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의 모든 책은 24시에게 온 라인으로 구입하는 편이지만 배송되는 시간을 기다리기 힘들어(하루키 팬이거든요) 이 책은 서점에서 구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리뷰를 남기는 이유는 번역에 문제가 심각한 편이라 다른 사람들도 하루키에 대한 애정만으로 이책을 구입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 몇자 남길려고 합니다 전문적인 번역가도 아니며 또한 일본어는 하지도 못하지만 이번 책은 다음 번역 판이 나올때까지 구입을 늦추는게 나을듯 합니다. 하루키 소설의 경우 번역자가 다른 소설이 몇 있습니다. 이번 번역은 소설책이 아니라 무슨 시나리오를 읽는 느낌입니다. 한 페이지 읽는데 소모되는 에너지가 상당합니다. 과거형과 현재형이 뒤죽박죽으로 섞여 있어서 한 문장을 읽는데 신경이 너무 거슬려서 차마 진도가 안나가더군요.... 의역까지는 아니더라도 독자들이 부드럽게 읽을 정도는 되야지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구입시 꼭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
|
언젠가 주위의 책을 상당히 많이 읽는 친구가 말했다.
"너는, 하루키는 안읽니?"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설이라고는 대하소설밖에 읽지않는 나도 한번은 들어봤었다.
"내가 보기엔, 하루키의 책은 너한테 딱일텐데...." 내가 대답했다.
"그래? 뭐, 다음에 기회있으면 한번 읽어볼께" 그냥 한쪽귀로 흘려듣듯 무심하게 대답했다. 어느날 정말 읽을거리가 없었고, 머릴 식히고 싶은 맘에 색다른걸 읽어보자 싶었다. 그래서 생각난게 친구의 말이었는데, 하루키의 책을 검색해보니 뭔가 엄청 나와서, 뭐부터 읽어야 할지 몰랐다. 감으로 때려잡은게 바로 이 '해변의 카프카'인데, 처음엔 제목을 보곤 뭔가 평화로운 느낌이 들어, 마음을 가라앉히기 딱 좋겠다 싶어 구입해서 읽었다. 그런데 이게 뭐...-.-;; 뒤통수를 치는게 아닌가... 머리 아픈(그러나 너무 좋아하는 스타일의), 이야기... 읽으면서 곰곰히 생각하며 읽어나갔다. 그당시 뭔가 급하게 끝내야 할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데 급급했을 정도로 재미있게 읽어나갔다. 이야기의 시점이 자꾸만 바뀌는것은 처음엔 좀 불편했으나. 자꾸 읽어나가니, 오히려 몰입도가 상당해져서 '하루키라는 작가는 특이한 글을 쓰는구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끝은 뭐랄까, 깔끔하다면 깔끔하게 끝내는데, 개인적으로는 뭔가 이야기가 더 있었으면 했다. 나중에 친구에게 전활걸어 책 이야기를 하며, 다른 책들도 추천받게되었는데, 어둠의 저편 역시 좋았다.
