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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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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체로 쓰여진 책은 처음이다. 이제까지 읽었던 소설과는 다르다. 그래서 그랬는지 좀처럼 읽기가 쉽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독일 소설도 이 소설이 처음인 것 같다. 일본소설과 국내소설만 많이 읽고, 영미 소설이나 프랑스 소설은 조금씩 읽어보았지만 독일 소설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떤 내용일지 정말 기대했는데 읽기가 힘들었기 때문일까? 읽어가는 내내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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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문체로 쓰여진 책은 처음이다. 이제까지 읽었던 소설과는 다르다. 그래서 그랬는지 좀처럼 읽기가 쉽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독일 소설도 이 소설이 처음인 것 같다. 일본소설과 국내소설만 많이 읽고, 영미 소설이나 프랑스 소설은 조금씩 읽어보았지만 독일 소설은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어떤 내용일지 정말 기대했는데 읽기가 힘들었기 때문일까? 읽어가는 내내 점점 책에 몰입도가 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결국에는 후반부로 갈수록 읽어가는지 어쩌는지 모르고 눈으로만 글씨를 쫒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책을 쓴 작가나 역자만을 보더라도 유명한 것 같다. 하지만 이 책의 가독성을 높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이렇게 쓰여졌기 때문에 그대로 옮겼을 수도 있지만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여러 면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여러 사람의 입장에서 책을 써 나간다. 여러 등장인물들로 이야기가 짧게짧게 진행되서 그런지 그래도 읽는데 지치거나 하진 않았다. 다만 읽기 힘들었다는 이유로 한 사람의 이야기를 이어가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가독성이 부족해서 였는지 글을 이어나가기도 힘들었다.

 

리뷰를 쓰기 위해 책 소개를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출판사의 리뷰도 보게 되었는데 내가 이 책을 어떻게 읽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리뷰를 쓰고 난 이후에라도 긴 시간을 두고 다시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m*******v 2010.05.29.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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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곳에 집이 있었을까 - 돌고 도는 아픔의 역사 해당 글 보기
"그 곳에 집이 있었을까 - 돌고 도는 아픔의 역사 해당 글 보기" 내용보기
아주아주 오랫만에 읽는 독일 문학.굉장히 난해하고,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작가가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 만큼은 명확하게 와 닿는 그런 책한권.호숫가 그 집...불행의 역사가 돌고 도는 그 시발점은 그 호숫가 땅을 상속받은 상속녀의 광기로 시작되었다.다가올 역사의 암시인지...광기는 모르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아픈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그
"그 곳에 집이 있었을까 - 돌고 도는 아픔의 역사 해당 글 보기" 내용보기
아주아주 오랫만에 읽는 독일 문학.
굉장히 난해하고, 굉장히 복잡해 보이지만,
작가가 얘기하고 싶어 하는 것 만큼은 명확하게 와 닿는 그런 책한권.



호숫가 그 집...
불행의 역사가 돌고 도는 그 시발점은 그 호숫가 땅을 상속받은 상속녀의 광기로 시작되었다.

다가올 역사의 암시인지...
광기는 모르는 사이 조금씩 조금씩 사람들의 마음에 스며들어
아픈 역사를 만들어 가는 것이리라.

그 곳이 있었고,
그 위에 세워진 아름다운 집이 있었고,
그 곳에 세워진 아름다운 집에 사람들이 살았고...
그 사람들이 살아온 사랑과, 시간과, 추억이 있었으리라.

하지만, 쌓여온 광기는
그 사랑을, 그 시간을, 그 추억을 무너뜨린다.

집이란 것은
그 곳에 사는 사람들의 시간과 추억들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열두번 빼앗기고, 열두번 되찾는 그 집은
아픔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세월 속에서 당당하게 서 있었으리라.

유태인 가족들이 끌려가 사라지고
이 집을 지은 건축가가 아끼던 물건을 땅에 묻고 사라진다.
그가 묻은 건 은접시였을까, 
이 집에 대한 사랑과 추억이었을까...

