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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그물망이 던져져 있어서 그 누구의 어떤 행위라도 무죄일 수 없으며, 반드시 그 결과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p57
죽어가는 세상을 위해 치러내는 외롭고도 위대한 장례식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는 <뒤마 클럽>으로 한국 독자에게 이름을 알리고 있는 스페인 출신 작가 ‘아르투로 페레스-레베르테’의 장편 소설이다.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불린다고 한다. <뒤마 클럽>을 읽어보지는 못했으나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는 작가의 종군 기자 생활 20년 관록이 엿보이는 상당히 내공 있는 책이다. 요즘엔, 이렇듯 일반 직업의 세계에 종사하다가 그 경험을 바탕으로 작가로 데뷔하여 성공하는 사례를 자주 보게 되는 것 같다.
지중해 버려진 망루에서 홀로 전쟁화를 그리는 ‘파울케스’라는 남자가 있다. 그는 젊은 시절 유명한 사진기자로서, 전쟁터를 오가며 인간성이 말살되는 참혹한 현장을 사진으로 담았고, 사진기자로서 성공도 이루었다. 그러나, 자신의 삶에 이정표이자 사랑하던 여인을 취재 현장에서 잃고, 종국에는 종군 기자로서의 삶도 포기하고, 지중해의 한 망루에 칩거하며, 벽에 전쟁화를 그리기 시작한다. 그가 전장에서 목도했던 참혹한 현장을 그림으로 담아내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도 찾아오지 않던 그 망루에 한 크로아티아 남자가 찾아온다. 파울케스가 찍은 사진 한 장으로 자신의 삶이 얽혀버렸다고 주장하는 이 남자는, 자신의 바뀐 운명의 시발점, ‘나비의 날갯짓’인 파울케스를 죽이기 위해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두 남자는 참혹한 전장, 그곳에서 자행되던 고문과 살육, 그리고 인간의 본성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렇다면 당신도 알겠군. 재앙이 닥쳐 인간을 태초의 혼돈 상태로 돌려놓으면 문명의 칠을 덧입고 있던 모든 것은 산산이 부서져버리고, 결국에는 원래의 모습이, 아니 내심 늘 그래왔던 그 형편없는 개망나니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나게 된다는 걸. –p127
책은 마지막, 파울케스가 자신이 겪은 불행에 대해 ‘그 일은 세상에 생명이 존재하게 된 사건과 우주 자체가 존재하게 된 사건만큼이나 평범한 것’으로 담담히 받아들이면서, 새로운 삶에 대한 희망을 보이면서 끝이 난다.
그는 마침내 깨달았다. 바야흐로 그에게 일어나게 될 일은 이미 4억 5천만 년 전의 어떤 일에서 근거했다는 것을. 그 일은 세상에 생명이 존재하게 된 사건과 우주 자체가 존재하게 된 사건만큼이나 평범한 것이었다. 그는 생각했다. 그 누구도, 특히 그는 결코 그 일을 막을 수 없을 거라고. 그러기에는 너무 늦어버렸으니까. –p341
이 책은 주고 받는 두 남자의 대화 속에서, 인간성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책이다.
그리고 책을 읽다보면, 여러면에서 김훈 작가의 <공도무하>를 떠올리게 된다. 20년 이상의 기자 생활 출신 작가라는 점에서도 그렇고, 기자 생활의 산물이 책으로 이어진 것도 그렇다. <공무도하>가 비루하고, 치사하고, 던적스러운 인간에 대한 애가라면,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는 사악하고, 잔인한 인간의 본성에 관한 레퀴엠같다고나 할까.
혹시, 스페인 여행을 할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고야와 프라도 미술관, 피카소에 관한 작가의 솔직한(!!!) 평이 읽을 만 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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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는 참 신기하다.
이제 3권째로 읽는 건데, 검의대가, 남부의 여왕,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이것들이 전부 한 작가가 썼나 싶게 읽을때 마다 분위기나 임팩트가 참 다르다.
전반적으로는 영화를 보듯이 글이 잘 읽히는 것이 장점인데, 검의대가는 펜싱이라는 전혀 관심 없던 장르를, 남부의 대가는 마약 여왕의 인생사(?)를, 그리고, 이 작품은 은근 파울로 코엘료를 연상 시키면서...사진과 그림과 전쟁과 삶에 대해서 다시 한 번 고찰해 볼 수 있는...그런 여운을주어서 읽는 내내, 살짝 침울하기도 하면서도..오락 가락 했다.
