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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 해냄>
태백산맥을 처음 접했던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중고등학교 국사시간에 그것도 거의 책 마지막에서 다루어 자세히 배우지도 못했던 우리나라의 해방이후의 시대... 그렇게 이론적으로 배웠던 그 시대의 이야기를 그 시대를 살아내 온 민초들의 삶을 통해 보면서 정말이지 분노하지 않은 수 없었고 읽는 내내 가슴 먹먹함을 지울 수가 없었던 기억이 난다. 그들이 추구하는 사상이나 이념보다는 그것으로 인해 견뎌내야하고 희생해야하는 힘 없는 민초들의 현실에 맘 아파했다는 기억이었다.. 4부까지의 완결된 내용을 다 읽지 못했고 초반부 정도만 읽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러다가 2009년 아리랑 다시읽기를 마치고 2010년 3월 태백산맥 다시 읽기를 시작해서 2010년 4월10일에 10권의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해방이후 그 기쁨도 느끼지 못하고 바로 분단의 아픔을 겪게 된다. 남북 단일 정부가 수립되고 6.25전쟁이 발발하고 휴전이 되면서 분단이 고착화되어버린다.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남아있는 분단국가가 되버린 것이다..
일제의 치하에서 벗어나 살만한 세상이 돌아왔다고 생각했던 민초들 그러나 그들은 또 다시 강대국의 이권과 이념의 싸움터가 되버린 한반도에서 또 다른 고통의 삶을 살아내야 했다. 공산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그 안에서 피어나는 민족주의 그 혼란했던 시대에 각자의 사상이 빚어내는 많은 이론들... 우리의 민초들은 유식하지도 않았고 이론적으로 무장하지도 않았다 다만 불공평한 제도에서 벗어나 배불리 먹고 싶었고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았고 가족을 버리고 싶지 않았다.
"나라가 공산당 맹글고 지주가 빨갱이 맹근당께요" 라고 말하는 소작농의 분노는 그 시대를 정확히 대변해 주는 말이 아닌가 한다.
![]() 1994년 4월에 8개의 반공 우익 단체들이 <태백산맥>과 작가를 불온서적 및 사상 불온자로 몰아 검찰에 고발 되었다. 대공수사실에서 수사를 받았고 그 후 몇 개월동안 출두 요구와 거부를 반복하는 사이 <아리랑>의 집필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고 한다. 또한 영화 개봉을 앞두고 반공 우익 단체들의 영화 를 상영하면 극장과 영화사를 폭파하고 불지르겠다 는 협박을 해서 사회의 물의를 일으켰다고 한다. 중도적인 민족주의자 역할의 안성기 계급주의 이상을 쫒는 염상진역에 김명곤 염상구의 동생이며 반공주의자인 염상구역에 김갑수..의 얼굴이 포스터에 보인다. 사실 그 긴 분량의 절절한 이야기를 2시간여의 영화 에 어떻게 담아냈을까... 아직 보지 못했는데 한번 찾아서 봐야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해방 이후 우리가 분단국가로서 고착이 되기까지의 역사적인 아픔들을 태백산맥은 고스란히 품고 있다. 태백산맥이 감내해야했던 많은 죽음과 이어지는 생명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 땅에 스며있는 그 아픔과 거기서 바라본 희망들을 우리는 외면할 수 없다.. 그러기에 이 책은 언젠가 한번쯤은 꼭 읽어봐야하는 나의 버킷리스트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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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백산맥..아리랑을 읽고 나서 너무나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웠던 저는 조정래라는 작가에 흠뻑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시대상 아리랑의 바로 뒷부분인 태백산맥을 읽게 되었죠. 