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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에 대하여 어떤 수식어를 붙일 수 있을까? 워낙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이어령이기에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논리적으로 말을 구사할 줄 아는 달변가, 문학평론가, 신문사 주필, 대학교수, 소설가, 초대 문화부 장관.등 그의 이력은 그가 살아온 나이만큼 다양하다. 이렇게 다양한 방면에서 활동했던 이어령을 나는 20대 시절에 만났다. 20대 시절 용돈을 아끼고 아껴서 이어령 전집을 구입한 것이 벌써 30년 전쯤의 기억이다. 그 당시 얼마나 이어령의 글을 좋아했는지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읽고는 이어령을 따라 유럽을 여행하는 꿈을 총천연색으로 꾸었다. 그 당시 내 친구들은 꿈은 절대로 천연색으로 꿀 수 없다고 했지만 내가 직접 경험했기 때문에 확실하다는 주장을 했고 이것 때문에 말싸움까지 했을 정도다 이렇게 이어령은 내 젊음의 한 때 우상이었다. 이 책을 읽게 된 동기도 내 우상이었던 이어령을 좀 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이었다. 24세에 이미 ‘우상의 파괴’라는 글이 한국일보에 전재되면서 화려하게 문학평론가 이어령이 등장한 것이다. 그로부터 50년 지금도 이어령은 우리 지성사의 거목으로 아직도 푸른 잎을 자랑하며 많은 지성인들을 자신의 그늘 속에서 쉼을 얻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유쾌한 창조’ 이 책을 손에 들고 표지를 살펴보았더니 ‘이어령의 지성과 영성 그리고 창조성’이란 문구를 보았다. 이 짧은 문구 하나를 통해 이어령이 추구한 것과 그가 가고자 하는 삶의 종착역을 알게 되었다. 이어령을 인터뷰한 강창래의 책을 처음으로 접했는데 그가 이어령을 이해하고 독자들에게 알려주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는가를 알게 되었다. 이어령의 기독교를 이해하기 위하여 무신론자인 강창래는 중요한 자료라며 15권의 책과 BBC 다큐멘터리 자료를 참조했다. 중요한 자료라고만 했으니까 그밖에도 많은 자료가 숨어있음을 알 수 있다. 그만큼 강창래는 성실하고 또 꼼꼼히 자료를 챙겼고 이 자료를 중심으로 이어령을 분석하고 또 이어령을 이해하기 위하여 많은 고통의 시간들을 보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유쾌한 창조’는 아무래도 태생적인 약점이 있다. 그것은 강창래의 책이 아무리 객관적으로 쓰였다고 해도 이어령을 좋게 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이어령에 대한 찬가쯤으로 비쳐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어령을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 책을 꼼꼼히 읽어 나가면 우리 시대에 썩지 않은 고목이 하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 감격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한다. 이 확신은 내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말이다. 이 책은 중요한 4개의 차례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2장에 나오는 불온성 논쟁은 이 책에서 가장 찬반을 일으킬 수 있는 부분이다. 논설위원인 이어령과 시인 김수영과의 논쟁은 나도 막연히 알고 있었다. 논쟁이라는 것은 아무래도 OK목장의 결투처럼 한 사람은 죽어야 신이 나고 재미가 있는 법인데 이 논쟁은 그렇게까지 발전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 논쟁이 흥미를 끄는 것은 우리시대의 지식인들이 조연급으로 많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 지식인들이 과연 김수영과 이어령의 논쟁에 어떻게 관여했는지 그리고 그들이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를 알게 되었을 때 우리는 그 이름 때문에 실망할 수도 있고 반대로 이어령을 공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선 불온시 논쟁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먼저 문학 평론가 김윤식, 시인 최하림, 백낙청, 김현 등이다. 그들은 이어령에 대하여 비판적인 글을 썼는데 강창래는 심하지는 않지만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그들을 비판해 나간다. 그러면서 이어령에 대하여 한국의 문단, 또는 젊은 지성인들의 ‘소통의 어려움’, ‘오해받음의 쓸쓸함, 또는 안타까움에 대해 충분히 대답한 것 같지 않다’(86쪽 인용) 더 나아가 안도현의 시 ‘연탄재’를 인용하며 “함부로 발로 차지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라며 이어령을 옹호한다. 