|
| 드디어 다 읽었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를 읽고 난 후 하루키의 소설을 읽은 기간에 굉장한 공백이 있었던 셈이다. <스푸트니크의 연인>,<바람의 노래를 들어라> <해변의 카프카>, <상실의 시대> 나의 하루키에 대한 독서 이력은 이것 정도이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는 달리 <해변의 카프카>는 어느 정도 어려움없이 빨리 읽을 수 있었다. 상권을 빌려 읽고 나서 하권을 두달이 지나서 산 것을 보면 읽는 중 굉장한 텀이 있었지만 어쩄든 무사히(?) 그의 소설을 완독한 셈이다. (사실 누나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작용해 책을 산 것도 없지 않다) 그의 드라이한 분위기. 외국 상호와 브랜드의 심심치 않은 차용. 상징에서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외디푸스 콤플렉스를 이용한 그는 적절한 타이밍에 서양과 동양의 상징과 사상을 곁들인다. 서양식의 음식을 먹고 가끔은 동양식 식사를 즐기 며 말그대로 서양식 쿨한 모습의 전형을 보여주는 주인공들 은 전세계적인 감성에 빠지지 않는 가장 객관적인 캐릭터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난 솔직히 그가 무엇을 말했는지 모르겠다. 단 한줄로도 작가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있는 소설이 있는 반면 100페이지를 읽고도 무엇을 말하는지 알 수 없는 소설이 있다. 물론 작가의 의도를 알 수 없게 일부러 난수표와 같은 소설을 쓰는 작가도 있다. 그가 말한 ''읽는 이들에게 각각 다른 의미로 받아들여지는 소설을 쓰고 싶다''라고 말한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이 소설은 그런 작가의 바람에 충실해졌는지도 모르겠다 덕분에 800페이지가 넘는 소설을 읽으면서도 지금 남는 여운은 허탈감이다. 그의 신작 해변의 카프카는 충분히 재미있다. 읽는 속도감이나 구성에 대한 치밀함은 이야기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그렇지만 그렇게 긴 이야기를 하게 된 이유를 알지 못하고 책장을 덮게 된 나로써는 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소년이 되기로 한 다무라 카프카 군의 처음의 목적이 무엇을 이루었고 그가 거친 과정에서 얻은 것은 무엇인지 전혀 모른다. 내가 머리가 나쁜 것일까? 아니면 아직도 그에 대한 거부반응 이 있는 것일까? 난 하루키에 대한 다른 사람의 생각을 듣고 싶다. 정말 그의 소설은 참신하고 가슴 깊이 감동을 불러일으키는지 자신의 정력과 온 노력을 쏟은 작품이라는 말과 극찬으로 일관된 이번 책의 그에 대한 평가가 어떤 면에서 이루어졌는지 나는 조금은 알고 싶다. 그리고 그가 짜 놓은 심오한 상징과 소설적 장치들이 있다면 난 그것에 대한 부연 설명을 듣고 싶다. 내 부족한 머리를 조금은 더 개선하고 싶어서라도 말이다. 뱀발:그의 소설을 읽으면 이젠 속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무언지. 이젠 아마도 하루키의 소설을 읽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 드네요. |
| 기존의 하루키 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을 읽는 내내 안겨주었다. 간간히 비현실적이고 초자연적인 상태에 대해 언급된 적은 많았지만, 이번 소설에는 환경설정에 있어서 매우 어색하고 익숙지 않다고 느끼면서도 너무나 이 소설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읽는 내내 100% 모두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가능한한 단순히 소설을 보기로 했고, 인과관계도 있는 그대로 느끼기로 했다. 15세 소년인 다무라 카프카는 이세상에서 가장 터프한 15세 소년이 되기로 마음먹는다. 가출... 일반적으로 보면 굉장히 불성실 하고 문제가 많은 아이로 보일 것이다. 내가 보기에는 소설속에서 그는 문제아이다. 불완전한 가정환경(누나만 데리고 가출한 엄마), 자기만의 공간을 만들고 스스로 외토리가 되는 학교생활 등.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쁜 세계에 빠져드는 그런 아이는 아니다. 까마귀 소년으로 나타나는 다무라의 또다른 자아. 아마 그가 진정한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갑자기 기억을 잃어버린 노인은 그와 어떤 관계가 있을까? 비현실적인 환경을 현실 세계와 연결시켜주고 역시 마무리시켜주는 역할을 하는 노인은 다무라가 정신적으로 성장을 할수 있도록 직접 마주치지 않으면서도 적절히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책을 다읽고 나서 한동안 그 기억에 젖어서 헤어날 수 없었다. 문득 내가 놓여있는 현실을 직시하면서 그냥 있는 그대로 내버려둬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
|
해변의 카프카를 처음 읽은 건 몇 주전 도서관에서 대출해서였다. 하도 매스컴과 서점에서 해변의 카프카, 해변의 카프카.. 무라카미 하루키.. 강력추천! 무라카미 하루키 최고의 장편소설! 하길래, '그렇게 재밌나? 그렇게 대단한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작년에도 친구가 읽으면서 재밌다고 했었고..
