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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회장님’ 짐 토볼드는 프랑스 출신으로 어려서 조실부모하고(아니 아버지는 아예 없었던가? 어머니랑도 연이 닿지 않는다, 나중에 자신을 찾아온 어머니를 부인하기도 한다) 생존을 위해 또래에게 주먹질을 해대면서 생존을 구가한다. 스트립 클럽의 주먹으로 일하다가 25세에 미국으로 건너간 토볼드는 자본주의의 성지(聖地)에서 비로소 자신의 이상을 실현시킬 절호의 기회를 잡는다. 패스트푸드 산업에 투신하게 된 토볼드는 음식 제작에 관련된 거추장스러운 요소들은 모두 제거해 버리고, 속전속결식 음식섭취를 최고의 모토로 삼아 부를 끌어모은다. 교양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볼 수 없을 정도로 천박함이 철철 넘치는 토볼드는 뉴욕의 146개짜리 방이 딸린 호화주택에 살면서, 300여 대에 달하는 타지도 않는 자동차를 세는 낙으로 산다. 그리고 자신이 가진 것을 훔치려고 하거나 빼앗으려는 모든 시도를 가차없이 분쇄하며, 그런 시도를 하려는 이들에게는 잔혹한 파멸이라는 징벌을 가한다. 그에게 유일한 가치는 바로 돈으로 상징되는 자본에 대한 끝없는 탐욕이다. 이런 천민자본주의의 상징 같은 토볼드는 자신의 신자유주의에 대한 복음을 후세에 길이 남기기 위해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삼십대 여성 작가를 고용한다. 그녀를 “꼬마”라고 부르며, 달콤하고 부드러운 크루아상 빵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넘치는 돈으로 한때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자부하던 작가를 길들이기 시작한다. 금발의 여자들에게 가장 매력적으로 호소할 수 있는 요소로 주저 없이 돈을 꼽는 토볼드는 쉬지 않고 그녀에게 자신의 “복음”을 메모하라고 강요한다. 물론, 이런 얼토당토않은 헛소리를 늘어놓는 졸부와의 동거로 작가는 자서전 집필을 그만두겠다고 가방을 쌌다 풀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토볼드가 제공하는 물질의 유혹은 도저히 거부할 수가 없다. 바로 이 시점에서, 리디 쌀베르의 냉소주의가 빛을 발하기 시작한다. 자본주의 시스템 속에서 하루하루를 사는 우리로서는 도저히 그런 물질이 주는 안락과 퇴폐적 소비가 주는 즐거움을 문학도라는 알량한 자존심과 바꿀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말도 되지 않는 토볼드의 복음을 들으면서, 자신의 양심과 보이지 않는 전투를 벌인다. 그나마 그녀를 버티게 해주는 힘은, 그녀의 이상인 배우 로버트 드니로와의 엉뚱한 상상이다. 심지어 막판에 가서는 그녀는 토볼드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도 않는다. 아마 멀쩡한 사람도 그렇게 줄기차게 흰소리를 듣다가는 정신줄을 놓을지도 모를 테니까 말이다. 리디 쌀베르가 분석하는 자본주의의 천박한 본질에 대한 분석은 황홀, 그 자체다. 문학 효용성조차, 금전적 가치로 환산하려고 하는 토볼드에 맞서 타협과 비겁에 있어서라면 세상의 그 누구에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작가를 대척점에 두는 대비가 인상적이다. 세상의 모든 가치를 돈으로 바꾸려고 하는 졸부나, 그런 졸부가 뿌리는 빵부스러기를 악어새처럼 주워 먹는 작가. 그녀는 기꺼이 자신의 양심을 절제할 수 없는 사치의 즐거움과 맞바꾼다. 누가 이 가련한 여인에게 돌을 던지리오, 세상에서 단 한 번도 타협하지 않고 비겁하지 않은 자가 있다면 기꺼이 이 여인에게 그렇게 할지어다. 더 놀라운 사실은 이 작살나는 회장님이 나중에 불면증에 시달리던 중에, 돈오의 경지에 이르게 되었다는 점이다. 결국, 돈이 전부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토볼드는 자선 ‘사업’에 눈을 돌리게 된다. 역시 손 큰 갑부답게, 쪼잔한 기부가 아니라 정말 스케일 큰 한 탕을 벌인다. 돈밖에 모르는 이의 이런 극적인 전환의 개연성이 조금 못마땅하긴 했지만, 역시 좋은 게 좋은 거라는 해피엔딩으로 가는구나. 