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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너권의 책을 같은 주제, 한국의 민주주의에 대한 것으로 읽었다. 시대가 바뀐지 이제 딱 반이 지났을 뿐인데 지난 10년간 지켜온 것들이 전부 뒤집어졌다는 느낌이다. 그 중에는 마땅히 바뀌어야 하는 것들도 있었겠지만, 우리들이 소중하게 생각해온 가치들은 어떤 경우도 지켜졌어야 했는데, 그것이 안타까워 계속 같은 주제의 책을 읽는 것 인지도 모르겠다. 반세기에 걸친 민주화 운동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2008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어째서 이렇게 빠르게, 쉽게, 어이없게 후퇴하게 되었는가? 또 많은 비용과 희생을 치르며 진행돼온 민주화 운동이 모든 영역에서 우리나라를 근본적으로 바꾸는데 얼마나, 무엇을 기여하였는가? 지금의 우리 사회 민주주의 현황을 점검하는 사람들은 이 두 개의 곤혹스런 질문에 봉착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휴머니스트와 오마이뉴스는 우리사회 각 분야를 돌아보기 위해, 공동으로 시민을 위한 민주주의 특강을 준비 했고, 2009년 11월과 12월 한 주에 두 번씩 민주주의에 대한 강연과 토론을 통하여 도정일 경희대 교수는 민주주의가 위험에 빠지는 건 세가지 경우라고 한다. 국가권력의 오용과 남용이 민주적 사회운영의 원칙을 파괴할 때, 시민성 혹은 시민정신의 악화나 포기, 그리고 사회 모든 영역에서 민주주의의 원칙들이 무시되고 무너저내릴 때라고 한다. 이 세가지중에서 우리 현실에서 중요성을 직시하고 실패를 성찰해야 할 것은 두 번째 요소라고 그는 말한다. 민주사회를 만들고 민주주의를 유지할 수 있게 하는 것은 시민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시민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어떤 지식도 우리 삶의 구체적인 문제와 상황에 응답하지 못하면 죽은 지식이다. 지난 10년간 우리는 민주화된 정부만을 가지고 있었다고 박명림 연세대 교수는 이야기한다. 언론, 기업, 종교, 학교, 금융 등은 역 민주화 또는 역 근대화 되면서 소수 상류층에게 권력과 재화와 가치를 집중시킨 가운데 정부만이 이들에게 포위된 외로운 섬처럼 되어버렸다고 한다. 이러한 경우 국가가 무엇인지 우리는 다시 한번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성운동가 88만원 세대의 저자로 더 잘 알려진 지금의 한국사회에서 학벌의 문제는 계급의 문제이고, 불평등의 문제라고 진중권 교수는 말하길 우리사회는 농경사회에서 산업화 사회를 거쳐 정보화 사회에 넘어와 있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의 정치가 원하는 건 산업사회로 되돌아 가자는 것 이라고 한다. 머릿속에 삽 한 자루만 들어있고,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기 때문에, 심지어 경제 자체도 모르면서 자신이 알고 있다고 착각하는 데서 비극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바로 과거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란다. 우리는 각자의 영역에서 이런 현상이 어떻게 발현되는지를 생각하고, 그것이 뭘 의미하는지를 고민해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밖에도 요즘 읽는 책들이 한가지 주제에 집중되어 있다. 오월이 서러워서, 지금의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알아보고 싶어서 구매한 책들을 몰아서 읽기 때문이다. 다소 무거운 주제이고, 또 호불호, 혹은 수용여부가 각 개인들에게 명확한 책이기에 즐겨 읽는 사람 입장에서는 반성의 시간을 가질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헌데, 계속 같은 종류의 책을 읽다 보니 내용이 많이 겹친다. 아마 대한민국 사회가 변한 것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나로호의 불행을 보면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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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살게 된 중요한 계기가 있냐고 누군가 물어볼 때마다 생각나는 게 있다. 하나는 2003년 김주익 열사 장례식에서 40~50대 아저씨들이 고개를 숙이고 어깨를 들썩이면서 숨죽여 우는 광경이다. 나도 많이 울었지만, 그 모습이 굉장히 충격적이었다. 당시 언론은 "역사상 최고의 단협, 한진 노조 완승"이라고 했다. 진보 언론에서도 노조가 원하는 요구가 다 들어간 단협이 타결됐다며 거기에 초점을 맞춰서 기사를 냈다. 이건 정말 아니지 않나 싶었다. 사람이 두 명 죽었고 노동자들이 이렇게 울고 있는데 그게 어떻게 '완승'일 수 있나….