학교 도서실에서 잠깐 읽었을 때는, 그다지 재밌다는 생각이 안 들었다. 대충 읽긴했었지만, 15살 소년이 가출하는 내용이 뭐가 재밌어.. 라면서 책을 덮었었다. 하지만 도서관에서 빌린 후 집에서 읽기 시작하자. 나는 곧 몰입했다.
초반은 다른 모험소설처럼 집을 나가는 그런 어떤 면에서 평이한 가출..이라고 생각했었지만, 계속 읽으면서 왜 언론에서 극찬을 하는지, 왜 강력추천인지 알게되었다. 무라카미 하루키와 친해진 것도 이 소설 덕분이다. 전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소설을 한 권도 읽지 않았는데,[개인적으로는 무라카미 류를 더 좋아한다.] 일본에서 무라카미 형제 라면서 대단히 좋아하는 그들의 소설.. 이 소설을 통해 나는 하루키 역시 류처럼 멋진 작가라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아버지의 저주로 집을 나가는 15살 터프한 소년, 집을 왜 나가는지는 나중에 나오는데, 나는 '그냥' 집을 나가는 15살, 터프한 소년까지 읽고 책을 덮은 우를 범했었던 것이다. 하지만, 계속 죽 읽어가니, 과연, 하루키를 좋아하고, 위대한 소설이라 할 만하다는 것을 인정했다. 왜 진작 읽어보지 않았을까.. 하고 후회했을 정도로 말이다. 고양이와 말하는 노인이라는 특이한 설정은 하루키 특유의 재치와 익살이랄까..[이 책을 읽은 후 나는 하루키의 팬이 되어 그의 소설을 탐독중이다.] 아무튼, 창의력이라든지, 독창적이란 면에서 류랑 닮은 것 같다. 정말 형제처럼 말이다. 그 둘일 추구하는 스타일은 다르지만, 뭔가 공통분모가 보였다.
아무튼, 이 책은 뛰어났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독자들을 즐겁게 해주는 것, 그 것이 작가의 존재이유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책을 다 읽은 후 며칠전 주문해서 어제 받았다.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나는 다시 해변의 카프카 읽기에 들어갔다. 하루키는 이 책을 읽을 때 마다 새로운 의미를 찾게 될 거라고 했는데, 과연.. 처음 읽을 때와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앞으로도 계속 계속 읽혀질, 그런 책이다. 그래서, 나도 강력 추천한다! [인상깊은구절]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즉 네 선택이나 노력이 헛수고로 끝나도록 운명 지어져 있다 하더라도, 그래도 너는 조금도 어김없이 너인 거고, 너 이외의 아무도 아닌 거야. 너는 너로서 틀림없이 앞으로 전진하고 있어. 걱정하지 않아도 돼." |
|
15세 남자아이의 가출기를 통해, 그 아이가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그린 이야기다. 사실,, 이해가 쉽지않고 내용도 좀 괴팍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엉뚱맞은 아버지의 저주. 고양이 심장을 먹고, 고양이 머리로 피리를 만드는. 뭐야 이 조각가! 아들에게 자신을 죽이고 자신의 아내와 누이를 범하게 될거라는 저주를 내린 그는 도대체 아버지로서 용납되지 않고, 그에게 아버지라는 이름도 부여할 수 없을만큼 역겨운 존재다. 당췌 이해가지 않는다. 소설은 다무라상의 아버지를 끝내 나쁜인간으로 그려내고 구해주지 않았다.
그밖에, 설명되지 않는 인물 나카타상, 사에키상.
소설은 아무리 상상력으로 진행되고 완성되는 것이라 해도. 50세 여성과 섹스하는 15세 소년에게 아무래도 난 호의적일 수가 없다.
