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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소설이기는 한데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재구성해 보여주는 식의 소설은 아니다. 사명대사의 생애에서 1604년에서 1605년까지의 시기만을 보여준다. 즉, 임란 이후 도쿠가와 막부에서 화해와 수교를 요청하자 사명대사가 선조의 명령을 받아 일본 정탐을 다녀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셜록 홈즈 식의 탐정이야기도 물론 아니다.
사명대사는 대마도를 거쳐 잇키 섬과 오사카를 지나 교토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회담하여 재침할 의도가 없음을 확약받고 2대 쇼군의 즉위를 지켜 본다. 그리고 조선인 포로 3000여명을 구하여 돌아온다. 이런 기본적 골격 위에 당시 유명했던 조선과 일본 양쪽의 실존 인물들을 다룬다. 이달, 허균, 조항, 소 요시토시, 가토 기요마사, 도쿠가와 이에야스 등등,,, 물론 가공 인물도 등장한다. 그런데 인물 묘사는 그리 생생한 편이 아니다. 사명대사의 불자로서 살생을 범했던 의승장으로서의 내적 갈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이 소설은 대중적 역사에세이처럼 임란 전후 조선과 일본의 역사적 상황을 쉽게 서술해주고 있다. 어떻게 보면 오늘날까지도 유효한, 정확한 일본론을 보여주는 책같기도 하다. 물론, 이 모든 역사 배경과 일본론을 등장인물의 대화를 통해 보여준다는 점에서 소설답지 않아 보이는 점도 있다.
"풍신수길이 하늘의 벌을 받아 전쟁 중에 죽었고 그 후유증으로 큰 혼란이 왔지만, 그 전쟁은 '화和'라는 대의명분 아래 치러진 국가 대사였기 때문에 누구에게도 책임을 묻지 않는 것이지요. 그것을 잘못이라고 말하면 나라 전체가 잘못이라는 뜻이 되기 때문에 설사 많은 사람이 그런 생각을 속으로 품어도 결코 겉으로 그런 말은 하지 않습니다." - 180쪽
위와 같은 식이다. 중고교 학생들이나, 일본에 관심있는 성인독자들이 관련 분야 독서 시작하기 전에 읽으면 쉽게 임란 전후 일본사와 일본 민족성에 대해 감 잡을 수 있는 소설이라고 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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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자 후기에서도 말했듯이 나또한 어릴때 사명대사의 영화를 인상깊게 봤던것이 기억난다. 방에 불을 밤새도록 지피고 다음날 문을여니 사명대사고 온몸이 고드름이되어 있었던 일화의 한자락이 떠오른다. 아마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기억을 갖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왜그렇게 과장되게 표현했는지를 후기를 읽고 다시한번 생각할수 있었다. 전쟁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에게 사명대사의 행적은 위안과 희망 그리고 분노를 잊을수 있는 좋은 예가 되었기 때문일것이다.
조선의 숭유억불이란 단어의 중요성을 망각하고 있었다. 나라가 어려울때 살생을 금하는 스님들이 나라를 살리고자 의승군을 일으키는건 쉽지않았을텐데 더구나 조선에서 승려의 지위가 가장 하층이었다니 스님들의 의승군을 또다른 시각에서 바라볼수 있었다.
일본은 자신들이 일으킨 전쟁의 사죄를 하지도 않은채 교역을 하자고 요청한다. 그들이 하는 작태는 요청이아니라 요구같이 느껴지는건 왜일까 조선은 일본이 또다시 전쟁을 하고자 하는지에 대한 관심이 많다. 그래서 일본에가서 그들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를 느끼고 사명대사에게 그 막중한 임무를 부여한다. 그를 따르는 이들은 사명대사가 일본에 가는걸 반대하지만 임금의 명을 어길수 없다 결국 일본으로 건너갈때 도움이 되도록 최대한 노력을 하는걸로 위안을 삼는다.
