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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녀가 있다. 유키는 검도를 배우다 손등을 다치는 바람에 악력이 떨어져 검도를 그만둔,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소녀다. 어린 시절엔 조그마한 이야기에도 감동받고 훌쩍훌쩍 울곤 했지만, 어느새 무표정하게 별 것 아닌 것 같은 이야기에 훌쩍거리는 친구를 지켜보고 있다. 그럼에도 자신의 생각을 착실하게 글로 써내곤 한다. 아쓰코는 어린 시절, 유키와 함께 영화를 보면 울곤 하는 유키와 달리 저게 뭐라고..라는 따분한 표정으로 하품을 짓는 아이였다. 껑충한 키에 반사신경이 꽤 뛰어나 검도를 계속하며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적도 있는 실력자다. 하지만 중학교 마지막 단체전에서 발목 부상으로 인해 아깝게 경기를 진 뒤, 추천입학이 결정되어있었던 사립 명문 레메이칸고등학교를 포기, 그리고 검도를 그만두고 유키와 함께 사쿠라노미야여고에 입학했다. 어쨌든, 각자 과거에 받았던 상처를 안고 둘 사이에도 미묘한 감정이 흐름에도 그들은 언제나 단짝친구로 지내왔다. 그러던 중 사오리라는 여학생이 전학을 오면서, 친구는 둘에서 셋으로 늘어나게된다. 언제나 냉정하고 담담한 것 같은 유키와, 유키가 없으면 외톨이일것이라며 조금이라도 사오리와 유키가 친한 낌새를 보이면 불안해하는 아쓰코. 두 소녀는 사오리가 들려준 자살한 친구의 이야기에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친구의 죽음을 슬퍼하기보단 죽음의 순간을 목격한 것을 자랑하는 것 같은 것이 못마땅한데다 내심 부러웠던 유키는, 나 역시 죽음의 순간을 목격한다면 분명 그 때의 감정과 생각을 훨씬 더 말로 잘 표현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반면, 아쓰코는 이를 계기로 유키와 사오리가 더 친해지고 자신은 외톨이가 되는 게 아닐까 불안해진다. '나도 죽음을 목격하면 유키와 이야기를 할 수 있을거야..'라는 생각. 이유는 달라도 어찌되었건 사람이 죽는 순간이 보고싶어진 두 소녀. 유코의 소아과 병동에서의, 그리고 아쓰코의 노인요양센터에서의 여름방학이 시작되는데..
전작 <고백>과 <속죄>가 너무 강렬해서였을까. 미나토 가나에라면 다양한 서술자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쓸 것이라고, 이번에도 역시 다양한 인물의 시점이 번갈아가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겠지..싶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그 기대에 어긋난, 두 소녀의 이야기를 번갈아가면서 들려준다. 같은 목적이지만 다른 곳에서 보내게 된 그들의 여름방학은 미묘하게 여러가지 요소와 얽혀 하나의 결말을 향해간다. 끝내 두 소녀를 병원에서 만나게 해 준, 노인요양센터에서 지내시는 유키의 할머니와 아쓰코와 함께 노인요양센터에서 일했던, 유키가 만난 소년 고우의 아버지. 다양한 암시와 복선이 하나의 결말을 향해 가면서 마지막에는 딱 끼워맞춰지는, 특히 전혀 생각지도 못한 요소까지 마지막 결말을 채우는 하나의 퍼즐이 되는 짜임새 있는 이야기이다. 솔직히 말하면 소녀를 주인공으로 하는 상큼한 이야기라서 그런지, 미스터리로서의 매력은 다른 두 작품에 비해 조금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처음부터 한 곳을 향해 다양한 요소요소가 끼워져 정말 1000피스의 직소퍼즐을 완성시킨 듯한 이야기는 충분히 재미있다. 그리고 두 소녀가 들려주는 다양한 고민들은 사춘기 소녀들이 느낄 법한 다양한 것들이라 공감이 되었던 것이 이 소설의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거의 다 읽었다. 중간부터 눈물이 뚝뚝 떨어지더니 멈출 줄 몰랐다. 마지막 한 줄을 읽고는 아예 울컥울컥 솟아나 잡지를 내버려두고 두 손등으로 꾹꾹 닦았더니 옆에서 아저씨가 휴지상가를 내밀었다. "이런 소설을 다 써주는 친구가 있다니 참 부럽구나." "그냥 나를 소재로 쓴 것 뿐이에요." "친구는 작가가 되고 싶어 하니?" "모르겠어요. 장래에 대해서는 이야기한 적도 없는 걸요." "친구가 평소에도 이런저런 습작을 했니?" "아뇨. 이게 처음이고 아마 유일한 글일 거예요. 손에 굳은살이 다 생겼었거든요." "직접 손으로 쓰니?" "유키는 컴퓨터가 없어요." "요즘에도 손으로 직접 쓰는 사람이 있네. 그렇구나, 손으로 직접 썼구나." 아저씨는 감탄했는지 '손으로 직접 쓴다'는 말을 곱씹었다. "원고지 100매 정도 될까? 작가가 되고 싶은 것도 아닌데 손으로 직접 그만큼을 써내다니 참 대단한 일 아니냐. 정말로 너를 격려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어쩌면 아무 데도 응모하지 않고 너에게 직접 선물할 생각이었는지도 모르잖아." -p.204~205
친구가 없으면 세상 누구도 자기 편이 아닌 것 같은 고독감을 느끼는, 이것은 소녀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할 수 있는 고민이다. 또한, 자신에게 찾아온 불행에 이 세상이 무너지는 듯한, 자신의 편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라 생각하는 고독감 역시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소녀의 눈과 입을 통해 그 마음을 섬세하게 표현한 것, 그리고 서로의 마음을 서로 오해한 채 지내던 우정이 여름방학을 통해 극복해 나가는 것은 어디서나 충분히 볼 수 있을 법한 이야기이라 더욱 공감이 갔다. 특히, 친구를 위로하기 위해 아쓰코만을 위해 묵묵히 손으로 써 내려간 유키의 <요루의 외줄타기>라는 소설은 비록 먼 길을 돌아 아쓰코에게 도착하는 장면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철없이 자기에게 일어난 불행은 모두 자신만이 안고 있다고 생각한 아쓰코에게 감동을 준 유키의 소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글로 써내려간 유키의 어른스러움과 그런 유키에게 찾아왔던 어둠을 함께 헤쳐나간 아쓰코의 웃음과 눈물은 충분히 감동적이다.