리디 쌀브레가 이미 책 속에서 고백했듯이, 이 졸부 짐 토볼드와 여성 작가에 대한 묘사는 과장의 혐의가 짙다. 뭐 극적 재미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는 애교로 봐주자. 책을 읽으면서, 오래전에 본 리처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패스트푸드 네이션>이 떠올랐다. 평생 고객을 만들기 위해, 어린아이 때부터 아이들을 현혹하는 플라스틱 장난감과 숯불갈비 맛이 나는 가짜 항료 개발에 여념이 없는 거대 자본의 끔찍한 노동 착취를 고발한 비주얼이 주마등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과연 그런 극한의 이윤추구를 위한 협잡이, 어느 순간 깨달음을 얻은 오너의 자선사업으로 상쇄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리디 쌀베르가 이 “끝내주는 회장님”의 실제 모델로 삼은 기업가가 누굴지 참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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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목줄에 목이 쓸려 엉망이 되
었고, "메모는 됐어?" 라는 말을 하도 들어 정신이 피곤했다. 하루에도 골백번씩 "메모는 됐어?" 자기 시중드는 직원에게만 쓰는 그 특유의 어조로 "메모는 됐어?" 분명히 밝힐 건 밝혀야 하니 말인데, 나는 그를 모시는 처지였으니까. 그에게 복종하 고, 그를 보며 감탄하고, 오! 아! 놀랍군요! 이런 감탄사를 연발 해야 하는 입장이니 내가 작가라고 주장해봤자 소용없고, 내 인생을 문학에 바쳤다고 우쭐해봤자 소용없고, 별생각 없이 수락한 이 과업의 성격이 그래도 소설적이라고 굳게 믿어봤자 소용없었다. 무슨 소릴 해본들 어쨋든 나는 [챌린지] 지가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로 치켜세운 사장, 자신의 복음을 집필한 임무를 내게 맡긴 그 사장 앞의 납작 엎드린 처지, 보수를 받고 그의 복음서를 쓰며, 제안받은 금액이 워낙 커서 마다할 맘을 먹지 못한 그런 처지인 것이다. ..................................본문 6~7페이지에서
한 아리따운 나름 잘나가는 여성 작가가 아주 잘나가는 누가봐도 잘나가는 햄버거 왕 토볼트의 삶과 업적을 책을 써달라는 의뢰를 받고 그의 삶속에 그의 비서처럼 그의 말에 순종하는 개처럼 옆에 붙어서 생활을 하게 된다. 그리고 항상 반복되는 앞의 글에서처럼 "메모는 됐어?" 라는 말을 들으며 그에 대한 글을 메모해나간다.
돈과 함께 작가로서의 호기심이 발동한것이다. 그중 돈이 더 많은 자리를 차지한 것일까? 작가로서의 호기심도 아주 강하게 작용을 했을 것이다. 일생을 살아가면서 그렇게 세상에서 매우 매우 부유하다는 부를 누리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이니 그런 사람을 옆에서 밀착기록하는 것도 작가로서는 새로운 경험이 될것이겠고 말이다.
햄버거 왕 토볼드의 이야기를 보면서 여러사람들이 생각 났다. 내가 알고 있는 요즘의 한 사람도 생가이 나고 말이다. 그도 부란 부는 제대로 누려본 사람이다. 그리고 토볼드는 이렇게 말했다. 토볼드가..라고 이야기속에서 계속 반복되서 나올때마다 여러 잘나가는 사람들이 생각이 났다. 나도 교회를 다니지만 교회를 커다랗게 부흥시키고 엄청난 부를 누리게 된 아주 아주 커다란 교회의 목사님도 생각이 났다. 옆에서 뒤에서 목사님에 대한 무수한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나돌고 있다. 나역시도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실망도 많이 하고 말이다. 인생이란 누구에게나 삼시 세끼의 식사가 제공되는 것이 똑같듯이 다양하면서 그 본질은 똑같다. 똑같이 밥을 먹고, 똑같이 잠을 자고 똑같이 옷을 입는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24시간은 똑같이 주어져 있다.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 무엇을 먹느냐, 어떤 옷을 입느냐의 차이가 있겠지만 말이다.
