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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범을 뒤적여본다. 앨범 속에 있는 '나'는 조금 낯설은 '나'이다. 홀랑벗고 욕조 안에서 함박 웃음을 짓고 있는 것도 '나'이고, 운동장에서 노란 종이꽃을 손에 끼고 운동회 연습을 하는 것도 '나'다. 입학식날 새로산 구두와 가방을 메고 정문 앞에 서 있는 것도 '나'이고, 바람부는 날 학사모를 쓰고 부모님과 서 있는 것도 '나'이다.
사진은 그런 사물 인 것 같다.사각 프레임 안에 시간을 담아 두는 도구. 전민조 기자의 '그때 그 사진 한 장'은 충실히 시간을 담아두었다.
전민조의 사진은 요즘의 사진예술가들이 지향하는 형식주의 사진이 아니다. 사진의 이화 톤이나 재질감, 구도, 빛 따위의 사진의 형식적 요소는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는다. 즉 느끼는 사진이 아니라 무엇인가를 말하는 사진이다. (이 사진집을 간행하며 에서..)
1968년~1991년 사이에 있었던 굵직굵직한 사건들이 그 시절 그대로 오롯이 담겨 있다. 신문으로 치자면 정치면에서 사회면까지 두루두루 그 시절을 회상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거리에서 1968.3.15 어느 시대에나 행복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행한 사람이 있고 친절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불친절한 사람도 있다. 부자와 가난뱅이가 있고 항상 웃는 얼굴이 있는가 하면 항상 찌푸리고 다니는 사람이 있다. 헤아릴 수없이 많은 삶의 모습을 담고 있는 서울의 거리, 풍요해 보이는 청춘남녀와 피곤에 지친 손수레꾼의 모습이 한 렌즈에 들어왔다. p.14
'거리에서'라는 제목의 사진은 60년대 후반 초 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왼쪽에는 정장 차림의 젊은 남녀가 데이트를 하듯 밝은 표정으로 걷고 있고 오른쪽에는 손수레를 끄는 남루한 옷차림의 젊은 남자가 삶의 무게에 눌려 고개를 숙이고 웅크리고 앉아있다. 혼자와 둘, 남루함과 산뜻함이 동시에 보여지는 이 세 사람을 보면서 불공평한 인간사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교통사고 1975.3.17
광교 부근에서 대형 교통사고가 있었다. 동대문 쪽으로 과속으로 달리던 미군 차가 중앙선을 침범, 맞은편에서 오던 영업용 택시를 들이받아 운전사는 즉사하고, 여자 승객은 차 밖 아스팔트 바닥으로 튕겨져 나와 숨진 사고였다. 현장을 찍고 회사로 들어와서 사진을 만들어 사회면에 넘겼지만 미군이 일으킨 사고라서 그랬는지 지면에 실리지 못했다. p. 49. 사진 속의 택시는 처참히 구겨져 있다. 현장에서 즉사했다는 운전사도 보인다. 머리카락이 듬성듬성 빠진 이 남자는 1975년 3월 17일 아침까지만 해도 줄어드는 머리숱을 걱정했을지도 모른다. 가장이자 남편, 그리고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이 사람은 원치않는 죽임을 당했다. 사진속의 남자는 눈을 감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그리고 그 차량 뒷 편에는 한 남자의 쓸쓸한 뒷모습이 보인다. 그는 타인의 죽음을 바라보며 '그래도 나는 아직 살아있지 않는가'라고 되뇌였을지도 모른다. 책 속의 사진들은 예술적 감각으로 구도를 중요시 하고 찍었다거나 세련된 현상을 한 사진들은 비전문가인 내가 봐도 아니다. 그러나 그가 찍은 사진 한 장 한 장에는 '펙트'가 그대로 담 겨있다. 순간을 그대로 타임캡슐에 담아 두었다. 그래서 더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든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른다. 멈출 수 없는 시간을, 멈추고자 하는 사람들의 욕망. '사진'은 시간과 사람들의 욕망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될 것이다. * 표지의 사진은 1972년 법정에 선 영화배우 방성자의 사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