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엔 소설인 줄 알았다. 광고를 보고 치매에 걸린 친정어머니를 생각하며 어머니와 자식간의 애증을 감동적이게 다룬 소설 말이다. 하지만 책을 받아들고 좀 마뜩치 않았다. 어, 이건 수필이잖아. 나는 수필은 잘 보지 않는 편이다. 어떤 이의 세상에 대한 평가가 때로는 너무 부르주아적이거나 나와는 관점이 잘 맞지 않거나 낯 간지러운 비유나 은유가 거슬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룽잉타이 선생의 글은 나를 위로하고 웃게 만들고 새로움에 놀라게 했으며, 무엇보다 무지 무지 많이 생각하게 하였다.
나는 정작 타이틀 에세이인 ‘눈으로 하는 작별’은 그냥 읽고 잊었다. 하지만 그 이후 계속되는 수필들은 정말이지 룽잉타이 선생이 내 옆에서 산책하며, 차를 마시며 말을 건네는 것 같았다. 또한 ‘룽 선생’-이렇게 불러도 될런가 몰라도^^-은 언제 떠날지 기약없는 나의 여행지 목록에 한 곳을 더 올리셨다. 홍콩! 홍콩에 가면 그 화가 골목에 가서 고흐의 그림(물론 짜가!)을 꼭 하나 사오리라.
책 속으로 한번 들어가 볼까. 룽 선생의 글은 유쾌하고 세상에 대한 연민이 묻어있으며(특히 늙어간다는 것에 대해) 또한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깨달음이 있다.
‘행복이란 항상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되는 삶이다. 아침에 가게 문을 여는 주인이 정부군이나 반란군 또는 갈 곳 없는 굶주린 난민이 자신의 가게를 털어 오지 않을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길을 걷는 이들이 배낭을 앞으로 돌려 멘 채 주위 사람들을 경계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잠에서 깼을 때 집이 강제로 철거당해 쓰레기처럼 거리에 버려질까 봐 걱정할 필요 없이, 자기 방에서 편안하게 잠들 수 있어야 한다. 슈퍼에서 분유를 사는 어머니는 가짜 분유를 먹고 아기가 죽을 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값싼 독주를 즐겨 마시는 노인은 눈을 멀게 만들지도 모르는 화학약품이 든 가짜 술은 아닐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어부가 강물 위로 힘껏 그물을 던지면서, 강물에 중금속이 섞여 물고기와 새우가 곧 사라져버릴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초등학생이 등교할 때 누군가가 자신을 납치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경계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시내에서 빈둥거리며 돌아다니는 백수가 제복을 입은 사람이 가까이 오면 체포달할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체포된 사람은 변호사와 법률이 자신의 권리를 보호해주리라 믿기 때문에 경찰서에서 덜덜 떨 필요가 없어야 한다. 이미 감옥에 갇힌 사람은 사회가 자신을 잊거나 또는 권력자가 입막음을 할까 봐 걱정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공공기관에 가서 증명서를 신청하는 소시민은 모욕이나 무시를 당할까 걱정할 필요가 없어야 한다. 가을 밤 등불을 켜고 책을 읽던 사람이 갑자기 골목이 소란해지고 누눈가 문을 두들기며 자신의 이름을 부를 때,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생각하며 자신의 원고를 그 자리에서 모조리 불태울 필요가 없어야 한다. ...(중략)... 행복이란 여느 때처럼 평범한 나날이다....(하략)‘
나도 생각한다. 행복이란 아침에 자고 일어났을 때 밤새 또 다른 함대가 침몰해서 생때같은 청춘들이 수장되었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지 않는 것이다. 전쟁도 불사한다고 우리 대통령이 쉽게 말하는 것을 듣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전방에 보내놓은 내 자식 때문에 밤 잠 설치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이런 당연하고 상식적인 말을 하면서도 저 윗사람 눈치 보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렇다. 그렇게 여느 때처럼 평범한 날을 사는 것이 행복이다.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언제라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하는 걸 알면서도 애써 외면해왔던 여러분, 나만 늙어 가는 것 같아 우울해지시는 여러분, 그리고 가족 구성원 사이가 소원했던 여러분들이라면 권하고 싶은 책이다. 참 좋은 책이다. |
