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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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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이란 내게 특별한 해이다. 올해 5월에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다.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필요 이상으로 즐거워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무감각하게 그 날을 맞이한 것이 비한다면 나는 성년의 날 앞뒤로 일주일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성년의 날 열두시 땡 치면 나는 청소년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울고 웃고 먼저 어른 된 사람들 붙잡고 우울해하고 어리광 피우기도 하면서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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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이란 내게 특별한 해이다. 올해 5월에 법적으로 ‘성인’이 되었다. 주위의 많은 친구들이 필요 이상으로 즐거워하거나 필요 이상으로 무감각하게 그 날을 맞이한 것이 비한다면 나는 성년의 날 앞뒤로 일주일이 굉장히 혼란스러웠다. 성년의 날 열두시 땡 치면 나는 청소년에서 어른이 된다는 것이다. 울고 웃고 먼저 어른 된 사람들 붙잡고 우울해하고 어리광 피우기도 하면서 그 기간을 보냈다. 다른 사람들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정말 아무렇지도 않은 것일까 하는 의문을 남긴 채로 성년의 날을 보냈다. ‘15’라는 상징적 숫자와는 상관없이 ‘해변의 카프카’의 주인공인 다무라카프카나 나나 그 경계에 서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버지가 남겨놓은 오이디푸스 신화 같은 예언이라는 것을 이렇게 받아들이며 책을 읽었다. ‘태엽감는새’에서 매일 태엽을 감아주어야 세상이 돌아간다는 일종의 어른들 세계의 ‘원리’, 그것은 아직 어른 세계에 완전히 발을 들여놓지(또는 내놓지)않은 아이들에게는 점점 확고한 틀이나 극복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예언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닐까. 어른들이 주도하는 세계가 돌아가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 모습들이 마치 다들 예언에 따라 숙명적으로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 숙명적인 무기력함, 숙명적인 회의. 그리고 아직 어른들의 세계에 완전히 편입되지 않은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볼 때면 그 세계 사람이 되어가면서 내 안의 것들이 훼손될 것 같은 두려움을 가지게 되는 것이고 어떤 아이들은 어른이 되기를 거부하기도 하는 것이다. 예언을 극복한다는 문제는 역시 내 안의 미궁을 탐험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 제대로 ‘그것’들을 놓아두는 것이겠지만 아직도 거의 모든 것이 추상적으로 느껴질 뿐이다. 맞닥들이면 그것이라고 알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무라카미하루키의 다른 소설들만큼이나 이 소설도 한국인의 정서에는 ‘야하게’, ‘부도덕하게’ 느껴질 것 같다. 패륜, 근친상간, 반기독교적 색채 때문에 내 관념 체계에 선을 긋고 이등분하여 어느 선까지만 받아들여야 할 것 같은 당혹감이 있었다. 그것도 그의 소설적 ‘도구’이고 그 도구에 담아내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을 테니 되도록 편협하지 않을 정도로는 받아들이고 싶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방학을 맞아 그의 소설 ‘태엽감는새’를 다시 읽었다. 문득 책날개에서 무라카미하루키가 1949년생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우와, 우리 아빠보다도 나이가 많다)깜짝 놀랐다. 계산하면 지금은 50대이다. 항상 맥주를 마시고 건강을 위해 마라톤을 하는 모습을 읽어 와서 그런지 내 머릿속에서 무라카미하루키는 30대의 모습으로 남아있다. 이번 소설 책 표지 뒷면에 있는 추천의 말에 ‘성숙’ 어쩌구 하는 단어가 등장해서, 이번 소설에서는 좀 할아버지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아서 읽다가 실망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역시 그대로이다. 15살 다무라카프카도 똑똑하고 하루키를 닮았을 것 같은 소년의 모습이고, 나카타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말하는 것이 초등학생 같고, 호시로도 순수해 보인다. 다른 등장인물도 마찬가지로, 작가가 ‘나쁘다’고 규정한 인물(혹은 사물)이 아닌 이상 등장인물 한사람 한사람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글을 썼음을 가슴 깊이 느낄 수가 있었고 그런 느낌이 좋았다. 15라는 숫자는 메타포이고 아무리 나이는 어른이라도 누구나 한번쯤 거쳐 가야 하는 내 마음 속 숲을 알게 된 것 같다. 그래서 작가도 ‘다무라카프카는 나이고 또 여러분’이라고 말한 것이겠지. 이 소설을 읽고 있으면 하루키 소설의 결정체인 듯한 느낌이 든다. 읽는 줄곧 ‘태엽감는새’에서 조금 어긋난 시각에서, 또 많은 소재들이 연장선상에 있는 상태에서 이야기를 전개한다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태엽감는새’에서의 구미코가 다무라카프카와 사에키로 양분된 것 같은 느낌이 들었고 다시 ‘상실의 시대’의 나오코와 연결되었다. 다무라카프카의 아버지도 와타야노보루와 연관시킬 수 있었다. ‘태엽감는새’에 등장하는 시나몬을 참 좋아했는데 오시마라는 등장인물에게서 다시 그 느낌이 비슷하게 전해졌다. 곳곳에 나타나는 숲을 보면 ‘노르웨이의 숲’이라는 제목이 떠오르고, 바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서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라는 제목이 떠올랐다. 까마귀소년도 양사나이의 연장선상에 있는 느낌이어서 이런 모든 연관성들이 그의 작품을 많이 읽은 사람이 읽어낼 수 있는 암호처럼 여겨져서 이해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좋았다. 