조금은 난해하고, 조금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이 책은 읽어갈 수록
말하고 있는 것은 그 집이라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 집이, 그 땅이, 그 호수가 내게 말한다는 기분.

이제 그만 하라고,
이제 제발 그만하라고
그래봤자 너희는 유한한 존재이니
무한한 존재인 나를 괴롭히지 말고
이제 그만하라고.

인간의 광기어린 되풀이 되는
역사는
어찌 그리도 어리석은지..
그 땅이, 그 집이, 그 호수가 말하고 있다....

이 사랑하는 땅에서 내쳐진 인간들은
어느 날 스스로에게 다짐하듯이 묻겠지.
그 곳에 집이 있었을까?

나도 어느 날 묻겠지...
그 곳에 집이 있었을까?


배수아의 번역이라 은근 기대했는데...
번역책이라 그런지, 배수아 특유의 느낌은 역시 찾기 힘들다.
l*****2 2010.05.3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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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테이크 기법을 이용한 공간과 기억의 콜라주
"롱테이크 기법을 이용한 공간과 기억의 콜라주" 내용보기
한편의 실험적인 흑백영화를 본 것 같다. 롱테이크 기법을 차용한 공간 프레임은 20세기 독일 베를린 근교의 샤르무첼  호숫가의 어느 한 집에 고정된다. 타임머신이 돌아감에 따라 그곳의 집의 형태가 모양과 크기를 달리한다. 물론 그곳에 사는 주인공들의 모습 또한 그러하다. 그곳에 이것저것 지은 사람, 그곳에 잠시 머물다 떠나거나 그곳을 정기적으로 가꾸거나 훗날 그곳에 다시
"롱테이크 기법을 이용한 공간과 기억의 콜라주" 내용보기

한편의 실험적인 흑백영화를 본 것 같다. 롱테이크 기법을 차용한 공간 프레임은 20세기 독일 베를린 근교의 샤르무첼  호숫가의 어느 한 집에 고정된다. 타임머신이 돌아감에 따라 그곳의 집의 형태가 모양과 크기를 달리한다. 물론 그곳에 사는 주인공들의 모습 또한 그러하다. 그곳에 이것저것 지은 사람, 그곳에 잠시 머물다 떠나거나 그곳을 정기적으로 가꾸거나 훗날 그곳에 다시 돌아온 이들 모두가 단편극의 주인공처럼 등장했다 사라진다. 시간 프레임은 그곳의 선사시대부터 시작되지만 궁극적인 서사기간은 파시즘과 2차대전과 동서독분단과 통일이라는 백여 년 동안이다.

 

전체적인 풍경은 흑백의 이미지요 서사가 요약적이라 시간의 흐름이 압축적이다. 컬러풀한 단어들과 아기자기한 플롯을 극도로 배제한 이 소설을 '와, 재밌다'라고 읽는 독자들은 분명 적을 것이다. 그러나 문창과 출신이나 영화학과 출신이라면 고정된 공간의 프레임 아래 장시간의 흐름을 이어나가는 방식에서 어떤 참신함을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예니 에르펜베크가 보토 슈트라우스나  W. G. 제발트의 계보를 잇는다는 것은 이런 시공간과 기억의 문제를 짜집는 방식에서 연유하는 것 같다. 나는 이들의 대표작들을 읽었지만 그중에서 제발트의 이야기가 가장 숙성한 듯 싶다. 

 

이야기의 몰입도는 낮았지만《그곳에 집이 있었을까》를 끝까지 읽어낼 수 있었던 원인은 역자가 배수아란 사실 때문이다. 1965년생 배수아가 역자의 신분으로 1967년생 독일작가 예니 에르펜베크를 선택한 이유가 분명 있으리라 믿었다. 솔직히 나는 작가 배수아의 소설을 좋아한다. 《일요일 스키야키 식당》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사놓고 아직 읽지 않은 배수아의 신작《북쪽 거실》도 시공간적인 틀 속에 어떤 비밀이 담겨 있지 않나 섣불리 추론해본다. 이제 《북쪽 거실》을 펼쳐들고 읽어야겠다.

