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중소설로써의 가치를 친다면 5점 만점에 4점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줄거리를 전개해나가는 속도와 필력은 독자를 정말이지 롤러코스터를 타는 기분으로 소설에 몰입하게 만든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책을 앉은 자리에서 거의 다 읽다시피 했다. 하지만 후반부의 재빠르고 가벼운 마무리는 주인공에게 지나치게 우호적이거나 아니면 지나치게 소설쓰기에 무성의한 것처럼 보였다. 평범한 서민들에게는 어쩌면 생소하기만 한 집단소송과정을 흥미롭게 풀어낸 점에도 점수를 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소설 속에 등장하는 것 같은 탐욕적인 변호사들에 의해 집단소송이 맹목적으로 남용되어 결국 기업경영에 불합리한 타격을 주는 일이 실제로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기업의 활동과 생산물로 인해 피해를 받은 사람들이 그 피해를 배상 받을 권리를 묵살당하는 일도 없어야할 것이다. 만일 피해자들에게 부작용을 알면서도 약을 팔았다면 그 부작용을 책임 져야할 것은 기업이지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법 현실은 기업으로부터 부당한 피해를 받은 개인을 어떻게 구제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부디 우리나라의 법률가들은 기업경영이 불합리한 소송으로부터 보호받는 동시에, 상대적 약자일 수밖에 없는 개개 소비자들을 부당한 대우로부터 보호해줄 수 있길 순진하게나마 기도해본다. |
| 존 그리셤의 작품들이 시공사에서 출간될 무렵, 정영목씨가 번역을 맡았을 때는 상태가 괜찮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런데 이 책은 고도의 이해력을 요구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앞뒤가 안맞는 것일 뿐인지... 228페이지에서는 '프렌치가 1만8천건의 의뢰인을 확보'했다고 했다가 246페이지에서는 '프렌치는 5천건을 막 넘겼다'고 했다. 또한 주인공을 클레이라고 했다가 어떤 부분에서는 JCC(주니어 클레이 카터 2세)로 표기하고 있다. 이런 번역상의 실수는 애교라고 치더라고 책의 뒷날개에 있는 그리셤의 다른 책 소개는 정말 용서가 안되는 부분이다. '소환장'을 소개하는 글에 작품의 범인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환장'은 아버지의 막대한 유산을 차지하려는 주인공과 미지의 범인과의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존 그리셤은 꼼꼼하게 이야기를 엮어가며 마지막까지 범인의 정체를 밝히지 않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단점들만 제외한다면 꽤 좋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작품 자체도 좋고 시공사에서처럼 쓸데없이 두권으로 나누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날이 업그레이드되는 존 그리셤의 작품을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파트너'에서 볼 수 있었던 안티-히어로, '톱니바퀴'에서 볼 수 있었던 규모의 확대같은 새로운 시도가 '불법의 제왕'에서도 인상적이기 때문이다. 미국을 대표하는 작가의 녹슬지않는 솜씨를 느낄 수 있는 멋진 작품이었다. |
| 주인공 클레이는 정말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가난뱅이 국선 변호사이다. 하루하루를 가난에서 벗어나고픈 마음과 여자친구와의 갈등. 그러다 어느날 그에게 엄청난 기회가 온다. 물론 정상적인 일이 아닌 불법적인 일로 인해서 자신이 죽도록 일해도 만져보기 힘든 돈을 벌게 되고 사치스런 차와 여자와 집까지.... 결국 한 순간의 꿈으로 끝나지만 클레이를 보면서 사람의 욕심이 어디까지 가는지 정말 무서운 생각이 들었고 돈에 휘둘리는 모습에서 추한 인간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결국 모든 것을 한 순간에 잃고 예전의 애인 레베카와 떠나면서 이야기는 끝이 나지만 다행스럽다는 생각까지 드는 것은 마지막엔 추한 모습을 모두 벗어던진 예전의 클레이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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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454페이지, 27줄, 28자.
최근작이 아니여서 아직 녹이 덜 슬었을 때의 작품이네요. 전에 보았던 [포드 카운티]인가 하는 최근작은 평범한 것이었는데 이것은 전성기보단 못하지만 아직 감이 살아 있네요.
