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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담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라마인들(파블 13기 12-5)
"냉담한 생활인으로 살아가는 라마인들(파블 13기 12-5)" 내용보기
칫솔과 치약만은 챙기고 집을 나서는 습관이 붙어 식후 30분 이내에 양치질을 하지 않으면 개운치 않아 맛있는 음식을 섭취해도 마뜩치 않을 때가 있다. 인도 각지를 떠돌며 감정을 배제한 채 칫솔과 간단한 행장을 챙겨 떠난 여행담 <<인도방랑>>을 인상 깊게 읽었다. 불편한 인도의 생생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대신 자신의 감정은 물기를 뺐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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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칫솔과 치약만은 챙기고 집을 나서는 습관이 붙어 식후 30분 이내에 양치질을 하지 않으면 개운치 않아 맛있는 음식을 섭취해도 마뜩치 않을 때가 있다. 인도 각지를 떠돌며 감정을 배제한 채 칫솔과 간단한 행장을 챙겨 떠난 여행담 <<인도방랑>>을 인상 깊게 읽었다. 불편한 인도의 생생한 장면을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대신 자신의 감정은 물기를 뺐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힌두 성지인 바라나시 갠지스 강에서 타다 남은 주검의 일부를 개들이 달려들어 뜯는 광경을 사진기에 담았다. 느낌은 독자의 몫으로 남겼을 뿐인 인도 여행기를 읽고 하늘과 가까운 황막한 고원 티베트 여행을 꿈꾸며 <<티베트방랑>>을 접했다.

 

   진창 같은 퇴적지에서 먹이를 발견하고 강 저편의 개는 소리로 자신의 입에 넣을 노획물을 놓지 않으려 했다. 인간과 짐승들이 뒤섞여 인업의 피로 뒤엉키고 들러붙어 다투는 모습은 벗어나고 싶은 사바계의 굴레였을 것이다. 순백의 무구한 하늘에 가까운 티베트에서 정토를 연상하며 히말라야 봉우리들에 휩싸인 고원으로의 방랑을 시작했다. 끝없이 펼쳐진 황량한 바위산들과 불모의 땅에 깃들어 사는 이들의 일상은 고달픔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불언의 황야를 걸으며 라마승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고는 소통하였던 순간을 기록하였다.

   ‘꽃은 어여쁘나 지고 마는 것을

   우리네 인생 그 누가 영원하리...........‘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 권불십년(權不十年)이라는 말이 떠오르는 때,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반문한다. 해발이 높은 곳을 걸을수록 쉭쉭 소리를 내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뚜렷한 이정표도 없이 저 멀리 보이는 아련한 공간을 찾아 걷고 또 걸었다. 멀리서 볼 때는 희극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비극이더라는 말처럼 종착지에 이르렀을 때 싱거운 반응을 보일 때가 있다. 현상만을 보고 이면의 특성까지 규정짓지 말라는 뜻일 테다.

 

   농사지을 땅도 허락하지 않는 척박한 공간에서 육식을 생리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고와 체질을 타고난 티베트 인들은 욕구를 절제하며 살아야 했다. 마니차를 돌리며 진언을 염하는 소리로 아침을 여는 독경 시간은 티베트인들의 신앙을 정점으로 이끈다. 고원의 밤에 기온은 뚝 떨어져 자다가 얼어 죽을 수도 있으니 현지인들은 잠꼬대처럼 염불을 외우며 반쯤 잠들고 반쯤 깨어 있다. 신이 없는 땅은 있지도 않은 것처럼 신을 섬기고 사는 티베트인들의 생활양식은 일상 속에 배어 있다.

 