나는 종종 옛날 사진을 들춰보다가, 내 옆에 혹은 뒤에 지나가는 옆모습이 찍힌 사람들...지금은 어디서 뭐하고 살고 있을까, 혹은 이렇게 누군가의 사진에 지저분한 뒷배경으로 찍힌 적이 있음을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하나마나한 생각...
종군 기자라고 하면, 내 입장에서..은근 와일드하고 남성적이며 액티하고 은근 지적인...그런 모습이 떠오른다. 목에는 라이카 정도는 걸고 있겠고...폭탄이 투하되거나 총알이 빗발치는 곳을 뛰어 다군니며, 사진을 찍다가..아쉽게 저 세상에 가기도 하겠고, 누군 뉴스 위크같은데 메인포토로 사용할 걸작을 찍기도 하기도 할 것이다. 그리고 그런 종군 기자가 담은 피사체들...
사진 촬영하는 자세에 대한 책은 많이 봤는데, 이 책은 새삼 피사체의 입장에 대해서 생각해 본다. 오직 프레임 안에만 담겨 있으나, 피사체가 그 이후에 어떻게 살았는지...알 길이 없다. 아니, 알 필요가 없지...
훗날 이 책만은 좀 다시 읽어봐야겠다. 내 마음의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덧붙임. 요즘 나의 리뷰는 왜 이렇게 요점 정리를 못하기 길어만 지느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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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로 페레스-레베르트, 이 길고 어려운 이름의 작가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뒤마 클럽>이라는 책 때문이였다. 책 그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으로 인식된다는 평가를 받은 이 작품은 나에겐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다.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고 불리는 그답게 책전체에서 움베르토 에코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1993년 이 책은 발간 당시 유럽에서만 200만 부 이상 팔려나가며 엄청난 인기를 모았고 그 영향으로 로만 폴란스키 감독, 조니 뎁 주연으로 '나인스 게이트'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솔직히 영화는 기대 이하였다. 이 책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는 <뒤마 클럽>과는 다른 분위기의 작품이다. 아무래도 종군기자로 활동을 했던 저자의 경험이 녹아있는 작품이라서 더 그런것 같다. 저자인 아르투로 페레스-레베르트는 1973년부터 1994년까지 20년간 각종 언론매체의 특파원 또는 종군기자로 활동하며 20세기 후반의 주요 국제분쟁과 내전을 취재했다. 그리고 <뒤마 클럽>이 좋은 반응을 얻은 이후 그는 전업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고, 스페인의 아스투리아스상(언론 부문), 온다스상, 프랑스 탐정소설 그랑프리상, 예술 문학 기사상, 장 모네 유럽문학상, 스웨덴 추리소설 부문 한림원상 등 유럽 유수의 문학상들을 수상하며 대중성은 물론 문학성까지 인정을 받게 된다.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로 그는 2008년 발롬브로사 그레고르 폰 레초리 상도 수상하게 된다. 아라에스 협곡에 있는 망루에서 전쟁화를 그리는 안드레스 파울케스의 모습으로 시작을 하는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는 지난 30년간 카메라 셔터 소리와 더불어 종군기자로 활동을 해온 파울케스에게 이보 마르코비츠라는 남자가 찾아오면서 이야기가 진행되기 시작한다. 10여년간 파울케스를 찾아 헤맸다는 마르코비츠는 자신을 유명한 사람으로 만든 파울케스를 꼭 만나봐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날 찾는 이유가 뭐냐고 묻는 파울케스에게 당신을 죽이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자신을 스쳐 지나가던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한 병사의 사진을 찍었을 뿐인데 파울케스는 왜 마르코비츠에게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 것일까.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는 이렇게 두 남자의 기막힌 악연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단 한장의 사진이 불러온 커다란 비극, 그리고 비극의 중심에서 카메라의 셔터를 누르는 예술가. 이 책은 두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전쟁과 예술에 대해서 의미있는 질문을 던진다. 난 이 책을 읽으며 한 사진작가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배고픔에 죽어가는 소녀와 그런 소녀의 죽음을 기다리는 독수리의 모습이 찍힌 한 장의 사진이 공개되었고, 이 사진은 한 사진작가에게 퓰리처상을 안겨준다. 