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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하 배수구에 사는 지극히 평범한 토종견이다. 어느 날 '창구'에 가보고 싶다는 유언을 남기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 날 부터 난 창구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지만, 사나운 아버지와 나를 못 살게 구는 형때문에 창구에 가 볼 수가 없다. 창구는 인간들이 사는 도시와 내가 살고 있는 배수구를 연결하는 멘홀 뚜껑이다. 나는 창구에서 흘러들어오는 음악을 따라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으로 머리가 아프다.
나는 튀어나온 벽의 모서리를 향해 전속력으로 돌진했다. 그건 다른 세계로 가기 전에 반드시 치러야 할 통과의례 같은 것이었다. 피할 수 없다면 용감하게 부딪히는 것만이 방법이었다. (P63)
난 가족의 상징인 이빨을 부러뜨리고 사람이 되었다. 멀리서 들려오는 음악소리에 이끌려 가족과 익숙한 생활을 버리고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을 감행하였다. 강아지로 살 때는 아버지가 가져다 주는 음식쓰레기로 연명했지만, 이제 도시에서 자동차보다 더 빠르게 달릴 수도 있고 새로 찾은 가족과 맛있게 조리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하지만 인간들의 세상도 유쾌하지만은 않다. 남겨진 가족들의 생각에 멘홀 뚜껑을 찾아가지만 이젠 돌아갈 수도 없다. 나에게 주어진 예지능력으로 사람들을 놀래켜 보기도 하지만 내가 추구하는 삶과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상에는 괴리가 있다.
개의 수명은 15년이기 때문에 사람의 하루는 개에겐 한달과 맞먹는 삶의 속도가 된다. 먼저 사람이 되어 수명을 다한 작은 형은 힘겹게 이야기한다. "더 살고 싶어. 산다는 것은 정말 아름다운 일이야"
나는 가족을 잃는 아픔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즐거움도 경험하며 또 다시 새로운 삶의 한 걸음을 내딛어 본다. 개의 눈으로 보이는 인간세상에서 인간들과 다른 사고방식으로 주위 환경에 영향을 미치며 살아가는 나는 아직... 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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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책이 상당히 원망스럽다TT
난 사실, 오늘 안으로 마무리지어야 할 프리젠테이션이 있다. 며칠 째 계속 준비해 왔지만, 아직 집중해서 작업할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
그런데, 점심 식사 후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이 나의 실수였다. 중간에 읽기를 멈출 수 없었다. 책을 중간에 덮어놓으면, 도저히 프리젠테이션 준비에 집중할 수 없을 것 같았다. 결국 다 읽고 말았다. 그렇게 세 시간이 지났다.
그런데,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결국 한 마디 써 보지 않으면 뭔가 가슴이 후련하지 않아, 이렇게 서평까지 남기게 되었다.
이 책에서 나는, 어린아이, 중학생, 대학원생과 직장인 등 여러 삶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되었다. 시험의 의미를 전혀 새로운 시각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막 중학교에 들어간 남자아이에게 박사가 될 때까지 공부할 것을 염두에 두고 있는 “엄마”
그 아이에게는 단 한 가지 의미밖에 없었던 학교인데, “엄마”는 그것을 알지 못한다. 아니, 거의 모두 다 그것을 알지 못한다.
학교에 다니다 보니 평생이 지나고 죽음을 맞이한다면, 어느 누가 계속해서 학교에 다니고 싶어할까?
우리 삶은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이것이 평생 직장을 다니다보니 죽음이 가까이 와 있는 것을 발견하는 것과 무엇이 다를까?
만약, 우리가 내일 죽는다는 걸 알고 있다면, 우리는 과연 오늘까지 학교를 다닐까?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는 것과 하고 싶은 말을 꾹꾹 참으며 사는 것은 과연 어떤 것일까?
이 책은 많은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세 시간 동안 눈을 떼지 못하게 하면서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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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입니까]
일단 제목부터가 헉!!!이라는 탄성을 자아낸다.