단지 그 소설을 쓴 작가만을 보고 선택한 책이었지만, 태백산맥을 읽고 난 후엔 그 안에 담겨져 있는 많은 가르침 특히, 우리 민족의 분단의 역사에 대한 제가 미처 알지 못했던 아주 많은 내용을 알게 되었답니다. 태백산맥은 여러 인물을 통해 우리 민족 분단의 고통과 애절한 슬픔을 보여 줍니다. 어느 한 쪽 예를 들면 오직 북한의 사회주의 편에서서 글을 쓴것이 아니라 남한의 민주주의의 편에서도 분단으로의 과정을 다룸으로서 어느 한 쪽에 대한 선입관이나 편견을 가지지 않고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해방 이후의 농민에서 부터 지주까지 또는 지식인과 관료 등의 여러 계층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특히 농민의 서러움이 짙게 나타나 있습니다. 이 책은 우리 역사의 부끄러운 모습까지도 드러내 보이고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창피하다고 치부를 감추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드러내 보임으로서 그 일로 희생된 사람들이 느낀 엄청난 고통을 조금이라도 같이 느끼고 앞으로는 그러한 지극히도 잘못된 일은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느끼게 해줍니다. 해방 전에도 그랬지만 해방 후에도 우리나라는 외세의 힘 앞에 웅크려 앉아 있어야 했습니다. 남한 쪽에서는 미국이 북한 쪽에서는 소련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우리는 그 두 세력 앞에서 나뉘어져야만 했고 서로 싸워야만했습니다. 참담하고도 참으로 가슴아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태백산맥은 바로 이러한 우리 민족이 처해있던 오욕과 슬픔으로 뒤덮힌 과거의 현실을 바로 알려 주고 있습니다. 너무나 가슴아픈 장면이 나오기도 합니다. 소설 속에서 미군들이 우리 나라를 도와 주러 왔다는 명목하에 행했던 그 야만스런 행동들(차마 말은 할 수 없고 보시면 알게 됩니다..)은 가슴 속에 울분을 남게 합니다. 물론 이것은 그 당시의 모든 미군들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지극히 일부에 해당하는 일일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소설가의 상상인지, 실제로 있었던 일을 작가가 조사해서 소설 속에 넣은 것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전 가슴 아팠습니다. 전 솔직히 그것은 조정래라는 작가의 상상력에 의한 것이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10권의 태백산맥을 이 짧은 글로 모두 표현한다는 것은 저의 글쓰기 능력상 거의 불가능 합니다. 일단 한번 읽어 보시는게 가장 좋은 방법이 아닐까 싶습니다. 주위에 이 책을 소장하고 계시는 분이 계시면 빌려서 보시든가 아니면 학교나 공공 도서관에 있을테니 그 곳에서 빌려 보시든가 하면 좋겠군요. 앞으로 우리나라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기를 바라신다면 태백산맥을 꼭 한번 읽어 보세요. 많은 것을 느끼실 수 있을 것입니다. |
| 3476쪽, 총10권 4부작(제1부 恨의 모닥불 1-3권, 제2부 민중의 불꽃 4-5권, 제3부 전쟁과 분단 6-7권, 제4부 분단과 전쟁 8-10권)으로 구성. 이것이 조정래의 태백산맥 겉모습이다. 사람이 글을 읽고 감동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가를 절실하게 느끼게 해 주었던 책이었다. 소설이 사람을 이렇게도 사람의 마음을 이렇게도 흔들어 놓는구나...... 