하지만 이 사진은 세계적으로 도덕적 문제를 불러일으켰고 결국 사진작가는 자살을 하고 만다. 지뢰를 밟고 죽은 연인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던 파울케스의 모습과 이 사진작가의 이야기는 어딘가 닮아있다. 전쟁과 예술, 삶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어주는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는 마지막까지 깊은 울림을 선사한다. 두 남자의 기나긴 여정은 어떻게 끝이 날지 꼭 책을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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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궁정화가 프란시스 고야의 판화 전시회에 갔을 때 그의 판화작품이 보여주는 사실성에 깜짝 놀란 적이 있다. 회화작품이 아름다운 풍경화나 멋진 미모의 인물화를 다룬다고 연상한다면 고야의 그림들은 독특한 시도들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역사는 인간성의 발전의 역사이기도 하지만 어떤 면에선 잔혹한 폭력의 역사이기도 했다. 고야의 작품중에 마드리드 수비군의 처형이란 그림을 보니 최근 잔인한 전쟁통에서 횡행된 살벌무도한 행동들이 인간의 역사와 함께 어디에서나 있어왔구나 생각이 든다. 스페인 작가 페레스-레베르떼는 20여년 전장을 누빈 종군기자로 활동한 경력의 소유자다. 실제 작가처럼 소설의 주인공 파울케즈역시 전쟁터에서 30년을 보낸 사진기자였다. 텔레비젼 뉴스에서 폭동의 와중에 쓰러진 한 청년의 숨이 끊어지는 장면이 동영상으로 비쳐지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주변의 사람들은 의료를 요청할 형편도 못되는지 아무런 수습없이 방관하고 있었고 그 동영상을 찍은 누군가도 불쌍한 청년이 숨이 넘어가는 순간에도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는 것이다. 베트남전이나 캄보디아내전 당시 참혹한 민간인 살상 사진도 기억에 남아있다. 울며 맨발의 벌거벗은 여자아이가 걸어가던 사진은 퓰리쳐상도 수상했다고 했다. 30년을 잔학한 살상의 장면과 부상당한 패잔병과 폭탄과 지뢰로 망가진 폐허와 시신들을 찍어온 사람의 마음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그리고 일터에서 만난 여인 올비도를 그 일터에서 잃어버리고 혼자 남아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남자에게 어느 날 ’당신이 찍은 사진 한장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소’라고 하며 찾아온 남자가 있다면 그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섬의 망루에서 섬을 찾은 관광객 무리를 바라보고 가이드아가씨의 낭랑한 목소리를 들으며 멀리 조용한 바다를 응시하다가 하루의 일과로 전쟁화를 묵묵히 그려내는 화가는 그동안 찍어온 모든 사진의 형상을 다시 그림으로 재현해낸다. 이 책 중에 화가가 올비도를 사랑했다는 말은 한마디도 안나온다. 그런데 그가 사진찍기를 관두고 그림그리기를 시작한 것도 그녀를 잃고난 이후였고 자신을 죽이겠다고 찾아온 마르코비츠의 협박속에서 이따금 떠올리는 전장의 모습에 언제나 그녀가 자리하고 있다. 객관적으로 보이기도 하는 그녀에 대한 묘사속에 주인공 파울케즈의 상실감은 축축하게 젖어있다. 그 뒤로 온갖 전쟁터의 잔혹한 영상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마르코비츠의 한 마디, 그녀를 사랑했나요?라는 말에 파울케즈의 올비도에 대한 사랑이 간접적으로 설명된다. 그가 그녀의 주검을 사진으로 남기고 현상액속에서 제일 마지막으로 모습을 드러낸 그녀 귓볼에 매달린 금귀걸이를 보고(최근에 나온 파묵의 새 책에도 주인공이 애인이 남긴 귀걸이 한짝을 간직하는 장면이 나온단다) 저승가는 배삯이라고 생각했을 때 이미 그의 가슴은 찢어지고 없었다. 마르코비츠는 자신의 인생을 파괴한 한 남자를 찾기 위해 정신없이 달려왔지만 그 사진기자역시 자신보다 더하면 더했지 결코 작지 않은 피해자임을 깨달았을 것이다. 책은 한 종군 사진기자의 삶을 통해 인간의 잔혹성과 폭력성의, 무모함과 무의미함을 드러내고 있다. 그가 바다를 헤엄쳐 나아가며 느낀 바닷물의 짠 맛에 섞인 카론에게 건네줄 동전의 구리맛이 어떤 것일까. 이제 그는 마침내 그녀 올비도에게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될까. 그는 파도를 헤치며 더 세차게 팔을 저었을 것이다. |
![]() 해안가 절벽 위의 망루에서 주인공 두사람이 각자의 지나온 일들을 3일동안 나누는 대화 형식의 독특한 이 이야기는 다소 지루할거란 예상과는 달리 낭만적이고 우아한 박물관이나 고대도시를 배경으로 감상에 젖기도하고 한 순간의 진실을 카메라에 담고자 포탄이 빗발치는 전쟁터와 시체들이 널부런진 핏빛 도시들을 넘나들며 이야기가 펼쳐진다.