우리에게 있어서 "개"라는 단어는 그닥 좋은 뜻으로 쓰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누가 감히 자신에게 개냐고 물을 수 있을까?
무명이었다가 큰또즈였다가 홍메이 아젠으로 바뀌어 불린 이 아이는 원래는 땅 아래 하수도에서 사는 개이다.
돌아가시는 할아버지가 "창구"에 가고 싶다고 하고 돌아가신 후에 창구에 대해 궁금해하지만 궁금증을 풀어주기는 커녕 모두 입 밖에도 창구라는 말을 꺼내지 말라며 엄하게 다스린다.
무명에게는 엄마, 아빠, 큰 형, 작은 형, 누나 이렇게 4명의 가족이 있다.
어느 날, 작은 형과의 다툼이 있었고, 형은 사라진다.
가족의 상징인 이빨을 남긴 채...
막내인 "나"는 하수도 곳곳을 다니며 작은 형의 흔적을 찾는다.
그러다가 예지 능력이 있는 "연분홍 지렁이"를 만나게된다.
그녀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홍수가 밀려오는 것을 막고 창구도 알게된다.
내 마음 속에는 음악이라는 것이 들리는데 가족들은 음악이 들리지 않는단다.
그래서, 고민을 하다가 연분홍 지렁이를 찾아가는데 그녀는 이미 죽고 없다.
장례식을 보게 된 "나"는 연분홍 지렁이의 아빠를 찾아가 연분홍 지렁이의 외투를 달라고 한다.
혼자서 고민을 하다가 너무나도 아프고 힘든 두통 때문에 고통을 참지 못하고 벽에 머리를 받아 가족의 상징인 이빨을 버린다.
너무 아파서 정신을 잃었다가 눈을 떠보니...
사람이 되어있었다.
여기서부터 사람이 된 개의 파란만장 삶이 펼쳐진다.
웃기지도 않은 무능력한 경찰들, 무조건 성적만 중요하게 생각하는 교장선생님, 그리고 힘들게 사람이 된 누나와 다시 만나게 된 작은 형, 그리고 연분홍 지렁이.
홍메이 아젠의 삶과, 인간의 나쁜 부분을 골라 풍자한 이 책.
참 재미나게 읽었다.
솔직히 작은 형이 나오는 부분은 좀 예상은 했었지만, 연분홍 지렁이의 내용은 좀 억지스럽다.
음...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나는 곰입니까"
ㅡ,.ㅡ 아무래도 ㅠㅠ 그런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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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는 내내 인간답다 것의 기준은 무엇이며 흔히들 말하는 개같은 인간이란 무슨 근거로 한 이야긴지, 세상에는 개만도 못한 인간들도 많다는 사실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평소에도 개라는 말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상한 척 하는 것은 더더구나 아니다. 다만 인간같지 않은 사람들을 싸잡아 이야기할때 흔히들 사용하는 욕이기에 가급적 입에 담지 않을 뿐이다.
이 책을 읽고 카프카의 ;변신'이 떠오르는건 어절수 없는 일이다. 자다 일어나 보니 벌레로 변한 한 남자의 이야기나 개가 어느 순간 인간으로 변한 이야기'나는 개입니까'는 모두 변신한 주인공을 통해 인간성을 고발하고 인간세계를 인간이 아닌제 삼자자의 눈을 통해 바라보고 실랄한 비판도 서슴치 않는다.