|
한 권의 시집. 이라면 누가 이 책에 돈을 지불하겠습니까. 문학과 지성사, 세계사, 민음사, 문학동네, 실천문학사 시집들은 지금 누가 사고 있지요? 저는 못 사고 있습니다.(가림토님과 참좋다님은 사 보시는 것 같습니다) 반은 핑계지만 요즈음은 통 시집을 사 볼 여력이 없습니다. 김언의 <소설을 쓰자>를 주문해 놓고 몇 주를 묵혀두고 있어요. 매 주 배달되는 신간들을 소화해야 하는 시기, 의무감에도 불구하고 제법 맛있는 식사라는 생각이 듭니다. 독서편식으로 빈혈과 당뇨를 앓고 있는 허약한 지성에 지난 일 년간 서인영의 신상구두 컬렉션 모양으로 독서식탁을 채우고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제 첫사랑은 '시' 입니다. 두근거려본 것도, 마음 조린 것도, 합방한 것도, 아파본 것도, 욕한 것도, 추억한 것도, 희망한 것도 모두 '시' 입니다. 부끄러운 고백을 태연히 하는 걸 보니 참, 제 변심 가증스럽기도 합니다. 그래서 '시적인' 것, '시심'을 간직한 산문들을 보면서 시를 불러냅니다. 언젠가 시로 돌아가기 위하여 밑밥을 까는 중인지도 모릅니다. 김언의 시집<소설을 쓰자>란 제목만 봐도 장르의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슬로건이 보입니다. 하지만 이미 소설이나 에세이들은 시인의 문장으로 의미의 축지와 도약을 꿈꿔왔습니다. '시같은 소설을 쓰고 싶다'는 소설가 신경숙의 바램(인터뷰)이 발상 축에도 들지 않을 만큼 소설가들의 남모른 시사랑은 여러 문장으로 들통나곤 했습니다. 간혹 시의 긴장감을 견딜 수 없을 때 '풀어진 시'라는 착각이 들만큼 잘 깍인 문장과, 서사 없이도 서사를 대변하는 묘사에 응축된 사유들, 문장간의 거리가 새와 새장이 아닌 새가 올려다보는 하늘과도 같을 때, 비유의 탁월함에 무릎을 치며 놀랄 때, 시의 골격 없이도 시의 형상이 떠오를 때가 바로 '시적인 산문'과의 반가운 조우 임을 알게 됩니다. <눈으로 하는 작별>이 그랬습니다. 첫사랑을 닮은 누군가를 길에서 스쳤을 때의 덜컹 내려앉는 마음이 흐릿한 추억을 몰고오다가도, 어둠과 함께 이내 또렷해지는 달처럼 선명해지는 상반된 감정들. 기억이 반쯤은 타자의 식민지라는 듯, 막을겨를도 없이 첫사랑의 신체의 한 부위까지 머릿속을 침범해 옵니다. 발가락, 티눈, 점, 희미한 흉터, 들키지 않는 습관들. 룽잉타이의 산문이 나만 아는 표식인양 다가옵니다. 유머와 통찰, 지치지 않는 호기심이 내밀한 자기고백을 공공의 사유물로 내밉니다. 몇 구절을 옮기려고 시도해보았지만 별 의미 없는 일임을 깨닫습니다. 삭제 당한 노년, 아들에게 스팸으로 분류되는 엄마, 인생의 아이러니를 통째로 옮기기에 이 지면은 너무 작습니다. 양물과 터럭의 건초냄새, 즉, '거시기' 냄새를 모른다고 잡아떼는 엄마와의 한바탕 웃음보, 아들들을 대동하고 할아버지의 말문트기 내기를 시켰던 저자. 진짜 고수들은 사랑과 죽음과 이별을 입에 담지 않고도 꼭 그것을 향해 가는 법인가 봅니다. "넌 어디서 왔니?" 이 평범한 질문이 딸을 잊어버린 늙은 엄마가 하는 것이라면 문장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의미에서 벗어나 재조합되기 시작합니다. 무겁게 선언한 '시적'이란 느낌이 실은 특별한 시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수수한 문장이 도드라지는데 있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수필가 E.B.화이트는 "인류나 인간(Man)에 대해 쓰지 말고 한 사람(a man)에 대해 쓰는 것"이 글을 잘 쓰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이 아침 꽃비처럼 축복이>/장영희/샘터 에서 재인용) 이 한사람의 힘이 얼마나 센지 <눈으로 하는 작별>이 보여줍니다. |
|
하루만큼 더 산다는 건, 죽음에 그만큼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만난 사람이 많아지는 만큼 헤어지는 사람도 많아지는 것, 그게 나이듦에 따른 자연스러운 섭리이겠지.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걸, 때로는 너무도 급작스럽게 예상치 못한 순간 이별이 찾아온다는 걸 나는 어릴 때부터 체감했다. 그럼에도 죽음으로 인한 이별은 좀처럼 내성이 생기지 않아서 사랑하는 사람을 한 명씩 떠나보내는 일은 언제나 아프고 힘들었다. 대가족 속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던 터라, 친가쪽으로나 외가쪽으로나 내가 생각하는 가족의 범위가 조금 넓은 편인데 그만큼 부음을 듣는 일도, 함께 장례를 치르는 일도 많았던 것이다. 그 중에는 갑작스레 폐렴이 진행되어 하루 밤새 떠나가신 분도 있고, 치매와 노환으로 인해 기력이 쇠하며 오랜 기간 투병하다 떠나신 분도 있다. 또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떠나간 분도, 아이를 출산하는 중에 과다출혈로 돌아가신 분도 있다. 가장 최근에는 작년에 급격히 기력이 쇠하셔서 요양병원으로 모시자마자 그 다음 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사연이 있다. 호상이란 말이 있다지만 어느 죽음 하나 가슴 아프지 않은 일은 없었다. 이런 경험들 때문인지 죽음이란 낯설지 않은 것이어서 때때로 환갑이 다 된 어머니의 노후설계 이야기를 할 때나 팔순을 넘긴 외할머니를 찾아뵐 때면, 나도 모르게 외할머니와 어머니와의 이별이 머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서 덜컥 마음이 무너지기도 한다.
