와 어진을 학대한 어머니, 경찰을 피해 평생을 도망다니는 아버지와 빚쟁이들 때문에 집을 나간 어머니, 벽장에 숨어지낸 어린시절, 중매로 결혼한뒤에도 방에 갖혀지낸 기구한 팔자, 아버지의 유언대로 첫 아내의 딸을(배다른 언니) 찾으러 길을 떠난다. 가장이 집을 버림으로써 무너져가는 가족의 모습을 어진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통해 여실히 그리고 있다. 가족은 있지만 사랑이 없는 '빈집'에서 살아야 했던 어진의 기구한 운명에 작가는 '현실은 소설보다 더 각박하지 않느냐' 말한다. 정말 우린 저런 기구한 운명보다도 더 각박하게 살고 있는걸까..

 

 수진(뚱땡이)역시 어진이 만큼 기구한 운명을 살았다. 아버지를 버리고 떠난 어머니와 전국을 떠돌며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며 살아왔고, 지금의 남편을 만났지만 폭식에 몸이 불어 외면당하며 살고있다. 보란듯이 바람을 피우는 남편을 제지하지 못하며 어진처럼 쓸쓸히 빈집만을 채우고 있다.

 

 행복할 수 없는 운명

 이젠 혼자이지 않을거라는 어진의 작은 소망은 수진과의 여행에서 여지없이 부서져버린다. 두 자매(배다른)의 만남은 책의 해피엔딩을 예고하는듯 했지만 길도없고 이정표도 없는 사막으로 가기위해 푸른 바다로 걸어간 수진은 그동안 무겁게 짖눌려 살아온 세상을 떠나버린다. "내가 당신의 배다른 동생입니다"라고 고백할 시간도 주지 않은체..그로써 어진은 또다시 자신의 빈집과 함께 혼자 남겨져 버린다.  

 

 소설의 소재로 사용된 가족의 부재가 최근 우리 주변에 늘어가고 있다. 각박한 현실을 살아야 함에 가족간에도 소홀히 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은 있지만 사랑을 쏟을 시간마저 줄어들어버린다면, 우리가 혹은 우리의 자녀가 어진이처럼 빈집에서 살고있다는 생각을 갖진 안을까 두렵다..

 

 가슴이 쓰라렸던 어진의 한마디..

 

 “나는 어릴 적부터 이 집에서 혼자 살았어요.”

 

 우리에겐 포근하고 사랑이 넘치는 가정이 필요하다. 꼭!

 

 

 



n******s 2010.05.15. 신고 공감 5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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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에서 가족의 정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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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은 '어진'의 발길을 함께 따라 가족의 기억을 되짚는다. 그 기억속에는 항상 자신이 홀로 남거나 갇혀있었던, 가족의 소통이 '빈' 집이 자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 부재한, 소통도 단절된 이 비어있는 집에서 가족의 정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 여러 형태의 가족들이 있고 그들 나름대로의 살아가는 방식과 사랑하는 방식이 있을 거라는 건 알고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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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집>은 '어진'의 발길을 함께 따라 가족의 기억을 되짚는다. 그 기억속에는 항상 자신이 홀로 남거나 갇혀있었던, 가족의 소통이 '빈' 집이 자리한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족이 부재한, 소통도 단절된 이 비어있는 집에서 가족의 정을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세상에 여러 형태의 가족들이 있고 그들 나름대로의 살아가는 방식과 사랑하는 방식이 있을 거라는 건 알고있고, 그것이 딱히 어느 것이 좋다, 라고 할 수 있는 기준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진'의 인생에 있어서 나타나는 가족과 부부간의 모습들은 보통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다. 아니, 특수하다고밖에 볼 수 없겠다.

