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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진의 칼럼은 읽기 어려웠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에 일어난 사건들, 이미 알고 있던 사건들인데 왜 읽기 어려웠을까? 그동안 사회 현상을 다각적으로 보지 않고 익숙한대로 이해해왔던 것 같다. 그래서 젠더뿐만 아니라 계급, 지역, 나이, 성 정체성까지 다양한 사회적 모순을 메타젠더 시각으로 풀어낸 저자의 낯선 시선이 어렵게 느껴졌다. “그때 그런 일이 있었지, 난 왜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을까?”하며 읽었고 지금 일어나는 사건들에 대해서는 저자가 어떻게 생각할지 궁금하기도 했다. 저자의 낯선 시선에 나의 의견을 내기가 아직 어렵다. 하지만 생각과 언어는 최대한 ‘중심’과 거리를 두고 필사적으로 ‘주변성’을 지향하는 저자의 글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다.
'상식에 대하여’라는 제목으로 모아진 내용에서는 상식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일들을 돌아보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 얼마나 무심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말에 대하여’에서는 평소 당연하게 사용되어 왔던 말들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동반성장, 지속 가능한 복지는 좋은 말인 줄로만 알았고 혐오와 분노, 정의와 의리, 구제역....그냥 흘러듣고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부끄러움에 대하여’를 읽으며 최씨일가, 우병우씨, 트럼프와 같은 호모 셰임리스(뻔뻔한 인간)과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이 부끄러웠다. 하지만 그들처럼 뻔뻔해질 수도 없고 뻔뻔한 세상을 감당할 수 없더라도 옳고 그름을 고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고통에 대하여’라는 제목 때문인가 이 장은 읽는 동안 불편했고 그냥 넘어가고 싶었다. 회피와 직면 사이에서 회피를 선택하고 싶은 우리 사회의 아픈 이야기들. 국정농단 사건,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건, 세월호,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국정농단 사건으로 마음 둘 곳도 몸 둘 바도 없는 이들에게 저자는 “한 사람에게라도 의미 있는 사람이면 된다.”라며 쉽지 않겠지만 남들이 마음을 둘 수 있는 사람이 되어보자고 제안한다. 이게 쉬운 일인가? 이렇게라도 말하면서 위안을 갖고자 하는 저자의 의도를 알 것도 같다. “이렇게라도 생각을 묶어 두어야 새해를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196p).”라고 하니까... ‘남성에 대하여’에서는 내가 여성이기 때문에 차별받아왔던 사실들을 정리 받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차별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차별의 ‘효능’ 중 298p) "우리가 KTX를 제발 좀 늘려 달라고, 즉 서울 좀 빨리 가게 해 달라고 욕하는 것이 저항이 아니라 우리는 안 가도 된다고, 서울에 안 가는 대신 우리도 서울과 같은 문화를 누리겠다고 할 때 진정한 서울 중심성에 대한 저항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것이 저의 패배적인 지역 사회의 자기 합리화인지 아니면 정말 이것이 진정한 열쇠가 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나도 저자처럼 서울과 광주 사이의 KTX 문제를 ‘차별’이라고 보아왔다. 이분의 다른 시각을 읽으며 ‘차별’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았다. 기존의 차별 기준이나 개념 자체가 차별을 심화하고 있으며 차별을 시정하는 것만큼이나 차별 현상을 다양하게 해석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저자의 이야기에 공감이 갔다. 또한 상대방이 차별한다 해도, 그것을 수용하지 않거나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거나 무관심하게 생각한다면 억압자가 차별의 효과나 이익을 보기 어렵고 차별에 대한 다양한 실천도 가능하다는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그동안 익숙한대로 세상을 바라보았고 나의 일이 아니라고 외면했던 사건들도 많았다는 것을 알았다. 사회 문제를 회피하기만 하고 역사가 평가해 줄거라는 변명은 이제 통하지 않음을 <미래는 오지 않는다> 편에서 여실히 느꼈다. 미래 자체가 올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오늘을 위해서 오늘을 사는 것. 더 이상 외면하고 회피하지 말고 직면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