그 차이가 크다면 클 것이고 사람 사는게 다 그렇지...라고 이야기를 한다면 뭐 그도 맞는 말이다. 나역시도 이 대기업의 킹버거의 사장과는 다른 범위의 삶을 살아가지만 부분적으로 비슷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하게 된다. 삶이 의미가 무엇인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나중에 나중에 삶을 살아가는 내리막길에서 내 모습을 들여다보면서 고뇌하기도 하고 말이다. 단지 범위만 다를뿐이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고고한 작가의 위치에서 그런 경멸의 대상인 사장을 바라보면서 자신 역시 그의 부에 젖어드는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나 역시도 그런 느낌이 무엇인지 알겠다. 나는 아니야..라고 이야기를 했지만 나 역시도 그와 같은 곳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있으면서 평온함을 느끼고 거기서 더 이상은 나와서 광야에 나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얼마나 많이 하는가? 그런 저런 번거로운 일상들에서 벗어나서 진정한 삶을 살고 싶다는 생각을 누구나 한다.
오늘은 어제의 여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선거. 그리고 정권의 부조리에 국민이 심판을 했다는 이야기들...역시나 부자들의 힘은 강력하다는 것을 다시한번 느끼기도 하고 말이다. 그들이 부를 누리기 위해서 얼마나 갖은 노력을 하고 얼마나 그 부를 유지하기 위해서 불안함과 고통을수반하는지는 말안해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가 내가 아니라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내가 그들이기도 하고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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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처음 손에 쥐었을 때, '이 정도는 하루면 읽겠네?'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몇 페이지를 읽었을 때, 솔직히 다시 덮을 뻔했다. 과장 조금 많이 보태서 내 손바닥 만한 페이지에 무슨 글자가 이리도 빼곡히 적혀 있는지. 킹사이즈 햄버거 회장 토볼드의 복음서를 만드는 전기작가의 이야기라더니 진심으로 성경을 만들 계획이었던 것인지, 문단도 긴 데다가 인물들의 말까지 줄줄이 문단에 포함되어 있어서 읽기가 참 힘들었다.-심지어는 문단 하나가 한 페이지를 넘어 두 페이지 가까이 차지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70p. 쪽수까지 기억나네. 찾아 보면 더 있다.-
게다가 천박한 회장 토볼드의 가볍고 투박한 말투와 고상한 문체를 구사하는 작가의 말과 생각이 뒤섞여 누가 말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고 어디서 말이 끊어지고 장면이 바뀌는지도 이해하기 어려운 서술방식은 나로 하여금 수도 없이 책 읽기를 포기하고 싶도록 만들었다. 솔직히 뭐 이런 책이 다 있는가 싶었다. 그렇다고 한번 읽기 시작한 책을 포기한다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기에, 영어 지문을 해독하는 심정으로 이해가 될 때까지 반복해서 보고 또 보며 천천히 읽어나갔다.
다행히도 어느 정도 독특한 서술방식에 익숙해지고 나니 그제서야 이 책의 진정한 재미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특히 결말에 다가가서는 책에 완전히 몰입되어 앞부분을 읽는 데 들인 시간이 허무하게 느껴질 정도로 잠깐 사이에 마지막까지 읽어냈다.