   달라이라마 존자를 가슴에 품고 사는 티베트인들은 포탈라 궁을 향해 오체투지하며 불귀의 객이 되더라도 행복하다고 말한다는 다큐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자신의 여행과 생애의 가호를 기원하며 여행 중에 쌓는 돌은 부처님의 진언을 새긴 것으로 현재적 삶을 잇는 것도 부처님의 가피 속에서 가능하다고 여기고 있는 듯하다. 평균 수명이 60세를 넘기지 못한다는 말을 입증이라도 하듯 물 속에 비친 밝은 달의 순수함을 닮은 티베트인들의 사진은 연령에 비해 늙어 애잔함이 더했다. 사람들은 반들반들 윤이 나는 낡은 염주를 돌리며 옴마니반메훔을 외워 육도 윤회의 길을 막아 실상에 이르려는 바람을 담는다니 내세를 염두에 두고 사는 모습으로 보인다. 초목이 자라지 않는 메마른 땅 바위 위에서 볼 수 있는 새똥도 은혜로 보인다고 하는 것을 보면 지옥과 극락도 종이 한 장 차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은 인생의 길흉화복도 총량이 정해져 있다고 생각하면서 좋은 일이 생겼다고 너무 좋아하지 말라며 후환을 대비하라고 했다. 서쪽 접시에 좋은 일이 수북이 담기면 신은 천칭이 휘청거리지 않도록 동쪽 접시에 나쁜 일을 잔뜩 올려놓는다는 말을 새기며 삶의 균형이 깨지지 않도록 평상심을 유지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선다. 언젠가는 가 닿고 싶은 티베트에서 버터 넣은 소금차를 맛보며 라마교의 종교적 관습을 가까이에서 만나고 싶다.

n*****9 2017.12.15. 신고 공감 8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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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읽어야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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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이 너무 좋았다.보는 순간 내가 무거운 짐을 지고 스님 뒤를 따라가는 것 같았다.무작정 사고 읽기 시작했다.첫 도입부 부터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티벳의 찬공기와 바람이 느껴졌다. 그리고 글들이 글로써 느껴지지 않고 무거운 인생의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1/3에서 책갈피를 넣고 책을 덥었다. 그냥 기분이 나중에 읽어야 할 것 같고 내 마음에 방랑의 기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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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와 제목이 너무 좋았다.
보는 순간 내가 무거운 짐을 지고 스님 뒤를 따라가는 것 같았다.

무작정 사고 읽기 시작했다.
첫 도입부 부터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티벳의 찬공기와 바람이 느껴졌다.
그리고 글들이 글로써 느껴지지 않고 무거운 인생의 짐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1/3에서 책갈피를 넣고 책을 덥었다. 
그냥 기분이 나중에 읽어야 할 것 같고 내 마음에 방랑의 기운이 넘쳐날때 읽어야 할 것 같아서다.

YES마니아 : 로얄 b******8 2011.09.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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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방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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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방랑>을 읽게 된 것은 후지와라 신야라는 작가의 <인도방랑>에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4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이후인 지금, 그 시절의 여행기를 읽는 것도 흥미로웠고, 사진도 매혹적이었다. 그 이후 <후지와라 신야,여행의 순간들>도 읽게 되었고, 이번이 그 작가의 책을 세 번째로 읽은 것이다.    티베트, 언젠가 가보고 싶다고 점찍어 둔 여행지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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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티베트 방랑>을 읽게 된 것은 후지와라 신야라는 작가의 <인도방랑>에 강한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40년 가까이 시간이 흐른 이후인 지금, 그 시절의 여행기를 읽는 것도 흥미로웠고, 사진도 매혹적이었다. 그 이후 <후지와라 신야,여행의 순간들>도 읽게 되었고, 이번이 그 작가의 책을 세 번째로 읽은 것이다.

 

 티베트, 언젠가 가보고 싶다고 점찍어 둔 여행지다. 내 마음 속에는 아직 가보지 못한 곳에 대한 환상으로 기억되고 있는 곳이다. 어쩌면 언젠가 그곳으로 가서 내 눈 앞에 펼쳐진 그곳을 보면 각종 여행기와 내 상상 속에서 미화되어 있는 그곳의 모습이 낯설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은 책으로 만나는 그곳이 나의 상상력을 증대시킨다.

 

 이 책에서 또한 후지와라 신야의 사진에 더 큰 감명을 받는다. 때로는 감상적인 여행기가 여행을 하고 싶다는 매개가 되기도 하지만, 이렇게 사진으로 나를 유혹하는 경우도 있다. 나에게 쉽게 가기 힘든 곳이라는 이유가 그곳을 더 매혹적이게 하나보다. 가는 것은 쉽지 않아도 이렇게 책으로 만나는 것이 행운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여행은 난생처음 꾸는 현실 같은 꿈이었다.
그것은 좋은 일이었다. ……내 꿈은 길었다.” (후지와라 신야의 후기 中)

