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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후기
(선한리뷰 2021-044) 새로운 인간이 된다는 의미 ? 빵과 포도주
한줄평 : 빵과 포도주가 주는 진정한 사랑과 평화에 대한 이야기.
도서명 : 빵과 포도주 글쓴이 : 이냐치오 실로네 (이탈리아) 출판사 : 고래의노래 쪽수 : 471쪽 발행일 : 2017년 3월15일 완독일 : 2021년 5월11일
앞선 리뷰 「고래도 함께」는 <모비딕>을 읽으면서 ‘고래’가 제목에 들어간 책이어서 선택했다면, 이번 책은 출판사 이름에 ‘고래’가 들어가 있어 내 안테나에 걸려들었다. 이런 식의 쓸모 없어 보이는 우연의 선택은 정말 너무 재밌다. 출판사 이름을 고래로 할 정도니, 얼마나 고래를 사랑하는 사람들일까. 그들이 펴내는 책은 고래만큼 아름다울 것이다.
이 책에 대하여, 예스24에 소개된 부분을 읽어보자. 이탈리아 작가 이냐치오 실로네(1900~1978)의 장편소설 『빵과 포도주』가 최승자 시인의 번역으로 도서출판 고래의 노래에서 출간되었다. 인류 역사상 가장 어두운 시대를 살며 시대의 어둠을 누구보다 가까이에서 목격했던 실로네는 역설적이게도 평생 인간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잃지 않았던 작가이다. 『빵과 포도주』는 암울한 시대 속 누추하고 비좁은 보통 사람들의 삶 속에서 발견한 아름다움과 거대한 폭력에 저항했던 실로네 자신이 경험한 아픔과 서글픔, 분노와 기쁨의 경험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작품이다. (예스24)
『빵과 포도주』는 실로네의 자전적 소설이다. 작가 실로네는 반파시스트이면서 반스탈린주의자가 되어 파시스트에게는 공산주의자로 비난받고, 공산주의자에게는 파시스트로 비난받는 사람이 되어 파시스트와 좌익 엘리트 모두에게 물리적, 도덕적으로 추방당하게 된다.
책에서 그는 피에트로 스피나라는 혁명가에서 도망자 신세가 된 그는 친구의 뜻을 따라 돈 파울로라는 신부가 되어 시골 마을로 숨어든다. 그는 치료를 위해 잠시 머무는 신부라는 설정을 했기 때문에 동네 사람들의 고해성사도 받지 않았고, 미사도 집전하지 않았다. 시골 동네 사람들은 신부라는 사실만으로 그를 매우 존중하였으며 그로 인해 시골 동네는 점점 활기차게 변한다.
“수도복을 입는다고 해서 수도사가 되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잊지 말게.” (89쪽)
당시 카톨릭 천구교회의 입장은 파시즘을 받아들여 그에 복종했기 때문에, 신부의 복장을 했지만 그가 가끔 던지는 말들은 기존 가톨릭의 입장과 달랐다. 교회는 최악의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 때로 나쁜 조건을 받아들이고 그 안에서 할 수 있는 만큼을 한다고 했다. 안 그러면 교회는 박해를 받게 된다고, 얼마나 정신적 물질적 피해가 오는지 아느냐고 되물었다. 예수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살기 위해 협상하지 않았고, 그저 죽음을 숙명처럼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혁명가이자 신부로 분장한 돈 파올로는 이해할 수 없는 변명으로밖에 여겨지지 않았다.
농사를 짓는 시골 사람들은 현 정부에 대해 무슨 생각을 할까? 여론 청취는 그가 앞으로 어떤 혁명을 실천해야 하는지 중요한 작업이었다. 그래서 신부로 변한 그는 동네 사람들이 독재 정치를 나쁘게 생각하고, 혁명에 동참해야 하기를 바라면서 수시로 그들의 속마음을 캤다.
