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수돌 교수님께 아이를 [사랑의 결실]로 키울 것인가, [제 2세대 노동력]으로 바라볼 것인가? 하는 문제제기가 참 의미있게 느껴졌고 많은 부분 공감했습니다. 작금의 교육현실을 팔짱끼고 지켜보기엔 문제가 너무 산적해 있잖아요. 하지만 계속 읽어내려가고, 작가가 라다크얘기를 하고 공동체 얘기 운운하는 것을 보며"아, 이건 아닌데" 싶었습니다. 물론 지금의 세상 돌아가는 꼴은 정말 자기무덤을 파는 형국입니다. 자본주의가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나 쾌속질주하는 고속철 안에서 우리는 초조해하고 불안해하면서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 고속철에서 내리게 되면 당장의 낙오자가 되고 사회도피자, 자포자기자가 되므로 또 쉽게 내릴 수도 없는 것이지요. 하지만 교수는 우리에게 당장 그 사고 일보직전의 경쟁일변도의 '고속철'을 내리라고 주문합니다. 아주 좋은 시와 함께요 <나하나 꽃="" 피어="" 풀밭이="" 달라지겠느냐고="" 말하지="" 말아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꽃밭이="" 되는="" 것="" 아니겠는냐=""> 라는 아름다운 문구로 우리의 마음을 울리려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저는 역부족인 듯 싶습니다. 아이들이 자신이 하고픈 것을 맘껏 하게 해주자 고 용감무쌍하게 현실에 도전하기에는 현실은 고달프고 당장 배고프고 힘들기만 합니다. 내가 좋아하는 것, 즐겨하는 것, 마음에 드는 것만을 좇다가 소위 성공이라도 하면 그보다 더 좋을 순 없으나, 이도저도 아닌 상황에 처했을 경우 우린 어떡해야 하는 걸까요? 더 배고픈 현실에 빠져 단지 먹고 살아야 한다는 이유로, 일용직을 전전하면서 또 희망없는 내일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아이들에게 "너 하고싶은 것을 해라"할 수 있을까요? 또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상황이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맘껏 할 수 있는 현실인가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문화인프라 등 아이들이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제반여건이 갖춰지지 않은 조건 하에서 아이들이 맘껏 할 수 있는 것은, 컴퓨터게임이나 아파트 놀이터가 전부입니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자 한다면 그 놈의 [돈]이 또 필요하지요. 나 혼자 용감하게 현실외면하고 공동체적이고 조화로운 마인드로 살아간다고 해서 누구 하나 알아주지도 않고 결국 나조차도 이 삶의형태를 의심하고 회의할 수밖엔 없습니다. 또 한가지, 교수님의 아이들은 교수님의 높은 학문적 바탕, 초등학교 교사이신 사모님의 교육적 마인드로 인해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되는, 또 아이들이 여러 가지를 체험할 수 있는 경제적 바탕을 갖고 계십니다. 하지만 상아탑에서 나와서 좀더 현실에 발붙이며 하루하루를 힘들게 살아가는 이들을 생각해보세요. 그 어떤 선택도 불가능합니다. 그들이 기대서 생활여건의 도약을 꿈꿀 수 있는 것은, [공부]라는 경쟁력 뿐입니다. 우리는 티벳의 라다크의 아름다운 옛날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500% 가까운 사실입니다. 공동체를 이루며 욕심없이 검약하는 생활을 하고픈 것도 인간의 참모습이겠으나, 보다 더 나은 세상에 대한 기대와 문명물질에 대한 욕심을 실현시키고 성취감을 느끼는 것도 인간의 참모습임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래야만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얘기한다고 하여 저를 현대문명의 노예로 치부하진 말아주세요. 저는 현직교사이며, 종례가 조금이라도 늦어지면 아이들로부터 "학원가야 해요"하는 아우성을 들어야 하는 실존하는 교육자입니다. 제가 왜 교수님의 마음을 모르겠습니까? 하지만 교수님의 고견은 상아탑이라는 갇힌 공간에서 나와야 할 것 같습니다. 다시 말해 너무 뜬구름 잡기 식이고, <왜 안돼?="">하며 혼자서 억지를 부리는 식으로 비춘다는 얘기입니다. 충분히 유토피아적이고 이상주의자입니다. 그러나 현실주의자는 아니신 것 같습니다. 저는 보다 땅에 발붙인 생생한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혁명을 일으킨 순 없잖습니까? 우리가 전지구를 뒤집어 엎고 라다크같은 세계를 조성할 순 없지 않습니까? 보다 더 고민해 주십시오. 교수님의 절실함은 이해하지만, 현실적 절실함이 필요할 때인 듯 합니다. ,,왜>나하나> |