아쓰코가 갑자기 내 손을 잡고 달렸다. 어디 가냐고 묻지 않았다. 불꽃의 긴 꼬리를 닮은 해가 진다. 죽고 싶었던 내게 세상은 넓다는 걸 가르쳐 준 아쓰코는 그날부터 내게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다. .. 아쓰코의 밤은 이미 지났다. 아쓰코는 스스로의 힘으로 어둠을 걷어냈다. -p.271
미스터리보다는 두 사춘기 소녀의 '죽음'을 매개로 한 여름방학의 이야기로서의 이야기가 훨씬 매력적이었던, 그렇기에 미나토 가나에라는 작가가 앞으로 더 얼마나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줄지 기대감을 안겨주는 작품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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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기차에 비유한다면 종착역까지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도중하차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도중하차는 본의 아니게 내려야할 경우도 있겠지만 스스로 내리는 경우도 있다. 본의 아니게 내려야할 경우는 병이나 사고 등이 이유겠지만 스스로 내리는 경우는 자신의 삶을 스스로 끝내는 거라고 할 수 있다. 그건 곧 죽음을 의미한다. 본인에겐 그걸로 끝이겠지만 그 도중하차의 순간을 본 사람에겐 어떨까? 본의 아니게 접하게 된 사람에겐 과연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여기 그 순간을 보고 느끼고 알고싶은 두 소녀가 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와 함께 사는 냉정하고 직선적이며 속을 알 수 없는 유키. 검도를 그만두고 겉으론 아닌 척하지만 더욱 소심해지고 우유부단한 아쓰코. 어찌보면 어울리지 않는 이 둘은 친한 친구이다. 하지만 때때로 정말 친구가 맞는 건지 의심스럽기도 한데...
검도를 좋아했던 소녀들. 유키는 예기치 않은 손등 부상으로, 아쓰코는 발목 부상으로 인해 둘은 결국 검도를 그만두게된다. 둘다 명문인 학교에 갈 수도 있었지만 그저 그런 학교로 진학한다.
사실 유키는 아쓰코를 모델로 '요루의 외줄타기'라는 소설을 쓰고 있었다. 어느날, 깜박하고 가방을 학교에 두고 온 적이 있는데 안에 들어있던 소설의 원고가 깜쪽같이 사라져버린다. 헌데 국어교사인 오구라가 신인문학상을 수상하게 되는데 그 작품이 공교롭게도 '요루의 외줄타기'...였다. 그리고 얼마 뒤, 오구라는 사라진다. 영원히...
그 후, 사오리라는 소녀가 전학온다. 사오리는 친구의 죽음을 겪었고 그 일로 죽음에 대해 잘 알게 되었다는 듯 유키와 아쓰코에게 당당히 말한다. 사오리의 이야기가 계기가 된 것처럼 유키와 아쓰코는 '죽음'에 대해, 그 순간에 대해 몹시 강렬하게 알고 싶어한다.
둘은 각각 다른 방법으로 그 '순간'을 찾게 되는데 유키는 아이와 노인에게 책을 읽어주는 코바토회란 모임에 들고, 아쓰코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체육 수업을 받지 않았기에 보충의 성격으로 노인요양센터인 실버 캐슬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된다. 죽음과 가장 가까이에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
그리고 유키는 고우와 탓치라는 별명을 가진 죽을 병에 걸린 아이들을, 아쓰코는 다카오 다카오 '성과 이름이 같은' 독특한 이름을 가진 남자를 만난다. 유키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죽음에 대해 알려고 하고, 아쓰코는 시작은 죽음에 대한 호기심이었지만 차츰 자신의 친구, 유키와 다카오란 남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는데...
이야기는 두 소녀의 일기 형식으로 전개된다. 두 소녀는 같은 날이지만 각기 다른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과 만나며 여러가지 일들을 겪지만 모든 것은 조금씩 얼키고 설키며 맞물린다.
[ 인과응보? 나쁜 짓을 하면 돌고 돌아 자기한테 그 업보가 돌아온다는 뜻이지.]p96
지옥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고우에게 들려준 유키의 이 말처럼 '인과응보'는 이 이야기의 핵심 키워드, 즉 열쇠이다. 실타래처럼 엉킨 이야기들이 인과응보에 의해 하나씩 풀리고 죄를 지은 이는 결국 죗값을 치른다. 그리고 유키와 아쓰코, 두 소녀도 강렬히 알고싶어했던 죽음의 '순간'을 곧 보게될 것이다. 인과응보의 덫이란 이름으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소설, 유키의 '요루의 외줄타기'란 소설에서 나온 말인 듯 한데 다음과 같다.