처음엔 이 어린 남자아이의 성장통을 같이 느낄 수 있어 좋았다. 그러나 이야기는 괴상하게(적어도 내게는;;) 전개되고. 책을 덮고 난 후, 나는 한 남자아이의 꿈을 엿본 느낌이다. 그냥 악몽이다.
이 이야기는. 그저 꿈같다. |
|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는 아주 빠르게 읽힌다. 재미있었으니까 빨리 읽히겠지. 그러나 아주 재미있지는 않았다. 빨리 읽어 보고 내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 궁금했다... 재미있었다는 말인가? 하루키의 문장들은 짧고 명확하다, 표현은 산뜻하고. 책은 가볍고 군더더기 없이 잘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별로 다른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지는 않다. 하루키 글들을 꽤 읽어 봤기 때문에 그의 글들이 주는 신선도가 내게는 별로 안 먹히는 것 같기도 하다. 그리고 지금의 나의 생활 스피드와 관심 분야를 볼 때, 인생을 관통하는 주제를 찾는 자칫 모호한 그의 주제와 엉뚱함이 내 흥미와 부합하지 않기 때문일 지도 모른다. 그의 글들이 갖는 매력은 '신비함'이라고 본다. 내 자신이 그랬듯 20대 초반에, 뭔가 새롭고 신비한 것에 대한 동경이 충만한 시절에 좋아할 소설들이다. 하루키의 글들은 신비하고, 또 한편으로는 '충동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그의 주인공들은 매우 현실 생활에서 벗어나 있다. 하루키의 글들을 읽다 보면 현실 감각을 잃게 된다. 가출하고 싶고 일탈하고 싶게 만든다. 좋게 말하면 과감하게 커다란 획을 긋고 싶은 충동을 자극한다. 잠깐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면 적당한 소설. 하루키에 대한 과대 평가. |
|
주인공이 열 다섯이라고, 세상에서 가장 용감하고 쿨한 열다섯 소년이라고, 까마귀 소년을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 소년은 숲 속 깊은 곳, 저 너머의 세계를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그리던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확인했습니다.
만,
나는 왜 이 책을 지금 읽었을까. 다들 마흔 넘어서는 하루키를 극복(?)하고 독서의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는데, 왜 나는 지금 그의 열다섯 소년 이야기를 읽었을까.
1Q84의 많은 퍼즐들이 이 책에서도 발견된다. 사에키상과 주인공 소년의 관계도 그렇고, 문을 여닫는 것이나 환상적인, 아니면 충격적인 설정도 그렇다. 그래서 훅하고 빠지는 하루키식 완전 몰입 독서를 할 수 없었다. (조니 워커와 고양이 장면에서는 깜짝 놀라긴 했다) 이상하게 사에키상과의 관계도 그리 놀랍지 않다. 초반부터 프로이트 이야기를 많이 해 두어서 마음의 준비가 된 탓일까. 문학적인, 그리고 계산된 장치들이 여기저기 놓여있는데, 그 트릭들이 미리 보여서 재미가 덜 했다. 나카타 할아버지와 호시노 청년의 여행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아니, 벌써 기억이 흐릿해지고 있다.
하루키의 책은 그렇다. 읽는 순간은 하루키식 논리 (하늘에서 생선이나 거머리가 쏟아져 내리더라도 그러려니 하는 식으로)를 따라간다. 하지만 책을 덮고 사흘이 지나면, 줄거리를 다시 말하기 어렵다.