| 인간은 누구나 그 자체로 소중한 존재이며 삶 가운데 행복할 권리를 가진다. 특별히 행복에 관하여는 그것이 법에 의해 ‘행복추구권’이라는 이름으로 보장되어있기도 하다. 하지만 명백히 인간이 행복할 권리는 법에 의해 성문화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보다 근본적으로 ‘인간이기에’ 이야기 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인간에게 있어 행복한 삶의 영위란 그 자체로 삶의 궁극적 목적이 될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해서는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이 제기될 수 있으며 이에 대해서는 나름의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수 있을 것이나, 일반적으로 인간이 그러한 행복을 누리는 중에는 그 안에 ‘사랑’이 있음을 발견할 수 있으며, 사랑은 서로를 존중하고 포용하며 신뢰한다는 표면적 의미 외에 본질적으로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을 필요로 하므로 최소한 나와 내가 아닌 누구(혹은 무언가), 즉, 둘 이상간의 소통을 전제로 함을 알 수 있다. 결국 인간은 ‘서로’ 사랑하고 사랑받는 가운데 행복할 수 있으며 이는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소중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현대 자본주의사회는 이러한 인간 본질에 대한 통찰을 한낮 ‘이상’으로 여기게 하고 인간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달리게’ 한다. 밟지 않으면 밟힌다는 신념이 지배하는 세상과, 이 세상이 만들어 내는 경쟁의 구도 속에서, 도태는 곧 소외를 의미하고, 소외는 ‘사랑할 수 없음’을 의미하며, 그것은 곧 ‘행복할 수 없음’으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삶의 목적에 허무 가득한 의문을 던진다. 그 허무함속에 묻혀 허우적대는 혹자의 몸부림이야 어찌되건간에 세상은 보다 효율적으로 써먹을 수 있을만한 건강하고 잘 길들여진 인적 자원을 찾고 이 사회에 그러한 자원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내서 공급할 것을 요구한다. 범지구적 경쟁을 부추기는 세계화와 시장의 힘을 신뢰하는 신자유화 경향은 이러한 추세를 더욱 가속화 시킨다. 사람들은 더 빨리 뛸 것을 강요받고, 쉴 새 없는 달리기에서 고통을 느낀다. 누구도 고통 그 자체를 원하지 않지만 그들은 ‘내 사랑하는 자식’을 위해 힘듦 가운데 그 고통을 감내하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식으로 하여금 자신이 못 이룬 큰 업적을 남겨주기를 기대한다. 우리 가문에 ‘한탕’만 터지면 모든 것을 보상 받을 수 있다는 꿈 안에서 애초에 끝이 있을 수 없는 소모적인 경쟁은 그대로 되물림 된다. 돈과 명예만 있으면 안되는 것이 없어보이는 세상에서 그러한 자본의 논리가 이 세상을 지배한다. 이렇듯 ‘자본의 패러다임’이 지배하는 세상가운데서, 세상이 나아가야할 방향성을 고민하고 결정해야할 독립변수로서의 교육은 그저 세상이(정확히는 세상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이) 요구하는 인적 자원을 끊임없이 양성해 내야만 하는 종속변수로서의 시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물론 그 안에서는 두 말할 것도 없이 ‘출세와 성공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자본주의의 본질로서의 경쟁 논리가 적용되었고, 이러한 체제하에서 우리나라의 교육은 유아기에서 성인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어두운 구석이 자리하게 되었다. 강제적인 야간 ‘자율’학습, 한 가정의 피를 말리는 고액 과외와 학원열풍, 우리 아이만큼은 남보다 잘 봐달라는 의미로 내미는 촌지, 한 생명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지는 심각한 왕따문제와 교내 폭력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어떠한 것에서도 인간의 인간됨에 대한 관심과 배려를 찾아보기 힘들다. 