[ 네가 그렇게 불행하다고 한다면 나와 너의 인생을 지금 송두리째 바꾸어 줄께. 그 제안에 일말의 저항이라도 느낀다면 넌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사람이 아닌 거야.]p224
입장 바꿔 생각을 해보라는 말이 있다. 우린 누군가가 부러울 수도 있고,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하는 그 사람이 존경스러울 수도 있다. 반면 환경이든, 성격이든 그 무엇이든 나보다 못한 사람에겐 동정을 베풀거나 안타깝고 안쓰러워하거나 아예 무관심할 수도 있다.
동전에도 양면이 있듯이 모든 것엔 양면이 있다.
선택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지만 의도했던 혹은 의도하지 않았던 인과응보처럼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 그렇지만 그것이 결코 자기 자신을 옥죄는 '덫'이 되어선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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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이 작가의 책에 빠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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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의 시크릿 청춘 소설 '소녀' 고백, 속죄에 이어 세번째로 읽게 되는 그녀의 책이다. 예약판매 소식을 듣고 판매 시작되면 사 읽어야지 했는데 구매예약을 해준 지인의 센스로 재빨리 읽어보게 됐다.
"사람이 죽는 순간을 보고 싶어!" 죽음을 직접 보길 갈망하는 두 소녀의 잊을 수 없는 여름방학을 담고 있는 '소녀'는 아쓰코와 유키의 시선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서로 이웃에 살고, 검도교실을 다니면서부터 친해진 두 소녀 아쓰코와 유키. 초등학교 5학년 왼손을 다친 다음부터 변한 유키와 중학교 3학년 여름, 현 대회 결승에서 발목을 접질러 검도도 그만두고 체육 특기생으로 입학이 결정 된 명문 사립 고등학교로의 진학도 포기한 '아쓰코' 서로가 서로를 유일한 친구라 생각하지만 은근 견제가 심한 두 소녀는 유키가 작성한 '요루의 외줄타기'란 글로 인해 오해가 생겨 서먹서먹한 상태. 둘 사이에 아쓰코가 그토록 다니고팠던 명문 사립 레메이칸 고등학교에서 이 곳 사쿠라노미야 여고에 전학온 '사오리'가 끼게 되고 그녀를 입을 통해 듣게된 그녀의 전학 사유는 친구의 자살이란 얘길 듣게 된다. 그녀들이 친구들을 통해 듣게 되는 죽음의 순간들. 경험해보지 못한 일이라 호기심은 커져만 가는데 . . 강해지고 싶고 그러기 위해선 죽음을 깨달을 필요가 있을거라 생각하며 각각 다른 장소에서 죽음의 순간을 기다리는 두 소녀.
'죽는다'는 건 뭘까? 남들한테 아무리 미움을 받더라도 죽는 것보다는 낫다는 것쯤 나도 안다. 하지만 '죽음'이란 말은 내게 남을 상처줄 때 사용하는 '단어'로서의 이미지만 강하지, 구체적으로는 어떤 건지 실감이 안 나 사실 어떤 식으로 나은 건지 모르겠다. 그걸 알면 나는 좀 달라질까.<p.41>
여름방학. 몸이 허약한 노인들만 있을테니 잘하면 시체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체육시간 보충으로 시내 노인요양센터인 '실버 캐슬'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된 '아쓰코' '고바토회'라는 모임에서 여름방학 동안 아이들과 노인에게 책을 읽어주는 자원봉사 모집 글을 보고서 이거다 싶어 지원하게 된 '유키' 자살보다는 좀 더 삶을 열망하는 인간의 죽음을 지켜보고 싶지만, 엄마나 아빠같은 주변 사람의 죽음으로 앞으로의 생활이 큰일나면 안된다는 생각에 자원봉사로 일하다 친해지면 가까운 사람이고, 죽은 후 내 생활이 곤란해질 일도 없단 이유로 지원하는 모습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그토록 죽음의 순간과 대면하길 원한다면서도 위기의 순간 떡이 목에 걸린 할머니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고, 죽음을 코앞에 둔 소년의 소원을 들어주느라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면서 살짝 미소짓기도 했던 나지만 금방 이야기속 복선과 반전에 머리가 띵- 해진다. 초중반엔 은근 지루해서 이 작가의 글빨(?)도 다 됐나보다 아쉬웠는데 마지막으로 흘러갈수록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모습에 역시~라는 탄식이 절로 나오더라는!!