자네트 클레이 카터 2세 변호사는 아버지가 변호사 면허를 빼앗기고 국외 추방당하다시피 출국한 다음 변호사가 되어서 조지타운 대학을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국선변호인으로 겨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느 날 법정에 갔다가 이상한 살인사건을 하나 맡게 됩니다. 그런데 자칭 맥스 페이스라는 '소방관'이 나타나 유사한 살인사건을 봉합(물밑 합의)하는 대가로 거액을 제시합니다. 클레이가 건네받은 자료로는 어떤 제약회사가 불법으로 약물실험을 했고, 그 결과 원치않던 부작용으로 (피고인을 포함한 몇 사람이) 살인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입니다. 성공적으로 마무리한 다음 다른 건을 제안받아 일약 거액수임 변호사 대열에 끼어듭니다. 물론, 기승을 지났으니 전과 결이 나와야죠.
작가가 제시한 설정은 좀 말이 안되는데 '그냥 전개를 위한 설정이니까 넘어가자'고 해야 할 겁니다. 미국의 일반적인 직업인이 벌어들이는 소득이 10만 달러 내외입니다. 대부분은 그 절반 수준이고, 좀 적당히 나가는 직군에서요. 그런데 그 100년치인 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 다음에도 탐욕을 멈추지 못하는 것은 왜 일까요?
사실 클레이의 이 1년 간의 삶은 꼭두각시입니다. 돈을 버는 장면에서도 뭔지도 모르면서 주어지는 자료를 갖고 화해를 이끌어낸 것이고, 그런 집단소송 변호사들과의 어울임에서 과소비를 배운 것도 마찬가지이고, 레베카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리들리와의 동거도 마찬가지입니다.
제목이 조금 이상한데 직역해서 그런가 봅니다. 사전의 설명에 의하면 tort는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한 불법입니다. 그러니 의역을 하자면 불법행위배상 소송왕 정도가 적당할 것 같네요.
121022-121022/121024 |
| 역시 존 그리샴이라는 생각이 드는 소설이다. 오랜만에 좀 가벼운(?) 책을 읽어 보고자 하는 마음에 골랐던 책인데, 집단소송이라는 가볍지 않은 주제를 솜씨있게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에 한번 잡은 손을 놓을 수 없었다. 주인공은 허름한 국선변호인 사무실에서 최고급 사무실을 비롯하여 전용 비행기까지 천국으로의 비상을 하다가 날개없는 추락을 겪어 결국은 파산하고 만다. 소설의 내용을 굳이 여기 언급하는 것은 읽는 사람의 재미를 반감시킬것 같고 존 그리샴의 책을 많이 보진 않았지만, 펠리컨 브리프 와 같이 어떤 악을 징벌하는 이야기 전개가 아니라 주인공 자신이 비상했다가 추락하면서 권선징악적인 교훈까지 끌어내기 위해서 끝을 너무 비현실적으로 끝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너무 착한 주위 친구들, 너무 악한 집단소송 변호사들, 추락의 시작이 되는 이상한 판결) 얼마전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에린 브로코비치' 영화가 나온 후에 외신에서 실제에 비해서 많이 미화 되었고, 소설속의 내용처럼 변호사 수수료를 더 많이 챙기기 위해서 화해를 종용했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이해 못했던 내용들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이해가 되었다. 마무리를 제쳐놓고라도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어서 읽는 동안의 재미와 새로운 지식(집단소송)까지 알게된 점은 이 책을 그렇게 가볍지 만은 않은 읽을 거리로 추천할 만 하다. |