올초에 [사랑하는 안드레아]라는 책으로 처음 접한 저자 룽잉타이. [사랑하는 안드레아]의 느낌이 좋아서 또 그녀의 글을 찾다보니 우리나라에 출간된 그녀의 책이 [눈으로 하는 작별]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안드레아]에서는 아들과의 소통을 이야기했다면, 이 책에서 그녀는 부모와 자식간의 이별을 이야기한다. 자식은 내 품을 떠나가고, 부모는 나보다 먼저 늙고 기력이 쇠하며 죽음에 가까워지게 마련이다. 1부에서는 딸이자 엄마로서 이별을 실감하고 준비하는 과정을(사춘기 자녀의 성장과 독립, 부모의 치매와 건강악화), 2부에선 생활의 곳곳에서 느끼는 여러 가지 단상을, 3부에서는 아버지의 죽음과 장례 이야기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어찌 보면 슬픔과 회한의 정서만 가득할 것 같은 주제이지만 그녀는 예리한 통찰력과 따뜻한 감수성, 그리고 고요한 사색을 담아 삶의 희노애락을 담백하게 이야기한다. 특히 이 책이 지루하지 않았던 것은 중간 중간 의외의 유머를 만났기 때문이다. 벌레 한 마리에 쩔쩔매는 모습. 살림의 요령을 몰라 가사도우미에게 "안 배우셨나봐요?"라고 이야기를 자꾸 듣는 장면, 꾸미기 좋아하고 호탕한 어머니의 유머 등이 그러했다. 신랄한 비평을 하던 사람이 이렇게 내밀한 가족 이야기를 했다는 것 때문에 대만에서는 반향이 더 컸다는데, 나는 아직 그녀의 비평집을 읽지 못했으니 그런 충격을 받지는 못하겠다. 다만 이렇게 예리하면서도 유려하고 서늘하면서도 따뜻할 수 있는 그녀의 글이, 그녀의 생각이 참 부럽다. 또 동양고전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중간 중간 드러나는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비평능력 등 그녀의 지성도 참 부럽다. (흔히 말하는 동양적인 정서를 그녀의 글에서 많이 느껴서인지 더 친숙하고 편안하기도 했다.) 그녀의 이야기를 따라가다보면 만남도 이별도 삶의 일부임을 새삼스레 깨달으며 애끓는 부모와 자식간의 정과 죽음과 이별의 필연성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된다. 그 깨달음을 섬세하면서도 예리하고 담백하게 표현한 명문장들이 이 책에는 참 많다. 나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이해해가고 있다. 부모와 자식의 관계에 대해.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p.18) 그는 알 것이다. 현자라면 누구나 아는 가슴 시리도록 차가운 현실을. 어떤 일은 혼자 해내야 하고 어떤 고비는 혼자서 넘어야 하는 것처럼. 어떤 길은 온전히 홀로 가야만 한다는 사실을 (p.39) 이상주의자는 품위를 가질 때 권력에 의해 타락하지 않고, 능력을 가질 때 이상을 실천에 옮길 힘이 생긴다. 그러나 품위와 능력을 겸비한 이상주의자란 극히 드물다.(p,47) 정의가 아무리 의심스럽다고 해도 그러한 정의라도 가지고 있는 편이 없는 것보다는 안전하다. 이상주의자에게 너무 큰 기대를 걸어서는 안 되지만, 그들이 있는 사회와 없는 사회는 하늘과 땅 차이다. (p.49) 우리는 100미터 달리기를 성공적으로 완주하기 위해 죽어라 공부했지만, 넘어졌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는 배우지 못했어. 무릎이 까져 피가 흐를 때 상처를 소독하고 싸매는 법은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어. 상처가 참을 수 없이 고통스러울 때는 어떤 표정으로 남을 대해야 하는지, 무릎 못지않게 피가 줄줄 흐르는 마음의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야 하는지, 영혼 깊은 곳의 평화는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깨진 유리처럼 마음이 산산조각 났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p.78) 엄마가 돌아가고 싶은 집은 공간이 아닌 시간 속에 있다. (p.117) 행복이란 항상 공포에 떨지 않아도 되는 삶이다. (p.137) 행복이란 아침에 손을 흔들며 "학교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나간 아이가 저녁이 되면 아무 일 없이 평소처럼 집으로 돌아와서 책가방은 방 한구석에 던져버리고 냄새나는 운동화를 의자 밑에 쑤셔 박는 것이다. (p.141)
