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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북한이 일본 지배에서 벗어나고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언젠가도 비슷한 말을 했지만 이 말을 하지 않을 수 없네요). 예전에는 조선이었는데 한국전쟁이 일어난 뒤 남한과 북한으로 나뉘었군요. 광복이 되고 바로 일본이 저지른 일을 알고 친일 정리도 제대로 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지요. 그것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독재나 군사정부가 나타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바로 못했다면 조금씩이라도 해야 했는데,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다는 말을 할지도 모르겠네요. 시간은 사람 일과 상관없이 잘 흘러가고 이런저런 일을 잊게 합니다. 시간이 흘러도 예전에 일어난 일을 잊지 않게 하려고 역사책을 쓰는 사람이 있는 거겠지요. 시간에 조금이라도 이길 수 있는 게 있다면 기록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것이 오래 남아야 그렇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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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2월 28일 한·일 위안부 협상은 제2차 한일굴욕협정이다" |
| 남북한 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생한 육성이 담겨있다. 일본인 저자에게 안해룡이 물었다. "당신은 왜 이런 일을 하나?" 그의 대답은 "당신들은 왜 안하나?" 많은 독자들이 읽고 반드시 그들을 기억해야한다. 사죄의 마음을 담아! 우리 독자만이라도 그들의 분노와 인생을 기억해줘야할 것이다.군'위안부'들을 찍은 유명한 한 장의 사진. 그속의 임산부가 자신임을 밝힌 북한의 박영심할머니! 저자인 이토 다카시의 노력에 고마움을 표한다. |
| 남북한 군'위안부' 할머니들의 생생한 육성이 담겨있다. 일본인 저자에게 안해룡이 물었다. "당신은 왜 이런 일을 하나?" 그의 대답은 "당신들은 왜 안하나?" 많은 독자들이 읽고 반드시 그들을 기억해야한다. 사죄의 마음을 담아! 우리 독자만이라도 그들의 분노와 인생을 기억해줘야할 것이다.군'위안부'들을 찍은 유명한 한 장의 사진. 그속의 임산부가 자신임을 밝힌 북한의 박영심할머니! 저자인 이토 다카시의 노력에 고마움을 표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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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것이 힘들다. 읽은 것만으로도 후유증이 오래 갈 것 같다. 끔찍하고 잔인하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다. 사죄로는 부족하다. 돈으로도 보상할 수 없다. 기억하는 수 밖에 없다. 알려야만 하고 남겨야만 한다. 증언하신 분들은 그런 괴로운 사명을 자각하신 분들이다. 고작 100년도 안 된 과거의 일이다. 91년 경부터 위안부 할머니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일본이 패전한 후 50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전쟁의 끔찍함이라고 일반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한참 부족하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겪은 고통은 알고 있었지만, 이를 다시 직면하고 활자 하나하나를 읽고 머릿속에서 상상하다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중세 시대 이야기가 아니다. 고작 80년 전에 일어난 일이다. 미친 놈들이라는 말로도 부족하다. 증오와 분노 이상의 것을 얻어야 한다. 하루에 30명... 난 그 30명, 무수한 숫자를 채운 인간들이 더 궁금하다. 남자들, 군인들. 그게 가능한 일인지, 그들은 껍데기인 것인가. 영혼은 어디에? 이걸 심리적으로, 또 사회학적으로, 인류학적으로 어떻게 이해해야 할 지 모르겠다. 단순한 동조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 모든 걸 전쟁으로 설명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기필코 그렇지 않다. 피해자들은 50년을 침묵했다. 그들이 선택한 것도 아닌데, 가해자들은? 그들은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람에 대한 정의는 무엇인가? 혼란스럽고 괴로운 책이다. 어쩔 수 없다. 인간에 대한 많은 불신과 의심, 그리고 두려움으로 괴롭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시간이 흘러 무엇이 달라졌는가? 진보는 가능한가? 이런 근본적인 질문과 닿아있다. 100년이 지났다고 치자. 일본은 달라졌는가? 일본은 반성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한 짓을 인정한 적도 없고 직시한 적도 없다. 그들은 여전히 전쟁의 피해자 코스프레에 빠져 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들의 시야는 좁고, 제대로 모르기에 공감할 수도 없다. 남자들은 군인이 되어 짐승처럼 죽였다. 아니 짐승보다 더 했다. 그냥 죽인 것이 아니다. 모든 것을 짓이겼다. 그들은 이미 인간이 아니었다. 전후에 그들은 다시 인간으로 돌아왔을까? 