물론 그의 작품은 다 비슷비슷하다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다. ‘나’의 인칭은 1인칭이고, 타카다- 호시노가 등장하는 장에서는 3인칭서술이다. ‘나’가 말하는 부분은 1인칭이 기본이지만 종종 까마귀소년이 2인칭으로 ‘나’에게 말한다. 나와 사에키가 ‘의미 있는 일’을 할 때 ‘나’가 한참 이야기하다가 까마귀소년이 말하는 듯, 굵은 글씨와 2인칭 말투로 바뀌더니 그 후로는 계속 ‘너는 ~게 한다’식으로 서술이 되고 있다. 기묘한 느낌이었다. 계속 ‘나’와 사에키가 하는 일을 남일 보듯 거리를 두고 구경하고 있다가 갑자기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여져, 내가 사에키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내가 그 일들과 그 생각들을 하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것이다. 다무라카프카가 사실은 나였기라도 하는 듯이 말이다. 소설에서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2인칭을 거의 쓰지 않는데, 새로운 경험이었고 놀랐다. 하루키의 소설은 같은 작품이라도 읽을 때마다 새로워진다는 말이 정말 맞다. 책꽂이에서 하루키의 책이 늘어가는 것을 볼 때마다 즐겁고, 빼서 펼치는 매순간이 설렌다. 뭔가 많은 면에서 같은 ‘부류’로 묶여있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이, 내가 읽고 공부하는 철학적인 문장들이 소설 곳곳에 숨겨져 있는 것은 소설을 읽는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이 책을 다 읽고나서 덮으며 뿌듯하면서도 끝났다는 생각에 괜히 쓸쓸해져서 ‘이 아저씨(나에게는 하루키가 30대로 남아있기 때문에 익숙하게 드는 생각이다. 그의 수필에서의 평상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친근한 동네 아저씨 같은 느낌이 든다.)지금도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운동을 열심히 하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면서 글을 쓰고 계시려나’하며 다음 작품은 언제 나오려나 기다리게 되는 것이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o****2 2003.10.15.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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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뜻 다가서지 못할 하루키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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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었다. 처음부터 마치 유럽의 소설처럼 두 가지 이야기가 번 갈아 나오며 소설이 끝날 때까지 급격히 그 간격을 줄여간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자신의 꿈과 자아를 찾아간다는 15세 주인공의 난해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결말과 고양이와 대화를 하던 노인의 결말 역시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에티켓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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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루키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었다. 처음부터 마치 유럽의 소설처럼 두 가지 이야기가 번 갈아 나오며 소설이 끝날 때까지 급격히 그 간격을 줄여간다. 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자신의 꿈과 자아를 찾아간다는 15세 주인공의 난해하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결말과 고양이와 대화를 하던 노인의 결말 역시 결코 쉬운 것이 아니었다. 에티켓상 결말을 이야기 하지는 않겠지만, 하루키의, 아니 일본의 소설이 성에 대해 개방적이고 일본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발전해 왔지만 이 카프카에 이르러서는 좀 한계에 다다른 듯 싶은 것도 내 개인적인 생각이다. 언제나 비슷한 소설의 시작과 비슷한 소설의 결말... 결국 선뜻 이해되지 않는 식으로 주인공은 무언가를 깨닫게 되고 그저 그렇게 끝나고야 마는 소설... 물론 내가 카프카를 단순히 비판만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통해 자신을 찾아 나서는 용감한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하루키에 매료되어 버리고, 그의 팬이 된 사람들도 숫하게 많으니 말이다. '짱' 이란 호칭에 관한 번역의 잘못이 어쩌니 하는 말은 적어도 나는 잘 모르니까 제기 하지 못하지만, 이야기의 중간에 15세 주인공이 꿈속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성관계를 갖는 것으로 묘사되는 장면은 우리나라 정서에도 매우 어긋나는 것 같아서 아쉬운 생각이 든다.
h*******e 2004.06.27. 신고 공감 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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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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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카프카 란 공연의 제목만 보고 해변의 카프카를 연극으로 각색했을꺼란 선입견을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대학로의 아트홀 스타시티를 찾았다.   그러나 연극이 아닌 현대무용으로 각색된 색다른 카프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짜피 문자로 전달할 수 있는 부분과 몸의 언어인 춤으로 표현되고 전달되어지는 부분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안무가 이기영님이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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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카프카 란 공연의 제목만 보고

