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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이 아닌 국익을 위해 개혁을 주도한 소현세자의 삶의 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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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이 아닌 국익을 위해 개혁을 주도한 소현세자의 삶의 자취!!   솔직히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역사 속의 소현세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인지라 소현세자의 삶에 대해 알고 싶다기보다 그가 도대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지금 시기에 이런 평가를 다시금 받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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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이 아닌 국익을 위해 개혁을 주도한 소현세자의 삶의 자취!!

 

솔직히 이 책을 접하기 전에는 역사 속의 소현세자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인지라 소현세자의 삶에 대해 알고 싶다기보다 그가 도대체 누구이며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지금 시기에 이런 평가를 다시금 받는 것인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는 하지만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들이 대부분이었던지라 역사속의 또 다른 인물인 소현세자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이 참 즐거웠던 시간이었다.

 

얼마전 남한산성이라는 소설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혔었다. 그러면서 나도 읽게 되었었고 인조와 청나라와 명나라의 관계에 대해 조금은 알았으며 약소국으로 얼마나 치욕적인 삶을 살았는지에 대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약소국이라면 시대와 상황에 대한 대처기술이 뛰어나야 하며 사대부적인 생각에 갖혀서 산다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남한산성의 사건이 그냥 있어진 것이 아니라 사대부적인 생각에 갖혀있던 왕과 선비들이 명이 멸망하고 청으로 실세가 옮겨진 줄도 모르고 무조건적인 사대주의만 울부짖다가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은 아닐까싶다.

 

인조의 아들로 세자였던 소현세자는 무척이나 트인 생각을 가지고 살던 인물이었다. 물론 소현세자도 조선의 세자로서 사대주의적인 생각을 가지고 살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그는 남한산성에서 임금을 포로로 데려가는 것이 아닌 자신이 스스로 자처하여 백성과 조선이라는 나라를 위하여 포로가 되었으며 청나라에 가게 된 것이다.

 

하지만 순간 처세술이 능통하며 어떻게든 조선을 위해 살고자 했던 그는 포로가 된 후에도 그곳에서 학문에 힘썼다. 약소국의 설움을 이겨내고자 함도 있었겠지만 후일을 기약하고자 했다는 편이 옳을 것이다. 그곳에서 소현세자는 많은 것을 보고 들으며 그 당시 조선이 처한 상황을 살피고 서구 문명을 받아들였다. 그는 해외 선교사와도 만남을 가졌고 꾸준한 연락을 했다. 그들이 가진 문명은 조선보다 훨씬 앞선 것이어서 그들을 통해서 조선의 발전에 막대한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라 믿었던 것이었다.

 

소현세자는 청나라에서 꽤나 신뢰를 받았었고 다음 왕으로 지목된 것도 지목된 것이었지만 인조가 아닌 그를 왕으로 앉히고자 했음도 있었다. 하지만 인조에게 꽤나 마음을 두는 후궁이 악녀(?)였음이 문제였으리라. 인조 또한 자식에 대한 사랑. 부정보다는 권력욕에 대한 것이 더욱 컸던지라 결국 인조는 자신의 아들일 사지로 몰아넣고 둘째아들을 세자로 책봉하여 다음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

 

무엇이 인조를 그리도 박정한 부친으로 만들었을까. 단지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살날이 얼마남지 않았던 그가 소설에서처럼 아들을 사지로 몰아넣었던 것일까? 그것만은 아니리라 본다. 인조와 관계된 측근들의 막대한 입깁이 있었으리라. 역사를 살펴보다보면 왕이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사건을 한번씩 보게 된다. 그럴때마다 느껴지는 것은 그리도 권력이 좋은 것일까라는 물음이다. 권력이라는 것이 당연히 좋은 것이기는 하다. 하지만 행복의 필수조건에 권력이 들어가는 것은 아닐텐데 막연히 권력만 따라가는 삶을 살았던 것이 아닐까... 사람에 따라 행복의 조건은 달라지겠지만 역사속에서 왕들과 그와 함께한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뿌듯함보다는 쓰라림이 더욱 컸던 듯 싶다.

