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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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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을 기억한다. 아니 잊었다. 그때로부터 시간은 한참을 흘러왔고 나는 가끔 바쁘거나 자주 멍하게 지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할 뿐이었다. 떠밀리듯 일을 했고 도망치듯 일을 그만두었다. 숨죽여 지내며 책을 읽었다. 봄이 왔다가 가버렸고 여름은 오래 머물렀다. 방안에 쌓인 책의 높이만큼 절망도 높아졌다. 아무것도 되지 못하리라는 절망이었다.   많은 책들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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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을 기억한다. 아니 잊었다. 그때로부터 시간은 한참을 흘러왔고 나는 가끔 바쁘거나 자주 멍하게 지냈다. 글을 쓰고 싶다는 마음만 가득할 뿐이었다. 떠밀리듯 일을 했고 도망치듯 일을 그만두었다. 숨죽여 지내며 책을 읽었다. 봄이 왔다가 가버렸고 여름은 오래 머물렀다. 방안에 쌓인 책의 높이만큼 절망도 높아졌다. 아무것도 되지 못하리라는 절망이었다. 

  많은 책들을 읽었고 읽는 것으로 나를 위로하고 싶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이 나오면 적었다. 어떤 작가의 책을 읽고는 작가의 말을 그대로 적었다. 작가의 말을 읽고 마음이 먹먹해졌다.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반짝, 하고 가능성의 신호가 켜졌다. 


 그해의 마지막 날, 그러니까 12월 31일 밤이었지요. 나는 불꺼진 부엌 싱크대 위에 한 통의 편지를 올려놓았습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고백을 가족에게 처음 꺼낸 편지였고, 직장을 그만두고 딱 이년만 방에 틀어박혀 소설을 써보겠다는 나름의 결심을 적은 글이었습니다.

  밤이 지나면 저는 스물여섯이었고, 소설을 제대로 써본 적이 한 번도 없는 건 물론이고, 이 년이 지난 대서 무슨 일이 생길 거란 기대도 없었지만, 활자로 인쇄된 내 글을 한 조각이라도 읽어볼 수 있다면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전부 잃어버린대도 후회하지 않을 것 같은 기분이었습니다.


  오현종의 『사과의 맛』이라는 작품 뒤에 실린 작가의 말이었다. 한참을 읽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옮겨 적었다. 지금 『사과의 맛』 속에 실린 작품들의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 공책에 옮겨 적은 작가의 말의 풍경만이 남았다. 작가가 되기 전 다큐를 만드는 방송국에서 일을 했고 같이 일했던 선배에게 처음 말을 걸었던 그 공간의 풍경. 아름다운 글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이야기. 일을 그만두고 가족에게 소설을 써보겠다는 결심을 쓰는 밤. 작가 오현종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담긴 글을 읽고서 나의 시간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작가가 되겠다는 결심조차 하지 못하고 시간을 흘려보내고 있던 나에게 그 글은 위로가 되었다. 웅크려 책만 읽는 이 시간이 어느 지점에 가닿아 빛이 되어줄 수 있다는 격려였다. 그때로부터 한참의 시간이 흘렀고 여전히 나는 변하지 않고 그대로이다. 집중력 부족, 실천력 제로의 나는 결심만 한다. 작가가 되지 않아도 좋다는 생각 하나가 추가되었을 뿐이었다. 작가가 되면, 그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라는 궤변을 늘어놓고 주말 오후를 김치볶음밥이나 먹으며 지내고 있다.

  2017년을 기억할 것이다. 오현종의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를 읽으며 2008년을 떠올렸다. 패배감에 사로잡혀 있던 그때 나를 위로해준 작가의 말. 오현종의 세 번째 단편집을 손에 들고 가물거리는 기억과 싸운다. 많은 것들이 변했지만 작가의 말을 적었던 공책은 그대로 책꽂이에 꽂혀 있었다.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에 실린 소설들의 풍경은 이른 새벽, 숨죽여 자신들의 미래를 그려보는 청춘들의 가난한 모습을 그려보는 것에서 출발한다. 연금생활자인 아버지의 집에 얹혀살면서 결혼을 꿈꾸지 않는 아들의 모습이 있고 남자친구의 면회길에 따라나서 그의 어머니와 한방에 누워 잠 못 드는 여자가 있다. 낯선 곳에 눈을 떠 어리둥절한 채 하루를 보내는 연인이 있고 난장이의 죽음에 잘못이 없다는 이야기를 하는 늙은 여인이 있다. 

