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東仁은 自身의 文學的 業積을 ‘文壇 30年의 자취’에서, ①完全한 口語體의 使用; ②‘나간다’를 ‘나갔다’로 하는 等 過去詞의 效果的 活用; ③우리말에 없는 3人稱 男女 性 代名詞를 ‘그’로 統一, 첫 使用했다는 것; ④새로운 用語의 發掘(‘敎授’를 ‘가르침’, ‘待合室’을 ‘기다림방’으로)하기까지의 苦心을 말하면서, “當時의 우리는 4千 年 民族 歷史 생긴 以來 아직 있어보지 못하던 新文學”을 創造했다고 自負하고 있다. 그가 意識的으로 이러한 文章 形態를 改革, 普及했다는 點은 그 스스로 말하지 않은 사투리의 導入, 그리고 ‘감자’ 等 自然主義 系列의 文學的 成功과 함께 ‘創造’ 主動 멤버의 重要한 寄與로 높이 評價되지 않을 수 없다. 收錄된 作品은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笞刑, 붉은 山, 狂畵師, 곰네, 딸의 業을 이으려, 목숨, 발가락이 닮았다, 감자, 狂炎 소나타, 徘徊, 시골 황서방 等. 金東仁(1900年~1951年)은 小說家. 號는 琴童ㆍ春士. 1919年에 우리나라 最初의 純粹 文藝 同人誌 ≪創造≫를 發刊하였고, 事實主義的 手法과 文章의 革新을 보여 주었다. 作品에 短篇 <弱한 者의 슬픔>, <배따라기>, <감자>, 長篇 <雲峴宮의 봄> 等이 있고 親日反民族行爲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