벼랑 끝에 몰린 자기 실상을 가장 보이고 싶지 않은 상대가 바로 같은 집단에 속해 있는 사람들이란 걸, 그 중에서도 또래친구들이란 사실을 어른들은 정말 몰라서 묻는 건가 <P.8>
서른을 살짝 넘은 나도 벌써 고등학교때 무슨 생각을 하며 살았는지 가물가물한데 작가는 여고생들의 심리를 정말 잘 표현해냈더라는 ~ 그와 더불어 죽음에 대한 이야기들도 -
"음 . . .간단히 말해서 '죽음'은 '퇴장'이란 의미라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좀 뭔가 착각하는 인간들이 자주 게임 오버라든가 리셋이란 단어를 쓰는데 그게 아니야. 그건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착각하는 바보들의 발상이지. 하긴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지만. '죽음'이란 건 이 세상에서 당사자만 완전 퇴장하는 거야. 한 사람 빠진다고 이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재수없는 놈이 하나 퇴장해 봤자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고. 당연히 내가 퇴장해도 나만 쏙 빠질뿐 세상은 끝나지 않아. 하염없이 계속되지. 설사 다시 태어난다 해도 흐름 속에 끼어드는 것밖엔 안 되고. 그렇다면 가능한한 이 자리에 오래도록 버텨서 자기를 포함한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지켜보고 싶지 않냐?"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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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미나토 가즈에라는 작가를 이 책을 읽기까지는 몰랐다 그런데 일본 문학을 읽는 독자들 사이에서는 이 작가의 이름이 꽤나 유명한 것 같았다 <고백>이라는 미나토 가즈에의 데뷔작이 그렇게 화제의 작품이었다고 하니...현재 일본 문단에서 내는 작품마다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작가라고 출판사는 소개하고 있었다 그런가...하고 그리 큰 기대는 갖지 않았지만 하여튼 뭔가 다를 거라는 예상 아닌 예상을 하며 책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무참하게도 보기 좋게 책을 낸 출판사의 광고와는 전혀 다르게 크게 실망만 하고 말았다 분명 책의 소개 카피에는 <화제의 작가 미나토 가즈에가 선사하는 상큼발랄한 청춘 미스터리>라고 되어 있었지만 상큼발랄하지도 않았고 더군다나 미스터리도 아니었다 이 책의 주인공들은 모두 여고생들이다 그런데 이 여고생들은 묘하게도 모두 죽어가는 사람을 직접 보고 싶다는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역시 일본인들다운 것일까 아무리 문화적 차이라고는 하지만 한국의 여고생들과는 틀리다는 걸 절감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과연 한국의 어느 여고생들이 그렇게 죽음에 대해 기이할 정도의 호기심을 가지고 구경하고 싶어할까 아무래도 일본인들의 뇌구조는 파악하기 힘든 이질적인 코드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든다 그 주인공들이 죽음을 구경하기 위해 방학 동안 일하는 곳에서 사건이 엮이고 우연이 겹쳐 일의 실마리가 풀려 나간다 공교로움의 연속인 사람들의 만남은 그렇다 쳐도 도대체 이 책을 쓴 작가의 머릿속에는 윤리적인 개념이 얼마나 실존하는 것인지 읽으며 개탄스러울 수 밖에 없었다 주인공인 소녀 유키가 알게 된 고우라는 소년은 어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불치병 환자이다 아버지가 여고생 성추행범으로 물의를 일으키자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을 하고 고우만 데리고 혼자 살아간다 그리고 어머니는 아버지가 부끄러워 마음에 큰 상처를 입고 그래서 몸에 병까지 겹쳐 앓는다 고우는 그런 어머니를 사랑하기에 어머니를 병들게 한 아버지가 밉다 고우가 죽어가는 것을 직접 보고 싶은 유키는 고우에게 죽기 전 좋은 일을 해 주려는 마음으로 고우 아버지와 고우를 만나게 해준다 그래서 고우 아버지를 수소문해서 찾아 고우와 만나게 해준다 죽어가는 소년을 보며 생명의 덧없음과 안타까운 애석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이제 죽음을 직접 목도할 수 있겠다는 흥분을 하는 유키를 보니 기가 찼다 그래 그것까지는 좋다고 하자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아버지와 아들이 만나 상봉을 한다 이혼 후 연락이 두절되어 혼자 살고 있던 아버지와 병으로 입원한 아들이 그 동안의 단절을 넘어 감동적으로 재회를 한다 그런데 그 순간 과일 깎는 과도를 꺼낸 고우가 아버지를 찌른다 불행 중 다행인지 아버지는 죽지 않고 경미한 부상만 입고 만다 그런데 작가는 이 사고를 마침내 그 여고생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하던 죽음으로 묘사한다 비록 죽지는 않았지만 눈 앞에서 목격된 죽음으로 작가는 묘사한다...세상에 ... 아들이 아버지를 찌른 그 존속 살인의 현장이 그렇게나 여고생들이 보고 싶어했던 죽음의 순간이라니...그래도 일말의 양심은 있었는지 아들이 아버지를 찌른 사건을 단순히 사고로 처리한다 그리고 그 계획적인 살인의 의도를 입을 맞추고 알리바이를 조작하여 실수로 생긴 일로 만들고 피해자인 아버지도 동의하여 그 일은 그냥 넘어간다 그리고 아들은 수술이 끝나고 처음에 예상했던 희박한 성공률로 역시 죽음을 맞고 만다 아들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그러니까 아들이 아버지를 찌르는 것은 일어나도 좋은 일이고 그리고 실패로 끝난다면 아들은 예정된 대로 죽게 되어 있으니 이렇게 사건이 진행되게 하자하고 구성을 한 것일까... 