돌이켜 보건대, 픽션이라는 한계를 빌미로 늘 소설류의 책을 터부시 해 왔던 나로서는 상반 되게도 한동안 텔레비전 드라마로 시간을 보내는 얄팍한 소시민적 삶을 즐겨 온 나의 이중적인 모습을 발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최근 몇 차례 한 권짜리 소설을 읽어 보았지만, 실로 대하소설이라 붙일만한 장편소설을 읽은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2002년 1월 다섯 권짜리 최인호의 소설 ''商道''를 읽긴 읽었다). 1990년대부터 귀가 따갑도록 친구들에게서 듣고 들었던 그 책. 우리 나라 독서광들이 가장 소장하고 싶어 하는 책 1위. 이러한 수식어를 뒤로 하고도 내가 존경하는 정선생님의 서평으로도 나는 이 책을 언젠가는 읽고 말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 책을 이렇게라도 보게 된 가장 직접적인 계기는 이런 진지함과는 거리가 있어 밝히기가 쑥스럽기는 하다(세일 마지막 기회라길래). 하여튼 난 이 책을 올 3월부터 읽기로 했고, 그다지 볼 것 없는 텔레비전 드라마를 이제 그만 끝장내자는 뜻으로 날마다 두 꼭지에서 세 꼭지씩 읽어 내려 갔다. 마치 미니시리즈를 보듯이. 장장 그러한 작업은 4개월이 흘렀고 6월 29일이 되어서야 비로소 열 권을 모두 읽게 되었다. 내가 이 태백산맥을 읽을때, 우리 사회는 많은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차시중 관련 교장 자살 사건이었고 네이스와 관련한 수구세력과 전교조의 대치상황, 사회 전반에 걸쳐 수구 보수 극우집단의 위기 의식에서 비롯되는 마녀사냥식 진보진영 죽이기, 그러한 세력에 흔들리는 얼치기 개혁정권 노무현의 갈지자 행보. 태백산맥은 이러한 문제들이 과연 어디에서 기인하며 그 문제의 해결고리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는지, 그리고 왜 그 고리를 풀기 어려운지 너무나 잘 보여주고 있었다. 광복이후, 일제 잔재가 철저히 청산되지 못하고 오히려 그 반민족 세력들이 다시금 득세하여 이나라 민중을 억압하고 착취하던 바로 그 시절......태백산맥은 이러한 시절을 배경으로 봉건적 토지제도가 여전히 남아 대다수 농민들의 삶을 옥죄고 있었던 1946년 이후의 전라도 벌교을 통해 이 땅의 모순을 너무나 적나라 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한편으로 전교조를 빨갱이 집단으로 매도하고, 이 땅의 노동자들의 목을 쳐 없애야 한다는 비상식적인 네티즌들의 발광에 이어, 수구언론들의 사실 왜곡과 호도에 이은 여론몰이가 여전히 우리나라 국민들의 의식을 이끌고 있음으로 보면서 얼마나 가슴이 답답했던지. 술과 담배생각이 절로 나더니 급기야 올해 뉴질랜드로 사표를 던지고 가신 우리 학교 박선생님이 부럽기까지 하여 이 나라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이 얼마나 절실했던지..... 순간 나는 정선생님을 찾지 않을 수 없었고, 비가 온 뒤여서 땅이 축축했던 기억나는 그 4월. 그 날 나는 정선생님과 밀양지회 전용 호프집에서 이 답답함을 나눌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막 3권 제1부 한의 모닥불을 다 읽고 4권으로 넘어가던 때였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태백산맥과 조정래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또다시 희망과 역사를 얘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언제나 어떠한 위기 속에서 하나의 시각으로 굳건히 자신의 위치를 지키는 정선생님과 같은 분들을 보며 과연 나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고 또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나라는 질문을 또 다시 던질 수밖에 없었다. 하여간 태백산맥은 이 책이 자체가 주는 역사성과 진실성, 감동과 더불어 현재의 우리 주변을 둘러싼 여러 일들이 교차되면서 한층 더 힘을 발휘하는 역사서이자 일종의 삶의 메뉴얼과도 같은 느낌을 받았다. 