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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간의 제주도 올레길 여행은 두권의 책과 함께 했다. 한권은 앞서 소개한 카잔차키스의 '알렉산드로스 대왕' 이었고 다른 한권은 마르틴 아우어의 '파브르 평전' 이었다.
두권 모두 얇고 가벼워서 배낭에 넣어두고 틈나는 대로 읽기 좋을 듯 했다. 카잔차키스의 책은 원래 그리스 청소년 교육 목적으로 씌여진 작품이라서 그런지 여행과 나름 잘 어울렸다. 산만하게 마련인 공항 대합실에서도 좁은 비행기 좌석에서도 굳이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지 않아도 흐름을 충실하게 따라갈 수 있었다.
하지만 여행 3일째쯤 제주의 성산리 민박에서 꺼내든 '파브르 평전'은 조금 달랐다. 왜그런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깐깐한 한 과학자 할아버지의 유쾌한 삶이 담겨있을 것만 같았는데 책은 처음부터 시종일관 축약된 언어로 진지함을 추구한다.
책에는 가난과 불우함의 연속이었던 어린 시절과 학창시절 그리고 청장년까지 연구는 고사하고 가족들에게 먹일 빵한조각 구하기 어려운 생활을 하면서도 탐구의 끈을 놓지 않았던 한 과학자의 철학적이고도 끈질긴 평생동안의 노력이 담겨있었다.
실험실에서 표본을 해부하면서가 아니라 그만의 방식으로 그 작은 곤충들이 살고 있는 황량한 곳에서 몇시간 몇년동안이나 고개를 쳐박고 관찰하면서 그는 기존의 가설들을 하나하나 깨쳐나간다.
읽다가 말고 자세를 고쳐잡게 된 분명한 계기는 그가 우리가 너무 편하게 받아들이고 있던 진화론을 분명하게 거부하던 순간이었다. 지칠 줄 모르고 알을 낳고 있는 매미의 바로 뒤에서 매미가 낳은 알 속에 자신의 알을 하나하나 낳고 있는 벌을 설명하며 수백년간 반복되어 온 그 행위에 왜 매미는 적응하지 못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는 순간 진화론은 물거품처럼 날아가고 머리속에는 알 수 없는 의문만 가득차게 된다.
하지만 나는 진화론도 그리고 파브르의 이론도 어느것 하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니 이편도 저편도 들 수 없다. 그저 이 책은 한번 읽고 책장에 전시할만한 가벼운 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을 뿐이다.
- 독서노트 -
■ “내가 항상 바라던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내 소원 이었다.’ 작은 땅덩어리, 크지는 않지만 평화로 둘러싸여 있는 곳. 도로변의 집들에서 겪는 불쾌한 일들에서 해방된 곳. 버려진 불모의 땅. 거기서 나는 행인들의 방해를 받지 않고 구멍벌들에게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고, 우리끼리의 대화에 몰입할 수 있을 것이다.
■ 약간의 변화와 변형을 통해서 기존의 종에서 새로운 종이 생겨난다는 것은 파브르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창조주의 힘은 중고품을 완전히 고철로 만들고 이것을 전혀 새로운 형태로 대체한다. 이 새로운 형태는 종류가 너무 다양해서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그 공장은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사람의 옷을 주워 입는 벼룩시장이 아니라 예술가의 작업실이다. 거기서는 새로운 디자인에 따라 주조한 새 메달들이 나온다. 옛것을 좀 새로운 것에 맞춰 이리저리 절단하는 식의 궁색한 절약이 거기에는 없다. 사용이 끝난 형식은 파괴되어 폐기될 뿐이지 추후에 가련한 ‘복제 주조물’에 사용되지 않는다.”