나는 모르겠다 사람의 죽음을 그리 쉽게 묘사하고 또 그렇게 기이할 정도로 집착을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리고 아들이 아버지를 찔러 죽이려고 하는 것이 그렇게 다루어져도 좋은 것인지 더군다나 더 이해가 안되는 것은 고우가 아버지를 죽이려다 미수로 끝난 사건을 겪으면서 두 소녀는 실제로 죽음을 목격한 자들만의 뭐랄까 성숙해진 내면세계같은 걸 공유하며 이 세상에 대해 극복의 힘을 갖게 된다는 그 기묘하고 언밸런스한 개연성이다 아들이 아버지를 죽이는 것을 목격하면 고민이 사라지고 자신들의 막혔던 소통이 이루어지고 현실을 이겨내는 힘이 생긴단 말이지... 하긴 유키는 그렇게도 치매 환자인 할머니가 죽기를 기도하는 그런 여자아이였지 일본이라는 나라는 역시나 멀고도 먼 나라라는 것을 느끼기에는 할머니가 죽기만을 기다리는 유키라는 소녀만 봐도 충분했다 우리나라라고 불효하는 사람이 없겠냐만은 너무도 평범하고 보통의 소녀인 유키라는 주인공이 가진 윤리 의식을 목도하면서 역시 일본이라는 나라는 한국인들과는 다른 인간들이 사는 남의 나라라는 통탄스러운 결과를 이끌어 낼 수 밖에 없었다
소설이 교훈적인 이야기여야 한다는 것은 낡고도 오랜 옛적 시절의 도그마이고 또 위험한 주장이다 그러나 그런 고루한 잣대를 들이 밀지않아도 이 책의 주인공들의 윤리의식과 관념은 그리 아름답지 않다 어처구니없는 모순과 비논리적인 자기 편의적 이기심과 비뚤어진 내면 세계를 가진 주인공들이 펼치는 고민들은 그저 실소를 나오게 하고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리그일 뿐이다 아무리 비윤리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과정이 공감이 가고 그 인과 괸계가 엄정하며 주장하는 바가 명확하면 소재야 어떻든 공감의 폭이 커질 수 밖에 없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만 해도 그렇고 주홍글씨만 해도 그렇다 그러나 이 책은 논리적으로도 미흡하고 사상적으로도 모순인 불쾌한 구석으로 가득 찬 그런 책이었다 이 책을 쓴 작가 미나토 가즈에가 다음 작품에서는 그런 자기 모순을 인식하고 자신의 그런 이기적인 자기중심의 편의성을 가진 주인공들을 변화시킨 모습을 보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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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와 죽음. 붉은 글씨. 형체만 가늠할 수 있을 듯한 흐린 소녀. 그리고 작가의 전작 '고백'이나 '속죄'에서 알 수 있었던 어두움. 외부 정보로 말미암아 보았을 때 이 책은 한없이 어둡고 무서운 느낌을 가져다 준다. 책 첫 페이지부터 유서다. 사회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한 소녀의 유서와 그 유서를 접한 또 다른 한 소녀의 반응이 제시 된다. 진행되는 이야기 속에서 처음의 유서를 지워버리지 말았어야 했다. 담임 오구라의 소설이나 이야기에 조금 더 집중을 기울였어야 했다.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하나의 종착점을 향하여 달리는 수많은 가지의 이야기들에 납득이 갈 것이다.
미나토 가나에를 처음 접한 작품은 '속죄'였다. '고백'의 후속작이라 그저 그랬다는 반응을 보인 사람들도 많았지만, 적어도 내게 '속죄'는 하나의 충격이었다. 무엇보다도 가장 명랑하며 활기찬 모습의 여자 아이들이 주인공으로 설정되어 있다는 것이 사건이나 스토리를 더욱 소름돋게 한 것 같았다. '속죄'를 읽은지 며칠 지나지 않아 접하게 된 '소녀'였기에, '속죄' 속의 그녀들이 더욱 간절히 떠올라 불안감을 연신 느끼게 했던 것 같다.
10대 여학생의 반란이나 방황을 사춘기라는 세 글자로 많은 사람들이 납득하려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 소설은 성인들이 소위 말하는 '한 때'를 잘 표현한 이야기라고 느껴진다. 성인이라는 존재를 앞에 두고 청소년들은 불만 반과 동경 반으로 행동한다. 성인의 행동에 한없는 불만을 표현하면서도 그들을 좇아가려 안간힘을 쓰는 것이 바로 청소년이다. 죽음을 목격하고 싶다는 유키와 아쓰코의 생각은 일종의 성인이 되고자 하는 절차의 하나인 것인지도 모른다. 다른 친구가 목격한 죽음이 자신에게는 생소한 것이 되면서, 죽음이 경계가 되어 성숙과 미성숙을 구분하고 있는 것이며 유키와 아쓰코는 그 경계를 뛰어넘기 위한 여름 방학을 보내게 된다.
그들은 결국 죽음을 보았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선뜻 말하지는 않겠다. 하지만 그들은 충분히 만족스러운 여름 방학을 보냈을 것이다. 좁은 마을에서 친구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주변 인간 관계까지도 얽혀가는, 빼곡한 스토리들로 가득 찬 전개는 잠시도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들었다. 그 관계들의 억지스러움이 마냥 밉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아마 여고생이라는 신분이 주는 풋풋함과 호기심에 이미 그들과 같은 마음을 한 번쯤 겪어온 언니의 입장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읽기 전에는 알 수 없었던 '상큼발랄한 청춘 미스터리'라는 단어의 의미가 이제야 비로소 나를 웃음짓게 한다. 그리고 나 조차도 알지 못했던 '죽음'에 대한 나름의 정의와 견해를 이 책에서 얻은 것은 최고의 수확이라고 말하고 싶다.