이 작품의 인공은 개다. 아니 사람으로 변한 개를 인간이라 해야하나 여전히 개의 본성을 지녔으니 개라고 보아야 하나? 여전히 헷갈린다. 아무튼 지하배수로에 사는 개들(한 가족)중 막내인 나는 할아버지의 유언과도 같은 '창구'를 보고 싶다던 말로 인해 창구에 대한 호기심을 갖게 되고 창구의 존재가 인간세상으로 통하는 문, 즉 맨홀뚜껑임을 알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을 인간세상의 위험으로부터 보호하고자 폭력까지 동원하며 막아 보지만 아직은 철없고 어린 아들은 아버지의 충고나 폭력보다는 호기심이 더 강한 것을 어쩔 수 없는가 보다. 그는 우연히 만난 연분홍 지렁이의 도움으로 인간세상에으로 가게되고 창구 밖으로 나간 순간 그는 인간 소년의 모습으로 변한다.
인간세상의 새로움과 신기함은 잠시뿐 배고픔과 냉혹한 현실과 맞딱뜨리게 된다. 그는 인간으로 변했지만 개의 본성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하고 돼지갈비를 좋아하고 달리기를 잘한다. 개들이 그러하듯 신뢰를 주는 사람들에겐 친절하고 다정하지만 그렇지 못한 인간들에겐 적대감을 드러내고 때론 엉덩이를 물어뜯기도 한다. 점차 인간세상에 익숙해진 그는 세명의 다른 고아들과 그들을 돌보는 엄마와 함께 살게 되고 다른 아이들처럼 학교에도 가게 된다. 잘못한 일도 없는데 사과해야하고 불의를 뻔히 알면서도 눈감아야하고 성적만으로 학생을 평가하는 선생님들을 보며 그는 이해할 수없다 그는 여전히 개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기에 당연한 일일게다. 개의 눈에 비친 인간들은 그가 기대했던것과는 달리 아름답지도 신기하거나 따뜩하지도 않다. 오히려 그런 모습을 보며 집에 두고온 가족들 생각만이 절실할 뿐이다.
그가 가족을 버리고 그토록 인간세상에 오고자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개에게 일년과도 같은 인간세상의 힌달과 맞바꿔 인간들 조차 관심에서 멀어진 순수함을 같이사는 고아소녀의 눈속에서 보게 된다. 그것은 인간의 잃어버린 감정 '순수한 동경' 바로 그것이였다. "그 눈빛에는 나 자신이 인간 세계로 온 것을 영원히 후회하지 않게 만드는 무엇이 있었다"라는 말이 순수함을 지닌 인간보다 더 순수한 개가 인긴이길 바랬던 이유이기도 하다.
연분홍 지렁이는 자신의 삶까지 그에게 주고 떠난다. 과연 연분홍 지렁이의 삶까지 그는 살아낼 수 있을까. 모진 세상에 괴로워하다 죽은 누나나 사람들의 손에 가죽이 벗겨진 아버지의 고통까지 짊어진 소년이 감당하기엔 너무도 무거운 짊을 지고 외로이 홀로 떠나는 그의 뒷모습이 내 안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당당히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 발걸음에 힘을 싣어 가족들의 몫과 친구의 몫까지 부디 행복하길 바란다. 이제 그는 정말 인간이 되어가는가보다.어두운면도 밝음도 모두 받아들이며 그래도 인간이 되어서 행복했노라 한 마디 했으면 좋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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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람입니까? : 사람의 삶이란?-<나는 개입니까>를 읽고 최근 본 광고의 ‘부모는 꿈을 꾸라하고 학부모는 꿈꿀 시간을 주지 않습니다’ 라는 카피가 기억에 남는다. 창신강의 꽤 직접적인 우화라고 느껴진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카피가 자꾸 떠올랐다. <나는 개입니까>를 어른의 입장에서 읽다보니 어른의 세계가 얼마나 아이들을 천편일률적인 가치를 강요하고 있는지를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이다. 이미 속물적이고 물질최고주의의 세계라고 인지하면서도 이미 그 세계에 발을 들이고 있는 어른들은 1분 1초를 그저 재화획득을 위해 살아가는 개체가 되고 말았다. 그 작은 자각조차도 이미 어쩔 수 없다는 패배주의에 물들어서 뚫고 벗어나고자 하는 시도조차 하지 않게 된 지 오래다. 