특히 이 책에 등장하는 빨치산들의 순수성과 소작농민들의 삶의 고난과 아픔, 그들의 식솔들이 겪어야 했던 비참함들은 아직도 생생하게 내 마음과 머리 속에 남아 있다. 그 생생한 인물들은 아마도 오랫동안 내가 살면서 내 주변에서 나의 또 다른 모습으로 함께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몇 백명들의 실명들이 거명되고 있어 그 이름들을 다 올려 놓지는 못하지만, 아직도 내 입에서 맴도는 그들을 불러본다. 염상진, 하대치, 김범우, 정하섭, 안창민, 서민영, 손승호, 이태식, 솥뚜껑, 천점바구, 염상구, 죽산댁, 들몰댁, 소화, 외서댁, 이지숙........ 조정래씨는 이 인물들을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내었고,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에서 빚어나오는 사실적 표현들로 태백산맥은 그야말로 소설의 형식을 이미 넘어섰다는 어설픈 아마추어식 평가를 내려보고도 싶다. 45년 이후 휴전까지 우리의 역사를 과연 그 어느 역사책에서 이렇게 리얼하고도 생동감 있게 그 느낌을 가져낼 수 있을까. 하지만, 열권째에 들어서면서 다소 장면의 전개가 앞의 아홉권에 비해 빠르게 진행되어 어떤 정리가 되지 않고 마감을 했다는 느낌, 그리고 역사투쟁이라는 당 투쟁목표의 전환으로 죽음을 각오하고 싸우지 않을 수 없었던 남한 빨치산들의 비극에 대한 주관적 해석이 궁극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들었던 점은 개인적인 아쉬움으로 남겨둘 수 밖에 없었다. |
| 작년에 3박4일 지리산 등반을 다녀왔다. 국토의 70%가 산이라서 어디서든 산을 볼 수있는 우리네지만 지리산 천왕봉에서 바라본 구비쳐 넘실되는 지리산 줄기에 나는 그만 할말을 잃어버렸다. 그 장대함에 압도되어버린것이다. 선생님께서 산을 오르며 지리산에 얽힌 여러가지 일들을 말씀하셨고 또한 산을 오르기 전에도 좌우의 대립속에 일어났던 지리산의 비극에 대해 말씀하시며 [태백산맥] 영화까지 보여주셨것만 대충대충 건성으로 듣고 난 그저 지리산의 장엄한 모습에만 빠져있었다. 태백산맥 10권을 덮으시며 눈물을 철철 흘리셨다는 선생님의 말씀에 도데체 무슨 책인지 궁금하여 책을 읽기 시작했다. 아! 지리산이여. 현대사의 비극이었다.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믿고 무엇을 위해 숨쉬고 있는가. 나는 그동안 어떠한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는가. 그리고 내가 이러한 사실을 알지 못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18년 인생에 이런 충격은 다시 없었을 것이다. 빨갱이는 모두 나쁜놈인줄 알았다. 그들이 왜 산으로 몰렸는지, 왜 빨갱이가 되었는지 그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동안은. 하... 아직까지도 인식이 완전히 바뀌지 않았음에, 오히려 세월에 묻혀 덮어버리려 함에 나는 그들의 역사투쟁이 언제까지 계속되어야 세상이 바뀔지 한탄스럽다. 그들의 역사투쟁은 하루빨리 성공되어야만 하고 쟁취되어야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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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급격히 나빠졌던 건강으로 인해 잠시 모든 걸 놓아야 했던 적이 있었다. 침대에 누워 말똥말똥 눈만 굴리던 그 무료함을 감동으로 바꿔준 벗이 있었으니, 바로 조정래 님의 대작 <태백산맥>이었다. 그전부터 읽고 싶었으나 워낙 대작인데다 책읽는 속도마저 느려 쉽사리 시작할 엄두를 못 냈었는데, 전화위복이라고.. 나쁜 일로 우울했던 마음을 이 책으로 위로받을 수 있었다. 그동안 고의적으로 가려왔던, 내가 몰랐던 우리 역사의 한 부분을 놀랍도록 생생하게 담아낸 <태백산맥>은 주체할 수 없을 정도의 벅찬 감동을 내게 전해줬고, 그에 보답하듯 10권의 마지막까지 눈을 떼지 않고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