해변의 카프카를 연극으로 각색했을꺼란 선입견을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대학로의 아트홀 스타시티를 찾았다.

 

그러나 연극이 아닌 현대무용으로 각색된

색다른 카프카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짜피 문자로 전달할 수 있는 부분과

몸의 언어인 춤으로 표현되고 전달되어지는 부분은 서로 다를 수 밖에 없다.

안무가 이기영님이 무대에서 보여준 현대무용의 모티브를

하루키의 작품 해변의 카프카에서 찾았듯,

내가 전에 해변의 카프카를 읽었다는 사실은

무대위에서 공연된 현대무용을 이해하는 아주 작은 단서에 지나지 않았다.

 

안무자 이기영의 이전 작품으로는 [호밀밭의 파수꾼] 이란 작품이 눈에 띄는데

호밀밭의 파수꾼이란 책도 16세 소년이 겪는 2빅3일간 방황의 기록이고

해변의 카프카 역시 15세 소년의 성장 소설이란 점에서 젊은 안무가 이기영의

인간 본연의 내적인 갈등과 운명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그의 작품들에 녹아 있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봤다.

 

인간의 몸이 표현할 수 있는 경이롭고도 아름다운 몸짓과

그 몸짓이 나타내는 문자 이상의 의미를 경험하고도

문자로써 리뷰를 남겨야 한다는 것은 현대무용 감상에 대한

어불성설(?) 같지만 문자이외에 몸짓으로 리뷰를 표현할 수 없음에랴..

 

 

 

마치 날이 새기전에

죽음의 신과 얼싸 안고 불길한 춤을 추듯

그런 일이 되풀이 되는거야.

그 폭풍은 그러니까 너 자신인 거야.

네 안에 있는 그 무엇이라고 생각하면 돼.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중에서

 

 

 

 

 

