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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잃어버린 아이 KARLINCHEN : Ein Kind auf der Flucht 안네게르트 푹스후버 글/그림 푸른숲주니어 32쪽 | 352g | 238*252*15mm 표지 속 아이는 맨발로 고개를 푹 숙인 채 걷고 있습니다. 두건을 쓰고 비웃는 듯한 표정으로 아이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의 정체는 무엇일까요. 페이지를 넘기자 하늘에서 검붉은 불줄기가 마구 쏟아졌다는 글을 만나게 됩니다. 카를린이란 이름의 아이는 맨발로 허겁지겁 들판으로 뛰어나왔네요. 마을은 순식간에 새카만 잿더미로 변했습니다. 카를린은 갑작스런 전쟁으로 하루아침에 가족과 집을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되어버렸습니다. 카롤린은 살 곳을 찾아 마을과 마을을 정처 없이 헤맵니다. 그곳에서 살 수가 없다면 따뜻한 빵 한조각과 물 한모금이라도 얻을 수 있기를 바랬죠. 그러나 그 어느 곳에서도 받아들여지지 못합니다.
카롤린은 이 모든 곳에서 배척을 받습니다. 작가는 카를린이 만나는 사람(또는 동물)들을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합니다. 그림 속 등장하는 마을들이 우리가 사는 여러 모습들을 투영하는 듯 하여 잠시 생각해보았습니다. 뚜렷하게 특징이 구분되는 인간들의 마을 외에 숲속의 석상, 황여새(Bohemian Waxwing), 송장까마귀(Carrion Crow)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그림작가가 독일에서 활동하고 있으니 유럽 속에서 대표하는 의미가 있을지, 아니면 새의 경우 종(種)의 특징이 따로 있는 건지.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새인건지 말이죠. 카롤린이 함께 하지 못하는 이유가 '달라서' 인 숲 속이나 '욕심' 이나 '없는 것 마저 뺏겨 같이 망할까봐' 인 마을이나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의 문화권인 유럽의 경우 시리아 사태에서 비롯된 난민 수용 문제가 그만큼 유럽, 특히 독일에서 치명적인 이슈였었죠. 2016년 8월, 독일 메르켈 총리가 “내전 상태인 시리아를 탈출한 난민에 한해 무제한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했었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다보니 현재 메르켈조차 자신이 밝혔던 ‘무조건적 수용’ 원칙에서 한발 물러나 ‘난민 관리 강화’를 강조하기 시작했다라는 기사가 보입니다. 온라인 책 소개를 읽다보니 독일의 초등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이 책으로 '난민’과 ‘인종 차별’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이곤 한다고 하는군요. 작년 한해 키워드로 난민들(Fluechtlinge) 을 뽑았다는 독일이니 더더욱 함께 생각해 볼 필요가 있었을지두요. 최근 난민에 관한 외국 그림책들이 많이 나오는 이유겠죠. 그런데 먼 나라만의 이야기일까요? 밤톨군과 보았던 카툰이 생각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에서 기획하여 10인의 만화가가 그려냈던 카툰집 『십시일反』 속 한장면입니다. '나눔' 과 '공존' 그리고 '인권' 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눠볼 수 있었죠.
△ 십시일反 / 박재동 외 / 창비 사람은 이상한 동물이다. 이 세상에 자기와 아주 똑같은 사람이 존재하는 것도 끔찍스럽게 여기지만, 자기와 다른 사람을 반기지도 않는다. 자기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차이를 찾으려 애쓰고, 자기와 다른 사람을 만나면 자기와 같지 않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이와같은 인간의 이중성은 필연적으로 차이을 차별의 근거로 삼는다. <중략> 사회구성원들 사이에 경쟁의식을 이미 충분히 부추기는 자본주의사회에서 교육과정은 사회구성원들에게 연대의식과 인권의식을 형성하도록 노력을 기울여야 하건만, 이 사회의 교육과정은 경쟁의식을 더욱 치열하게 부추기고 있을 뿐이다. <하략> - 홍세화 / 십시일反 추천사 중 그림책 『집을 잃어버린 아이』 는 초등학생이 보면 더 좋을 그림책입니다. 이 그림책으로 주변 국가의 이야기들과 우리 이야기를 함께 나눠볼 수 있을 정도의 배경지식이 있으면 더 좋을 듯 하구요. 원제를 보니 'A child on the run' 의 의미더군요. 그림책 장면을 생각해보니 끄덕이게 됩니다. 