'음...... 간단히 말해서 '죽음'은 '퇴장'이란 의미라는 걸 깨달았다고나 할까? 좀 뭔가 착각하는 인간들이 자주 게임 오버라든기 리셋이란 단어를 쓰는데 그게 아니야. 그건 자기가 세상의 중심이라고 착각하는 바보들의 발상이지. 하긴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는 나도 그랬지만. '죽음'이란 건 이 세상에서 당사자만 완전 퇴장하는 거야. 한 사람 빠진다고 이 세상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아. 재수 없는 놈이 하나 퇴장해 봤자 아무것도 달라질 게 없다고. 당연히 내가 퇴장해도 나만 쏙 빠질 뿐 세상은 끝나지 않아. 하염없이 계속되지. 설사 다시 태어난다 해도 흐름 속에 끼어드는 것밖엔 안 되고. 그렇다면 가능한 한 이 자리에 오래도록 버텨서 자기를 포함한 이 세상이 어떻게 변해 가는지 지켜보고 싶지 않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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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드디어 '미나토 가나에'를 만나다. 슬슬 따뜻함이 더움으로 바뀌는 여름의 초입.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이 출시 되었다는 소식을 접했다. 사실 '미나토 가나에'의 첫 장편인 '고백'을 읽고, 추천해준 이들이 너무나 많았기에 그녀의 작품을 읽어야지, 읽어야지 생각은 하면서도 만나지 못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그녀의 신작 소식은 마음을 흔들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잡다한 일상의 파편들에 치이다보면 그런 열정도 자연스럽게 사그러 들기 마련. 게다가 각종 신경써야 할 일들과 엎친데 덮친격으로 찾아온 독서에 대한 의욕상실은 더더욱 '미나토 가나에'를 만나는 것을 방해했다. 그리고 드디어 '소녀'로 그녀를 만났다. #2. 의욕을 잃은 마음을 흔들다. 그러나 '소녀'가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사실 책을 접하는 마음에 혼돈을 주기에 충분했다. 안그래도 최근에 각종 생각들이 머리를 뒤엎고 있는 판국에 죽음을 다루는 무거운 작품까지 읽는다면 그걸 버텨낼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기 때문. 특히 '죽음을 직접 보길 갈망하는 두 소녀의 잊을 수 없는 여름방학이 시작된다' 라는 뒷날개의 멘트는 그런 고민을 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나 마찬가지로 뒷날개에 기재된 이야기들은 도저히 이 책을 읽지 않고서는 버티지 못하게 했는데, 실제로 책을 펼쳐들자마자 눈에 들어온 프롤로그이자 '유서'는 압도적으로 나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그리고 '소녀'가 내 마음에 들어왔고 '미나토 가나에'는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져 있었던 나의 영혼을 뒤흔들었다. #3. 죽음과 인생에 대한 이야기. 사춘기를 겪으면서 우리가 흔히 느끼는 감정은 의외로 간단히 사춘기라고 표현되고는 하지만, 그 감정의 흐름을 한마디로 나타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특히 '죽음'과 같은 형이상학적인 문제에 접근하는 방식에 있어서는 그야말로 존재하는 개인의 수 만큼의 방향성이 존재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한 그 과정에서 단순히 사고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실존하는 세상과의 관계도 고민하게 된다. 그렇기에 사춘기에 들어선 학생들이 특정 행위에 대해 날카롭게 반응하게 되는 것인데, 그것들은 마찬가지로 개개인에 따라 다를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사춘기에 나타나는 정서적 예민함에 쉽게 접근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나토 가나에는 '소녀'에서 그 모든 것들을 세심하고 대범하게 그려낸다. 죽음을 찬양하는 마음, 죽음에 대한 호기심, 죽음에 대한 공포라는 모든 요소들을 조화롭게 이야기 할 뿐더러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인간관계의 아련한 감정들을 새겨놓은 작품이 바로 '소녀'이다. #4. 우리가 느끼는 불행의 무게. 특히 '소녀'에서 너무나 잘 나타난 것 중 하나는 그들이 느끼는 불행의 무게를 너무나 여실히 표현해 놓았다는 것이다. 독자를 일순 혼란에 빠뜨리기도 하는 이런 구성은(처음에 작품을 접하면 두 소녀의 시점이 너무나 빠르게 뒤바뀌는 바람에 작품의 흐름을 이해하기 힘들다) 초반의 어지러움을 극복하면 그야말로 농후한 충격을 가져다 준다. 분명 두 소녀의 시점은 빠르게 변화하는데 그들의 기조적인 마음가짐은 별로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존재하는 미묘한 비접합점이 읽는 이를 정신 없게 한다랄까. 이를테면 빠르게 점멸하는 영상을 오래 쳐다보고 있으면 환각-최면에 가까운 현상을 경험하는 것과 가깝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그들의 불행의 무게는 비슷하다. 게다가 스스로 느끼는 불행은 언제나 자신의 것이 '가장 무겁다'고 느끼기 마련이다. 문제는 소통을 통하여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로 귀결된다. #5. 마음 깊숙한 곳에 있는 어둠. 그리고 소통과 극복. 그렇게 '미나토 가나에'는 우리들이 일상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둠을 의도적으로 수면 위로 끌어올린다. 누군가를 해하고 싶은 마음, 누군가를 믿지 못하는 마음. 혹은 누군가를 시기하는 마음까지. 그 모든 것들은 기분 나쁘게 찐득거린 채로 그곳에 존재한다. 그렇기 때문에 '소녀'를 읽다보면 어느 새 그런 감정들을 내 속에서 발견하고 몸서리 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나 그렇게 모든 어둠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미나토 가나에는 그런 '어둠'이 나 혼자만이 아닌, 모두에게 존재한다는 것을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그와 동시에 진심이 담긴 소통을 통해 그것을 해체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데, 일종의 까발리기와도 비슷한 이런 감정은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동반하며 후련함을 선사한다. 