m****e 2007.02.14.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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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살 내인생의 최고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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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러하듯이 자신에게 맞는 꼭 그러한 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저는 이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내게 맞는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누군가가 리뷰를 올려놓았을때 내인생최고의 책이라고 제목을 써 놓은 것에 늘 그렇게 상투적인 표현밖에 할 수 없는가에 대해 늘 비판적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감상문제목을 쓸때 딱 저 문장만 떠오르는 걸보면 제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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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그러하듯이 자신에게 맞는 꼭 그러한 책이 있다고 생각합니다.저는 이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내게 맞는 책이라고 생각했습니다.누군가가 리뷰를 올려놓았을때 내인생최고의 책이라고 제목을 써 놓은 것에 늘 그렇게 상투적인 표현밖에 할 수 없는가에 대해 늘 비판적이였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 해변의 카프카를 읽고 감상문제목을 쓸때 딱 저 문장만 떠오르는 걸보면 제 자신이 상당히 비창조적인 사람이거나 정말 그것이 내 자신에게 최고의 책이던가 둘중에 하나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늘 저런 글귀에 비판을 해온 저로서는 후자쪽이 더 옳은 생각일 거라 생각합니다. 해변의 카프카를 처음 읽었을때는 약 2년 정도 전이였습니다. 이 책의 구성이 처음부터 너무 혼란스러워서 저는 이내 늘 첫페이지만 닳도록 읽다가 그만두고 읽다가 구만두고를 계속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너무 심심한 나머지 해편의 카프카를 읽어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늘 읽다만 부분까지 처음부터 정독해가면서 꼼꼼하게 읽어 나갔습니다.(가장 열심히 읽었던 부분일것 같네요^^) 사실 그 후로부터는 단숨에 읽어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너무 재밌었다는 거죠! 재밌다는 말은 웃겼다라는 것이 아니라 정말 가슴에 와 닿았다는 겁니다. 그럼 재밌다는 말보다는 흥미로웠다는게 맞겠네요..여튼 그 책을 읽어나가는 기쁨은 더할나위없었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재미가 있었느냐면요. 이 책은 카프카라는 소년의 자아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지금 대학졸업을 얼마 남지 않고 있는 학생입니다. 얼마 안있으면 졸업하고 졸업하고나서 딱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시점이였습니다. 이런 시점에서 전 늘 내 자아에 대해 묻곤했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물어야 할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젼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한순간도 미간을 찌푸리지 않고 있어본 일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을 읽을때는 오히려 더 찌푸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설 속 주인공인 카프카의 자아에 대해서도 생각을 해야 했거든요. 여튼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내안의 불 명확한 자아를 카프카에 쉽게 이입시킬 수 있었습니다. 제 상황이 마침 그랬으니까요..물론 구구절절한 내용까지 모두 이입시킬 수는 없었지만..결론적으로 저는 카프카의 성장을 느꼈습니다. 해변의카프카 마지막 페이지를 읽고나서 저는 나 또한 많이 성장해 버렸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저는 결국 또 상투적인 표현으로 밖에 제 자신을 표현할 길이 없다는 것에 애가탔습니다. 그 표현은 바로 이것이 간접경험의 중요성이구나 하는 것이였습니다. 물론 제가 카프카처럼 부모님을 죽이고 성적으로 범하고 증오하며 그런것들은 아닙니다. 그러나 카프카는 그런것들이 미래를 막고있었고 어떻게 해서든지 그것을 풀어내려고 노력했습니다. 저는 카프카의 문제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 결국 카프카의 내면을 읽으면서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입니다. 이 소설을 읽고 저는 몇일동안 이 소설에 대해 생각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중 누군가가 제게 이 소설의 내용을 이야기 해달라고 하더군요..그래서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상권(해변의카프카는 상하권으로 나뉘어져있습니다.)의 내용은 전체적으로 이해도 쉬웠고 해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런데 하권의 첫 내용부터는 말로는 전할 수 없었습니다, 분명 꼼꼼하게 읽었고 감정까지 이입해가면서 읽었던 터라 내용도 잘 알았습니다. 그러나 말로는 뱉기가 너무 힘이 든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결국 저는 대충 이야기를 끝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러니깐 상권과 하권의 책두께는 비슷한데 이야기는 상권이 길었고 하권의 내용이 너무 복잡하고 다양해서 말로 할 수 없었다는 거죠. 어쩌면 언변이 뛰어난 사람은 하권의 내용까지 일목요연하게 설명했을지 모르지만 제가 봤을떈 그 책을 심도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너무나 많은 것을 깨닫고 이야기 하고 있기떄문에 그저 느낄 뿐 말로는 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내가 생각하는 단1%조차도 100%정확하게 표현할 수 없다."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결론적으로 저는 이책을 읽으면서 카프카의 자아가 성장한 만큼 아니 그 이상 만큼 성장했음을 느낍니다. 그러나 저는 이책을 누구에게나 추천해 주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소 지루할수 있고 어쩌면 너무 짜증이 날 수도 있는책입니다. 그렇지만 본인의 자아에 대해 궁굼증이 있고 자아를 찾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꼭 권해주고 싶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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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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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문장문장으로 이어져있던 스토리가 한 쪽의, 한 권의 스토리로 이어지며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었다.참을성을 시험하듯 지루하게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의 나열로 이어지다가 어느 부분에서부터 서로 연결되며 선을 그린다. 마치 점들이 선으로 바뀌듯 그 과정은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느리다. 그러다가 개인들의 삶에 대한 관점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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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문장문장으로 이어져있던 스토리가 한 쪽의, 한 권의 스토리로 이어지며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었다.
참을성을 시험하듯 지루하게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의 나열로 이어지다가 어느 부분에서부터 서로 연결되며 선을 그린다. 마치 점들이 선으로 바뀌듯 그 과정은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느리다. 그러다가 개인들의 삶에 대한 관점이 좀 더 확고하게 드러나며 선에서 면으로 바뀌고 면은 마침내 3차원의 공간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개개인의 삶들인 면들이 만나 서로 소통되고 충돌하고 소멸하면서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져간다.