근본화라는 건 우리 삶의 실존 문제가 공적인 영역에서 해결되지 않으니까 다른 요인들이 전면에 등장하게 되는 건데, 그중 하나가 물리적인 충돌이에요. 즉 폭력화이죠. 자기 몸과 생명을 던지지 않으면 생명을 담보해줄 최소한의 조건을 지킬 수 없는 사회가 된 거예요. 왜? 국가의 공공성이 후퇴하면서 공공 영역에서 보장을 안 해주니까요. 곳곳에서 물리적 충돌이 자주 일어나는 이유는 공적 보호를 수행해야 할 국가가 제 역할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동일한 1인당 GDP 2만 달러 시점에서 사회의 공적 지출을 조사해봤더니 한국은 OECD 평균의 3분의 1에도 못 미칩니다. 세전, 세후를 기준으로 한 정부의 소득조정 기능은 아예 6분의 1에서 7분의 1에 불과합니다. 정부가 시장의 불평등을 거의 교정하지 않고 있는 거죠. 즉 국가의 공적 역할을 통한 시장 교정 기능은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게 가장 좌파정부라고 비난 받았던 노무현 정부 때의 통계입니다.
공공성의 해체로 인해 우리 삶이 얼마나 개체적, 자영적 차원으로 밀려가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구성한 국가가 소수 과두집단에 포함된 시민 외에는 개별적으로 열심히 먹고살라고 한다면 곧 공동체로부터 전혀 시민됨을 보장받지 못하는 겁니다.
수직적인 권력분립을 위해서는 국가와 대의기구, 시민사회 사이에 권력분립을 새롭게 해야 합니다. 국가와 대표에게 주었던 주권의 많은 부분을 다시 찾아와서 행사해야 한다는 겁니다.
두 번재는 수평적 권력분립니다. 입법, 사법, 행정을 감찰하고, 국민의 인권, 국민의 권리와 직접 관계되는 분야들은 입법, 사법, 행정의 영역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거예요. 따라서 이것들을 독립시켜 4권분립으로 가야 해요. 그리하여 4부가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고, 시장과 국가를 감독하는 부처들을 독립시켜 국민과 시민의 직접 통제 아래 둬야 해요.
우리나라 민주주의가 위기인 까닭 중 하나가 불평등의 피해자들이 그 차별을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마트에서 짐 나르는 일이니 어쩌겠어요. 제가 공부를 안 했으니까요 라고 이야기해요. 말이 안 되잖아요. 중,고등학교 때 시험 잘 친 사람들에게 한 사회의 부가 10배, 20배, 아니 심하게는 100배씩 집중되는 것에 대체 어떤 정당성이 있습니까?
계속 차별받으면서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다 보니까 이젠 비슷한 계층의 사람들끼리도 의사소통이 안 돼요. 형식적이고 상투적인 것 말고는 해본 적이 없어서 그렇습니다. 학창시절에 갈등을 폭력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해결해봐야 하거든요. 우리는 몽둥이 아니면 벌점이잖아요. 가장 유치한 방식이거나 가장 폭력적인 방식으로 갈등을 억압하는 교육을 받은 겁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진도를 나가야 하기' 때문이에요. 단지 진도 때문에 갈등을 인내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거예요.
정상적인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엄격하게 부당한 권력의 독과점을 거부해왔음을 알 수 있죠. 그러나 한국 사회는 아무 개념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는 극소수의 자본가에게 모든 권리와 권력이 집중되고 있는데, 일종의 마름들이라고 할까요? 관리계급이자 기생권력으로서 학벌권력이 그 아래에 있는 겁니다.
학벌의 권력 불평등성의 문제는 나아가 시민적 의사소통을 치명적으로 왜곡합니다. 한국 사회에선 학벌이 현대화된 문중이에요. 학벌문제는 결정적으로 교육의 파탄과 직결됩니다. 학생들이 대학에 공부하러 들어오는 게 아닌데 대학이 어떻게 본연의 구실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게다가 한국 대학은 대학원을 키우지 않아요. 대학원으로 경쟁해봤자 아무도 안들어오거든요. 대학은 오로지 고시 합격생과 입학생들의 수능 점수에만 신경을 씁니다. 학생들은 학교에 공부하러 오지 않고, 학교도 거기에는 관심이 없어요.
이 모든 문제가 시험 교육에서 비롯됩니다. 한국처럼 정원이 3,000명 남짓인 한 대학을 두고 50만 명이 경쟁하는 시스템에서는 교육의 목적이 시험이 될 수밖에 없어요. 물론 시험은 필요합니다. 하지만 시험이 목적이 되어버리면 객관식이고 주관식이고 가릴 것 없이 대답하는 데만 길들여지죠. 질문은 하지 못하고 우리 뇌는 굳어져만 갑니다.