| 불법(torts), 불법 하길래 뭔가 했더니 이런 설명이 나온다 ; 배상 청구권이 발생할 만한 소송 사건들을 끌어내어 거액의 수수료를 받는 것.(책 165쪽) 내가 '집단 청구 소송'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영화 '에린 브로코비치' 덕분이었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인공인 그 영화는 거대기업의 횡포에 대하여 힘없는 주민(우리 개념으론 아마 '서민')들이 힘차게(!) 저항할 수 있는 유력한 방법으로서 '집단소송'을 그리고 있었다. 영화는 해피엔딩으로 끝나는데, 주민들은 마침내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고 주인공은 변호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수수료 가운데 수백만 달러를 사례비로 챙기고선 인생을 새출발하게 된다. 그 영화에 감동받은 나는 이런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 왜 우리나라는 저런 멋진 집단 청구소송을 금지하는 거지? 역시 대한민국 법은 있는 사람들 편인가? 그랬던 내가, 이 소설 '불법의 제왕'을 읽으면서 집단소송의 또 다른 면을 보게 되었고, 좀 다르게 생각하게 되었다. 즉. 거액의 수수료를 노리고 전문적으로 집단소송을 벌이는 변호사 집단이 극성을 부린다면, 웬만한 기업들은 살아남지 못하리라는 것이다. 소설에 나오는 세계 유수의 제약회사가 집단소송에 휘말려 기우뚱거리는 모습은 뭐랄까, 스릴을 넘어 안타까움마저 들 정도였다.(아니 어쩌면 이건 단지 작가 존 그리샴의 묘수에 순진한 독자인 내가 넘어간 것에 불과할지도 모를 일이지만 -.-;;) 만약 우리나라에서도 저 '불법'(집단 청구 소송)을 합법화한다면 어떻게 될까? 한마디로 아찔하다. 아마 십중팔구 많은 기업들이 몇 년 안에 무너지고 말 것이다. 최근 뉴스시간을 시끄럽게 하고 있는 모 카드회사처럼 경영진 가족들이 회사야 무너지든 말든 일단 내 몫부터 챙기고 보자면서 안면몰수하는 기업이나, 그런 회사에다가 또다시 국민의 세금으로 만든 공적자금을 쏟아넣자는 정부와 거대 언론사들! 그뿐인가. 회사돈 빼돌려서 만든 수백억원의 비자금을 대통령 후보들에게 갖다바치는 재벌들! 정말 아찔하다. '불법의 제왕'의 주인공 클레이처럼 좀 어리버리한 '제왕'(?)이라면 몰라도, 무서우리만큼 치밀하고 거대한 법률집단이 작정하고 덤벼들어 우리나라 기업들의 아킬레스건을 물게되는 날이면, 그 결과야 자명하지 않은가? 이렇게 생각해보면 역시 우리나라 경제의 평화를 위해서 '집단 청구소송' 합법화는 한참 뒤로 미뤄놔야할 것 같다. 그런데 참, 그렇게 되면 기업들이야 좋겠지만, 우리나라의 힘없는 민초들이 기업의 횡포에 맞서 싸울 수 있는 방법은 또 뭐가 있지? -.- |
| '소환장'을 통해 작가 존 그리샴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그의 신작이 나왔다는 소식에 그 책을 구해 읽었다. 누구나 일확천금을 꿈 꿀 것이다. 자신이 어느 분야에 있건 돈을 많이 벌고 싶고 높은 자리에 올라 떵떵거리며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클레이는 그런 꿈을 이룬 사람이다. 가난한 일개 국선 변호사에서 대형 소송 사건을 맡아 일약 억만장자의 자리에 오른 클레이가 백팔십도 달라진 삶 속에서 서서히 돈의 노예가 되어 간다는 내용이다. 돈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 꼭 필요한 도구이다. 그러나 인간이 그것을 도구로 활용하지 못하고 지배당한다면 돈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작가 존 그리샴을 그것을 경고하고 있다. 미국사회뿐만 아닐 것이다. 한국 사회에도 불법적인 방법으로 많은 돈을 얻어 당당하게 호의호식하며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있다. 돈이 많아 행복해보이는 그들이지만 실상을 전혀 그렇지 못함을, 온갖 추잡함과 비인간적인 것으로 둘러싸인 졸부들의 추악한 면모를 '불법의 제왕'을 통해 볼 수 있다. 그러나 속이 너무 빤해 보이는 그저 그런 스토리였다는 개인적인 실망감이 있어 아쉬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