소설은 나카타라는 노인과 다무라 카프카라는소년이 삶을 놓고, 삶을 쥐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도와주는 인물로는 호시노 청년과 오시마가 있다. 인물들은 나카타와 오시마, 카프카와 호시노로 나뉜다. 형이상학적인 그리고 형이하학적인 구성이다. 그 가운데 사에키라는 여성이 자리한다. 나카타와 카프카는 끝까지 만나지 않는다. 작가의 치밀한 구성에서 비롯되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삶이 그렇게 녹녹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든 책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참 이상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가당치 않은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쓰는대도 독자들이 따라가는데 전혀 무리가 없게 만든다,고.
a***2 2007.10.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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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적 피날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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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권을 읽고나서..."하"권에 대한 기대와 욕구가 절정으로 치달았다..그만큼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는 흡입력이 강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특유의 신비한 상상력과 깊숙한 주제는 읽는이들로 하여금 한문장 한문장을 놓치지않고...그 문장속에 깊숙히 내재된 의미를 꺼내어 먹게 하는 매력을 가진다. 지난번 "상:권의 서평에서 언급한대로..세계에서 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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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상"권을 읽고나서..."하"권에 대한 기대와 욕구가 절정으로 치달았다..그만큼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는 흡입력이 강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그의 특유의 신비한 상상력과 깊숙한 주제는 읽는이들로 하여금 한문장 한문장을 놓치지않고...그 문장속에 깊숙히 내재된 의미를 꺼내어 먹게 하는 매력을 가진다. 지난번 "상:권의 서평에서 언급한대로..세계에서 가장 터프한 15살의 소년 카프카의 이야기와...어릴적 사고로 말과 글을 잃어버린 나카타의 이야기를 한 챕터씩 번갈아 마치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듯이 기술하고 있는데...그 두가지 서로다른 이야기들의 연관성을 추론하는 독자들은 마치 추리소설 한편을 정독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그의 문장력은 독창적이고 문맥은 치밀하게 짜여졌다고 말할수 있다. '해변의 카프카'에는 매우 하루키다운 독창적인 캐릭터들이 많이 등장하는데...주인공으로 위에 언급한 2명의 인물주위에서 그들의 내면세계나 과거를 상징하는 분신같은 존재들이 등장하여 소설의 한계를 뛰어넘고자 한다. 카프카의 내면세계를 마치 또다른 하나의 존재로 묘사하는 '까마귀라 불리는 소년'의 등장이나. 고양이머리를 냉장고에 얼려보관하며 피리를 만들고 사는 '조니워커'.....(술이름 맞다^^) 미키마우스가 될뻔한 KFC의 상징인 커널 샌더스(흰수염 할배^^)의 등장은..그 캐릭터들의 심상치않은 행동에도 불구하고...독자들에게는 유쾌한 상상력과 흐뭇한 미소를 남긴다.....^^; 15세때의 생령(살아있는 유령정도로 봐주면 되겠지)과 50세의 현실로 존재하는 사에키상과의 관계.. - (주) 사에키상은 15세소년 카프카의 엄마이자 그의 여인으로 묘사된다. - 최고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뭉쳐진 하루키만이 해낼수 있는 그만의 특별한 냄새가 강하게 나는 그의 작품세계..... 총 2권으로 900여 페이지에 이르는 장편이지만...읽는데는 그리 지루하지않을것으로 자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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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형을 찾아 떠나는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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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고독이 스며있는 하루키의 대작.. 삶의 원형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한 소년의 내면의 여행에 동행하여, 정신없이 헤매였고, 방황했으며, 그럼에도 다시 이계를 넘어 현실로 돌아왔다. 읽고 또읽었으며, 단어 하나하나 주는 의미를 가슴에 끌로 새기듯 곱씹었다. 이 작품을 세게문학 수준의 명작이라고 하는것은 약간 과장이라 하나 분명 여간 잘된 작품임에는 틀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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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각적 고독이 스며있는 하루키의 대작.. 삶의 원형을 찾아 끊임없이 방황하는 한 소년의 내면의 여행에 동행하여, 정신없이 헤매였고, 방황했으며, 그럼에도 다시 이계를 넘어 현실로 돌아왔다. 읽고 또읽었으며, 단어 하나하나 주는 의미를 가슴에 끌로 새기듯 곱씹었다. 이 작품을 세게문학 수준의 명작이라고 하는것은 약간 과장이라 하나 분명 여간 잘된 작품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나하나 살아있는듯한 캐릭터의 묘사, 그의 문학에서 각 캐릭터는 군더더기 없이 살아 생동하는 듯 하다. 또한 역시 의식을 담은 육체, 내면의 본질과 외부의 껍데기 사이에서 .. 본질을 깨달은 자들이 느끼는 방황을 그려낸 그의 스타일이 묻어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하루키는 과도하다 싶을정도의 비유와 메타포로 나의 정신을 해집어 놓았다. 물론 그 의미가 하나의 완결된 원을 이루는데에는 한번의 탐독으로는 힘들었으며, 2.3번의 집요한 탐구를 통해 가능한 일이었다. 입구의 돌, 해변의 카프카란 곡에서 나오는 알수없는 두 화음 그리고 곡의 지나치게 철학적인 가사, 오이디프스와 일본의 고대 신화. 