나의 가족도 역시 나를 떠나갈 수밖에 없음을 안다. 또 내가 먼저 그들을 떠나갈 수도 있음을 안다. 아직 가족이 없는 삶은 잘 상상이 안 되지만, 그래도 그 순간이 언젠가는 오겠지. 내가 할 수있는 것은 그 순간 후회하지 않도록 지금 내 옆의 사람들과 가족에게 충실하는 것. 매일 조금씩 가까워오는 이별에 초조해하지 않고 귀하게 이 시간을 보내는 것. 그밖에 또 무엇이 있을까?
|
![]()
오랜만에 접하는 수필을 통해서 또 한 번의 감동과 사랑 그리고 뒤늦은 깨달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나 자신을 되돌아보며 반성할 수 있게 되었고 주변을 돌아보는 시야도 달리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알게 되었지만, KBS1 TV 《책 읽는 밤》이라는 프로그램 선정도서로 올랐고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선정된 도서이기도 하다. 참고로 이 책은 우리나라의 작가가 쓴 책이 아니다. 중국인이 쓴 책이거니와 저자 《룽잉타이》는 두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에 더욱 놀라기도 하였다. 그녀는 교수라는 삶을 살아가고 있지만 정작 인생에 대한 진정한 깊이를 이 책에서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아마도 책 읽는 나 자신조차 이 책을 통해서 많은 공감을 이끌어 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의 인생의 소소한 일상이나 경험담을 통해서 담담하게 써 내려갔고 그녀의 섬세한 문체로 그 울림은 더 크게 느껴졌다. 그리고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다. 가족, 부모, 나, 자식, 인생 등 나와 함께 끝없이 이어지는 연결 되어 있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많은 인연이 닿아있지만, 우리가 살아가면서 정작 그런 부분에 대해서 놓치는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누구에게나 헤어짐이나 혹은 이별의 경험은 있을 것이다. 헤어짐과 이별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이별’은 ‘서로 갈리어 떨어짐.’이라는 의미가 있지만 ‘작별’은 ‘인사를 나누고 헤어짐. 또는 그 인사.’라는 의미가 있다. 이렇게 두 단어는 비슷한 뜻인 것 같지만, 의미상으로는 다르게 해석된다. 이 책의 제목을 살펴본다면 「눈으로 하는 작별」이다. 즉 ‘작별’에서 말하는 인사라는 의미는 마지막 인사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의 저자는 아버지와 작별을 하였다. 고향 땅을 밟아보지도 못한 채 머나먼 길을 떠나야 하셨고 더욱 슬픈 사실은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책에서 다루는 것은 가족과의 이별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단지 가족에 대한 이별이 아닌 외성인(外省人) 가정의 딸로 태어났고 부모와 형제 말고는 다른 친척도 없었다. 그런 그녀의 삶에서 아버지의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죽음과 다른 의미였다. 그녀의 이야기 속에는 누군가는 고통을 받고 또 누군가는 상처도 받는다. 그리고 실망과 갈등이 생겨나기도 한다. 우리 인생이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는 것처럼 살아가는 인생이나 삶의 한 부분에 큰 덩어리로 자리를 잡고 있는 가족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우리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도 한다. 중국인의 쓴 이야기라서 마음에 와 닿지 않을 거라는 생각을 했지만 결국 우리네 인생의 한 부분을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였기에 읽으면서도 공감되는 부분도 많았다.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사회에서 점점 잊혀가고 소중함을 모르고 지나쳐버린 가족의 테두리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해주었던 책인 것 같다. 삶이나 인생을 살면서 그냥 넘겨버릴 일이나 대수롭지 않게 보이는 것들이 이 책을 통해서 삶에 대한 깊이와 그녀의 이야기로 인생에 대한 통찰력으로 자칫 흘려보내 버릴 것을 잡아주는 생각이 들었기에 나 자신을 그리고 가족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해주었다.