누군가가 가지고 있는 아픔을 극복할 때, 나도 내 마음 속에 있는 '무엇인가'를 극복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6. 소녀, 영혼을 울리다. 이른바 '소녀의 감성'이라는 컨셉으로 마케팅을 진행한 것 같은 '소녀'이기에 처음에는 거부감이 들 줄 알았다. 그러나 정작 내 가슴을 후려친 그것은 단지 성별에 구애받는 그런 성격의 것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오래걸리지 않았다. 그것이 단순히 내가 여성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어서는 아닐 것이다. 그렇게 미나토 가나에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성은 초성별적이고, 초국가적이며, 성장을 경험해야 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가지는 감성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소녀'는 나에게 왔고, 나의 영혼을 강하게 뒤 흔든 작품으로 기억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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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토 가나에' - 내놓는 작품마다 화제를 모으고, 일본 문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작가 - '소녀'의 작가를 소개하는 글이다. 내가 읽은 '미나토 가나에'의 작품은 2009년에 많은 독자들에게 읽혔던 '고백', 그리고 이번에 '소녀'가 두 번째 읽게 된 작품이다. '소녀'가 출간되었은 때에 인터넷 서점에서 읽게 된 광고문안이 참 자극적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 문장을 보는 순간 서름끼치게 괴기스러운 장면을 연상했다. 언젠가 살인범이 자신이 살해하는 사람들의 죽는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는 그런 믿거나 말거나 한 내용의 글을 볼 적이 있기에, 나름대로 그런 살인의 장면을 연상하게 된 것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이 소녀들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미나토 가나에'의 전작인 '고백'에서 내가 받았던 충격이 너무 컸었기때문인 것이다. 이 소설은 여선생님이 자신의 딸을 살해한 두 제자를 계획적으로 복수를 하는 내용이었는데, 마지막에 밝혀지는 그 복수가 너무도 충격적이었다. 두 제자가 자신의 딸을 고의적으로, 그러나 또한 실수로 죽음의 순간에 이르게 만들고, 실수로 인한 그 죽음의 순간을 은폐하기 위해서 또 고의적인 살인을 방조했지만, 그 제자들이 미성년자이기에 처벌을 받을 수 없고, 그런 이유로 자신이 가하는 처벌. 인간과 인간의 이야기보다 더 진한 교사와 제자의 관계가 이토록 잔인해질 수 있음에 후반부에는 거의 충격속에 잠겼었다. 그래서 '고백'를 쓴 작가라면 어렵지않게 그런 이야기 전개를 보여줄 수도 있겠다는 선입견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다. ![]() '고백'이 열세 살의 남학생들의 이야기였다면, '소녀'는 고등학교 여학생들의 이야기이다. 그러나, 어딘지 모르게 작품의 분위기가 닮은 듯이 보인다. '소녀'는 아쓰코와 유키라는 두 여학생의 이야기가 주축을 이룬다. 두 소녀는 가정환경, 성격, 가치관 등이 서로 다르지만 같은 아픔을 가지고 있다. 두 소녀 모두 검도를 하다가 중간에 신체적 상처로 인하여 그만두게 되었으며, 자신들이 원하던 명문고등학교에 가지를 못하게 된 것이다. 이런 이유때문에 서로 가까운 친구이면서도 멀게 느껴지는 그런 관계다. 더군다나 유키는 치매할머니로 인한 정신적 고통을, 아쓰코는 자신이 검도를 그만두게 되면서 겪게되는 소외감으로 과호흡 증상을 가지고 있다. 이런 두 소녀가 갈망하고 보고 싶은 것이 바로 '죽음' 그 순간을 보고싶은 것이다.
이 소설의 소녀들의 이야기는 여름방학 직전부터 여름방학동안의 경험의 이야기들로 꾸며진다. 그들이 방학동안에 자원봉사를 가게 되는 노인요양센터와 소아병원 난치병 환우들의 이야기와 함께. 그리고, 소설속에는 또다른 소설. '요루의 외줄타기'가 또 하나의 소재로 등장한다. 성장소설과 추리소설의 형태가 접목되기는 했으나, 추리의 성격이 좀 약하다고 볼 수 있다. 이 소설은 탄탄한 구성에 드라마틱한 소재와 설정들, 그것이 초반부터 거의 다 드러나 있는 상태로 이야기가 전개되지만 중간 중간에 복선이 깔려 있어서 그 복선이 이야기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다. 그리고, 후반에 또다른 반전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 그리고, 역시 결말부분은 깜짝 놀랄만한 장면이 연출되어서 '아니 !! 역시, '미나토 가나에' 다운 설정 ?' 하면서 놀라기는 하지만.... 그래도 '고백'에서 워낙 큰 충격을 받았기에 '소녀'의 반전은 약한 충격이라고 해야 할까. 죽음을 보고 싶다는 설정이 한 가닥을 이루고는 있지만, 이 소설은 일본의 여고생들의 생활, 치매노인 문제, 난치병 환우의 우정, 그리고 아쓰코와 유키의 우정과 가족애 등을 함께 다루고 있다. 그래서 이 소설은 추리소설의 형식을 빌린 청춘소설, 또는 성장소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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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무렵인가 갑자기 나타나 순식간에 자리매김을 한 작가가 있다. 미나토 가나에라고 한다. 작품은 그리 많지 않다. 너무 간결한 제목들이지만 사람들 사이에서의 반응이 좋아 책을 읽지않고도 작가이름을 외우게 되었다. 가장 최근에 출간된 소녀라는 작품을 읽게 되면서 서둘러 먼저 나온 책 고백도 읽었다. 제목이나 표지와 어울리지 않게 내용은 무섭고 슬펐다. 몇사람의 화자가 등장하며 진행되는 이야기는 각각의 인물들에게 확실한 존재감을 주고 모두에게 연민을 느끼게 해주었다. 그 한권의 만족으로 소녀에 대한 기대도 커졌다.