지중해 작은 마을의 해안가 절벽 망루에서 전직종군기자이자 사진작가인 파울케스가 카메라 대신 붓을 들고 망루 내벽에 거대한 전쟁화를 그리며 살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때론 근처를 산책하는 반복된 일상을 보내던 중 낯선 남자가 그를 찾아온다. 남자의 시선과 맞딱뜨린 파울케스는 두 남자의 만남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예감하게 되고, 수많은 전쟁 중 한순간을 찍었던 그의 사진속의 주인공이였던 남자, 남자가 10여 년간 그를 추적한 끝에 마주하게 된 것이다. 대체 이 두남자에게 무슨일이 있었기에 지금 이 자리에 와있는 걸까?. 그토록 자신을 찾아다닌 이유를 묻는 그에게 “당신을 죽이려고요.”남자는 간단히 대답했다. 하지만 그는 파울케스를 죽이기에 앞서 그가 자신의 사진에 대해 반드시 깨달아야 하는 사실들이 있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한 장의 사진이 한 남자와 그의 가족이 맞게 된 참담한 비극의 출발점이였으며 파울케스를 찾아 복수를 하기위해 갖은 고생도 마다않고 여기까지 오게 되었노라는 남자의 말에 그가 30년 동안 목격해온, 그리고 그의 사진에 담기게 된 다른 사건들에 비해 별반 다르지 않던 한 장의 사진이 남자에게 비극을 몰고올지 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리라 말할 뿐, 파울케스는 남자를 경찰에 신고하거나 그와 싸울 생각도 도망갈 생각도 하지 않는다. 그를 죽이겠다는 남자와 마주 앉아 서로의 생각과 관점, 지나온 이야기들을 마치 오래 알고 있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한다. 파울케스는 그가 사진을 찍으며 카메라렌즈 너머의 피사체들을 아무 느낌없이 바라본다고 그래야만 오롯이 찍는 이의 감정이 배제된 그대로의 모습을 담을 수 있노라 답한다. 죽는 순간까지 사랑한 유일한 여인 올비도가 그를 사랑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남자가 꺼내 놓은 파울케스의 낡은 사진첩의 사진들을 통해 소말리아 내전, 레바논, 걸프 만, 구 유고슬라비아에서의 인종청소 이르기까지 죽음을 목전에 둔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과 전쟁의 참혹한 실상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진으로 찰라의 순간을 찍으며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담기위해 평생을 전쟁터를 누비던 파울케스, 그러나 그는 지금 어째서 카메라대신 붓을 잡고 전쟁터대신 전쟁화를 선택하게 된 것인가? 사랑했던 여인 올비도가 죽는 순간에도 셔터를 눌렀던 그는사진속에서 무엇을 발견했으며 그 사진만을 아무에게도 공개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남자는 파울케스에게 끊임없이 질문한다. 왜? 왜? 왜? 그리고 질문들에 담담히 대답하는 파울케스, 나 또한 묻고 싶은게 많다. 그가 하필이면 무너져가는 망루의 벽에 전쟁화를 그리고 있는지, 그토록 복수를 다짐하며 찾아 헤메던 사람을 앞에두고 남자는 왜 그를 죽이는것을 단념했는지.