묻지 못한다는 게 단지 학계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문제예요. 모든 종류의 불합리와 불편함과 불의가 질문하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되거든요. 흔히 우리가 시민의 무관심을 이야기하잖아요. 하지만 그건 미국 얘기고, 한국 사회의 더 근본적인 문제는 '질문하지 않는 것'입니다.
학벌 문제를 해결할 길은 '대학평준화'뿐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문중화된 대학 장벽을 헐어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대학 자체를 공영화하고 민주화해서 학교 운영에 관한 한 국가가 똑같이 지원하면서 국립과 사립의 장벽을 없애야 해요. 대학평준화를 하자고 하면, 서울대 없으면 한국 망한다고 다들 이야기해요. 특권계급의 이익이 국가 전체의 이익이라고 강변하면서 그 특권계급이 망하면 우리 사회가 전부 망한다고 끊임없이 우리를 협박해온 게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어요. 재벌도 마찬가지고, 과거 군부독재 때도 그랬고, 현재는 학벌도 그러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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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 나은 세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민주주의 하고 있는가? 하루하루 사는데 급급하지 않고 사유하고 사는가? 문제를 문제로 보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있는가? 잠시 멈췄던, 정신이 행동이 번쩍 눈을 뜨게 하는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말빨 끝내주는 논객들이 교육, 사회, 여성문제, 복지, 정책 등에 대해 밀도 높은 이야기로 생각의 창을 열어준다.
강대하지도 않은 문명이 오만에 취하는 것은 무엇때문일까? 보지도 못하고, 보지도 않는 것. 문제를 보지 않곡 적극적으로 기피하는, 사유의 정지가 리더들에게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면. 이러한 상황이 민주주의를 다시 봐야하고, 다시 생각해야 하는 상황까지 끌고 갔다. 힘을 합해 방향을 바꾸어야 하기에, 더 나은 세상을 만들어 가야 하기에. 지도자가 괴물이 되는 사태를 막기 위해 각계에서의 움직임이 나타났다. 국민의 동의에 의해 권력을 위임받은 정부와 국가기관은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고, 권력을 등에 얹고 괴물이 되어 국민을 공격하는 비이상적인 사태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위기는, 우리의 저항으로 나타나고 있고 우리의 문제 의식은 또 다른 행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러한 총체적인 현상들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고,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해 힘을 모으자고 말하는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괴물 지도자를 만들어 낸 것은 결국, 우리였다. 이런 모순되고 말도 안 되는 위치를 설정하고 그에 부응한 것도 우리였다. 모순된 지도자를 만들어 놓고, 우리는 세월을 역행하는 많은 사건을 접하게 된다. 민주주의라는 체제도 흔들릴 정도의 사건들. 그리고 지금 우린 민주공화국이라는 대한민국을 다시 한번 되돌아 보게 된다. 사적인 이익을 우선으로 생각하는 지도자를 뽑아 놨으니, 이익이 되지 않는 일은 하려 하지 않고, 부를 누리고 있는 사람들의 이익만 더 불려주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내린 잘못된 판단에서 비롯된 현상이었다. 그 속에서 고통받는 시민들, 괴물의 존재를 물리치고 다시 바로 설 수 있는 방법. 우리의 권리를 제대로 행하는 것이다. 끊임없는 논의와 관심이 이루어져야 한다. 포기하지 말고, 끝없는 시도로 '민주주의'가 제대로 설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강자를 뽑아 놓으면, 우리도 강자처럼 될 거라는 어리석은 욕망. 그러한 욕망이 결국은 강자만 배불리는 지도자를 탄생시켰다. 내가 약자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약자의 편을 들지 않는다. 그런 모순된 행동들은 민주주의를 실현하는데 큰 걸림돌이 된다. 어느 나라와 우리 나라를 비교하며, 왜 우리는 그런 복지를 하지 못하냐, 왜 우리는 그렇게 하지 못하냐. 그것은 결국, 남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문제가 아닐까? 더 좋은 사회를 원하고, 더 좋은 삶을 원하면서 행동은 반대로 하고 있으니. 약자, 소수자임에도 불구하고 강자의 사고방식과 똑같이 행동하니. 결국, 우리는 먼 길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의 위치를 재정비하는 사유. 생각해볼 문제다. 기형적인 민주주의. 그리고, 사회의 현상들, 변화. 그 속에서 고통받는 20대, 10대. 결국, 쌓아가는 것이다. 우리가 삶을 쌓아가는 것은, 또 다른 세상을 살 그들에게 물려줘야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미래는 생각하지 않고 닥친 하나만 생각한다. 20대에게는 40평 짜리 집을 마련한다는 것이 허구가 되고, 아이를 못 나을 세상이 되고, 꿈보다는 안정이 중요한 세상이 되어 버렸다.