가족에 관련된 책은 많다. 하지만, 가족이라는 소재를 어떻게 이끌어 내는지 그 속에서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가 독자를 공감하게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에서 가족과 부모는 항상 자신의 주변에 있지만 정작 그 소중함을 모르는 채 살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설상 알더라도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을 읽고 있으면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되고 내가 무심하게 지나쳐버린 가족의 소중함을 이끌어내어 주었다. 언젠가는 나도 나이가 들고 내 자식들이 나를 부모로 혹은 가족의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그때를 생각한다면 이 책은 가족, 자식, 부모, 사랑, 애정이라는 연결고리처럼 하나로 이어지고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
|
골목길 구석의 잡초가 천 년의 세월을 담은 풀포기가 아니라고, 황량한 들판의 야생화가 온 세상을 담은 꽃 한송이가 아니라고, 단언할 자 그 누구인가?
본문 184쪽
참으로 많은 작별이 있는 이 오월에 이 책을 만난 것은 어쩌면 우연은 아닐 것이다. 생각만 해도 아픈 이별에 눈물이 흐르는 이 날. 룽잉타이는 내게 우리의 삶이란 것이 늘 이별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우리는 어제와 이별하고 지금과 이별하고 또 내일과 이별할 것이다. 어린 시절 병원 침대에 실려서 수술실로 들어가던 엄마의 모습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직 학교도 들어가기 전이던 때였으니 무엇인들 제대로 기억할까마는 그 무섭고 두렵던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그보다 더 어렸을 때는 엄마를 잃어버리고 길에서 울던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 길고 길던 골목길이 하얗게 빛나던 기억이라니......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억지로 떼어 놓아야 했던 단풍잎 같던 아이의 손과 뒹굴던 아이의 동그랗던 어깨가 아직도 가슴이 아리다. 내 손을 놓고 교실로 들어가던 그 작은 뒷모습이, 친구들이 가득 찬 버스에 웃으며 달려가던 그 뒷모습이 이제는 다시는 내게 돌아오지 않을 아름다운 기억들이다. 어린 시절 그리도 잘 안기던 큰 아이가 지금은 뽀뽀라도 할라치면 웃어버린다. 늘상 내 손을 잡고 걷던 작은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집 앞에서 내 손을 놓는다. 저 길 건너에 친구가 오고 있다. 이제 곧 엄마가 길에서 안아주면 부끄러워 하겠지?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 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본문18쪽)라는 작가의 말과 같이 부모와 자식이라는 것은 그런 사이인가 보다. 내 차의 뒷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우리 엄마는 서성거린다. 아이가 탄 스쿨버스가 우리 아파트를 돌아나갈 때까지 나는 내려다 본다. 저자의 조국이 처한 역사적 상황이 우리네 그것과 비슷한 점이 있어서인지 저자의 부모가 겪는 이산의 아픔과 두고 온 고향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의 표현은 남의 나라 이야기 같지 않았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다 비슷한 것이다. 생김새가 다르고 먹는 음식이 다를 지언정 느끼고 생각하고 원하고 원망하는 그것들은 다 부처님 손바닥 안이니 말이다. 에머슨이 지었다는 '붉은 진달래'와 왕양명의 가르침과 김춘수의 '꽃'이 만나는 지점이 바로 여기라는 이 놀라움이 바로 우리네 삶이 아닌가 싶다.