순수한 틀로 인간의 원형속에 폭력과 증오를 각인 시킨 존재들또한 약간은 환상적인 이소설에 현실성을 부여한다. 마치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에서 나타나는 듯한 현실과 이계를 넘나드는 구성속에서도 왠지 이 소설은 상실의 시대와 같은 주제를 약간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는듯한 느낌을 들게 하는 것이다. 끝으로 사에키 상은 시간 속에 숨기를 원했으며, 영원히 머무는 시간속에 자신을 안주하길 원했다. 어느 누구의 손도 미치지 않는 시간의 흐름이 없는 곳으로의 대피를 원했고 그것을 위해 입구의 돌을 였었다. 결론적으로 그것이 초래한 이세계의 뒤틀림은 하루키 문학에서 늘상 발견할수 있는 뒤틀림이다. 마치 '입구의 돌'이 어느것이 든 상관없는. 하지만 총이 거기에 있다면, 발사되어야만 한다는 안톤 체호프의 말과도 통하는 바가 있으며, 마치 자립적인 개념으로써 역할로서의 기능이 집약된 필연성의 개념같은 뒤틀림이다. 이 세계의 본질을 자각한 자들은 이세계의 균열 틈세계에서 고통받고 있다는 그의 문학관, 카프카는 현실의 그릇을 자각하고 그것을 줄곧 증오해 왔다. 마치 나와 같이...
c*******y 2005.12.02.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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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하루키이 주는 모호함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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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참 이상하다.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할 때 그의 작품이 끌어당기는 매력을 접한 적이 없다. 오히려 지루하다. 뭘 말하려고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마치 공부하듯 그의 문장을 하나하나 공들여읽어야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초반부와 중반부의 경계부분부터다. 초반부를 지나고 중반부를 향해갈 때부터 문득 책을 들고 있는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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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의 작품은 참 이상하다. 책을 집어들고 읽기 시작할 때 그의 작품이 끌어당기는 매력을 접한 적이 없다. 오히려 지루하다. 뭘 말하려고 하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마치 공부하듯 그의 문장을 하나하나 공들여읽어야한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초반부와 중반부의 경계부분부터다. 초반부를 지나고 중반부를 향해갈 때부터 문득 책을 들고 있는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 읽는 속도는 점점 빨라지고 문장문장으로 이어져있던 스토리가 한 쪽의, 한 권의 스토리로 이어지며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이 작품도 예외가 아니었다. 참을성을 시험하듯 지루하게 도무지 알 수 없는 이야기의 나열로 이어지다가 어느 부분에서부터 서로 연결되며 선을 그린다. 마치 점들이 선으로 바뀌듯 그 과정은 눈치챌 수 없을 만큼 느리다. 그러다가 개인들의 삶에 대한 관점이 좀 더 확고하게 드러나며 선에서 면으로 바뀌고 면은 마침내 3차원의 공간을 갖는다. 다시 말하면 개개인의 삶들인 면들이 만나 서로 소통되고 충돌하고 소멸하면서 하나의 공간으로 이루어져간다. 소설은 나카타라는 노인과 다무라 카프카라는소년이 삶을 놓고, 삶을 쥐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그들은 도와주는 인물로는 호시노 청년과 오시마가 있다. 인물들은 나카타와 오시마, 카프카와 호시노로 나뉜다. 형이상학적인 그리고 형이하학적인 구성이다. 그 가운데 사에키라는 여성이 자리한다. 나카타와 카프카는 끝까지 만나지 않는다. 작가의 치밀한 구성에서 비롯되어진 것이 아닐까 싶다. 삶이 그렇게 녹녹치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라면 지나친 비약일까. 어쨌든 책을 덮으며 나는 생각했다. 참 이상하다.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가당치 않은 신비로운 이야기들을 쓰는대도 독자들이 따라가는데 전혀 무리가 없게 만든다,고.
m*****i 2005.03.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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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변의 카프카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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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하권은 별 넷이거나, 혹은 다섯이어도 아주 가까스로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줄 때는 혹은 다섯이라도 가까스로 주는 거야, 하고 주지 않고 낼름 던져주었습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상권의 포스가 어느 정도 작용했고요, 무엇보다 큰 점은 아무래도 제가 아직까진 하루키의 글이 좋다는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팔이 안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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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하권은 별 넷이거나, 혹은 다섯이어도 아주 가까스로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막상 줄 때는 혹은 다섯이라도 가까스로 주는 거야, 하고 주지 않고 낼름 던져주었습니다. 이유는 아주 간단합니다. 상권의 포스가 어느 정도 작용했고요, 무엇보다 큰 점은 아무래도 제가 아직까진 하루키의 글이 좋다는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그래서 팔이 안쪽으로 굽는다고 아리까리하면 바로 사사오입을 시켜버리는 자유당 같은 태도를 취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쩌겠습니까, 한국인의 피가 흐르는 이상, 그까이 꺼 뭐 대충 우리 편이면 봐 줘. 그렇게 되는 것이지요.