우리가 뽑은 지도자들이 세상을 바로 보려고 하지 않는 것. 자신들이 생각해온 것들만 맞다고 생각하는 것. 국민의 말은 귀기울이지 않고, 척도 안 하는 것. 민주주의의 파괴를 자신들이 먼저 하고 있는 것. 이 사회 현상에서 국민들이 민주주의를 위해 발버둥 쳐야 한다는 것. 그것이 안타깝고 분하고 화가 나지만, 결국 끊임없는 논의와 노력, 작은 행동이 모여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로 갈 수 있을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 받는 사람이 우주의 중심이다."라고 노벨평화상을 받은 엘리 위셀의 말처럼, 가장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이 중심이 되어 행동해야 할 때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 책의 결론이다. 많은 이야기와 분석, 비판, 문제제기, 해결해 나갈 방법, 행동하라는 설득 등 각성을 부르는 말들이 있었다. 행동하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박원순의 유하면서도 명쾌한 결론. 세상에 공짜는 없다, 노력하는 만큼 얻을 것이다. 그렇다. 이 모든 논의가, 그리고 우리의 저항의 흔적들은 우리를 여기에 서 있게 했다. 이쯤에서 다시 민주주의를 논의하는 것도, 뭔가 원하는 방향이 아닌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방향을 다시 바로잡기 위해, 우리만의 민주주의를 만들기 위해 우리는 모두 노력하고 있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에 귀기울이고 듣고, 마음을 다잡는 것도 결국, 우리가 원하는 색을 가진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함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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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일, 한홍구, 우석훈, 오연호, 진중권, 박원순 등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과 민주 인사들이 모여 만들어낸 훌륭한 책이다. 사실 이 책은 2009년 말 민주주의에 관한 열두 번의 대중강연과 토론이 진행되고 그 결과를 모은 것이라 한다. 이 책은 시대 상황에 맞게 "반세기에 걸친 민주화운동의 성과에도 2008년 이후 한국 민주주의는 어째서 그토록 빠르게 쉽게 어이없이 후퇴와 퇴행과 반전을 강요받게 되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민주주의를 발전시키고 안착시키는 일은 경제발전보다 더 어렵고, 더 많은 시간이 걸리고, 더 긴 인내와 노력이 필요한 총체적이고 사회적인 과제라는 인식을 강조한다. 위의 질문들은 무엇보다도 50년 민주화운동의 근원적인 실패 지점과 미완의 부분에 대한 성찰의 필요성, 민주주의 정착이라는 우리 사회의 대과제를 짊어지게 될 지금의 젊은 세대에게 앞으로 무엇이 필요하고 어떤 기획과 설계와 전략이 요구되는가를 생각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한 문제의식은 민주주의의 안착이라는 과제가 어떤 정치세력이나 특정 집단에게 한정된 과제가 아니라 시민임을 자처하는 사회 구성원 모두의 과제라는 점을 강조한다.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일은 공적 영역에서는 물론이고 사적 영역에서도 진행되어야 하며 정치 영역을 넘어 경제, 문화, 교육, 노동, 여성, 지역사회, 환경, 소통, 언론, 시민운동 등을 포함한 사회 모든 영역과 분야에서 진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법과 제도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서, 더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의 이념과 원칙과 가치를 존중하는 태도, 행동방식, 정신상태, 비판적 사고습관과 합리적 판단력의 함양, 실천력 같은 문화적 요소들이 사회 모든 영역에 뿌리내리게 하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이 책에서 다루는 대중강연이 시작되었고 이 책도 출간된 것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에서는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를 돌아보고, 민주공화국에서 국가의 역할이 어떤 것인지 성찰해보고, 현 정권의 민주주의를 무시하는 태도를 비판하며, 학벌사회의 낙오자들, 소수자들의 인권에 대해 고민해보며, 헌법을 성찰하고, 언론과 미디어를 비판한다. 우선 50년의 민주 항쟁사를 가진 한국 민주주의가 단시일에 후퇴해버린 요인들 중에서 우리가 반드시 짚어야 할 것으로 우리에게 민주주의를 향한 뜨거운 열정은 있었으나 민주주의를 상시적으로 지탱할 시민적 역량을 차분히 성숙시키는 데에는 상당한 결핍과 실패가 있었다고 자평한다. 또한 민주사회를 성취하려는 노력을 모든 영역으로 확대하고 지속시키려는 문제에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시민의 양성이라 말한다. 