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올이 저술로 유명세를 타기 시작하던 초창기에 이 책으로 도올에 입문했다. 제목으로만 보자면 ‘여성학 강의’ 정도에 해당하는 듯 하지만, 이 한 권의 책에 녹아있는 방대한 정보는 도올의 저서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 특징, 즉 동서고금을 왕래하는 스케일이 잘 드러나 있다. 도올이 《중고생을 위한 철학강의》에서 밝힌 에피소드를 보면, 어느 엄마가 자기 딸내미 자랑을 하면서 “우리 딸이 《여자란 무엇인가》를 보고 엄청난 인스피레이션을 받아요”했단다. 그런데 그 딸이 “중3”이라는 말에 어이가 없었단다. 《여자란 무엇인가》에서는 동양학과 역사학, 인류학, 신화학 등등 방대한 학문적 내용을 바탕으로 주제를 풀어가고 있어, 최소한 이들 제반 학문의 구조에 대한 선이해가 있어야 이 책의 논리를 이해하거나 비판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데, 중3 어린 아해에게서 그런 선이해를 기대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과 함께, 겉멋 든 아해에 대한 황당함과 씁쓸한 소회를 말하고 있다. 나 역시 어린 나이에 이 책을 접하긴 했지만, 사전에 동양학에 대한 관심이 많아 사전에 공부를 했던 터라 당시에 재미있게 읽어가면서도, 부족한 지식으로 도올의 방대한 논리를 따라가는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분명 도올의 숱한 저서 중에는 함량미달이라 할 만한 것도 있는게 사실이지만, 재미와 아울러 쏠쏠한 학문적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측면에서 보자면 이 책 《여자란 무엇인가》는 후한 점수를 줄만 하다. |
| 이 책은 대단하다. 동서고금을 넘나드는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그러나 아쉬운 점이 상당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저자의 인지 양식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상호작용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없다. 이것은 어떻게 생각하는 가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너는 많이 알고 강인한 정신을 가지고 있고 노력하는 모습은 나약한 자들에게 선망이나 반감의 느낌을 가지게 한다. 따라서 나는 독선적인 자기 해석을 강조하는 부분에서 저절로 욕이 터져 나왔다. 모름지기 학자란 강의를 어리석은 자에게 이롭게 해야할 순수한 양심을 가지고 있기를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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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올님의 초기작 중 하나다. 이때만 하더라도 머리에 숱이 많아 검은색 일색이었는데, 이제는 그냥 시원하게 빡빡도 아니고 그냥 면도하는 머리를 갖고 계심. ㅎㅎㅎ. 제목은 여자라고 나왔지만 --그 아래 부제로 조그맣게 동양사상 입문특강 이라고 나와있음-- 실상은 동양사상에 대한 고찰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 뒤에 나온 것이 바로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이다. 둘 다 당시의 서점가에서 상당한 주목을 받았던 서적이다. 그런데 당시의 시대상에서는 동양학이라고 하면 점을 본다거나 무속신앙, 시대에 뒤떨어진 구태의연한 것 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지금도 이러한 관념이 상당부분 존재하지만, 과거에 비해서는 많이 개선된 것이 사실이다. 그러한 인식전환의 계기 혹은 출발점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이다. 하여간 이 두 책이 출판되면서 김용옥 이라는 사람이 세간에 널리 알려지게된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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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본 후에 父生我身, 母鞠吾身 (아버지 날 낳으시고, 어머나 날 기르시니)라는 옛 시조의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낳는 것은 어머니, 암컷으로 부터라는 생각이 평소에 있었는데 이 시조에서는 반대로 아버지로 부터 내가 나왔다라고 되어 있다. 왜 그랬을까? 사실 그냥 그런가 보다라고 생각을 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우리 선조들 특히 동양철학 사상이 주류였던 시절에 어떤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바라 보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의 정액이 어머니의 몸 속에 들어가서 내가 만들어졌기에 나의 근원은 아버지에게 있다라는 생각이 옛날 사람들의 생각이었다고 한다. 그러기에 부계혈통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남자의 정액(하늘에서 내리는 빗물)이 여자의 몸 속(땅)에 들어가 생명이 만들어 지기에 남자는 하늘이요, 여자는 땅이라는 말이 여기에서 나왔다. 그저 높고 낮음, 위와 아래의 신분과 계급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부부싸움에서 난 하늘이고 넌 땅인까 내말 들어라, 남자는 하늘이니 여자는 복종을 해야 한다라는 말은 잘못된 쓰임이다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그냥 들고 다니거나 제목만 보면 여자에 대한 심리분석을 하거나 잡다한 내용일 것이라고 미리 짐작을 하게 되는데 사실 이 책은 김용옥 선생이 쓴 철학 책이다. 동양철학을 다룬 책으로서 작은 글씨체와 많은 내용들로 접하기 어려운 면도 사실 있으나, 재미도 재미이고 내용도 깊이가 깊다.