 

만일 소현세자가 인조의 왕권을 무너뜨리고 왕이 되었다면 조선에는 어떤 바람이 불게 되었을까?.. 그가 왕이 되었다면 서구의 사상과 문물이 조선에 조금 더 일찍 도입되지 않았을까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비운의 세자. 소현세자. 그는 마지막 죽음의 길을 걸으면서도 부친인 인조를 믿었지만 배신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어찌 인조 한 사람의 잘못으로만 판단할 수 있을 것인가.

s******g 2008.06.2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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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안타깝게 느껴진 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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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심혈을 기울린 소설을 아들의 손으로 편찬되었다는 이책 [소현세자] 두 부자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한다. 특히 인조대왕과 소현세자의 관계를 알아가면서 더욱더 다시 보게 되는 부자간의 관계는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겪을 수있다.   무력을 사용하여 반정을 꾀해 임금이 된 인조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청에 대한 어쩔수 없이 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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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심혈을 기울린 소설을 아들의 손으로 편찬되었다는 이책 [소현세자]

두 부자의 모습을 보면서 깊은 애정을 느끼게 한다.

특히 인조대왕과 소현세자의 관계를 알아가면서 더욱더 다시 보게 되는 부자간의 관계는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들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겪을 수있다.

 

무력을 사용하여 반정을 꾀해 임금이 된 인조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청에 대한 어쩔수 없이 무릎을 꿇고 세자를 볼모로 보내야 했던 인조의 모습에서 예전에 연민의 정을 느껴던 적이 있었다.

백성을 생각하여 자신의 볼모로 가겠다고 자청을 했던 소현세자

그리고 청과의 외교 일선에서 어떻게든 국익을 생각하고 백성을 아끼면서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에 과감했던 소현세자

하지만 자신이 반정을 꾀해 임금이 되어서인지 아버지인 인조는 그런 아들에 대해 위협감을 느낀다.

후궁의 손에 놀아나는 인조는 세자를 살해하는 존속살인을 하게 된다.

조선 의문의 살인사건중의 하나인 소현세자의 죽음을 접하면서 섬뜩하기도 하고 안타깝기 그지 없었다.

서양의 새로운 문물과 과학기술, 그리고 천주교의 접근들은 일찍이 우리의 나라에 선진문명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기회였음이 아쉽다.

어떻게 아버지가 자신의 아들을 그것도 세자의 자리에 있는 이를 살해할수 있었는지 정말 이해가 안된다.

권력의 눈이 정말 무섭기만 하다.

 

우리의 역사를 만나다 보면 정말 뛰어난 인물들이 주변의 오해와 곡해로 엉뚱하게 흘러버리는 경우가 제일 안타깝게 느껴진다.

만약 그때 당시에 좀 더 좋은 상황으로 흘러갔더라면 지금의 실정에 많은 차이가 있었을 텐데.....

현재도 마찬가지지만 좀더 서로간에 오해없이 융화되는 역사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란 생각을 해본다.

 

h****t 2008.06.30.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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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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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는 16대 왕 인조의 장남이자 17대 왕 효종의 형이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 세자를 볼모로 데려가는 문제로 강화조약이 무산되었을 때 자진하여 아우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의 인질로 가게 된 불운의 왕세자이다.  인조 23년 음력 4월 청나라에서 돌아온 후 두통과 오한의 감기증상으로 내의원 진맥을 받게 되고, 내의원 뒤의 정치적 음모에 의해서 학질이라는 병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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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는 16대 왕 인조의 장남이자 17대 왕 효종의 형이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날 때 세자를 볼모로 데려가는 문제로 강화조약이 무산되었을 때 자진하여 아우 봉림대군과 함께 청나라의 인질로 가게 된 불운의 왕세자이다.

 인조 23년 음력 4월 청나라에서 돌아온 후 두통과 오한의 감기증상으로 내의원 진맥을 받게 되고, 내의원 뒤의 정치적 음모에 의해서 학질이라는 병명과 함께 사망함으로써 독살된 것으로 이 소설은 시작하고 있다. 인조실록에서도  "세자가 심양에 있을 때에 집을 지어 단청을 하고 포로된 조선 사람들을 모아 밭을 일구어 곡식을 쌓아 놓고 진기한 물건들은 사들여 세자가 머무는 관소가 시장과 같았다. 임금이 이를 듣고 좋아하지 않았다. 임금이 총애하는 궁녀 조소용(귀인 조씨)이 예전부터 세자와 세자빈을 미워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임금 앞에서 세자빈이 임금을 저주했다거나 몹쓸 말을 했다는 따위로 헐뜯었다. 세자는 환국한 지 얼마 안 돼 병을 얻었고, 병을 얻은 지 며칠 만에 죽었다. 시체는 온몸이 새까맣고 뱃속에서는 피가 쏟아졌다. 검은 천으로 죽은 세자의 얼굴 반을 덮어서 옆에서 모시던 사람도 알아보지 못했다. 낯빛은 중독된 사람과 같았는데 외부의 사람은 아무도 아는 이가 없었다. 임금도 이를 알지 못했다. 다만 그때 종실인 진원군 이세완이 그의 아내가 인조의 전비인 인렬왕후의 동생인 관계로 염습에 참여해 그 광경을 보고 나와서 남에게 말한 것이다." 라고 기술되어 있어 독살설이 근거있어 보인다.
이후 소현세자의 주변 세력과 세자빈 강씨의 친정 오빠들을 모두 귀양보내고 마지막 남은 세자빈마저 사약을 내려 죽게 할 뿐 아니라 소현세자의 두 아들도 제주도로 귀양을 보내 죽게 하고, 나머지 셋째아들은 귀양지에서 겨우 목숨을 연명하게 하는 등 모든 가족을 잃게 되기까지 희생당하게 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혼란스러운 조선의 상황에서 소현세자는 현실과 동떨어진 명분을 접고 실질적이고 실용적인 노선을 주도해 나가려 하였다. 그래서 소현세자가 왕위를 계승하였더라면 조선의 역사가 많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들 할 것 같다. 하지만  자신의 아들을 진실되게 사랑하지 못하고 숭명대의에 어긋나는 청과 우호적이었던 소현세자를 적으로만 여겼던 인조, 인조의 후궁 조씨의 질투심, 자신의 위치를 이용하여 조선정치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었던 정명수라는 역관 등 여러가지 상황으로 소현세자의 뜻은 이루지 못한 것이다.