시민들에게 정신상태, 가치관, 태도, 행동방식 같은 부분에서 시민적 역량이 길러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강조하면서, 한두 번의 민주정권 실현만으로는 민주주의를 안착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자각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선거판 자체를 바꿔야 한다면서, 김대중, 노무현이 걸어왔던 과거와 같은 민주화운동 방식의 시대는 끝났다고 선언한다. 이제는 민주주의의 내용을 가지고, 민주주의가 내 삶과 일자리 문제를 결정한다고 대중이 생각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또 한편으로 우리 사회는 정부만 섬처럼 민주화된 측면이 강했다고 자평한다. 기업, 언론, 교육, 종교, 금융, 통신, 유통, 법률 같은 영역들은 역 민주화 또는 역 근대화하면서 점점 더 소수 상류층에게 권력과 재화의 가치가 집중되었다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섬처럼 존재하던 상대적인 진보개혁정부가 물러나고 보수정부가 들어서자 사회의 민주성이나 개혁성이 사라지는 이상사태에 직면하게 된 것이 바로 오늘날의 모습이란 것이다. 그래서 선거나 투표, 공직후보 출마, 정당이나 정치단체 가입만으로 부족하다면서, 직접 정치 참여가 활성화되어야 하며 시민, 국민의 참여를 보장하는 국가기구를 획기적으로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는 대한민국에 공산당이 없다는 점이야말로 정치권 전체의 보수화를, 녹색당이 없다는 점은 정치권 전체의 토건화를 잘 말해준다고 역설한다. 어떻게 보면 지난 10년 동안 한국 정치는 지독할 정도로 분화에 실패한 셈이고, 시대의 변화에 따른 새로운 정치세력의 등장이 가로막혀 있었던 것이란 말이다. 또한 현재 자라나는 청소년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무척 흥미로웠다. 김상봉 교수의 글이었던 거 같은데 학원의 민주화 과정과 청소년의 자율성 문제를 언급하면서, 질문을 못 던지는 수동적 자세가 사회 전체의 문제라고 강조한다. 모든 종류의 불합리와 불편함과 불의가 질문하지 않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말이다. 또한 대학평준화만이 학벌문제를 해결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진정 우리 아이들에게 필요한 능력을 키우기 위해 책 읽는 아이로 키우고, 예술적 감수성을 키우고, 인간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키우라고 조언한다. 특히 인간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란 삶의 고통에 대한 감수성을 말하며, 이러한 인간이 겪는 보편적 고통에 대한 감수성이야 말로 진정한 열정의 뿌리라고 말한다. 이런 감수성은 자기만 아는 사람한테서는 찾아보기 어렵다고도 한다. 또한 인간이 살아가면서 가져야 할 유일한 열등감은 도덕적 열등감뿐이라면서, 이것은 스스로 짓밟는 게 아니라 고양시키는 열등감이기 때문이라 한다. 따라서 학교에서 1등이 아닌 2등을 했다고 열등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은 불합리 하다는 것이다. 이 분은 자식을 키우면서 늘 좌우명처럼 하는 말이 "인생은 어차피 불행하다. 절대로 행복하게 살 생각하지마라. 다만 신나게 살아야 한다."라고 한다. 매우 인상적인 언급이 아닐 수 없다. 그 밖에도 헌법 실천의 측면을 강조한 글도 있다. 우리 생활에 진짜 필요한 것들이 결국 법률에 의해서 영향을 받고 있으므로 그 법률의 틀을 바꾸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그 법률을 만드는 사람에 대해서 끊임없이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 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이 만드는 법 하나하나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야 한다면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와 인권, 그리고 민주주의를 최대한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알아야 한다며 헌법 공부를 하라고 강조한다. 마지막으로 진중권과의 대화 내용을 구술한 것도 무척 인상적이었는데, 인문학은 지금 상태로 가면 다 죽는다는 발언이 흥미로웠다. 이미 있는 현실을 설명하고 이해하고 해석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직 없는 현실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이제는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인문학이 현실의 해석학, 세계의 해석학이었다면, 미래의 인문학은 세계의 제작학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내용과 형식 모두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면서, 지금 대학생들한테 17세기의 셰익스피어를 읽히는 것보다는 프라다를 보게 하고, 아이폰을 보게 하고, 헬로 키티를 보게 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지금 사람들은 그것들을 통해서 자기의 미감들을 형성해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전체적으로 이 책을 통해 민주주의와 새로운 사고방식에 대한 열린 비평들을 접할 수 있어서 무척 좋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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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지식인들의 강연집이 꾸준히 발간되고 있다. 