더 나아가 이 시대에 실천하는 지식인으로 존경받는 리영희를 “선생님 어쩌자고 그런 험담을 책에 실었습니까?”라고 직설적으로 비판한다. 그리고 강창래는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어령과 김수영의 불온시 논쟁 원문을 독자들이 읽어볼 것을 권하며 ‘누가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적어도 이어령이 말했던 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사르트르와 까뮈의 논쟁이 10년 우정을 깨뜨린 것처럼 때론 격렬한 논쟁은 서로에게 피 흘림밖에 남을 수 없겠지만 이 피 흘림이 자양분이 되어 문학이 자라는 것이 아닐까? 그리고 내가 가장 관심 있게 읽은 부분은 ‘프리즘에서 나온 이어령의 기독교’다 30대의 젊은 교수 이어령은 대구의 한 대학에서 특강을 할 때 기독교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문화적인 현상으로서 기독교를 인정하지만, 신앙의 대상으로는 미신이 아니냐? 그런 미신을 내 신앙으로 받아들일 수는 없고 인간사회에 문화적인 현상으로 인정할 따름이다” 이렇게 철저하게 무신론자로 살았던 이어령이 75세에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많은 사람들에게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이어령이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 때문에 이어령을 변절자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 같다. 이어령의 회심은 어떤 면에서 사도 바울의 회심과 비슷한 면을 가지고 있다. 사도 바울은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으로 다메섹으로 가다가 다메섹에서 신비한 체험을 하며 예수를 영접하지만 이어령은 사도 바울과 같이 기독교를 핍박하는 사람은 아니고 단지 기독교를 하나의 미신으로 치부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도 바울과 이어령은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것은 둘 다 뛰어난 지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 문화에 정통했고 그 당시 석학이었던 가말리엘의 수제자였다. 사도 바울의 지성 때문에 하나님은 그를 사용하셨고 그는 터키와 유럽에 기독교를 전파했다. 하나님께서 늦은 나이에 이어령을 부르신 것도 그의 지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어령은 벌써 일본에서 방송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고 그는 하나님 앞에서 나는 글쟁이기 때문에 글을 통해 하나님을 전하겠다는 결심도 했다. 이제 이어령의 남은 생은 하나님 앞에서 귀한 도구로 사용될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얻은 유일한 즐거움이다. 유쾌한 창조는 이어령이라는 한 인물을 인터뷰했지만 저자 강창래의 생각이 많이 들어가 있는 책이다. 그 생각 때문에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이 불편할 수도 있겠지만 내 시각으로는 많은 자료를 통해 이어령을 분석하고 객관적으로 보려고 많은 노력을 했다. 이 노력만큼은 모든 독자들이 인정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이 책은 이어령에 대하여 반대하는 독자들이 먼저 읽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우리는 대부분 모르기 때문에, 아니면 부분 지식 때문에, 아니면 오류지식 때문에 실재에 접근하지 못하는 과오를 범하기 때문이다. 우리시대에 이어령과 같은 인물과 한 시대를 살면서 그의 책을 읽고 그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적어도 나에게 있어서는 행복한 시간들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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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알마에서 나온 책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처음 알마를 알게 된 것이 과학과 사회 시리즈를 통해서였다. 다소 어렵고, 무거운 주제들이었지만 지금까지 발간된 9권을 다 읽어볼수 있었다. 물론 알마에서 모집한 모니터링 요원인가를 통해서였지만..
그리고 스스로 B급 좌파라고 하는 김규향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괜찮은 시도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왜 그 책을 구매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읽고 난 후 후회(?)는 하지 않았으니까 괜찮지 않았나 싶다. 이 책 [유쾌한 창조] 역시 [가장 왼쪽에서, 가장 아래쪽까지]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쉽게 읽을 수 있으리란 생각을 가지고..