사실 막판에 가서야 흥미진진하게 읽어 내려간 것은 망가져가는 토볼드의 꼴이 고소해서일지도 모른다. 토볼드는 경영자로서는 세계 최고지만 한 명의 인간으로서는 최악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다. 오만하고 천박하며 남을 생각하는 마음도 전혀 없고 경쟁자는 절대 용납하지 않는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남자 토볼드는, 모든 것을 가진 남자이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철저한 외톨이였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토볼드를 마냥 고소해할 수만은 없는 것이, 그는 분명 최악의 인간이지만, 그가 하는 말은 –더럽더라도-진실이라는 점이다. 물론 소설에서의 과장이 많긴 하지만 세상의 가장 지저분한 현실을 아무런 거리낌없이 자신의 복음서에 적으라며 떠벌리는 토볼드의 말을 전적으로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 참으로 안타까웠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분명 살아볼 만한 썩은 아니더라도 그럭저럭 괜찮은 세상이라고 믿지만 필시 토볼드와 같은 끔직한 인물도 함께 살고 있을 터, 그들도 이 책을 꼭 한번쯤 봤으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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킁킁 거릴거 같은 돼지코, 중세 프랑스 시대의 우스꽝스러운 머리 모양을 쓰고 시가를 손에 들며 표지를 장식한 햄버거 왕 토볼드! 이 세상 무엇 하나 부러울 거 없이 모든 부를 손에 쥔 듯 재계와 사회를 통틀어 최고의 위치에 올라선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이자 절대 무너지지 않을 거 같은 신적인 존재로 비춰지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어쩔 수 없는 자신의 시궁창 같은 현실과 부딪쳐 잠시 소설가로서의 시간은 접어두고 이 토볼드 회장의 전기집필 작업에 빠져들게 된 소심한 여성의 작가와의 만남에서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고 있다.
여성 작가인 나는 이런 회장과 함께 생활하면서 밀접히 그의 일상세계로 점차 빨려들어가게 된다. 이전에 경험할 수 없던 물질의 사치에 조금씩 중독되어가면서 부정하고 거부했던 유혹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아이러니한 혼란에 멈춰서기도 한다. 점점 토볼드 회장이 내뿜는 말투나 행동, 무엇하나 이상적으로 보이지 않았던 모습들 하나하나에 불평불만을 내세우고 싶어도 소심하게 움츠려든 생각으로 그친 채로 조금씩 이 세계에 발을 디든 자신의 결정에 대한 환멸의 나날을 보내는 심정을 토로해내는 모습은 불평이 있어도 입으로 말하지 못하는 애완동물의 답답한 끙끙거림이 느껴진다.
세상을 조롱하고 모독하며 온갖 저속한 행동과 만행들을 저지르는 킹싸이즈 왕의 모습을 보면서 점점 자신도 함께 추락하가는 것은 아닌지, 자신이 지켜왔던 작가정신과 함께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을 남길 수 있을지 순간 순간 알 수 없었다. 무기력한 향락과 사치스러운 영혼에 길들여진 모습에서 조금씩 자신을 찾아가는 당당히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가는 그녀의 고백을 들어보는 것도 조금씩 유쾌한 얼굴의 표정을 찾아가는 듯 해서 좋았다.
우리의 토볼드 회장은 과실를 참 좋아한다. 그만큼 남을 무시하고 깔아뭉개고, 눈에 가시처럼 느껴지는 상대는 가차없이 사냥하고 포획하는 일말의 상냥한 배려는 눈꼽만치도 찾아볼 수 없는, 명예와 이상보다는 오직 이 세상에서 제일 최고인 것은 돈이라는 것임을 늘 입버릇처럼 말하고 있다. 자연스레 그를 추종하고 따르며 온갖 아부를 떨며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모습들이 꼭 눈꼴 사나운 것처럼 만은 보이지 않는 게 또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현실이지 않을까 한다. 보이지 않게 남을 헐뜯고 자신을 더 치켜새우며 좀 더 틈 사이로 자신만 몰래 빠져나가려는 두 얼굴의 가면을 쓴 모습들이 왠지 낯설지가 않게 느껴진다.
하지만 이 오만하고 씨니컬한 회장도 한 순간 그렇게 치열하고 열심히 살아온 인생에 커다란 허무한 광경에서 무너지는 모습과 마주한다. 지독히 모욕적인 자신의 존재감을 충격을 받으면서 성공의 정점에서 한없이 추락하는 인간으로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쓸쓸한 절망에 빠져든 것이었다.