개인적으로 무척 재미가 있었던 책이다. 그러나 같은 책을 읽더라도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겠다라는 사람도 주변에 있으니 이 책이 누구에게나 재미가 있다고 말하기는 그렇다. 도올 김용옥 선생이 TV에서 철학에 대해서 강의를 한 것을 재미있게 보았던 기억이 나서 책을 찾다 보니 있어서 제목이 독특한 책이 있어서 구입 했었다. 읽는 순간에는 매우 흥미진진 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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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란 무엇인가에서 김용옥은 본문의 처음에서 MEN과 人의 뜻풀이를 하는 것으로 강론을 시작하고 있다. 알다시피 '맨'은 서양에서의 '사람'이라는 뜻이고 '인'은 동양에서의 사람이라는 뜻이다. 이렇게 서양과 동양의 언어의 시작으로부터 양대 문화권에서의 여자에 대한 인식의 차이를 논하는 것으로 시종일관 전개된다.
김용옥은 스스로도 인정하듯이 구라에 뛰어난 사람이다. 책을 읽는 내내 그의 썰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그는 일사천리로 유창하게 자신의 논지를 펴나갔다. 그러나 그가 책 머리에 비교문화론자의 거두인 슈펭글러, 토인비, 베버 등을 놓고 비판하기를 서양학적인 관점을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라고 했듯이 그도 역시 동양학적 문화를 벗어나지 못한 인물이었다. 문화란 사람이 나서부터 그를 지배해 오는 의식의 뿌리가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동양문화권에서 나서 자란 그가 서양의 철학서를 수없이 탐독했다고 해도 그는 역시 서양문화의 어떤 것을 제대로 알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 그가 여자에 대한 동양과 서양의 인식의 차이를 논한다는 것 부터가 궤변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서양사상의 근본을 기독사상으로 보았고 기독사상은 성경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성경과 동양의 설화들에서 나오는 여자에 대한 서술들을 비교하면서 썰을 풀고 있었지만 거기에도 아주 큰 오류가 있다. 그는 성경을 알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성경은 그리스도의 생명이 없는 사람에게는 비밀인 책이다. 나는 그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사람을 왜 창조하셨는지를 안다면 그렇게 말하지 못했으리라. 나는 동양 설화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그러므로 그가 설화의 예를 들어서 논한 여자론에 대해서는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내가 아는 것은 그가 성경을 잘못 이해했으며 그의 비교론에 성경을 내 놓으므로써 아주 큰 오류를 범했다는 것을 밝히고 싶다.
많은 부분에서 그는 성경을 잘못된 이해로 풀어 놓고서 오히려 자신의 성경지식의 해박함을 자랑했지만 그 많은 부분을 여기서 다 수정할 수는 없는 일이기에 한가지 예만 들기로 하겠다. 그는 창세기의 예를 들면서 하나님이 쉬다가 할 일이 없어서 사람을 만들었으며, 여자를 남자의 심심풀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상으로 만들었다고 했지만 남자와 여자가 그리스도와 교회의 예표라는 것을 그는 알지 못했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을 대표할 권위를 지니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표현이 되기를 원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흙으로 그분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창조하셨고, 온전한 아담의 성분으로 여자를 건축하셨다. 이렇게 시작된 하나님의 경륜은 계시록까지 이어져서 그리스도의 신부인, 그리스도의 온전한 성분으로 건축된 교회, 새 예루살렘을 예표하게 되는 것이다. 결코 남자도 여자도 함부로 만들어진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그 안에 죄를 가져 왔으며 사탄에게 탈취된 바 되었다. 하나님을 표현하고자 지어진 사람은 이제 자신을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를 가지게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인간중심 사상의 뿌리가 된다. 성경이 철저히 하나님 중심이라고 욕하지 말라 그건 당연한 것이다.