특별히 이러한 문제들은 단순히 교육이 이루어지는 직접적 환경이나 주체를 넘어 가정, 사회구조 등의 문제가 복합적으로 얽혀 일어난 종합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사회 전반적인 개혁을 통한 거국적인 치유를 요구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이 그 자체로서 존중받고, 내가 소중한 것처럼 다른 사람의 인격 또한 마땅히 존중받아야함을 알며, 각기 다른 적성과 취미가 각각 끊임없이 개발되도록 격려되고, 다양한 루트를 통해 그 자신이 진정 원하고 이루고자하는 꿈을 향해 힘차게 달려가게하는 교육은 과연 이 세상에서 실현될 수 없는 것인가. 저자의 말처럼 그 개혁의 시작은 ‘나부터’ 바꾸는 것에 있다고 본다. 지금의 교육이 바뀌려면 세상전반을 쥐고 있는 소모적인 자본의 패러다임이 생명력 넘치는 삶의 패러다임으로 변화해야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과 관련된 소수의 노력을 넘어, 사회 구성원 모두의 일치된 공감대와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한들 민주사회에서 어떤 변화를 억지로 강요하는 행위는 인정될 수 없고 그것이 강제되었을 시 그것은 또 다른 형태의 인간소외를 낳게 할 것이니만큼 내가 쥐고 있는 기득권을 놓게 하는 변화는 자연스럽게 공감되어지고 설득되어져야 할 것인바, 서로가 서로에 대한 불신으로 말미암아 눈치만 보고 먼저 놓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우선 나부터 과감히 참교육과 행복한 인간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인간 자체에 대한 관심과 그로 인한 밝은 미래에 대한 꿈을 삶에 적용하여 드러내는 것이 참 중요한 일이 되겠구나 싶다. 그러한 용기있는 개혁은 지금부터 내가 죽는 날까지 계속되어야 할 것이다. 대학생으로써, 일선교사로써, 한 가정의 가장으로써, 손자들을 거느린 노인으로써, 나를 통한 변화에 대한 지속적인 갈망과 끊임없는 노력이 언젠가 풍성히 결실을 맺을 것임을, 그 결실은 모두가 원하는 아름다운 세상과 학교 현장에서의 충실한 교육으로 나타날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만약 그것이 정말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당연히 내가 아닌, ‘우리’가 이룬 아름다운 업적으로 기억될 것이다. 조동화 님의 시처럼 ‘네가 꽃 피고 나도 꽃 피면 결국 풀밭이 온통 아름다운 꽃밭’이 되는 것이다. 그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교사를 꿈꾸던 내가 이 책을 읽고나서는 교육자를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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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 교사용 서고에 있는 이 책을 얼마 전부터 읽고 있는데 공감가는 내용이 참 많다. 아이들은 변화하는데 사회는 불변이다. 경쟁을 내면화시킨 사회 시스템 속에서 시들면서 거대한 체제의 나사처럼 헛도는 삶을 사는 사람들.. 유아기부터 상벌체제 속에서 내면적 자율성을 충실히 기르지 못하고 외부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자기 욕구를 억압하는 결과를 낳는데, 자라서 가정에서 학교로 그 공간이 옮겨지게 되면 쓸모있는 노동력의 육성이라는 관점에 맞추어 체계적으로 육성된다. 신체건강, 국어, 산수, 영어, 기술, 컴퓨터 등 노동능력을 향상시키고, 성실성, 책임감, 복종심, 충성심 등 노동자세의 측면이 반복 강화된다. 그런데 저자는 이 과정에서 좋은 성적과 결과를 내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 모두가 심대한 정신적, 심리적 상처를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잘 하는 학생은 잘하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신을 갈수록 억압해야 한다.(우리 언니의 전교 1등 딸네미가 생각난다. 거의 학습기계다.) 반대로 공부를 못하는 학생은, 만성적인 열등의식에 시달리게 된다. 그 결과 돌출 행동이나 문제 행동을 하기 쉽다. 이런 과정을 통과하여 양성된 노동력 중 태반은 착취당하고 싶어도 착취당할 기회마저 잃은 청년 실업자가 된다. 공장이나 회사에 취직한 사람들도 또 다시 성과주의, 생산성주의, 경쟁력주의의 패러다임에 갇힌 채 살아가야만 한다.