누구도 쉽게 예상할 수 없는 것이 그에게 찾아왔고 벗어나려 했지만 벗어나지 못한 큰 증오심에 휩싸이게 된다. 돈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처참하게 깨지는 비참한 자존심에 금이 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극도의 피로감으로 아무런 의욕족차 남지 않은 무기력하게 지쳐있는 모습에 그를 구원해줄 사람은 아무도 없어보였다. 그를 늘 사랑스럽게 아기처럼 다독거려주었떤 아내 씬디, 그의 하나밖에 없는 죽마고우이자 의형제, 가신이었던 삐에르까지 모두가 지쳐버렸다. 살려달라는 그의 절박한 외침속에 다행히 찾아온 평온의 기회가 생겨나면서 그는 잃어버렸던 삶이 다시 구원받게된 동시에 새로운 인생의 시간은 또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해졌다.
착하고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는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한 자선가로서의 모습으로 계속 새롭게 거듭날 것인지 그 후의 모습은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마지막 장면에서의 희극적 아이러니한 행동이 다시 이전의 햄버거 왕 토볼드로 회귀시키는 것은 아닌지 아이러니한 웃음이 흘러나오면서 말이다.
한 편의 희극속에 담긴 풍자와 패러디가 독자의 가려운 마음을 더 시원히 긁어주면서도 한때 밉상으로 생각했던 토볼드 회장의 이야기가 독자에게 전달해주려고 한 건 결국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세태를 들여다보면서 내면속 자신의 얼굴 모습은 어떤 형태를 띄고 있는지 한 번쯤 스스로 생각하게끔 만들어 준 부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 아닌 우리가 추구해야할 삶의 가치, 행복, 부에 얽매이지 않고 물질의 유혹에 빠지지 않고 살아가는 즐거움과 유쾌한 생활의 모습은 무엇이 있을지 상상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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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책은 제목을 봐도 책 내용이 짐작이 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책 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는 제목이 주는 느낌이 너무강하다 책 내용을 제목이 함축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는 것이다. 제목이 말해주듯 회장님은 킹싸이즈 햄버거회사의 회장인 토볼드고 애완작가는 그의 전기를 써주는 전기작가를 말한다. 애완작가라는 대목이 눈에 거슬린다. 유명인의 전기를 대필해주는 이들의 이야기를 많이 봤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비하하는 표현은 못본것 같다. 왜 이렇게 애완이란 단어를 사용하게 된 것일까 궁금해 진다.
그런데 첫장면부터 여지없이 나의 궁금증을 풀어주고있다. 킹싸이즈 햄버거회장인 토볼드는 우리나로치면 미라리밭이 금싸라기땅이되 하루아침에 졸부가된 이같은 그런 인물이다. 단지 이일을 받아들인 이유는 햄버거왕이 가지고 있는 권력을 자신또한 느껴볼수 있을거라는 막연한 호기심과 자만심 그리고 수중에 돈이 떨어져 앞으로 자신앞에 어떤일이 생길지 짐작하지 못하고 승낙한후 자신을 햄버거왕의 목줄에 걸린 애완견 같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벗어 나지 못하는 이유는 햄버거왕이 주는 물질적인 풍요때문이다 작가라는 이름속에 있는 자신의 모습도 햄버거왕과 별반 다를바 별반 다를게 없는 속물인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물질적인 욕망을 내면에 숨기고 있다. 다만 사람들을 의식하고 교양이라는 포장으로 내면을 숨기고 있다. 토볼드는 그런 가식을 자신의 재력을믿고 마음껏뽑내지만 결국 그또한 사람들을 무시할수 없었을 것이다. 토볼트는 또다른 변신을 시도한다. 그가 자선사업에 눈뜨는걸 보면서 어찌되었듯 도움을 바라는 이들에게 그는 구세주가 될 것이란걸 믿어 의심치 않고 우리나라 기업가의 모습이 겹쳐지면서 씁쓸한 느낌이 강하게든다.