이어령 교수의 책은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아주 오래 전 읽어본 적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인터뷰어 강창래의 말마냥 대학에 들어간 이후 나에게서 멀어져 갔으리라 생각 했다. 그 시절에 내가 읽은 책들이, 관심이 있었던 책들이 주로 사회과학서적이나 금서들 이었기에 거기에는 리영희가 있었고, 한완상, 황석영등 내가 좋아할 사람들이 너무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 후 그가 문화부장관이 되었고, 그때 무슨 일을 했었는지는 모르지만, 단지 준군사정권 아래서 장관을 했다는 그 사실만으로 내게서는 지워진 사람이 되었다. 사실 나에게서 지워지나, 안 지워지나 특별한 뜻은 없지만 서도, 내가 일부러 이어령교수의 글을 찾아 읽는 일은 없으리란 것 이었다.
그러다 얼마 전, 조정래의 [황홀한 글 감옥]을 읽으면서, 그 책속에 나오는 이어령 장관의 일은 잠시나마 이어령 교수에 대한 내 생각을 바꾸게 만들었고, 이 책 [유쾌한 창조]를 읽어보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책을 읽는 동안 마음이 좀 불편하다. 인터뷰이와 인터뷰어가 서로 얘기하면서 자연스레 그의 사상을, 생각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인터뷰어의 말만 써있는 이 책은 내가 보기에 일방적인 이어령 찬가, 혹은 그의 좋은 점을 강조하려는 듯한, 아니 그가 받고 있다는 대중의 오해를 불식시키려는 뜻으로 쓰여진 책이 아닌가 하는 느낌마저 들게 한다.
김수영과의 불온시 논쟁이나, 이어령 교수의 창조공간이라는 회색지대론, 그리고 일흔일곱의 나이에 무신론자에서 기독교도가 되었다는 그의 영성에 관한 것 모두, 나로서는 이해하기가 힘들다. 물론 비평가들이나, 전문적인 글을 쓰는 사람들도 이어령 교수의 글을, 말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어렵다고 했으니, 나 같은 범부가 이해한다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일지도 모른다.
그가 말하는 회색지대란 흑과 백, 안과 겉, 그리고 위와 아래 모든 것을 아우른다고 한다. 새의 날개는 날때는 날개이지만 알을 품을 때는 품개가 되고, 병마개는 막고 있을 때만 마개이지, 병속의 것을 꺼낼 때는 열개나 따개가 된다고 한다. 회색지대는 흑과 백이 섞여서 되는 것이 아니고, 두개를 아우르는 사고방식 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이분법적 사고에 젖어있어서 인지는 몰라도, 비극적인 현대사를 살아온 우리에겐 어쩐지 현실을 회피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이어령 교수가 운영한다는 창조학교는 우리 사회에 필요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다. 이 세상은 적응하는 사람들에 의해 유지되고, 반역하는 사람들에 의해 변혁된다고 한다.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는 반역성이 창조를 만들어 낸다는 말은 요즈음 화두가 되고 있는 창조성에 대해 한번쯤 생각해보게 만든다. 또한 그의 창조학교에서는 우리의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책이나 미디어 같은 것에서 얻는 정보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알려주기도 한다. 그런 고정관념의 벽을 부술수 있을 때 창조는 우리들의 머릿속에서 나올 수가 있다고 한다. 그가 말하는 디지로그의 세상, 디지털의 세상이 가상현실이고, 아날로그 세상이 실제 현실이라면 그것이 섞이는 세상, 에 살아남기 위해 우리 모두 디지로그인을 만들기 위해서라는 창조학교가 더욱 발전 했으면 싶다.
인터뷰어는 그의 영성에 대해서도 이야기 한다. 그는 하느님의 아들로써의 예수, 그것이 영성이며 우리처럼 몸을 가지고, 지성을 가진 사람으로써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라고 한다. 그가 안티 기독교인에서 기독교인이 되기로 했다는 이유를 보고, 이기적인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는, 신지학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말이 떠오르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백권이 넘는 책을 썼고, 우리 시대의 최고의 지성인이라는 소리를 듣는 이어령 교수, 차라리 이 책을 보기 전에 그의 다른 책을 먼저 보았더라면, [황홀한 글 감옥]에서 변했던 그에 대한 나의 생각이 그대로 유지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나의 글읽기가 잡식성이래도 당분간 그의 글을 보기가 조금은 힘이 들 것 같다.