이번엔 두 쇼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상큼발랄한 청춘 미스터리라고 한다. 미스터리가 상큼발랄할 수도 있는건가 하는 생각을 가장 먼저 했다. 거봐.. 라는 생각이 들만큼 첫 시작부터 자살이니 패배선언이니 하며 들먹였다. 그리고 제법 차가워보이는 한 소녀의 감상이 펼쳐졌다. 두 소년의 우정이야기는 죽음앞에서 더욱 애절해졌다. 이런 영화내용으로 인해 눈물 콧물을 쏟아내는 아쓰코를 유키는 이해할 수 없다. 어울리지 않을만큼 주위를 차분히 관찰하고 있다. 반면 눈물 한방울 흘리지도 않았으면서도 책상에 머리를 숙이고 열심히 감상문을 적고있는 유키를 아쓰코는 껄끄러워한다. 검도로 특기생 추천을 받아 명문고에 입학할 수 있었던참에 자신의 실수로 부상을 입고 경기에도 지게된 후 악플에 시달려 모두 포기한 아쓰코는 여전히 냉담한 유키의 태도가 내심 서운하고 못마땅하다.
한눈에도 성격이 제법 다른 두 소녀가 전학생 사오리를 통해 자살한 친구의 죽음을 목격한 경험을 듣는다. 유키와 아쓰코는 각자의 고민과 생각끝에 직접 죽음의 순간을 보고싶다고 여긴다. 죽음을 통해 상상만으로는 이제껏 알지 못했던 그 무언가를 알게 될지도 모른다고... 그렇게 지금과는 다른 자신이 되고자 한다. 결국 여름방학동안 유키는 소아병동에서 동화등을 낭독해주는 자원봉사를, 아쓰코는 노인요양시설에서 자원봉사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그 순간을 기다린다.
차분하고 똘똘해보이는 유키가, 밝고 활달해보이는 아쓰코가 서로 사이가 서먹해진 상태로 책은 시작되었기 때문에 단점이라고 부를만한 것부터 이야기는 펼쳐졌다. 하지만 이렇게도 다른 두 아이가 죽음을 직접 목격한적이 없으니 저런 영화에도 눈물을 흘리는 것이라는 사오리의 말에 발끈하듯 직접 죽음을 보고싶다고 생각하게 될줄은 몰랐다. 사실 많이 다르다고 여긴 두 사람이 어쩌면 닮은 구석도 아주 많겠구나 하며 더욱 눈여겨 보게 되었다. 역시 어리구나 싶어 귀여운 생각까지도 들었던 유키와 아쓰코의 여름방학 생활은 드라마 만큼이나 오밀조밀 얽힌 인간관계덕분에 점점 생각지도 못한 상황으로 변해갔다.
유키의 남자친구는 우연히 자살하는 남자를 현장에서 목격하고 그때의 일을 말하며 죽음은 그저 세상에서 자신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했다. 태어나는것, 죽는것이 그저 세상의 흐름안에 자신이 끼어들고 사라지는 것일 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말에 유키가 그리 반응하지 않았던것이나 원하던대로 죽음의 순간을 목격하게 될뻔한 상황을 박차고 나가버린 아쓰코와 유키를 보면 정말로 두 소녀가 원했던것은 끝이 아니었다는 느낌이 든다. 죽음을 찾는 이들을 통해 결국은 끝나지 않고 내일로 이어지는 오늘을 작가는 보여주고 싶었던것은 아니었을까. 너무 과장됐는지도 모르겠지만. 자신들의 한계를 부수고 달라진 유키와 아쓰코의 모습은 정말 생기발랄했다. 그리고 마냥 청춘소설의 이미지로 끝내지 않은 결말이 작가의 이름을 다시한번 떠올리게 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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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사실 <고백>에 이은 미나토 가나에 님의 두번쨰 장편소설이지만 국내에서는 <속죄>가 먼저 출간되는 바람에..
국내에 소개되는 세번째 작품입니다..
<고백>, <속죄>로 이어지는 연이은 뛰어난 작품으로 미나토 가나에 님의 팬이 되어버렸기에 너무나 기다렸던 작품입니다..
결과부터 말씀드리자면 전작들에 비하면 다소 실망스러운 작품이 아닐까 싶습니다..
미나토 가나에란 작가 분만 아니라면 충분히 괜찮은 작품인데요..
<고백>, <속죄>를 통해서 너무 기대치가 높아진게 이유가 아닌가 싶습니다..
이야기는 굉장히 흥미롭습니다..
고민을 안고있던 두 소녀가 죽음이라는 막연한 존재에 대해 관심을 갖게되고 죽음을 목격하고자 싶은 욕구로 변하게됩니다.,
두 소녀 아쓰코와 유키는 방학기간동안 그 죽음을 목격하기위한 그들만의 계획을 실행하게 됩니다..
다소 특이하면서도 과연 두 소녀가 죽음을 목격하게되면 어떤 느낌을 가지게 될까 궁금해지는 이야기였습니다..
<소녀>에서도 미나토 가나에 님의 특유의 문체가 엿보입니다..
<고백>이나 <속죄>에서는 한 인물이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고백형식이나 편지의 방식이었는데요..
<소녀>에서는 두 소녀의 일기형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국내에 먼저 소개된 <속죄>나 <고백>들과 마찬가지로 한 인물이 다른사람에게 말하는 형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 반전이 전혀 생각치 못했다는 것 또한 괜찮았습니다...
다소 아쉬운 점은 등장인물들이 서로 얽히고 설켜있다는 점입니다.. 이런 관계가 괜찮은 것 같으면서도
너무 많은 인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다소 억지스러운 설정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네요..
처음 읽을 때 충격적이었던 <고백>이나 우리나라에서는 먼저 출간된 <속죄>..
두 작품의 사건이나 사건뒤에 숨겨진 무시무시(?!)한 이야기들 때문인지 몰라도..
<소녀>는 미나토 가나에 님의 작품중에서 그나마 잔잔하게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던 거 같습니다..
(미나토 가나에 님의 작품이라는 점을 고려해서이지 그리 잔잔하기만 한 작품은 아닙니다..^O^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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