지하세계의 강아지 한마리가 동경하던 인간세상의 삶을 시작했을 때, 이를 행운이라고 해야할지 불행이라고 해야할지 예측할 수는 없었다. (내가 보기에) 이미 그의 삶은 충분히 멋졌다. 천재친구 연분홍지렁이 친구가 있었고 가족을 보호해주는 아빠개를 비롯한 사랑하는 가족이 있었으니까. 역시 호기심과 자각은 위험한 것일까. 작은형 개와 연분홍 지렁이가 떠난 것이 자극이 되고 고통스럽게 스스로 이를 부러뜨리는 통과의례를 거쳐 인간세상으로 떠나는 개의 출발이 위태위태하다. 분명 개가 본 인간들의 대부분은 범죄나 폭력과 밀접한 것도 아니었고, 부모가 없는 아이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극단적인 빈부를 가진 이들도 아닌 평범한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들의 직업과 연령은 다양하지만 그들의 가치관은 거의 획일적이다. 학교를 다녀야 하고, 성적이 좋아야 하고, 수업시간엔 얌전히 앉아있어야 하고, 선생님에게는 비판적 말을 삼가고, 돈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 아마도 이러한 가치관이 노란색같은 색깔이라면 세상은 아마 노란색으로 보였을 것이다. 소수의 가치관, 소수의 다른 색깔들은 압도적인 노란색에 묻혀버려서 그 미미한 존재를 알아차릴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특히 학교를 다니게 된 개가 본 세상은 누구든 학교의 문제점이라고 생각할 만한 것들이었다. 단지 특이한 것은 개가 봤을 때 이 모든 것이 너무도 이상하다는 것. 그래,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앉아서 싫은 것을 하고 공부는 하지 않아도 성적만 잘 나오면 되는지, 나쁜 행동을 해도 시험만 잘 보면 되는 것인지, 부정행위를 해도 시험만 잘 보면 되는 것인지, 과목에 상관없이 모든 과목의 필기시험만 잘 보면 되는것인지, 수업을 잘 듣는 게 중요한 것인지, 정말 헷갈리는 학교가 아닐 수 없다. 방금 사람이 되어버린 강아지야말로 세상에 막 나온 아이처럼 옳은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닐까. 현대의 기성세대가 철없다고 비난하고 훈육해야하는 홍메이 아젠의 말이 사실은 우리가 생각하는 옳은 것이 아닌가 사람이 된 ‘큰 또즈’ 혹은 ‘홍메이 아젠’은 매 순간 즐겁고 행복하고 사랑하며 사는 것이 가장 큰 가치라고 생각하는 듯 하다. 주어진 소중한 시간을 열정적으로 먹고 사랑하고 솔직하게 충실하게 살아나가는 개... 아니 사람. 그들의 삶이 굳이 하루가 인간의 한달과 같아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은 짧은 것이니 오십년을 살든, 백년을 살든 우리는 주어진 시간을 그리 살아내야 하는 것은 아닌가. 창신강의 이 소설은 인간세계와 지하세계로 나뉘고 효과적으로 대조시키기 위해서 인간세계를 획일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그의 말이 틀릴 건 또 무어란 말인가. 어른이건 아이건 어떻게든 자유와 솔직함을 억압시키고 재화획득을 최고로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 이 세계가 아니라고 어떻게 말 할 수 있을까. 홍메이 아젠의 학교친구들은 벌써 육포먹은 돈을 내놓으라고는 해도 들은 음악을 내놓으라고는 하지 않는다. 그딴 것은 한푼의 가치도 없다면서 일락해버리는 아이들. 어찌보면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는 이런 말들이 이 소설이 더욱 슬퍼지는 이유다. 어른들의 반성문처럼 느껴지면서도 그저 반성하고 패배주의로 일색한다면 무엇이 의미인가. 실패한 혁명가의 이미지가 떠오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력히 저항한 홍메이 아젠마저 짧은 수명을 다해 죽어가고 같은 가치관을 가진 소중한 친구 류웨를 찾아 떠나는 것을 보니 말이다. 안에서부터의 혁명을 거의 불가능한 것일까. 진정 사람이 사는 삶이라는 것이 이 책 안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삶인지. 우리는 종종 ‘그게 사람이 사는거냐?’ ‘그게 사람이냐’ 고 하곤 한다. 