z***a 2010.05.27.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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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그곳에집이있었을까
"[서평] 그곳에집이있었을까" 내용보기
사람들에게 집이란 어떠한 의미일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집이란 존재는 모든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고, 당연히 존재해야할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나였다. 그래서 이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을때에는 여러가지 궁금증과 복잡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똑같은 집이라도 사는 사람, 그안에서
"[서평] 그곳에집이있었을까" 내용보기
사람들에게 집이란 어떠한 의미일까?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집이란 존재는 모든 의식주를 해결할 수 있고, 당연히 존재해야할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집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나였다. 그래서 이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라는 책을 만나게 되었을때에는 여러가지 궁금증과 복잡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무리 똑같은 집이라도 사는 사람, 그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의해 집은 언제나 똑같은 모습이 아니라, 항상 변화하고 바뀌게 된다. 어느 땅에 집이 지어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되지만 솔직히 어느 초점에 맞추고 책을 읽어야할지 도통 감을 잡지 못해 이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를 읽는 동안 마음만큼 따라가지 못해 힘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정원사, 농장주와 그의 네 딸, 건축가, 소녀 등 여러 수많은 인물들이 등장함으로써 짧막짧막하게 이루어진 단편스타일의 이야기들이라 다행히 질리는 느낌없이 책을 읽어내려갔고, 결국 그들의 삶이 하나하나 모여 역사를 만든다는 옮긴이의 말도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또한 '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그들은 결국 하나로 연결되어있는 것 같았지만 이야기들이 생각보다 어둡고, 쓸쓸하고, 슬프고, 안타까운 사연들이 너무 많아서 책을 읽는동안 내내 마음이 너무 무거웠던 것 같다. 다음번에 다시 이 책을 읽게 된다면 그때는 지금보다 더욱 발전된 마음과 생각들을 통해 깨닫고, 얻는바가 더욱 커지길 바라며 책을 덮었다^ㅁ^
i*****0 2010.06.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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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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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자연에서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다. 역사적으로는 시간이 머무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집을 가꾼다. 색유리를 끼우고 타일을 붙이고 잔디밭을 만들고 산책로를 만들며 나무를 심고 가꾼다. 정원사는 우리 모두가 된다. 샤르무첼 호숫가의 한 장소, 그 집 한채. 풍경이 바뀌고 거주자가 바뀌어도 집은 집으로만 남는다. 집은 역사의 한 지점으로만 남는다. 역사의 숨소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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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은 자연에서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다. 역사적으로는 시간이 머무는 공간이 되는 것이다. 사람들은 집을 가꾼다. 색유리를 끼우고 타일을 붙이고 잔디밭을 만들고 산책로를 만들며 나무를 심고 가꾼다. 정원사는 우리 모두가 된다. 샤르무첼 호숫가의 한 장소, 그 집 한채. 풍경이 바뀌고 거주자가 바뀌어도 집은 집으로만 남는다. 집은 역사의 한 지점으로만 남는다. 역사의 숨소리는 그 안에서 사는 거주자들의 몫이다. 농장주, 건축가, 작가, 섬유업자, 손님, 세입자, 적군, 불법 점유자들은 각기 나름대로 정원사가 되어 집을 보존하고 주변을 가꾼다. 그러면서 역사는 흐르고 세상은 바뀐다.

우리의 일생이 태어나고 살아가고 늙고 병들듯이, 병들면 고치고 자신을 가꾸듯이, 집 또한 최초 건축되고 거주자에 의해 가꾸어지고 수리되고 낡아간다. 땅은 유구한 세월, 빙하기든, 전쟁이든 그 자리 그 장소에 머물러 있는다. 누군가에 의해 그 위에 집은 지어지고 주변 풍경은 새롭게 되살아난다. 그저 그런 평범한 땅이 그 집으로 인해 아름다운 정원이 생겨나고 호수가 되고 사람들을 불러 모은다.