그런데 조선과 일본의 정치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일본은 자신들의 잘못을 반성할줄를 모르는 민족인듯 싶다. 사명대사가 떠나기전에 항왜인 김충선은 자신의 제자를 보내 일본인의 특성을 설명하는 장면이 있다. 일본민족은 개인보다 집단의 의견을 따르는 민족으로 옮고 그름을 따지지 않는다. 쇼군의 조선을 침략하는 전쟁을 요구했을때 그들은 전쟁으로 일어날 전후 사정을 따지지 않고 쇼군의 명령에 따를뿐이란 것이다. 그러므로 전쟁에대한 책임또한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2차세계대전후 그들의 작태를 보건대 일본민족의 특성을 제대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명대사는 일본으로 건너가 그들에게 전쟁에대한 사죄를 끈임없이 요구하지만 언제나 그들의 대답은 책임회피일 뿐이다 모는되는 풍신수길의 죄라고 그는 죽은자는 말이없고 자신들은 그의 명을 따랏을 뿐이라고 그나마 사명대사의 학식과 덕망을 높이 평가한 그들은 피로들을 귀환하는데 합의를 한다.그마저도 어렵게 이루어 낼수밖에 없는 그들의 후안무치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할 것이다. 일본이란 민족의 특성을 잊지말고 그들의 말속에 숨은뜻을 깊게 되새겨야 하는 것이다. |
![]() 칠 년간의 왜란으로 폐허가 된 조선, 선조의 특명을 받고 일본으로 건너가 삼천명의 피로를 송환시키기까지 전설적인 인물 사명대사의 역사적 여정
신화적 * 전설적 인물로 표현되던 사명대사,,아이였을때 엄마가 들려주던 사명대사의 전설적인 이야기도 기억이 나고,어릴적에 사명대사의 영화를 보았던 기억도 난다,,희고 긴 수염을 희날리며,손에는 긴 지팡이를 집고 산허리에 서서 조선의 앞날을 걱정하던 모습이 기억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역사시간에는 왜란속에서 승군을 일으켜 전장을 누비고 다녔으며, 이후에 선조의 명령으로 외교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파견되었다는 간략하게만 배웠었다. 왜군이 쳐들어 왔을때 과연 서산대사가 아니였다면은 승군(승려군)을 총궐기하여 일사분란하게 전쟁을 치러낼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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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일본탐정기 - 드디어 사명대사를 다시 만나다 -
십대 초반에 부모를 일찍 여의고 절에 들어가 스님이 되고, 서산대사의 제자가 된 사명대사.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나라가 위기에 처하자 선조임금은 서산대사를 불러 '8도 16종 도총섭' 이라는 직첩을 전하며 승군을 일으키라 명한다. 이에 서산대사의 제자였던 사명대사가 그 중책을 맞고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구해낸다. 불교에 귀의했으니 세속의 일에 관여하는 것은 옳지 않고, 살생을 저지르는 것도 옳지 않다는 반대가 있을 때마다 사명대사의 생각은 한가지였다.
"절에 있건 저자의 진흙구덩이에 있건 중의 몸이 어찌 그 누구의 것이겠느뇨. 이 나라 중생이 언제 또 전란과 화마에 휩쓸릴지 모르니, 언제든 가서 구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고 또한 부처의 뜻일 터!"
많은 시간을 나라를 위해 의승들과 많은 전쟁터에 공을 세우며 임금의 주변에서 항상 부름을 기다리던 사명은 61세의 나이에 다시 일본에 사절단을 이끌고 다녀오라는 선조의 명을 받는다. 워낙 노령에 주위에서 많은 사람들이 걱정을 하기도 했지만, 나라를 위해, 임금의 명을 받들어 사절단이자 일본탐정길을 떠난다. 그 당시 일본은 7년간의 전쟁을 일으켜 우리 조선을 엉망으로 만든 이후였고, 많은 피로들은 일본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전쟁을 일으켰던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사망한 후 다시 조선과의 강화를 원했던 것이다.
"나 지금 이 자리에서 분명히 뜻을 밝히겠습니다! 이제 그대의 막부 장군에게 반드시 전하도록 하시오! 이제라도 스스로 죄값을 치르지 않으려거든 강화라는 말은 입 밖에 꺼내지도 말지어다! "
노구를 이끌고 갖은 고생끝 에 일본에 도착한 사명대사는 일본 앞에 너무도 당당했다. 일본이 조선과 강화를 위해서는 난리 중에 데려간 피로들을 모두 풀어줄 것, 조선 선대 임금의 능침 이었던 선릉을 훼손한 일본 군사를 처단할 것, 그런 연후에 화평에 대해서 다시 거론할 것을 요구한다. 모두가 안된다고 떠남을 말릴 때부터 사명대사는 일본에 가서 꼭 해내고자 결심했던 일들을 한 가지씩 실천하며 당당하게 사절단의 일을 치른다.