모든 이야기를 마친 후 벽화 앞에 다시 선 파울케스와 남자. 약을 복용하는 그의 생은 얼마남지 않았지만 그는 할일을 모두 마쳤고 후회도 없다. 그렇다면 그림은 파울케스가 과거의 잘못에 대한 후회나 보상으로 그린 것인가, 아니며 그가 직접 목격한 사진에 미쳐 담지 못한 전쟁을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을까. 전쟁화는 전쟁이라는 극한 상황하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인간의 모습을 나름대로 정리한 그의 마지막 작품이란 생각이 든다.
“저마다 자신이 그려야 할 게 따로 있으니까. 자신이 봤던 것, 자신이 현재 보고 있는 것들 말이오.” -246쪽 평범한 일상, 특별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아도 마지막까지 긴장을 늦출 수 없게 만드는 것은 두 사람의 대화 중 무심코 한 말 한 마디, 한 장의 사진, 벽화를 그리기위해 보아왔던 유명한 화가들의 많은 전쟁 그림들이 우리에게 끊임없이 무엇이 진실인지 생각하게 한다. 작가는 죽음과 인간의 모습을 벽화속에 담고 그것을 두 남자의 대화를 통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며 우리가 스스로 깨닫길 바라는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방식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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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베르토 에코류의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라고 할 정도로 읽어 보았을 작가 중 한명이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일 것이다.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 불리는 작가답게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뒤마 클럽』, 『검의 대가』 같은 작품을 본다면 이 작가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에 있음직한 큰 줄기의 이야기에 살을 붙여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들어 가는 것이 기존의 방식이었다면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는 기존의 것들과는 상당히 다른 느낌을 가진다.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건도 없을 뿐 아니라 둘의 대화만으로 이끌어 가는 구성 역시 기존 작품들과 다른 독특한 느낌을 준다. 종군 기자, 내전이나 국제 분쟁 관련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자신이 정말 하고 싶은 인간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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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반영하고 있어서 더 신뢰가 간다. 작가 스스로가 종군 기자였고 그런 경험들을 바탕으로 해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종군 기자들은 자신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약한 자들을 위해서 사회고발을 위한 전쟁 참상을 고발하는 의미에서 위험한 전쟁터 속에서 사진을 찍을 것이다. 그런 사진 기자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은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그것이 다른 의미에서는 또 다른 위험을 초래할수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종군사진가로 활동했던 안드레스는 같은 일을 하던 사랑하던 여인이 죽은이후 더 이상 사진을 찍지 않고 그림으로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삶을 살아간다. 지중해의 버려진 망루에서 홀로 그림을 그리며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도 끊은채 기본적인 생활만을 하면서 살아간다. 전쟁의 아픔, 잔혹상들을 예술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날 군이있던 그리고 전쟁포로로 죽을 위기에 놓여있었던 한 남자가 찾아오게 된다. 안드레스는 갑작스러운 한 남자의 방문을 반기지 안았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삶가운데 그로 인한 삶의 재발견을 하게 된다. 종군사진가로서 목숨의 위태함을 겪으면서 찍은 사진 한장이 원인을 제공한 것이다.