솔직히 난해한 문체의 이야기다. 소설의 시종점을, 그리고 주인공의 궤적을 찾기가 쉽지 않다. 어느 한곳, 그곳의 풍경이, 변하는 모습이 서정적인 나열로 반복된다. 하지만 마지막 페이지까지 읽고나면 무언가가 잡힌다. 집이란 언제나 그 자리에서 사람들의 일상을 만들어내는 훌륭한 도구라는 것을, 그 집에 누가 들어와 산다 할지라도, 심지어 불법 점유자라도 철거되기 직전까지는 그 거주자의 삶의 도구가 된다.

끝으로, 번역의 고충이 많았으리라 본다. 쉽지 않을 듯한 소설이란 생각이다. 한 소설의 잉태를 위한 많은 날들의 오락가락한 붓끝의 망설임처럼 부침에 갈등을 놓지 않았을 역자에게 박수를 보낸다.


교보문고, YES24, 블로그(http://blog.naver.com/kok5050)

kok5050

k*****0 2010.05.29.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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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서평]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내용보기
인간의 숨결이 닿기전 빙하기에 독일의 북쪽에 떠내려온 얼음이 녹아 형성된 호수에서부터이야기는 시작된다. 백여 년전만 해도 어느 농부가족의 소유였던 호숫가 땅은 부유한 베를린사람들에게 나뉘어 팔리고 한건축가에 의해 오두막이 지어졌다.그땅을 산 주인들 중에는 나치 치하의 독일에 살던 유대인 섬유업자가족도 포함되었는데독일의 반유대정책에 밀려 망명의 길을 떠나거나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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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숨결이 닿기전 빙하기에 독일의 북쪽에 떠내려온 얼음이 녹아 형성된 호수에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백여 년전만 해도 어느 농부가족의 소유였던 호숫가 땅은 부유한 베를린
사람들에게 나뉘어 팔리고 한건축가에 의해 오두막이 지어졌다.
그땅을 산 주인들 중에는 나치 치하의 독일에 살던 유대인 섬유업자가족도 포함되었는데
독일의 반유대정책에 밀려 망명의 길을 떠나거나 아우슈비츠로 사라졌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집도 분명 예전에 누군가가 살았던 곳이었을 것이고 더 올라가보면
조선시대와 고려시대 그리고 삼국시대를 넘어 '집'이라고 부를만한 것을 짓고 살았던 조상들의
집터였을것이다.. 아마 동굴처럼 천연의 것이 아니었다면 움집정도였겠지만.

일단 특이한 소재를 역사의 아픔과 버무려낸 작가의 안목이 놀랍다.
점점 사라져가는 북촌의 한옥집을 바라보면 조선시대 당쟁의 회오리에 휩쓸려 피고 졌던
양반들이 떠오르고 6.25의 전화속에서 살아남아 이렇게 과거의 숨결을 전해주는 것이 문득
고마웠던 기억이 있다. 사람은 떠나도 집은 남았다.
중국의 고도의 한도시는 지하 몇층아래에 과거의 성들이 묻혀있다고 했던가.
극심한 수해로 묻히고 그위에 다시 성을 쌓고 다시 묻히는 시간들이 지난후 과거의 번성과 멸망을
숨긴채 저자가 제3의 피부라고 말했던 '집'이 발아래 고요히 잠들어 있는것이다.