 진정한 선구자였고 개혁자였던 소현세자를 책으로 만날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b******0 2008.06.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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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움 가득한 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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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언제부터인가 왕이 되었음 참 좋았을 왕세자란 말을 듣게 되어 흥미가 생겨 검색 등으로 소현세자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다. (이덕일님의 조선왕 독살사건에도 언급되셨던 분이죠..ㅎ)짧게 이야기하면 외국에 대해 열려있는.. 그리고 광해군처럼 청에대해 실리있는 외교를 했지만 오히려 고국에 돌아와 2달만에 의문사..(전 독살이라 생각해요..)했던 비운의 왕세자란 타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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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언제부터인가 왕이 되었음 참 좋았을 왕세자란 말을 듣게 되어 흥미가 생겨 검색 등으로 소현세자에 대해 알아본 적이 있다. (이덕일님의 조선왕 독살사건에도 언급되셨던 분이죠..ㅎ)
짧게 이야기하면 외국에 대해 열려있는.. 그리고 광해군처럼 청에대해 실리있는 외교를 했지만 오히려 고국에 돌아와 2달만에 의문사..(전 독살이라 생각해요..)했던 비운의 왕세자란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세자다.

 

책은 소현세자의 학질 (사실 감환이었지만..)의 소견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부터 시작되어 남한산성에서의 전투..그리고 삼전도 치욕의 장면까지 숨가쁘게 이어진다. 얼마전 읽었던 남한산성이 다소 어둡고 무거웠다면 소현세자에서는 전쟁을 경험하는 사람보단 인조와 세자..그리고 지휘관의 입장이다 보니 빠르게 전개가 되었고 그 와중에 세자가 느낀 감정들이 적게 나와 아쉬운 부분도 있었다.
항복과 항전이라는 답이 없는 싸움에 조정이 싸우고 있을때 소현세자 스스로 성을 나가겠다는 뜻을 전하면서 결국 삼전도 치욕이라는 (인조 스스로 야기했지만..) 결과와 함께 소현세자, 봉림대군(효종)은 청나라의 수도 심양관에서 생활하게 된다.

 

예전에 똑같이 청에 있었는데 왜 소현세자와 봉림대군의 청을 대하는 태도가 다를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이 책에선 소현세자의 경우 세자여서 명이 함락하는 순간에 그 자리에 있었다는 점과 주청 대사관과 비슷한 역활을 하며 광해군과 같은 실리적인 외교를 습득하며 자연스레 청이나 외교문물에 개방적이 된 반면 봉림대군의 경우 (소현세자에선 봉림대군의 행적을 찾을 순 없지만..) 종군같은 큰 일 외엔 심양관에 갇혀 있다보니 힘이 없고 청에 대한 반감을 가지게 된 것 같다.
이러다 보니 권력욕의 화신인 인조는 소용조씨의 이간질로 소현세자를 의심하게 되고, 이런 사실을 몰랐던 소현세자는 세자빈의 일로 잠시 귀국 후 다시 심양관으로 돌아가는 도중 과거 비슷한 시험을 본 후 다시 청으로 들어간다. 아마 내 생각엔 이런 일이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지 않았나 싶다. (소현세자가 세자빈의 이야기에 조금 더 귀기울려 듣고 조심을 하였다면.. 이란 아쉬움이 남는다. )