이제 좀 다르게 살아보자고 저자는 말하고 있다. 1999년 10월, 한강에 투신자살한 35세의 젊은 시티은행 지점장 안모씨의 경우를 떠올려 보자. 그는 대학 졸업 후 이 은행에 입사한 뒤 높은 성과와 성실성으로 승진에 승진을 거듭, 9년만에 방배동 지점의 최고책임자가 되었고, 3년 뒤엔 명동 지점장이 되었다. 그러나 그의 개인적 생활은 엉망이었다. 가족과 단란한 가정생활도 할 수 없었고 스트레스 때문에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자살을 통해 그러한 메커니즘과 과감히 '단절'하는 것이었다. 회사에게는 "내가 죽거든 내 가족들을 잘 돌봐 달라", 또 아이들에게는 "아빠처럼 바보같이 살지 말고 서로 도우며 이웃과도 잘 지내라"는 유서를 남긴 채....
그가 대안으로 내세우는 것은 외적으로는 연대와 협동에 기초한 새로운 세계질서를 창출하고 내적으로는 각 사회가 자율과 자치 능력에 기초하여 사회적으로나 생태적으로 건강한 삶의 구조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교육에서도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이 가진 이러한 이론적, 현실적 한계를 분명히 짚고, 그 위에서 대안을 고민하는 노력이 활발하게 일어나야 한다고 지적한다.
그의 글에서 특히 공감이 가는 부분은 교원 성과급제에 대한 것이다. 이러한 차별적 성과급제는 20세기 초 미국의 F.W.테일러의 '과학적 관리법'에 입각한 아이디어였다. 일류노동자를 기준으로 표준 과업량을 정하고 그보다 잘하면 보너스를 듬뿍 주고 미달하면 훨씬 덜 주는 방법으로 노동자들의 노동의욕을 경쟁적으로 부채질하고자 한 것이다. 이런 이론의 속에는 인간을 한낱 '돈벌이 기계'로 보려는 인간관이 깃들어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민만 하지 말고 새로운 교육의 패러다임을 찾는 길에 다 같이 나서도록 권하는 강수돌 교수의 말에 귀기울여 보자. |
| 지금 고교등급제가 온나라를 떠들썩하게 한다. 직업이 교사이다보니 그런 문제가 한 번 터지면 먼저 분개하게 된다. 교육현장에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긴 하지만 터지고 보니 정말 분통터진다. 한 줄로 줄을 세워야 직성이 풀리는 우리 교육의 현실, 그 속에서 안간힘을 쓰며 조금이라도 일찌감치 경쟁의 회오리 속에 휘둘리고 마는 수많은 우리 엄마 아빠...... 사실 나 자신도 영어 한 마디라도 글자 하나라도 일찍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는 엄마들과 자식 교육이라면 기러기 아빠든 펭귄 아빠든 어쩔 수 없다는 교육이라면 먼 나라로 짐을 쌀 수 밖에 없다는 그런 부모들의 아우성 속에서 나 역시 자유로울 수 없기는 하다. 이번에 어린이집 선택을 고민하면서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내 욕망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저 자연 속에서 놀기만 하면 될까, 다른 아이들은 이 나이에 한글 배우고 알파벳을 모두 외고 하는데..... 수 많은 상업적인 프로그램에다 갖가지 학원에서 이른바 '교육'을 시작하고 있는데.... 꽤 고민하게 되었다. 그런 고민의 현장에서 만난 이 책. 내 갈등 속에서 많이도 힘을 준 책이다. 강수돌 교수님이야 경제학 교수지만 자본주의 속에서 소위 '효율성'만을 신뢰하지 않는 참 '좋은' 존경하는 교수님이기에 난 이 책을 진작에 점찍어 두었다. 뱃속의 아이의 힘찬 태동을 느끼며 한참 세상을 호기심어린 순수의 눈으로 배워가는 세 돌을 앞둔 첫아이의 목소리를 들으며 참 열심히 읽었다. 결국 내가 변하지 않고서야 이 놈의 교육 문제가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 고민 끝의 선택을 신뢰하지 않고서야 나 역시 경쟁의 구렁텅이에서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을 권한다. 고민하고 있는 부모가 한 명 두 명 달라진다면 우리 현솔이, 윤솔이가 다닐 학교도 달라지고 입시도 달라지고 나아가 세상도 달라겠지, 하는 순수한 희망을 갖게 된다. 진정 문제는 그 희망의 실천이다. 물방울 하나가 모여 언젠가 바위도 뚫지 않겠는가.... |