주인공이 열다섯이라 하더라도 고등학생이 읽을 책 같지는 않고, 스물 다섯 쯤 읽고 서른 쯤에 주인공과 나카타를 떠올리면 좋을 듯하다. 다양한 연령대의 여러가지 인생 모습을 보여주었으니 간간이 내 인생의 의미(라고 하면 너무 거창하지만)도 생각해 볼 수도 있을테고. 그런데 난 너무 늦게 읽었다. 그래서 감동을 받기에 너무 늦어버렸다. 입구의 돌은 닫혔다. |
|
책, 재미있군요. 확실히 제 취향에 맞는 소설입니다. 다시 한 번 느끼는 거지만 하루키의 스타일이 저랑 잘 맞는군요. 그 왜, 주절주절 다소 말이 많은 것 같긴 하지만 그게 워낙 그래도 쓸만한 말들이거나 재미있는 요령으로 이어지다보니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게 되는 작품입니다. 으흠, 페이지 수가 줄어드는 게 아쉬운 소설이 그리 많지는 않거든요. 그런데 이 작품은 레알 그랬습니다. 재미있습니다. 그래서 하권은 아껴 읽어야지 뭐 그러고 있습니다.
요즘 고양이들 말로 밀당이 죽여주는 소설입니다. 밀고 당기는 솜씨 말이지요. 그 말은 요즘 사람들이 쓰는 말이 아니냐고요? 뭐, 아무려면 어떻습니까. 사람이 쓰거나 고양이가 쓰거나 그게 그거지 뭐. 그 뭐랄까, 끊임없이 궁금증을 유발하면서도 쉽게 내놓지는 않고 그러면서도 짜증이 나지는 않게 뭔가 또 계속, 냠냠 던져주거든요. 군소리 없이 그 조그만 이야기들을 잘 받아먹고 놀다보면 가끔씩 덜컥, 하고 왕건이를 하나씩 던져줍니다. 그런데 그 왕건이가 참 치밀하게 구성된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본래의 크기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으로 독자에게 다가서더군요. 그런 점에서 봤을 때, 하루키 이 냥반, 참 주도면밀한 사람이구나, 하는 걸 느끼게 합디다. 장마다 등장하는 소소한 이야기들이 제 아무리 달나라로 날아가는 것처럼 진행이 되더라도 딱 때맞춰 그게 아니라 모두 연관되어 있다는 식으로 독자를 잘 훈련시키는 바람에 급기야 지나가던 개가 바닥에 침을 뱉어도 뭔가 이유가 있겠지, 하고 생각하게 되더란 말입니다. 그런데 그게, 낚시가 아니라서 확실히 효력이 있습니다. 분명 뒷부분 어딘가에서 개가 침을 뱉은 이유가 등장하거든요. 그것도 아주 그럴 듯하게 말이죠.
장사를 했으면 여불위요, 사기를 쳤으면 김선달이 되었을 법한 하루키 소설이 이야기로 진행되면 그의 연출력이 아주 많이돋보이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로 진행된다는 말은 <1Q84>처럼 스토리로 연결되는 소설을 제 나름대로 부르는 얘기입니다. <상실의 시대>같은 경우는 이야기로 진행된다기보다 순전히 구라로만 진행이 되잖아요. 그러니까 그건 캐릭터 위주의 작품이고 순전히 말빨로 독자를 꼬신다고 치면, 거기에 뭐 딱히 대단한 연출력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거든요. 하지만 <1Q84>나 이 작품 같은 경우는 강력한 캐릭터 플러스 대단히 치밀한 이야기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이 두 가지의 비밀 병기를 어떻게 조합했느냐에 따라서 레베루가 달라진다고 생각되어지는 것이지요. 그것을 저는 총체적인 연출력의 여부라고 여기는 편인데 하루키는 그 점에서 레알 탁월하십니다. 이 냥반, 어디에 무얼 넣어야 하고 무엇을 언제 터뜨려야 하는지 그걸 아는 냥반이예요. 이를테면 이런 거지요. 대개의 독자들이 이야기 소설을 따라가다보면 자기도 모르게 대충 앞일을 예상하면서 따라가게 되잖아요? 그런데 그 타이밍을 절묘하게 뺐는 겁니다. 독자가 보기엔 지금쯤 뭔가 나타날 것 같은 지점에서 다른 것이 나타난다거나, 혹은 더 앞당겨서 보여주어 독자를 당혹스럽게 만드는 것이지요. 가령, 히가시노 게이고의 <방황하는 칼날>에서처럼 책이 이만큼 두꺼운데 범인이 생각지도 못하는 지점에서 밝혀지는 바람에, 어라? 