주로 진보 언론사에서 특강형식으로 진행했던 내용들인데, 프레시안북의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2008). 한겨레신문사의 <화>(2009) 시사인의 <거꾸로, 희망이다>(2009). 그리고 휴머니스트(&오마이뉴스)의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2010) 등이 그러하다. 경향신문만 더하면 그야말로 진보 언론 총집합인 셈. 이러한 강연집은 주제의 다양성에 비해 깊이가 덜하지만, 그래도 강연장의 열기가 느껴져서 좋다. 최근 유명인사들의 강연을 접할 기회가 많아지긴 했지만, 시간과 정보의 부족으로 놓치기가 일수니 책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래야겠다.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는, 이제껏 출간된 강연집 중에서 가장 퀄리티가 높아 보인다. 가급적 웃음기를 빼고 진지함을 담았다. 한홍구는 "민주주의 100년사"를 담백하게 돌아보았고, 박명림은 국가의 역할이란 "사적부문의 차이와 불평등을 최소화 하는 것"이라고 역설한다. 정희진은 '의인화된 국가'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우석훈은 밀레니엄 이후 10년간 한국이 걸어온 두가지 키워드로 '토건'과 '10대의 보수화'를 꼽았다. 김상봉은 우리네 학벌사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아래의 글귀가 마음을 붙잡는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 것은 단순히 사교육비가 많이 들어서 부모가 힘들다는 차원이 아니라 윤리적 문제입니다. 한국 사회에서 아이를 낳는 것이 과연 도덕적으로 정당한 일이냐는 것이죠. 아이들 입장에서는 여기가 바로 생지옥이니까요.(161)
김상봉은 학벌문제의 해결방법으로 대학평준화를 제시한다. 국립대 추첨입학과 교수 순환보직제를 실시하며, 학생들도 교수를 따라서 돌수 있도록 하잖다. 또 다양한 종류의 성인교육(야간대학)을 시행하며, 로스쿨 배정인원을 평준화시켜야 한단다. 당장 실현가능성은 낮지만 분명 필요한 제도라고 여겨진다. 한편 김종철(녹색평론 편집장 아님)은 '헌법은 바꾸는 것보다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주장했으며, 오연호와 진중권은 새로운 미디어로서 인터넷에 주목한다.
여러분 개개인이 미디어가 되어야 합니다. 블로그를 만들고, 카페에서 활동하고, <오마이뉴스>의 시민기자가 되세요. 혼자만 생각하지 말고 연대하고 수많은 공간에서 개인 미디어가 되십시오.(244)
이 책에서 가장 인상깊은 인물은 단연 박원순이다.(<거꾸로, 희망이다>에서도 그랬다.) 그의 이야기는 언제나 유쾌하고, 희망으로 넘쳐난다. 책상물림의 추상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현장의 운동가로서 실제적인 사례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하기 때문에 "뭔가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감응이 전해진다. "(희망제작소 회원이) 지금은 1000명이 조금 넘는데, 1만원을 내시는 분들이 1만명이 되면 대한민국의 희망을 제작하는 일들을 안심하고 마음껏 할 수 있습니다." 란 말에 낚여서 나도 후원회원으로 등록했다. 좀 더 많은 분들이 그의 비젼에 힘을 실었으면 좋겠다. 이런 분이 우리 나라를 이끌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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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각 분야의 전문가, 지성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포럼 형태로 위기에 빠진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진단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민주주의의 심각한 퇴보와 몰락은 독재 정권의 야욕을 품은 쥐새끼들이 가진자들만의 세상을 만들고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더욱 굳건하게 만들기 위해 언론 탄압, 관제 보도, 보도 지침 등과 같은 온갖 더러운 짓을 담습하고 있다.
이런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젊은 세대들은 저 더러운 쥐새끼들이 교묘하게 뒤틀어 놓은 불합리한 규칙의 게임에 뛰어 들어 철저하게 유린을 당하게 될 것을 생각하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수구 꼴통들의 뼈 속깊숙이 박혀 있는 노예 근성을 유전적으로 물려 받은 것인지 답답할 따름이다.