■ 지칠 줄 모르고 알을 낳는 매미의 바로 뒤에서 기생충 같은 벌이 기다리고 있다가 매미가 알만 낳으면 그때마다 자신의 깨알만 한 알을 그 매미의 알 속에 낳는 벌을 관찰하면서 파브르는 매미에게 이렇게 외친다. “너 가련한 어미 매미야, 수백 년의 경험도 너를 좀더 똑똑하게 만들지는 못했구나. 이 무서운 기생충 놈이 네 주위를 날아다니며 치명적인 침을 놓을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너는 좋은 시력으로 당연히 그것을 보아야 했을 것이다. 그 벌이 너의 발뒤꿈치에 올라앉아 있다는 것을 두 눈으로 똑똑히 보면서도 그저 무감각하게 내버려두고 있구나.
■ 동일한 소리는 자주 반복되고 있지만, 그것들만으로는 조화를 이루기 힘들다. 조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동일하지 않은 소리, 즉 약한 소리, 강한 소리, 깊은 소리, 높은 소리도 필요하다. 심지어 불협화음도 있어야 한다. 이 날카로운 불협화음 때문에 화음의 하모니가 강조된다. 마찬가지로 인간사회도 동일하지 않은 것들의 협주를 통해서 조화로워진다. 평등 사회의 꿈이 실현된다면 우리는 애벌레의 단조로운 사회로 푹 가라앉아버릴 것이다. 예술, 학문, 진보, 정신적 비약은 완벽한 평등이라는 죽음과 같은 정적 속에서 영원히 깊은 잠에 빠질 것이다. ■ 왜나하면 그는 하는 일 없이 그냥 있는 적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그는 어떤 상황에 있든지 쉴새없이 무엇인가를 기록한다. 그의 주머니에는 언제나 몽당연필이 들어 있으며, 그가 주변에서 제일 먼저 발견하는 제일 좋은 종이에다 그때그때마다 떠오르는 생각을 적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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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이 생각보다 작고 아담한 사이즈인데, 읽으면서 이 작은 책 한권에 파브르의 일생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는 것이 신기하면서 좋았습니다. 맨 앞에 파브르와 그가 생전에 살았던 집, 근처 숲, 가족들 사진도 있어 좋았구요. 위인전으로만 읽었던 파브르에 대한 생애를 좀 더 사실적으로 접할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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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파브르 아저씨. 앞으로 곤충학자 앙리 파브르를 이렇게 불러야겠다. 인간 파브르가 어떤 성격으로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친구였든, 가족에겐 어떤 아버지였고 남편이었든간에 내가 접한 파브르는 작은 생명체들을 바라보는 관찰자의 눈과 그들의 행동과 생각(?)을 꿰뚫어보는 능력에 있어서는, 그리고 그것을 글로 풀어내는 시인적 자질에 있어서는 그 누구도 따라올 자가 없는 사람이었다. 엄청나게 매력적인 인물, 그가 바로 파브르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웠던 <파브르의 곤충기>가 바로 30여년간 10권으로 그가 써 낸 <곤충기>라는 책이다. 10권이라니, 그것도 곤충이야기만!
'나는 살아 있는 것을 연구한다'라는 부제는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의미심장함을 내포하고 있었다.
이 책은 평전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인에 대한 거부감으로 인하여, 그 즈음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곤충기>는 독일에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었다 한다. 저자 마르틴 아우어는 그런 독일에 파브르를 알리기 위해 다른 저자가 이미 쓴 전기들과 파브르의 저작들을 참고하여 이 책을 썼다. 책 내용의 아주 많은 양이 파브르가 자신의 저작에 썼던 글들을 큰 따옴표로 묶어 그대로 인용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덕분에 저자인 마르틴 아우어가 직접 쓴 글보다 주인공인 파브르가 하는 말을 그대로 그의 음성처럼 들려주는 글을 아주 실컷 맛볼 수 있어서 더욱 좋았다.
파브르의 왕팬이 되었다. 이제 곤충기를 찾아 읽어볼 참인데 저자 후기를 보곤 은근히 걱정 중이다. 혹시 파브르의 글이 우리나라에 제대로 번역된 책이 없으면 어쩌지? (뒤적뒤적 검색중...... 검색 완료!) 다행인지 불행인지 곤충기의 완역본을 '현OO'라는 출판사에서 펴내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현재 총 10권 중 3권이 나와 있다. 다 나오려면 일년에 두권꼴로 잡아도 앞으로 4년은 더 기다려야 할 것 같지만 꽤 공을 들여 만들고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조만간 만나봐야 겠다.