카롤린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녀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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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에서 떨어진 검붉은 불줄기로 인해 순식간에 잿더미로 변한 마을 그렇게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고 고향을 잃어버린채 떠돌게 된 주인공 카를린을 통해 난민에 대해 생각해 볼수 있는 책입니다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전쟁등으로 난민이 발생하고 있고 난민들은 살기위해서 여러나라의 문을 두드리곤 하는데요 카를린도 이마을 저마을을 다니면서 함께 지낼수 있는지 빵한조각 물한모금을 얻을수 있는지 조심스레 물어보게 됩니다 다양한 마을에서 만난 대부분의 사람 혹은 생물들은 카를린이 자신들과 다르기에 함께 지낼수 없다고 말하네요 부자는 부자라서 떠돌이 카를린의 슬픔과 아픔을 모르구요 가난한 자들은 자신들의 문제만으로도 버겁기에 카를린을 받아들일수 없다고 합니다 그 어느곳에서도 환영받지 못하는 난민 카를린 카를린을 통해 난민의 실상을 조금이나마 알아볼수 있는 책입니다만 꼭 난민이 아니어도 세상으로부터 환영받지 못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많기에 나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보게 하는 책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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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잃어버린 아이
![]() 어른들 마음이란 게 참 이중적이기도 해요. 가을 단풍 풍경을 보고 "요정님이 내려와서 알록달록 물감 칠하고 가셨다"라며 세상을 낭만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모를 보면 '왜 아이에게 세상을 무지개색으로만 보게 하느냐. 현실을 외면하느냐.'하면서도 막상 자기 아이에게 현실의 어두운 면을 애써 보여주려하지는 않으니까요. <집을 잃어버린 아이>에도 난민, 아동 인권, 어른들의 집단 이기주의, 차별 등 무거운 주제가 계속 등장해요. 그런데도 신기한 건 아이들 스스로에게 소화 능력이 있어서 메시지를 자기 수준에서 잘 받아 넘긴답니다. 사실 걱정했거든요. <집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주제가 꼬마들에게 너무 무거운 것은 아닌가. 그런데 왠걸요. 아이들은 이 책을 참 좋아하고도 잘 이해한답니다. 어쩌면 자기들처럼 어린 친구가 주인공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 카를린이라는 친구에요. 분홍색 잠옷같은 옷을 입었지만 외투는 누군가 버리고 간
듯, 낡고 커다란 양복자켓이에요. 머리는 헝클어지다 못해 새집처럼 떡이 졌어요. 앙당물고 앞을 응시하는 표정도 범상치 않아요. 게다가
맨발이에요. 밴발로 검붉은 불줄기가 쏟아지는 마을을 떠나 들판을 내달려요. 무서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요. 보호해주는 어른도 없고, 따뜻한 손길로
없어요. 카를린은 배가 무척 고팠어요. 평화로운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을 구걸해봅니다.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반응뿐이었어요. 도와주기는 커녕 카를린을 고아원으로 보내야한다며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했답니다. 카를린은 맨발로 계속 내달릴 수 밖에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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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린의 절망과 슬픔이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기댈
사람, 갈 곳 하나 없이 절망적인 카를린의 심경을 안네게르트 푹스후버는 비내리는 청회색 하늘로 표현했습니다.
우중충하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화면입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에서 알록달록 공작새 같은 색감이 펼쳐져요. "바보"아저씨와 "바보"아저씨의
나무집이 참 화사합니다. 이름 대신 자신을 '바보'라고 소개하는 아저씨에게 카를린은 대답하지요.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르나요?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도 바보가
될래요."
<집을 잃어버린 아이>는
참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깊은 맛의 그림책입니다. 자꾸 다시 생각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도 바보가 될래요."라는 카를린의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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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잃어버린 아이
하늘에서 검붉은 불줄기가 마구 쏟아졌어요
마을이 순식간에 새카만 잿더미로 변해 버렸지요
혼자 남은 카를린은 마을과 마을을 정처 없이 헤맸답니다
하지만 아무도 카를린을 받아 주지 않았어요
카를릴은 이대로 영영 떠돌이가 되는 걸까요?
아이의 눈높이에서 난민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어요
그 과정에서 어른들의 선입견, 편견, 몰인정이
그대로 드러나지요...
우리는 왜 다름을 인정하지 않을까요?
왜 나와 다르면 배척하게 되는걸까요?
자신들과 같지 않다는, 다시 말하면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외면하고 배척하는 우리의 간사한 마음을 그대로 그려내고 있어요.