 

 도박꾼인 아버지는 집에 붙어있는 날이 일년에 한달이 채 될까 말까한 인물이다. 그럼에도 집으로는 항상 돌아오고, 돌아오지 못하면 돈이라도 보내온다. 가장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도, 그렇다고 아예 하지 않는다고도 할 수 없는 인물. 어머니는 '어진'을 윽박지르고 욕설과 매질을 서슴지 않는다. 당당한 어머니는 임기응변에도 뛰어나며 본성이 당찬 여자다. 그럼에도 집에 있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며 돌아온 남편에게는 순종적이었던 여자다. 남편의 역마살이 옮겨붙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어진'이 팔려가다시피 해서 간 시집은 결국 어진을 그전보다 더 못한, 어머니와 아버지의 부부같은 사이도 아닌, 그저 집안 가축쯤으로 여겨지는 신세로 만든다. 과하다 싶게 좋은 시어머니와 남편에게서 어진은 도망쳐나와 자신의 배다른 언니 '수진'을 만나러 간다.

 수진은 인적이 드문 바닷가에서 살고있다. 남편과는 애초에 은근한 사랑이라거나 이렇다할 과정 없이 함께하게 된 살림이 굳어져 부부가 되었고, 이들은 이제는 서로 말다툼도, 애정도 오가지 않는 사이가 된 것이다.

 분명, <빈집>에는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평범한 가족의 모습은 나오지 않는다.

 

 그러나 이 쓸쓸함이 묻어나는 글에서 가족의 정을 느낀다. 항상 온가족이 함께 있기 힘들었던 집에서 돌아오길 기다리는 그 마음과, 어미를 그리는 딸을 지켜보는 아버지의 마음에서도 나는 그들 사이에 흐르고 있는 가족간의 마음을 보았다. 욕설과 매질을 하는 어머니에게 어진이 관심과 애정을 바라는 마음이 그치지 않는 모습과 그런 모진 어미임에도 결국엔 걱정하고 생각하게 되는 그 짙고 깊은 애정을 느낀다. 그리고 과거를 기억함에도 그 과거를 원망도, 후회도 하지 않는, 이 글의 모든 사람들에게도.

 

 처음 글을 읽을 때 회색빛 풍경을 떠올렸다. 그리고 어딘가 쓸쓸함을 안고있는 문체가 일본소설을 보는 느낌도 주었고. 게다가 여성작가일 줄 알 정도로 세심한 문체를 꼼꼼히 읽었는데 예상과 달라 놀랐었다. 담담하면서도 세심하고 그림을 그리듯 부드러운 글이어서 읽는 내내 마음을 잔잔하게 가다듬으며 어진을 따라갈 수 있었다. 좋은 글이라고 생각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h******a 2010.08.2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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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삶은 엄마를 닮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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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런류의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한 남자가 있고 전처가 있고 후처가 있고.. 전처와는 이혼을 했고 그 전처는 전남편과 후처와 연락을 끊고 은둔하듯 살아가지만 후처는 끊임없이 남자를 의심하고 전처를 찾아다닌다. 혹시 자신 모르게 남편을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활비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처에게도 딸이 있고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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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런류의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한 남자가 있고 전처가 있고 후처가 있고..

전처와는 이혼을 했고 그 전처는 전남편과 후처와 연락을 끊고

은둔하듯 살아가지만 후처는 끊임없이 남자를 의심하고

전처를 찾아다닌다.

혹시 자신 모르게 남편을 만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활비를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숨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전처에게도 딸이 있고

후처에게도 딸이 있지만

그딸들을 엄마라는 사람이 제대로 양육하지 못한다.

 

딸의 인생은 엄마의 모습을 많이 닮아간다고 한다면.

그런 의미에서 뚱보 전처 딸과

말라깽이 후처 딸은 비슷한 모습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엄마라는 이름으로 그리워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증오하기도 한다.

 

딸을 집에 놓고 사흘이고 일주일이고 남편을 찾아다니는 엄마라는 사람은

남의 가정을 깨고 자신이 그곳에 들어앉았기에 끊임없는 의심으로

남편을 몰아붙이는 것일까?
빚으로 딸까지 팔아(?) 넘기는 엄마라는 이름은 과연 맞는 것인지 참 의문스럽다.

아무리 요즈음 나쁜 엄마가 대세라고는 하지만

자식의 인생까지 궁지로 몰아가는 것이 과연 부모인지

책을 읽는 내내 씁쓸했다.