정말 이 인간강아지-강아지인간이 우리에게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이 책의 제목은 더욱 직접적으로 하면 ‘당신은 사람입니까?’ 가 되어야 했을 것이다. 정말 우리가 잊고 있는 건 무엇인지. 세상의 속물적인 가치관을 새로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이 본래 가지고 있는 것, 순수함과 열정, 삶에 대한 사랑을 지켜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지 않을까. 진정 우리는 아이들이 공부나 돈을 우선으로 생각하며 살기를 원하는 것인가. 수많은 질문만을 내게 던져대는 ‘나는 개입니까’는 쉽게 잘 읽혀서 책을 홀랑 읽어버린 느낌이다. 아까우니 좀더 우려 읽고픈데 한번 잡으니 책장은 훌러덩 잘도 넘어가더라.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들에게 그리고 선생님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다. 글쓰기를 공부하는 아이들에게는 책 말미의 작품해설까지 읽기를 권하고 싶다. 중국아동문학 작가라는 장자화의 작품해설은 작가들이 어떻게, 그리고 왜 우화 속에 현실세계에 대한 비판, 혹은 주제를 담아내는지 잘 알게 해주는 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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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제목이 눈에 확 띄는 책이다. 개인가?를 내게 되묻고 있는 책이 왠지 역설적이라는 느낌을 주었다. 저자의 이름이 낯설지 않아 찾아보니 그의 작품 <열혈 수탉 분투기><탁구왕 룽산>을 통해서 만나본 적이 있는 저자였다. <열혈 수탉 분투기>는 꽤 재미있게 읽었던 작품이였기에 서둘러 책을 읽어보았다. 책 제목을 본 사람이라면 책에 대한 호기심을 갖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책 제목은 그렇게 강렬한 느낌을 주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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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으로 변신한 어느 개의 파란만장한 도시 체험기.
개가 인간이 된다는 설정 자체는 기발할지 모르겠으나
여튼 이 소설이 정체성을 확립하는 부분에 대해 말하고 싶은건 알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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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내용과 깔끔한 전개가 장점 특히 강아지 한 마리가 사람이 되어 사람의 행동에 대한 괴리를 비판한다는 독특한 소재가 아주 좋습니다. 허나 깔끔하게 전개하기 위해 의도한 것인지는 몰라도 너무나도 심하게 어떤 사건에 대한 그럴싸한 이유가 부족합니다. 소설의 특성상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지만 다른 소설보다도 특히 심하다고 느낄 수 밖에 업네요. 보면서 '왜 이런건데'라는 의문이 끝없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삽화가 상당히 거부감을 일으키네요. 그린분께는 죄송하지만 어른에게도 안먹히는 삽화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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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개입니까라는 제목을 나는 사람일까요 라고 해도 좋을것 같다. 첫장을 펴는순간 어떤내용일까 설레었다. 마법을 부리듯 어느날 자고일어나 보니 인간소년이 되어 있었다. 개로 살았을때 창구라는 말만해도 아빠에게 물어뜯기고 혼이 나기도 했다는 내용이다. 과연 여기에서 창구는 인간세상으로 나 가는 문이라고 할수있다.