사명대사가 우리나라로 다시 돌아올 때는 1500에 가까운 피로들과 함께 였고, 상경하여 임금 앞에 사절단의 결과를 보고 한다. 많은 일본인 들도 사명대사를 존경하여 가는곳 마다 사람이 넘쳐 났으며, 그의 말과 글, 시를 배우기 위해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전쟁이 없을 때는 글로써, 전쟁이 일어나면 의승장 으로 나라를 위해, 백성을 위해 일어났던 그는 사절단에서 돌아와 67세의 나이로 입적한다.
과거의 우리 역사를 따라가다보면 꼭 퍼즐을 맞춰 나가는 것 같기도 하고, 끊어졌던 연결고리를 다시 맞추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 번 사명대사를 읽으면서도 그랬다. 역사에 위인인 듯, 전설 속에 사람인 듯 등장하는 사명대사의 이야기와 그의 업적을 따라가며 한 가지씩 몰랐던 사실들을 확인하고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우리에게 이렇게 당당한 분이 과거 400년전 우리의 조상이었다는 사실이 너무도 감동적이고, 뿌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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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에 적을 제합할 계책이 없으니, 운림의 노스님이 일어나셨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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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오랫동안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에 대해서 많은 궁금증을 가져왔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자행했던 좋지 않은 점들에 대해서 그 행동을 정당화하고, 더 나아가 후세에게 그 정당성을 알리는 행동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접하게 된 이 책은 일본인이 가지고 있는 고유의 가치관에 대해서 알려주었고, 또한 일본인은 언제든지 자신의 국익을 위해서 이웃나라인 우리나라를 침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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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 4월 14일 왜군은 부산진에 올라왔다. 4월28일 충주에서 대패하고, 5월2일 한양이 점령당했다. 우리 땅에 올라온 지 보름만에 수도를 유린했다. 당시 부산에서 한양까지는 청년들이 보통 걸어서 올라갈 때 걸리는 시간이다. 추풍평, 충주성 등의 방어막이 있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1636년 12월 13일 청군은 안주(安州)를 넘어왔고, 이틀 만에 왕은 궁을 떠나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버티다가 삼전도에서 왕이 무릎을 꿇었다. 1905년 을사조약에서 1910년 경술국치로 이어지는 과정도 이 못지 않게 간단했다.
이 과정에서 임금은 피난이라도 다녔지만, 백성들은 적의 무자비한 칼날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우리는 이 과정을 김훈의 ‘남한산성’이나 나만갑의 ‘남한산성의 눈물’ 등으로 접했다.
그러면 이 혼란을 극복한 이들은 누구였을까. 임진왜란의 경우 의병이나 승병 등 민초들이 바탕이 된 군사들이 지대한 공헌을 했고, 마지막까지 일본 제국주의에 저항한 것도 백성들이었다. 박덕규의 신작 ‘사명대사’(랜덤하우스 간)는 무너진 정치로 인해 유린 당한 백성들의 삶이나 그를 극복해야하는 인물들의 고뇌가 담긴 역사소설이다.
한치의 앞날도 보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위정자들과 이를 극복하려는 민초들의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첨단무기로 대변되는 지금 이 나라는 온전한 것일까. 그리고 만약 그런 위기가 다시 반복된다면 이 위기를 떨친 초인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하는 소설이다.
소설은 당시 정치적 파고를 벗어나지 못한 허균에게서 시작한다. 힘을 잃고 강릉의 ‘애일당’에 칩거한 허균을 찾아온 춘섬 일행은 사명대사가 일본에 탐색사로 파견되는 것을 말리는 과정에서 허균의 힘을 빌리기 위해 온 것이다. 허균이 사명대사를 만나서 설득해 달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미 사명대사는 오대산을 떠난 상태였다.
사실상 휴정 의상대사의 법맥을 잇는 큰 스님이자 임진왜란에 승병으로 공을 세운 유정 사명대사를 따르는 이들은 노구를 이끌고 뱃길부터가 험난한 일본으로 가는 것을 막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가장 의연한 것은 유정 스스로였다. 그는 그 모든 위협을 무릎쓰고, 일본으로 건너간다. 일본은 이미 전쟁을 일으킨 풍신수길의 죽음으로 마치 전쟁의 죄과를 갚은 것처럼 느낀다. 이런 배경에는 뎬노와 쇼군이 마치 지금의 왕과 총리로 분리된 것과 같은 상태였다. 그러니 뎬노는 물론이고 새로운 쇼군이 된 도쿠가와 이에야스까지 그 책임에서 벗어나려 한다.