늘 행복한 것을 추구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자식의 인생을 담보로 보이지 않는 힘을 휘둘러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이 살지만 온기도 사랑도 행복도 없기에

빈집이라 제목을 지은 것일까?

책을 덮고 나서도 씁쓸함을 지울 수가 없다.

YES마니아 : 로얄 k*****3 2010.11.28.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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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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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도박꾼을 사랑한 두 여인의 기구한 운명. 불행한 그들의 삶은 남편을 놓고 쫓고 쫓기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고 그런 부부의 불완전한 관계는 자식들에게 고통으로 상속된다. 마치 옛날 얘기처럼 허황된 구석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상하게도 읽는 내내 가슴이 얹힌 듯이 무거웠다. 왠지 그 여인들이,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무조건 인고하던, 그래서 우리의 가슴을 많이 아프게 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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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도박꾼을 사랑한 두 여인의 기구한 운명. 불행한 그들의 삶은 남편을 놓고 쫓고 쫓기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되고 그런 부부의 불완전한 관계는 자식들에게 고통으로 상속된다. 마치 날 얘기처럼 허황된 구석도 있는 이야기였지만, 이상하게도 읽는 내내 가슴이 얹힌 듯이 무거웠다. 왠지 그 여인들이, 온갖 어려움속에서도 무조건 인고하던, 그래서 우리의 가슴을 많이 아프게 했던 전통적인 어머니들의 모습과 많이 닮아 있어서 였다. 

 

  끊임없는 갈등과 절망의 모습으로 점철되던 이야기는 그 두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이복의 자매가 만나면서 자식代에서 극적인 화해를 이룰 것 같아 보이다가 결국은 스스로 바다에 몸을 던지는 언니의 비극적인 죽음으로 끝난다. '가도가도 머물 곳이 없다'는 절규와 함께. 작가의 전작 '홍어'의 충격적인 반전을 기억하고 있는 나로서는 또 한번의 충격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는데, 하루가 지난 오늘까지도 마치 그 고통의 현장에 내가 서있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소설의 장면장면이 자꾸 떠올라 마음이 편치 못하다. 

  

z*****g 2012.10.26.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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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장편소설 '빈집'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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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그저 답답했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얘기가 있듯, 어떤 부모밑에서 자라고, 어떤 남편을 만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이 달라진다는 속설을 여실히 보여준 소설이다. 또한, 남편복이 없는 수진, 어진의 삶을 통해 인생의 행로를 어느정도 짐작하기도 했다.   오로지 자신의 일(노름)에 대한 변명과 자신의 맞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예전에 부잣집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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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내내 그저 답답했다.

 

'여자 팔자는 뒤웅박 팔자'라는 얘기가 있듯, 어떤 부모밑에서 자라고, 어떤 남편을 만나느냐에

따라 자신의 삶이 달라진다는 속설을 여실히 보여준 소설이다.

또한, 남편복이 없는 수진, 어진의 삶을 통해 인생의 행로를 어느정도 짐작하기도 했다.

 

오로지 자신의 일(노름)에 대한 변명과 자신의 맞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예전에 부잣집이여서 자신의 무노동에 대한 정당성만 내세우는 남편을 통해 전처와 전처 딸. 재혼한 아내와 딸들을 방치하는 무능력한 아버지 상을 통해 작가는 무엇을 얘기하고 싶었을까?? 간간이 딸들에 대한 연민도비췄지만, 그것 또한 무의미한 것으로 끝이 났다.

 

부부사이, 부녀사이 등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맺게 된 관계들에게서 이 소설을 통해 그 관계들이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지, 그 관계들이라는 것이 누구와의 비교대상이 아닌 자신, 또한 상대와의 사이에서만 이뤄질 수 있는 절대적인 것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어진이 이복언니인 수진이의 선택에 자꾸만 가라앉기만 하는 나 자신을 보게 되었다.