 

      어쨌거나 그래도 뭔가 아쉬운 점이 있었던 것을 일러드리고 가는 게 나을 것 같아서 그 점에 대해서 간략하게 좀 말씀드리자면, 이야기를 좀 너무 끄셨어요. 그만하면 됐으니까 이젠 대충 정리하고 임팩트 하게 마무리 해 줘, 해야할 시점에서 이건 뭐랄까, 뭔가 도무지 아쉽다는 듯 우격다짐으로 내용을 채워넣었다는 느낌의 챕터가 몇 개 되었습니다. 뭔가 그냥 지나가 버리기엔 아쉬워서 이거저거 총총 썰어서 믹서기에 넣고 돌려봤는데 그 결과가 딱히 좋았다고 보이지는 않는 것이지요. 일단 제 생각에는 그랬습니다. 하권 27개의 챕터 중에서 한 대여섯 개 이상의 챕터는 그냥 빼버리는 게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문에 갑자기 확, 이야기가 느슨해지고 중언부언 반복되는 느낌마저 들었고 알레고리 역시 너무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리는 경향이 살짝 있었습니다. 그래도 하루키라 가까스로 다시 이야기를 붙잡아와서 잘 마무리 해주었습니다만 아쉬운 건 아쉬 운 거니까요.

 

      하권에서 하루키는 그야말로 메타포 노래를 부르시던데 작품 자체가 카프카적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메타포니 알레고리니 뭐 그런 거 말이죠. 뭔고 하니 아침에 눈을 뜨니 난데없이 벌레가 되어있는 그레고리 잠자가 과연 무엇을 상징하는가를 두고 북치고 장구치고 신나게 볶아볼 여지가 많다는 얘기입니다. 이 작품은 카프카에 대한 오마주였을까요? 제목도 그렇도 상징성도 그렇지만 사에키의 모든 기억을 태워버리는 설정 같은 부분도 카프카의 실제적인 삶의 단면을 차용한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어쩐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물론,

      아님 마는 거고요.

      바로 이겁니다. 그게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님 마는 거지, 하는 거 말이죠. 가령, 이 소설의 저변에 깔려있는 신화적인 요소와 그리스 비극에 대한 감상, 그리고 역시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칼로 질렀으면 비틀어야 내가 살 수 있는 부조리한 세계에 대한 풍자, 무의식을 통한 자기복제와 리비도, 그러니까 말하자면, 신화와 철학과 정신분석학과 작가 개인의 경험을 통한 공력이 싱싱한 야채와 막 삶은 닭가슴살로 버무린 케이준 치킨 샐러드처럼 접시에 담겨 나온 것이라지요. 그러니 이런 류의 소설은 말이죠, 보이는 만큼 보게 되는 거랄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을 하나 가지자면, 소설을 꼭 그렇게 읽어야만 하는 걸까요?

 

      혹자들은 훌륭한 책 한 권이 천 명의 못난 인간보다 낫다고들 합디다만, 저는 그건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못난 인간이라도 한 개인의 삶을 능가하는 훌륭한 책은 없다고 생각해요. 뭔가 매우 휴머니즘적입니다만, 딱히 그런 건 아니라도 책은 그저 책이라는 거죠. 아, 뭔가 굉장히 실존주의적이다. 어쩐지 그럴듯 해. 

      그렇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오오, 나는 프로이트를 잘 알아서 가끔 그와 술 한잔 기울이고 하는데 이 소설을 보니 그의 강의를 통해 보았던 이야기들이 등장하더라 그말 인거지, 그러므로 오오오, 하고 감탄사를 하나 더 늘리며 그 만족감에 눈을 가늘게 뜨고 고개를 끄덕이는 쾌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요.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마구 잘난 체를 해주시는 겁니다. 잘난 체를 할 때는 반드시 이해하지 못한 이들을 씹어야 제 맛이므로 까놓고 보면 야, 넌 책을 발로 읽었냐? 하는 내용의 말 일지라도 이것을 스리슬쩍 돌려가면서 은근히 가르치듯 씹어주어야 어른스러운 행위라는 차이점 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렇죠. 물론입니다. 그렇게 해서 기쁨을 누릴 수도 있겠습니다.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자면 하나의 작품을 통해 이렇듯 각자가 보이는 만큼의 내용을 두고 책 모임에서 토론을 하는 행위는 아주 재미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또 이런 작품이 그 바닥에서 본연의 임무에 충실한 평론가 분들이 유독 좋아하는 분야가 아니겠습니까. 왜 아니겠습니까. 저라도 그럴 겁니다. 내가 가장 잘 아는 분야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작품을 읽는다는 건, 말하자면 일종에 물 만난 고기나 다름없는 것인데요.   