  소설의 풍경은 무채색의 배경으로 쓸쓸하고 어둡고 고즈넉하다. 인물은 둘 이상을 넘지 않는다. 혼자 독백으로 이야기를 하거나 남녀가 나와 서로가 가진 침묵의 깊이를 확인할 뿐이다. 「호적을 읽다」에서는 호적등본이라는 서류 하나만으로 주인공 집안의 역사를 이야기 해낸다. 소설은 이야기로서 강요하지 않는다. 낯선 사람들이 모여 무심코 내뱉는 말들을 보여 주고 여관의 더러운 이불과 고기 없이 해산물로만 가득한 음식의 이상함을 내보인다. 독자는 일상에서 볼 수 있는, 봤지만 의미 없이 지나갔던 장면들을 마주함으로써 「모든 것이 붕괴되기 이전」의 세계 앞으로 다다른다.

  내게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 있고 시간이 있다. 2008년으로부터 9년의 시간이 흘러 당도한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를 읽으며 지낸 한 주가 있다. 일상은 사소한 오해에도 울적한 마음으로 변질되어 너덜너덜해지기도 하지만 졸린 눈을 비비며 문장을 읽고 단어를 고르는 시간으로 알록달록 해지기도 한다. 작가가 되기까지의 쓸쓸한 풍경과 내면을 읽으며 버티는 2017년의 어느 하루는 기뻤다고 쓴다. '어떤 마음을 나눌 수 있으면 좋겠어요. 행복을' 손글씨로 보내온 안부 인사를 여러 번 읽으며 아직은 추운 바람이 부는 사월의 밤을 기억하기 위해 애쓰기 시작할 것이다.

  

 

s*****m 2017.04.27. 신고 공감 6 댓글 6
리뷰 총점 종이책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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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아는 소설가지만 지금까지 책은 한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번 소설집이 벌써 아홉번째 책이더군요. 꾸준히 책을 썼군요. 이것보다 먼저 다른 걸 만날 수도 있었지만 기회를 놓쳤습니다. 얼마전에는 단편소설에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 이야기를 쓸까 했는데, 여기 실린 소설 속 사람은 또 다릅니다. 소설 쓴 사람이 다르니 다를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다 해도 같은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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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을 아는 소설가지만 지금까지 책은 한권도 만나지 못했습니다. 이번 소설집이 벌써 아홉번째 책이더군요. 꾸준히 책을 썼군요. 이것보다 먼저 다른 걸 만날 수도 있었지만 기회를 놓쳤습니다. 얼마전에는 단편소설에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는 사람 이야기를 쓸까 했는데, 여기 실린 소설 속 사람은 또 다릅니다. 소설 쓴 사람이 다르니 다를 수밖에 없겠네요. 그렇다 해도 같은 게 하나 있습니다. 그건 어떤 소설이든 개인을 그린다는 겁니다. 세상에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뿐 아니라 평범하게 살아가는 사람도 있잖아요. 가까이에서 들여다 보면 누구 삶에든 힘든 점뿐 아니라 좋은 점도 있겠지요. 소설은 그런 걸 보게 해줍니다. 자기 삶과 다르다 해도 소설을 보고 자신을 생각하기도 하지요. 겉에서 보면 평범한 사람도 잘 보면 평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여기 실린 소설에 나오는 사람 가운데 저와 비슷한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일이 처음은 아니군요. 그냥 그렇다는 겁니다.