그들의 어머니와 누이들을 만났을까? 이 책을 일본 남자가 모든 수고를 다하여 기록했다는 것은 큰 위안이다. 기억하겠습니다. 책의 제목처럼 나는 기억할 것이다. 아니, 이제는 기억할 수 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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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만 이루어진 표지에 오히려 눈길이 갔었다. 그들을 인터뷰한 사람은 일본의 한 남성이다. 간단한 제목이 적힌 차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턱 막힌다. 물론, 모두가 이 날것 그대로의 글을 읽을 필요는 없다. 하지만 생애의 어느 순간이 되면, 과거의 사실을 알아야만 한다. 다시는 이런 일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할머니들은 증언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그러나 그들은 체험의 일부밖에 말할 수 없다. 할머니들은 그들의 경험을 듣고자 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아픔을 풀어놓는다. 내가 위안부였다는 사실이 부끄럽지는 않아요. 일본 정부는 아무런 관여를 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일본의 태도에 나는 분노를 금할 수 없어요. 그러나 책을 덮는 순간, 그것이 유언으로만 허공에 흩어지지 않도록 더 많은 이들이 기억하면 좋겠다. 또한 기억해야 할 사람이 기억하고 사죄해야 할 사람이 사죄하면 좋겠다. |
| 보자마자 꼭사야겠다고 맘먹은책이라 반디얀루니스가서 미리좀 볼랬더니 없더라구요 아침에 주문하고 잤는데 저녁때 도착했어요 택배받고도 놀래고 책실물을 보자마자 우와.... 읽기도전에 보면서 얼마나 울찌 먹먹해지는 제목이네요 우리나라사람이 썼으면 더좋았을껄..그래도 죄를 지은 일본에서 그것도 일본남자가 우리나라에대해 공부하고 취재를 했다는 점에 꼭 읽어보고싶었던 책이라 기대가 크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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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4월 4일 위안부 피해자 중 최고령 이순덕 할머니(100세)가 생을 마감했다.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 238명 중 이제 38명만 생존해 있다. 이들은 전체 피해자에 비하면 아직도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책의 원제 《無窮花(ムグンファ)の哀しみ》는 "무궁화의 슬픔"이란 뜻이다. 옮긴이 안해룡 감독과 출판사 알마 측은 이 책을 기획, 번역하면서 스토리펀딩을 했었다, 타이틀은 원제와 같이 “무궁화의 슬픔”.
저자는 “이름처럼 아름답고 소박한 꽃을 끊임없이 피우는 무궁화”에서 “주변 대국으로부터 끊임없는 침략을 받으면서도 저항을 계속해온 역사를 읽는다”고 소회를 밝힌다. 그는 “가련한 무궁화처럼 피해 여성들의 깊은 슬픔과 생각을 그들의 ‘유언’으로 이 책에 담”았다. 이토 씨는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가 바로 다큐멘터리 사진에 관심을 기울였다. 1981년 원자폭탄의 피해 실태를 취재하다가 약 7만 명에 달하는 조선인이 피폭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엄청난 충격을 받은 그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로 피해를 보았던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듣고 기록으로 남기기 시작했다.
“일본에서는 가해의 역사를 소홀히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태평양전쟁의 기억이 희박해지고 있다. 이는 남한이나 북한에서도 마찬가지다. 식민지 지배에 의한 피해의 기억은 급속히 풍화해가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이미 피해자 대부분이 사망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를 침략하고 지배하지 않는 세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여러 피해자의 경험을 기록해서 후세에 남겨야 할 것이다. 이 책이 이런 일을 조금이나마 할 수 있다면 좋겠다.” - 작가의 말 중에서
안해룡 감독은 프리랜서 사진작가로 활동하던 무렵 도쿄에서 저자를 처음 만났다. 당시 그는 왜 한국 사진작가들은 이런 문제로 작업하지 않는지 부끄러움이 앞섰다. 이후 그는 오키나와에서 규슈, 본토를 넘어 훗카이도, 사할린까지 일본 전국을 돌면서 강제 징용·징병, 일본군 위안부, 유골 등 조선인 강제동원의 흔적들을 기록했다. 어쩌면 역사를 기록한다는 것은 소명의식에서 비롯됨일까? 안 감독은 세월호 참사로 스러져간 생명들과 그 유족들의 이야기도 생생히 담고 있다. 이토 씨는 아시아태평양 각국에서 지금까지 피해자 800여 명을 취재했다. 이중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는 90여 명이다. 그는 과거 식민지 지배로 피해를 보았던 사람들의 목소리를 많은 사람에게 전하고자 지금도 카메라를 들고 현장으로 달려간다.
▲자신의 모습(맨오른쪽)이 담긴 사진을 들고 있는 박용심 할머니 이귀분 할머니(2004년 작고)가 운영하던 식당 모습은 어찌나 정겨운지 진작 찾아뵙고 막걸리 한 잔 따라드렸으면 어땠을까. 눈에 익은 사진 속 주인공도 등장한다. 당시 미군이 촬영한 사진에서 임신한 여성은 북한이 고향인 박영심 할머니(2006년 작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