| 대학 입학을 몇달 앞두고 이 책을 읽었다. 신입생들은 분과별로 정해진 도서목록에서 몇가지의 작품을 뽑 아서 읽고 감상문을 제출해야만 했는데, 대하소설 중에 나는 이 작품을 골랐다. 학교 도서실에서 책을 빌려 정말 신들린 듯이 손에서 놓지 않고 읽어내려갔다. 가방에 책을 넣어두고 다니 면서 학교와 집에서 계속해서 읽었다. 읽다가 앞의 상황이 잘 기억나지 않으면 돌아가서 그 부분부터 다시 읽기도 했다. 읽은지 6년이나 되었고, 이제는 많은 부분이 가물가물하지만.. 유독 몇몇 장면만은 기억에 남는다. 특히나 소화와 정하섭이 대화를 나누는 장면들이 그렇다. 소화는 무당이다. 그것도 젊고 미모가 특출한 무당. 가난에 찌들어 살았으며 어머니의 한과 슬픔을 그대로 물려받은 여인이다. 동네의 젊은 사내들이 눈독을 들이지만, 무당이라는 것에 무의식적인 두려움을 느끼고 함부로 접근하지 못한다. 반면에 정하섭은 부잣집 아들이다. 무엇 하나 부족할 것 없는 집안의 아들. 다만 그 아버지는 존경할 만한 인물이 못 되고 그저 재물이나 밝히는 소인배인데.. 아마 논에다 바닷물을 풀어놓다가 분노한 사람들에게 맞아죽는 걸로 기억한다. (이 부분은 불확실함) 부잣집 귀한 도련님으로 자랐지만, 모든 인간은 평등해야 한다는 굳은 믿음을 갖고 좌익세력에 가담한다. 이 둘은 어릴 적부터 알던 사이다. 소화가 어릴 때의 정하섭을 추억하는 장면이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여기저기로 쫓겨다니며 위험하게 살아오던 정하섭은 어느날 소화에게 몸을 의탁하게 되는데.. 이때 둘은 잠자리를 같이 하게 되고 급속히 가까워진다. 정하섭에게 몸과 마음을 완전히 허락한 소화는 나 중에 아이를 갖게 되지만, 고문을 받는 도중에 아이를 유산하게 된다. 정하섭은 소화에게 많은 것들을 묻지만.. 한과 상처가 많고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운명을 수동적으로 받아 들이는 소화의 대답은 한결같다. "다 신령님 뜻이지라...." 작가 조정래님은 소화의 이런 대답에서 무한한 순수함과 고결함을 찾는다. 짧은 한마디에.. 사랑하는 남자 와 자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어떤 신적 존재에 대한 마음을 모두 담아낸 것이다. 멋들어진 미사여구로 포장하지도 않았고, 한치의 과장도 없다. 그러나, 누가 감히 소화의 마음의 진실성을 의심할 수 있겠는가. 마음 속에 맴도는 수천마디의 말을 모두 묻은 채 한마디밖에 내뱉지 못하는 그녀의 심정을 누가 다 헤아릴 수 있겠는가. 그리고, 누가 감히 그녀가 가진 믿음의 숭고함을 폄하할 수 있겠는가. 어떻게 그들이 가진 그 독선적인 '믿음' 만이 고귀하다고 할 수 있나. .... 오래되었지만.. 소화의 저 짧은 한마디와 덧붙여진 작가의 말, 그리고 그때 내가 가졌던 느낌은 아직도 생생하다. |
| 우리 세대에 공산주의와 이념이란 얼마나 의미가 있을까..? 나는 이 소설을 문학이 아닌 역사 교과서로 인식하고 읽었다. 우리는 역사를 얼마나 옳바로 알고 있는가? 나는 이 소설을 읽고 나서 역사에 대한 나의 무지에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역사가 얼마나 왜곡되게 가르쳐질 수 있는지도 깨닫게 되었다. 해방 이후부터 6.25전쟁이 발발하고 휴전을 할 때까지의 역사를 배경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우리의 무지에 도전을 가한다. 좌파와 우파,흙과 백으로만 인식되어진 굴절된 우리의 현대사에도 애증이 섞여있다.그리고 이 소설은 우리가 그 동안 교실에서 배웠던 다른 어떤 역사 교과서보다 객관적이며 사실적이고 살아있는 교과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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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산맥을 처음으로 소개받았을 때가 대학교 1학년 교양영어 수업 이었다.