[추가사리] 그의 창조학교에서 내는 문제중 재미있는 것이 있어 소개한다. 세사람 가운데 한 사람을 지도자로 뽑는 문제라고 한다. 첫 번째 사람은 부패정치인들과 결탁한 적이 있고, 의사 결정할 때 점성술을 참고하며, 두명의 부인이 있고, 줄담배를 피우며 마티니를 하루에 열잔쯤 마신다고 한다. 두번째 사람은 회사에서 두번이나 쫓겨났고 정오까지 잠을 자며, 대학시절 마약을 복용한 경험이 있고 매일 밤 위스키를 1/4병을 마시는 사람이란다. 그리고 세번째 사람은 전쟁영웅이고 채식주의자이며 담배는 안 피우고 가끔 맥주를 조금 마실 뿐이며, 불륜관계를 가져 본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과연 우리라면 어떤 사람을 지도자로 뽑게 될까? 그는 말한다. 첫번째가 루스벨트, 두번째가 처칠 그리고 세번째가 히틀러라고 한다. 고정관념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알려주는데, 손색이 없어 보이는 문제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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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어령을 잘 모른다. 똑똑한 사람이라는 정도만 알았다. 지금도 사실 나는 이어령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이 책을 읽으며 이어령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심청이 패러독스를 이야기하며 그의 혜안에 놀랐고, 그의 간증을 들으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 시리즈를 모으고 읽으며 좋은 점은 잘 모르는 유명인의 인터뷰를 읽으며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왜 그런 일을 했는지를 알게 되어 좋다. 그 사람과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 더 좋다! 벌써 친구 1인에게 이 책을 선물해 주기로 약속했다. 마침 이 책이 우리집에 한 권 더 있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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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선생은 당대 지성을 대표하는 분이시다. 누이의 책장에 꼽혀있던 문학사상의 주간이라는 것과 초대 문화부장관 등을 지냈고, 이후 굵직한 국가적 문화행사의 위원장을 맡으시는 모습을 보긴 했지만 그렇다고 내가 이 분을 많이 아는 것은 아니다. 고작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한국과 한국인', '지금은 몇 시인가' 정도를 읽고 대단한 지성의 선생으로 알고 있을뿐이지 문학적 감탄이나 느낌을 공유하기엔 세대가 조금 차이가 난다. 물론 이어령 선생에게 '우리 시대의 늙지 않는 크리에이터'라는 수식어가 붙는다는 것을 부인하는것이 아니고 그냥 대단하다고만 느낄 뿐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느낀 것은 인터뷰(대담)를 중심으로 책을엮어 이렇게 맛깔스럽게도 읽을꺼리를 만들어내는 강창래 작가의 글솜씨가 대단하다는 거였다. 한 인간의 내면을 추적하기 위해 논쟁이 되는 오래된 자료에 접근하는 그의 자세는 자칫 고루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당시의 이야기는 그 당시의 독법으로 읽어야 '제대로' 읽을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편법에 기대어 깊이없는 말만 내세우기 보다는 진실에 한걸음 더 나아갈려는 그의 열정을 그대로 느끼게 한다. 좌담을 소개한 책을 더러 보긴하지만 그러한 책이 보통 '그들만의 리그'에 거치는데 비하여 '인문학으로 광고하다'에 이어 나온 강창래의 대담집은 참 읽을만한 괜찮은 책이다.