독일과 우리는 분단국이었던것으로 닮은 나라이다.
전쟁을 일으킨 나라로서 아리아인들의 우월성을 과시하고 싶었던 오만함은 우리와 다르지만
전쟁의 소용돌이속에서 분단의 아픔과 상처투성이의 역사는 많은 공감을 불러 일으킨다.
한때는 사랑했던 사람과 오두막을 짓고 알콩달콩 살기를 원했건만 삶이란 내가 생각한대로
살아지지 않는법. 사랑의 보금자리였던 '집'은 침략자들의 숙소가 되고 사랑을 꿈꾸었던
사람들은 자신의 보금자리는 놓아둔채 떠나버렸다. 자신의 손으로 지은 그집은 가져갈 수
없었으므로...그리고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고향이 될 것임을 믿으면서.
누구나 그러했을 것이다. 언젠가는 번성하여 더 넓히고 아이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집'을
생각하며 벽을 쌓고 지붕을 올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곳에서 평생을 마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동베를린 출신의 작가가 호숫가 근처의 오두막이 만들어지고 소멸되는 시간동안 시간이 할퀴고간
아픔과 태어나고 사라졌던 사람들을 기억하면서 독일이 겪었던 아픔을 그려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조상들이 걸어왔던 아픔역사와 학살의 모습까지도 솔직하게 그려낸 용기가
대단하게 느껴진다. 부모가 죽고 마지막 처형의 순간에 끌려가는 유대인소녀의 모습에서
가슴이 저려온다. 가뜩이나 어수선한 요즘 전쟁의 비참함이 다시는 이나라를 할퀴고 가지 않기를..
저 문밖에 있는 수많은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의 체온으로 따뜻해지고 오늘 하루 고단했던
몸을 뉘여 달콤한 단잠에 빠지는 그런 오두막이기를..
h********5 2010.05.2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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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정지한 집,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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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속의 안타까운 사랑은 그 결과를 알기에 더욱 절절하게 느껴진다. 드라마 속의 회상장면은 그 안타까움을 시청자에게 더욱 강인시켜준다. 시청자는 주인공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드라마에 빠져든다. 이 책은 그런 흡인력이 있다. 회상장면을 보여주는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책을 덮기 전까지 한 장소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와서 쉽게 책을 덮
"시간이 정지한 집, 그곳에 집이 있었을까" 내용보기

드라마 속의 안타까운 사랑은 그 결과를 알기에 더욱 절절하게 느껴진다. 드라마 속의 회상장면은 그 안타까움을 시청자에게 더욱 강인시켜준다. 시청자는 주인공의 감정을 생생하게 느끼면서 드라마에 빠져든다. 이 책은 그런 흡인력이 있다. 회상장면을 보여주는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책을 덮기 전까지 한 장소에서 일어난 다양한 사건들이 너무나 생생하게 다가와서 쉽게 책을 덮을 수 없었다.


‘예니 에르펜베크’ 독일작가의 평범하지 않은 구성도 평범하지 않은 문체도 생소하게 느껴져 읽기가 다소 불편하기도 했지만, 그런 것을 무시하면서 읽을 정도로 이야기 속에 빠져들었다. 정원사, 건축가, 섬유 업자, 소녀, 작가, 손님, 세입자 등 등장인물들이 중심이 되는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그 풍경과 함께 활기찬 일상들을 보여준다. 마치, 메르키슈 호숫가의 그 장소를 예전에 본 적 있듯이 쉽게 떠올릴 수 있었다. 호수에 대한 기억이 쉽게 상상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임이 분명했지만, 작가가 보여주고 싶어 했던 그 장소를 맞춰가는 즐거움에 그런 생각은 그냥 다시 기억 속에 잠재우기로 한다. 드라마 속의 ‘몇 년 후’라는 자막 다음에 보여주는 에피소드처럼, 충분히 행복한 시간들이 눈물 날 정도로 안타까운 것은 다시 재등장하는 등장인물들의 이야기가 억울하고, 비참하고, 안타까운 일상이었기에 피해갈 수 없는 감정이었다. 집을 떠나야만 했던 순간, 잠시 시간이 정지하고 관찰자시점의 상황묘사가 그 상황을 표현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잘 어울렸다.


사람들에게 최악의 역사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은 파괴해버렸기에 그들의 단조롭고 평온했던 시간들은 더욱 소중하게 기억된다. 이 소설은 분명, 한 번 가볍게 읽어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소설이다. 한 장소에서 누군가의 삶이 이미 그 역사 속의 한 장면이 된다. 하지만, 우리가 알아야할 고전적인 위인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저 그 역사의 중심에 있다는 것이 당황스럽고, 그 상황을 이해할 수 없는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는 것은 역사적 사명의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여러 번 읽으면서 우리들의 인생도 역사의 한 순간이라는 생각을 가져보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은 거 같다.



l********5 2010.06.0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