장미와 아름다움을 겨루는 자여 어떤 인연이기에, 네가 피고 지는 이 곳에, 내가 찾아와 이렇게 널 보고 있을까. 에머슨. 룽잉타이 역, 붉은 진달래
"당신이 이 꽃을 보지 않을 때, 꽃은 당신처럼 외로워 지지만, 당신이 이 꽃을 바라보는 순간 꽃의 빛깔이 선명해지니, 꽃은 당신의 마음 밖에 있지 않습니다. " 왕양명(王陽明, 중국 명나라 중기의 유학자 )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
삶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과 해박한 중국 고전에 대한 지식들이 작가의 아름다운 감수성과 함께 읽는 내내 나를 기쁘게 했다. 또한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지적과 적절한 인용은 좋은 글을 읽는 기쁨이 바로 이런 것이라는 것을 실감하게 한다. 읽는 도중 " 그렇지." 하는 마음으로 밑줄을 치고 옮겨 적는다.
"처음엔 이상주의자를 믿지만, 나중에는 이상주의자도 권력의 유혹에 종종 굴복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일단 권력을 쥐게 되면, 스스로가 본래 목숨 걸고 반대하던 '악(惡)'이 되어 버리거나 현실의 매서운 주먹에 엉망진창으로 두들겨 맞고 링 밖으로 쫓겨 나게 된다. 이렇게 되면 그의 이상을 실현할 기회란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상주의자는 품위를 가질 때 권력에 의해 타락하지 않고, 능력을 가질 때 이상을 실천에 옮길 힘이 생긴다. 그러나 품위와 능력을 겸비한 이상주의자란 극히 드물다. " 본문 47쪽 |
|
눈으로 하는 작별이하는 제목에 눈물이 먼저 떠올랐다. 눈으로 나누는 수많은 대화들을 하지만 사람들은 진정 그 뜻을 이해할까. 명절에 잠깐 왔다가 가는 자식들의 뒷모습을 끝까지 배웅하는 눈속에 맺힌 눈물 을 기억이나 할까. 우리아들을 낳고 몸조리를 해주시던 시어머니는 내가 아기와 집으로 출발하는날 그렇 게 강하셨던 두눈에 눈물을 펑펑 쏟으셨다. 내가 마치 죄인이 된것처럼 너무 마음이 아팠지만 한편으로는 그마음을 이해할수 있었다. 우리가 가고난후 집안에 홀로 들어설때 한동안 아기의 울음소리 환청에 고생 하셨다고 한다. 이렇게 부모와 자식간에는 딱 부러지게 부정할수 없는 흐름이 있다.
항상 수필집을 읽다보면 저자의 느낌을 알수 있다. 단하나 이책을 요약하자면 저자의 성장과정을 통해서 지금의 자신이 부모가 되어서 자식과 친구와 지인들에게 보내는 한편의 수필집이다. 수필집이 가진 장점 은 감성으로 흐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더 가슴에 와닿고 나의 지난 과거속에 파묻힌 기억을 하나하나 파 내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난 수필집이 에세이집이 좋다. 너무 사랑한다. 이세상 무엇보다 사람냄새나게 정겹다.
총3부의 구성은 여행을 하면 어머니를 그리워하고 일상적인 생활에서 이루어진 삶을 느낄수 있다. 마지 막으로는 마치 아버지와 대화하는 것처럼 쓰여있다. 이부분에서 저자의 프로필을 보니 중국사회에 대한 일침을 놓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래서인지 어찌보면 매치가 잘 안되어 보이지만 자신이 느끼는 느낌 그대로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우리들에게 들려줄수 있는것 같다.
"얘야, 사실 이차는 대학 교수가 탈만한 차가 아닌데, 너한테 너무 미안하구나."(p20) 아버지는 한마디를 남기고 트럭을 출발시키셨다. 처음부터 왜이리 눈물이 나오게 하는것인지 모르겠다. 가난이 당신의 잘못인냥 아들에게 말씀하시는 모습이 받아들이는 아들에게 가슴아픈 뒷모습으로 기억될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아버지의 뒷모습도 항상 씩씩하지는 않았다. 세상에 모든 짐을 다 가진 사람 마냥 일터로 가신 아버지가 기억난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고 했던가. 지난 과거를 거슬러 올라간 부모님을 그리워하고 8년간이나 반신불수 로 보내신 아버지에 대한 감정에는 야속함과 안타까움이 있다. 그런데 다시 어머니가 그렇게 늙어가신다. 또하나 아낌없이 주는 나무와 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어도 주어도 끝이 없고 끝내는 이세상에 느낌만 남 겨놓고 가는 것처럼 말이다.