대체적으로 그의 주장을 보면 서양의 여성관은 남자의 부속물로 지나지 않고 동양의 여성관은 남자와 서로 대등한 관계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묻고 싶다. 그래서 어쨋다는 것인가? 지나온 역사 속에서 동양이나 서양을 막론하고 여자와 남자가 대등한 관계였던 적이 있었던가? 과연 있었는지조차도 모르는 설화속에서 여자가 남자와 대등한 관계로 표현된 것이 지내온 역사속의 여자들과 현재를 살아가는 여자들에게 무슨 의미를 지니는지 나는 알지 못하겠다. 차라리 그가 잘못된 예로 들고 있었지만 서양의 남녀불평등 사상이 훨씬 더 솔직하다.
김용옥의 여자란 무엇인가는 동양학적 아집으로 가득한 책이다. 그는 그것을 그의 현학한 지식과 유창한 말솜씨로 교묘하게 포장하여 흥미를 끌었을 뿐 그 내용은 이미 무게중심을 잃은 반쪽짜리 진리에 대한 오류의 궤변일 뿐이다. 또한 책의 활판 인쇄까지도 김용옥을 닮아있는 듯 했다. 활판의 아름다움 따위는 잘 모르겠다. 사라져 가는 것이라니까 어느 누군가는 지켜야할 가치가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어쨋든 읽기에 눈이 빠지게 아팠다. [인상깊은구절] 아마도 형안을 가진 독자라며는 지금부터 내가 말하려고 하는 모든 것을 내가 내걸은 제목으로부터 알아차릴 수 있어야 할 것이다. 'MEN'이란 문자의 형상은 서양에서 사람을 지칭하는 의미체로 쓰리고 있고, '人'이란 동양의 한자문명권에서 역시 사람을 지칭하는 의미체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맨과 르언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매우 다르다. 무엇이 다른가? 그대들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맨과 르언을 아주 다르게 만드는 가장 결정적 요소는 맨에는 성이 규정되어 있는데 반하여 르언에슨 성의 구별이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부터 우리가 풀어가야만 하는 '여자'라는 야심적 주제를 이해하기 위하여, 그 이해를 역사적으로 가능케하는 동서양우주관의 본질적 전제와 그 차이를 규명하는 매우 결정적 실마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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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옥 선생의 책은 여러권 베스트셀러에 올랐는데, 이 책도 그 가운데 하나였다. 그가 밝혔듯이 이 책은 1985년 11월 고려대학교에서 2천여명의 청중을 대상으로 한 강의의 서론을 글로 옮겨놓은 것이다.
책의 앞머리에 김용옥 선생은 모든 언명은 그 자체가 표현하고자 하는 명제의 완전한 표현일 수가 없다 는 러셀 역설을 원용하면서 글을 시작한다. 김용옥 선생의 스타일답다고 하겠다. 개인적으로 김용옥 선생의 모든 저작을 다 읽어보진 못했지만, 절반 정도는 읽어보았다. 물론, 내가 동양철학의 전공자가 아니기 때문에 깊이있는 말은 하지 못하겠지만, 이 책은 상당히 재밌으며 검토해보고 싶은 글이다. 더군다나 그가 이 말들을 다 강연으로 쏟아부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그가 공부를 많이 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라 하겠다.
물론, 그가 이 책을 아직까지 완결하지 못했고, 서설이 너무 길다는 단점을 극복하지 못했지만, (이것은 상당히 중요하고 치명적인 결점임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용옥 선생의 글은 재미있고, 가히 천재라 할만하다. 언젠가 강준만 교수도 그를 두고 천재이기 때문에 그를 이해하여야 하는 부분도 있다고 했을 정도니 말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면 그때의 젊은 김용옥 선생의 강의를 듣지 못한 아쉬움이 많이 생긴다. 물론 그때 나는 어려서 강의를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그의 열정을 肉聲으로 듣고 싶은 욕망이 인다.