작가는 자신이 겪었던 삶을 자신의 작품들속에 녹여내고 있다. 자신의 지나온 삶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그의 지나온 삶이 더 나은 세계로 나아가는 열쇠를 쥐고 있다는 것을 알수 있다. 우리의 삶 역시 살아온 그 삶이 미래의 삶을 향상시킬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의 지나온 삶이 우리에게 인생의 새로운 키를 제공하듯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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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로 페레스 - 레베르테. 스페인의 유명한 소설가. 하지만 국내에서 열광적으로 유명한 작가는 아닌 것 같습니다. 제가 이 작가를 처음 접한 것은 한 10년쯤 전인데 제목만으로 구입해서 읽어봤던 '플랑드르 거장의 그림' 제목과 달리 체스로 얽혀있는 이야기였습니다. 이후로 다시 펴보지 않았기 때문에 잘 기억나지는 않지만 문장력은 깔끔하면서 가볍지 않은 작가라고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뒤마클럽'으로 유명한 작가라는 얘기는 있었고 '스페인의 움베르토 에코'라는 찬사와 유럽에서 200만부 이상 팔린 책의 작가이기도 해서 신인작가는 아니었습니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작가로, 여러 유럽 유수의 문학상들을 수상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 왠지 사연이 있을 것 같은 제목인데 이 작가의 소설이 아니었더라면 아마 보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제목은 그 소설을 읽게 하는 아주 중요한 부분이 되지만, 반대로 제목이 마음에 안든다고 해도 작가의 필력에 대한 신뢰가 있으면 선택하게 되는 면도 있는 것 같습니다. 제목처럼 벽화로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인 파울케스가 주인공입니다. 지중해가 보이는 푸에르토 움브리아 항구의 망루에서 그는 머뭅니다. 시니컬한 듯한 파울케스는 화가가 그림을 그린다는 느낌보다는 무언가에 쫓기듯, 그림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그림을 그려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 그에게 한 명의 방문자가 찾아옵니다. 크로아티아인 이보 마르코비츠. 그는 파울케스가 찍어서 상을 받았던 군인이었습니다. 그는 파울케스를 죽이기 위해 그를 연구하고 뒷조사하고 찾아왔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남의 이야기를 하듯, 3인칭으로 자신에게 일어난 이야기를 합니다. 과거 유고슬로비아에서 일어난 인종청소. 세르비아인 부인을 갖은 이보 마르코비츠는 그것으로 부인과 아들이 잔인하게 살해 당하고 자신도 전쟁에, 포로로, 고문 당했던 일들을 이야기 합니다. 그것이 파울케스가 찍은 사진으로 인해서, 그는 알지 못했지만 자신의 인생이 파멸되어 버린.. 마치 나비효과와도 같은 그 일에 대해 담담히 얘기합니다. 그러나 그는 분노로 가득 차 살의를 품고 달려들어 지금 당장 죽이겠다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 종군 사진 기자 파울케스를 연구하고 또 연구해 왔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그토록 많은 상을 받았던 대단한 사진사가 사진을 그만두고 종적을 감춘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하고 죽이기 전에 그에 대해 더 알아보고자 합니다. 그런 파울케스가 그리는 벽화는 조금 이상합니다. 그가 왜 갑자기 벽화를 그리는지, 그것도 잔인한 전쟁화인지에 대해 파울케스의 회상과 이보 마르코비츠의 대화를 통해 점점 밝혀집니다. 단 두 사람의 대화로 작가는 전쟁과 사진과 그림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피력합니다. 너무 생생한 종군 기자의 삶에 대해 이토록 자세히 서술하는 것은 가능할 것 같지 않아서 이력을 보니 역시 종군 기자 출신이네요. 단순한 취재로는 그 정도로 써낼 수는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사진은 한 장면을 담아냅니다. 그림은 화가 자신의 철학이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그 두가지를 비교하자면, 사진은 진실한 것 같고 객관적이며 그림은 주관적이고 사실적이지 않습니다. 이것이 일반적인 사진과 그림에 대한 생각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작가는 이 소설과 파울케스의 삶을 통해서 사진은 진실하지 않고 예술가만이, 그림이 진실하다고 얘기합니다. 이는 사진과 그림에 대해서 정의를 내리고자 하는 문자적인 진실은 아닙니다. 그들의 - 파울케스와 올비도의 삶에서 내려진 정의입니다. 올비도는 파울케스의 회상을 통해서 등장하는 예전 여자친구입니다. 