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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인간들』은 두 사람의 대담을 마련한 이 책의 기획자가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꿈과 모험을 점점 잃어가고 있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 불꽃같은 삶의 자세와 지표가 무엇인지를 제시해 준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성서(聖書)일 수는 없다. 책을 읽다 보면 때로 한 사람은 너무 달콤하고 한 사람은 너무 시니컬 하게 보인다. 그들의 이상주의가 근본적인 문제해결과는 동떨어진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쿠슈네의 경우 “한 백인남자가 흑인 어린이들의 접시에 음식을 담고 있는 모습은 어쩐지 식민지 지배자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미쇼-슈브리)는 독설을 들을만한 혐의가 없지도 않다. 그러나 두 사람의 말에 간혹 동의할 수 없는 기분이 들더라도 그들의 사상과 철학은 책상 앞에서 만들어진 공허한 이론이 아니라 온 몸을 내던진 치열한 삶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거부할 수 없는 힘을 갖는다.
피에르신부는 말한다. “사랑하는 것, 그것은 타인의 기쁨을 보고 함께 행복을 느끼는 것”이라고. 그는 덧 붙인다. “나는 행복해지고 싶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실패하지 않는 유일한 방법은 너의 기쁨이 내 기쁨이 되게끔 나의 기쁨을 너의 기쁨이라 생가하고, 또 모두의 기쁨에 우리의 기쁨을 동참시키는 것이라네. 왜냐하면 그 원동력이 바로 「나는 행복해 지고 싶다」는 것이니까 말이야”무신론자 쿠시네는 “우리 인간에게는 이기적인 자아만족이 있고 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타인에게 관심을 갖는다. 인간이 선행에서 느끼는 기쁨은 일종의 우월감이나 자기과시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일 것”이라고 주장하면서도 “어쨌든 타인의 고통은 단지 그들만의 고통으로 끝날 것이 아니라, 내가 뛰어들어야 할 일”이라고 말한다. 마취도 하지 않고 팔 다리를 절단해야만 했던 부상자들, 죽어가는 여인들, 팔다리가 삐쩍 마르고 배가 불쑥 나온 아이들을 보며 그들을 구할 수 없는 속수무책의 상황에 절망한 그는 (편안하게 사는 사람들을 향해)소리친다. “이 땅에 태어나 산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당신들은 얼마나 운이 좋은 사람들인지 몰라요. 그러니 당신들은 무슨 일이든 더 열심히 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라고.
신의 존재와 인간의 구원문제, 오늘날 인류가 처한 공통의 문제와 진정한 인도주의의 나아갈 길 등에 대해 견해의 차이를 보이면서도 두 사람은 궁극적으로 일치한다. 고통받는 이웃을 위해 분노하고 행동한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형제」이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일하고 있지만 두 사람의 의도는 같은 것이다. 참여하고 개입하고 행동하기 위해 피에르신부는 국회의원직을 맡기도 했고 쿠쉬네는 프랑스 정부의 장관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두 사람은 사이좋게 『인도주의자의 계명』을 정리하며 대화를 끝맺는다. 올바르게 분노하고 고집스럽게 밀고 나갈 것, 모든 사람을 한꺼번에 구할 해결책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한사람이라도 먼저 도울 것, 도울 사람을 좌파니 우파니 하고 분리하지 말 것, 말과 행동을 일치시킬 것, 미리 갈등과 문제점을 예방할 것, 언제나 현장으로 달려갈 것 등을 쿠쉬네는 인도주의자가 지켜야 할 계율로 열거한다. 이에 대해 피에르 신부는 그의 계명이 모두 “우리 마음을 밝혀 주는 단 하나의 계명, 즉 「서로 사랑하라」에서 나온 것”이라고 너그럽게 추인(追認)한다. <성자>(피에르)와 <투사>(쿠슈네)사이에서 오락가락 하던 저울추가 어느 한쪽에 머무르지만은 않는다는 점에서도 이 책의 묘미가 있다.투사>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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