이렇게라도 변화된 기업가가 우리곁에도 존재할수 있다면 그마저도 행복할것 같은 생각이 든다. 처음에는 한마디로 햄버거왕의 돈자랑이다 그러면서 변화된 그를보게된다. 토볼트같은 기업가 세상에는 많을것이다. 그런 이들이 이글을 통해 반성할수 있을까 그들은 아마도 이책을 읽지 않을지도 몰르지만 혹시 아는가 누군가 이책을통해 뭔가를 느꼈다면 그것만으로도 괸찬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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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민감한 나는 이 책의 제목이 맘에 들지 않았다. 애완작가라니! 작가 비하 제목이란 생각에 불편했다. ‘애완’이란 동물이나 물품을 좋아해서 곁에 두고 즐기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엔 애완동물에게도 인생의 동반자 혹은 짝이 되는 친구라는 의미의 반려동물을 사용한다. 그런데 작가에게 애완작가라니! 작가들 중엔 베스트셀러를 써서 돈을 많이 버는 작가도 있지만 ‘작가’하면 돈을 못 버는 직업, 돈이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해 ‘회장님’은 돈이 많은 사람, 돈을 많이 버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있다. 대부분의 작가에게 돈은 생계의 수단이지 삶의 목적이 아니지만 회장님에게 돈은 유일한 삶의 목적이다. 작가와 회장님은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관계다.
[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에서 소설가 ‘나’가 회장님의 애완작가가 되는 것은 ‘돈’ 때문이다. ‘나’는 ‘킹 사이즈’라는 햄버거회사의 회장인 토볼드(Tobold)의 삶과 업적을 책으로 써달라는 제의를 받는다. 이름에 나오는 'bold'에는 ‘용감한, 대담한’이란 뜻이 있다. ‘나’는 회장님의 ‘용감하고 대담한 삶’을 옆에서 관찰하고 메모한다. 명목상은 토볼드의 전기를 쓰는 작가지만 실제는 그 외에 다른 ‘여성성’을 필요한 부차적인 일들도 행한다. 잘 지내기 위해 선택한 일인데 ‘나’는 못 지내고 있는 상황이 된다. ‘펜’은 ‘자본’ 앞에 ‘펜’의 용도를 잃는다. 그렇다면 회장님은 행복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회장님 역시 항상 행복한 것은 아니다. 회장님은 낮에는 ‘냉정한 괴물(151쪽)’이지만 밤에는 ‘근심걱정으로 뒤덮인 괴물(151쪽)’이었다. 성공의 과정 속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준 탓이다. 애완작가는 무사히 회장님의 복음이 담긴 책을 쓸 수 있을까, 회장님은 괴로운 밤을 어떻게 극복할까, 궁금해진다. 결말은 읽으니 회장님은 역시 ‘끝내주는 회장님’이었다. 이 책의 원제는 ‘애완동물인 작가의 초상’이라고 한다. ‘초상’이란 제목이 들어간 책들은 늘 쓸쓸했던 기억이 있다. 작가가 ‘글’을 쓰지 못하고 '애완동물'로 살아야하는 현실은 씁쓸하다. 비록 일정부분 작가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할지라도. 생각해본다, 누군가의 애완동물로 살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누군가를 애완동물로 여기며 살고 있는 건 아닌지. 이 책의 현실은 많이 씁쓸하지만 작가가 어둡지 않고 경쾌하게 그린 탓에 잘 읽힌다. 보통은 책을 다 읽고 작가 소개를 읽는다. 소설의 화자인 ‘나’가 여성작가임에도 이 책의 저자를 여성작가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작가 소개를 읽으며 연배가 있는 작가라는 사실에 놀랐다. 실제 활동하는 유명배우들과 정치인들, 경제인들이 실명으로 등장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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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주는 회장님의 애완작가' 킹싸이즈 햄버거 회사의 사장과 그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와의 이야기이다. [챌린지]지가 지구상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리더로 알려준 사장인 토볼드는 자신의 복음을 집필하게 작가인 나를 채용하게 된다. 