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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종교인 입장에서 종교와 관련된 책을 찾아 읽기란 쉽지가 않다. 우선 어떤 책을 읽어야 하는가에서 부터 고민은 시작되기 때문이다.다행히 예수전이라든가 종교 이제는 깨달음이다 라는 책을 만날수 있었기에 여전히 종교와 관련된 책을 조심스럽게 찾아 읽으려 노력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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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적 엄마 쫓아다녔던 절(?) |
퀴즈 하나 냅니다. 들에 단을 쌓고 법회를 여는 것을 뜻하는 불교 용어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입멸하시긴 전) 마지막으로 제자인 마하가섭에게 정법을 전수하면서 영취산엔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석가모니가 갑자기 설법을 중단하고 대중을 향해 연꽃을 들자 어리둥절해하는 대중들 사이로 가섭만이 이 뜻을 알고 빙그레 웃었던 '염화시중의 미소'도 이 곳에서 탄생합니다. 지금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어지럽고 떠들썩한 상황을 뜻하는 말로 쓰입니다. 무엇일까요? <10대와 통하는 불교>, 청소년을 위한 교양 도서의 냄새가 납니다. 아쉽군요. <당신과 통하는 불교>라고 고쳐부릅니다. 모두가 읽기에 모자람이 없는 책입니다. 대게 쉽게 읽히려는 인물전이나 종교서들이 '일화'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인데 교훈이나 정설을 언급하기보다, 쉽게 풀어 쓴 말로 동심원을 그리며 불교의 핵심을 향해 갑니다. 고민거리도 던져주고 보다 넓은 시야로 불교를 보도록 끌어올립니다. 타겟을 지정한 책이긴 하지만 타겟을 벗어나도 즐거울 책입니다. 각 꼭지의 끝에, 궁금하지만 어떤 책도 가르쳐주지 않을 것같은 질문들이 모여있는데 '불교 신자들도 일요일마다 절에 가야 하나요?'에는 적절한 답문 뒤에 김규항의 <교회>란 글을 덧붙입니다. "나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기독교인이다. 아이가 경기라도 하면 나는 며칠 사이 지은 죄를 떠올린다. 나는 예수에 의지한다. 내가 가진 단출한 지식과 사상을 통틀어 예수의 삶만큼 나를 지배하는 건 없다. ...교회에는 예수대신 맞춤식 예수 상像들만 모셔져 있었다. ...나는 이제 나보다 다섯 살이 적어진 예수라는 청년의 삶을 담은 마가복음을 읽는다. 내가 일 년에 한 번쯤 마음이라도 편해 보자고 청년의 손을 잡고 교회를 찾을 때 청년은 교회 입구에 다다라 내 손을 슬그머니 놓는다. 내가 신도들에 파묻혀 한 시간 가량의 공허에 내 영혼을 내맡기고 나오면 그 청년은 교회 담장 밑에 고단한 새처럼 앉아 있다." 자식의 입신 출세나 함격, 부모님의 건강이나 남편의 사업을 위해서 절에 들락거리는 '보살' 아주머니들을 과연 이타적인 서원을 세운 보살이라 물러야 할까요? 또, 마치 절을 법당의 주인이양 행세하면서 관광객들과 일반 신도들의 법당내에서의 행동거지 하나하나에 사납게 눈을 부라리다, 누군가 축원과 재를 지내기 위해 시주를 한다고 하면 상냥한 얼굴로 돌변하는 법당보살들도 과연 '보살'이란 이름이 어울리는 존재들일까요? 어쩌면 이시대의 보살은 절 안이 아니라 절 밖에서 찾아야 할지도 모릅니다. -<10대와 통하는 불교>에서 호기심을 가장하는 질문이 그 깊이를 더해갈 때, 부도전 앞의 연못에 무심결 얼굴을 비추다가 석가산의 봉우리를 마주하는 격입니다. 이쯤에서 두 번째 퀴즈 나갑니다. 옛날에 게으른 승려가 있었는데 스승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고 수행과 정진을 게을리하다 병에 걸려 죽었습니다. 승려는 그 과보로 죽은 뒤 이것의 몸으로 환생하여 살게 되었는데 등 위에 나무가 솟아 고통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스승을 보게되어 반갑고 서러운 마음에 스승 앞으로 가 눈물만 뚝뚝 흘렸습니다. 이것의 전생을 살펴본 스승은 자신의 제자였음을 알고 천도재를 지내니, 제자가 꿈에 나타나 수행승들이 자기와 같은 잘못을 반복하지 않도록 나무로 이것 모양을 만들어 달라고 말했습니다. -'스님들이 목탁을 치는 이유가 무엇인가요?'에서 발췌 점 하나를 찍고 시작하는 두 번째 꼭지는 인상적입니다. 현대 수학에서의 점, 선, 면의 서술이 불교의 연기법과 상통합니다. "이것이 있으니 저것도 있고, 이것이 생기니 저것도 생기고, 이것이 없기에 저것도 없고, 이것이 사라지니 저것도 사라진다."의 상호관계가 점이 없으면 선을 말할 수 없고, 선이 없으면 점을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설명됩니다. 이것은 바닥을 걷는 발바닥이 바닥과 하나이면 걸을 수 없고, 둘이면 디딜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또한 점 하나로 '나'라고 할 만한 실체가 없다는 '제법무아'를 설득하기도 합니다. 답은 야단법석 물고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