창조성이 회색지대Gray Zone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선생의 말은 '선생의 잣대'가 무엇이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듯하다. 손등과 손바닥처럼 둘이면서 하나인, 둘 중 하나가 아니라 둘 다를 볼 수 있는 공간이 그레이존이라고 풀이하는 사고는 "너와 나가 둘이 아니요,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며, 번뇌와 보리, 세간과 출세간, 선과 불선, 색과 공 등 모든 상대적인 것이 둘이 아닌 경지를 나타 낸" 불교의 불이不二사상을 떠올린다. 명예교장으로 있는 창조학교는 온오프를 융합한 디지로그형 실험학교라는 이야기는 전해듣지만 이후로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몇년전 기독교도로 세례를 받았다며 '지성에서 영성으로' 등의 단어가 많이 소개된다. 이 부분은 늙어가면서 신의 영역에 의지하는 인간의 개인적 의지이므로 지인들에겐 의미가 있을지 모르나, "기성의 모든 권위에 대해 거부하는 몸짓으로 살아온 무신론자였던" 선생으로 평가하는 저자의 글이 나에겐 별로 와닿지 않는 공치사로만 들린다.
선생에 대해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분이 선생을 '한국의 임어당'으로 치켜 세우자 의견이 분분해진다. "양지만을 골라 다닌 똑똑한 지성인이지 존경까지는 아니다"라는 반론이 등장한다. 저항정신으로 어두운 시대의 햇불이 된 문인이 진정한 지성인이 아니냐는 의견에 다들 침묵한다. 각각의 생각이 다르므로 뭐라 결론내리기엔 나의 연륜이 짧다. 선생이 요즘의 젊은 이들이 외면한다는 J일보의 고문이라는 것도 보수주의라는 색채에서 멀어지기 힘든 이유 중의 하나 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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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그물에 걸려 올라온 은빛 반짝이며 퍼덕이는 물고기를 덕장에서 줄지어 말리고 있는 죽은 오징어처럼 만들지 말라.” 표지에 이런 글이 적혀 있다. 이 글귀 하나면 이어령씨의 언어를 잘 설명할 수 있을 듯하다. 그의 언어는 윤기가 난다. 그의 언어는 파닥 파닥거린다. 그의 언어는 생물과 같다. 그의 언어는 금방 따온 과일 같다. 이어령씨를 만나면서 늘 느끼는 그에 대한 소회다. 이 책도 그런 각도에서 읽혀져야 하리라 생각을 하고 덥석 쥐었다. 그런데 분의 이야기를 조합해서 전해주고 있는 강창래씨의 글이 아닌가. 저자(강창래)가 만난 이어령, 그가 본 이어령, 그가 느낀 이어령에 대해서 일목요연하게 제시하려고 노력한 책이 아닌가. 그를 알리려고, 더러는 변명을 하려고 기록한 글이 아닌가. 읽으면서 그렇게 다가왔다. 그는 이어령씨는 10번 정도 만났다고 했다. 그리고 많은 조각의 이야기들을 주웠다고 했다. 아마 많은 시간, 그의 자료들을 모으지 않았나 생각된다. 하여 그것을 조각하고 펼쳐 이 책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나 여겨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통해서 두 사람을 읽는다. 이어령씨의 글을 많이 인용을 하고 있기에 이어령을 읽고, 강창래씨가 정리했기에 그도 읽는다. 정리라는 것은 전래되는 이야기를 구연하는 것과 같이 본인의 생각이 들어가고, 멋과 맛이 재편된다. 그렇기에 둘의 이야기를 읽게 된다는 말이다. 저자는 말한다. 이어령씨를 알게 되는 것은 24천 개의 직소 퍼즐을 통해서라고. 조각 난 이야기들을 순서에 따라 잘 짜맞추어야 알 수 있다는 말이다. 작가가 그 일을 한다고 말한다. 숱하게 들었던 이야기, 만나서 들은 이야기, 그리고 조사한 이야기 등을 적재적소에 넣고, 그것을 정리하여 내어 놓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온전하게 하지 못한 듯하여 안타깝다고도 했다. 아마 예의상 그렇게 한 듯하다. 확실히 이어령씨는 매력이 있다. 그의 이야기를 하고 있는 화자의 화술도 모든 내용들과 같이 기지가 흐르고 있다. 문공부 장관을 역임한 이야기며, 김수영과의 논쟁이며, 기독교에 들어가 세례를 받은 이야기, 그리고 한 벌의 수의 이야기 등 모두가 재치가 넘치고 나름의 타당한 이유가 있는 내용이었다. 