 

명을 항복시키는 그 중심에 있었던 소현세자는 70여일간 북경에 있으면서 아담샬을 만나 서양 문물이나 천주교를 접하게 되고 영구 귀국을 하면서 아담 샬의 선물과 세례를 받은 천주교인들과 귀국하게 된다. (이 또한 인조의 눈엔 청으로 돌아섰다고 생각할만한 일이었다.)
결국 소현세자는 자신의 뜻을 펼쳐보기도 전인 귀국 두달만에 학질에 걸리고 발병 4일만에 급사하게 된다. 한 나라의 세자가 학질이란 가벼운 병에 걸려 침을 맞고 3일 만에 죽었고 그 죽은 모습이나 그 어의에게 별다른 죄를 묻지 않았던 점 등이 인조가 소현세자를 죽이지 않았나 싶다.

 

나에겐 일찍 가버린 소현세자의 안타까움과 더불어 인조의 권력욕에 넌더리가 난다. 실리적 외교를 펼치던 광해군을 끌어내리고 결국 자기가 왕이 된 시점부터 인조의 권력욕은 잘 드러난다. 하물며 자신의 아들이 왕의 자리를 넘본다는 생각에 죽이기까지 하다니.. 인조가 무섭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단 생각이 든다.
또, 일본이 페리제독에 의해 개국한 시기보다 200년 가량이 앞선 시점에서 소현세자란 개방된 인물이 있었고 또 그 인물을 어이없게 잃어버려 오히려 일본에게 강제개국 되었다는 점은 정말 아쉬움이 남는다. (비록 효종의 북벌정책으로 국력이 신장되는 효과가 있었지만..)  역사에 만약이 없다지만 소현세자가 왕이 되어 개방된 나라를 만들고 봉림대군의 북벌정책으로 국력이 신장되었다면 청보다 큰 나라가 되지 않았을까 싶다.

어이없게 가버렸지만 소현세자는 분명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인물이었고 그 뜻을 펼치기엔 조선이란 나라는 작은 나라가 아니었을까싶다. 그리고 광해군이나 소현세자같은 인물을 가볍게 흘려버리는 우리나라의 국사 공부는 또 다시 작은 나라를 지향하는 건 아닐지 싶다. (자기 나라 역사도 제대로 모르면서 동북공정이나 독도의 소유권 등에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e****n 2008.06.2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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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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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조의 장남이자 차기 왕의 후보중 일순위의 인물이다. 인조의 둘째인 봉림대군이 후일 우리가 아는 북벌을 주장하고 10만명의 병사를 훈련을 시킨 효종이다. 만약 인조의 장남인 소현세자가 살아 있었다면 암 그는 왕이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한 왕조의 서열상 세자가 죽으면 세손이 있으면 관례대로 라면 소현세자의 아들이 왕이 되어야 하지만 역사는 이상하게도 인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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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인조의 장남이자 차기 왕의 후보중 일순위의 인물이다.

인조의 둘째인 봉림대군이 후일 우리가 아는 북벌을 주장하고 10만명의 병사를 훈련을 시킨 효종이다.

만약 인조의 장남인 소현세자가 살아 있었다면 암 그는 왕이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또한 왕조의 서열상 세자가 죽으면 세손이 있으면 관례대로 라면 소현세자의 아들이 왕이 되어야 하지만

역사는 이상하게도 인조의 둘째인 봉림대군이 왕이 되었다.

왕조시절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가운데 많은 수의 의문사가 있었다.

대부분 권력을 향한 끊임없은 욕심을 추구하는 가운데 반대파를 제거하기 위하여 많이 사용되었으며 가장 흔한

방법이 독살이었다.

오죽하면 왕의 수라상에도 항상 지밀상궁이 은수저로 모든 음식을 시식한 다음에야 왕이 먹을 수 있을 정도 였다.

그 가운데 소현세자도 조선왕가의 의문사의 대표적인 케이스였다.

그것은 분명하게 가장 객관적인 조선왕조실록에도 소현세자의 죽음에 대한 기록이 자세히 나와 있다.

우리 나라 역사상 가장 치욕스런 병자호란에 따른 인조의 삼두구고배를 기억할 것이다.

옥새까지 바치고 청이 다시 돌려줄떄까지 그야말로 완전히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이다.

그 장면을 소현세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보았다.

소현세자에 대한 의문사는 과거 KBS방송에서 역사스페셜이라는 방송을 통하여 한번 방송한 적이 있었다.

소현세자는 결국 청에 끌려가서 9년간이나 타향살이를 하며 청의 끊임없는 회유를 받는다.