아무쪼록 이 책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널리 읽혀지게 되어 더 많은 사람들이 현 민주주의의 위기를 감지하고 각성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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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라는 단어는 민주화를 위해 피 흘렸던 우리 선배들이 바친 목숨 값으로 이뤄낸 결과물이고 우리세대는 그런 선배들의 희생의 몫을 향유하는 축복받은 세대로 생각한 적이 있었다. 수십년간 우리들 선배들의 투쟁으로 1997년 첫 평화적 정권 교체를 이뤄냈었고, 2002년 시민들은 학벌도 빽도 없는 보통사람을, 그렇지만 가슴속 순수한 열정만큼은 가득한 사람을 대통령으로 만들어냈고, 그런 대통령을 시기한 기득권 세력들이 폭력적인 민주적 절차인 “탄핵”으로 끌어내리려고 했지만, 시민들이 촛불과 투표로 그를 지켜내는 것을 보면서 우리의 민주주의는 완성되었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솔직히 고백하자면 지난 2008년 보수주의 신정부가 들어설 때도 그동안 공공히 다져온 민주적 기반 때문에 상식을 벗어난 독선과 과거로의 회귀는 사실상 어렵지 않겠느냐 하는 낙관적인 생각을 가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뀐 지 불과 2년 반 만에 우리 사회는 그들이 주장하는 “잃어버린 십년”을 넘어 수십년 전으로 완전히 후퇴해버렸다. 자신과 자식들의 건강을 위해서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선 시민들은 경찰의 군화발과 물대포에 속절없이 쓰러져가야 했고, 경제위기를 경고하는 글을 올리던 인터넷 논객은 수감되어 차디찬 감방에서 몇달을 보내야 했고, 생존을 위해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야 했던 사람들은 “합.법.적.”인 경찰의 진압작전에 의해 목숨을 잃어야 했고, 방송국 기자들과 PD들은 언론자유를 외치며 파업을 하고 있으며, 수십년 만에 종교계 성직자들이 “생명 존중”을 외치며 거리로 나서고 있다. 우리가 지난 몇 십년 동안 그렇게 타도하고 물리치고자 했던 각종 반민주적이고 폭압적인 행태들을 2년 반동안 바둑판 복기하듯이 고스란히 다시 겪고 있는 셈이다. 지난 정부가 경제 정책이나 부동산 정책에서 실정을 거듭하면서 - 이것도 보수 기득권 언론들의 악의적인 비난으로 왜곡된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 “경제”가 정권교체의 이유가 되었는데 도대체 나아지라는 “살림살이”가 더 팍팍해지고 피땀 흘려 겨우 이뤄낸 민주주의의 시계바늘은 한순간에 수십년 전으로 되돌려지고 만 것일까? 10 여년간 잊고 지냈던 민주주의에 대해서 우리는 다시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도정일, 박원순외 지음, 휴머니스트, 2010년 5월)”는 이 시대에 다시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민주주의에 대한 격정적인 이야기하고 있다.
2009년 11월과 12월, 휴머니스트와 오마이뉴스 공동으로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민주주의 특강”을 활자로 엮어낸 이 책은 도정일, 한홍구, 박원순, 우석훈 등 그동안 각종 언론 기고 글이나 책, 인터뷰들을 통해서 한번쯤은 만나봤을 만한 역사, 법학, 철학, 과학, 경제, 언론, 인권, 시민단체 등 각 분야에서 명망을 얻은 12명의 강사들이 이야기하는 다양한 민주주의에 대한 담론을 담고 있다. 도정일 교수는 여는 글에서 “우리는 어떤 세계를 지향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결코 포기하지 말고 인간, 사회, 역사, 문명에 대한 책임을 명심하라고 이야기하고, 한홍구 교수는 지난 100년간의 민주주의 역사를 회상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말씀처럼 ”가만히 있으면 진다!“면서 우리의 미래뿐만 아니라 우리 아이들의 장래도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결정될 것이라고 말한다. 박명림 교수는 우리는 단지 정부를 민주화했을 뿐 역근대화, 사사화, 근본화, 탈공공화, 자영화, 개체화, 만인 불안화 등이 빠르게 진행되어 왔으며 그 결과 이제 사회는 거의 해체 단계에 이르렀다고 경고하며 국가의 공공성을 회복하여 개인 삶의 공공적 안정과 예측 가능성을 보장하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또한 여성 인권 운동가인 정희진씨는 국가는 행위자가 아니라 가치에 가까운 관념이기 때문에 국가 자체는 스스로 아무일도 할 수 없고 권력자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자기 행위를 하는 것이고, 실제 국가, 국민 전체의 이익은 애초부터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전체이익“과 ”국익“이라는 말로 소수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 자체가 모순이라고 이야기하며, 우석훈 교수는 밀레니엄이후 10년 동안 우리나라에서 벌어진 “토건”, “10대의 보수화”가 보수주의자들에게 필승의 길을 열어주었고, 토건형 보수 국라고 경제의 기본 체질이 변화되었다고 말하면서 생태적 소양을 갖춘 생태적 시민으로서 자기 존엄성을 가지는 “빈자들의 생태학”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거리의 철학자” 김상봉 교수는 한국 교육의 가장 큰 문제는 각 시대나 사회가 꿈꾸는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에 대한 “이념없는 교육”이며 한국사회에서 학벌은 철저하게 사회적 차별의 기제이자 시민적 의사소통을 치명적으로 왜곡하고 있어 "대학 평준화"만이 학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하고, 김종철 교수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유와 인권을 최대한 높은 수준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즉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헌법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오마이뉴스 대표기자인 오연호 기자는 자신의 월간 잡지 “말”과 “오마이뉴스"에서의 근무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동네 신문, 지역소식지, 개인블로그, 온라인 카페등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소수의 인원이 의도적 혹은 비의도적으로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언론 ”실핏줄언론“이야말로 그 자체가 희망이며 그들이 연대하면 희망을 넘어서 승리할 수 있다고 역설한다. 