그럼 나머지 이 많은 분량은 대체 무슨 얘기로 이루어진 것이지? 하는 예상치 못한 호기심 같은 걸 불러일으킨다는 말쌈인 것이지요. 그리고 생각지도 못했던 방향으로 이야기를 끌고가면 그렇게 독자는 맛이 가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하루키 아저씨의 기술은 가히 지존에 가깝지 않나 싶습니다. 이야기를 묘하게 끊고 시선을 야릇하게 돌린다음, 생각지도 못했던 장면에서 빵 터뜨리거나, 아니면 빨리 그 다음이 궁금해서 다리를 달달 떨게 만든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끊어진 부분에서 이어지는 다른 이야기도 재미있어서 뭐부터 먹어야 할지 모르는 베스킨라빈스 삼실 일처럼 사람을 헷갈리게 만드는 것이지요. 그래서 결국, 그냥 주는대로 먹을테니 일단 아무거나 줘 봐. 그런 자세를 취하게 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독자를 길들이면서 읽게 만드는 거만한 소설이라지요. 그러나 밧뜨, 길들여지지 않는 독자는 짜증이 좀 날 수도 있으시겠어요. 저로 말씀드리자면 저는 아주 바짝, 노릇노릇하게 길들여지더군요.
저는 처음에 <1Q84>를 읽고 사람들이 말하는 하루키의 홀짝이 뭔 말인가 했습니다. 저는 그게 그의 첫작품이었으니까요. 그런데 제 이웃분 중에 한 번역가 분께서 자기 작품에도 표절이라는 말을 적용할 수 있다면 <1Q84>는 <해변의 카프카>의 형식을 그대로 따왔다, 라고 아주 멋지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 말이 영문도 모른 채 그냥 멋있어서 언젠가 써먹어야 겠다고 호심탐탐 기회를 엿보다가 독서 모임에 나가서 결국 써 먹었다는 거 아니겠습니까. 크앙! 뭔가 배가 산으로 가고 있는데 하여간 그 홀짝이란 장마다 다른 캐릭터의 다른 시각으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종국에는 점점 둘이 맞닿아가는 형태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일큐팔사에서는 댄고와 아오마메가 그랬고 여기서는 다무라와 나카타 상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한가지, 판타지가 이어집니다. 일큐팔사에서 달이 두 개가 뜨듯, 여기서도 고양이와 대화를 나누죠. 그리고 꿈을 통해 자기 복제를 일으키는 상상도 뭔가 대단히 철학적이면서도 정신분석학적인 냄새를 풀풀 풍기면서 진행됩니다.
하루키가 생각하는 이 상상의 가치는 우리가 생각하는 상상의 가치보다 훨씬 대단한 것 같습니다. <상실의 시대>에서도 문제는 독재가 아니라 니들의 상상력이라고 얘기하는 장면이 등장했던 것처럼 이 작품에서도 상상이 없는 삶은 앙꼬 없는 호빵이요, 국물 없는 오뎅이라고 하루키는 주장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이 냥반이 말하면 왠지 진짜 그런 거 같아. @.@
그런데 리뷰에 왜, 무슨 내용인지는 없고 쓰잘데기 없는 얘기만 잔뜩이냐고요? 이봐, 너, 처음왔구나? 여기 블로거가 그러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란다. 얘. 그렇기도 하지만서도 사실, 이 소설의 스토리를 소개한다는 건 좀 그래요. 큰 줄거리를 말씀드리는 건 어렵지 않지만 최강 재미는 대개 디테일에 실려있고 그 디테일을 소개하기엔 종류가 너무 많아효. 주변에 한다리만 건너면 말빨맨들 하나씩 존재하잖아요? 그 냥반들의 특징이 끊이지 않는 이야기의 소재가 아닙니까. 얘기 중에도 막, 안드로메다와 포장마차를 휙휙, 날아다니잖아요. 하루키의 소설도 그래요. 언젠가 이 냥반, 스티븐 호킹의 초끈 이론까지 소설에 등장시키지 않을랑가 싶을 정도로 말이죠. 어쨌든 하권 리뷰에서는 가급적 스토리를 한 번 ON 시켜보도록 해보죠. 생각이 안 바뀐다면 말이죠. 어쨌거나 결론은, 재미있다 그겁니다.