이 책에서도 가장 잘 나타낸것이 바로 소현세자의 청에서의 생활이다.

돌아가면 왕이 될 몸..그러나 자신들의 잘못으로 인하여 타국으로 끌려와 고생을 하는 백성들의 모습.

청의 군사들의 상금을 주기위하여 끊임없이 팔려 가며 울부짖는 백성들. 그 수가 무려 50만이었다.

그러한 백성들의 모습을 보며 그가 끊임없이 갈등을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또한 그는 청의 군사력을 몸소 눈으로 본 사람이다. 명은 이미 자중지란으로 망해버렸다.

결국 그의 눈으로 명의 수도인 자금성이 함락되는 것을 보며 세상이 바뀌었음을 알았다.

청은 결고 오랑캐가 아니라 강한 군사력과 문물을 갖춘 나라라는 것을 인식한 그의 자세는 결국에는 서서히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기 시작한다.

처음으로 명나라뿐 아니라 세계 여러나라가 있음을 알고 또한 세계 지도라는 것을 본다.

그리고 서양의 새로운 과학산물을 보며 그는 이것이야말로 조선이 다시 강해질수 있다는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된다.

몸소 경작지를 개간을 하여 얻은 수확으로 돈을 마련하여 청의 인물들과의 교류에 적극적이었다.

돌아가면 조선을 강하게 만들려는 새로운 포부가 생겨난 것이다.

한편 조선에서는 인조는 또 다른 압박을 받게 된다.

과거 몽고의 경우 처럼 청에서의 압력은 상상을 초월하였다.

왕을 갈아치울수 있다는 것이다..그럼 그 대상은 바로 소현세자이다. 이러한 부자의 갈등은 소현세자는

모르게 생겨났으며 인조는 결국 자신의 최대 정적이 바로 자신의 아들인 소현세자란 것을 느낀다.

한편 이 책에서처럼 소현세자는 점차 서양 문물에 눈을 뜨고 많은 책을 한문으로 번역을 하며 또한 밤을 새워

읽고 또한 그 문제에 대한 해답을 찾아갔다.

그러나 돌아온지 두달만에 그는 급사를 한다.

이 책의 처음에서 보인것처럼 자신의 주위에는 알수 없는 음울한 공기가 흐르며 결국에는 의문사를 당한다.

결국 자신의 뜻을 펼쳐 보지 못하고 또한 그의 죽음을 밝히려는 세자빈 또한 국왕을 시해하려했다는 죄목으로

죽게 되고 그의 아들 셋은 제주도로 귀양을 가서 죽는다.

이 책을 덮으면서 안타까운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었다.

만약 소현세자가 왕이 되었다면 조선은 분명 달라졌을 것이다. 국외 사정에 어둡고 오로지 중화사상에 몰두하던

조선의 성리학은 결국 병자호란이라는 것을 겪었음에도 오히려 더 소중화가 되어가며 쇄국정책을 지향하며

다시한번 국가가 멸망하는 시작점을 보여준다고 느꼈다.

소현세자가 왕이었다면 분명 지금은 우리는 이렇게 살지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참으로 안타까웠다.역사의 중요한 기점에서 다시 한번 조선은 나락으로 떨어지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j*******n 2008.06.1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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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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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안식의 역사소설 [소현세자].. 소현세자라는 인물은 대중들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더 궁금했었다. 1996년 발간되었다가 올해 다시 그의 아들에 의해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책은 인조 23년 4월.. 소현세자가 가벼운 감기증상으로 내의원 의원을 불러 진맥을 받고 그뒤의 숨겨진 세자 암살을 암시하며 시작된다. 병자호란의 강화회담이 결렬되자 스스로 청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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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박안식의 역사소설 [소현세자].. 소현세자라는 인물은 대중들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았기에 더 궁금했었다.

1996년 발간되었다가 올해 다시 그의 아들에 의해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책은 인조 23년 4월.. 소현세자가 가벼운 감기증상으로 내의원 의원을 불러 진맥을 받고 그뒤의 숨겨진 세자 암살을 암시하며 시작된다.

병자호란의 강화회담이 결렬되자 스스로 청나라의 인질이 되어 부인 강빈과 심양에 9년간 생활하게되는 세자의 모습은, 역사평론가 이덕일의 추사처람 사료를 바탕으로 꼼꼼히 재현해 낸 그시대의 모습이 잘 나타나있다. 동시에 '소설'이라는 장르에 맞게 읽어가는 재미 또한 놓치지 않고 있었다.