인생은 물과 같다고 표현한다. 저자의 인생과 같은 흐름을 읽어갈수록 먹먹했던 가슴이 지금도 진정이 되 지 않는다. 난 기억할까. 우리부모님의 모습을. 우리 아이는 날 기억할까. 아니 아이를 보면볼수록 나의 부 모를 기억할까. 나를 나조차 모르는데 내 아이를 보면서 자신의 삶을 훓어본 느낌은 눈물이었다. 아직은 다 기억하고 이해할수 없지만 살다보면 연륜이 생기면 더 애잔한 마음을 느낄수 있지 않을까 생각 한다. 지금도 모든것을 생각하면 눈물이 나온다. 화장대에 붙여있는 팽팽한 20대의 엄마의 얼굴이 기억난 다. 그리고 긴한숨과 함께 말이다. 한마디로 말하면 이책의 느낌은 엄마의 한숨같다. |
|
세상에는 눈물샘을 자극 하는 수많은 이야기가 있다.. 연인간의 사랑이야기가 그러하며..고달픈 인생을 한탄하는 이야기도 그러할 것이고.. 부모와 자식간의 애틋함도 그러하다. TV나 영화에는 하루가 다르게 쏟아져 나오는 자극적인 이야기들.. 그것들의 범람속에 휘둘려 하루는 울고 하루는 웃는다. 하지만 그뿐.. 격렬히 울었을지라도.. 배를 잡고 웃었을지라도,, 지나고 나서 보면 가슴에 남아 있는것은 많지 않다. 세상은 가벼운 웃음, 가벼운 울음들로 넘쳐난다. 여느 광고의 문구처럼.. <하지만 이 책은 달랐다.> 처음 책의 제목을 보았을때..제목만으로도 잔잔한 무언가가 내가슴에 와닿았다. 눈으로 하는 작별.. 눈은 마음의 창이라지.. 말로 하기엔 차마 소중해서.. 안타까워서..꺼내지 못하고.. 담담히..하지만 속으로는 깊이깊이..그렇게 하는 작별.. 바쁜 일상에 치여 있는 처지라서, 제법 두꺼운 책 첫 페이지를 쉽사리 열 엄두는 나지 않고.. 마음은 쓰이고.. 그러다가 짬난 시간에 잠시 페이지를 펼쳤는데..아주 깊이 빠져버렸다.. 룽잉타이라는 작가에게..
어쩌면..세상을 저렇게 섬세하고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걸까.. 어쩌면 저렇게 담담..하지만 저리도 깊이 주변을 통찰하고 사색할 수 있는걸까.. 책 페이지를 펴는 순간..나는 한사람의 독자가 아니라 그녀의 주변인이 된다. 그녀의 일상과 그녀의 사람들..그 삶속으로 녹아들어가,, 가끔은 서글프게..가끔은 안타깝게..또 어떤때는 슬쩍 미소를 띠며.. 결국 그녀가 살아온 길에 애정과 존경을 가지고 깊은 공감을 표하게 된다. 그녀의 이야기는 소박하다. 몇년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억하고..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안타까워 하며 마음으로 보듬고..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고 사랑하는 아이들이 커가면서 그녀의 품을 떠나는 것을 아쉬워 하고..서운해 하지만..한편으로는 대견해 하고.. 자극적 이야기가 넘치는 세상에서..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 소소한 일상이다. 하지만..그래서 공감한다.. 바로 그것이 우리의 살아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그녀가 삶을 바라보는 아름다운 시선은.. 서정적이고 단아한 필력은 우리들의 살아가는 그 소소한 이야기를 너무 특별하고 아름다운 이야기로 바꾸어 놓는다. '함께 늙기' 란 제목으로 그녀는 형제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가끔 우리는 묻는다. 엄마조차 떠나고 안 계셔도 너와 내가 이렇게 함께 모이게 될까? 우리는 혹시,바람처럼 각자 막연한 길을 떠돌다가 인생의 사막에서 서로를 잊게 되지는 않을까?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는 않다. 왜냐하면 남들과는 달리, 우리는 서로의 얼굴 속에서 어린시절을 찾아내기 때문이다. ..(중략).. 형제는 영원히 평행선을 달리는 열차 궤도라기보다는 한 비나무에 달린 가지나 입과 같다. 비록 삼십미터나 떨어져 있지만 같은 뿌리를 가지고 있고 밤에는 잎을 서로 오므리고 땅으로 뚝뚝 떨어지는 비를 함께 보면서, 나무와 함께 비와 함께 늙어간다. 어찌 아니 좋은가. 읽으며 이쁠것도 미울것도 없지만 나와는 평생의 인연으로 묶여있는 남동생이 떠올랐다. 가슴이 잔잔하게 일렁인다..