| 공교육의 붕괴라는 현실 속에서... 아이들에게 대안교육(조기유학, 대안학교, 홈스쿨링)을 생각 안해보고... 정말 그런 교육울 시키고 싶지 않은 부모가 어디 있겠습니까... 저도 그런 생각을 안 해 본 건 아니지만... 책 내용을 보면 강교수님 입장과 수준에서 책을 쓰신 것일 뿐... 다른 부모님들이 공감은 하지만 실천은 어려운 책이라고 생각됩니다... 왜냐하면 일단 강교수님과 사모님 월급을 합치면 대략 천만원은 되시겠네요... 아이들은 학원도 안 보내시고 도보로 하교를 시키고... 두 분 연봉을 합하면 세금내고도 대략 1억 입니다... 그럼 우리들 연봉의 2배, 3배는 되시겠지요... 공부를 많이 하셔서 교수님이 되셨으니... 어떻게 하면 학자가 될 수 있고 사회 주류로 진입할 수 있는지... 유학은 어떻게 가고... 공부는 어떻게 하고... 우리 사회가 학연, 지연을 중시하는 사회라... 아이들 장래는 더 걱정하실 필요가 없으시겠지요... 제자들 많겠다... 지인들도 많겠다... 나중에 전화 한 통이면 될 아이들 취직 걱정 없겠다... 그래도 공병호선생 보다는 좋은 부모님 인것은 인정합니다... 공선생 아이들은 지금 미국에서 초, 중등학교 다니고 있다죠... 나중에 돌아와서 영어 잘 하는 이 사회의 주역이 되기 위해서... 그런데 강교수님은 최소한 아이들에게 여유있는 청소년기를 보내게 해 주시잖아요... 그러나 이 땅의 수 많은 부모들의 현실은 진정 외면한 책입니다... 교수님 주변의 지인들에게나 소개할 교육 방법이라 생각하면서... 한국에서 유기농 쌀밥을 먹는 1% 상류층 교육 참고서 같아서 입맛이 영 그렇군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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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유아교육을 전공하는 대학원 학생입니다. 사실 경영학을 전공한 분이 교육 관련 서적을 출간하셨다고 해서 색안경을 끼고 이 책을 접한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책의 구성도 시원한 행간은 한줄한줄 고민하며 읽기보다는 줄줄 읽어내리기 쉬웠고 글도 대화체가 간간히 섞여 있어 읽기 쉽게 조직되어 있어 새로운 많은 지식을 쌓고 사고훈련을 요구하는 그런 책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난 후 드는 느낌이란, 내가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교육학에 대한 의미를 전면적으로 구조조정하라는 명령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더 잘 배우고, 더 많은 아이들이 "성공"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왔던 제게 교육의 의미가 그것 이상의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을 설득적으로 주장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교육이라는 것을 삶으로 그리고 교육개혁이라는 것도 그 삶속에서의 나의 실천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저자의 저서는 경영학 전문가의 교육분야에 대한 "간섭"이 아닌 생활로서의 교육을 받아들이라는 진지한 조언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사실 요즘들어서 교육학에 대한 경영 및 경제 분야의 전문가들의 "조언"을 많이 들어야 하는 현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들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으면 교육학 분야에 돈을 줄 수 없다는, 투자해서 곤란하겠다는 협박을 전면적으로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교육 문제를 논하는데 늘 재경부가 들어와서 이래라 저래라하고, 교육부도 교육인적자원부로 명칭을 개명하며 좀더 경영분야의 요구에 적극적으로 부응하려 하는 시대인 것입니다. 그들이 요구하는 교육개혁은 늘 효율적인 교육, 사회적 투자로서 "금전적 가치"를 뽑아낼 수 있는 교육개혁이었습니다. 그래서 강수돌 교수님의 이 책이 처음에 반감을 가지게 한 것이었나 봅니다.