자신의 이를 부러뜨리고 나가버린 형. 나는 형이 보고싶다. 그렇게 미웠는데 어느새 형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창구앞에서 알게된 분홍지렁이. 분홍지렁이는 많은것을 알고 있었다. 나는 창구로 통해서 들 려오는 음악소리를 들을수 있다. 두통이 점점 심해지더니 어느날 정신을 잃고 일어나보니 인간소년이 되어 있었다. 인간세상은 정밀 신기하다. 내가 좋아하는 돼지갈비를 먹기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는 사 실도 알게되었다. 공짜로 음식을 섭취했다는 이유로 경찰서에 붙들려가고 어느가정에 위탁하게 된다. 거기에서 한 여자를 알게 되고 그녀가 분홍지렁이임을 알게된다. 여기저기 보면서 어느날 아버지의 가 죽을 발견하게 된다. 인간세상이란 이런 것일까. 나는 환멸을 느낀다.
사실 결말을 보고나서 좀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해력이 부족일수도 있지만 약간 아리송할다고 할 까 .그래도 기존에 읽던 책과는 다른 느낌임을 말하고 싶다. 인간으로 변신한 개의 인간세상 도전기. 생각의 발상이라고 할까. 인간세상의 양지와 음지를 보여주고 개를 통해서 본 세상이 그렇게 아름답지 않음을 볼수 있었다. 어른인 나는 겨우 우리들의 세상의 이그러진 모습을 볼수 있지만 아이들은 어떻 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아이들은 성장한다. 그 성장속에서 개와 자신을 내면을 비교하면서 읽으면 좋을것 같다는 평을 내리고 싶다. 중국문학을 많이는 이해할수는 없지만 또다른 면을 발견했다. 그리고 의외의 소설임을 밝히고 싶 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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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장을 펼치기 전에 <나는 개입니까>라는 제목에서부터 먼저 고민하게 된다. 내가 개라는건지, 개였다는 건지, '개만도 못하다'할 때의 그 개라는건지, 개가 되고싶다는건지..
소설은 '나는 개다. 굳이 덧붙이자면 지극히 평범한 토종견이라는것 정도다' 에서쿠터 시작된다. 하나를 덧붙이자면 '나'는 지하 배수로에 살고 있으며 호기심이 아주 많다.
'나'의 할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유언으로 '창구'에 가보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호기심 왕성한 그가 창구에 관심을 가지게 되는 일은 당연하다. 그는 연분홍빛 지렁이를 만나고 지렁이를 통해 창구를 알게 되고 결국 연분홍빛 지렁이의 도움으로 창구를 통해 인간세상으로 나가게 된다. 창구는 인간세상으로 나가게 되는 통로였던 것이다.
지하 배수로에서 다른 세상으로 간다는 것.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사랑하는 가족들을 남겨두고 떠날 만큼 어떤 강한 이끌림이 있었을 수도 있다.
세상에 나온 그는 개에서 인간의 몸으로 탈바꿈 했음에도 전혀 놀라지 않는다. 음식점에서, 경찰서에서, 새로운 가족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리고 학교에서 그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순수하고 호기심 많은 그의 눈을 통해 여러 인간사회의 모습이 그대로 비춰진다.
그를 붙잡아 두기 위해 신경안정제를 억지로 먹이려 했던 경찰이나 공부만 잘하면 문제 없다는 식의 학교 선생님들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그는 인간세상에서 ‘류웨’라는 소녀를 만나고 이끌린다. 또 류웨를 통해 배수로에서 살던 그 때의 가족들도 인간세상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가족들의 죽음을 겪는다. 본래 개였기에 인간세상에서는 급속도로 늙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는 ‘개’에 대해 함부로 말하거나 자신이 생각하기에 옳지 않은 일을 하는 상황에 분노한다. 하지만 인간에 대해 분노하는 그 이상의 애정을 지니고 인간세상을 살아간다. 인간세상에서 극심한 성장통을 겪은 그는 연분홍빛 지렁이의 도움으로 인간세상에서의 ‘청춘을 온전히 보낼 시간’을 선물받는다. 그리고는 집을 떠나 세상으로 향한다. “여기에만 머물러 있기엔 세상은 아주 넓어.” <나는 개입니까>p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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