카를린이 만나는 다양한 종류의 동물과 사물을 통해서,
작은 일로도 편을 가르거나 자신의 이익에만 집중하는
이기적인 속마음을 차분히 들여다보게 하지요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이 읽어야 하는 것 같아요
어른인게 왠지 부끄러워 지더라구요
칼라풀한 그림도 책에 더 몰입하게 도와주고 있어요
집을 마을을 잃은 카를린은 쉬지 않고 달렸어요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에 도착했지요
하지만 어린이가 구걸을 한다며
경찰에 쫓기게 되었고
카를린은 죽을힘을 다해 도망쳐야했어요
깜깜한 밤중에 숲에 혼자 있는 카를린
그림을 통해서 무서움이 전해지는거 같아요
그러다 석상들을 만났고
석상들은 돌을 한 움큰 건네었고
카를린이 싫다고 하자 화를 냈어요
다시 길을 떠난 카를린은 황여새의 마을에 도착을 하였어요
하지만 역시 꽁지가 없다는 이유로
카를린을 싫어했어요
욕심쟁이 마을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한 카를린은
'부자들은 배고픔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몰라
가난한 사람들을 찾아가 봐야겠어'
하고 가난한 마을을 찾아갔지만
역시 그곳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했어요
무작정 걸어가다가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지요
아저씨는 카를린에게 빵을 나워 주고
집으로 들어오라고까지 했지요
아저씨는 누구냐는 카를린의 질문에
"사람들은 나를 '바로'라고 부르더라구나"
라고 대답했어요
"아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르는 거에요?"
"아저씨 같은 사람을 아주 오래 찾아다녔어요
이제부터 나도 바보가 될래요"
그래도 마지막에 희망이 보여서 좋았어요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고
또 같이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랍니다
편 나누기 하지 말고
나와 다르다고 무조건 배척하지 말고
다 같이 행복하게 사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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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린.
이 아이는 많은 이들을 만나게 돼요.
갈 곳을 잃은 카를린. 치즈빵을 먹고 있는 아저씨를 만나게 됩니다.
참 많은 교훈을 주는 동화입니다. 나 역시도 인정받을 수 있는 순수함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면 참 좋을 듯합니다.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좋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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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와 저녁에 책읽기. 이번에는 집을 잃어버린 아이를 읽었는데 그림과 색감이 너무 예뻐서 읽게 되었답니다.
글‧그림 : 안네게르트 푹스후버 1940년에 독일 막데부르크에서 태어났어요. 어렸을 때부터 '그림책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고 해요. 아욱스부르크 미술 학교를 졸업하고, 평생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며 칠십만 점이 넘는 그림을 그렸어요. 푹스후버는 비록 1998년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작품들은 지금도 아름다운 그림과 따뜻한 메시지로 세계 여러 나라 독자들의 마음을 뜨겁게 사로잡고 있지요. 우리말로 소개된 책으로 쓰고 그린 책은 《이게 뭘까?》 《둘이 많다고》가 있어요. 그리고 미하엘 엔데의 동화 《꿈을 먹는 요정》의 환상적인 삽화 역시 그의 작품이랍니다.
주인공 카를린은 하늘에서 검붉은 불주기가 마구 쏟아져 허겁지겁 들판으로 뚜어나가게 됩니다. 순식간에 마을은 잿더미로 변했고, 이젠 카를린은 갈곳이 없게 되었답니다. 카르린은 여러곳을 다니게 되요 석상들이 모여 사는 마을, 새들이 지저귀는 마을, 잘사는 사람들의 마을, 가난한 사람들의 마을…… 카를린을 그 어느곳에서 받아주지 않아요. 석상들이 사는 마을에서는 돌을 먹으라고 건내주는데 카를린은 돌을 먹고 싶지 않았어요 송장까마귀 마을에 도착해서 죽은 쥐를 먹으라고했지만 그것도 먹고 싶지 않았고, 생각만해도 소름이 끼쳤답니다.
여러곳을 다녔지만, 카를린을 받아주는곳은 없었답니다. 그러다가,도시를 벗어나 들판에서 커다란 나무를 발견하게 되요 커다란 나무에 온갖 잡동사니를 그러모아 지은 집이였는데 아저씨가 빵을 나눠 먹었답니다. 사람들은 그 아저씨를 바보라고 부른다고 하네요. 카를린은 '다른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르냐면서. 앞으로 카를린 자신도 바보가 된다고해요.