아버지이기전에 국가권력의 중심에 서 있던 인조는 아들마저도 자신의 자리를 위협하는 존재이자 경쟁상대로 여긴 왕. 임금 이었다.

세자는 비록 인질로 끌려가기는 했으나, 청나라와 조선의 중재역할을 수행하여 정치. 경제적 현안을 슬기롭게 대처하는 인물이었다.

명의 멸망을 지켜보며 청나라와  조선의 관계에 힘쓰며 서양의 새로운 문물들을 받아들이는 열린 사고의 세자를 인조는 청나라에서 양위시킬까 염려하여 끊임없이 의심하게 된다.

결국 9년만에 귀국한 소현세자는 두달여만에 죽고 세자빈은 역모의 누명으로 사사당하며 그의 아들 원손이 아닌 동생 봉림대군이 세자가 된다.

 

역사의 흐름이란 바꿀 수 없기에 더 안타까운지도 모르겠다.

[소현세자]가 않고 부인 강빈과 조선의 왕이 되었더라면..하는 상상과 동시에,

이 작품의 작가 박안식이 불의의 사고를 당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작품활동을 했더라면..

하는 생각을 해본다.

2****i 2008.06.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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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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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보고 싶었던 책... 오랜 기다림 끝에 내 곁에 다가온 소현세자는 너무도 반가웠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받자마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비운의 세자하면 먼저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 그리고 혜경궁 홍씨의 지아비인 사도세자를 떠올린다. 조선의 역사를 알아가면서 나는 그보다 소현세자가 더욱 측은하게 느껴졌다. 아들을 죽음의 길로 보낸 영조는 그래도 세자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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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보고 싶었던 책... 오랜 기다림 끝에 내 곁에 다가온 소현세자는 너무도 반가웠다.

반가운 마음에 책을 받자마자 책장을 넘기기 시작했다.

비운의 세자하면 먼저 영조의 아들이자 정조의 아버지, 그리고 혜경궁 홍씨의 지아비인 사도세자를 떠올린다.

조선의 역사를 알아가면서 나는 그보다 소현세자가 더욱 측은하게 느껴졌다.

아들을 죽음의 길로 보낸 영조는 그래도 세자빈 혜빈과 그의 아들 세손만은 지켜준다.

알고보면 혜빈도 사도세자의 죽음을 이끈 친정을 수수방관한 가해자측이라고 볼수도 있지만,

어쨌든 영조의 뒷바라지로 세손은 왕위를 잇게 된다.

그러나, 인조는...

아들의 죽음이후 세자빈인 강빈과 그녀의 친정식구들, 심지어는 손자들까지 죽음으로 몰아 넣는다.

인조가 소현세자를 죽였다는 역사적 물증은 없다.

하지만 당시의 정황으로 보면 틀림없은 사실임을 나는 믿는다.

왕이 되었다는 그 자체부터 잘못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직접 차지한 왕이다.

폭군으로 유명한 광해군은 정치에 능한 임금이었다.

그가 쫒겨난 그날 조선의 역사는 바뀌게 되었고, 그를 쫒아낸 인조가

자신의 뒤를 이를 세자를 또 한번 내침으로써 역사가 다시한번 뒤바뀌게 되었다.

소현세자가 왕위를 물려 받았다면 어땠을까?

역사는 아주 다르게 씌여졌을 것이다.

그는 동생인 봉림대군(훗날의 효종)과 많이 다른 사상을 가졌고 정치적 이념도 달랐다.

그런 그에게 세심한 강빈의 내조가 더해졌다면 조선은 아주 다른 세상이 되었으리라.

이 책은 소설이지만 사실에 아주 가깝다.

<조선왕조실록>과 <심양장계>를 바탕으로 씌여진 소설이다.

인조반정에서 병자호란까지 그로인한 남한산성, 삼전도 치욕, 볼모로 잡혀간 소현세자 일행...

인조왕 하면 생각나는 단어들은 아마도 자신조차도 돌아보기 싫은 말들이었을 것이다.

권력이 무엇이길래....

왕의 자리가 얼마나 좋길래....

아들, 며느리, 손자들을 모두 버리면서까지 그 자리를 지켜야 했을까?

피로 지켜낸 그 자리가 그는 정말 좋았을까?

자격지심으로 인해 심약한 왕이 되었을 것이다.

왕족이긴 하지만 정당한 혈통을 이은 자리가 아니었고,

 명분만 내세워 일으킨 반정에 대한 불안함 그기다 전란까지 일어나

체통이고 뭐고 백성들을 뒤로한채 도망치기 바빴던 왕.

결국, 항복의 조건으로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볼모로 보내야 했다.