 단편 여덟편에서 책 제목과 같은 단편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는 나머지와 좀 다르게 보입니다. 얼마 뒤에 결혼할 두 사람이 어딘가에 갇혀있다 풀려나는 건데 어쩐지 무섭더군요. 그런 소설이 더 있을지 모르겠는데, 제가 아는 건 미야베 미유키 소설 《레벨 7》입니다. 그 소설에서 갇히는 두 사람은 잘 모르는 사이였던 것 같은데. 아니 기억이 없어서 모르는 사이로 생각한 것일지도. 거기에서는 누가 그런 짓을 했는지 알게 되지만, 여기에서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단편이어서겠지요. 이 소설 제목에 어울리는 건 <연금 생활자와 그의 아들> 같기도 해요. 여기 나오는 아들 ‘나’는 연극하는 사람으로 ‘햄릿’ 연극을 해요. 자신은 광대가 아니고 햄릿 왕자를 맡았다고 말합니다. 햄릿은 왕이 아니고 왕자군요. 이 소설은 소설에서 본 이야기 같기도 하고 뉴스에서 들은 이야기 같기도 합니다. 아버지 때문에 어머니가 죽었다는 식으로 말하지만 마지막에 반전이 기다립니다. 그건 말하지 않는 게 낫겠지요. 오현종이 이런 이야기 처음 쓴 건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가는 자신이 쓰는 소설에 자신의 분신을 쓰기도 합니다. 소설에서 소설가라고 해서 그게 소설가 자신이라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 소설을 읽는 사람은 소설가 이야긴가 보다 하겠지요. 그런 소설이 여기에는 세편 나옵니다. <부산에서> <호적을 읽다>예요. 한편 더 <약의 역사>도 어쩐지 비슷한 느낌입니다. 여기 나오는 ‘나’는 영문학과지만. 영문학과라 해도 소설은 쓸 수 있겠습니다. 아직도 소설가는 직업이 아니군요. 그래도 큰 상을 받고 이름이 잘 알려진 사람은 좀 다르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그런 사람은 시간 강사 같은 일은 하지 않고 소설만 써도 괜찮겠습니다. <부산에서>는 소설가면서 시간 강사로 지내는 사람 이야기기도 한데, 그게 그렇게 안 좋게 보이지 않아요. 실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여러가지 걱정을 할지도 모르겠지만. 저보다는 낫다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이나 하다니. <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는 신문에서 신춘문예 당선자는 아니고, 예심에 붙은 사람 이름을 보고 ‘나’는 예전에 사귄 남자친구 이름을 보게 됩니다. 남자친구는 소설가가 되겠다고 했거든요. 그래서 ‘나’가 좋아했는데 ‘나’가 소설가가 됐습니다. 이 소설은 지금보다 오래전 일을 떠올립니다. 예전 남자친구와 왜 헤어졌는지 다시 생각하는 건지도. <호적을 읽다>는 호적과 반대인 소설이 생각나게 했어요. 호적에는 그 사람 이야기는 없고, 그 사람이 언제 태어나고 언제 결혼하고 자식은 얼마나 있고 언제 죽었나 하는 게 몇줄로만 적혀 있지요. 소설가인 ‘나’는 미국 비자를 신청하려고 호적등본을 떼고 거기에 쓰인 것을 봅니다. ‘나’는 증조할머니, 할머니 그리고 고모를 생각해요. 이렇게 쓰고 보니 여성의 삶이군요.

 앞에서 이 책 제목과 같은 단편이 다른 소설과 다르다고 했는데 <모든 것이 붕괴되기 이전에>도 좀 다릅니다. SF 같아요. 여기 나오는 사람은 자신을 괴물로 만든 아버지를 죽이려고 아직 자신이 태어나지 않은 때로 돌아갑니다. 이런 이야기 떠오르는 거 있지요, <터미네이터>. 다행이라 할까 아버지를 죽이지 않고도 다른 세상이 생겼어요. 그건 평행우주예요. 현실은 바꾸지 못하는데. 아니 여기서도 바뀌는 건 아니고 다른 세상이 나타나는 거군요. 평행우주는 어떤 결정을 하면 하나 생겨나는 거기도 하죠. 소설에는 나아지는 세상이 나타나도 우리 삶은 한번이고 지금 여기가 다예요. 안 좋은 쪽으로 흐르지 않게 해야겠지요. 그런 생각해도 잘 안 되기도 할 테지만. 아버지와 아들은 조금이라도 말을 나누면 서로를 조금은 알 수 있을 겁니다. 이건 어느 사이든 그렇겠군요. <난장이 죽음에, 나는 잘못이 없다>는 조세희 소설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 생각나게 했는데 그 소설이 조금 나옵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 ‘나’는 경비원 김씨가 죽은 일에 아주 잘못이 없을까요. ‘나’가 한 말이 다 나온 건 아니지만 무슨 일이 있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하면 안 될까요.