어쨌든 글에는 상당히 자투리 내용들도 많지만, 본문으로 들어가면 또 상당히 전문적이다. 그리고, 여성과 남성에 대한 동양철학적 관점의 깊이도 심오하다. 그래서 나는 감히 이 책을 김용옥 선생의 주저 가운데 하나로 꼽는다. 그가 기왕에 강의에 더 신바람이 나고, 더 열성적으로 내용들을 전달하는 특성을 가졌기에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독창성도 보이는 것 같다. 비록 내가 동양철학 방면을 잘 모르기 때문에 확언할 수는 없지만, 그의 해석은 상당한 고증과 학문적 열의로 불타있다. 젊은 날의 신진학자가 가지고 있는 그런 열의 말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김용옥 선생의 이 책을 읽어본다면 김용옥 선생 식의 강의와 저술이 가지는 장단점을 잘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독자 여러분에게 일독을 권한다. [인상깊은구절] 유목문화에서는 필연적으로 '하늘의 숭배'가 발달되고 농경문화에서는 '땅의 숭배'가 강조될 수밖에 없다는 인류학적 사실이 바로 자지와 보지에 대한 우리의 논의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것이다. 모든 고대문화에 있어서 하늘은 남성이고 땅은 여성이라는 사실이 한번 상기되어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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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란 무엇인가' 제목만 보면, 도대체 무슨 책인지 종잡을 수 없으나, 이 책은 김용옥씨가 쓴 철학 입문서이다. 그의 다른 저서, '동양학 어떻게 할 것인가', '도올 논어' 등은 다분히 동양학이라는 전문적인 분야에 관한 내용이어서, 동양학에 관계되는 분야에 종사하지 않는 한 별로 접할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이 책은 여자라는 주제를 통해서 동서양의 사상사 전반에 대해서 개괄적으로 논의하고 있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교양서적으로서 읽어볼 가치가 충분하다.
사실 나는 이 책을 두 번이나 읽었지만, 이 책의 내용이 무엇이냐 라고 꼭 집어 물으면, 뭐라고 할말이 없다. 그것은 나의 배경지식이 부족한 탓도 크겠지만, 김용옥 씨의 특성상, 한 주제에서 시작해서 그와 관련된 여러 가지 주제로 너무도 광범위하게 파고 들어가기 때문에, 일반 사람들은 그의 붓 끝을 따라가는 것조차도 힘들다. 조금만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논제를 잊어버리기 쉽상이다.
'여자란 무엇인가'는 김용옥 씨가 고대 철학과 교수로 있을 때, 학생들을 상대로 한 종강기념특강의 내용중 일부를 적어 놓은 것이다. 처음 3분의 1정도는 이 책을 쓰게 된 동기와, 김용옥 씨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본 내용에서도 많은 얘기를 하고 있다. 책을 다 읽고 내가 언뜻 기억나는 가장 중심되는 내용이 있다면, 서양과 동양( 책 속에서는 이스라엘(중동 지역)과 중국으로 대표되고 있다.) 고대 모습을 비교하면서 서양인의 사유패턴과 동양인의 사유패턴을 비교하고 있다. 비교의 주된 대상은 양자의 종교관이다. 알다시피 김용옥 씨는 초기에 종교에 대한 많은 글을 썼다. 여기서도 기독교가 왜 그렇게 발전할 수밖에 없었는지, 동양의 종교는 어떠한 지에 대해 아주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은 이 책을 읽고, 독설이라고 그러는 사람도 많은데, 내 생각은 그렇지 않다. 자신의 생각의 뿌리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이 책을 권한다. 정말로 한 번 열심히 정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이다. 그리고 김용옥 씨 사상에 대해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가장 먼저 이 책을 읽으면 될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20세기 우리역사의 가장 가슴 아픈 현실은 최소한 나에게 있어서는 바로 이 '서낭의 상실'이다. 지금 서낭당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모든 서낭단은 피폐화되었고 그 권위를 잃었다. 동네노인 장기터 구실도 제대로 못한다. 너무도 초라하기만 하다. 서낭의 상실은 곧 우리가 서있는 땅의 상실이다. 우리의 주권이 자리잡고 있는 바로 그 땅이 존엄을 상실하고 또 그 땅에 사는 인간들이 그 따님에 대한 존경을 상실한 천박한 인간으로 되어버렸다는 서글픈 사실이다. |