다행히 유정은 조선과의 교역이 절대적이었던 대마도 소 요시토시의 협조로 순조로운 일행을 시작한다. 유정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숫자조차 파악되지 않은 조선인 포로들이었다. 이들은 일본 각지에서 비참한 노예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중에는 한양성 함락때 끌려온 옹주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위험도 따른다. 임진왜란에 참여했던 가토 기요마사는 새로운 쇼군을 도운 인물로 여전히 강력한 힘을 바탕으로 유정 일행을 위협하기도 한다. 그는 이런 여정을 극복하고 삼천명의 포로를 고국으로 돌아오게 하는 등 전쟁의 상흔을 씻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정은 큰 덕과 대담함으로 이 어려움을 하나씩 헤쳐나가면서 포로 송환은 물론이고 도쿠가와 집안의 조선에 대한 침략 방지 약속까지 받아낸다.
책은 유정은 물론이고 허균, 이곡 등의 역사적 인물과 홍주, 춘섬 등 픽션적 인물들로 조화를 이룬다. 또 최근 논쟁에 붙은 봉은사부터 대마도 등 당시 일본의 역사적 단편을 볼 수 있다. 특히 일본 쇼군들의 역사는 일본사 이해에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아쉬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초기에는 맹상군이 재주 좋은 이들을 모으듯 흥미로운 이들부터 홍주 등 여성들까지 유정에게 모이지만, 이들의 역할을 갈수록 애매해진다. 또 홍주의 마지막 선상 죽음 등은 흥미롭게 다루던 앞 부분과 달리 후반으로 갈수록 허무하기 이를 때 없다.
어떻든 저자는 픽션적인 요소도 중요하지만 역사적 사실에 충실하려하면서 이런 소설적 구성에 한계를 느꼈던 듯하다. 하지만 이를 떠나서 역사속 한 인물과의 만남은 흥미로웠다. 또 유정과 깊은 인연이 있는 봉은사에서는 다시 정치적 격랑이 일고 있다. 그 격랑에 자유로운 이는 기득권에 연연하지 않고 당당하게 시대에 할 말을 하는 이일 것이다. 그런 점에서 명진스님의 행보는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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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부터 약 7년 동안에 걸쳐, 조선의 백성들을 도륙하고 아름다운 산야를 피폐하게 만들었던 임진왜란. 그 끔찍한 전쟁에 얽힌 이야기는 참으로 많고도 많다. 침략국인 왜와의 이야기. 그리고 조선을 도와준다고 왔던 명나라와의 이야기. 그 전쟁중의 영웅들도 여럿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신나고 흥미로운 이야기는 스님의 신분으로 큰 활약을 거두었던 서산대사와 사명대사의 이야기일 것이다. 그런데, 스님들의 활약상은 신화나 전설속의 이야기처럼 부풀려져서 쓰여졌기에 아동들의 책속에서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워낙, 스님이 전쟁에 참여한다는 것이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교리에 맞지 않기에 그렇게 미화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정작 스님들의 자세한 행적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것이다. 임진왜란이 끝난후, 대마도는 일본 본토보다는 조선에 의지하여 살아 왔기에 조선과 일본의 수교가 단절되면 생활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 그래서, 대마도를 선도로 일본은 문호개방을 원하게 된다. 하지만, 조선의 입장에서는 침략국인 일본의 본의를 알 수 없는지라, 일본의 정세 및 재침우려의 상황 등을 타진할 임무를 띤 사람을 파견하게 되는데, 여기에 발탁된 인물이 사명대사이다. 그 시절엔 아주 할아버지에 대상하는 환갑을 지난 사명대사가 그 임무를 잘 할 수 있을까? 국서도 없고, 관직도 없고, 그가 가야 할 곳은 대마도에서 시작하여 당시 일본의 실세인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만나러 오사카를 거쳐서 교토까지 가야 한다.