모델도 했었고 집안이 유명한 예술 관련 집안이라 그녀 또한 그림에 대한 안목이 탁월합니다. 그녀는 사진, 특히 인물 사진을 싫어합니다. 모델로써 꾸며진 사진을 찍어왔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오직 흑백으로 사물만을 찍어댑니다. 그리고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폐허가 가득한 사진만을 담아냅니다. 어떤 조작도 하지 않은 그저 그곳에 있는 그 흔적만을 찍습니다. 올비도의 이야기보다 이보 마르코비츠와의 대화 속에서 그들이 생각하는 사진에 관한 정의를 더 깨달을 수 있습니다. 전쟁에서 찍는 인물 사진. 파울케스가 어느 사진을 찍기 위해 군인에게 협조를 부탁합니다. 그 때 그 군인은 사진에 찍히기 위해 지금 죽이지 않아도 될 사람마저 죽인 것은 아니냐는 물음을 던집니다. 그러나 파울케스는 이 모든 것이 나의 개입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는 거대한 체스 판에 놓여진 체스 말처럼 움직여지는 것 뿐이라 이야기 합니다. 한 군인은 자신에게 사진을 찍게 해주고 나서 며칠 전에 지나갔던 기자가 아니냐는 얘기를 하면서 자신이 그것을 아는 이유는 당신을 죽일지 말지 했던 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들은 그저 죽이느냐 마느냐가 어떤 순간적인 감정이나 생각에 좌우되는 것 뿐이라고, 그 모든 것이 논리적인 누군가의 개입의 문제가 아니라 마치 결정지어졌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파울케스는 이야기 합니다. 그의 말은 이보 마르코비츠의 인생을 파멸시킨 것이 자신의 사진으로부터 였을지라도 자신에게 그 책임이 없다는 회피가 아님을 이보 마르코비츠도, 글을 읽어온 독자도 알게됩니다. 인간은, 자연은 잔인하다. 전쟁은 그것을 더욱 극대화시킨다. 어떻게 보면 파울케스는 전쟁은 절대적으로 안된다고 주장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의 그림은 잔인하고 고통스러운 전쟁의 모습들을 한데얽혀놓고 그림으로써 화산이 강하게 용암을 분출시켜 그것이 모든 것을 덮듯 인생은 그러한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그 원래대로 악한 인간은 그 화산처럼 악하고 그것이 얽히고 설켜서 인생을, 역사를 만들고 벽의 균열이 그 그림을 덮고 있듯 그렇게 인생에 균열이 덮어져 점점 암흑을 만들고 무너져간다는 것이 이 전쟁화의 포인트인 것 같습니다. 사진사로써 전쟁을 찍어왔던 파울케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자신의 본성을 알게되고 견딜 수 없었던 그는 마지막으로 올비도의 이야기처럼 그림을 그립니다. 자신이 사진으로써 완성할 수 없었던 그 무언가의 진실을 그림으로 완성해냅니다. 인간은 악한가, 전쟁은 잔인한가 그런 처절하게도 추악한 것에 대해 그는 평가하지 않습니다. 그저 사진기를 들여다보고 그 순간을 찍었던 것처럼 자신의 감정이나 주관을 써서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존재해왔던 23개의 전쟁화와 자신이 전쟁터에서 찍어왔던 사람들의 모습을 벽화로 담아냈습니다. 누군가를 잃고, 자신을 잃고, 누군가를 잃게 했던 것에 오열하고 절망하는 것 대신에 자신 또한 그 잔인한 인간이었다는 것을, 어떤 잔인한 체스판의 말임을 온 몸으로 받아들여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한 벽화가 아니라, 자신은 이것을 그렸고 이 망루가 언젠가는 무너질 것이며 그것으로 되었다는.. 그 모습이 그의 그런 인생이 더더욱 슬퍼서 아무것도 아닌, 슬프지 않은 문장에 눈물을 흘리게 되었습니다. 쉽는 않은 소설입니다. 그렇지만 어려운 소설도 아닙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하며, 많은 여운을 남깁니다. 별 5개 매겨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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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레스 파울케스는 한 때 종군 사진기자로 활약했지만 어떤일에 휘말리면서 화가로 전향한다. 진실성을 해치지 않는 방법을 찾은 그는 지중해 연안의 한 망루에서 전쟁벽화를 그리고 있었다. 그가 종군 사진기자로 활약할 때 찍은 사진 한 장이 상을 타게되었고, 그 사진에 찍힌 크로아티아 민병대원이었던 마르코비츠라는 사람이 그를 찾아오게 된다. 파울케스가 상을 탔던 사진 한장으로 인해 마르코비츠는 온갖 고초를 겪게되고, 도중에 사랑스러운 가족까지 잃게 된다. 그래서 파울케스를 죽이러 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책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에 등장하는 인물은 세 사람이다.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전쟁터를 직업으로 삼았던 종군 사진기자 출신인 파울케스, 파울케스가 찍은 한 장의 사진으로 인해 인생이 달라진 마르코비츠, 파울케스를 사랑하고 그 선택때문에 전쟁터에서 지뢰를 밟아 죽는 올비도..