아이와 읽으면서... 이 책은 어른이 읽는 동화라는 생각이 들었답니다. 어쩜 어른들의 잘못된 점을 꼬집어서 책을 만들었는지 많이 반성하게 되더라구요. 서로 편가르고, 학연, 지연 따지고.... 어른들의 잘못된점을...먼저 깨우쳐야 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아이와 읽으면서 그림과 색감이 너무 예쁘고 책안에 깊은 뜻이 있어서 읽고나서 더욱 감동이였던 집을 읽어버린 아이였답니다. 우리 아이도 편견없는 세상에서 편견없이 살아가길 바래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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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도 글이지만 색감이 상당히 신비롭고 독특한 그림이 너무나
아름다운 책이랍니다. 인간의 이기심, 인정하기 싫은 어두운 면을 비꼬면서도 동화책으로서의 따뜻한 결말을 놓치지 않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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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불에 타 잿더미가 되자 카를린은 쉬지 않고
달렸어요. 신발도 못 신고 맨발로 집을 뛰어나왔나 봅니다. 얼마 후 카를린은 평화로운 마을에 다다라 사람들에게 이곳에 살아도 되는지, 그게 안된다면 빵 한 조각, 물 한 모금이라도 먹을 수 있는지 물었지만 사람들은 카를린을 고아원에 보내야 한다며 경찰을 불렀어요. 카를린은 죽을힘을 다해 도망을 쳤답니다. 마을은 평화로워 보이지만 사람들의 얼굴엔 경계심과 불만이 가득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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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산딸기로 간신히 허기를 달래고 앞만 보며 계속 걸어간
카를린은 돌을 먹는 석상들이 사는 곳에 도착했어요. 석상들은 친절하게 카를린에게 돌을 주며 먹으라고 했지만 먹을 수가 없었죠. 그런 카를린을 보며 석상들은 자신과 다르다며 화를 내고 당장 다른 곳으로 떠나라고 했어요. 카를린은 슬펐지만 또다시 길을 떠났어요. 어두운 숲 속에서 황여새들을 만났는데 역시나 꽁지가 없다며 같이 살 수 없다고 했어요. 석상이나 황여새나 자기들과 다르다고 카를린을 받아들이지 않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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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이 끝나는 길에 욕심쟁이 부자마을이 있었는데 이곳
사람들은 모두 크고 편안한 집에서 살고 있었고 먹을 것이 많아 남는 음식은 죄다 갖다 버렸어요. 하지만 카를린에게는 자신들은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며 아무것도 주지 않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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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들은 가난한 사람을 이해 못 하겠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배고픔의 고통을 알 테니 자신을 도와줄 거라 생각한 카를린은 도시의 변두리의 작은 오두막에 찾아갔지만 그들은 카를린을 보자마자 내쫓아
버렸죠. 카를린은 여전히 맨발이네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없었던 카를린~ 게다가 비까지 주룩주룩 내려 카를린의 모습은 안쓰럽기 그지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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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린은 도시를 벗어나 무작정 걷기
시작했는데요. 커다란 나무 위에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 지은 이상한 집이 있었고 집 안에 치즈 빵을 먹고 있는 아저씨를 만나게 됩니다. 아저씨는 처음으로 카를린에게 따뜻하게 대해주었네요. 카를린이 아저씨는 누구냐고 묻자 사람들이 자신을 '바보'라고 부른다고 말하네요. 다른 사람에게 친절한 사람을 '바보'라고 한다면 자신도 이제부터 바보가 될 거라고 말하는 카를린의 마지막 대사가 울림이 크네요. 가진 게 많든 적든 그것을 나눌 수 있는 것은 소유의 차이가 아니라 마음의 차이인 것 같아요. 부자라면 나에게 나눠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이해해줄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더 각박하게 대했지요. 가진 게 적어도, 사는 모습이 평범하지 않아도 자유스럽고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카를린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마음이 넉넉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싶었던 책이었어요. 고학년 책은 아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은 훌륭했고 신비로운 색감의 그림은 이 책을 더 돋보이게 했던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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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숲주니어] 집을 잃어버린 아이
오랜만에 어른과 아이 모두에게 생각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동화책을 만나게 되었네요.
뭔가 쓸쓸한 아이와 그 아이를 쳐다보는 ..
암울한 느낌마저 드는 표지가 가슴에 콱 박혀오는 책!
[집을 잃어버린 아이]랍니다.
하늘에서 쏟아진 불줄기로 인해 살던 마을이 잿더미가 되자
카를린은 쉬지 않고 달렸어요.
그저 빵 한 조각, 물 한모금이 필요했던 카를린~
하지만 어느곳에서도 카를린을 반기는 곳은 없었어요.
어린아이가 혼자 다닌다고 고아원에 보내야 한다는 사람들,
자신들의 돌을 먹지 않는다며 떠나라는 석상들...