주말이라 오랫만에 가족이 모였는데,, 엄마에게 책 이야기를 했다. 시부모는 지극정성으로 모셨지만, 그러느라 정작 당신의 홀어머니에게는 늘 미안하기만 해야 했던 엄마에게.. 룽잉타이의 이야기를 했다. 책읽기를 참 좋아하셨는데, 노안으로 눈이 나빠진 후에는 돋보기를 써도 머리가 아프시다며 책을 멀리하시는 엄마에게 한구절 한구절을 조곤조곤 읽어드렸다.. 엄마의 눈시울이 금새 붉어진다. '추운 겨울에..난롯가에서..따뜻하게 읽고 싶은 이야기네..'하길래 '내가 글자 크게 해서 프린트 해줄께, 엄마 꼭 읽어봐,,정말 좋아.' 하고 말했다. 다른 말 없이도 엄마와 나는 통했다. 그녀의 이야기에 그런 마법이 걸려있다.. 책장 표지에 적힌 어느 언론의 찬사처럼, 그녀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인간으로서 정말 소중히 여겨야 할 것들..그 가치..들이 마음에 들어와 사회의 떠들석한 이슈들도 어느새 곁가지처럼 보이고 만다.
아직 이별할 일 따위는 생각도 할 수 없는 나의 부모님,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내 아이들.. 그들과 이별하게 될때가 언젠가 오겠지..그렇다면 나는 어떨까.. 눈으로 담담히..그러나 깊이..그렇게..그렇게 작별할 수 있을까..
|
|
아련한 슬픔..이라는 건 이런걸 두고 하는말인가 보다. 그러나 이런것이 인생인걸까..결국에는 떠나가는 자식들..홀로 남는 인생의 길..이 책을 읽으면서 멀게만 느껴지면서도 어느새 훌쩍 다가올것만 같은 나의 노년에 대해 나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지.그리고 무엇보다 살아계시는 부모님에 대해 나중이 아닌 바로 지금 잘해드려야겠다는 생각이 아주 절실히 느껴진다. |
|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식 날, 엄마 손을 놓고 교실로 들어가던 아이가 자꾸 자신을 돌아보던 기억이 생생한데 어느덧 아이는 훌쩍 자라 엄마가 손을 잡으려고 하면 기겁을 한다. 아이에게 서운한 마음이 들지만, 자신도 어렸을 때 엄마가 억지로 우산을 미리 챙겨주는 것에 짜증을 냈던 것을 기억하며 멀어져가는 아들의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본다.
오랫동안 병상을 지키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아버지의 관이 화장장으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며, 요양원을 들를 때마다 아버지를 홀로 두고 돌아서야 했던 자신의 모습을 기억하고 마지막으로 아버지와 눈으로 작별을 한다.
저자는 아들의 엄마이자 부모의 자식으로서 여러 모습의 작별을 겪으며 인생의 순리를 받아들이고 그러한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풀어낸다.
'부모와 자식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점차 멀어져가는 서로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며 이별하는 사이가 아닐까.'
나는 아직 부모가 되어본 적도, 부모님이 돌아가시지도 않았지만, 아들과 아버지라는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내며 누구보다 안타까웠을 심정을 차분하게 풀어놓는 작가의 마음에 깊이 감동했다.
이 책을 통해 부모님의 마음을 다 알게 되어 당장 어제와는 다른 좋은 자식이 되지는 않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와 인생에 대한 깨달음은 앞으로의 내 삶에 천천히 그리고 깊은 영향을 미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