이 책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는 우연이 중첩되어 필연으로 이어지는 맥락이며, 사소한 일이 큰 일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작가인 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는 1973년부터 1994년까지 20년여간 종군 기자 및 특파원으로 활동하며, 많은 국제분쟁과 내전을 취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전쟁을 다루는 이야기들이 구체적이고도 사실감이 있으며, 회상 장면들은 아주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사진을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 살인자와 피해자라는 대칭적인 관계인 두 남자에 의해 그려지는 구조와 사실들. 그것들이 다시 다양하게 연결되어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실의 가혹함은 더 잔인하게 느껴졌다. 얼마나 사람들이 잔인할 수 있으며, 전쟁이라는 것이 하나의 거대한 감정의 소용돌이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수가 없었다. 다양한 사람들의 감정으로 점철된 한 장의 사진이며, 그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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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투로 페레스 레베르테〉는『뒤마클럽』, 『알라트리스테 시리즈』 등으로 잘 알려진, 미스터리, 역사, 모험 소설 작가지만, 최근작 『전쟁화를 그리는 화가』는 일단 넓은 범주에서는 미스터리에 들어간다고 해도, 그 맛은 거의 순수 문학이다. 차분하게 그려넣어진 세계는 결코 설렁설렁 읽을 만한 것이 아니고, 독자의 문학관이나 가치관을 시험하는 듯한 중후함이 있다. 게다가 주요인물은 왠걸, 고작 세 명. 그런데도 지루하거나 어렵지 않게 잘 읽히기 때문에 대단한. 전직 카메라맨이었던 화가 ‘파울케스’가 지중해가 보이는 망루에서 전쟁화를 그리는데 몰입하고 있으면, 한 남자가 나타나 10년전의 구 유고 분쟁 중에 찍은 한 장의 사진을 화제에 올린다. 파울케스에게는 카메라맨으로서의 명성을 가져다 준 사진이지만, 사진의 주인공, 크로아티아 민병대 소속이던 남자 ‘마르코비츠’에게는 고문과 비극을 연쇄적으로 몰고왔다. 남자가 찾아온 목적은 파울케스를 죽이기 위해서. 도대체 왜 그렇게까지 증오하고 있는지, 과연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두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 그 진상이 떠오른다. 거기에 가로놓여 있는 것이 파울케스의 연인이었던 ‘올비도로’. 파울케스는 그녀와의 3년간의 생활을 회상하면서 천천히 수수께끼의 핵심, 과거의 어느 시점을 향해 다가간다. 놀라운 것은 전쟁과 관련한 고찰이다. 레베르테 자신, 전쟁 기자로서 21년 경력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그 전쟁론은 극히 구체적이고 사실적이다. 저자는 소설속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예전에 누군가가 솜씨좋은 사진가라면 어떤 대상이든 잘 찍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는데, 파울케스가 보기에 그는 전장에 한번도 나가보지 않은 사람이 틀림없었다. 위험성과 죄책감 같은 것은 도저히 사진 속에 담아낼 수가 없었다. 두개골을 관통하는 총알 소리도, 총검으로 임신한 여자의 태아를 끄집어내 여안인지 남아인지 맞추는 내기에서 이겨 담배 일곱개비를 차지한 남자가 신이나서 웃어대는 소리도 담아낼수 없었다. _ 온통 먼지로 뒤덮인 시신의 처연한 고독. 그 누구도 나서서 시신의 먼지를 털어주지 않는다.” 비참하고 냉혹하고, 잔혹한 지성과 광기에 물들여진 전쟁의 현실을 담담히 이야기 해 나간다. 그것들이 연결되서 한 장의 그림으로 그려져 가는 과정에는 비할 데 없는 긴장감이 감돈다. 카메라맨과 피사체, 살인자와 피해자라는 대칭적인 관계에 놓여있는 두 남자에 의해 그려지는 전쟁의 구조와 여러가지 사정들. 그것들이 다시 다양한 선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이야기의 마지막에 밝혀지는 진실의 잔혹함은 한층 더 두드러진다. 그런 추상적인 재미를 제외해도, 이 책에는 전장에서 죽이는 사람, 죽어가는 사람을 눈앞에 두고 셔터를 누르는 행위의 의의에 대한 지극히 흥미로운 사색으로 가득 차 있다. 촬영자와 피사체의 관계, 나아가서는 현실과 픽션의 관계, 지식과 감정의 끝에 있어야 할 것을 보여주는 작품으로서는 더 이상의 것은 좀처럼 보기 힘든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의 멋진 이야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