그럼 됐지 무얼. http://blog.naver.com/vitojung
|
|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가 연일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고 있다.오랫만에 낸 장편소설이고,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상력이 독자들을 소설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만들고 있다. 오래전부터 하루키의 소설은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읽히고 있다. 내가 처음 읽었던 그의 소설은 '상실의 시대'그리고 다음으로 '해변의 카프카'였다. 하루키 소설의 분량은 보통 책의 2배가 될 정도로 두꺼운데도 지루한 줄 모르고 읽었던 소설을 '1Q84'를 읽은 후에 다시 꺼내 읽는 느낌은 내가 처음 읽던 그때와는 좀 다른 느낌이었다. '1Q84'와 '해변의 카프카'는 구성에서 닮은 점이 많았다.
그리스 신화인 '오디프스의 비극'을 연상시키는 아버지의 말 '소년은 언젠가 그 손으로 아버지를 죽이고 언젠가 어머니와 관계를 맺게 될 것이다.'라는.... 열다섯 살의 생일이 되는 날, 소년은 집을 떠난다. 아버지의 저주의 말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그리고 어릴적에 소년을 버리고 집을 떠난 어머니와 누나를 찾아서 길을 떠난다. 자신에게 '카프카'라는 이름을 붙이고.... 소년이 찾아간 곳은 도쿄에서 떨어진 낯선 지방의 고무라 도서관이다. 왠지 낯설지 않게 느껴지는 곳이다. 그는 그곳에서 많은 경험을 하게 된다. 현실세계인지, 환상의 세계인지 모르는 그런 경험들.... 아버지의 말이 맞은 것일끼? 그곳의 신사에서 정신을 잃고 깨어보니, 피투성이인 자신,그리고 그날 아버지는 집에서 살해되었다. 고무라 도서관 책임자 사에키상의 소녀시절의 생령과는 사랑을 하게되고.... 뒤죽박죽 되어가는 생활속에서 소년은 혼돈스럽다. 그리고, 어릴 적 사고이후 모든 기억을 잃었지만 고양이와는 대화를 할 수 있는 나카타상. 그런데 그의 정체 역시 심상치 않다. 독자들은 읽으면서 읽을수록 소설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자신을 느끼게 될 것이다. '열다섯 살'은 유년기의 끝이자 성인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성장의 두려움에 흔들리고 방황하다가 결국에는 제자리로 돌아오고야 마는 것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1Q84'의 캐릭터처럼 '해변의 카프카'의 캐릭터도 참 독특하다. 그리고, '삶과 죽음','선과 악', '어른과 아이', '의식과 무의식'이 혼재되어 있다. 이것이 현실세계인지 환상의 세계인지 혼란스럽기도 한다. 그리고, 가장 독자들의 흥미를 끄는 것은 전개과정이 어떻게 흘러갈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미스테리한 사건들때문에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빨려 들어 가는 것이다. 분명히 추리소설이 아닌데도 결말이 궁금해지는, 잠깐의 긴장도 늦출 수 없는 스토리 전개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의 재미인 것이다. 읽고 난 후에도 한참을 소설 속에서 벗어날 수 없게 만드는 것이 무라카미 하루키의 마력일 것이다. 그런 느낌을 받고 싶다면, '1Q84'를 읽은 후에 다시 '해변의 카프카'를 읽어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