진보 논객이자 미학자로 유명한 진중권 교수는 21세기는 미디어 패러다임 시대이자 독특함을 보여주는 상상력이 생산되는 시대이며, 정치면에서는 진보적이지만 일상 속에서는 보수적인 습속을 버리고 촛불 집회에서, 허경영 현상에서 미래를 전망(Prospect)하고, 그런 전망 속에서 미래를 기획하는 것, 그렇게 우리 사회를 ”Programing"해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 홍성욱 교수는 시민들이 과학기술 정책, 방전방향, 사용에 대하여 더 많이 참여하는 시민과학을 통해서 참여 민주주의 가능성을 열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김찬호 교수는 서로의 말길을 터주는 “의미 창조의 공간”, 말이 통하는 공간적 공간이자 민주주의 가장 기본 터전인 “마을”을 가꿔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박원순 변호사는 세상을 바꿔온 주역은 “깨어있는 시민”, 즉 개개인 한사람이며 우리 공동체를 위한 의사 결정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주인이 되는 나라를 만들면 민주주의도, 경제도, 우리의 삶도, 미래도 절로 만들어지며,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작은 일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그 첫걸음이라고 이야기한다. 12명이 이야기하는 민주주의에 대한 다양한 담론의 공통된 주제는 뒤로만 흘러가는 시계바늘을 앞으로 돌려놓기 위해서는 모든 시민들이 그저 체념과 절망에서 벗어나 작금의 현실의 심각성을 충분히 깨닫고 함께 연대하여 정권에 대한 감시의 눈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것일것이다. 예전처럼 거리로 뛰쳐나와 돌과 화염병을 던지는 투쟁이 아니라 “마을”과 같은 소규모 공동체 운동, 개인 블로그, 인터넷 카페 등 인터넷 언론의 활성화 , 하루에 한 조문씩 읽어나가는 헌법 공부, 우리 사회의 상당 부분에 자리 잡고 있는 보수적 습속을 버리는 일, 국민 주권인 “선거” 등과 같은 지금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일부터 시작하는 것이 필요하며, 시민들이 계속 깨어있어 그들을 감시하는 한 저들의 헛된 노력은 결국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잠시간의 망각으로 우리는 그 소중함을 다시금 잃어버릴 뻔 했지만 대한민국 국민들은 오랫동안 온갖 희생을 겪으면서 지켜내고자 애써왔던 “민주주의”의 소중함을 다시금 떠올리고 있다. 이제는 잊지 말고 항상 그 소중함을 간직하고서 저들을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제 함께 연대하여 행동해야 한다. “가만히 있으면 지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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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민주주의를 말한다
선거의 계절, 일면식 없는 아주머니들의 성의 없는 인사와
누군지도 모르는 교육감과 교육위원들의 명함만 대여섯장을 받고
슈퍼맨이된 정치인들의 시끄러운 확성기 소리에 짜증이 높아지는 더운 날
과연 민주주의가 무엇인지 고민하게 하는 책을 만났다.
민주, (백성이 주인?) 은 고사하고 먹고사는 문제를 고민하고
아이들 키우는 교육과 노년을 걱정하다보면 아이낳는 것이 겁나는 나라 대한민국
한국 민주주의의 100년의 역사, 과연 국가의 역할은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소수자는 누구인지, 학벌사회를 타파할 가능성은 있는지
대한민국에 헌법의 역할이 무엇인지, 믿을 수 없는 미디어가 무슨의미가 있는지
책은 많은 문제들을 이야기 한다.
나를 대신하는 사람들을 선거를 통해 뽑아 나라를 다스리는 대의 민주주의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내일이다.
홍보물만해도 수십장 벽보에 붙은 인물만 삼십명이 넘고 도장찍어야 하는 것도 여덟장
선거를 위해 공부를 해야할 정도이지만 그래도 포기하지는 말아야 한다.
빛과 어둠은 행동으로 결정된다.
풀뿌리 민주주의, 대한민국의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세잎클로버 보다는 행운의 네잎을 찾아 헤멘다.
어린시절부터 위인전에 익숙해지고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무한한 꿈을 꾸게한다.
평범한 세잎으로 살기보다는 행운을 움켜쥔 나폴레옹이 되라고
하지만 대다수의 평범한 세잎들이 이세상을 움직이고 만들어간다.
스스로의 자존감을 가지지않고 평생을 네잎클로버 찾는데 정신을 내놓은 사람들에게
나라를 맡겨야 하는 것이 불안하고 한심하지만
앞으로의 대한민국에는 진정한 세잎의 사람들이 함께사는 사회를 만들어 갈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오늘도 행운을 찾아 떠들어대는 소음은 그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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