| 나는 오래전부터 서양의 학문과 동양의 학문을 비교하는데 있어 "실용주의"에 초점을 맞추고 평가해온 바 있다. 말하자면 칼세이건이 그의 명저 "악령이 출몰하는 세상"에서 밝힌 바와 같이 비과학적인 가치를 깡그리 무시하는 것과 동일한 발상이었다. 그러나 과학의 한 범주로 이해되고 있는 프리초프카프라나 일리야 프리고진, 에리히얀치 등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신과학분야에 대해서는 그는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러한 신과학류가 동양의 사상과 접목할 수 있는 지평을 열었음에도 불구하고 칼세이건이 그것들을 배척한 이유는 아마도 그의 실용주의적 가치 척도에 근거하고 있지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칼 세이건의 나의 절대적인 우상이었고 - 지금도 그러한 생각에는 변함이 없지만 - 그의 학문세계에 몰입해있던 나로서는 사실 어떠한 대안도 보이지 않았었다. 그러나 김용의 책을 읽고 있노라면 그러한 나의 가치관이 과연 옳은 것인가를 회의해 보게 된다. 물론 김용옥은 이런 나의 가치관에 대해서 편협한 발상이라 주저없이 비판할 것이다. 과연 그렇다면 동양학에서 우리는 무엇을 얻을 수 있나, 아니면 무엇을 느낄 수 있을까? 동양학은 논리실증주의적 입증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것은 결코 옳고 그름의 가치와 괴리된 문제이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방향을 직시해줄 수 있는 등대 혹은 방향키로서 유용한 대안이 될 수 있지 않을까싶다. 이러한 생각은 물론 실용주의나 논리실증주의와 다른 차원의 문제이겠지만, 서구적 가치관에 매료되 있었던 나에게 새로운 대안을 제시해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유용한 경험이었음에 틀림없다. |
| 1985년 11월 30일 토요일 고려대학교 6-101 강의실. 김용옥 교수의 동양사상입문 종강기념특강에 2천 여명의 학생이 몰려들었고, 그 강의 내용이 책으로 나왔다. 그것이 『여자란 무엇인가?』. 그 강의 때 학생들에게 나눠준 유인물 11장 중 첫 장의 내용이 '첫째가름 맨(MAN)과 르언(人)'이라고 한다. 이 책에는 그 내용만 있다. 이 책에서 도올 김용옥은 "여자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말하려하지만 그에 대한 자기 생각을 말하기 위해서 너무도 많은 곁가지를 친다. 때로는 삼천포로 빠지기도 하고 궤변에 가까운 말도 한다. 그래도 나는 이런 점은 이해해줄 수 있다. 그런 글 쓰기는 너무도 자유롭기 때문에 필자의 상상력의 발현을 돕고 독자에게도 지적 호기심과 지루하지 않게 할 글의 역동성을 충분히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지 (여러 대상에 대한) 자기만의 개인적인 의견을 말하려한 것인지 모를 정도로까지 곁가지를 쳐내고 있다. 강의 내용을 구어체로 쓴 글이라서 그러하겠으나(라고 말할 수 있는데), 그 때문에 독자에게 글 읽는 맛과 짜증을 동시에 주고 있다. 첫째 가름에서의 주 내용은 맨(MAN)이라는 영어 단어에서 맨은 남자와 동시에 인간을 의미하는데, 르언(人)은 인간 그 자체를 말하려 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서양과 동양에서의 여자에 대한 생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김용옥은 이것을 "서양에서는 자지는 존재하는데 보지는 비존재한다."라고 표현한다.) 이를 프로이드, 솟터(소도), 성경의 창세기를 비롯한 여러 부분, 동양 고전의 여러 가지 등등(너무 많아서 이런 부수적인 것들이 오히려 主가 되는 듯한 느낌을 자꾸 받게 된다!)을 통해서 근거를 들고 있다. 또한 자신의 전공인 동양학에 대한 애정이 너무 지나쳤는지 동양에 대한 무리한 옹호로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이 서양인들에게만 적용될 수 있을 것이라는 점 정도는 옹호할 수 있겠지만, 그 자신이 말하려는 서양에서의 여성의 비존재 문제에 대한 것도 동양문화권 내에서만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겠냐고 반문하면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또한 기독교에 대한 유치할 정도의 비난과 독설도 눈에 거슬린다. 이를테면 "깡패새끼하나님" (242쪽)이라는 표현은 이 때문에 오히려 스스로 논리의 성을 무너뜨리고 있는 듯 보인다. 그는 한국신학대학교에서 공부를 한 적이 있었는데 이 때문인지 목사에 대한 언급을 할 때, 그들은 신학대학에서 성경 공부 조금 했다고 설친다고 말하는 것이 잦다. 신학대학에서 공부했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자신감이 아니었을까. 그가 기독교에 대해 감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어떤 경험이나 가정 환경에서였을까, 궁금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