전혀 달랐습니다. 지금껏 들어오던 그런 경영학과 경제학 분야의 잘하는 놈은 더 잘하는 구조가 되게 사립화 하고 돈을 팍팍 투자하고, 못하는 놈은 더 닥달해서 시험 성적을 끌어 올리라는 "구조조정"요구와는 다른 교육의 가치를 다시 생각할 것을 요구하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요즘 경영학은 이런 것도 있나보다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진지하지만 결코 딱딱하지 않게, 사회 전반에서 제기되는 교육학 관련의 문제들을 사려깊게 성찰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싶은 분들께 필요한 책입니다. 책 표지도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이 각별한 저자를 닮아 비닐 코팅이 되지 않은 책이군요. 멋집니다. [인상깊은구절] 발도르프(Waldorf) 교육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도 아이들이 만 7세까지는 다섯 가지 이상으 감각의 형성기이며, 다음 14세까지는 희로애락을 포함한 감성의 형성기라고 가르치지 않았던가. 그 뒤 21세 까지는 논리적 사고의 형성기라고 한다. 물론 이런 아이디어를 기계적으로받아들이면 곤란하겠지만, 아이들에게는 그때그때마다 시기를 놓치지 말고 발달시켜야 할 측면들이 있을 것 같다. 그래야 '전인교육'이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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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수돌 교수의 나부터 교육혁명은 한국 교육문제의 핵심이 '다양한 삶에 비해 획일적인 교육'이 아닐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것을 강조하며 많은 소유와 남부럽지 않은 소유를 위해 출세와 성공을 꿈꾸는 삶의 방식을 바꿔 삶의 질에 고민하자고 주장한다.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지고 사는 우리들은 오늘 내 삶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회의하며 더 큰 불안을 느끼게 되고, 이런 존재의 불안감은 극단적인 경쟁체제로 나를 밀어 넣으며 '더 많은 소유와 더 많은 소비'를 위해 죽어라 달릴 것을 강요한다. 왜 그렇게 살아야하지?
전우익 선생은 "잘 산다는 건 옳게 사는 거지 사람 많은 데 따라가며 사는게 아니야"라고 이야기 했었다. 전적으로 공감하는 이야기이다. 남들과 같은 속도와 방법으로 사는 것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 오히려 불안감만 커지게 할뿐이다.
천천히 가더라도 스스로 살아갈 힘을 기르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다. 오늘의 행복을 절대 내일로 미루지 말라. 그 어떤 세상과 마주치더라도 자신이 진정 살고 싶은 모습으로 살아가라.- 강수돌
교육이란 이미 사람 안에 들어 있는 여러 잠재력을 밖으로 끌어내는 일이다. - 소크라테스
어쩌면 강수돌 교수의 이야기는 '이상'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그의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실천해내는 의지에 감탄하게 된다. 대학 교수이면서 이장을 하고 있는 사람. 그리고 대학을 다녀야할 큰 아이가 대학로에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을 지켜봐 주는 아빠인 그의 선택에 공감하며, 그의 강의를 들으며 느꼈던 생각을 책을 통해 다시 접할 수 있어서 좋았던 좋은 책이다. 우리가 의심하지 않았던 상식과 다른 방식의 삶도 있지 않겠는가? |