토볼드는 어려서 가난하게 살아왔고 거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무작정 미국으로 건너오게 되고 그 비행기안에서 성경을 보게 되면서 자신을 이끌어주는 책으로 정독을 하게되고 돈을 많이 벌고 자신의 경제시장론을 복음으로 만들어서 널리 알리고 싶어한다. 그러기에 작가를 고용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하게 만들었다. 나 작가는 햄버거왕 토볼드의 전기 작가로서 이 계약이 내 삶에 어떠한 영향을 끼칠지 모르고 있었다. 햄버거왕 토볼드는 자신의 복음을 쓰기위해서 나를 항상 어디든 같이 다딘다. 외부적으로 비서로 설명을 하면서 항상 옆에 있기에 나의 차림도 항상 비서의 모습으로 햄버거왕 토볼드 옆에 있게 된다. 그러면서 토볼드는 항상 자기의 이야기를 '메모는 됐어' '이것은 메모하라고' 이런 말을 하면서 여러 가지 이야기와 행동을 보여준다. 햄버거왕 토볼드는 돈이 많기에 항상 자신이 하고 싶은대로 하지만 그러나 항상 외로움외 지져있다. 우연히 햄버거왕 토볼드는 직원화장실에서 자신의 안좋은 이야기를 적은것을 보면서 사람이 바뀌게 되고 자선이라는 것에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서 새로운 햄버거왕 토볼드로 바뀌게 된다는 이야기. 이러한 이야기를 적어주는 것이 나 작가의 일이었다. 나 작가는 처음에는 햄버거왕 토볼드를 별로 좋아하지 않고 그냥 일로서 지나지만 나중에는 그 사람의 부에 사람이 변하기 시작한다.
이책을 읽으면서 조금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또 이책에서는 중간 중간에 나오는 많은 설명이 읽는데 거슬리기도 했다. 설명은 작가의 설명과 역은이의 설명으로 글의 흐름이 끓어지는 것이 조금은 그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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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번 거창하고 웃기다. 제목과 표지만 봐도 대충 어떤 내용일지 감은 잡히는데 읽어보니 기대헀던 것보다 훨씬 재미나다. 작가의 전직이 정신과 의사였다고 하는데..과연 사람의 심리묘사가 굉장히 뛰어나다. 돈도 별로 없고 출판된 책도 별로 없는, 그러나 자존심은 센 젊은 작가는 어느날, 전세계 120개국에 2시간마다 새로운 체인점이 하나씩 생기는 글로벌한 유통망을 가진 킹싸이즈 햄버거사의 회장의 전기를 쓰는 일을 맡게 된다.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며 회장에 대해 글을 써야하기 때문에 집에 같이 생활하면서 대외적으로는 여비서로써 행동하게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비도덕적이고 저속하고 비열한 회장의 행동에 점점 진저리를 치게 되는 작가. 매일 저녁이면 짐을 싸고 떠날 준비를 하지만 그 결심은 매일 무너져내린다. 왜? 이미 물질적 편리함과 매력에 젖어들었기 때문에.. 매일 아침 침대까지 서비스되는 푸짐한 아침식사, 원하는 대로 맘껏 살수 있는 명품브랜드., 별볼일없는 작가생활에서 벗어나 이런 돈의 맛을 알고 난 이상 스스로 이 모든것을 포기하기는 힘들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자존심도 회장앞에서는 목소리마저 간드러지며 머리를 조아리고 아첨의 목소리를 내는 자신을 발견하고 회의도 느끼지만 결국 부와 권력앞에서 매번 무너져내리곤 한다. 말끝마다 작가에게 이거 적으라고, 지금 메모준비됐어? 하면서 열변을 토하며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신격화하는 회장의 모습이 눈에 선하게 그려진다. 그러나 그런 회장도 돈으로 절대 살수 없는것이 있음을 꺠닫게 되고 어떤 사건을 계기로 지금까지의 이기적인 기업가에서 선한 자선가의 모습으로 탈바꿈한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반전이라면 반전일수 있는 내용으로 결말지어진다. 빠른 전개와 작가의 심리가 잘 조화가 되어 있고 중간중간 실존인물들의 이름이 많이 나와서 훨씬 재밌게 다가온다. 