 이 책에 담긴 소설에 나오는 사람은 조금 평범하다 생각하기도 했는데 아주 평범하지 않은 것 같기도 합니다. 아니 평범한 사람 이야기도 소설로 쓰면 다르게 보일지도. <약의 역사>에서 ‘나’와 섭은 깊은 관계는 아닙니다. ‘나’가 아플 때면 섭이 약을 만들어주곤 했어요. 섭이 다른 사람을 만나 결혼하면 ‘나’는 기분이 안 좋겠습니다. 그 일로 아픈 마음은 어떤 약으로도 낫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희선




☆―

 긴 삶에서 몇만 가지 느낌을 겪어낸다 해도, 끝내 운명을 거스르지 못한다 해도, 훗날 내가 죽은 뒤 남는 기록은 단 몇 줄일 뿐이다고 호적은 알려주었다. 만남과 헤어짐, 두려움과 외로움은 공식 문서로 기록되지 않는다. 문득 증조모의 생애처럼 내 삶도 건조하고 짧은 기록으로 요약된다는 사실이 깊은 위안으로 다가왔다. 할머니 삶도, 아주 멀리 있는 그의 삶도 결국에는 몇 줄로 남은 채 바스러질 시간이란 사실 또한. 할머니가 들려준 그 많은 이야기 속 이름들 역시 언젠가는 제적이란 두 글자와 함께 모두 검은 잉크 속으로 스며들어버릴 것이었다. (<호적을 읽다>에서, 212쪽)


이달의 사락 n***8 2017.09.25. 신고 공감 1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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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현종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 타인과 나의 좁혀질 수 없는 간극
"오현종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 타인과 나의 좁혀질 수 없는 간극" 내용보기
"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1995년 여름방학, 나는 K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운전기사, 어머니 회사의 곽사장과 함께 강원도 화천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는 K의 면회를 갔다. 입소하기 전에 K는 아버지에게서 후방으로 빠질 수 있게 손써보겠다고 들었다지만, 뭐가 잘못됐는지 그는 전방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었다.나는 K에게 잘 보이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정성껏 화장을 하고 그가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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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의 어머니와 면회를 갔다"


1995년 여름방학, 나는 K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운전기사, 어머니 회사의 곽사장과 함께 강원도 화천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는 K의 면회를 갔다. 입소하기 전에 K는 아버지에게서 후방으로 빠질 수 있게 손써보겠다고 들었다지만, 뭐가 잘못됐는지 그는 전방에서 군생활을 하고 있었다.
나는 K에게 잘 보이기 위해 새벽부터 일어나 정성껏 화장을 하고 그가 좋아하던 원피스를 입고 불편하지만 그의 어머니의 일행 사이에 끼어 외박 나온 그를 만나지만, 정작 둘만의 시간을 보내지는 못한다.



나는 마음을 졸이면서도 이상하게 K에게 끌렸다. 가난하다고도, 반대로 부자라고도 단정지을 수 없는 불안정한 K가 좋았다. 쉽게 K를 떠날 수도, 그렇다고 영원히 그의 곁에 머무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p.50



대학시절 남자친구인 K의 면회를 가게 된 "나"의 회상이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닌 그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일행인 사람들과 함께였다.
그랬기에 제대로 된 대화조차 나누지 못하고 K는 다시 부대로, 여자는 서울로 돌아온 뒤 얼마 지나지 않아 K는 그녀에게 편지를 보냈다. 앞으로는 편지를 보내지 않을 거고, 받고 싶지도 않다는 내용이 담겨있었다.