 

m******9 2010.05.15.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 빈집 , 김주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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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저없이  별 다섯개를 주고는 '천명관' 이후로 만나는 최고의 작가와 작품임을 분명히 해둔다. 지인에게 선물로 보낼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도둑 심보인지 일주일이 넘도록 쥐고는 끈질기고 인내심있게 읽어내렸다. 처음 마주하는 작가라 별다른 기대없이 무심히 읽어내려가는데 무미건조하지만 질척이지않는 문체가 쉽사리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것으로 시작해 절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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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저없이  별 다섯개를 주고는 '천명관' 이후로 만나는 최고의 작가와 작품임을 분명히 해둔다. 지인에게 선물로 보낼 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슨 도둑 심보인지 일주일이 넘도록 쥐고는 끈질기고 인내심있게 읽어내렸다. 처음 마주하는 작가라 별다른 기대없이 무심히 읽어내려가는데 무미건조하지만 질척이지않는 문체가 쉽사리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것으로 시작해 절반정도가서는 가히 탄성을 자아낼만큼 정확히 내 마음과 일치되는 순간까지도 도달하게 만들었다. 말이 필요없다. 최고다. 김주영이라는 작가를 모르고 지낸 세월이 서러울정도로.

 

 아들을 낳지 못하면 쫓겨나거나 괄시를 받던 시절, 투전판을 떠도는 아버지와 그런 아버지를 붙들지도 그렇다고 떠나보내지도 못했던 어머니. 그리고 하나의 시점이 되고 주제가 되었던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새 없이 무턱대고 성장해가던 딸. '맹목적으로' 라는 단어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 가족에 대한 사랑이라면, 여기 이 가족은 오로지 떠도는 아버지를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는 어머니와 그런 아버지를 찾아 떠도는 어머니를 기다리는 딸로써 가족의 의미는 분노와 애틋함으로 일그러진 기다림으로 함축되어진다.

 

 구태여 이런 가족에서 일말의 사랑을 찾겠다고 무던히도 노력하며 읽었지만, 애물단지인 양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혼자 성장하던 딸- 어진에게조차도 끝끝내 안주 할 곳 없이 떠도는 인생만을 안겨준다. 노름으로 인해 쫓기는 남편을 지키기위해 기꺼이 남편을 쫓던 형사의 희생양이 되었던 그것이, 끝까지 보듬어주는 따스함없이 야박하고 매몰차게 떼어놓고 정 없이 보내주어, 애달팠던 시절을 깨끗이 잊히게 했던  딸에 대한 그것이, 정녕 사랑의 또 다른 이면이라한다면 조금의 위로가 될까. 비록 지극히 폭력적이었다 한 들 그 또한 사랑이 아니고서는 수용될 수 없었음을 조금, 아주 조금 이해를 해 본다.  

 

 목적지없이 떠도는 삶이 그러하듯 이 소설 역시, 마주하거나 스치는 인연들과 갑작스레 혹은 천연덕스럽게 일어나는 일들이 새삼스레 얽히고 설킨다. 딸- 어진과 관찰자의 시점으로 풀어가던 소설이 막연하게나마 내 안으로 성큼 발을 딛게 된 건, 누군가를 하염없이 기다린다는 것에 이골이 난 심정이라던가 도저히 꿈 꿀 수 없는 희망이라는 것에 대한 체념이라던가 떠도는 발자욱에 흔적을 그리지 않을 수 있다라는 다소 고집스러운 딸- 어진에게로 향한 이질적인 동경이랄 수 있겠다. 가진 것 없고 잃은 것도 없는 삶, 그것이 바로 철저히 혼자이길 곱씹어 바라는 타락의 자유이지 않을까.