| 올해 초부터 NEIS 문제로 시끄럽던 학교가 한 달여의 여름 방학에 들어갔다. 방학이 끝나갈 무렵, 2학기에는 어떻게 아이들을 대할까 하는 걱정에 책을 집어들었다. 뭐 몇년 되지도 않는 교단 경험이지만 매학년 초마다 느끼는 약간의 두려움에 대한 돌파구를 찾고 있던 차에 단숨에 이 책을 읽었다. 학부모, 학생, 교사가 이 책의 주(主) 독자가 아닐까 싶은데, 따지고 보면 대한민국에 이 세가지 부류에 속하지 않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이 책은 교육정책을 계획 추진하는 교육계 관료나 고위 교육공무원(교장, 장학사, 교육감...)이 새겨 들어야할 내용이 더 많은 것 같다. 특히 이책에서 언급한 '공부와 행복은 비례하는가'라는 화두는, 매일 아이들과 부딪히는 교사의 입장에서는 할말을 잃을 때가 많다. 그리고 20% 상위권 아이들의 들러리로 80%의 학생이 학교로 학원으로 뛰어 다니는가 싶은 현실에 직면하면 전인(全人) 교육은 새빨간 거짓말이 되고 마는 교단의 현실.... 전인. 완벽하고 완전하게 지덕체(智德體)를 고루 갖춘 인간을 만드는 것이 학교의 교육이념일진데, 20:80의 논리 앞에서 할 말이 없어진다. 물론 이 책을 쓰신 강수돌 교수님도 상위 20의 그 20의 그 20의 .... 그 20에 든 분이라서, 시원한 해답, 대안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약간 아쉽다. 그러나 교육은 어차피 답이 없는 영원한 숙제이기 때문에 누구도 시원한 답을 내놓지는 못한다. 그래도 이 책은 교육에 대해서 학부모에게 학생에게 교사에게 문제를 던지고, 한 번 더 생각하고 고민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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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을 집은 이유는 ?
강 수돌 교수는 이름부터 참 친근감이 가는 사람이다. 어느 TV토론회였던가에서 개량한복을 입고 나와 다른 패널들과는 달리 너무도 여유있고 친근감이 가는 모습으로 토론에 임하든 모습에서 인상이 참 깊은 분이었는데, 얼마전 감명깊게 읽은 '세계화의 덫"이란 책을 접하면서 역자로서 또 그의 이름을 대하게 되었다. 어쩌면 이 책은 나역시 한국교육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상황에서 그의 견해를 접하고 싶었던것 같으다.
◎ 이 책을 읽고 나서는 ?
뭐랄까?
내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지금껏 시중에 그 많은 성공,경영,처세 등 천편일률적인 여러 책들을 접해보고 세계(사실 미국)의 석학들의 탁월한 도서를 보면서도 뭔가 허전함을 느꼈었는데 그동안 내가 생각했던 그 허전함이 무엇인지를 일견 일깨워 준 것 같다.
무엇을 위한 경쟁인가? 누구를 위한 속도전인가? 우리는 지금 행복한가? 그렇게 많이 가져야만 하는가? 우리는 우리의 자녀에게는 어떠한 공동체를 물려 줄 것인가? 그리고 그 동안 막연하게 낯설게만 여겨지던 전교조, 서교장 자살사건, NEIS 등의 언론을 통해 부각된 여러 교육관련 사건들의 쉽게 접해보지 못했던 정부나 기득권 세력들의 견해가 대부분이었던 보수언론과는 반대의견을 접할 수 있어 좋았고, 많은 공감을 하게되었다.
승자나 패자 모두 공멸할 수 밖에 없는 현 시스템의 한계를 부각시킨 보기드문 책이었고,나의 두 딸아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역활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또다른 씁쓸함을 느끼게 된다.
이 나라의 많은 아빠들이 오늘 당장 직장에서 부닥치게 될 현실은 강 교수의 이상과는 너무도 다른 현실이 준비되어 있기에... 그리고" 어느 세월에?"라는 자괴감도 들지만 주변을 보면 분명 서서히 변화된 모습은 보여지고 있고(기득권층의 힘에 밀리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나는 기득권층도 아니면서 그동안 낯설게만 여겨지던 그들의 의견에도 귀를 기울일것 같다.
여하튼 이 책은 그동안 경영,경제,자기계발 등으로 편식을 하던 나의 독서범주에서 "파레콘" "세계화의 덫"과 함께 새로운 의식을 깨워준 자평하고 싶다.
◎ 이 책의 목차는?
21세기의 아이들
엄마 아빠가 달라져야 교육이 살아요
희망학교, 꿈 선생님
교육개혁의 물레
나는 어떻게 하고 있나?
[인상깊은구절] 인간을 노동력의 관점에서 인적자원으로 대할 것인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