여자에게는 그때의 기억이 언제까지고 잊혀지지 않을 것 같았다. K의 꿈이었다던 소설가가 된 것이, 가끔씩 걸려오는 K의 전화를 받는 것이, 현재 사귀고 있는 사람에게 K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그랬다.
K가 나쁜 사람이면 안 되냐던 사귀던 사람의 말이 여자의 마음에 날카롭게 꽂히기를 바랐다. 과거의 기억에 발목 잡혀 현재의 소중한 것을 스쳐지나가게 놔두지 말라고 말해주고 싶었다.





"나는 왕이며 광대였지"


곧 결혼을 앞둔 커플인 기와 진은 꽃무늬 벽지의 원룸에서 깨어난다. 작은 방에 창문 없는 화장실 하나, 손잡이가 없는 현관문 아래쪽에는 작은 개구멍만 하나 뚫려 있었다.
전날 둘은 기의 집에서 잠이 들었는데 깨어보니 이곳이었다. 둘은 서로에게 앙심을 품고 이런 짓을 저지를만한 사람이 있는지 생각해본다.
그러다가 개구멍을 통해 쪽지가 하나 들어온다. 다음날 오전까지 남자 손가락 2개 혹은 여자 손가락 1개를 잘라 문밖으로 내놓으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말이지, 왜 자기 손가락은 두 개고, 내 손가락은 한 개일까?"
에게는 의 물음이 이상할 정도로 기분 나쁘게 들렸다.   p.78



갑자기 밀실에 갇혀버린 커플. 어디에 갇혀있는지, 그들을 누가 가뒀는지, 무슨 목적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손가락을 잘라서 내놓으라는 쪽지만 놓고 갔을 뿐이었다.
처음엔 이 상황을 상의하고 누가 그랬을지 생각도 해보며 서로에게 의지하던 둘은 점점 사이가 벌어져간다. 평소와 다름없는 말투였지만, 그런 상황에 놓여있었기에 서로의 반응을 예민하게 받아들인다.
거기에 도화선이 되어준 손가락 개수 때문에 속으로만 생각하던 예민함은 서로에게 칼날을 세우게 된다.

극한 상황에 놓였을 때 서로에게 어떻게 반응하는지 보여주는 단편이라고 생각했다. 한창 좋을 때인 예비 부부는 날선 예민함이 점점 극대화되어갔다.
마지막에 정확한 결론을 내려주지 않아서 이게 뭐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사람 사이의 관계를 한순간에 차갑게 바꿔놓을 수도 있는 사건이란 생각이 들어 좀 무서웠다.

소설 속에 인용된 오지 오스본의 "Goodbye to Romance"의 노래 가사를 보니, 사건 이후로 그들의 관계가 과거와는 달라졌다는 의미가 결말에 어울리는 해석인 것 같다.(아님 말고.)





"난장이의 죽음에, 나는 잘못이 없다"


이 아파트에 살면서 관리비 한 번 연체한 적 없는 "나"를 사람들이 괴롭힌다. 현관문을 두드리고, 전화를 걸어 골치가 아프다.
아파트 경비로 일하는 "난장이"가 옥상에 올라가서 떨어져 죽은 이후 그들은 나를 괴롭힌다.



이곳엔 새로운 고용인이 오고, 경비 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계속 오고, 바뀌고, 가면 또 올 것이다. 김씨이거나 박씨이거나 난장이이거나 개이거나, 내게는 매한가지였다.   p.136



뉴스에서 하루 걸러 하루 나오는 을의 억울함에 대한 기사를 자주 볼 수 있다. 이 단편은 을의 입장이 아닌 갑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파트 경비라는 "을"의 죽음 이후, 모르는 사람에게서 전화가 걸려오고 집으로 기자가 찾아오기도 하는 "갑"이었다. 왜 자신에게 따지는지 모르겠다고, 왜 귀찮게 구는 거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 노인에게는 사람을 계급으로 나누는 아주 몹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본인은 교사로 40년간 일했고, 딸은 미국에서 일하고 사위는 무려 미국 대학 교수고, 아들은 일류 직장에 약사 며느리를 뒀다. 그런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것을 못 참는 듯 보였고, 경비일을 하는 사람들을 아주 얕잡아봤다.