 

 서평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이 몇 줄을 쓰는 내내 어떻게 풀어나아가야 할 지, 이토록 어려운 책이 또 있었나 싶을 정도로 타자를 치는 손가락을 앞지르는 생각들이 얽히고 결국은 길목을 잡지 못 해 꼬박 이틀째가 되어서야 겨우내 마무리한다. 단 한 문장도 버릴것없이 탄탄하고 매력이 넘쳤던 문체는 분명 다른이에게는 숨통을 조여오는 답답함으로 거북스러웠을지도 모른다. 그마만큼 빈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정도로 타이트했다는 것이다. 설령 그러한 점이 책의 스토리를 다소 지루하게 만들었다한 들 단 한차례도 책을 그냥 덮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은 해 본 적 없다. 기막힌 반전이라던가 앞일을 예상할 수 있는 그럴듯한 복선따위는 없었지만 텅 빈 마음이 거칠 것 없이 꽉꽉 채워지는 소설은 아마 앞으로도 만나지 못 할 것 같다고, 짐짓 서두른 확신을 내려본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g****a 2010.08.10. 신고 공감 0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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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집
"빈집" 내용보기
사람을 평가하고 아이들을 평가할때면 개인적 능력과 성향과 함께 자라온 집안내력도 큰 역활을 하고있다. 예전엔 그게 왜 평가의 잣대가 되는걸까 의문을 부여하곤 했지만 어느정도 삶의 연륜에 도달한 지금에선 절대적일만큼 신봉하기에 이른다. 그건 남의 인생이 아닌 내삶의 모습에서 내 스스로의 모습이 싫어질때나 좋아질때 매일매일 발견하게되는 모습이었다.   참으로 불공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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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평가하고 아이들을 평가할때면 개인적 능력과 성향과 함께 자라온 집안내력도 큰 역활을 하고있다. 예전엔 그게 왜 평가의 잣대가 되는걸까 의문을 부여하곤 했지만 어느정도 삶의 연륜에 도달한 지금에선 절대적일만큼 신봉하기에 이른다. 그건 남의 인생이 아닌 내삶의 모습에서 내 스스로의 모습이 싫어질때나 좋아질때 매일매일 발견하게되는 모습이었다.

 

참으로 불공편한 세상의 진리인 부익부 빈익빈의 경제원리가 적용되듯 평범한 유년의 시절을 보냈으면 평범한 인생이,기구했으면 기구한 삶이 기다리고 있었고 마음껏 누리고 풍요로웠던 유년이면 미래의 모습또한 어느정도 보장되고있었슴이다.

 

지금의 삶이 이만큼 불행했으니 나머지 인생은 행복해라 하고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살아가는 맛이나고 희망이 보일텐데. 하지만 한남자가 가져온 불행의 씨앗이 엄마를 휘어갑고 딸까지 감금하던 빈집을 만나며 어쩔수없는 사회적 관념과 통념속에 또한번 울분을 삼킨다. 그리곤 기구하고 슬픈 인생사를 보면 왜 모두 여자에만 국한되는것일까? 진한 아픔이 밀려왔다.

 

철저히 자기중심적인 사고속에 자기만을 위한 삶을 살아가는 아비 배용태는 항상 부재중이었다. 런 아비에 대한 원망과 한을 딸 어진에게 풀어내는 어미또한 어느순간 부터 집을 비운다. 그렇게 어린딸 어진은 홀로 빈집에 남겨졌다. 투전판에서의 손감각을 높이다는 명목으로 고집스레 다큰 딸의 오줌을 받아 손을 씻던 아빠라도 항상 집에 있어만 주었다면 두여자의 삶이 그렇게 고되고 삐뚤어지지 않았을텐데말이다.

 

그 슬픔은 비단 한여자에만 국한된게 아니었으니 핏덩이를 안고 아무런 미련없이 떠났던 전처와 욕망에 얽힌 사랑일망정 악착스레 지켜주고싶었던 서방을위해 그를 쫓는 조형사에게 빌붙었던 후처와 그녀들의 딸까지 이어지는 골깊은 인생사였다.

모성은 아름답다 누가 그랬던가? 그것도 내 신간이 편하고 행복할때의 마음이지 당장 내삶이 고통스럽고 휘어져있음엔 보이지않는 사치일뿐이다.