카를린을 반겨줄 곳은 어디에 있을까요?
편견과 배려가 무뎌진 현재의 우리 사회와 맞물려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한
동화인 듯 했답니다.
참, 주제가 지금과 어찌나 잘 맞는지...
다름이라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 우리 사회에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해주는 것 같더라구요.
나와 같은 생각이 아니면 배척하고
나와 다르면 안된다고 생각하는 편견..
참,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가 아닌가 싶네요.
다름을 인정하고 또 서로를 존중한다면 더불어 사는 사회가 될텐데 말이죠.
마지막 카를린은 사람들이 바보라 불리우는 사람를 만납니다.
그리고 말하죠.
자신도 바보가 되겠다고..
그 바보는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이었습니다.
아이도 바보가 되고 싶다고 하더라구요.
아이 눈에도 바보가 좋은 것 같은데..
여직 그 바보가 되지 못하는 어른들의 모습에 반성을 하면서 책을 덮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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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붉은불줄기에 맨발로 허겁지겁 들판으로 빠져나온 카를린은 평화로운 마을에 도착하면서부터 세상과 마주하게 된다. 세상편해보이던 그 마을에서의 차가운 응대와 잡아서 고아원에 보내자는 사람들을 피해 석상들이 사는 마을에 도착했으나 그곳에서도 다른 카를린을 받아들여주지 않는다. 어디를 가더라도 이상한 아이 취급하고 다른 다는 이유로 틀렸다고 생각하는 가운데 가장 마지막에 만난 멋진 어른.... 다른 사람들은 그 사람을 바보라 부르지만 카를린 만큼은 그를 편안한 눈길로 바라보며 따를 준비를 한다... 각박한 세상에서 우리가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일깨워주는 마음이 편치만은 않은 동화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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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편견 속에서 나눔과 공존에 대해 생각해보게 하는 '집을 잃어버린 아이'
전쟁으로 마을이 새카만 잿더미로 변하고 카를린은 가족과 집을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된다.
떠돌던 카를린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을에 다다라 여기서 살아도 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어보지만, 마을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돌아다니며 구걸을 하게 한다고 당장 고아원에 보내야 한다며 경찰을 부르고, 카를린은 도망친다.
카를린은 황여새의 마을에 가게 되고, 카를린이 빵 한 조각과 따뜻한 잠자리만 있으면 된다고 하자 황여새들은 기꺼이 줄 수 있다고 하지만, 카를린의 엉덩이를 보며 꽁지가 없다며 같이 살 수 없다고 한다 카를린이 자기 엉덩이에 꽁지를 하나 꽂으면 된다며 간절히 사정해봐도 소용 없었다. 카를린은 또다시 떠나야했고, 자신이 황여새들과 달라서 싫어하는 것이라 슬프게 생각했다.
송장까마귀 마을에서도 높은 나무 위로 날아올라야했고, 죽은 쥐를 먹어야했지만 카를린은 그럴 수 없었다. 송장까마귀들은 자신과 다르다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카를린은 다시 길을 떠나야했다.
카를린은 도시의 변두리, 큰 공장과 쓰레기 더미가 있는 쪽의 가난한 사람들이 옹기종기 살고 있는 작은 오두막으로 갔다. 카를린을 본 사람들은 자신들도 음식과 오두막이 부족하다며, 너 까지 받아들이다간 다 망한다며 고함을 지른다. 이제 카를린은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도시를 벗어나 들판으로 무작정 걸어갔는데 커다란 나무위에 온갖 잡동사니를 그러모아 지은 집이 한 채 있었다. 거기에 있는 아저씨는 카를린을 보고 먹고 있는 치즈빵을 같이 나눠 먹자고 하며, 따뜻한 자기 집으로 올라오라고 한다. 누구냐고 카를린이 묻자 사람들은 자신을 '바보' 라고 부른다고 했다. 카를린은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바보' 라고 부르는 거냐며 이제부터 자신도 바보가 되겠다고 한다. 책에서는 자신들과 다르다고, 공통점이 없다는 것으로 카를린을 외면하고 배척한다. 우리 사회의 모습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상대방이 자신들과 다르다는 이유로 알게모르게 편을 가르고, 나누거나 함께 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 내세운다. '집을 잃어버린 아이' 전쟁으로 하루아침에 가족과 집을 잃고, 떠돌이 신세가 된 주인공 카를린의 모습을 통해 아이에게는 우리와 다르다는 것으로 타인을 외면하고 배척하는 모습이 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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