샤론스톤의 등장에서는 마치 영화를 보는듯한 느낌마저 ^^ 기업총수를 비롯한 상류층에서는 어떤 생활이 펼쳐지는지 이 책을 통해 조금이나마 맛볼수 있었고 그들의 부패된 사상과 생활도 엿볼수 있었다. 별로 두껍지 않은 책이지만 흡입력은 굉장한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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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없다는 것은 사람을 비굴하게 만든다. 돈을 벌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지하철 등지에 꽂혀 있는 정체 모를 직장 알선 광고들이 눈에 들어오고, 급기야 믿기 힘든 이자율을 자랑하는 사채의 유혹이 나를 덮친다. 아아, 나에게만 이 몹쓸 운명이 해당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글 쓰는 것을 업으로 삼은 고귀한 사람이 어쩌다 보니 돈이 궁해 인생이 꼬였다. 현실로부터 벗어나고픈 생각이 드는 찰나에 이보다 더 좋을 순 없을 것만 같은 기회가 다가왔다. 아마도 금전적인 보상이 꽤 컸던 모양이다. 약간의 비굴함을 감수하고 작가는 그 자리를 승낙한다. 그녀는 그렇게 햄버거 왕 토볼드(Tobold)의 인생을 기록으로 남기는 일에 투입(?)되었다. 주인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꼬리를 흔들고 때로는 드러눕기도 하는, 애완견들의 모습을 보면 귀엽다. 하지만 만일 사람이 누군가의 애완견과 같은 입장에 놓인다면, 그 인생 참으로 피곤할 것 같다. 하고픈 말도 마음껏 못하고, 주인에게 버림받지 않고자 안간힘을 쓰는, 주인공의 모습이 바로 그러했다. 그래서 그녀는 스스로를 ‘애완작가’라 칭했다. 회장님에 의해 사육되는 이 애완작가는, 속에서 들끓는 분노의 감정을 주체하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도 그런 것이, 어마어마한 돈을 손에 쥔 회장님이라는 작자의 행태가 영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못 배운 사람이 힘은 있어 누가 보아도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는 행동을 하는 것과도 같다고 해야 되려나? 안타깝게도 회장님의 주변에는 이러한 행동들에 대해 직언을 해주는 이가 아무도 없다.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들을 안간힘을 쓰며 기록해댄다. 그러잖아도 부정적인 생각들이 마구마구 이는데, 회장이라는 작자는 이건 꼭 기록해야 되는 거라며 수시로 기록을 명하니 돌아버릴 지경이다. 하지만 돈이 주는 힘은 어마어마해서 주인공은 어느 순간부터 회장의 추태에도 어느 정도 비위를 맞추는, 다른 이들과 똑 같은 사람이 되어버리고야 만다. 아, 자본의 힘이란 어찌할 수 없는 것인가? 회장님을 전면에 드러내며 조롱하는 것도 아니요, 그렇다고 한 작가의 서글픈 변질을 속상해 하는 것도 아닌, 저자의 의도가 궁금해질 수밖에 없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의 대미는 바로 반전이다. 아,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달라져도 되는 것일까? 죽을 때 돈을 좀더 많이 벌어두지 못했음을 후회하는 자는 없다던데 그 말이 아무래도 사실인 건지, 짧은 분량임에도 이전까지 그려지던 모습과는 판이한 회장님의 모습에 나는 경악을 할 수밖에 없었다. 작가를 애완견마냥 부리던 회장님도 애완견의 위치에 서서 열심히 세상의 인정을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이보다 더 잘 드러낼 수는 없을 것만 같았다. 성공과 실패는 그러고 보면 얇은 종이보다도 더 적은 차이를 지니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아무것도 아닌 데, 그 아무것도 아닌 것을 위해 피도 눈물도 따지지 않는 우리의 매정한 심사를 저자는 어려운 듯하면서도 쉬운 방식으로 비판하고 있었다. 세상의 충실한 애완견으로 사는 삶이 행복하냐고 묻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도 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