몇년의 볼모 생활후,

새로운 사상을 지니고 돌아온 세자를 믿지 못하고 왕위를 지키기 위해 휘둘러 대는 왕권...

참으로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조선의 역사에 다가가면 갈수록 거듭되는 실망을 어쩔수 없다.

어린시절에 왕은 위대하다고만 생각했다.

왕조국가 조선... 하지만 그것은 허울뿐인듯 하다.

여자에게 휘둘리고, 신하에게 휘둘리고...

알고보면 조선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은 왕이 아니었을까?

이 책 소현세자는

그의 곁으로 좀더 가까이 다가가 그를 좀더 잘 알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의 성품을 더 잘 알게 되었다.

아무것도 아닌 나지만

후대의 내가 그를 알게되었고, 그를 알아주는 사람이 한사람 더 늘었으니

그의 마음도 아주 조금 가벼워졌기를 바란다.

n******0 2008.06.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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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안식 역사소설 '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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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단순히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왕자라고만 알았었는데...   그 속에 또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명나라와 청나라.. 흔히 명청교체기에..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몰아내고 인조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   의 아들 소현세자.. 근데 그의 죽음이... 독살???????????????     청나라가 쳐들어와 남한산성에서 고전하다가.. 소현세자와 동생 봉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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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 단순히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왕자라고만 알았었는데...

 

그 속에 또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었다~!!

 

 

명나라와 청나라.. 흔히 명청교체기에..

 

광해군의 중립외교를 몰아내고 인조반정으로 왕이 된 인조~!!

 

의 아들 소현세자.. 근데 그의 죽음이... 독살???????????????

 

 

청나라가 쳐들어와 남한산성에서 고전하다가.. 소현세자와 동생 봉림대군은

 

청에 인질로 9년간이나 살게 된다~!!

 

그런데.................9년만에 돌아온.. 이 아들을...........어찌..

 

독살했는지...  ㅋㅋ 이것은 소설속에서 이야기이지만~

 

 

소현세자가 청에 간게 막연히 어렸을때라고 생각했었는뎅;;ㅡㅡㅋ

 

무려 26살에 갔다.. 서른이 넘어 돌아왔다고 한다~!!

 

그럼 청과 조선의 중심에서 어느정도 눈을 뜨고 있었단 소리인데........

 

 

소현세자가 예정대로 왕위에 올랐다면.. 조선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의 아우 봉림대군에 대해서도 궁금하도 나중에 효종이 된 그는....

 

똑같이 청나라에 9년동안 있었는뎅..........어찌 소현세자만 죽은 것일까...

 

.

.

.

 

이 책은 이미 10년전에 출간 되었던 책으로 그의 아들이 다시 엮어서 재 출간한것이라고 한다~!!

 

이런 좋은 역사소설이 다시 빛을 보게 되어서 너무 기쁘당~!!

 

현재 사극의 인기도 높아지고 있지만 이런 역사소설도 더 많은 사랑을 받으며

 

소현세자와 같은 인물들을 더 발굴해 재밌는 역사 이야기를 듣고 싶다~^-^

YES마니아 : 로얄 t*****3 2008.06.08.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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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로 만난 소현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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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국사시간에 멋모르고 무작정 외우기만 했던 예송논쟁의 원인(遠因)에 그가 있었다. 그리고 살아서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면, 조선후기 개혁군주라 칭송되는 정조보다 백여년 앞서, 조선을 확 뜯어고칠 수 있었던 인물이 바로 소현세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소현세자의 이름은 생소했다. 핑계인지 모르겠지만, 국사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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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 읽고 나서는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왔다.