 

      그런데 저는 이렇게도 생각합니다.

      나는 말이지, 메타포니 알레고리니 하는 것은 아무 것도 몰라. 네가 아무리 이 소설이 어떻다니 설명을 해줘도 모를 뿐만 아니라, 별로 알고 싶지도 않으니까 굳이 잘난 척을 하고 싶다면 닭똥집을 사면서 하라고. 그럼 일단, 들어는 줄테니까 말이야. 그렇지만 말이야. 나도 이 소설이 좋았어. 너처럼 그렇게 많이 알고 많은 것을 보지는 못했어도 나는, 뭐랄까, 어떤 느낌이 좋았어. 말로 표현할 순 없지만 어떤 문장에서는 나 자신을 되돌아보게 해주어서 좋았고, 잔잔하게 차분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좋았어. 단지 그것으로 족하면 안되는 거야?

      나는 말이야, 오히려 그렇게 구구절절 따지고 분석하는 게 오히려 더 별로라고 생각해. 문학이라며. 수학이 아니잖아. 그러니까 이건, 때론 말로 설명할 수 없어도 그냥 가슴으로 느껴지는 걸 즐기는 거,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한단 말이지. 

      무엇이 좋았다고 말을 할 순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제대로 읽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거야. 알아 들어? 그러니까 너도 네 방식대로 어려운 말을 써가면서 즐기도록 해. 나 역시 많이 안다면, 때로는 그런 방식으로 즐기기도 할테야. 그러나 말이지, 그렇다고 해서 상대가 누리는 즐거움을 폄하해서는 안된다고. 

      물론 많이 알면 그만큼 더 보여서 더 많은 걸 이해하고 거기에 따른 기쁨을 누릴 수도 있겠지만, 문학이란 게 굳이 그렇게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

      그냥 느끼고, 안 느껴지면 말고, 느꼈고 좋았는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으면 모르는 데로, 그러다가 문득 뭔가가 떠오르면 그 떠오르는게 정답이라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알아야만 제대로 읽은 것처럼 말하는 방식 말이야. 그거 문제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에게 강요하는 거 그게 문제인라고. 넌 다 알고 얘기하는 거라고? 그렇다면 넌 내가 이 작품을 읽고 뭘 느꼈는지 그것도 알아? 거 봐. 모르잖아. 그러니까 넌 잘 모른다고. 다 아는 게 아니라고.

      정도가 되겠습니다.

 

      운동 시간이 다가와서 리뷰 급정리합니다. 정리라고는 해도 할 말은 다 했네, 이자식, 교묘해.

http://blog.naver.com/vitojung



b******k 2010.03.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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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 포기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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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책. 공상소설? 추리소설? 멜로소설? 여러 장르가 복합되어 난해한듯하면서도 재미가 솔솔 느껴지는 책이다. 두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독특한 구성에 처음엔 적응못하고 책장 넘기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두 이야기가 연관되어 사건의 실마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부턴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고로 머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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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는 책.



공상소설? 추리소설? 멜로소설?
여러 장르가 복합되어 난해한듯하면서도 재미가 솔솔 느껴지는 책이다. 두가지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되는 독특한 구성에 처음엔 적응못하고 책장 넘기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두 이야기가 연관되어 사건의 실마리가 된다는 사실을 알고부턴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사고로 머리가 나빠져 글을 읽지 못하게 된 대신 고양이상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된 나카타상.



나카상에게 인간으로서의 매력을 느끼고 낯선 행선지로 같이 여행을 떠나는 트럭 운전기사청년 호시노상.(이름 맞나?-_-)



어렸을때 엄마와 누나로부터 버림을 받고 아버지로부터 엄마와 누나와 관계를 맺게된다는는 저주를 받고 살아가는 주인공.



남성도 여성도 아닌 '제 3의 성'을 느끼며 남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 도서관 사서.


분신과도 같았던 첫사랑을 하늘로 떠나보내고
15살 소녀의 기억에 멈춰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삶을 살고 있는 베일에 싸인 여자.


어쩜 이렇게도 독특한 배경속에 다양한 인생 역경을 거친 사람들로 인물 설정해놓았을까. 문외한인 나로서는 걸작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43년간 고심한 끝에 탄생한 책이란건 믿을 수 있겠다.



평범한 사람들 이야기, 평범한 소재, 평범한 구성에
싫증을 느낀 사람에게 추천하고픈 책이다.
처음에 지루하다고 중도 포기 하지 말것!

 

 

 



b******2 2009.08.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