이들이 치열하게 사는 삶의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지, 비난이나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화자의 태도에 깔려 있다. 집필해 나가는 각도가 그렇게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강창래씨의 집필 시각을 인정해 주지 않으면 책 자체가 아무런 의미 없이 다가올 것이다. 그러나 그의 시각에 의해 따라가면 참 잘 쓰여진 내용들이라는 것과, 이어령씨에 대해 좀더 깊이 있게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이 책은 70이 넘은 노인을 귀엽다라고 표현한 대목에서, 종교적인 대목에서는 개인적인 이어령이 누구나 그렇게 될 수 있다는 보편성을 앞세워서, 그리고 수의 대목에서는 실패할 확률이 100%인 세 가지 프로젝트에 대한 이야기로 그리면서 순수성에 기를 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공익을 위해서, 그리고 사명감 때문이라고, 그의 삶을 채색해 나가고 있다. 모두가 그렇게 충분히 들을 수 있는 내용이다. 그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인식할 수 있도록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소문에 가려진 진실, 불온성 논쟁에서는 원문을 제시해 충분히 독자의 의견을 구하고 있는 것에서 거짓이나 변명이 아님을 명쾌하게 말한다. 잘 씌어진 글이다. 이어령 평전이라고 할 수 있는 이 글은 그의 삶이 적나라하게 공개되고 있다. 그의 미래에 대한 생각까지 밝혀서 전해 주고 있는 이 책은 그의 모습을 소상하게, 긍정적으로 기술해 나가는 특징을 보여 준다. 그를 이해하는데, 아니 한국의 오늘을 이해해 나가기 위해서도 읽으면 좋은 작품이다. 주어진 상황을 잘 극복하고 이 책이 널리 읽힐 것을 간절히 바란다. 너무 재미있게 읽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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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편식했던지 이어령 교수님의 저서들은 이름은 들어보았으나 읽어본 적이 없었다. 세월은 흘러 아이를 낳고 아이의 책을 구입해던 와중에 모 전집의 세계문화여행의 집필을 맡으신 분이 이어령님인 것을 알았다. 그 후에 알고 보니 이어령님의 저서가 정말 많았다. 맞다. 전 문화부장관으로서도 기억에 남는다. 뜨자 날자 한국인 같은 초등학생들이 읽기에 참 좋은 책들을 보고 홀딱 반했다. 어린이들에 눈에 맞게 성인이면 성인에 맞게 정말 글을 너무 잘 쓰시는 분이었다. 1933년생이시니 정말 살아있는 지성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을 정도이다. 지성에서 영성으로 라는 책을 읽고는 이분의 삶을 또한 현재의 삶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러던 중에 강창래씨가 인터뷰했다는 이 책 '유쾌한 창조'에 눈길이 머물렀다. 이어령 교수님을 귀여운 어령이라고 부를 수 있는 남자 강창래. 이 책은 이어령님을 인터뷰이로 강창래씨가 인터뷰어로 활약한 책이지만 머리말에 밝힌대로 이어령님의 목소리가 많이 담긴 책이다. 공저자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시간의 여유가 많지 않았던 이어령님을 여섯번만 만나면 책을 쓸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오산이었단다. 열번을 만나고 7개월동안 글을 다듬고 다음은 다음에야 이 책이 완성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은 믿을 수 있다. 강창래씨도 글을 아주 잘 쓰는 양반인데다 이토록 열심히 교정하고 스스로 교열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어령님에 대한 인터뷰 책은 시중에 이미 나와있지만 이 책이 가장 진솔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개인적인 생각이다. 이어령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만큼 반가운 책은 없으리라..