그렇게도 유명한 책마저 이미 출판된 책이 아니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출판 시스템이라는 것에 대해서 다시금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출판도 결국은 사람의 손이 엄청나게 필요한 작업이 아닌가. 외국서적의 경우 먼저 번역을 해야 하는데 번역을 결정하기까지의 과정이 있을 것이고(이미 유명한 책이라면 결정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일은 아니겠지만) 번역자 선정이나 번역 자체의 일(굉장한 공을 들여야 할 일) 등등. 게다가 10권짜리 책이라면 그리 쉽게 국내 출판이 결정되었을 것 같지는 않다. 이제서야 내가 그 책을 읽으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마침 3권이나 이미 나와 있다고 하니 크나큰 인연임에 틀림 없다.
작디 작은 곤충을 관찰하고 연구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한 곤충학자의 고귀한 영혼을 찬미하며 그의 연구에 관한 글 중 일부를 인용하는 것으로 서평을 마친다.
공간과 재료를 최대한 절약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둥근 형태를 적용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결합 부위에 빈 공간이 생기기 때문이다. 단지 평탄한 면들만이 서로 맞닿아야 한다. 방들은 애벌레 길이에 맞는 각기둥이어야 하고 밑면은 규칙적인 다각형이어야 한다. 모든 애벌레는 동일한 면적을 차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다각형 중에서는 정삼각형, 정사각형, 정육각형 단 세 가지 종류를 고려할 수 있다. 그래야만 빈 공간이 생기지 않는다. 이제 이 형태들 중에서 어떤 형태를 취할 것인가? 애벌레의 실린더형 몸통에 가장 잘 맞으며 동일한 크기로 가장 넓은 공간을 제공하는 것이어야 한다. 우리의 기하학은 빈 공간 없이 서로 잇대어 조립할 수 있는 규칙적인 도형들 중에서 정육각형을 추천한다. 그리고 벌들의 기하학도 당연히 정육각형을 채택한다. 그래서 그 방들은 정육각형이 된다. ... 우리는 이런 말을 들었다. '빈 병에 마른 완두콩을 채우고 거기에 약간의 물을 부어라! 완두콩이 불기 시작하면 그것들은 서로의 압력 때문에 다면체가 될 것이다. 벌집들의 방도 마찬가지다. 이 곤충들은 집을 지을 때 상당히 많은 수가 일하며, 각자는 자기 나름으로 집을 짓고, 그 작업은 결국 그의 곁에서 일하는 다른 벌의 작업과 만나게 된다. 이때 생기는 서로 간의 압력이 육각형을 만들어낸다.' 이렇게 순수하게 기계적으로만 벌집의 건축 과정을 설명하려는 시도는 우리가 그 건축 과정을 실제로 관찰해보면 그 첫 단계부터 벌써 틀린 것으로 밝혀진다. 들판의 나뭇가지에 아무런 보호막도 없이 집을 짓는 쌍살벌은 그 점을 관찰하기에 가장 쉬운 벌이다. 봄이 오면 어미 벌은 혼자서 집을 짓기 시작한다. 어미 벌의 주변에는 반대편에서 벽을 마주세워줄 다른 벌이 존재하지 않는다. 어미 벌은 최초로 육각형 방을 하나 만든다. 아무것도 그를 방해하지 않으며, 아무것도 그에게 특정한 모형을 미리 제시하지 않는다. 그런데도 혼자서 만든 최초의 방은 완전한 육각형이다. 그 후에 만드는 것들도 마찬가지다. 처음부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기하학이 발현된다." 벌집의 모양에 대해 여러가지 학설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다. 위 인용문 중 첫번째 학설(불린 콩 이야기)에 대해서 감탄하고 있었는데 뒤에 이은 두번째 학설(파브르의 주장)을 읽을 즈음에는 할 말을 잃었다.