“난 당신들이 현재의 정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소,” “아무 생각도.” 다니엘레가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동감이었다. “아무 생각도.” “어째서 그런가요? 당신은 언제나 불평투성이인데.” 신부가 말했다. “누구에게나 다 자기 문제가 있으니까요.” 마가쉬아가 말했다. “우린 다른 사람들 문제엔 신경 안 씁니다. 우리 주위의 것에만 관심이 있지요. 우린 우리가 가진 땅과 포도밭을 살펴봅니다. 접의 문이나 창문이 열려 있을 때면 우린 그 너머로 그것들을 살펴보지요. 문간에 앉아 수프를 먹을 떈 자기가 먹는 그릇만 보고요.” (222쪽)
이 작품은 그가 스위스에 겨우 정착하여 쓰게 된 글로, 자신이 이탈리아로 돌아가서 목숨을 부지하며 마지막 혁명을 이루려고 노력했던 작가 자신의 치열한 삶을 담고 있다. 하지만 시골에서 공동체 생활을 했던 그는, 글을 제대로 읽지도 못하는 시골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혁명의 시기에, 독재의 암울한 절망의 시대에 인간이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통찰하게 된다.
『빵과 포도주』는 독재자 무솔리니가 장악한 자국 이탈리아 및 나치 정권의 독일에서는 금서로 지정되어 출간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전 세계 대중과 문단의 뜨거운 호응을 받으며 19개 언어로 번역되고 수백만 부가 판매되며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학 작품이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군은 『빵과 포도주』의 무단 복제판을 인쇄하여 나치가 점령 중이던 이탈리아 전역에 배포하기도 했다고 하며, 그의 작품은 브로드웨이 연극과 영화 및 TV 드라마로도 만들어졌으며 독일의 작곡가 한스 아이슬러Hanns Eisler는 『빵과 포도주』를 바탕으로 7개의 칸타타를 작곡하기도 했다. (이 음악 작품을 찾아보려고 한스 아이슬러 음반을 검색해 보았는데, 정확히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빵과 포도주, 제목이 주는 의미는 뭘까. 책을 마지막까지 이어가면서도 책 내용과 제목의 연관성을 잘 찾지 못했다. 그러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빵과 포도주는 예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이는 내 살이요,’ 하며 제자들에게 빵과 포도주를 나눠주며 먹고 마시는 장면이 떠올랐다.
책 마지막 즈음에 가서, 독재정권 파시스트에 의해 동료 무리카가 잡혀 죽게 되고, 사람들이 그 집에 모여 빵과 포도주를 먹는 장면이 나왔다.
그때 거지들이 몇 명 왔다. “들여 보내세요.”하고 무리카의 어머니가 말했다. “우릴 정탐하러 보낸 사람들인지도 몰라요.” 누군가가 수군거렸다. “들여 보내세요. 우린 이 위험을 각오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지들에게 먹을 것을 주고 마실 것을 주면서도 자기들이 예수님에게 주고 있다는 걸 몰랐지요.” (443쪽)
빵은 많은 이삭의 낱알들로 만들어집니다. 하고 피에트로는 말했다. 따라서 그것은 하나가 됨을 의미합니다. 포도주는 많은 포도알로 만들어집니다. 따라서 그것 역시 하나가 됨을 의미합니다. 비슷한 것들이 똑같이 모여 뭉치는 하나의 결합인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진실과 형제애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함께 어울려 화목하게 지내는 것들이지요. (443쪽)
그가 꿈꾸었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을까? 그런 세상이 과연 세상에 존재할까? 하지만 존재할 수 없다고 해서 꿈마저 꿀 수 없는 걸까? 우리는 꿈꾸는 세상에서 살 수는 없는 걸까
저자는 시골 생활을 통해서, 가난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어떤 의문도 없이 마치 삶의 원칙처럼 주변의 병자를 돌보고, 가난 속에서도 한 덩이의 빵과 포도주를 나누며 살아간다는 것을 발견했다.
새로운 인간이 된다는 것, 그것은 근본적으로 진정한 우정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고통을 함께 하고, 빵과 포도주를 함께 나누는 것, 그것이 진정한 혁명이었다.
(선한리뷰) 더 좋은 세상을 꿈꾸다 이 세상과 더 빨리 이별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역사는 그런 사람들이 꿈꾼 세상으로 인해 조금씩 더 나아졌다.
옳지 않다고 여기는 세상에 굴종하지 말고, 옳다고 여기는 세상을 위해 싸우자. 꿈마저 포기하는 사람이 되지 말자.
“자유란 무슨 선물로 얻어지는 게 아닐세.” 피에트로가 말했다. “독재 체제 속에 살면서도 자유로울 수가 있다네. 그 독재에 대항하여 싸우는 단 한 가지의 경우에 말일세. 자기 자신의 정신으로 생각하고 자기 정신을 타락하지 않고 간직하고 있는 자는 자유롭네.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 싸우는 자는 자유롭네.” (6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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