 후지와라 신야의 후기의 글처럼 여행은 현실 같은 꿈인 것인가. 여행이 길어지면 그 꿈도 길게 이어지는 것인가. 후지와라 신야도 그 현실 같은 꿈은 일시적이 아니라 근 십 년을 이어졌다고 하고, 그것은 좋은 일이라고 했다. 그 후기를 쓴 때가 1977년 6월이었으니 정말 아득하다. 요즘의 여행책자만 읽다가 오래 전의 이야기를 읽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느낌을 받는다. 그 당시 후지와라 신야가 30대였다고 하니, 지금 30대인 내가 읽으면서 공감이 가기도 하고, 아득한 세대 차이를 느끼기도 한다. 같음과 다름, 책을 읽으며 느끼는 격차와 공감대에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s*****a 2012.01.14.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퇴화한 지금'으로부터 '진보적인 그들의 지금의 바다'를 향한 한 일본 청년의 여정... 티베트 방랑
"'퇴화한 지금'으로부터 '진보적인 그들의 지금의 바다'를 향한 한 일본 청년의 여정... 티베트 방랑" 내용보기
시간 상으로는 <인도방랑> 이후에 씌어진 책이다. <인도방랑>과 마찬가지로 90년도 이후 (이 책은 1995년) 문고판으로 출간된 책의 번역본이다. 아마도 1977년 처음 발간된 이후 몇 차례 판형을 바꾸며 출간되다가 1995년 새롭게 문고판으로 나온 이후, 그것을 원본으로 삼아 번역된 책이라고 보여진다. 뭔가 원본으로부터 멀어진 느낌이라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책의 시작 부분에
"'퇴화한 지금'으로부터 '진보적인 그들의 지금의 바다'를 향한 한 일본 청년의 여정... 티베트 방랑" 내용보기
  시간 상으로는 <인도방랑> 이후에 씌어진 책이다. <인도방랑>과 마찬가지로 90년도 이후 (이 책은 1995년) 문고판으로 출간된 책의 번역본이다. 아마도 1977년 처음 발간된 이후 몇 차례 판형을 바꾸며 출간되다가 1995년 새롭게 문고판으로 나온 이후, 그것을 원본으로 삼아 번역된 책이라고 보여진다. 뭔가 원본으로부터 멀어진 느낌이라 서운할 수도 있겠지만, 책의 시작 부분에 실린 ‘타임 슬립’이라는 제목의 머리말을 읽으면 그런 서운함이 쑥 들어갈 것이다. (이 머리말은 1982년에 작성된 것이니, 1977년 처음 나온 책을 본 이들은 이 머리말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 지구에는 다양한 지층 연대가 노출되어 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는 시간 계측에 그런 다양한 지층 위에 사는 사람들의 모든 것을 뭉뚱그려 끼워 맞추는 사고방식은 하나의 환상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적으로 진보한 나라의 가장 급진적인 부분을 지금이라는 시간의 계량 기준으로 삼는 풍조는 단순한 오만이다. 지구에 사는 각각의 사람에게는 각각의 지금이 있다... 과거 십 수 년의 여행에서 나는 가장 급진적인 지금을 가진 나라로부터 중세 이전의 시간을 가진 나라까지 다양한 지층 연대의 땅을 몇 번이고 타임 슬립 (time slip, 현실의 시공간을 뛰어넘어 과거나 미래로 옮겨가는 일 - 옮긴이) 했다. 그런 여행 속에서 나는 시간의 흐름에 대한 하나의 작고 단순한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것은 인간이 유지해온 지금은 과거의 지금으로부터 현재 또는 미래의 지금을 향해 역진화 逆進化 하고 있다는 것이다. 요컨대 과학은 진화하고 인간적인 것은 퇴화하는 지구상의 시간 구도가 분명하게 보였다... 이 책은 그 인간으로서 퇴화한 지금을 가진 한 일본 청년이 과거를 향해 인간으로서 보다 진보적인 그들의 지금의 바다 속에 자신을 투입한 작은 기록이다.”