 

자식만은 나와 같은 삶이 아니길 바라는 어미에게도, 자식이 단지 한을 풀어낼 통로밖엔 안되었던 어미에게도 모성은 아름답지않았다. 그것이 실망이었고 자신의 삶을 이어나가기위한 수단이란 이유는 달랐지만, 언니 수진도, 동생 어진도 그렇게 박복했던 유년시절은 평탄치 못한 결혼생활로 이어지고 끝없이 이어지던 굴곡된 삶을 돌고 돌아 서로에게 힘이 되는 몇개월의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지금 세상의 끝에서 희망을 발견하고싶었던 둘은 함께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그녀들의 희망은 정녕 없었던것일까. 길도 없고 이정표도 없는 사막을 헤매이듯 만나야할 사람도 더 이상 없는 세상에서 피곤하고 허망하기만 할뿐인 여정을 끝내는 수진으로인해 어진은 넓은 세상에 또 혼자가 되어버린다.

 

참으로 무겁고 두려운 삶이었다. 알면서 눈감아야하고 비난인줄 알면서도 무시하고 음탕한 욕망이 뒤얽힌 삶의 수단속에 네여인의 삶은 끝없는 나락속으로 치닫았다.

가끔은 너무 답답해 숨이 막혀오고 가끔은 사람의 마음을 꿰뚫는 작가의 심미안에 소름이 끼쳤다. 그렇게 빈집은 여인네들의 적나라한 삶을 통해 세상을 보여준다.

d****0 2010.06.0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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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결국 다시 외로워지고 말지라도
"그리하여 결국 다시 외로워지고 말지라도" 내용보기
어떤 하소연들은 기가 막히다. 대개 가족간에 일어나는 일이 그렇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뒷짐지고 가세가 기울어져도 집안에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이는 가장이 있고, 도벽이 있어 온 세간을 팔아먹고도 노름빚을 안아야만 몇 년에 한 번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가 있고, 형제들을 두드려패고 협박해서 돈을 얻어내가는 후레자식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어떤 조언이나 위로도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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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하소연들은 기가 막히다. 대개 가족간에 일어나는 일이 그렇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뒷짐지고 가세가 기울어져도 집안에서 한 발짝도 안 움직이는 가장이 있고, 도벽이 있어 온 세간을 팔아먹고도 노름빚을 안아야만 몇 년에 한 번 집으로 돌아오는 엄마가 있고, 형제들을 두드려패고 협박해서 돈을 얻어내가는 후레자식들이 있다.

그들에게는 어떤 조언이나 위로도 할 수가 없다. 가해자가 가족이기 때문이다. 이럴 때 나의 사고체계는 혼란을 겪는다. 도대체 그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단 말인가.

 

그래, 그것에 대해서 솔직히 말해볼까? 라고 이 책은 묻는 것 같다. 내 안에 이런 생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조차 생각해 본 적이 없는 나 같은 사람에게도, 그렇다, 가족은 때로 공포다. <빈집>을 읽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고, 또 숨가쁘게 몰입되었던 것은, 내게도 가족이 공포인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리고 나서야 더부룩했던 속이 좀 풀리는 일종의 해방감 같은 것을 느끼게도 되었다.

 

우리나라의 가족 관계는 권력적이고 수직적이다. 그런 데다가 구성원들이 각자의 욕망을 모조리 표출해버리면 가정의 형태는 기형적으로 변하고, 그 때 가족이라는 울타리는 구성원들 모두에게 죽을 때까지 빠져나갈 수 없는 사슬로 변한다. 그것이 내가 너에게, 우리가 당신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치명적인 방법이다. 솔직히, 누구나 그런 트라우마 하나쯤 갖고 살지 않나.

 

그러나 이런 결말은 어떠한가.

혼자 지키던 빈집을 나와서야 처음으로 허기짐을 느끼는 그 삶에의 희망 같은 것.

결국 마지막으로 남은 먼 피붙이를 찾아 떠나는 헛된 희망의 반복 같은 것.

그리하여 결국 다시 외로워지고 말 것일지라도, 나는 그대를 찾아내어 기어이 마른 어깨를 한 번 뉘여 단 잠을 잘 거라는 것.

 

소설은 가족을 완전히 허물고 부숴버린다.

그것이 다시 성을 쌓기 위한 첫 번째 작업임을 익히 알고 있다는 듯이.

b*********o 2010.05.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