하지만, 당시 담당 교수는 태백산맥 초반에 나0타나는 사실적 성행위에 관한 묘사에 대해서만 말했었다.
당시 나는 그냥 야한 소설로 이해했었다.
1970년 80년 정도는 아니지만, 1990년 초에도 나름 학생운동은 여러정파의 존재로 치열 했었다.
군대를 갔다와서 우연히 읽게되었을 때는 충격 그 자체였고, 그때 까지 읽었던 그 어떤 책 보다도 사상적 전율이 왔다.
이 책을 읽으며 역사, 사상 등에 대한 실천적 검증을 받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결혼하기 전까지 세번 정도 통독하였다.
새로운 가족이 생기고 그 가족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벌교에 있는 태백산맥 문학관에도 갔었다.
한국사에 있었던 이념적 갈등에 대한 관심과 지식도 없는 가족들에게 나는 쉽게 이해시켜 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사에에서 안타까운 일이지만, 공산주의 독립사 및 투쟁사가 남한에서 제대로 평가를 못받고 있고,
한국전쟁에 대한 객관적 평가, 일제 잔재 청산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역사에서 태백산맥은 반공교육을
치열하게 받았던 우리세대에게 상당한 역사적 균형 감각을 가지게 해준 소설이었다.
또한 작가의 필력이 소설이 아닌 사실처럼 느끼게 해주는 것 또한 대단하다.
태백산맥 기념관에 갔던 날 전권 필사를 한 분에게 상(?)을 수여하는 날이었다.
내가 부지런한 사람이라면 전권 필사를 노려보고 싶을 정도로 한국의 유일무이 하게 곱씹어보고 싶은 소설이라고
감히 평하고 싶다.
세번을 읽은 책들은 모두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지만, 양장본이 나오면서 샀던 책들은
책장에 가장 잘 보이는 곳에 가지런히 꽂혀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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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정상이 만났다. 7년 만이다. 만나 남북관계 발전과 번영을 위한 평화선언을 했다. 7년 만에 만난 두 정상이 구로(劬勞)하여 만들어낸 선물이다. 평화선언 2항과 3항은 관심을 끌었다.
2. 남과 북은 사상과 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남북관계를 상호존중과 신뢰 관계로 확고히 전환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군사적 적대관계를 종식시키고 한반도에서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기 위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하였다.
남과 북은 서로 적대시하지 않고 군사적 긴장을 완화하며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해결하기로 하였다. - 2007년 남북정상선언
남북 정상이 만나 이제는 적대시 정책을 거두고 서로의 체제를 인정하면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하여 노력한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평화번영뿐만 아니라 동북아와 세계평화의 중요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에 오기까지 우리는 적대시 정책을 통하여 서로를 증오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정국, 한국전쟁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겪은 수많은 사건을 잘 알고 있다. 남북정상선언을 보면서 문득 떠오른 책이 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이다. 한 사람이 땅에 태어나 살아갈 수 있는 시간은 평균적 기준으로 70∼80년이다. 하지만 평균적인 시간이 같다고 해도 삶의 자리와 정황은 달리한다. 삶의 정황과 목적이 매우 달라 사는 방법 역시 다르다.
<태백산맥>은 각자 다양한 사람들이 해방정국에서 그들의 사상과 이념의 잣대를 통하여 진정한 평등과 자유가 무엇인가를 두고 벌이는 치열한 다툼과 논쟁, 죽임의 난장까지 아우른다. 남한만의 단독정부, 제주4·3항쟁, 여순사건, 한국전쟁, 그리고 분단이 고착화된 1953년 10월까지.