  그러니까 우리는 흔히 우리가 사는 세상을 기준으로 하여 (대략 문명화된 도시라는 기준) 현재, 그리고 우리의 현재보다 못한 뒤떨어진 과거를 가진 나라 혹은 도시 혹은 문명을 나누지만 그것은 잘못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작가는 지적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한 걸음 나아가 과학은 진화하였을지 모르나 인간으로서는 퇴화한 것인지도 모를 현재의 우리를 손가락질하며, 그러니 티베트 여행은 우리의 기준으로 낙후된 과거의 세계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적으로 진화된 세상을 향한 것이라는 통찰을 보여준다.


  “2000년의 혼명昏冥 속 진창에서 태어난 연꽃이 진창 위로 신성한 꽃을 피우고 있는 듯하다. 그렇지 않아도 저 히말라야 뒤편에 사는 티베트 백성은 아침저녁 햇살을 머금고 다홍빛으로 물드는 히말라야의 봉우리들을 연꽃잎 하나하나에 비유한다. 그들이 말하듯 히말라야가 천의 꽃잎을 가진 연꽃이라면, 도대체 인도 사바세계를 두고 진창이라는 말보다 더 그럴듯한 비유를 찾을 수 있을까...”


  사실 오랜 시간 인도방랑의 시간을 보낸 작가는 지척에 있는 히말라야 근방의 티베트를 진작에 향했을 법한데도 미루고 미뤘다고 고백한다. 그것은 인도라는 진창의 세계에서 티베트라는 천상을 닮은 세상을 향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을 수도 있고, 종교가 인간 속으로 체화되어 있는 인도에 비하여 종교 안으로 인간이 들어가 있는 티베트라는 곳에 대한 어떤 반항심이었을 수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 나는 몸이 좋지 않거나 할 때 종교의 유혹에 흔들리기도 했지만 부처 앞에서는 아멘이라고 말하고, 십자가 앞에서는 나무묘법연화경이라고 말하고, 아크바르 신전에서는 옴마니반메훔이라고 말하며 그 자리를 벗어난다. 그래서 내 몸에는 빛나는 말이 따라붙지 않는다. 말을 갖지 않은 자는 신심이 없다고 한다. 실망하지 않는다. 말없이 돌을 주워 들고 싶다. 보는 것만으로도 좋다. 신심이 없기 때문에 거기에 부처나 그리스도나 알라가 보이지 않아도, 신심이 없기 때문에 돌이 보이는 경우도 있다. 그것이 이 가난한 자의 무기다.”


  이러한 반종교적인 작가의 심사는 이전의 산문들 속에서도 흔하게 보여진다. 그리고 종교와 일상을 떨어뜨려놓고 생각할 수 없는 티베트 사회에서 그의 종교를 향한 꼬인 심사는 더욱 극명해진다. 그래서 이번 산문에 나타나는 승려들은 나태하기 그지 없는 종교인일 뿐이다. 대신 작가의 시선은 팍팍하기만 한 티베트의 자연 풍광을 섬세하게 풀어 쓰고, 그 자연의 연유에 대해 꼼꼼하게 사색하는 데에 온전히 할애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 한번은 어느 노승이 이 땅에 전해 내려오는 단조로운 신화를 다음가 같이 조목조목 들려준 적이 있다... 옛날 옛적에 이 땅의 천상을 지배하는 신이 있었다... 천상에서 생명체가 깃들어 살지 않는 메마른 불모지를 바라보고 있다가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하계를 향해 자혜의 눈물을 뚝뚝 흘렸다... 불모의 땅에 작은 습지가 생겨났다... 그곳에 녹지가 만들어졌다... 그 녹지의 고도孤島에 원숭이가 태어났다.. 그것이 우리의 조상이다.”


  사실 <황천의 개>에서 시작된 후지와라 신야 읽기가 조금 지루해지고 있다. 이상하게도 내가 읽은 책의 순서에 따라 실린 사진이 늘어나고 산문의 양은 줄어들었는데, 산문의 양이 줄어들수록 재미와 감흥이 떨어진다. 물론 지극히 주관적인 판단이다. 그리고 <동양기행>은 다른 책들보다 사진이 더 많이 실려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지가 눈앞이라는 생각으로 묵묵히 읽을 작정이다. 인도를 방랑하던 작가가 지척에 놓인 히말라야의 티베트에 들어서기를 망설이되 결국 들어선 것처럼, 재미의 수위가 더 낮아진다고 해도 결국 이 작가의 번역물을 모두 읽게 될 것 같은 예감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k******i 2011.11.1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