 국사시간에 멋모르고 무작정 외우기만 했던 예송논쟁의 원인(遠因)에 그가 있었다. 그리고 살아서 임금의 자리에 올랐다면, 조선후기 개혁군주라 칭송되는 정조보다 백여년 앞서, 조선을 확 뜯어고칠 수 있었던 인물이 바로 소현세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사실, 소현세자의 이름은 생소했다. 핑계인지 모르겠지만, 국사시간에 비중있게 다루어졌던 인물이 아니었던 듯 하다. 내가 소현세자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게 된 것은 역사학자 이덕일의 글을 통해서였다. 이덕일의 책을 통해 소현세자에 대해 알고 나서, 그의 삶과 조선후기의 역사에 대해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마침 이 책 뒷표지에는 이덕일의 추천사가 실려 있다. "특히 이 책에서 [왕조실록]은 물론 [심양장계]등 1차 사료를 바탕으로 꼼꼼히 재현해낸 그 시대의 모습은 현재 고증 소홀 문제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역사드라마나 소설들이 본받아야 할 점이다."라는 역사학자의 말 때문에라도, 제대로 된 역사소설 한 편을 읽을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이 든 책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는 병자호란을 전후한 시기로부터 시작하여, 인질로서 청에서 생활했던 9년 동안의 일, 그리고 조선으로 돌아온지 불과 몇 개월만에 맞은 의문의 죽음과 세자빈 강씨의 죽음을 통해 본 소현세자의 삶을 서술하고 있다. 역사학자 이덕일의 말마따나, 충실한 역사고증을 통해 씌여진 글이라 그런지 한편의 역사서를 읽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중간중간 병자호란 전후의 사회상에 대한 사실적인 언급이 많아  역사공부에도 도움이 됐기 때문에 내가 잘 몰랐던 몇몇 부분들에는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다. 그러면서도 소설적인 재미를 잃지않는 서술이 참 좋았다. 하긴, 소현세자의 삶 그 자체가 한 편의 소설로서 손색이 없는 극적인 삶이었던 데다가,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했고 신문기자를 역임한 작가가 노년에 쓴 글이라 그런지 담백함과 재미라는 두 마리 토끼 모두를 잡을 수 있게 된 작품인 듯 하다. 그리고 그 문장에 대해 감히 평가해보자면 군더더기가 없고 깔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읽기에 참 좋은 글이었다.  

 

    남한산성에서의 농성전과 강화도의 함락, 삼전도에서의 삼배구고두三拜九叩頭의 항복은 치욕스러웠다. 역사에 대해 어설픈 지식밖에 없는 나는 인조반정의 의미를 잘 모르겠다. 폐모살제나 명에 대한 재조지은을 잊었다는 이유로 광해군을 내쫓은 반정정권에 대해 수긍이 되지 않는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시시각각 변해가는 외교무대에서 실리를 추구하고자 했던 광해군의 중립외교가 그렇게 비난받을 일이었을까..? 폐위된 군주라는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인지, 나는 한동안 광해군의 "광"자를  미칠 "狂"자로 쓰는 줄 알았었다.  한명기 교수의 [광해군]을 읽으면서, 광해군에 대해 이제라도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을 감사해했던 기억이 난다.

 

    어쩌면 시작부터 잘못된, 숭명대의崇明大義라는 쓸데없는 명분에 사로잡혀 있던 반정정권의 눈에 소현세자가 곱게 보였을 리 없다. 거기에 여자(인조의 후궁 조씨)의 무서운 시기심과 천한 신분에서 기인하는 열등감으로 비틀린 보복의식을 가진 사내(역관 정명수 같은 ; 중국과 우리가 껄끄러운 관계에 있을 때마다 종종 보이는 밉상스런 인물들이 있다. 우리 땅에서 태어난 천한 출신의 인물이 중국에 끌려가거나, 팔려 간 인물들의 중국에서 의외의 신분 상승을 한 인물들 말이다. 원 간섭기의 기황후를 등에 업은 기철 일당이나 환관 박불화가 그랬던 것처럼 이 책에 등장하는 정명수라는 역관은 조선의 노비출신이었으나 중국에서 역관이 되었고,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세자를 감시하거나 핍박하고, 조선 정치에 영향력을 행사한다.)의 힘이 결합되어 버리면, 일은 엉뚱은 방향으로 흘러가게 마련이다. 청에 인질로 잡혀갔지만, 외교통로의 역할을 하며  청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세자를 바라보는 못마땅한 시선들은 부왕인 인조에게서 부정父情을 앗아가버렸다. 권력은 부자지간에도 나누어 가질 수 없는 것이었던가.. ? 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신의 정적으로 아들을 바라보는 인조 또한 괴로웠을까..?  소현세자의 죽음으로 조선은 서양과 우호적인 관계에서 접촉할 기회를 놓쳐버렸고, 역사의 흐름에서 뒤쳐졌던 것은 아닐까..?

 

    흔히들 역사에는 "만약"이 있을 수 없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역사에서 "만약"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건 잘못 흘러간 물줄기를 바라보는 안타까움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만약"이라는 말을 자주 되뇌였다. "만약" 인조반정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면.. "만약" 소현세자가 청과 적대적인 관계를 유지했더라면.. "만약" 인조가 조금만 더 진실을 바라볼 수 있었더라면.. "만약" 소현세자가 그렇게 죽지 않았더라면.. "만약" 소현세자의 아들 석철이 임금의 자리에 올랐더라면...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역사소설을 좋아하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나 괜찮았던 책으로 기억될 것 같다.

 

 

h****i 2008.06.06.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