1장에서는 이어령 교수님의 귀여운 면까지 파악한 귀여운 어령이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도 재미있고 흥미롭다. 나는 이어령님의 강연을 들어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을 잘 하시고 수사학적이고 현란한 말솜씨를 가지고 계신지 몰랐다. 박완서님이나 김화영님이 이어령님을 만나고 쓴 글을 보면 그와 함께 있으면 심심한 줄 모를 정도로 듣고만 있을 때가 많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지루하고 자기자랑만 있는 것이 아니라서 신기하다는 것이다. 물론 자기자랑이 아주 없지는 않지만 귀여움으로 승화된 무엇이 있나보다...귀여움이라고 분명 쓰셨다. 김화영씨가 쓴 이야기도 다르지 않다. 이에 대해 이어령님은 치킨게임같다고 한다. 상대방이 말을 하지 않는 그 침묵이 견딜 수 없어 결국 먼저 말을 꺼내게 된다는 것이라는 고백은 정말 귀엽다. 나 역시 그런 과이기 때문에 정말 동감했다. 그 어색함이 싫어 먼저 말을 하지만 그나마도 요즘은 나도 귀찮아져서 말을 먼저 하지 않는다. 그에 비하면 이어령님은 언제나 얼마나 친절한 분인가. 그와 사적으로 만나 듣게 되는 이야기는 보석과도 같을 것 같다.
이처럼 강창래씨는 이 책에서 이어령씨라거나 님이라거나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앞으로 쭉 그 문체를 지키기 위해서 1장에서 이런 점을 밝힌 것인데 덕분에 이어령님에 대한 사적인 삶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4장까지 읽는 내내 강창래씨의 인터뷰 솜씨와 이어령이라는 인물에 대해 감탄을 금치 못할 것이다. 벌써 일흔 일곱이시라니.. 이런 석학이 살아계시다는 것이 정말 감사하다. 꼭 오래도록 건강하셨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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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이라고 하는 분야가 좀 어렵기는 하다. 나도 책을 좀 읽는 편이기는 하지만 유독 인문학 분야의 책들을 읽을 때는 항상 긴장된 태도로 책장을 넘기곤 한다. 그러다 보니 인문학 책들을 고를 때에는 신중의 신중을 기하고 자주 읽지는 않게 되더라. 그런데 이 [유쾌한 창조]는 인터뷰집이라고 하는 책은 그 동안 내가 접해보지 못했던 책이기도 했었고 그 공동저자로 내세워진 “이어령”이라는 분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하게 되었다. “이어령”이라고 하는 분은 시대의 지식인이라고까지 칭송받는 분이지만 노태우 전대통령 시절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내면서 많은 젊은 지식인들의 지탄을 받았던 분이라고 하는데 사실 나는 그 시절 정치쪽은 관심도 없었거니와 열심히 대학에 가보겠다고 공부를 하고 있는 고등학생에 불과했기에 이분이 어떤 분인지도 잘 몰랐다. 그래서 오히려 “이어령”이라는 분을 원래 알고 있던 분들보다 더 책에 몰입해서 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처음 책을 펼쳐서 봤을때는 조금 당황스럽더라. 이어령 교수 본인이 쓴 부분은 없고 강창래라고 하는 분이 이어령 교수를 인터뷰하고 그 이야기들을 책으로 엮어놓은 그런 책이었기 때문이었다. 아, 그래서 인터뷰집이라고 했던 것이구나~ 라고 알게 되면서 당황했었던 기억이 새록새록하다. 책을 읽으면서 놀랐던 것은 이어령 교수를 인터뷰하고 이 책을 쓴 강창래라고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이어령 교수를 인터뷰하면서 그에 관해 알기 위해 정말 무던히도 많은 책들을 읽어내고 이어령이라고 하는 사람에 대해 알기 위해서 노력한 사람이더라. 책을 읽는 내내 그가 읽고 인용한 책의 글귀들을 보면서 그가 서문에 쓴 “2만 4천개의 직소퍼즐 같은 이어령”을 독자들에게 “이어령” 이라는 사람의 온전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한 그의 말을 충실히 이행하기 위해 고군분투한 흔적들이 역력히 보인다. 나처럼 이어령 - 이라고 하는 사람을 전혀 모르고 있는 사람에게 그가 어떤 사람인지 여러 가지 시각으로 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하나하나 인용한 책들의 정보도 자세히 곁들여져 있었기 때문에 부차적으로 그 책들에 대한 호기심으로도 연결될 수 있는 재미있는 글이었다. 