이런 이야기가 주축이 되어서 '사명대사 일본 탐정기'는 시작되는 것이다. ![]() 사명대사는 스승인 서산대사의 법통을 이어 받았고, 임진왜란에서 의승장으로 활약을 보여 전투및 뛰어난 외교술로도 유명한 스님이다. 임진왜란이 끝난지 6년이 지났건만, 아직도 속세에 남아 국가의 일에 참여하는 것이 부처의 뜻을 거스르는 일은 아닐까 하는 우려도 만만하지 않다. 그러나, 그를 따르는 기생, 항왜, 상인.... 그리고 대만도에서 만나는 조선 옹주, 유학자, 승려 등등.... 그 결과 얻어지는 것은 조선 피로 삼천 명의 송환, 그리고 약 300년간 한일평화외교협정. 이 소설의 작가인 박덕규는 5년여에 걸쳐서 수 백종의 관련 자료를 모으고 분석하고, 일본도 여러차례에 걸쳐서 방문하면서 소설을 구성하고 썼다고 한다. 우리들에게 가까우면서도 먼나라인 일본은 그당시, 임진왜란의 침략자인 도요도미 히데요시의 사망과 함께 일본의 정치체제의 변화가 이루어졌고, 그런 역사적 사실을 알아야만 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고, 텐노, 쇼군, 번주 등의 관계도 일본의 정세를 알지 못하면 이해가 불가능할 수도 있는 것이다.
임진왜란시 끌려간 조선피로들의 이야기, 끌려간 유학자들에 의한 일본에 주자학 전래, 도공들이 만든 막사발을 보고 경탄을 하는 일본인들. 잠깐 막사발 이야기를 하자면, 도공들이 마구 기교를 부리지 않고, 마구 구워낸 듯한 그 막사발에서 풍기던 기품, 그것이 오늘날 세계적인 일본의 도예기술의 밑바탕이라고 한다. 그외에도 사명대사 일해의 일본 탐정이 이후에 조선 통신사의 시효가 되었다고도 한다. 이렇게 이 소설은 작고 사소하고 단편적인 일화들이 많이 소개된다. 그런 이야기들 중의 일정부분은 사실에 입각한 것이기도 하지만, 탐정단의 일원인 기생 홍주이야기나 대마도에서 만나는 기생 홍주이야기 등은 픽션인 것이다. 사명대사의 일본 탐정이라는 커다란 틀에 사실적 일화와 허구가 어우러져서 이야기가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것은 이 작품의 장르에 대한 의문점이 들게 되는 것이다. 작가가 너무도 친절하게 역사적 사실들을 이야기해 주려는 의도가 짙다보니, 소설속의 글중에 '뒷날의 일이지만, 사명대사의 고향 밀양에는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일으켜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 휴정, 사명대사 유정, 기허대사 영규 등 세 선사를 모신 표충사(表忠詞)와 표충서원이 세워진다. 현종 때(1839) 천유화상이 그 사당과 사원을 이곳 영정사로 이건하면서 절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바뀌게 된다. (p173) 이런 문장들이 여러 곳에서 등장하게 되고, 역사적 사실도 구체적으로 설명을 해주다보니, 소설이라는 생각보다는 '사명대사'라는 인물평전이나 역사속 일화의 나열과 같은 느낌마저 들게 되는 것이다. 소설이 가져야하는 구성요소들도 적절하게 들어가지 않아서, 소설이 가지는 심리묘사, 배경묘사, 절정, 극적 반전 등을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책날개글에 보면,
비록 소설적 흥미는 반감되었다고 하더라도, 이 책을 통하여 사명대사의 활약상을, 그리고 임진왜란후에 우리의 이야기를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었다는 것은 독자들에게도 큰 의미가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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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대사 일본탐정기를 읽엇다. 사명대사와 서산대사.. 동시대의 인물이어서인지 두 분이 헷갈렸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사명대사와 서산대사가 어떻게 다른 분인지, 내가 알고 있던 도인에 가까운 분이 사명대사라는 것을 확실히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사명대사라는 분은 기인에 가까울 정도의 도력을 가진 스님이라고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더 인간적으로, 현실감있게 사명대사라는 인물을 알게된 거 같다. 사명대사 일본탐정기.. 임진왜란이 끝나고 사명대사가 일본을 방문했다는 사실은 역사시간을 통해서들 알고 있을 수도 있다. 뜨거운 불을 뗀 방을 다음날 열어보니 방에 고드름이 얼어 있었다는 일화는 다들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런 기인적인 이야기들이 아니라 임진왜란이 끝나고 사명대사가 왜 일본을 방문했는지, 어떻게 방문을 했는지, 방문을 해서 얻어낸 결과는 무엇인지 등등에 대해 알게 해준다. 보다 객관적인 시각에서 말이다.