또 이런 대목도 있다.
그는 자기가 관찰하고 스스로 검토하고 철저히 생각한 것에 대해서만 말을 하고 글을 썼다. "살아 있는 자연의 비밀, 해부학적 구조의 비밀이 아니라 생명의 활동, 특히 본능의 비밀은 연구하기가 훨씬 어렵다. 그 일은 연구자가 자기 시간을 가지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연구자는 계절, 날짜, 시간, 심지어 순간의 노예이다. 그러므로 기회가 오면 재빨리 붙잡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 기회는 상당히 오랜 시간 우에야 다시 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회는 사람들이 생각지도 못한 순간에 오는 것이 보통이므로 기회를 유용하게 쓸 수 있는 준비가 아무것도 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많다. 관찰자는 최대한 서둘러서 소박하나마 실험 도구를 마련해야 하며 계획을 짜고 묘책을 고한해내야 한다. 따라서 순간적으로 제공되는 기회를 이용할 수 있는 생각이 빨리 떠오르면 천만다행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행복한 경우는 관찰자가 기회를 노리는 동안에는 드물게 온다. 그렇게 되면 연구자는 며칠씩 잠복 근무를 해야 한다. 때로는 뜨거운 햇빛 아래 후끈거리는 모래언덕에서, 때로는 언덕들 사이로 나 있는 한증막 같은 좁은 길에서 관찰해야 하며 바위 꼭대기에 올라서는 위험도 무릅써야 한다. 앙상한 올리브나무 밑에서 관찰 지점을 마련할 수 있는 날에는 그날의 운수에 감사해야 한다. 나무는 한낮의 무자비한 태양으로부터 관찰자를 조금이나마 보호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언제나 관찰자를 방해하는 사람이 중요한 순간에 등장한다. 과학이라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가 보다. 한 가지에 대한 끈기와 집중력과 열정이 없으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거기다 몇 십년간 고집스럽게 하나의 일에 매달리지 않았다면 파브르라는 이름은 결코 우리에게 전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사실을 책에서 확인 할 수 있었다. 한 종류의 일생을 연구하는 데는 한 번 기회를 놓치면 무수한 나날(몇 년 이상)을 기다려야 할 수도 있다고 한다.
이제 그는 자유 시간이다. '반나절 동안 해야 할 일이 끝났다.' 그리고 그는 이제 휴식을 취하고 싶지만 긴장 해소의 욕구, 덜 힘든 일을 통해 기분 전환을 하고 싶은 욕구를 더 강하게 느낀다. 왜냐하면 그는 하는 일 없이 그냥 있는 적이 결코 없기 때문이다.
그가 어떻게 살았는지 대략 감이 오는 대목이다. 삶=일 이런 공식이 성립하는 한 연구자의 일생이 눈 앞을 스쳐지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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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위인전이나 평전 같은 것은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다. 아마도 원래 부터 그런 방면에는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하여간 위인전은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을 해놔서 읽기가 괴롭다. 나중에 성인이 된 후에 알게 되는 유명 인사들의 감춰진 진실 같은 것을 접하기라도 하면 그 충격이 상당하다. 후대의 역사는 좋은 면만 부각시키고 부정적인 부분은 감추다보니, 시간이 흐르면서 전자만 남고 후자는 접하기가 힘들다.
그래도 말년에는 연금도 받고 해서 쪼들리지는 않았다고 하니 흠~ 어쨌거나, 곤충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시간 때우기로 읽어 볼만하다. 아하! 어디 파브르만 화병을 앓았겠는가? 한국도 궁민들의 의식수준이 아직 선진국에 한참 모자르고, 그러다 보니 수구세력들이 온갖 부정부패를 일삼고.....에휴! 홧병 생겼다. 가만있어 보자. 이걸 전 지구적으로 확장시켜서 본다면, 지구도 홧병을 앓고 있는 셈이 된다. 지구 온난화가 그 증거가 아닌가? 기생충 같은 인간들이 얼마나 많은 환경파괴를 일삼았는지 가이아가 못 살겠다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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