하지만 누구나가 그렇듯이 자신의 마음에 든 사람은 어떤 것들을 보아도 다 좋아 보이는 법이라. 강창래 자신이 이어령 교수를 굉장히 좋게 본 듯… 책은 이어령 교수의 좋은 부분들이 부각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글 자체가 어려운 것은 아니었지만 생각보다 어려운 이야기들을 담고 있어서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도 많았던 책이다. 하지만 인터뷰집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보는 기회가 됐고 그 동안 궁금해하면서도 선뜻 손대지 못하고 궁금해하기만 했던 이어령이라고 하는 분을 자세하게 알 수 있는 기회가 됐던 나에게는 선물 같은 책이었다. 아~ 다른 인터뷰집들도 다 읽어보고 싶지만 특히 이 책을 쓴 강창래 저자가 쓴 또다른 인터뷰집인 [인문학으로 광고하다]를 읽어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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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 교수님의 유쾌한 창조를 읽으면서 그의 행복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는 매우 힘들었던 시간들이 있었다. 따님을 통해, 때로는 자신을 통해 어려웠던 일들이 계속 되어지면서 유쾌함과는 멀어던 시간이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자신만이 가지는 유쾌함으로 인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는 은빛을 반짝이며 퍼덕이는 물고기를 비유하면서 자신의 유쾌한 행복을 마치 바다에서 뛰놀던 물고기로 연상케 하고 있다. 이 책에서 이어령은 다양한 모습을 만나게 한다. "죽을 분비 때문에 바뻐요" 그는 죽기 전에 실패할 일, 세 가지를 벌였다고 했다. 그러기에 정말 바쁘다는 것이다. "한중일비교문화연구소, 창조학교, 한국인 이야기"로 인해 그는 인터뷰를 할 시간 조차 어렵다고 한다. 이어령 교수는 칠순이 넘어서 더욱 활기찬 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지금이 그 유쾌한 창조의 역사를 쓰고 있는 것이다. 정치가로, 문학가로, 교수 등등의 명함으로 인해 그는 자신의 모습을 잃을 정도로 삶에 회오리속에서 살아갔다. 마치 총알탄 사나이처럼, 그렇지만 그는 많은 것을 잃게 되었다. 이 과정속에서 그는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는 <지성에서 영성으로>를 저술하면서 그가 가졌던 이성의 세계에서 영성의 세계로 바뀌게 된 계기를 갖게 되었다.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서 그는 인간으로서의 예수님뿐이 아니라 기독교가 만들어 내는 예수가 아니라 부활한 예수님을 만나게 됨으로 그분안에 있는 창조적인 능력이 그의 삶을 인도하게 된 것이다. 아픔의 터널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그를 만나준 예수님으로 인해 그의 삶의 변화와 방향을 다시 설정하게 되었다. 그의 글에서 그 빛나던 아침 햇살, 그리고 세례를 상기하면서 썼던 글에서 그의 삶을 보게 된다. 딸로 인해 절망에 빠져 있던 자신에게 시련을 끝냈을 수 있었던 과정을 그리고 있는데 가슴이 있는 모든 이들에게 눈물을 머금게 하는 대목이다. 이어령교수의 재능과 달란트로 인해 그는 새로운 창조적인 삶을 살면서 많은 이들에게 비전과 꿈을 유쾌한 창조로 인도하고 있다. 이어령교수다운 모습이다. 노년이면서도 젊음을 찾은 그만의 유쾌함은 창조의 역사요 기록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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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책을 읽을 것인가. 라는 고민을 하면서 좋은 책이란 무엇인가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어령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 동안 갖고 있던 생각을 조금 바꾸게 되었다. 이 책의 리뷰를 감히 어떻게 내리지 못하겠다.
다만 참 멋진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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