<태백산맥>을 읽으면서 한 가지 생각한 것은 과연 내가 그 자리에 자리했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했을까? 계급혁명을 꿈꾸다가 최후를 맞는 염상진, 전사 하대치, 중도적 민족주의자 김범우, 양심적 우익을 대표하는 서민영, 친일세력, 반공주의자를 대표하는 염상구. 염상구에게 강탈당하여 빨치산에 들어간 외서댁, 무당 소화, 그리고 손승호, 심재모, 최성학, 강경애, 전사 조원제….
계급혁명을 꿈꾸다가 좌절했던지, 혁명전사로 살다가 최후를 맞았든지, 친일분자와 반공주의자로 살다가 죽든지 그들은 나름대로 사상과 이념의 틀 안에서 치열하게 살았다. 자신들이 믿는 사상과 이념이 진실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것은 이념과 사상이 인간을 왜곡시켰다. 사람이 중심이 아니라 사상과 이념이 중심이었다. 사상이 사람의 지배할 때 그 사상은 다른 사상을 적대시하며, 결국은 살림이 아니라 죽임의 난장을 펼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태백산맥>은 빨치산의 삶을 통하여 사상과 이념이 중심에 자리 잡은 것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일구기 위하여 치열한 투쟁을 그리고 있다. <태백산맥>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는 이들의 숭고한 인간정신이 어떻게 꽃피우는 지를 말한다.
차가운 삭풍이 그들의 발을 얼어붙게 하고, 배고픔을 면할 수 없을 때에도 그들은 사람다움을 위하여 투쟁했다. 그들의 투쟁에는 숭고함이 배어난다. 일제에 순응하고 민족을 학대한 자들이 해방을 맞자마자 반공주의자가 되어 또 다른 민족과 사람에게 배반을 저지를 때에 그들은 사람을 배반하는 길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는 숭고함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염상진의 육신의 장막을 마지막으로 보내는 하대치와 그 동료들을 통하여 숭고함은 절정을 이룬다.
"그는 가슴을 펴며 숨을 들이켰다. 그와 함께 밤하늘이 그의 시야를 채웠다. 그는 문득 숨을 멈추었다. 그는 눈앞이 환하게 열리는 것을 느꼈다. 그가 본 것은 넓게 펼쳐진 광대한 어두움이 아니었다. 그가 본 것은 어둠 속에 수없이 빛나고 있는 별들이었다. 그는 멀고 깊은 어둠 저편에서 명멸하고 있는 수많은 별들을 우러러보았다. 가을 별들이라서 그 초롱초롱함과 맑은 반짝거림이 유난스러웠다. 그 살아서 숨쉬고 있는 별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그 별들이 모두 대원들의 얼굴로 보였던 것이다. 먼저 떠나간 대원들은 죽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모두 혁명의 별들이 되어 어둠 속에서 저리도 또렷또렷한 모습으로 빛나고 있었던 것이다." - <태백산맥> 10권 341쪽
과연 혁명은 실패했는가? 인간다운 세상을 꿈꾸는 혁명은 실패했는가? 육신의 장막이 흙속에 묻히면서 인간혁명은 실패했는가? 조정래는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다. 사람다운 세상을 꿈꾸던 인간혁명은 가을 하늘 별들처럼 초롱초롱하게 살아남았다. 아직도 미완이지만.
사람이 이런 세상을 꿈꾸면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가 살아 있다는 증거다. 하대치는 염상진의 육신 장막을 땅에 묻었지만 가을 하늘 별을 염상진으로 승화시켰다. 그들의 혁명은 실패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그들이 꿈꾼 혁명은 사상과 이념인 사회주의 혁명이 아니라 인간혁명이었기에 더욱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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