소위 갑질하는 인간들의 생각을 엿들은 것 같은 느낌이라 정말 불쾌했다. 거기다가 이 노인은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이 전혀 없는 인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런 쓰레기 같은 사상이 틀어박힌 인간이 너무 많을 거란 생각이 들어 읽는 동안 내내 짜증이 났다. 비단 지어낸 글에만 있는 인물이 아닌 게 너무나도 분명했다.

 

 

 

나는 나이를 먹어간다는 게, 어른이 된다는 게 어떤 일일지 알 수 없어 두려워. 세상을 살아간다는 건 점점 지름이 좁아드는 깔대기 안으로 미끄러져내려가는 일이 아닐까. 의자 뺏기 게임을 할 때처럼 흥겨운 노래에 취해 의자를 놓쳐버리면 아무데도 앉지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p.54



세상을 살아가며 이어지고 끊어지기도 하는 인연을 보여준 단편이 있었고, 어쩔 수 없이 잡고 있는 인연의 끈도 있었다. 그게 연인이기도 했고, 가족이기도 했다.
여러 관계들 속에 다양한 사람들을 이 단편집에서 만났다. 그리고 그들은 대체로 쓸쓸했다.
SF 느낌이 나는 "모든 것이 붕괴되기 이전에"와 그야말로 가족적인 "호적을 읽다"마저도 역시 쓸쓸했다.
그래서인지 책을 다 읽고 나서 나도 조금은 쓸쓸해진 것 같다. 차분히 가라앉아 책에 대한 생각을 했다.
아마도 사람이란 다 이런 쓸쓸한 구석을 담고 있는 고독한 존재일지도 모르겠다.

오현종 작가의 책을 벌써 세 번째 읽었다. 책마다 다른 매력이 있던 작품을 만났다.
최근에 국내 작가의 책은 단편만 읽었던 터라 다른 걸 읽고 싶었는데 어쩌다 보니 이번에도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 단편인 줄 모르고 읽어서 좀 아쉽지만, 그래도 확실한 색깔이 담긴 단편들만 모아놓은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s********5 2017.07.0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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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내면에는 누구나 이중의 얼굴이 있다.
"인간내면에는 누구나 이중의 얼굴이 있다." 내용보기
작자는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한 인간의 내면에 다양한 혹은 이중적인 인간의 모습이 있다는걸 말하고 있다.읽으며 내내  십여년전 본 영화  왕의 남자 공길이 생각났다.연산군도 왕의 가면을 쓴 인간이듯이 현대의 인간도 수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왕이나 세오더라도 인간은 감정을 분출해야 할 때가 있다. 차마 자신의 체면때문에 하지못했던 말과 행동들이 쌓이면 병이 될 수도 있
"인간내면에는 누구나 이중의 얼굴이 있다." 내용보기

작자는 아무리 성인군자라도 한 인간의 내면에 다양한 혹은 이중적인 인간의 모습이 있다는걸 말하고 있다.읽으며 내내  십여년전 본 영화  왕의 남자 공길이 생각났다.연산군도 왕의 가면을 쓴 인간이듯이 현대의 인간도 수개의 가면을 쓰고 살아간다.

왕이나 세오더라도 인간은 감정을 분출해야 할 때가 있다. 차마 자신의 체면때문에 하지못했던 말과 행동들이 쌓이면 병이 될 수도 있다.그때문에 현대의 인간이 얼마나 마음의 병이 깊은가?..
 인간의 사회적위치와 체면때문이라도 발산못하는 욕구가 때론 연극같은 익명의 가면아래서 분출되기도한다.그러면서 느끼는 쾌감이란..왕이자 광대란건 연극의 무대위에서 가면을 쓰지 않고는 안되는 역활을 말한다.
아무리 성스러운 인간이라도 탐욕과 분노의 감정이 있다.때로는 그걸 노출시키는 게 자연스러운 일같다.

a***2 2017.10.24.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