사명대사는 참 대단한 사람인 거 같다. 어려울 수도 있을 도쿠카와 이에야쓰와의 협상에서도 하나 물러섬이 없이 자신의 소신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점에 대해 요구한 모습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국의 땅에서, 적국의 장수 앞에서 사명대사처럼 당당하게 맞서 싸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어떤 기인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이 배제한채 그 사람의 강인함을 잘 드러냈던 책인 거 같다. 일본탐정기는 일본을 객과적인 시각에서 바라본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통해서 일본이 갖고 있는 일본의 생각, 일본인들의 정서 등을 통해 일본과의 과거 관계를 넘어 현재, 미래에까지 앞으로 어떻게 대해야 할 지 알 수 있었던 거 같다. 우리 나라의 정치가들이, 권력자들이 이 책을 통해 대일관계를 좀 더 현명하게 대처해나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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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이 끝나고 7년. 일본은 대마도를 필두로 조선과 교역을 재개하고 싶다는 뜻을 끈질기게 전해온다. 전쟁의 후유증이 아직도 남아있는 조선은 일본이 다시 침입하지 않을까 하는 우려감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선조는 사명대사 유정을 사신으로 일본을 탐정하고 교린의 가능성을 타진하는 임무를 띠고 일본에 파견한다. 그러나 명을 내린 국왕도 예조도 정확하게 무엇을 해야 하는 지 정확한 지침을 주지 못하는 채, 사명대사 혼자서 모든 것을 판단해야만 하는 상황이다. 61세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유정은 반년이 넘는 여정 동안 조선과 일본과의 강화를 논하고 삼천 백성을 구한다. 총 3부로 구성된 이야기는 사명대사가 일본의 사절로 가게 되는 과정에서 사명대사 주변의 인물들과의 관계를, 2부에서는 일본으로 떠나기 위한 본격적인 준비과정과 대마도로의 여정을, 마지막 3부에서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쇼군을 만나 강화를 논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1부에서는 사명대사 유정의 어린 시절과 스승인 서산대사와의 만남, 그리고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의 활약을 통해 역사 속의 인물로만 존재하던 사명대사 유정이 현실 속 인물처럼 가깝게 다가온다. 승유억불로 불교를 천시하던 조선이었지만 불교계와 선비들의 교류가 활발했음을 사명대사와 허균,허봉의 조우를 통해서도 알게 된다. 무엇보다 기방 육례원의 행수인 도원과 홍주와 홍탁이 사명대사를 위하는 모습에서 사람을 위하는 데 신분고하가 따로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조정의 신료들과 대조되어 더욱 각별하게 다가온다. 2부와 3부에서 대마도와 오사카를 거쳐 코툐에서의 탐색 과정을 담고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우리 역사에서도 기록되지 못한 조선 피로들의 삶이 슬픔과 먹먹함으로 다가온다. 조선의 옹주로 왜장에게 끌려와 그의 아내가 된 여인, 승려가 된 소년 니찌요, 그리고 이름도 없는 수많은 도공들.... 왜장의 아내가 된 옹주는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인물이 아니라 실존 인물임을 책에서도 밝히는 데, 그녀의 이야기를 다룬 역사 다큐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결국 모국인 조선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땅에서 작은 비석으로만 기록된 그녀는 결국 조선의 옹주가 아닌 에이코로만 남아있다. 예나 지금이나 전쟁의 모든 상처는 전쟁과는 아무 상관없는 국민들의 몫으로 남게 된다는 것을 새삼 확인하게 됨이 안타까울 뿐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사명대사를 비롯하여 전쟁 직후의 조선 중기의 삶이 얼마나 피폐한 것인지를 알지 못했다. 학창시절 임진왜란은 우리가 승리한 전쟁이었다. 그러나 <사명대사 일본 탐정기>를 통해 임진왜란이 조선과 명,일본에 아무런 득이 되지 못한 전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전쟁에 승자란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 말이다. <사명대사 일본 탐정기>를 통해 의인들의 면모를 알아가는 재미와 함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역사적인 교훈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되새겨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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